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겔 추종자들이 이름만 들어도 거품을 물고 경기를 일으키는 철학 사조가 있다.

이는 들뢰즈가 말한 차이의 철학으로, 이런 차이의 철학이 서양 철학의 동일자 개념을 교묘하게 공격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비롯해 서양 철학에 만연한 동일자를 전체적으로 비판하는 것이지만, 헤겔이 온갖 근대철학을 흡수해 근대철학의 정점으로 평가받기에 들뢰즈의 공격의 주요 대상이 되었을 것이다.

이 글에서 들뢰즈의 철학에 대해 구구절절 말하고 싶지는 않다.

철학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기본적으로 알고 있을 것이고,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간단하게만 설명하자면, 차이의 철학은 차이를 동일자 밑으로 종속시키려는 근대 철학에 반발해 차이를 차이 그 자체로 보고 오히려 동일자를 차이의 부산물로 보는 것이다.

들뢰즈의 말에 따르면, "차이가 존재를 만든다."


이제 왜 헤겔 전공자들이 차이의 철학을 싫어하는지 보이는가?

세상을 변증법적 과정으로 인식하는 헤겔 철학은, 들뢰즈의 시선으로 볼 때 차이를 완전히 뭉뚱거리는 것이었다.

간단한 예를 들어보자.

갈릴레이의 피사의 사탑 실험은 다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적어도 지구에서는 결코 그런 실험의 결과가 도출될 수 없다.

공기 저항이나 바람의 방향 등, 공의 낙하 속도에는 너무나 많은 요인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근대 과학에서는 이런 '차이'들을 없애야 할 것으로 보았다.

즉, 차이를 감산해야 할 것으로 간주한 것이다.

하지만, 들뢰즈에게 있어 차이는 '감산'이 아닌 '가산'이다.

우리가 어떤 무엇과 만나 끊임없이 변화하고 새롭게 태어나는 것.

그것이 가산이며 차이이다.

이런 면에서 우리는 그가 니체의 영향을 크게 받았음을 알 수 있다.

현대는 차이의 시대이다.

남자와 여자, 부자와 빈자, 백인과 흑인, 노인과 청년 등등.....

우리는 지금까지 이런 차이를 '수용'하고 '인정'하는 것에 그쳤다.

여전히 차이는 감내해야 하고 가능한 한 제거하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들뢰즈에 따르면, 우리는 이런 차이를 단순히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긍정하고 우리를 변화시키는 단초로 삼아야 한다.

A-B가 아니라 A+B가 되어 새로운 '나'가 되는 것이 그것이다.

이는 현대 과학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카오스 이론은 근대 과학에서 사소한 것으로 여기고 뭉뚱그려왔던 자잘한 변수나 차이점들이 결과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잘 보여준다.

사람은 변화한다. 변화는 차이이며, 합산의 과정이다.

무수히 많은 차이를 수시로 인식하는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이런 차이를 없애고 인내하는 것으로 보아야 하는가, 아니면 이런 혼돈을 기껍게 받아들이고 새롭게 태어나야 하는가?

"춤추는 별을 낳기 위해선 내면에 혼돈을 지녀야 한다'
 -프리드리히 니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