"엑? 뭐야! 벌써 이것밖에 안 남았어?"


빈 게시판에 남아 있는 건 조금의 먼지, 그리고 몇 장의 인기 없는 의뢰서들 뿐이었다.


"좀 더  일찍 오지 그랬어, 아가씨."

"전에 있던 마을에서는 오후까지도 의뢰가 남아 있었는데…"


옆 테이블에서 무심하게 돈을 세는 중년의 남자가 말했다.


"여긴 처음인가? 생각보다 붐벼서 놀랄 만도 하지. 북쪽 영지로 가는 가도도 있다 보니 사람들이 꽤 많이 다니거든."


마을에 오기 위해 마차를 빌려 타고 어젯밤 숙박비까지. 최근 지출이 꽤 많았다 보니 당장 오늘 뭔가 일을 맡지 않으면 오늘 잠자리 구하기도 어려워질 판이었다.


'젠장… 요 주변은 늑대가 많다 해서 그쪽 일을 찾아볼 생각이었는데 싹 다 쓸어갔잖아…'


신비한 빛깔이 도는 장검을 등에 메고 긴 갈색 머리카락을 뒤로 묶은 모험가, 제나는 게시판 앞에서 우왕좌왕하며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가만히 있어 봤자 없는 의뢰가 생기는 것도 아니건만.


'어쩔 수 없지… 당장 오늘 숙소도 구해야 하니 급한 대로 아무 일이나…"


제나는 아쉬운 대로 커다란 게시판 구석에 남아 먼지만 쌓여가는 의뢰들을 훑어봤다.


[하수도 청소]

[과수원 일용직]

[슬라임 토벌]


"선택의 여지가 없네…"


긴 검을 멘 모습대로 그녀는 괴물들을 죽이고 사냥하는 데에 익숙한 모험가였다. 슬라임 토벌 의뢰는 유일하게 남은 사냥일이었으니. 제나는 아래에 써있는 상세 설명조차 읽지 않고 종이를 떼어 가방에 찔러 넣었다. 그 설명이란 이러했는데-


'호숫가 숲에서 과다 증식한 슬라임들이 농지까지 넘어와 작물들을 먹어치우고 있습니다. 못 보던 종류의 변이 슬라임도 있는 것 같으니 유념해 주세요. 보수: 슬라임 코어 1개당 8골드'


늦잠이 반쯤 습관이 된 제나는 해가 지기 전에 최대한 많이 코어를 모아올 심산으로 의뢰서를 챙기자마자 빠른 걸음으로 숲에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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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운데에 호수가 자리한 마을 서쪽의 숲에 제나가 도착했을 때에는 한두 시간이 지나 실질적으로 사냥할 시간은 많지 않았다. 나무가 높아 낮인데도 주변은 어둑어둑했고, 이끼와 풀로 가득한 땅은 발걸음을 무겁게 만들어 탐색을 어렵게 했다. 


'그래도 슬라임은 물에 가까이 사니까, 호수 쪽으로 가면 찾을 수 있겠지.'


제나는 서둘러 숲 안쪽으로 들어갔다. 이끼 덮인 바위를 알아보지 못해 넘어질 뻔 하면서도, 점점 느껴지는 괴물의 기색에 집중했다. 얼마 안 가, 제나는 슬라임을 발견할 수 있었다.


"찾았다! 거기 딱 있어!"


타앗! 출중한 각력으로 성인 남자의 키 정도 되는 높이를 뛰어올라, 검을 뽑아 슬라임을 양단했다. 


푸쉿! 하는 소리를 내며 대형견 정도 크기의 슬라임이 갈라졌다. 슬라임은 마법을 쓰지 않는 한 어지간한 물리적 공격은 그 탄력 있는 몸으로 받아내기 때문에, 집중해서 상당한 힘으로 단번에 베어내지 않는 한 코어가 있는 안쪽까지 날을 집어넣을 수 없다.


슬라임은 깔끔하게 반으로 갈라졌다. 하지만 아깝게도 코어 바로 옆을 빗겨나가서 죽지는 않았다.


"이익, 귀찮게!"


곧바로 칼끝으로 절단면에 드러난 코어를 찔렀다. 본체를 궤뚫린 슬라임은 그대로 부글대면서 흙바닥에 엎질러진 물처럼 퍼졌다. 바닥에는 탱글탱글한 공 같은 슬라임의 코어만이 남았다.


"일단 하나."


제나는 칼로 코어를 찍어올려 가방에 던져넣었다. 한 마리를 잡았다고 기뻐할 것이 아니었다. 슬라임 한 마리당 8골드였으니, 최대한 많이 잡아내야 본전이라도 뽑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제나는 그 후에도 첫 슬라임을 발견한 곳 주위를 돌아다니며, 많은 슬라임을 발견했다. 그리고 죽였다. 서너 마리가 모여서 나올 때도 있었고, 때로는 대여섯 마리가 한꺼번에 나오기도 했다. 아무리 슬라임이 괴물이라고 하기도 부끄러운 약한 생물이었다고 한들, 호숫가의 물을 먹고 커다랗게 불어나 더 진득하고, 더 탄력 있고, 더 물리 공격에 강한 슬라임들을 한꺼번에 상대하는 건 대충 상대할 적수는 아니었다.


슬라임 사냥에 한참을 들이다 보니, 가방은 수집한 코어로 묵직해졌고 무성한 나뭇잎 사이로 새어나오는 햇빛도 점점 약해지고 있었다.


'너무 많아서 몇 마리를 잡았는지 잘 모르겠네… 어림잡아 사십? 오십 마리쯤 되나? 이정도면 그래도 오늘 숙소는 구하고 식사도 되겠지.'


"슬슬 돌아갈까."


내일부터는 제대로 된 의뢰를 받기 위해서라도 늦잠 자는 습관을 고쳐야겠다. 같은 생각을 하며, 해가 지기 전에 마을로 돌아가기 위해 제나는 숲 바깥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때, 또 한 무리의 슬라임이 나타났다. 


"또야? 정말 많네."


어둠 속에서 슬라임들이 윤곽을 완전히 드러내자, 제나의 표정이 굳었다.


"우왓… 뭐야 이것들! 엄청 크잖아."

'게다가 저건…'


슬라임들은 하나같이 거대했다. 지금까지 잡은 것들보다 더 컸다. 무리 중 한 마리는 일반적인 것들과 색이 달랐는데, 붉은 색과 위압적인 덩치는 제나로 하여금 긴장하지 않을 수 없게 했다.


'변종 슬라임..? 저런 게 있다는 소리는 못 들었다고!'


제나는 등에서 검을 뽑아 끝을 슬라임 무리에 겨누었다.


"하나… 둘, 그리고 옆에서… 응. 마지막은 그렇게."


전투의 윤곽을 머릿속에 대충 그린 제나는 망설임 없이 달려나가 칼을 휘둘렀다.


"하아-앗!"


푸욱!


터억ㅡ


"무슨!?"


베어지지 않았다. 그보다 칼날이 박혀버렸다. 슬라임의 옹골찬, 동시에 물컹한 몸체는 진심을 담아 횡으로 그은 참격을 받아냈다.


슬라임답지 않은 묵직한 질감에 당황한 제나는 칼을 뽑아냈다. 뒤로 물러나 자세를 가다듬었다.


"말도 안 돼. 무슨 슬라임 주제에ㅡ"


엄청난 밀도. 코어를 감싼 반투명한 슬라임 젤은 제나의 칼날마저도 붙잡았다. 이런 슬라임들이 더 늘어난다면 마을에 위협이 될 지도 모른다.


"힘 좀 써야겠는데."


전력을 다 해야 한다. 마법사가 없는 지금, 단독의 검사로서 상성이 불리한, 더군다나 보통의 수준을 한참 뛰어넘은 슬라임들을 죽이는 건 상당히 힘들다.


"좋아. 후우ㅡ"


하지만 제나는 동시에 흥분했다. 이런 평범하지 않은 상황은 모험가인 그녀에게 희열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타앗! 제나는 다시 뛰었다. 베는 건 좋지 않다. 아까처럼 칼날이 코어에 박히기도 전에 젤에 막혀버릴 것이다. 그래서 전략을 바꾸었다. 베는 것에 익숙한 그녀이지만, 벨 수 없다면 찌르는 수 밖에 없다. 어두운 숲속에서 최대한 안력을 돋우어 슬라임의 핵에 시선을 고정했다.


'지금!'


정확한 타이밍을 포착한 순간, 제나는 더 이상 생각하지 않고 반사적으로 칼끝을 내질렀다. 허리, 어깨, 팔을 타고 온몸의 힘이 날카로운 첨단에 모였다.


벨 수 없었던 슬라임의 몸체는 물렁한 두부처럼 장검의 칼날에 길을 내어줬고, 그 길의 끝은 정중앙에 있던 코어로 향해 있었다.


"라이트닝!"


제나가 그 단어를 말한 순간, 슬라임에게 깊숙히 박아넣은 장검의 칼날에서 파직. 파직. 하고 푸른 가시같은 불꽃이 튀더니, 곧 덩굴과도 같은 눈부신 번개가 흘러나왔다. 번개는 그 마법검의 칼날이 박힌 슬라임을 지져 버리고(끓여버리는 것에 더 가깝겠지만), 주변의 나머지 슬라임들도 감전시켰다.


슬라임들은 모두 그 치명적인 전격에 부글부글 수증기를 내며 제자리에서 요동치더니, 바닥에 퍼져 쓰려졌다.


"후… 후우… 후우… "


이 마법검의 번개 마법은 강력했지만, 제나는 가급적이면 이 주문을 최대한 쓰지 않으려고 했다. 검이 사용자의 마력 대부분을 빨아들여 주문에 사용하기 때문이다. 고급 마도구 같은 경우는 대기의 마나를 흡수해서 스스로 충전하거나, 사용자가 여유가 있을 때에 임의로 미리 충전시켜 둘 수 있었지만, 제나의 검은 그런 종류의 고급품이 아닌 탓에 이 부작용은 불가피한 것이었다.


그렇다고 제나는 마법을 쓰지 않을 수도 없었다. 좀 전처럼 숙련되지 않은 찌르기 공격만으로 모든 슬라임을 잡을 수 있을 거란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슬라임에게 확실한 상성 우위를 가지는 마법 공격으로 일망타진하기로 결심했고. 결과적으로 전략은 성공했다.


제나는 그대로 하반신에 힘을 잃고 주저않았다. 숲속은 서늘한데도 주체할 수 없이 전신에서 땀이 흘러 옷과 흙바닥을 흠뻑 적셨다. 마력 대부분을 주문에 쏟아부어 탈진 직전의 상태에 놓인 제나는 가쁜 숨을 쉬며 컨디션을 가다듬는 데에 집중했다. 해가 지기 직전이었고, 숲은 바깥보다 어둡기 때문에 거의 밤이나 다름없었다. 지금 상태에서 다른 괴물에게 습격이라도 당한다면… 반격도 못하고 당해버릴 것이 뻔했다.


'쓰러지면 안 돼… 정신을 붙잡아야…'


제나의 손끝은 파들거렸고, 입을 다물 힘조차 없어 침이 흘렀다. 주체할 수 없이 몰려오는 졸음이 제나를 괴롭혔다. 다행이라면, 햇볓이 들지 않는 차가운 숲의 공기가 수마를 쫓는 데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었다. 이대로 조금만 쉬다가, 최소한의 기력이 회복되면 일어나 코어와 가방을 챙겨 마을로 돌아가면 될 일이었다. 


'주변에 다른 괴물의 기색도 없고… 괜찮아.'


눈앞에 있는 죽은 슬라임들의 코어도 보통의 것들보다 훨씬 컸다. 하나는 변종의 것이라 붉은 색을 띄었다. 아무리 흔한 슬라임의 코어라도 이런 우량품들과 희소품이라면 꽤 값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안심한 제나가 눈으로 코어들을 살피고 있을 때, 한 코어에게서 이변이 발생했다.


움찔.


'?'


변이 슬라임의 코어는 잠시 꿈틀거리더니, 바닥에 흩어진 슬라임 젤들이 코어에 모여들었다. 


'그만한 주문을 맞고도, 아직 안 죽은 거야?!'


붉은 코어는 주변의 죽은 슬라임들의 젤과 코어도 제 주위에 모아붙이더니, 죽은 동료의 젤은 자신의 육체로 삼고, 코어는 포식하여 먹이삼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섯 마리의 슬라임들의 잔해가 널부러진 땅에서 하나의 거대한 새로운 슬라임이 탄생했다. 변이 슬라임의 코어는 포식한 코어들을 양분삼아 분열해, 두 개의 붉은 핵이 한 슬라임 내에 공존하게 되었다.


'위험해… 이 상황은 위험해!'


슬라임의 크기는 이미 슬라임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거대해져 사람의 크기는 진작에 뛰어넘고, 거의 초원의 맹수에 맞먹는 크기였다. 육중한 크기 탓에 꾸륵꾸륵. 하고 소리가 났다.


'안돼… 지금 공격당하면… 당해버려…'


슬라임은 위압적인 거체를 이끌고 천천히, 무방비한 제나에게 다가갔다.


질처억


"오지… 마…"


동족의 코어를 포식하여 더 이상 식사할 필요는 없을 텐데, 슬라임은 제나의 무릎부터 천천히 몸을 밀어붙여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안….돼! 이대로라면 소화당해 버려… 죽어… 죽는다…!'


제나는 필사의 힘으로 검을 집었다. 파들거리는 손바닥은 금방이라도 칼자루를 떨어트릴 것 같다. 제나는 젖 먹던 힘까지 내어 슬라임을 공격하려 했지만,


"읏… 으윽…"


슬라임에게 지능이라도 있는 걸까, 슬라임의 젤은 그대로 칼날을 붙잡아 빼앗고, 제나의 손이 닿지 않는 뒤로 던져버린다.


"앗… 돌려… 줘…!"


슬라임은 제나의 무릎을 스스로의 젤 안에 쑤셔넣었다. 제나의 가죽 부츠는 동물성 재료. 따라서 슬라임이 소화할 수 있다. 슬라임은 제나의 하반신 전체를 삼켜가고, 동시에 부츠를 소화시켜 나갔다.


부츠가 전부 녹아 없어지면, 그 후는 다리의 차례다. 제나는 약한 슬라임 따위에게 포식당한 사람을 본 적은 없지만, 그렇게 된 사람의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있다. 그도 전투 후에 탈진해서 쓰려졌을 때 슬라임에게 한쪽 다리를 먹혔다고 한다. 산 채로, 저항도 하지 못하고 다리가 천천히 녹아가는 감각은 끔찍했다고.


동시에 곧 잡아먹힌다는 상상, 고통에 대한 두려움으로 몸이 떨렸다. 모험가용의 질기고 두꺼운, 무릎 위까지 그녀의 다리를 감싼 부츠는 점점 얇아져만 갔다.


어느새 슬라임은 제나를 가슴 바로 아래까지 삼켰고, 옷 틈새로 슬라임 젤이 스며들어 왔다. 차가운 감촉이 제나의 배에 닿았을 때, 제나는 절망했다. 나머지 부위가 소화당하는 것도 시간문제인 것이다. 그렇게 자신의 맨살이 녹는 고통을 감내하기 위해 눈을 질끈 감았을 때,


'...?'


아프지 않다. 이상하다. 부츠는 이미 깔창과 윗부분 조금만을 남기고 대부분 녹아 다리 전체가 슬라임 젤에 감싸여 있는데, 피부가 녹아 선혈을 토해내며 고통을 선사하기는 커녕, 다리도 몸도 멀쩡했다.


물컹한 젤은 제나의 짧은 바지도 소화시켰다. 틈새로 파고든 슬라임은 제나의 얇은 속옷 따위는 순식간에 없애버렸지만, 여전히 옷을 소화시킨 후로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목적이 뭐지…? 포식이 아니야? 어째서 옷만?'


제나가 의문에 빠져  있을 무렵, 몸 대부분은 슬라임 내에 파묻혔다. 팔도, 가슴도 집어삼켜져, 어깨와 목, 그리고 머리만이 바깥에 남았다. 슬라임의 무거운 질량이 제나의 몸을 압박했고, 호흡을 힙겹게 했다.


"하아...흑… 후우…"


슬라임의 몸체에 짓눌려 답답한 숨결을 내쉬는 제나의 옷은 이제 거의 남지 않았다. 어두운 숲 한복판에서 거대 슬라임에게 삼켜져 나체가 된 것이다. 반투명한 슬라임은 제나의 소담한 가슴과, 모험가 생활로 단련된 복근, 꼭 다물어진 음부와 항문. 매끈하고 쭉 뻗은 다리를 여실히 드러냈다.


'슬라임이 뭘 하는…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이야?'


알몸이 되었다 한들 수치스럽지는 않았다. 그녀의 위독한 목숨과, 충격적인 상황. 더군다나 보는 사람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상황을 관망하는 것 밖에 없었다.


'포식이 목적이 아니면…? 지능이 있긴 한 건가? 아무것도 모르겠어…'

'게다가 숨쉬기 힘들어… 이대로 얼굴까지 먹히면 질식해버릴텐데…!' 


포식이 목적이 아니라면. 


"... 흐읏!?"


"어, 어디에 들어오는… 거...야!"


제나의 질에 슬라임이 밀고 들어왔다. 강한 검사인 그녀답게 단단하게 다물려 있는 그곳이지만, 기력을 잃은 상태에서 조금만 밀어붙이니 조금씩 입구가 벌어졌다. 제나는 식겁하여 몸부림을 치거나, 어떻게든 질을 조여서 이물질의 침입을 막아보려 했지만, 어느 쪽이든 무용지물이었다.


제나는 목만 남기고 전신이 슬라임 속에 파묻혀, 호흡을 지속하는 것 마저도 힘들어졌다.


"흐ㅡ윽 흐ㅡ으… 흣… 으…"


숨이 막힌다. 슬라임에게 먹혀서 속옷까지 전부 소화당해 숲 한복판에서 나신을 드러내고 있다. 질은 슬라임이 파고들어 오고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도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제나의 머릿속은 포화상태였고, 뭔가를 더 생각해볼 여유가 있을 리가 없었다.


질을 계속해서 밀고 들어온 슬라임은 꽉 닫힌 입구를 마주했다. 여성의 성스러운 공간. 아이만을 위해 허용된 금이(禁異)의 영역. 자궁의 입구. 출산 시에만 열리는 문이지만, 슬라임은 그런 사정 따위는 알지도 못하고, 고려할 지능도 없었다. 제 목적을 위한 장소가 저 안에 있으니, 닫혀 있다면 비틀어 열 뿐.


"!??!잠...깐, 그으으으윽ㅡㅡ 이잇, 흐그으엑!"


자궁 입구를 우악스레 벌리는 고통에 제나의 입에서 천박한 비명 소리가 저절로 터져나왔다. 


"아, 아파ㅡ!! 그만!! 히익ㅡ 우으으윽."

"들어오지 마, 나, 가ㅡ"


슬라임이 사람의 말을 들을 리가 만무하다. 슬라임에게 남은 목표ㅡ 그것은 번식이다.


자궁에 들어온 슬라임의 일부는 곧 자궁 내벽에 끝을 들이받아, 뭔가를 찾듯이 안쪽을 누른 채로 더듬으며 훑었다.


"으윽… 그윽… 아파… 그만…"


찾았다. 자궁 안쪽의, 태아의 원천으로 이어져 있는 통로. 슬라임은 발견한 두 입구(여성에게는 출구이겠지만)에 기어들어갔다. 


난관을 타고 올라가 그 종점에 자리한 두 개밖에 없는 소중한 기관인 난소를 발견했다. 


그리고ㅡ 집어삼켰다.


"아… 읏, 으윽!? 히이이이이이이이이익!!?"


"잠깐, 잠,깐. 어딜, 끄으으윽. 우우우욱ㅡ"

"뭐야 이거, 아파! 뭐야…!"


패배하지 않았더라면, 경솔하게 의뢰를 받지 않았더라면, 어쩌면 운명같은 반려자를 만나 그 아이를 만들 수도 있었던 제나의 난소는. 먹혀버렸다. 무참하게. 슬라임 따위에게.


제나의 생식소는 그 기능을 잃었다. 그리고 잃어버린 생식 능력은, 다른 이의 것으로 대체될 것이다.


제나의 난소(였던 곳)까지의 길을 만든 슬라임은 곧 그 코어를 제나의 질 쪽으로 옮겼다. 두 슬라임 코어가 제나의 질을 벌리고 들어갔다.


"으후읏, 우브으…"


자궁구를 뚫고.


"히...히으, 응그으으으으으으읏!!!!! 끄으으윽!"


자궁에 들어와, 달마다 한 번씩, 한쪽 통로당 난자 하나에게만 허용된 통로를 무자비하게 확장시키면서 타고 올라간다.


"으기이이이이이이이익!!! 으, 흐으으, 그만, 그만!!!!! 아파ㅡ 아파!!!!!"

"끄으윽. 제발, 그. 만해애애애애애앳!!!!! 꺄아악!!!"


난관은 코어에게 확장당해 너덜너덜. 코어는 마침내 제나의 난소가 있던 자리에 들어가 마치 원래부터 그곳의 주인 행세를 한다. 제나의 난소보다 코어가 더 컸기 때문에 조금 꽉 끼긴 하지만.


제나의 생식기. 자궁, 난소는 이제 그녀가 아닌 슬라임의 번식을 위해 쓰일 것이다.


목적을 달성한 슬라임은 제나를 놓아줬다. 제나의 몸을 압박하던 슬라임의 거체는 점점 물렁해지더니 눈 깜짝할 새 허물어져 제나를 해방시켜주었다. 숲의 바닥에 넓은 물웅덩이만을 남기고.


"흐으ㅡ 하아ㅡ 흐읏ㅡ ㅅㅡ"


'끝난… 건가?'



“...살…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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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나는 몇 시간 동안 기절해 있었다. 그녀가 눈을 떴을 때는 동이 트기 직전이었고, 불행 중 다행인지 그 동안 그녀를 습격한 괴물은 없었다. 뱃속에 뻐근한 통증을 느끼며, 제나는 가방에서 얇은 여분의 옷을 걸쳐 겨우 민망한 곳만 가렸다. 수집한 코어와 무기를 챙겼다. 비로소 제나는 비틀거리는 걸음을 옮기며 겨우 마을로 돌아갈 수 있었다. 


이때 그녀는 당연히 알지 못했다. 자신이 인간의 생식 능력을 완전히 잃어 버렸고, 난소는 슬라임의 핵에 그 자리를 빼앗겼다는 것을.


며칠 동안 휴식한 끝에, 제나는 겨우 모험가 생활을 재개할 수 있었다. 그동안 수입이 전혀 없었기에 길드 은행에서 며칠간의 생활비를 빌려야 했었지만, 살아남은 게 어디인가.


제나의 신고로, 몇 번의 파티가 슬라임 토벌을 나선 끝에 숲의 과다 증식한 슬라임들은 대부분 몰살당했다. 이렇게 토벌된 슬라임들은 어림잡아 삼백 마리는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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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ㅡ윽… 이번 달은 유독 심한데…"


제나는 어제부터 심한 생리통(이라고 본인은 생각하고 있다)으로 괴로워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이틀째 아무 일도 못하고 숙소의 침대에만 박혀 있었다.


"뭐야 이거… 이상한데… 메스껍고 막…"


제나는 기이한 하복부의 통증을 느꼈다.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무거운 몸을 일으켜 화장실에 들어갔다. 그때,


툭.


"...에?"


속옷을 내리자 그녀의 질에서 무언가 빠져나와 바닥에 떨어졌다.


"... 슬라임… 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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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성욕배설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