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읽기 전에 전제사항 : 반일종족주의의 집필진은 이영훈 교수만 있는 게 아니라 이영훈 교수와 사상적 방향성이 많이 다른 김낙년 교수도 있지만

편의상 반일종족주의는 이영훈만의 메시지로 취급함.


이영훈의 반일종족주의는 문재인정권 시절 출간된 책이다.


물론 집필 시작은 박근혜정권 시절이었을 가능성이 있지만

책 자체가 애초부터 새로운 컨텐츠라기 보다는 

이영훈, 김낙년 등의 학자들의 연구 결과를 대중이 알기 쉽게 풀어놓은 설명집에 가까웠으니

개인적으로는 박근혜정권 몰락 이전부터일 확률은 희미하다고 본다.


그렇다면 이영훈 교수는 문재인 정권 시절에 세상에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 메시지가 무엇이었을까 다시 생각하며 윤석열정권으로 바뀐 지금, 다시 한 번 읽어 보았다.


그런데, 하나 보이는 것은

저자가 문재인 정부에 대하여 

매우 '미개한', '뒤떨어진', '중세적' 사고방식을 지닌 존재로 본다는 점이다. 


엄밀하게 정의내리고 있지는 않지만

'종족'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 자체가 '민족'보다 '구시대적'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즉, 이영훈에게는 한국인(또는 문재인 정부, 전자면 뭐 제국주의와 식민주의 마이너 갤러리로 가야 하겠지만 거기서는 이영훈 교수도 욕하는 거로 봐서는 아마 후자일 듯 하다)의 반일은 민족주의 라는 근대에 만들어진 용어를 써 줄 가치도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영훈 교수는 아마 문재인 정부보다 자신이   '미개한', '뒤떨어진', '중세적'이지 않은

'진보적'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어떠한 점에서 그러한가?

'개인'과 '자유'의 가치를 중시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개인'과 '자유'는 '근대적' 가치인데,

문재인 정부는 여전히 '집단', '혈연', '종족' 등 전근대적 가치에 매몰되어 있다고 보는 셈이다. 


이들이 강제징용의 폭력성을 인정하지 못하는 이유도

일제 시대가 개인과 시장의 자유라는 측면에서

당연히 조선시대보다 진보적이었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이영훈 등 뉴라이트 세력을 '친일', '독재' 세력으로 일축하고

스스로 '인권', '민주주의' 추진자로 자임했던 문재인 정부로서는 억울해할 이야기다. 


그렇다면, 문재인 정부가

개인적으로는 학자라고 불러 줄 가치도 없는 조국이라는 인간의 '구역질나는 책'이라는 비난, 욕설 말고

'반일종족주의'를 어떻게 반박해야 했을까.


그 답은

자신들의 '인권', '민주주의' 가치가 진짜 '진보적'임을 증명했어야 하는 것. 

그거 하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문재인 정권 5년을 떠올려보면 과연 그런가 의심이 가는 대목들이 있었다. 


2018년 2월 평창 동계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남북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이 급하게 구성되었다. 

그 과정에서 손해를 보는 한국 선수들이 생겼고, 공정성 논란이 불거졌다. 


그러자 당시 야당 대표 홍준표가 현 정부에 대해 

개인의 희생을 강요하는 ‘좌파 국가주의’라고 비판하였다. 


나는 ‘좌파 국가주의’라는 용어가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리다고 생각한다. 

‘국가주의’인 것은 맞지만, ‘좌파’라기보다는 ‘우파적’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다. 

당시 정부를 비난했던 야당이야말로 과거에 그러한 ‘우파 국가주의’를 앞세웠었던 정파였다. 


국가와 개인의 관계만을 놓고 보면, 

우리 사회에서 좌파와 우파의 구분이 무의미함을 보여준다. 

그만큼 개인에 대한 국가의 우위는 우리 근현대사에서 깊숙하게 자리잡아 왔다. 


사례 하면 이 올림픽 뿐만이 아니다.



명백한 좌파 인사인 홍세화 씨 또한 문재인 정권을 '관제 민족주의'라고 칭하였고




마르크스 연구 권위자인 최장집 교수 마찬가지다.


즉, 문재인 정권이 '진보적'이라고 자처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보수의 극치인 파시즘과 연관되는 '관제 민족주의', '좌파 국가주의'이며


이영훈이 '진보적'이라고 주장하는 '개인의 자유' 절대주의 역시,

자본주의와 자유주의 체제가 절대시되는 현 세계에서는 '보수적' 이데올로기일 뿐이다. 



우리 사회에서 개인을 국가에 종속시키지 않고,

그렇다고 개인의 자유를 절대시하지도 않으며,

개인과 공동체의 평화로운 공존을 추구하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진보적' 정치 세력은 언제쯤에나 나타날 수 있는 것일까?


적어도 윤석열 정권과 차기 대권 주자들 중에는 아무도 없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