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arca.live/b/philosophy/68511161
위 링크 글을 보면서 한 사례를 가져와 보았음.



1세대 철학실천가 중 한 명인 루 메리노프는 자신의 책 한 파트에서 '상실로부터 얻는 것(gaining from loss)'를 언급했다. 서구 사회는 상실과 관련해서 보통 기독교 세계관으로 극복하곤 했지만, 최근 사람들은 기독교에 그렇게 민감하지 않아서 자신은 주로 불교 사상을 활용한다고 함. (불교철학적인 요소도 있지만, 불교도 종교 아닌가 싶긴 함...). 물론 Plato not prozac은 PEACE라는 단계 방법론을 활용하고 소개하고 있지만, 4단계인 Contemplation 단계에서 불교철학을 많이 활용한다고 언급함. 


그런데 매리노프는 어떤 한 할머니(조앤)의 사례에서는 불교 철학이 효과가 없을 것이라 판단해서 맥타가르트의 시간이론을 가져와서 씀. 


먼저 조앤의 경우 자신의 첫 아이를 5살 때 허무하게 잃은, 상실감이 큰 여성이었음. 내가 기억하기론 40년 전 일이었던 걸로 알고 있음. 뒤이어 자식들이 생기고 그랬지만, 자신의 상실감을 평생 극복하지 못했었음. 여러 상담과 치료를 받고 약도 먹고 그랬던 것 같은데 전부 만족하지 못했다고 함, 첫째를 지키지 못했던 죄책감에 "나쁜 엄마"로서 평생을 빠져 살았다고 함. 


여기에 매리노프는 맥타가르트 시간 논변을 가져오는데, 그 중 B이론인 '영원론'을 활용함. 이건 원래 동료 철학실천가 중 한 명이 삶이 얼마 남지 않은 시한부 인생 환자들을 대상으로 자주 활용하던 방법이었다고 함. 


B이론의 원리 대신 그냥 단편적인 정보만 전달하자면, A이론은 시제이론으로, 과거-현재-미래라는 시간틀을 갖고 있음(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시간 관념임). 반면 B이론에서 사건의 전,후 관계를 따지는 이론임. 우리는 시간의 선행 사건과 후행 사건을 모두 알아보니까. 아무튼 B이론에서 시간은 모두 개별적이며 각각 고정된 시간틀임. 시제이론은 기준에 따라 변화하지만 B이론은 그냥 하나의 '사건'이므로 계속 거기에 있음. 영원히 거기에 머무름. 


그래서 B-이론 형이상학 세계관으로 시간을 돌아보면 조앤의 아들은 계속 거기에 있음. 단순히 추억이 아니라 계속 거기에 있는 것임. 

물론 병마에 시달려 고통받는 5살 때의 사건을 겪는 아들도 계속 그대로 있음. 이게 바로 조앤이 계속 평생 가지고 있는 그 사건임. 

하지만 B이론은 그 사건만 가지고 있는게 아니라 조앤의 아들이 태어나면서부터 죽기까지 모든 사건이 고스란히 영원하다고 말해주는 세계관임.

그렇다면 조앤은 아들과 보냈던 행복했던 시간도 거기 남아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조앤은 계속 '5살 때 아들의 고통과 죽음이라는 상실'에만 초점을 두고 있었을 뿐임. 


차라리 모두 시간 속에서 영원한 사건이고 동등한 지위를 갖고 있다면, 굳이 '상실'과 이별했던 순간만이 더 특별한 존재론적 지위를 갖출 필요가 있는가? 


조앤은 B이론을 납득했다고 했고, 자신에게 접목한 것 같음. 실제로 매리노프의 묘사에 의하면 조앤은 더 이상 괴로워하지 않았다고 함. 아마도 첫째 아들과의 좋았던 일들을 더 많이 추억하고 기리는 것이 죽은 아들을 위해서도 더 낫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했으리라 봄. 


일단 매리노프가 사기라도 친게 아니라면 적어도 조앤은 이 문제를 잘 수용하고 극복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철학상담의 특징이기도 한데, 모든 사람을 아우를 수 있는 어떤 치료방법이 있는 건 아님. 
매리노프는 여태까지 죽음과 관련된 상실 문제 대부분 불교의 겨자씨 일화를 쓰긴 했지만, 
조앤만은 특수하다고 생각해서 맥타가르트 시간 이론을 가져와서 활용했음. 

즉 그 사람이 어떤 세계관을 형성하고 있는지 확인하면서, 그 세계관이 그 사람의 고통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파악한 뒤, 
이처럼 저마다 다른 철학적 대화를 이끌어야 한다고 생각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