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쇠는 쌀쌀맞았다. 시린 소독약 냄새가 콧잔등에 어리었다. 입가에서, 손에서 또 발목에서 고무의 촉감이 났다. 수술장갑을 바투 없이 껴고 나는 손에 힘을 풀었다. 하지만 내가, 어느새 온열 질환을 앓는 환자처럼 냉매 같은 철골들에 손바닥을 부비고 있음을 알아차린 것은 순전히 펠로우가 질러댄 고함 덕이었다. 

 “교수님—!”

 “아, 아. 그래. 미안하네.”

 새벽까지 차트를 정리하는 데 시간을 과히 들인 모양이다. 아무래도 대학병원에 이만치의 카데바가 들어오는 게 흔한 일은 아니니, 정리할 것도 많고, 결재할 것도 산더미로 들어올 수밖에. 그렇지만 결국에 학생들에겐 좋은 교보재가 될 것이다. 의사로서 할 법한 말은 아니지마는 카데바 기증 협회 사람들이 떼죽음을 당한 일이 카데바 공급에 청신호를 켜다준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교수님,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세요, 교수님.”

 열댓 명의 학생들이 백(白)가운을 입고 들어왔다. 카데바를 이용한 해부 실습은 처음일, 풋내기 예과생들이었다. 뒤이어 이네들이 들추어야 할 주검 한 구도 들어왔다. 당연히, 완전 나체인 채로.

 “여기, 어, 두게.”

 “교수님, 오퍼레이트 할까요?”

 “아니 잠깐, 카데바 정보 열람을 제대로 못 해서.”

 사소한 것도 놓쳐서는 안 된다. 아직 시신을 제대로 훑지는 못했지만, 얼핏 본 기억으로는 비고란에 비장 파열이니 선천 늑골 결손이니, 별 게 많았던 것 같다. 그것들 말고도, 다른 것도 있나 본데…맹장 수술흔, 지속적인 구타에 의한 타박상…흐음. 학생들에게 주는 카데바치고 꽤 가르칠 게 많이 있군.

 “기증 서약은 작년 7월, 용인 수지…아래로 남동생 하나…”

 어딘가 익숙한 신상 정보였다. 생일도, 동생도. 천천히 거주지를, 전화번호를, 가족을 지나 나의 눈길은 이름에 닿았다.

 “교수님?” 

 “기증자 성명…박연우?”

 “네? 교수님?”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설렌다는 감정은 아니었다. 오히려 공포에 가까운, 그런 심정. 아니, 정정해야겠다. 공포는 환희와도 같았다. 나는 다시 수술대에 손바닥을 붙였다. 차가운 촉감이 재차 느껴졌다. 정확히는, 쇳덩이가 아닌 살덩이에서. 이미 죽어버린 사람에게서 흘러내리는 죽음의 오한. 박연우—이 거무튀튀한 몸뚱어리가 가졌던 이름이다. 그리고, 내 중학 시절 겪은, 군대를 다녀오고서야 스러진, 첫사랑의 아픈 이름이기도 했다. 어리던 나의 10년을 채워놓은, 뼈 깊숙이 새겨진 그녀의 이름을 나는 지금 보고 있었다. 그녀의 시체를, 나는 지금 보고 있었다.

 “다들, 잠깐 나가보게나.”

 “네?”

 “나가 있어 보래도!!!”

 평소의 나와는 다르게 윽박지르는 소리에 학생들이 실습실을 부리나케 달아났다. 펠로우들도 학생들을 따라, 수술장갑을 벗으며 굼뜨게 움직였다. 

 “교수님, 그럼 이만…”

 “그래, 퇴근해도 좋네.”

 아—아무도 없었다. 수술실에는 CCTV도 없다. 어언 20년이 넘는 세월을 지나 만난 네게 나는 무어라고 말을 해야 좋을까. 아니, 그래 보았자 듣지 못하겠지만. 그녀의 외이도와 달팽이관과 고막은 이미 썩어가는 체액으로 가득 차 있을 것이다. 불혹을 넘긴 지도 한참의 나이에, 인생의 대부분을 차지한 그녀였다. 연우, 나의 아름다운 첫 사랑이여. 나는 네게, 대체 무얼 할 수 있을까. 처음에는 네가 죽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그리고서 다가온 생각은,

 '너는 우리 병원에 기증되었어.'

 '그리고,'

 '죽은 자는 말이 없지.'

 나는 그녀의 도담한 가슴에 손을 내밀어, 조금씩 더듬었다. 죽은 뒤라서 다소 딱딱했다. 으레 산 자에게서 느낄 수 있는 온정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검지와 중지를 수그리며, 나의 손은 슬며시 연우의 젖가슴을 오르고, 젖무덤을 걸어넘었다. 이것이—학창 시절의 내가, 그토록 바라마지않던 그녀의 가슴. 중학에서도, 고교에서도, 대학에서도—군의관을 하면서도. 항상 떠올려 왔던 연우의 야한 모습. 차게 굳은 그녀의 젖꼭지를 슬슬 골리면서, 나의 귀는, 살아있는 나의 귀는 희미한 연우의 교성을 들었다. 조율하지 않은 명장의 바이올린을 켜며, 합창과 같은 선율 속에 단 한 음을 화성처럼 꽂아넣는 듯한 그 신음. 나는 그 소리가 마음에 들었다.

 “흐, 흐흐흐—흐흐, 그래. 연우야, 아직 살아있는 거지? 그렇지?”

 대답은 들려올 리 없었다.

 “아, 그래. 그럴 줄 알았어. 너도 좋은 거잖아? 지금?”

 그렇지만, 나는 그녀의 입에서 새어나오는 환한 답을 분명히, 분명히…들었다.

 “뭐라고? 잘 못 들었어. 다시 해 달라고? 응?”

 나는 더 거칠게 그녀를 탐했다. 허리를 숙이고, 목을, 또 머리를 숙였다.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다시 움직이지 않을 냉장된 연우의 혀가 나의 뜨뜻한 혀를 마중 나왔다. 아득한 심연 속에서 혀를 천천히, 뽑아냈다. 그리고 턱, 목, 쇄골, 유방, 늑골, 배, 배꼽. 핥아내렸다. 천천히, 천천히. 주검은 뻣뻣했다. 수술등이 켜졌다. 창백한 연우의 피부가 빛을 받아 하얘졌다. 나는 너를 핥았다. 네가 움직여 줄 때까지. 핥고, 핥고, 핥았다. 비릿한 시취가 혀에 묻었다.

 “연우야, 연우야, 연우야, 흐으윽, 연우야…”

 풍겨오는 더러운 냄새를 무시하고 사타구니만 수십 번을 핥은 끝에, 골반에 붙은 너의 살덩이가 갈라지듯 벌어졌다. 가랑이 사이에 봉긋이 피어 있는 꽃봉오리를 뚫어져라 살펴보다가, 무심코 너의 음부를 혀로 간지럽혔다. 차가운 맨다리를 쓸며, 주섬대고 나는 바지춤을 내렸다. 흑갈색의 도톰한 양물이 고개를 내밀었다. 금방이라도 사정해 버릴 듯, 움찔대고 있는 것이 불안했다. 

 “연우야, 조금만 더 벌려 봐. 응?”

 나는 왼손으로 사타구니 양옆을, 음모를 밀어냈다. 조금 물러진 듯한 검은 구멍이 이제야 모습을 드러냈다.

 “그렇지, 고마워. 흐흐흐흐, 흐흐흐흐흐흐…”

 차가운 너의 구멍에 따뜻한 나의 자지가 접합했다. 익히 알듯 피스톤 운동은 전혀 없었지만, 나에게는 너만으로 황홀한 순간이었다. 허리를 미친 듯이 흔들어대느라 하얀 의사 가운이 체액으로 물들어 버렸어도, 그런 것 따위는 신경쓰지 않았다. 나는, 그저, 너를 탐하고 있었다. 

 “내가!!! 너를!!! 따먹는다!!!”

 수술실 밖까지 들릴 정도로 적나라한 고함이었다. 그렇지만, 아무도 나를 방해하지 못한다. 당당히 너를 만나기 위해, 내가 쌓아올린 지금의 지위이니까.

 “뭐!!! 안 들린다고?! 내가!!! 네 보지를!!! 갖고 놀고 있다고!!!”

 나는 너를 원해 왔었다. 그리고, 나는 이제 너를 가졌다. 연우, 연우, 연우, 연우, 연우…여전히 미동도 없는 보지에서 한층 달구어진 좆을 뽑자, 더 뜨거운 백탁액이 뿜어나왔다. 너의 얼굴에, 가슴에, 또 배에, 가랑이 사이에. 살아있던 나날처럼, 너는 온기를 되찾고 있었다. 나의 정액을 통해서, 나를 통해서. 차츰 기력이 빠져 왔다. 웃고 있는 네가 보이는 듯했다. 너는, 너는. 나를 통해 완전해진다. 박연우, 너는 내 것이다. 이제, 영원히. 박연우, 아름다운 나의 사랑. 앞으로도, 쭉, 나와 함께 있는 것이다. 너와 나는, 우리로서, 완전하다, 완벽하다. 

 나는, 너를 사랑한다. 한 쪽이 죽어서도, 한 쪽이 살아서도. 아아—이제야, 나는 너를 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