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과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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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ead Past

아이작 아시모프(1920~1992) 作

 


 아놀드 포털리 박사는 고대 역사학 교수였다. 그 자체로는 문제될 것이 없었다. 그러나 도저히 꿈도 꿀 수 없을 정도로 세상을 뒤흔들어 놓은 일이 벌어진 것은, 포털리 박사의 생김새가 그저 고대 역사학 교수처럼 생겼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만일 포털리 박사가 넓고 각진 턱에 번쩍거리는 눈, 굽은 코에 떡 벌어진 어깨를 가진 사람이었다면, 시간 탐사과 과장 새디어스 아라만도 적절하게 대처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새디어스 아라만의 책상 맞은편으로 건너다보이는 포털리 박사의 모습은 온화한 행동거지를 가진 얌전한 사람의 모습일 뿐이었다. 낮은 콧마루 양쪽으로 단추 같은 침침한 파란 눈이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아라만을 보고 있었다. 자그마한 몸집에 말쑥하게 옷을 차려 입은 모습, 숱이 성긴 갈색 머리에서부터 보수적인 중간 계급의 의상, 그리고 그것을 마무리 짓는 깨끗하게 닦인 투구, 이 모든 것에 나약하다는 낙인이 찍혀 있는 것 같았다. 

 아라만이 유쾌한 목소리로 말했다. 

 「자, 내가 뭘 도와드릴 수 있을까요, 포털리 박사님?」

 포털리 박사는 외모에서 풍기는 모습 그대로 부드럽게 말했다. 

 「아라만 씨, 난 과장님이 시간 탐사 분야의 최고 책임자이기 때문에 찾아온 것입니다.」

 아라만이 웃음 지으며 말했다. 

 「꼭 그렇다고 할 수는 없지요. 내 위에는 세계 연구국장이 있고, 또 그 위에는 국제연합 사무총장이 있으니까요. 물론 그들 위에는 지구 전역에 존재하는 주권을 가진 민족들이 있지요.」

 포털리 박사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들은 시간 탐사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내가 과장님을 찾아온 것은, 내가 지난 2년간 고대 카르타고에 대한 내 연구와 관련된 시간 탐사 허가를 얻기 위해 노력해 왔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난 그런 허가를 얻을 수가 없었습니다. 난 정당한 연구지원금을 받아 연구를 해왔고, 내 지적인 노력 어디에도 불법적인 것은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나도 불법적인 것은 없으리라고 믿습니다.」

 아라만은 달래듯이 말했다. 아라만은 포털리라는 이름이 붙은 서류철에 든 얇은 재생서류들을 뒤적여 보았다. 이 서류들은 멀티백이 만들어 놓은 것이었다. 멀티백은 엄청난 유추 능력을 통해 부서의 모든 기록들을 보관·갱신해 놓고 있었다. 포털리 박사와의 면담이 끝나면 이 서류들을 파괴시킬 생각이었다. 그러고 나서 또 필요하다면 몇 분 내에 다시 서류들은 재생되어 나올 수 있었다. 

 아라만에 서류를 넘기는 동안에도 포털리 박사의 목소리가 부드럽고 단조롭게 이어지고 있었다. 

 「내가 탐구하는 문제가 왜 중요한가를 설명 드려야만 하겠군요. 카르타고는 절정에 이른 고대 상업주의의 상징입니다. 로마 이전 시대의 카르타고는 핵 이전 시대의 아메리카와 가장 유사한 비교 대상입니다. 적어도 카르타고가 무역, 상업, 일반적 사업에 집착했다는 점에서 그렇다고 할 수 있지요. 카르타고인들은 바이킹 이전의 가장 용맹한 뱃사람들이자 탐험가들이었습니다. 과대평가되는 경향이 있는 그리스인들보다 훨씬 뛰어났지요.

 카르타고를 알게 되면 많은 수확을 거둘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현재 카르타고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모두 카르타고의 적들, 즉 그리스인과 로마인들의 기록에서 얻은 것이지요. 카르타고 자신은 자기 방어를 위한 기록을 전혀 남기지 않았습니다. 설사 남겼다 해도 그 기록들이 살아남지를 못했겠지요. 그 결과, 카르타고인들은 역사상 가장 만만하게 거론되는 악당들 가운데 하나가 되어 버렸습니다. 부당하게도 말입니다. 시간 탐사를 하게 되면 이런 기록들을 바로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포털리 박사는 이후에도 많은 이야기를 더 했다. 

 아라만은 여전히 앞에 놓인 재생 서류를 넘기며 말했다. 

 「포털리 박사님, 시간 탐사는 어려운 과정이라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자기 말이 잘린 것 때문에 포털리 박사는 얼굴을 찌푸렸다. 

 「난 내가 지정한 시간과 장소들에 대한 선별적인 탐사만 요청하고 있는 겁니다. 얼마 되지도 않습니다.」

 아라만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얼마 안 된다 할지라도, 아니 단 한 번의 탐사라 하더라도 그것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정교한 기술을 요합니다. 초점을 맞추고, 탐사에 적절한 장면을 포착해 그것을 붙잡아 두는 등의 문제가 있는 겁니다. 또 완전히 독립된 회로를 필요로 하는 소리 탐사가 동시에 이루어져야 합니다.」

 「내 연구는 그러한 노력을 기울일 가치가 있는 중요한 것입니다.」

 「그럼요, 박사님. 물론이지요.」

 아라만이 즉시 맞장구를 쳤다. 학자가 연구의 중요성을 부정 당한다는 것은 용서받을 수 없을 정도로 예의에서 벗어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이어 아라만이 말했다. 

 「하지만 박사님, 가장 간단한 탐사라 할지라도 오랫동안 계획을 세운 끝에 이루어진다는 것을 이해하셔야만 합니다. 게다가 시간 탐사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는 실정이고, 또 통제실 사용을 허가해 주는 멀티백을 사용하기 위한 줄은 그보다 더 긴 형편입니다.」

 포털리는 불쾌한 표정으로 몸을 뒤척이며 말했다. 

 「그렇다고 아무 일도 할 수 없다는 겁니까? 2년 동안이나…….」

 「우선권의 문제가 있습니다, 박사님. 죄송합니다. 담배 피우시겠습니까?」

 포털리 박사는 그 제안에 깜짝 놀라며 몸을 뒤로 뺐다. 담뱃갑을 바라보는 포털리 박사의 눈이 갑자기 휘둥그레졌다. 아라만 역시 놀란 표정으로 담뱃갑을 거두어들였다. 아라만은 자신이 담배를 피우려다가 생각을 바꾼 듯한 시늉을 하며 슬그머니 담뱃갑을 도로 집어넣었다. 

 포털리는 담뱃갑이 눈앞에서 사라지자 고삐가 풀린 듯한 안도감을 느끼며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포털리가 말했다. 

 「상황을 재검토할 수는 없을까요? 나를 대기하고 있는 줄 앞쪽에 세워 줄 수 있도록?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아라만은 웃음을 지었다. 어떤 사람들은 이 비슷한 상황에서 돈을 주겠다고 했었다. 물론 그래봤자 아무런 소용이 없지만. 

 아라만이 말했다. 

 「우선권에 대한 결정은 컴퓨터가 처리하는 겁니다. 내 자의적으로 그 결정을 바꿀 도리는 없습니다.」

 포털리는 딱딱하게 몸을 굳히고 일어섰다. 167센티의 키였다.

 포털리가 말했다.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과장님.」

 「안녕히 가십시오, 포털리 박사님. 정말 유감입니다.」

 아라만은 손을 내밀었다. 포털리는 그 손을 잠깐 잡았다. 

 역사학자 포털리가 떠나자 아라만은 벨을 눌렀다. 비서가 들어왔다. 아라만은 비서에게 서류철을 건네주며 말했다. 

 「이건 없애도 좋아.」

 다시 혼자 남게 된 아라만은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4반 세기에 걸쳐 인류에 봉사해 온 아라만이 또 하나의 봉사 실적을 올린 것이다. 거부를 통한 봉사. 

 적어도 이 포털리라는 친구는 처리하기가 편했다. 때로는 학술단체의 압력을 동원한다든가, 심지어 지원금을 철회해야만 물러서는 사람도 있으니까. 

 5분 후, 아라만은 포털리 박사를 완전히 잊었다. 후에 돌이켜보았을 때도, 아라만은 포털리를 면담했을 때 위험의 조짐이 있었다는 것을 전혀 기억할 수 없었다. 

 

 좌절의 첫해 동안 아놀드 포털리는 오직 그 좌절감에만 시달렸다. 그러나 그 다음 해가 되자, 처음에는 그 좌절감이 두려웠으나 점차 그를 매료시킨 어떤 생각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그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데는 두 가지 장애가 있었다. 그 두 가지 장애 가운데 그의 생각이 매우 비윤리적이라는 사실은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포털리는 그렇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첫 번째 장애는 정부가 마침내 시간탐사기 사용 허가를 내려 포털리가 어떤 다른 행동을 취하는 걸 불필요하게 만들 거라는, 사라지지 않는 희망이었다. 그러나 이 희망은 방금 끝낸 아라만과의 면담에서 마침내 사라졌다. 

 두 번째 장애는 희망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것이었다. 그것은 자신의 무능에 대한 처절한 깨들음이었다. 포털리는 물리학자가 아니었으며, 아는 물리학자가 하나도 없으니 도움을 청할 데도 없었다. 대학 물리학과는 지원금을 풍부하게 받아가며 자기 전문 분야에 몰두해 있는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들은 포털리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사람들이 아니었다. 최악의 경우에는 포털리를 지적(知的) 무정부주의자로 고발하여, 얼마 안 되는 카르타고 연구 지원금마저 끊길 위험이 있었다. 

 그런 위험을 무릅쓸 수는 없었다. 시간 탐사만이 그의 연구를 계속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것 없이는 지원금을 잃은 상태와 조금도 다를 것이 없었다. 

 두 번째 장애를 극복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첫 조짐은 아라만과의 면담이 있기 일주일 전에 나타났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포털리도 그 중요성을 눈치 채지 못하고 지나쳤다. 그것은 교수 다과회 때의 일이었다. 포털리는 다과회에 빠짐없이 참석해 왔다. 참석하는 것이 의무라고 생각했으며, 포털리는 의무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참석한 후, 잡담을 나눈다든가 새 친구들을 사귄다든가 하는 것까지 의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음식은 술 한두 잔 마시는 것으로 절제하며, 참석해 있는 학장이나 학과장과 정중한 인사말 몇 마디를 교환하고, 다른 사람들한테 인색하게 웃음을 던져 준 다음 일찌감치 자리를 떴다. 

 가장 최근에 열린 그 다과회에서도, 보통 때 같았으면 한구석에 말없이, 어떤 면에서는 의기소침하여 서 있는 그 젊은이한테 관심을 갖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젊은이한테 먼저 이야기를 건넨다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다. 그러나 상황이 묘하게 꼬이는 바람에 포털리는 예외적으로 이번 한번은 그의 천성에 반대되는 행동을 하고 말았다.

 그날 아침, 식사를 하면서 포털리의 아내인 캐롤라인은 우울한 얼굴로 또 로렐의 꿈을 꾸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 자라 성인이 된 로렐이라고 했다. 다만 그들의 아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게, 얼굴만은 세 살 때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고 했다. 포털리는 아내가 계속 이야기하도록 내버려두었다. 전에 아내가 너무 자주 과거와 죽음에 집착한다고 싸운 적도 있었다. ‘꿈을 통해서건 말을 통해서건, 로렐은 우리한테 돌아오지 않아. 하지만 그게 캐롤라인의 마음을 달래준다면, 꿈을 꾸고 말을 하도록 내버려두자.’ 포털리는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러나 그날 아침 포털리는 학교로 출근하면서 처음으로 캐롤라인의 미친 듯한 소리에 자신도 영향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성장한 로렐! 로렐은 20년 전에 죽었다. 로렐은 그들 부부의 하나뿐인 자식이었다. 그 20년 동안 머릿속에 떠오르는 딸의 모습은 항상 세 살 난 어린아이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포털리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되었다. 만일 딸애가 지금 살아 있다면, 그 애는 세 살이 아니라 스물셋이 되어 있겠지. 

 포털리는 로렐이 점차 나이가 들어 마침내 스물셋이 되는 과정을 생각해 보려고 했다. 그러나 잘 되지 않았다. 무력감을 느꼈다. 

 그러나 계속 애를 써보았다. 화장하는 로렐, 남자들과 외출하는 로렐, 결혼하는 로렐!

 그러다보니, 한구석에서 얼쩡거리며 다른 교수들을 차갑게 바라보고 있는 젊은이를 발견했을 때, 포털리는 우습게도 아마 로렐이 저런 젊은이와 결혼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는 상상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어쩌면 바로 저 젊은이와. 

 로렐은 대학에서 저 젊은이와 만났을 수도 있어. 아니면 우리 집으로 저 젊은이를 초대했을 때, 서로에게 관심을 갖게 되겠지. 로렐은 틀림없이 예뻤을 거야. 그리고 저 젊은이는 잘생겼으니까. 

 젊은이의 살갗은 검은 편이었다. 여윈 몸집, 진중한 표정이 담긴 얼굴, 그리고 몸가짐은 편안했다. 

 그 백일몽이 어느 순간 딱 끊겼다. 그러나 포털리는 아직도 멍청한 표정으로 젊은이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낯선 얼굴이 아니라 집안의 사위가 될 사람으로서. 포털리는 자기도 모르게 젊은이를 향해 사람들 사이를 헤쳐 나아갔다. 마치 자기 최면에 걸린 듯이. 

 포털리는 손을 내밀었다. 

 「난 역사학과의 아놀드 포털리요. 새로 오신 분 같은데.」

 젊은이는 놀라는 표정을 희미하게 짓더니, 술잔을 어떻게 처리해야할지 몰라 하다가 얼른 왼손으로 옮기고 오른손으로 포털리의 손을 잡았다. 

 「제 이름은 조너스 포스터입니다. 물리학과에 새로 온 전임강사지요. 이번 학기가 처음입니다.」

 포털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받았다. 

 「즐겁게 지내면서 일도 잘하기를 바라오.」

 그때는 이것으로 끝이었다. 포털리는 벌써 제정신을 차리고 있었다. 자신이 그런 행동을 했다는 것이 불쾌했다. 포털리는 당황하면서 갑자기 젊은이한테서 떨어져 나오고 말았다. 한 번 뒤돌아보긴 했으나, 장인 사위 관계의 환상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현실이 아주 실감나게 현실로 다가오고 있었다. 포털리는 자신이 아내의 멍청한 이야기에 휩쓸린 것에 화가 났다. 

 그러나 일주일 뒤, 아라만과 이야기를 하고 있는 동안에 그 젊은이에 대한 생각이 떠올랐다. 물리학과 전임강사. 새로 온 전임강사. 내가 그때는 귀머거리가 되었던 것일까? 귀와 뇌 사이에 회로가 끊겼던 것일까? 아니면 시간 탐사 과장과의 임박한 면담 때문에 자동적인 자기 검열이 일어났던 것일까?

 그러나 면담은 실패로 끝났다. 포털리가 아라만에게 자신의 요청을 특별히 고려해 달라고 떼쓰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단 두 마디를 나누었던 그 젊은이에 대한 생각 때문이었다. 오히려 면담하는 장소에서 벗어나고 싶어 안달이 날 지경이었다. 

 대학으로 돌아오는 고속 오토자이로(미래의 교통수단을 가리킴) 속에서, 포털리는 자기가 미신적인 사람이었으면 하고 바라기까지 했다. 그렇다면, 그 젊은이와의 평범하고 의미 없는 만남이 사실은 전지전능한 운명이 어떤 목적을 가지고 두 사람을 만나게 해준 것이라는 생각으로 위안 삼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조너스 포스터는 학계 생활이 처음은 아니었다. 박사학위를 얻기 위한 길고 아슬아슬한 투쟁을 거치게 되면 누구나 학계의 베테랑이 되는 법이다. 거기에 박사학위를 얻은 후 조교로서 일을 하다 보면, 그건 두 번째 예방주사를 맞는 것이나 다름없다. 

 어쨌든 이제 전임강사 조너스 포스터가 된 것이다. 위엄 있는 교수 자리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따. 이제는 다른 교수들과도 새로운 종류의 관계를 맺어야 할 입장이었다. 

 무엇보다도, 다른 교수들은 포스터의 승진에 대해 투표를 하게 될 사람들이었다. 둘째로, 포스터는 이제 갓 게임에 참여한 입장이라, 누가 학장이나 총장에게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지 판단할 수가 없었다. 포스터는 자신이 대학의 정치꾼이 되는 모습은 상상해 본 적이 없었으며, 또 그런 면에서는 자기가 무능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자신이 그렇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기 위해 굳이 애쓸 필요는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포스터는 다시 그를 찾아온 그 온화한 태도의 역사학자 포털리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온화한 태도를 갖춘 포털리였지만 왠지 무척 긴장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포스터는 포털리의 말을 들으면서도, 포털리의 입을 갑자기 막아 버린다든가, 내쫓아 버린다든가 하는 행동은 하지 않았다. 그것은 포스터의 본능에 따른 행동이었다. 

 포스터는 전에 포털리를 만났을 때를 잘 기억하고 있었다. 포털리는 다과회(어쩐지 기분 나쁜 모임이었다)에서 그에게 접근해 왔다. 포털리는 그에게 어색하게 두 마디를 건넸다. 왠지 눈이 흐리멍텅해 보였다. 그러더니 포털리는 눈에 띄게 깜짝 놀라며 제정신을 차리고 황급히 돌아가 버렸다. 

 당시에 포스터는 그 일이 즐거웠다. 그러나 지금은…….

 포털리는 어쩌면 일부러 나와 사귀려고 애썼는지도 모른다. 아니, 자신이 괴짜라는, 특이하긴 하지만 해를 끼치지 않는 존재라는 인상을 나한테 심으려고 애쓴 것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포털리는 지금 첩자로서 다시 나를 찾아와, 내 견해들을 자세히 살펴보고, 분명치 않은 태도를 보이는 구석이 있나 파악하려고 하는지도 모른다. 틀림없이 나한테 어떤 자리를 주기 전에 나를 시험해 보려는 것일 거야. 하지만…….

 어쩌면 포털리는 진심일지도 모른다. 자기가 뭘 하고 있는지를 정말 모르고 있을 수도 있다. 아니면 자기가 어떤 행동을 하는지를 아주 잘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포털리는 정말로 일을 꾸미는 진짜 위험한 악당인지도…….

 포스터는 중얼거렸다.

 「어, 지금은…….」

 시간을 벌기 위한 말이었다. 포스터는 담뱃갑을 꺼냈다. 포털리에게 한 대 권하여 불을 붙여 주고, 자기도 아주 천천히 한 대 피워 물 생각이었다. 

 그러나 포털리는 즉시 대꾸했다. 

 「아니오, 포스터 박사. 담배는 안 되오.」

 포스터는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죄송합니다, 박사님.」

 「아니 오히려 내가 미안하오. 냄새를 참을 수가 없어서요. 특이체질이라서 그렇소. 미안하오.」

 포털리는 정말로 얼굴이 창백해졌다. 포스터는 담배를 치웠다. 

 포스터는 담배를 못 피워 아쉬움을 느끼며, 편하게 이야기를 끌어가기로 마음먹었다. 

 「제 충고 같은 것을 다 요청하시다니 정말 영광입니다, 포털리 박사님. 하지만 전 중성미자학을 전공한 사람이 아니라서요. 그쪽으로는 전문적인 일을 전혀 해낼 수가 없습니다. 심지어 어떤 의견을 말하는 것조차도 주제넘은 일이 되겠지요. 때문에 솔직히 말씀드려, 어떤 구체적인 이야기를 꺼내지 말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역사학자의 얌전한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무슨 뜻이오, 박사가 중성미자학 전공이 아니라니? 당신은 아직 전공이 없지 않소. 아직 어떤 지원금도 받지 못한 상태 아니오, 안 그렇소?」

 「이번이 제 첫 학기일 뿐인걸요.」

 「나도 그건 알고 있소. 난 당신이 아직 어떤 지원금 신청도 안 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포스터는 보일 듯 말 듯 웃음을 지었다. 대학에서의 석 달 동안 첫 연구 지원금 신청을 해보려 했으나, 신청서를 연구위원회에 제출하기는커녕, 전문적인 과학 작가한테 넘겨주고 다듬어 달라고 할 만한 연구 위임장도 아직 쓰지 못했다. 

 다행히도 포스터의 학과장은 그 문제를 잘 받아들여 주었다. 학과장은 「천천히 자신의 생각을 잘 정리해 보게, 포스터. 자신이 택할 길이 어떤 것인지, 그리고 그 길이 어디에 이르는지 대해 확실히 알아야 하네. 일단 지원금을 받으면 자네 전공이 공식적으로 인정받게 되는 것이고, 좋든 싫든 그게 자네 연구 생활 내내 자네 분야가 될 테니 말일세.」 하고 말했었다. 

 그 충고는 진부한 것이었다. 

 그러나 진부한 것이야말로 진실을 담고 있을 수도 있으므로 포스터 박사는 그 충고를 받아들였다.

 포스터가 말했다. 

 「교육받은 것도 그렇고 제 경향도 그렇고, 포털리 박사님, 전 중력학(重力學)을 부전공으로 하는 초광학 전공자입니다. 제가 이 자리에 오겠다고 지원했을 때도 그렇게 썼습니다. 아직은 그게 제 공식적 전공분야가 아닐 수도 있지만, 결국 그렇게 될 겁니다. 다른 것은 될 수 없습니다. 중성미자학에 대해서는, 공부해 본 적도 없습니다.」

 「왜 안 했소?」

 포털리가 따지듯이 물었다. 

 포스터는 포털리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런 질문은 다른 사람의 전문 분야에 대한 호기심을 드러내는 것으로 무례한 것이었고, 언제 들어도 불쾌한 일이었다. 포스터는 정중했던 태도를 약간 바꿔 무뚝뚝하게 말했다. 

 「제가 다닌 대학에서는 중성미자학에 대한 강좌가 없었습니다.」

 「맙소사, 어디를 다녔는데?」

 「M.I.T.입니다.」

 포스터가 차분하게 대꾸했다. 

 「그런데 거기서 중성미자학을 가르치지 않았다고?」

 「네,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포스터는 얼굴이 발개졌다. 자기도 모르게 방어적인 태도가 되어 말을 이었다. 

 「그것은 별 가치가 없으면서도 고도로 전문화된 분야입니다. 어쩌면 시간 탐사는 가치가 좀 있을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그게 중성미자학의 유일한 응용 분야이고, 그것으로 끝입니다.」

 포털리는 진지한 표정으로 포스터를 응시하며 말했다. 

 「그럼 이 얘기만 해주시오. 내가 어디 가면 중성미자학 전공자를 찾을 수 있는지 아시오?」

 「아뇨, 모릅니다.」

 포스터가 무뚝뚝하게 말했다. 

 「어, 그렇다면, 중성미자학을 가르치는 학교는 아시오?」

 「아뇨, 모릅니다.」

 포털리는 웃음을 지었다. 그것은 웃음이 아니라 긴장의 한 표현이었다. 그러나 포스터는 그 웃음에 화가 났다. 그 웃음에서 모욕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포스터는 너무 화가 나서 이렇게 말하고 말았다. 

 「박사님, 박사님은 지금 선을 넘고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군요.」

 「뭐라고요?」

 「난 역사학자인 박사님의 물리학에 대한 전문적 관심은…….」

 포스터는 말을 끊었다. 차마 그 다음 얘기는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비윤리적이라는 거요?」

 「바로 그겁니다, 포털리 박사님.」

 「내 연구를 하다 보니, 난 거기까지 이르게 되었소.」

 포털리는 작지만 강한 어조로 말했다. 

 「그럼 연구위원회에 가보셔야지요. 만일 거기서 허락한다면…….」

 「가보았지만 만족할 수가 없었소.」

 「그럼 그걸 포기하셔야만 합니다.」

 포스터는 자기 말이 케케묵은 도덕적 설교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 사람의 꾐에 넘어가 지적 무정부 상태에 동조하는 표현을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런 어리석은 모험을 하기에는 포스터는 아직 애송이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 말이 포털리한테 효과를 발휘하는 것 같기는 했다. 포털리는 느닷없이 빠른 말투로 무책임한 말들을 거칠게 내뱉고 있었다. 

 포털리는 말했다. 학자들은 오직 자신의 호기심을 자유롭게 따라갈 수 있을 때만 자유로울 수 있다고. 돈지갑을 쥐고 있는 권력이 미리 계획한 패턴에 따라 어쩔 수 없이 하게 되는 연구는 노예적인 것이고, 정체될 수밖에 없으며, 어떤 사람도 다른 사람의 지적 관심을 지배할 권리는 없다는 것이다. 

 포스터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 말을 듣고 있었다. 그 가운데 어떤 말도 그에게는 낯설지 않았다. 대학생 아이들이 교수한테 충격을 주고 싶을 때 그런 말을 하곤 했다. 포스터 자신도 한두 번 그런 식으로 즐거움을 느낀 적이 있었다. 과학사를 연구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많은 사람들이 한때 그런 생각을 갖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학문을 한다는 현대인이 그런 터무니없는 논리를 편다는 게 포스터한테는 이상해 보였다. 본성에 반대된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노동자 개개인을 자기 멋대로 일하도록 내버려둔다면, 공장은 운영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승무원 개개인이 자신의 즉흥적이고 모순되는 생각에 따라 배를 저어 가도록 내버려둘 수는 없는 일이었다. 때문에 위의 두 경우에 중앙 집권적인 감독 기구가 존재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었다. 공장과 배에서 지도와 질서가 유익하다면, 과학 연구에서 유익하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사람들은 인간 정신이라는 것이 배나 공장과는 질적으로 다르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적 노력의 역사는 그 반대의 사실을 증명해왔다. 

 과학의 역사가 아직 깊지 않고, 알려진 모든 것 또는 대부분의 내용이 한 개인의 정신 속에서 다 파악될 수 있었을 때는 지도의 필요성이 없었을 것이다. 그때는 무지(無知)의 처녀지를 맹목적으로 헤매다가 우연히 놀라운 발견을 하는 수도 있었다. 

 그러나 지식이 성장함에 따라, 무지의 영역으로 가치 있는 여행을 하기 위해서는 그 전에 많은 자료들을 수집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했다. 사람들은 전문화될 수밖에 없었다. 연구자들은 자기 개인으로서는 모을 수 없는 자료들을 모아 놓은 도서관을 필요로 했으며, 자기 개인으로서는 만들어 낼 수 없는 도구를 필요로 했다. 개인 연구자들은 점점 더 연구팀이나 연구소에 자리를 양보하게 되었다. 

 도구가 헤아릴 수 없이 많아짐에 따라 연구에 필요한 자금도 점점 커졌다. 오늘날에는 아무리 작은 대학이라 하더라도 소형 핵 원자로 하나와 삼단계 컴퓨터 하나쯤은 갖추고 있어야 하지 않는가? 

 수백 년 전에 이미 개인은 더 이상 연구 지원금을 마련할 수가 없었다. 1940년에 벌써 오직 정부, 커다란 산업체, 커다란 대학이나 연구소만이 기초 연구에 필요한 지원금을 제대로 조달해 줄 수 있었다. 

 1960년에는 가장 큰 대학들조차도 전적으로 정부 지원금에 매달리게 되었다. 연구소들은 세금감면과 공공 지원금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게 되었다. 2000년에는 산업 복합체가 세계정부의 일부가 되었으며, 그 후로는 연구에 대한 재정 지원, 따라서 연구에 대한 지도도 당연히 정부의 한 부서 밑에 집중하게 되었다. 

 이 모든 일은 자연스럽고도 매끈하게 풀려 나갔다. 과학의 모든 분야는 공고의 필요에 의해 결합되었으며, 과학의 다양한 분야는 훌륭한 협조 체계를 이룩했다. 지난 반세기 동안의 물질적 진보는 과학이 정체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입증하기에 충분한 근거가 될 수 있었다. 

 포스터는 이런 얘기를 약간 내비치려다가 포털리가 말을 자르고 들어오는 바람에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물러서고 말았다. 포털리는 이렇게 말했다. 

 「박사는 공식 선전물에 나오는 내용을 앵무새처럼 읊고 있구려. 박사는 지금 공식적 견해와는 정면으로 반대되는 의견을 듣고 있소. 그 사실을 믿을 수 있소?」

 「솔직히 말해, 믿을 수 없습니다.」

 「그래요? 어째서 시간 탐사만으로 끝이라고 하는 거요? 왜 중성미자학이 중요하지 않다고 하는 거요? 박사는 그렇게 말했소. 아주 단정적으로. 그러면서 그걸 공부해 본 적은 없다고 했소. 그 분야에 대해서는 완전히 무지하다고 주장했소. 심지어 당신이 다닌 학교에서는 가르치지도 않는다고…….」

 「중성미자학이 중요하지 않다는 단순한 사실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아, 알았소. 중성미자학을 가르치지 않는 것은 그것이 중요하지 않아서요. 그리고 그것이 중요하지 않은 것은 그것을 가르치지 않기 때문이오. 박사는 그런 논리에 만족하시오?」

 포스터는 점차 혼란을 느꼈다. 

 「그건 책에 다 있는 얘깁니다.」

 「그게 전부요? 책들은 중성미자학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박사의 교수들도 책에서 그렇게 읽었기 때문에 학생들한테 그렇게 말한다, 책들은 교수들이 책에다 그렇게 써놓았기 때문에 중요하지 않다고 적혀 있다. 도대체 개인적 경험과 지식을 통해 그런 얘기를 하는 사람은 어디에 있소? 도대체 누가 그걸 연구했소? 혹시 들어 본 적 있소?」

 「이렇게 논쟁을 해봤자 아무 소용이 없을 것 같군요, 포털리 박사님. 난 할 일도 있고…….」

 「잠깐만. 난 박사가 이렇게 좀 해보았으면 좋겠소. 한번 들어 보기나 하시오. 난 정부가 중성미자학과 시간 탐사에 대한 기초 연구를 일부러 억누르고 있다고 생각하오. 그들은 시간 탐사의 응용을 억누르고 있소.」

 「아, 그렇지 않습니다.」

 「왜 아니오? 그들은 그렇게 할 수 있소. 박사 말대로 연구는 중앙집권적으로 지도되고 있소. 만일 정부에서 과학의 어떤 분야에 대한 지원금을 거절한다면, 그 분야는 죽어 버리고 말 거요. 정부는 중성미자학을 죽여 버렸소. 정부는 그렇게 할 수 있고, 또 실제로 그렇게 해온 거요.」

 「왜요?」

 「나도 이유는 모르겠소. 알아내고 싶소. 내가 충분한 지식을 갖고 있다면 직접 해보고도 싶소. 내가 박사한테 온 이유는 박사가 새로 교육을 받은 젊은이이기 때문이오. 박사의 지적 동맥이 벌써 경화증을 일으키고 있는 거요? 박사한테는 호기심도 없소? 알고 싶지도 않소? 답을 구해보고 싶지도 않느냔 말이오?」

 역사학자 포털리는 포스터의 얼굴을 살폈다. 그들의 코는 겨우 몇 센티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다. 포스터는 너무 몰두해 있었기 때문에 뒤로 물러설 생각도 못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포스터가 포털리한테 나가라고 명령하는 것은 정당한 권리였다. 필요하다면, 포털리를 밖으로 내던질 수도 있었다. 

 그러나 포스터가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나이와 지위에 대한 존중 때문이 아니었다. 포털리의 주장에 설득 당했기 때문은 더욱더 아니었다. 그것은 출신 대학에 대한 사소한 자존심 때문이었다. 

 왜 M.I.T.는 중성미자학 강좌를 개설하지 않았을까? 이제 돌이켜보니, 도서관에도 중성미자학에 대한 책은 한 권도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번도 그런 책을 본 적이 없었다. 

 포스터는 그런 문제를 생각해 보기 위해 주춤하고 있었다. 

 그것이 파멸의 시초였다. 

 

 캐롤라인 포털리도 한때는 매력적인 여자였다. 지금도 만찬이나 대학의 공식 모임 같은 게 있을 때는 상당한 노력을 기울여 그 남아 있는 매력을 보여 주는 경우도 가끔은 있다. 

 그러나 보통의 경우에는 ‘축 늘어져 있는 상태’였다. 그 말은 캐롤라인 자신이 자기혐오를 느낄 때 자신을 가리켜 하는 말이었다. 캐롤라인은 나이가 들면서 몸이 많이 불었다. 그러나 무기력은 살이 찐 것과는 전혀 관계가 없었다. 마치 모든 근육이 힘을 잃어 흐물흐물해진 것 같았다. 눈은 퉁퉁 부어 있고 턱은 두 겹이 된 데다가, 걸을 때면 발을 질질 끌고 다녔다. 

 심지어 희어져 가는 머리카락도 단지 뻣뻣해지는 것만이 아니라 시든 것처럼 보였다. 머리카락이 뻣뻣해진 것도, 머리카락이 축 늘어지며 중력에 완전히 굴복해 버렸기 때문인 것처럼 보였다. 

 캐롤라인은 거울을 보며 지금 자신이 최악의 상태에 처해 있다고 생각했다. 캐롤라인은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로렐에 대한 꿈 때문이었다. 다 커버린 로렐이 등장하는 이상한 꿈이었다. 그 꿈 이후로 캐롤라인은 비참한 상태에 빠져 들었다. 

 그럼에도, 캐롤라인은 그 꿈 이야기를 남편한테 했다는 것에 대해 미안해하고 있었다. 포털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실 그런 얘기에 대해서는 더 이상 대꾸하는 법이 없었다. 그러나 그 얘기가 나쁜 영향을 미친 것은 틀림없었다. 그 이후로 며칠간 유별나게 의기소침해 있었으니까. 정부관계자와의 중요한 면담을 준비하느라 그런 것 일수도 있었다(포털리는 성공을 기대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꿈 얘기 때문일 수도 있었다. 

 차라리 포털리가 나한테 큰소리 지를 때가 나았지. 

 「죽은 과거는 이제 내버려둬, 캐롤라인! 이야기를 한다고 해서 로렐이 돌아오는 건 아니잖아. 꿈을 꾸는 것도 마찬가지야.」

 그 사건은 그들 부부에게 나쁜 영향을 미쳤다. 끔찍하게 나쁜 영향을. 캐롤라인은 그때 집에 없었으며, 그것 때문에 계속해서 죄책감에 시달렸다. 그때 자신이 집에 있었더라면, 불필요한 쇼핑을 하러 한가하게 돌아다니지만 않았더라면. 그들 부부 둘 다 집에 있었다면, 둘 가운데 하나는 로렐을 구할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불쌍한 포털리는 로렐을 구하지 못했다. 포털리가 로렐을 구하려고 애를 썼다는 것은 하늘이 안다. 포털리 자신도 죽을 뻔했으니까. 포털리는 괴로움 때문에 비틀거리며 불타는 집에서 나오고 있었다. 온몸이 불긋불긋한 채, 숨 막혀 헐떡거리며, 반은 장님이 되어서 죽은 로렐을 품에 안고. 

 그 악몽은 끈질기게 계속되었다. 완전히 사라지는 일이 없었다. 

 포털리는 그 후로 자기 둘레에 껍질을 쌓기 시작했다. 낮은 목소리에 부드러운 태도를 갖게 되었다. 그 어떤 것도, 번개조차도 깨고 들어갈 수 없는 부드러움. 그리고 청교도적으로 되면서, 사소한 습관도 버리게 되었다. 담배도 끊었으며, 이따금씩 세속적인 욕을 내뱉던 버릇도 사라져 버렸다. 포털리는 카르타고에 대한 새로운 역사 연구를 준비하기 위한 지원금을 얻었으며, 모든 것을 그 연구에 쏟아 부었다. 

 캐롤라인도 포털리를 도우려고 애를 썼다. 포털리의 참고 자료를 찾으러 뛰어 다녔으며, 포털리의 메모를 타이프로 쳐 마이크로필름으로 만들었다. 그러다 그것도 어느 날 갑자기 끝나게 되었다. 

 어느 날 저녁 캐롤라인은 책상에서 갑자기 일어나더니 화장실로 달려가 심하게 토했다. 포털리는 당황스럽기도 했고, 걱정이 되어 뒤따라갔다.

 「캐롤라인, 왜 그래?」

 캐롤라인은 브랜디를 들이켠 다음에야 제정신을 차렸다. 

 「그게 사실이에요? 그 사람들이 한 짓이요?」

 「누가 한 짓?」

 「카르타고 사람들이요.」

 포털리는 캐롤라인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캐롤라인은 간접적으로 표현했다. 대놓고 말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카르타고 사람들은 몰록 신을 섬겼다고 알려져 있었다. 몰록은 놋쇠로 만든 속이 텅 빈 우상으로 배에는 용광로가 있었다. 국가적 위기가 닥칠 때면, 사제와 백성들이 모여 기원을 드리는 의식을 거행한 다음, 갓난아기를 산 채로 불 속에 집어넣었다. 

 결정적인 순간에 사람들이 공포에 젖어 울음을 터뜨려 희생 의식을 망칠까 봐 미리 사람들한테 사탕 과자를 나누어 주었다. 결정적인 순간 직후에는 북소리가 크게 울렸다. 갓난아기의 짧은 비명을 삼켜 버리기 위해서. 희생당하는 아이의 부모들도 그 자리에 있었다. 그 부모는 아마 자식의 희생이 신을 기쁘게 한다는 이유로 만족해했을지도 모른다. 

 아놀드 포털리는 어두운 표정으로 얼굴을 찌푸렸다. 

 「그건 카르타고의 적들이 꾸며낸 사악한 거짓말이야.」

 포털리는 아내한테 말했다. 

 「미리 주의를 주었어야 하는 건데. 사실 그런 선전용 거짓말들이 드문 게 아니라고. 그리스인들에 의하면, 고대 헤브루인들은 그들의 성전 안에서 당나귀 머리를 섬겼다고 해. 로마인들에 따르면, 초기 기독교인들은 이방인의 자녀를 지하 무덤 속에서 희생 제물로 바치는 가증스러운 의식을 거행했다고 해.」

 「그럼 카르타고 사람들이 그러지 않았다는 건가요?」

 캐롤라인이 물었다. 

 「나도 확실히는 몰라. 원시 페니키아인들은 그랬을 수도 있지. 원시 문화에서 인간 희생은 흔한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전성기의 카르타고는 원시 문화를 넘어서 있었어. 인간 희생은 종종 할례와 같은 상징적 행동으로 바뀌게 되었지. 그리스인들과 로마인들은 카르타고의 어떤 상징적 행동을 원래의 실제적인 의식으로 잘못 본 것인지도 몰라. 무지 때문에 그랬을 수도 있고, 악의로 일부러 그랬을 수도 있지.」

 「확실해요?」

 「아직 확실친 않아, 캐롤라인. 하지만 충분한 증거들을 수집하게 되면, 시간 탐사를 하게 해달라고 신청해 볼 거야. 그렇게 되면 모든 게 증명될 테니까.」

 「시간 탐사요?」

 「그래. 고대 카르타고가 위기를 맞았던 어느 시점에 초점을 맞출 수가 있어. 예를 들어 기원 전 202년 스피키오 아프리카누스 장군이 상륙 했을 때. 그러면 우리 눈으로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볼 수가 있지. 그럼 아마 내가 옳다는 것을 보게 될 거야.」

 포털리는 캐롤라인의 등을 두드리며 힘찬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러나 캐롤라인은 그 후로 2 주 동안 매일 로렐의 꿈을 꾸었다. 그리고 그 후로 다시는 포털리의 카르타고 연구를 도울 수가 없었다. 포털리도 그렇게 해달라고 요청하지 않았다. 

 지금 캐롤라인은 마음을 단단히 먹고 남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포털리는 시내로 돌아온 뒤에 캐롤라인한테 전화를 했다. 정부 관계자를 만나 보았지만, 예상한 대로였다고 한다. 그건 실패를 뜻했다. 포털리의 목소리에 숨기려 해도 숨길 수 없는 우울함이 담겨 있을 법한데, 그런 건 찾아볼 수가 없었다. 화상 전화에 나타난 포털리의 모습도 차분해 보였다. 포털리는 집으로 돌아오기 전에 할 일이 한 가지 남았다고 말했다. 

 따라서 포털리는 집에 늦게 돌아올 터였다. 그러나 상관없었다. 두 사람 누구도 식사시간에 대해 까다롭게 굴지 않았으며, 언제 냉장고에서 물건을 꺼냈는지, 또 무슨 물건을 꺼냈는지, 언제 자동 조리기구가 작동했는지에 신경 쓰지 않았다. 

 포털리가 도착했을 때, 캐롤라인은 놀랐다. 포털리한테서 우울한 표정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포털리는 의무적으로 아내한테 입을 맞추고 웃음을 지었다. 이어 모자를 벗으며 자기가 나가 있는 동안 잘 지냈냐고 물었다. 거의 완벽하게 정상적이었다. 거의. 

 하지만 캐롤라인은 몇 가지 사소한 점들을 알아차리게 되었다. 포털리는 아주 약간 서두르듯 움직이고 있었다. 오직 캐롤라인의 익숙해진 눈에서만 포털리가 긴장하고 있다는 게 나타날 뿐이었다. 

 캐롤라인이 물었다. 

 「무슨 일 있었어요?」

 「모레 밤에 저녁식사 손님이 올 거야, 캐롤라인. 괜찮지?」

 「그럼요. 내가 아는 사람인가요?」

 「아니. 젊은 전임강사야. 새로 온 친구지. 그 친구와 이야기를 했었어.」

 포털리는 갑자기 캐롤라인한테 달려들어 팔꿈치를 움켜쥐었다. 잠시 잡고 있더니, 자기 감정을 드러낸 것에 대해 어색해 하면서 이내 놓고 말했다.

 포털리가 말했다. 

「그 친구를 이해시키지 못할 뻔했어. 그랬을 경우를 상상해 봐. 끔찍해, 정말 끔찍해. 우리가 멍에에 매여 모두 허리를 숙이고 있는 모습, 우리를 묶은 고삐에 대해 애착을 갖고 있는 모습.」 

 캐롤라인은 무슨 말인지 잘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지난 일 년 간 그녀는 남편이 소리 없이 점점 반항적으로 되어 가는 것, 조금씩 조금씩 정부에 대해 대담하게 비판을 해대는 것을 지켜보아 왔다. 

 캐롤라인이 말했다. 

 「설마 그 사람한테 바보 같은 얘기를 하진 않았겠죠?」

 「바보 같다니, 무슨 뜻이지? 그 친구가 날 위해 중성미자 관련된 일을 해줄 텐데.」

 캐롤라인은 ‘중성미자’에 대해 잘 몰랐으나, 그게 역사와 관계없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녀가 힘없이 말했다. 

 「포털리, 당신이 그러는 걸 원치 않아요. 그러다 일자리를 잃게 될지도 몰라요. 그건…….」

 「그건 지적 무정부주의란 말이겠지, 여보. 그 말을 하고 싶었던 거지? 좋아. 난 무정부주의자야. 만일 정부가 내 연구를 계속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면, 나 혼자서라도 계속할 거야. 그리고 내가 그 방법을 보여 주게 되면, 다른 사람들도 따라올 거야. 설사 따라오지 않는 다해도 상관없어. 중요한 건 카르타고와 인간의 지식이지, 당신이나 내가 아니니까.」

 「하지만 당신은 그 젊은이를 모르잖아요. 그 사람이 연구위원회의 첩자면 어떻게 해요?」

 「그렇지 않을 거야. 어쨌든 모험을 해보겠어.」

 포털리는 오른손으로 주먹을 쥐고 그걸 왼쪽 손바닥에 부드럽게 문지르며 말을 이었다. 

 「그 친구는 이제 내 편이야. 확실해. 그럴 수밖에 없게 되었으니까. 난 사람의 눈과 얼굴과 태도에 지적인 호기심이 나타날 때 그걸 알아볼 수 있지. 호기심이란 건 길들여진 과학자한테는 치명적인 병이야. 심지어 오늘날에도 사람한테서 그 병을 제거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게다가 젊은이들은 그런 병에 약하거든. 아, 내가 왜 중간에 멈추어야 해? 왜 우리 자신이 시간 탐사기를 만들어 정부더러…….」

 포털리는 갑자기 말을 끊더니, 고개를 저으며 등을 돌렸다. 

 「모든 게 잘 되기를 바래요.」

 캐롤라인이 말했다. 모든 게 잘 안 될 것 같은 예감을 가지고, 그리고 남편의 지위와 그들의 노후에 대해 미리 겁을 집어먹으면서. 

 어떤 문제가 생길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을 느낀 것은 오직 캐롤라인 한 사람뿐이었다. 그것은 아주 엉뚱한 문제가 생길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었다. 

 

 조너스 포스터는 캠퍼스 밖에 있는 포털리의 집에 거의 30분이나 늦게 도착했다. 바로 그날 저녁까지도 포스터는 갈지 말지에 대해 결정을 못 내리고 있었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에 가서, 저녁식사 약속을 한 시간 전에 취소해 버리는 사교적 무례를 범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물론 호기심에 대한 포털리의 이론에 자극을 받은 것도 한 원인이 되었다. 

 저녁식사 자체는 아주 지루했다. 포스터는 식욕도 없이 식사를 했다. 포털리의 아내 캐롤라인은 관심 없다는 듯 멍한 표정으로 앉아 있다가, 딱 한번 그에게 결혼했냐고 묻고는 안했다고 하자 비난하는 듯한 감탄사를 터뜨렸을 뿐이다. 포털리 박사는 중립적인 입장에서 포스터의 연구 과정에 대해 묻고는 딱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나 차분하고 격식에 치우쳐 있었다. 따분할 정도였다. 

 포스터는 생각했다. 

 ‘저 사람은 정말 해를 끼칠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아.’

 포스터는 지난 이틀간 포털리 박사에 대한 것들을 찾아내 읽었다. 물론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행동했지만, 사실 비밀리에 염탐질을 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사회과학 도서관에 갔다는 게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져 좋을 게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역사학이란 학문과 상식의 경계선상에 있는 학문들 가운데 하나였다. 그렇기 때문에 일반 대중도 재미나 교훈을 얻을 목적으로 역사 연구물을 자주 읽었다. 

 그러나 물리학자를 완전히 ‘일반적 대중’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포스터가 역사를 읽는 것이 알려진다면, 그가 이상한 존재로 여겨질 것은 상대성이론만큼이나 틀림없는 일이었다. 또한 학과장은 이 새로운 전임강사가 ‘자기가 맡은 일에 적합한 사람’인지 아닌지 의심하게 될 터였다. 

 그래서 포스터는 조심했다. 포스터는 되도록 눈에 안 띄는 후미진 구석에 앉았으며, 인적이 드문 시간에 들락거리면서도 고개를 숙이고 다녔다. 

 결국 포스터는 포털리 박사가 고대 지중해 세계에 대해 세 권의 책과 십여 편의 논문을 썼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역사비평》에 실린 최근의 논문들은 로마 이전의 카르타고를 다루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모두 카르타고에 동정적인 글들이었다. 

 그 자료들을 통해 적어도 포털리가 한 말의 일부는 사실로 확인되었으며, 포스터의 의심도 어느 정도 누그러지게 되었다. 그럼에도 포스터는 애초에 이 문제에 대해 선을 그어 놓을 걸 하고 후회했다. 그러는 게 훨씬 더 현명하고 안전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과학자라는 건 너무 호기심이 많아선 안 돼. 포스터는 그렇지 않은 자신에게 씁쓸한 만족감을 느끼며 생각했다. 그건 위험한 경향이야.

 식사 후 포스터는 안내를 받아 포털리의 서재로 갔다. 그러나 문간에서 딱 멈추어 서고 말았다. 서재 사방 벽에는 책들이 꽉 들어차 있었다. 

 필름이 아니었다. 물론 필름도 있었지만, 종이에 인쇄를 한 책들의 수가 훨씬 많았다. 포스터는 그렇게 많은 책들이 아직도 사용할 수 있는 상태로 존재한다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었다. 

 그것을 보고 포스터는 마음이 불편했다. 대체 누가 이렇게 많은 책을 집에 보관하고 싶어 하겠는가? 대학 도서관에 가면 얼마든지 볼 수 있을 텐데. 정 안 되면, 의회 도서관에라도 가서, 약간 성가시긴 하지만 마이크로필름들을 찾아보면 될 텐데. 

 그런데도 가정용 서재를 가지고 있다니, 뭔가 비밀이 있는 것 같았다. 지적 무정부주의의 냄새가 풍겼다. 그런 생각을 하자, 이상하게도 포스터의 마음이 차분해졌다. 포털리가 가면을 쓴 첩자인 경우보다는 진짜 무정부주의자인 쪽이 더 마음 편했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시간은 놀랍게도 빠르게 흘러갔다. 

 포털리가 분명하고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알겠지만, 난 가능하다면, 자기 작업에 시간 탐사를 사용해 본 사람을 찾고자 했었소. 난 열심히 물어보고 다니진 않았지. 그렇게 하는 건 내 권한을 넘어선 조사 활동이기 때문에.」

 「네.」

 포스터가 무뚝뚝하게 대꾸했다. 포스터는 그런 사소한 고려 때문에 포털리가 더 이상 나아가지 못했다는 것에 약간 놀랐다. 

 「난 간접적인 방법을 사용했소.」

 사실 포털리는 그렇게 했다. 포스터는 고대 지중해 문화 가운데 논쟁의 여지가 있는 사소한 문제에 대해 포털리가 엄청난 양의 서신을 교환했다는 것을 알고 놀랐다. 포털리는 그 서신에서 어떻게 해서든 상대방에게서, ‘물론, 난 시간탐사기는 한 번도 이용해 보지 못했습니다만……’이라든가 ‘시간 탐사 자료에 대한 요청의 승인이 떨어질 때까지는 알 수 없습니다. 지금으로선 승인이 떨어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만……’과 같은 언급을 유도해 냈다. 

 「결국 이런 식으로 찔러 보는 게 헛된 일은 아니었소. 시간 탐사 연구소가 발행하는 월간 소책자가 있소. 거기에는 시간 탐사를 통해 과거의 사실을 확인하는 부분이 있소. 늘 딱 한두 개씩뿐이었지만. 

 처음에 내가 놀란 것은 그 사실들 대부분이 하찮은 것이라는 점이었소. 너무 재미없는 것들이었지. 그런데 어째서 그런 연구들이 내 연구보다 우선권을 가져야 한단 말이오? 그래서 난 그 소책자에 묘사된 방향으로 연구를 할 법한 사람들한테 편지를 보냈소. 그러나 아까 내가 말했듯이, 그들은 하나같이 시간 탐사를 이용해 보지 못했던 것이오. 자, 이제 한 가지씩 검토해 보기로 합시다.」

 마침내 포스터는 포털리가 체계적으로 수집해 놓은 세부 사항을 모두 듣게 되었다. 이윽고 포스터가 물었다. 

 「하지만 왜 그랬을까요?」

 「나도 왜 그랬는지는 모르오. 하지만 가정은 할 수 있소. 원래 시간 탐사기를 발명한 것은 스테르빈스키였소. 그리고 그것은 세상에 공표되었지. 그랬는데 정부가 그 기계를 차지하고는, 시간 탐사에 대한 진전된 연구, 나아가서 시간 탐사기를 이용하는 것 자체를 막아 버렸소. 그러자 사람들은 왜 그걸 이용하지 못하게 하는지 호기심을 느끼게 되었지. 호기심이란 건 무서운 악이오, 포스터 박사.」

 그래, 그렇고말고. 물리학자 포스터도 속으로 동의했다. 포털리가 말을 이어 나갔다. 

 「그런 상태에서 시간 탐사기가 이용되고 있는 척한다면 그 효과가 어떻겠소? 그렇게 하면 시간 탐사기는 신비의 존재가 아니라 평범한 물건이 되어 버릴 것이오. 그것은 정당한 호기심의 대상도 되지 못할 것이고, 금지된 호기심의 대상도 되지 못할 것이오.」

 「박사님은 호기심이 많군요.」

 포스터가 지적했다. 

 포털리는 약간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화난 목소리로 말했다. 

 「내 경우는 다르오. 난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을 가지고 있으며, 정부가 나를 계속 배제시키는 그런 우스꽝스러운 방식에는 굴복하지 않을 거요.」

 약간 편집광적이기도 하군. 포스터는 우울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포털리가 편집광이든 아니든, 포털리는 결국 성과를 얻었다. 포스터도 중성미자학에서 뭔가 이상한 일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더 이상 부정할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포털리가 노리는 게 뭘까? 그 생각 때문에 포스터는 여전히 마음이 불편했다. 만일 포털리가 나의 윤리를 시험해 볼 목적으로 이러는 게 아니라면 도대체 뭘 원하는 걸까? 

 포스터는 논리적으로 생각해 보았다. 만일 편집증 증세가 있는 지적 무정부주의자가 시간 탐사기를 이용하고 싶어 하는데, 권력을 가진 자들이 그 길을 막고 있다고 확신한다면, 그는 어떻게 할까? 

 만일 나라면 어떻게 할까?

 포스터가 천천히 말했다. 

 「어쩌면 시간 탐사기라는 건 아예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겠군요?」

 포털리는 깜짝 놀랐다. 지금까지의 차분한 태도에 갑자기 금이 가는 것 같았다. 순간적으로 포스터는 포털리 박사의 전혀 차분하지 않은 어떤 측면을 본 듯했다. 

 그러나 역사학자는 가까스로 균형을 유지하며 말했다. 

 「아니, 그렇지 않소. 시간 탐사기는 반드시 존재하오.」

 「어째서죠? 박사님이 그걸 보셨나요? 아니면 제가 보았습니까? 어쩌면 제가 한 말이 모든 것을 설명해 줄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정부는 자기들이 갖고 있는 시간 탐사기를 사람들이 못 쓰게 하는 게 아닌지도 모릅니다. 애초부터 아예 갖고 있지 않은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스테르빈스키는 실제 살았던 사람이오. 그가 시간 탐사기를 만들었소. 그건 틀림없는 사실이오.」

 「책에는 그렇게 나와 있지요.」

 포스터가 차갑게 대꾸했다. 

 「내 말을 들어 보시오.」

 포털리는 손을 뻗어 포스터의 저고리 소매를 잡으면서 말을 이었다. 

 「난 시간 탐사기를 필요로 하오. 반드시 가져야만 해. 그런 게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 따위는 하지 마시오. 우리가 하려는 일은 중성미자학에 대해 충분히 알아냄으로써…….」

 포털리는 갑자기 말을 끊었다. 

 포스터는 포털리의 손에 소매를 잡아 뺐다. 굳이 포털리의 말을 다 들을 필요도 없었다. 포스터는 대신 말해 주었다. 

 「우리가 한 번 만들어 보자는 거로군요?」

 포털리는 침울한 표정이었다. 마치 그 이야기를 노골적으로 하지 말았어야 하는 건데 하고 생각하는 것처럼. 그럼에도 포털리는 밀고 나갔다. 

 「왜, 안 되겠소?」

 「그건 불가능하기 때문에 안 됩니다. 제가 읽은 게 정확하다면, 스테르빈스키가 그 기계를 만드는 데는 20년이 걸렸고 또 각종 지원금 수백만 달러를 받아 거기에 쏟아 넣었습니다. 그런데 박사님과 제가 그걸 불법으로 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한테 그럴 만한 시간이 있다고 칩시다. 사실 그렇지도 않지만. 또 제가 책에서 제작 방법을 다 배울 수 있다고 칩시다. 의심스러운 일이지만. 그렇다고 해도 우리가 어디서 돈과 장비를 구한단 말입니까? 맙소사, 시간 탐사기는 아마 5층 건물을 꽉 채울 겁니다.」

 「그래서 날 도와주지 않겠다는 거요?」

 「글쎄요, 이 얘긴 해드릴 수 있습니다. 제가 뭔가를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게 뭐요?」

 포털리가 즉시 물었다. 

 「아니, 별로 중요한 건 아닙니다. 어쩌면 정부가 일부러 시간 탐사기를 이용한 연구를 막고 있는지 아닌지를 판단할 수 있을 만큼은 알아낼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박사님이 이미 가지고 계신 증거를 확인시켜 드릴 수도 있고, 또 어쩌면 박사님의 증거가 잘못된 것임을 입증할 수도 있겠지요. 어느 쪽이든, 그게 박사님한테 어떤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어쨌든 그게 제가 최대한 해볼 수 있는 일입니다. 그게 제 한계입니다.」

 

 포털리는 마침내 젊은이가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포털리는 자신한테 화가 났다. 왜 내가 부주의하게 시간 탐사기를 만들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드러냈단 말인가? 너무 성급했어. 

 그런데 어째서 이 젊은 바보는 시간 탐사기가 아예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시간 탐사기는 반드시 존재해. 존재해야만 돼. 대체 무슨 근거로 그게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단 말인가?

 그리고 왜 두 번째 시간 탐사기를 만들 수 없단 말인가? 스테르빈스키 이후 50년 동안 과학은 진보해 왔다. 유일하게 필요한 것은 지식일 뿐이다. 

 이 젊은이가 지식을 모으도록 만들자. 지식을 모으지 않는 게 그의 한계라고 생각하게 만들자. 무정부주의의 길로 들어서게 되면, 거기엔 한계가 없다. 이 아이가 자기 내부의 뭔가 때문에 더 이상 나아가지 않으려 한다 해도, 첫 번째 발걸음이 잘못된 이상 나머지도 어쩔 수 없다. 

 포털리는 협박을 사용하는 것도 망설이지 않을 각오였다. 

 포털리는 작별인사로 손을 흔들고 나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물론이지! 필요하다면 협박도 해야 돼. 난 절대 멈추지 않아. 

 

 포스터는 시의 황량한 외곽을 가로질러 차를 몰았다. 비가 오는 것도 거의 의식하지 못했다. 

 내가 바보야. 포스터는 생각했다. 그러나 그냥 그대로 내버려둘 수가 없었다. 포스터도 알고 싶었다. 포스터는 자신의 절제되지 않는 호기심을 저주했다. 그러나 알아야만 했다.

 포스터도 랄프 삼촌을 만나는 것 이상은 달리 어쩔 도리가 없었다. 포스터는 거기서 멈추겠다고 굳게 맹세했다. 그렇게 하면 아무런 증거가 없을 거야. 나를 엮어 넣을 실질적인 증거는 없을 거야. 랄프 삼촌은 비밀을 지킬 테니까. 

 어떤 면에서는 포스터는 랄프 삼촌의 존재를 은근히 부끄럽게 생각하고 있었다. 포털리한테 랄프 삼촌 이야기를 하지 않은 것은 한편으로는 조심성 때문이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포털리가 눈썹을 치켜 올리는 것, 이어 틀림없이 슬며시 웃음 짓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전문적인 과학 작가들은 아무리 유능한 존재라 할지라도, 학문의 울타리에서 약간 빗겨난 존재들이었다. 과학자들은 그들을 보호해 주는 척하면서도 경멸하게 마련이다. 물론, 그들이 연구 과학자들보다 더 많은 돈을 번다는 게 곤혹스러운 일이긴 하지만. 

 그러나 가족 가운데 과학 작가가 있다는 것은 때로 편리했다. 그는 전문 교육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어떤 전공 분야를 가질 필요도 없었다. 따라서 훌륭한 과학 작가는 실제로 모든 분야를 알고 있었다. 그리고 랄프 삼촌은 최고의 과학 작가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랄프 니모는 대학 학위도 없었다. 그러나 오히려 그것을 자랑하는 쪽이었다. 둘 다 상당히 젊었을 때, 랄프는 포스터한테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학위를 딴다는 것은 파멸적인 길로 첫 발을 내딛는 거지. 이왕 딴 학위를 낭비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서 대학원도 가고 박사 과정도 밟게 되는 거야. 그러다 결국은 아무런 가치도 없는 하나의 지엽적인 조각을 제외하고는 세상의 모든 것에 대해 완전한 바보가 되어버리지. 똑똑한 바보. 

 반면 대학 같은 데는 안 가고, 어떤 성숙한 상태에 이르기 전까지는 어수선한 정보들을 흡수하지 않고 살 수도 있어. 어수선한 정보들을 받아들이는 대신 지성만 갖추고, 명석한 사고를 통해 그 지성을 훈련시키게 되면, 정신이라는 강력한 도구를 마음대로 할 수가 있고 또 과학 작가가 될 수도 있지.」

 랄프는 수습 기간을 완료하고 과학 작가로 첫 발을 내딛은 지 석 달 도 안 된 스물다섯의 나이에 첫 과제를 얻었다. 그 과제물은 잠꼬대 같은 원고의 형태로 주어졌다. 그 원고는 지성을 갖춘 독자라 하더라도 신중하게 연구하고 또 특별한 영감을 얻어 상상력을 발휘하지 않으면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말로 씌어 있었다. 랄프는 그것을 분해했다가 다시 조립하여(생물 물리학자들인 저자들과 다섯 번에 걸친 길고 짜증나는 면담을 한 뒤에), 문장을 정리하고 언어를 다듬고 문체도 매만졌다. 

 조카인 포스터는 랄프가 과학의 주변에만 매달려 있으려 한다고 비판했다. 그것은 대학 학위에 대한 랄프의 비난에 대한 반박이었다. 그럴 때면 랄프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그럼 왜 안 되는데? 주변은 중요한 거야. 너희들 과학자들은 글을 못 써. 사실 과학자들한테는 그걸 기대할 필요도 없는 거지. 과학자들에게 체스의 위대한 고수가 되거나 바이올린의 명인이 되기를 기대하지 않는 것처럼, 그들이 말을 정리할 줄 알 것이라고는 기대하지도 말아야지. 글을 쓰는 일 역시 전문가들한테 맡기면 되는 거잖아. 

 맙소사, 포스터, 백 년 전의 과학 문헌들을 한 번 읽어봐라. 그때의 과학이 구식이고 표현이 시대에 뒤떨어져 있다는 건 염두에 두지 말고 그냥 읽고 이해만 하려고 해봐. 씹어도 이빨이 안 들어갈 정도의 아마추어 글들이야. 인쇄된 종이들이 아까울 정도야. 논문들 전부가 의미가 없거나 이해할 수가 없거나, 아니면 둘 다야.」

 「하지만 삼촌은 인정을 못 받잖아요.」

 포스터가 반박했다. 이제 막 대학생활을 시작하여, 대학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을 때의 일이었다. 포스터가 말을 이었다. 

 「삼촌은 마음만 먹으면 대단한 연구자가 될 수도 있을 텐데.」

 「난 인정을 받아. 조금이라도 내가 인정받지 못한다고 생각하지 말아라. 물론 생물 화학자나 성층권 기상학자들이 나한테 관심을 갖지는 않지. 하지만 보수는 충분히 준다. 일급 화학자한테 위원회가 일 년 치의 과학 집필 보조금을 중단했을 경우 어떻게 될지 한번 생각해봐라. 그 화학자는 실험을 위한 계측기를 살 돈보다는, 나 같은 사람한테 줄 돈을 타내기 위해 눈을 부라리고 싸울 거다.」

 그러면서 랄프는 활짝 웃었다. 포스터도 마주 웃었다. 사실 포스터도 내심으로는 이 삼촌을 자랑스러워했다. 둥근 얼굴의 삼촌은 올챙이배가 나오고, 손가락도 뭉툭하고 짧아 모든 게 둥글둥글하다는 느낌을 주었다. 삼천은 허영심 때문에, 별 효과가 없는데도 주변의 머리를 대머리진 정수리 위로 빗어 올렸다. 또 옷 입은 모습을 보면 정돈되지 않은 짚더미 같았다. 그러나 그런 무심함이 삼촌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포스터는 그런 삼촌을 부끄러워하면서도 동시에 자랑스러워했다. 

 지금 포스터는 삼촌의 어수선한 아파트에 들어서고 있다. 지금은 전혀 웃을 기분이 아니었다. 포스터는 그때보다 아홉 살을 더 먹었으며, 랄프 삼촌도 그만큼 나이가 들었다. 그 9년 동안 과학의 온갖 분야의 논문들이 삼촌한테 전해져 다듬어졌으며, 그 논문들의 내용 가운데 약간씩은 삼촌의 넓은 마음속으로 기어들어가 쌓였다. 

 랄프는 씨 없는 포도를 먹고 있었다. 한 번에 한 알씩 입으로 던져 넣었다. 랄프는 포스터한테도 한 송이 던져 주었다. 포스터는 아슬아슬하게 그것을 잡고는, 송이에서 떨어져 바닥에 흩어진 포도알들을 주우려고 허리를 굽혔다. 

 랄프가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놔둬라. 신경 쓸 것 없다. 일주일에 한 번씩 청소하는 사람이 온다. 그런데 무슨 일이냐? 지원금 신청서를 쓰는 데 문제가 생겼니?」

 「그건 아직 시작도 안 했어요.」

 「시작도 안 했다고? 어서 시작해라, 얘야. 내가 원고를 다듬어 주겠다고 제한하기를 기다리고 있는 거냐?」

 「난 삼촌한테 부탁할만한 돈이 없어요.」

 「아, 이거 왜 이래. 가족간의 일 아니니. 나한테 대중용 출판권을 줘. 그러면 현금은 안 받을 테니까.」

 포스터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진심으로 말씀하시는 거라면, 그렇게 하겠어요.」

 「그렇게 하자꾸나.」

 물론 그것은 일종의 도박이었다. 그러나 랄프의 과학 글 솜씨는 포스터의 신청서를 가지고도 돈을 벌 수 있게 만들 정도라는 것을 포스터는 알고 있었다. 원시인이나 새로운 수술 기술, 우주항해학의 어떤 분야에 대해 극적인 서술을 함으로써 대중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게 되면, 그것은 매스컴을 통해 선전이 되고, 결국 큰돈을 벌 수 있었다. 

 예를 들어, 랄프는 브라이스와 그의 공동 연구자들이 쓴, 두 가지 암 바이러스의 세밀한 구조를 밝힌 일련의 논문을 과학 논문으로 다듬어 준 적이 있었다. 그 일을 해주는 대가로 랄프는 천오백 달러라는 보잘것없는 액수를 요구했다. 다만 거기에 대중용 출판권을 달라는 조건을 붙였다. 나중에 랄프는 독점권을 가지고, 똑같은 논문을 3차원 비디오에서 사용할 수 있는 다소 극적인 형식으로 꾸며 냈다. 그것으로 랄프는 이만 달러의 선금을 받았을 뿐 아니라, 직므도 5년마다 한 번씩 저작권료를 받고 있다. 

 포스터가 무뚝뚝하게 말했다. 

 「중성미자학에 대해서 아는 거 있어요, 삼촌?」

 「중성미자학?」

 랄프의 작은 눈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랄프가 말을 이었다.

 「네가 그 분야 전공이니? 난 가중력 광학인 줄 알았는데.」

 「물론 그게 전공이지요. 중성미자학에 대해서는 그냥 물어본 거예요.」

 「중성미자학에 관심을 가져선 안 된다. 그건 법에 저촉되는 일이야. 너도 그건 알고 있겠지?」

 「설마 내가 어떤 것에 대해 호기심을 좀 갖는다고 해서 위원회의 연락을 하시진 않겠죠?」

 「어쩌면 네가 곤경에 빠지는 걸 막기 위해 그럴 수도 있지. 호기심이란 건 과학자들한테는 직업병과 같아. 난 그 호기심이라는 게 어떤 작용을 하는지 여러 번 보았다. 어떤 과학자라도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하나의 문제를 따라갔다가, 호기심에 이끌려 이상한 곤경에 빠질 수가 있는 거야. 그러다 보면 정작 자기가 맡은 분야의 문제에 대해서는 거의 해놓은 게 없기 때문에, 프로젝트를 갱신해 새로운 지원금을 탈 근거가 없게 되지. 더 심한 경우도 보았는데…….」

 포스터가 기다리지 못하고 말을 잘랐다. 

 「제가 알고 싶은 건, 최근 중성미자학에 대해 삼촌 손에 넘어 온 게 뭐 없냐는 거예요.」

 랄프는 뒤로 등을 기대고, 생각에 잠겨 포도 한 알을 씹었다. 이윽고 랄프가 입을 열었다. 

 「없다. 하나도 없었어. 중성미자학에 대한 논문은 한 번도 본 적이 없구나.」

 「뭐라고요!」

 포스터는 솔직하게 놀라움을 드러내고는 말을 이었다. 

 「그럼 대체 누가 그 분야를 연구한다는 거예요?」

 「네가 물어보니까 하는 얘기지만, 나도 모른다. 매년 열리는 정기 총회에서도 그런 애기를 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그 분야에 대해서는 별다른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는 것 같구나.」

 「왜 그렇죠?」

 「얘야, 얘야, 소리 지르지 마라. 내가 무슨 짓을 한 게 아니잖니. 내 추측으로는…….」

 포스터가 격하게 내뱉었다. 

 「삼촌도 모른다는 거예요?」

 「흠. 내가 중성미자학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을 얘기해 주마. 중성미지학이란 중성미자의 운동과 그와 관련된 힘의 응용에 대한 것을 연구 하는 것으로…….」

 「그래요, 물론이죠. 전자학이 전자의 운동 및 그와 관련된 힘의 응용을 다루고, 가중력학이 인공 중력장의 응용에 대해 다루는 것과 관련을 가지죠. 그 말을 들으러 삼촌한테 온 건 아니에요. 삼촌이 아는 건 그것뿐인가요?」

 랄프는 침착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그리고 중성미자학이 시간 탐사의 기초라는 것. 내가 아는 건 그것뿐이다.」

 포스터는 의자 뒤로 몸을 축 늘어뜨리며, 여윈 뺨을 열심히 문질러댔다. 불만 때문에 화가 날 정도였다. 포스터는 마음속으로 희미하게나마 랄프가 최근의 어떤 보고서들을 제시해 주고, 현대 중성미자학의 흥미 있는 분야에 대해 이야기해 줄 것으로 믿었었다. 그래서 포털리한테 돌아가, 그 늙은 역사학자가 틀렸다고, 그의 자료는 오도된 것이라고 말하게 해줄 수 있을 것으로 믿었다. 그러고 나서 자신의 본분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는데. 

 그러나 지금은…….

 포스터는 화가 나서 혼자 생각했다. 그러니까 이 분야에서는 별다른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는단 말이지. 정말 연구에 대한 고의적인 억압이 있는 것일까? 혹시 중성미자학이 별 소득을 건질 수 없는 학문이기 때문은 아닐까? 어쩌면 그럴 수도 있어. 하지만 모르겠어. 포털리도 몰라. 왜 인류의 지적 자원을 아무것도 아닌 일에 낭비하겠는가? 아니면 그 연구가 어떤 정당한 이유 때문에 비밀이 된 것일지도 몰라. 어쩌면……. 

 문제는, 그걸 알아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모르는 채로 내버려둘 수가 없었다. 절대로 그럴 수가 없었다. 

 포스터가 말했다. 

 「중성미자학에 대한 교과서가 있나요, 랄프 삼촌? 분명하고 간단한 것 말이에요. 기초적인 것.」

 랄프는 생각에 잠겼다. 연달아 한숨을 쉬느라 통통한 뺨이 연신 부풀어 올랐다. 

 「넌 정말 끔찍한 질문들을 해대는구나. 내가 들은 것은 스테르빈스키와 누군가에 대한 것뿐이야. 내가 직접 본 적은 없지만, 그것에 대해 써놓은 것을 본 적은 있다. 스테르빈스키와 라마르, 바로 그거야.」

 「그게 시간 탐사기를 발명한 스테르빈스키인가요?」

 「아마 그럴걸. 그 책은 아주 훌륭한 것이라고 판명된 것이니까.」

 「그 책의 최신판이 있나요? 스테르빈스키는 30년 전에 죽었는데.」

 랄프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찾아보실 수 있어요?」

 「안 돼요. 말을 안 해도 절 도와주시겠어요, 랄프 삼촌? 그걸 한 부 갖다 주시겠어요?」

 「글쎄, 네가 예전에 가중력학에 대해 나한테 가르쳐 준 일이 있지. 고마운 일이었어. 이렇게 하자꾸나. 한 가지 조건을 걸고 도와주겠다.」

 「무슨 조건인데요?」

 나이든 삼촌이 갑자기 엄숙해졌다. 

 「네가 조심해야 한다는 조건이다, 포스터. 네가 무슨 일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네 영역을 넘어서고 있는 건 틀림없어. 너와 관계도 없는 일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느라 네 앞길을 망쳐 버려서는 안 된다. 알겠니?」

 포스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그 말을 제대로 듣고 있지 않았다. 화가 잔뜩 나서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꼭 일주일 뒤에 랄프 니모는 캠퍼스 안에 있는 방 두 개짜리 조너스 포스터의 집으로 뚱뚱한 몸을 밀고 들어와, 작고 쉰 목소리로 말했다. 

 「너한테 줄 걸 가져왔다.」

 「뭔데요?」

 포스터는 곧 관심을 가졌다. 

 「스테르빈스키와 라마르 사본 한 부.」

 랄프는 커다란 코트 속에서 그 사본을, 아니 그 사본의 한 귀퉁이를 꺼내 보였다. 

 포스터는 거의 본능적으로 문과 창문들이 닫혀 있고 차양이 내려져 있나 확인하고 나서 손을 내밀었다. 

 필름 상자는 낡아서 껍질이 벗겨져 있었다. 상자를 벗기자, 낡아서 곧 바스러져 버릴 것 같은 필름이 드러났다. 포스터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내뱉었다. 

 「겨우 이거예요?」

 「고마운 줄 알아라, 얘야. 고마운 줄!」

 랄프는 툴툴거리며 자리에 앉아 호주머니에서 사과 하나를 꺼냈다. 

 「아, 물론 고마워요. 하지만 너무 낡았는데요.」

 「그거라도 얻은 걸 다행으로 알아라. 의회 도서관에서 필름을 얻어 보려고 했는데, 접근할 수가 없었다. 그 책은 대출 금지였거든.」

 「그런데 어떻게 이걸 구했어요?」

 「훔쳤지.」

 랄프는 사과씨 근처를 시끄럽게 깨물며 말을 이었다. 

 「뉴욕 공공도서관에서.」

 「뭐라고요?」

 「아주 간단했다. 물론 서가에는 접근할 수 있었지. 그래서 아무도 없을 때 사슬 쳐놓은 곳을 넘어 들어가, 이걸 찾아낸 다음 들고 나왔다. 그곳에서는 사람을 잘 믿거든. 어쨌든, 몇 년 동안 없어진 것도 모를 거야. 다만 네가 갖고 있는 것을 남이 알지 못하게 해야 할 거다, 조카야.」

 포스터는 마치 뜨거운 물건을 집기라도 한 것처럼 놀란 표정으로 그 필름을 응시했다. 

 랄프는 씨를 버리고 두 번째 사과를 집어 들며 말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웃기는 일이야. 중성미자학 전 분야에 걸쳐 아무것도 새로운 게 없어. 연구 논문도, 짧은 논문도, 작업 개요도 없어. 시간 탐사기 이후로는 아무것도 없어.」

 「그렇군요.」

 포스터가 멍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포스터는 며칠 동안 포털리의 집에서 저녁마다 연구를 했다. 그런 목적을 위해서는 캠퍼스 내의 그의 집이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점차 저녁에 하는 연구가 자신의 지원금 신청서보다도 더 현실적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때때로 신청서 걱정을 하긴 했지만, 이윽고 그런 걱정마저도 하지 않게 되었다. 

 포스터의 연구는 처음에는 단지 책을 복제한 필름을 검토하고 또 재검토하는 과정이었다. 그 후에는 주로 생각하는 것이었다(때로는 포켓 프로젝터로 책의 내용이 비치는 것도 잊은 채). 

 때때로 포털리도 내려와 옆에 앉아, 딱딱하면서도 열렬한 눈으로 포스터를 지켜보기도 했다. 마치 포스터의 사고 과정이 고체가 되어 포스터의 뇌회(腦回) 속을 움직여 가는 게 보이지나 않을까 기대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포털리는 딱 두 가지 면에서 방해가 되었다. 첫째로 포스터에게 담배를 피우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으며, 두 번째는 때때로 말을 거는 것이었다. 

 그것은 대화를 위한 말이 아니었다. 절대로 그런 게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은 낮은 목소리로 중얼대는 독백에 가까웠다. 상대방이 자기 말에 주의를 기울여 주기를 바라는 것 같지도 않았다. 마치 그렇게 해서 자신의 중압감을 좀 덜어 보려는 것 같았다. 

 카르타고! 항상 카르타고 이야기였다. 

 고대 지중해의 뉴욕이라고 할 수 있는 카르타고. 상업제국이자 바다의 여왕인 카르타고., 시라쿠사와 안렉산드리아가 모방하려 했던 카르타고. 적들에 의해 비방을 당하면서도 자신을 변호하는 말 한마디 할 수 없었던 카르타고. 

 카르타고는 한때 로마에 패배하여 시실리와 사르디니아에서 쫓겨나기도 했으나, 스페인에 대한 새로운 지배권을 확립하여 과거의 손실을 보상하는 것 이상으로 성과를 거두었으며, 한니발이 나타나 로마인들을 16년간 두려움에 떨게 하기도 했다.  

 결국 카르타고는 두 번째로 패배했다. 카르타고는 운명에 순응하여 줄어든 영토내에서 부서진 연장으로 절뚝거리는 삶을 재건했다. 그러나 너무 멋지게 재건에 성공하는 바람에, 질투심에 불탄 로마인들은 세 번째 전쟁을 걸어 왔다. 그러자 카르타고는 맨손과 불굴의 의지만 가지고 무기를 만들어 로마가 2년간의 전쟁에 시달리도록 만들었다. 그 전쟁으로 카르타고는 완전히 파괴되었으나, 카르타고의 주민들은 항복은커녕 불타는 자기 집으로 뛰어드는 쪽을 택했다. 

 「고대 역사가들이 그렇게 나쁘게 그려 놓은 도시와 생활 방식을 위해 주민들이 그렇게까지 싸울 수 있었겠소? 한니발은 로마의 어떤 장군보다도 훌륭한 장군이었으며, 그의 병사들은 한니발에게 절대적으로 충성했소. 심지어 그의 철천지원수조차도 그를 칭찬했소. 한 사람의 위대한 카르타고인이 이었소. 로마인의 관점에 따르자면, 그 사람은 비전형적인 카르타고인, 다른 카르타고인들보다 나은 카르타고인, 쓰레기 속에 놓인 다이아몬드라고 하는 게 맞겠지. 하지만 그가 어떻게 그렇게까지 카르타고에 충성할 수 있었을까? 오랜 망명 생활 뒤에 죽을 때까지? 사람들은 ‘몰록’에 대한 이야기를 하오.」

 포스터는 늘 귀를 기울이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번에는 어쩔 수 없이 듣게 되었다. 포스터는 ‘아이 희생’이라는 피비린내 나는 이야기에는 역겨움을 느끼며 몸을 떨었다. 

 그러나 포털리는 진지한 말투로 계속했다. 

 「마찬가지로, 그것도 사실이 아니오. 그건 그리스인과 로마인들이 만들어 낸 이천오백 년 된 뜬소문일 뿐이오. 오히려 로마인들은 자신의 노예를 가지고 있었고, 십자가에 못 박히는 일과 고문을 자행했으며, 검투사 시합을 열었소. ‘몰록’의 이야기는 후세의 표현을 빌리자면 전쟁용 역선전에 불과하오. 엄청난 거짓말이지. 난 그게 로마인들이 꾸며낸 거짓말이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소. 정말이지, 증명하고야 말 거요. 반드시, 반드시…….」

 포털리는 열렬하게 그 다짐을 되풀이하곤 했다. 

 

 포털리의 부인 캐롤라인도 포스터를 찾아 왔다. 그러나 포털리만큼 자주는 아니었다. 대체로 포털리 박사가 저녁 강의가 있어 집에 없는 화요일과 목요일 저녁에 왔다. 

 포털리 부인은 조용히 앉아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긴장이 풀린 창백한 얼굴에 표정 없는 눈. 전반적인 태도가 외부와 멀리 떨어져 자기 속에 침잠해 있는 듯했다. 

 처음에 포스터는 불편해서 나가 달라고 간접적으로 요청해 보려 했었다. 그러자 포털리 부인이 억양 없는 말투로 말했다. 

 「내가 방해가 되나요?」

 「아니, 물론 아닙니다.」

 포스터는 불안한 표정으로 거짓말을 하고는 말을 이었다. 

 「단지…… 단지…….」

 포스터는 말을 맺을 수가 없었다. 

 포털리 부인은 마치 계속 있으라는 권유를 받은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더니 가져온 헝겊 가방을 열고는 바이트론 천 한 첩을 꺼냈다. 부인은 한 쌍의 길쭉한 사면체의 감극기(미래의 뜨개질바늘을 가리킴)를 빠르고 섬세하게 움직여 천들을 짜나가기 시작했다. 배터리를 움직이는 감극기의 전선들 때문에 포털리 부인은 마치 커다란 거미를 안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어느날 저녁 포털리 부인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내 딸, 로렐이 박사 나이예요.」

 포스터는 그 말뿐만 아니라 그 예기치 않은 갑작스러운 말투에 깜짝 놀랐다. 포스터가 말했다. 

 「따님이 계신 줄은 몰랐습니다, 포털리 부인.」

 「그 앤 죽었어요. 오래 전에.」

 바이트론은 교묘한 손놀림을 통해 아직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어떤 옷의 불규칙한 형태를 이루어 나가고 있었다. 포스터로서는 별 감정 없이 중얼거릴 수밖에 없었다. 

 「안됐군요.」

 포털리 부인이 한숨을 쉬며 말을 받았다. 

 「그 애 꿈을 종종 꿔요.」

 그러면서 부인은 그 표정 없는 파란 눈으로 포스터를 보았다. 

 포스터는 움찔하며 눈길을 피했다. 

 또 어느 날 저녁에는 바이트론 천 하나를 잡아당겨 풀며 이렇게 묻기도 했다. 몸에 잘 붙는 바이트론 천이 포털리 부인의 드레스에 달라붙고 있었다. 

 「그런데 대체 시간 탐사라는 게 뭐예요?」

 그 말이 단단하게 결합되어 있던 포스터의 사고의 사슬을 깨버렸다. 그 바람에 포스터는 쏘아붙이듯이 내뱉었다. 

 「포털리 박사님이 설명해 드릴 겁니다.」

 「그이도 설명해 보려고 했었어요. 그럼요. 하지만 나한테 좀 짜증이 나는 것 같았어요. 그는 그것을 과거의 시간들을 볼 수 있는 거라고 했어요. 그런데 실제로 3차원적으로 과거의 사물을 볼 수가 있는 건가요? 아니면 지금 박사가 사용하는 컴퓨터에서처럼 그저 점무늬로만 나타나는 건가요?」

 포스터는 기분 나쁜 표정으로 자기 핸드 컴퓨터를 쳐다보았다. 그 컴퓨터는 잘 작동되었다. 그러나 모든 동작을 손으로 통제해야 했으며, 그 답들은 코드로만 얻을 수 있었다. 학교 컴퓨터를 사용할 수만 있다면……. 꿈 깨자. 그는 매일 저녁 사무실을 떠날 때마다 겨드랑이에 핸드 컴퓨터를 끼고 나오는 것만으로도 이미 남의 눈에 띄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포스터가 말했다. 

 「저도 시간 탐사기를 직접 본 적은 없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그림을 보면서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거라고 추측하고 있습니다.」

 「그럼 사람들이 이야기 하는 소리도 들을 수 있다는 건가요?」

 「그럴 겁니다.」

 이어 포스터는 반쯤 좌절감에 사로잡혀 말했다. 

 「이것 보세요, 포털리 부인, 꼭 그런 강박감을…….」

 「난 강박감을 느끼지 않아요. 난 여기 앉아서 기다리고 있는 거예요.」

 「기다려요? 뭘요?」

 부인이 차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난 박사가 처음 왔을 때 하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처음으로 포털리와 말했을 때 말이에요. 문간에서 들었지요.」

 「뭐라고요?」

 「그러면 안 된다는 건 알아요. 하지만 난 포털리가 걱정되었어요. 난 포털리가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게 뭔지 알고 싶었어요. 그리고 그때 내가 들었을 때…….」

 부인은 말을 끊고 바이트론 가까이 고개를 숙이고 그것을 살폈다. 

 「뭘 들었는데요, 포털리 부인?」

 「박사가 시간 탐사기를 만들지 못할 거라는 얘기요.」

 「어, 물론 못 만듭니다.」

 「난 어쩌면 박사 마음이 바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포스터는 부인을 노려보며 말했다. 

 「그럼 내가 시간 탐사기를 만들기를 바라면서 여기 내려오신다는 겁니까? 내가 그걸 만들기를 기다리며?」

 「난 박사가 만들기를 바라고 있어요. 오, 정말 그랬으면 좋겠어요.」

 갑자기 부인의 얼굴에서 불투명한 베일이 벗겨진 것 같았다. 부인의 얼굴 모든 부분이 갑자기 분명하고 날카롭게 드러났다. 뺨에 핏기가 돌고, 눈에 생기가 돌았다. 목소리에는 흥분에 가까운 떨림이 있었다. 

 부인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 

 「그런 걸 가지면 멋지잖아요? 과거의 사람들이 다시 살아나는 셈이니까. 파라오들과 왕들과 또…… 그냥 백성들. 난 박사가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포스터 박사. 진심으로…….」

 부인은 자기 말의 강렬함 때문에 목이 메는 것 같았다. 바이트론 천이 무릎으로 떨어지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부인은 일어서서 지하실 계단으로 달려갔다. 포스터는 놀라움과 우울함이 가득한 눈으로 어색하게 달아나는 부인의 뒷모습을 좇고 있었다. 

 

 시간 탐사 일은 포스터의 밤 시간을 깊이 자르고 들어와 잠을 못 이루게 만들었다. 포스터는 생각에 잠겨 고통스럽도록 몸이 굳어졌다. 마치 정신적 소화불량에 걸린 것 같았다. 

 포스터의 밤 시간을 깊이 자르고 들어와 잠을 못 이루게 만들었다. 포스터는 생각에 잠겨 고통스럽도록 몸이 굳어졌다. 마치 정신적 소화불량에 걸린 것 같았다. 

 포스터의 지원금 신청서는 마침내 엉성한 상태로 랄프 니모의 손으로 넘어갔다. 포스터는 신청서에 대해 거의 희망을 갖지 않았다. 포스터는 멍한 상태에서 생각했다. 내 신청서는 승인받지 못할 거야. 

 만일 신청서가 승인받지 못한다면, 물론 그것은 학과내에서 스캔들이 될 것이고 아마 전임강사직에도 재임용되지 못할 터였다. 그것으로 포스터의 학계에서의 인생은 끝장이 날 것이다. 

 그러나 포스터는 걱정하지 않았다. 중성미자, 중성미자, 오직 중성미자뿐이었다. 중성미자의 자취는 갑자기 방향을 틀고 있었다. 그 바람에 포스터는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을 숨을 헐떡이며 쫓아가게 되었다. 심지어 스테르빈스키와 라마르조차도 가보지 않은 길이었다. 

 포스터는 랄프한테 전화를 했다. 

 「랄프 삼촌, 몇 가지가 필요해요. 지금 캠퍼스 밖에서 전화하는 중이에요.」

 「너한테 필요한 것은 의사소통에 대한 강좌야. 난 네 지원서를 알아볼 만한 것으로 만드느라고 지옥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어. 만일 그것 때문에 전화한 것이라면…….」

 포스터는 초조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것 때문에 전화한 게 아니에요. 전 이런 게 필요해요.」

 포스터는 종이에 재빨리 갈겨 쓴 다음에 그것을 수화기 앞에 들어올렸다. 

 랄프가 큰 소리로 투덜거리더니 말했다. 

 「이봐, 내가 도대체 얼마나 많은 속임수를 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삼촌은 구할 수 있잖아요. 그럴 수 있다는 걸 삼촌도 아시잖아요.」

 랄프는 소리 없이 두툼한 입술만 움직여 그 항목들을 다시 읽더니 침울한 표정이 되었다.

 「네가 이 물건들을 조립하게 되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거냐?」

 포스터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늘 하던 대로, 삼촌은 무엇이 나타나든 그것에 대한 대중용 출판의 독점적 권리를 얻게 될 거예요. 하지만 지금은 아무것도 묻지 말아 주세요.」

 「너도 알다시피, 나도 기적은 일으킬 수 없다.」

 「이 기적은 일으키셔야 해요. 반드시 일으켜야 돼요. 삼촌은 과학 작가지 연구자가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삼촌은 그것을 구할 때 아무것도 설명할 필요가 없어요. 삼촌은 친구나 연줄을 가지고 있어요. 그들은 협조해 줄 거예요. 삼촌한테 책을 써달라고 맡길 기회를 얻기 위해서 라도요.」

 「네 믿음에 가슴이 뭉클하구나, 조카야. 한번 해보지.」

 랄프는 성공했다. 재료와 장비는 어느 날 저녁 늦게 자가용 여행차로 운반되었다. 랄프와 포스터는 육체노동에 익숙하지 않은 터라 연신 툴툴거리며 그것들을 안으로 날랐다. 

 랄프가 떠난 뒤 포털리는 지하실 입구에 서 있었다. 포털리가 부드럽게 물었다. 

 「이게 다 뭐요?」

 포스터는 이마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고, 삔 손목을 부드럽게 주무르며 포스터가 말했다. 

 「몇 가지 간단한 실험을 해보고 싶습니다.」

 「정말이오?」

 역사학자의 눈이 흥분으로 반짝거렸다. 

 포스터는 이용당하는 기분이었다. 마치 고삐를 쥔 손에 이끌려 위험한 언덕길을 따라가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 길의 끝에는 파멸이 기다리고 있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열심히 그리고 단호하게 걸어가고 있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열심히 그리고 단호하게 걸어가고 있는 강제의 손길이 바로 자기 자신의 손이라고 느낀다는 점이었다. 

 시작한 것은 포털리였다. 지금 여기 서서 흡족해 하고 있는 것도 포털리였다. 그러나 지금은 포스터 자신이 이 일에 더 매달리고 있었다. 

 포스터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제 프라이버시가 필요합니다, 포털리 박사님. 계속 박사님 부부가 여기로 달려 내려와 날 짜증나게 하도록 내버려둘 수가 없습니다.」

 포스터는 생각했다. 만일 이 말에 포털리가 화가 나서 나를 내쫓겠다면 쫓아내라지 뭐. 그것으로 내가 이 일에 종지부를 찍게 하라지 뭐. 

 하지만 포스터의 마음 깊은 곳에서는 여기서 쫓겨난다고 해서 자기가 그만둘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어쨌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포털리는 불쾌한 기색을 내비치지 않았다. 그의 온화한 눈길은 변함이 없었다. 포털리가 말했다. 

 「물론이오, 포스터박사, 물론이오. 원하는 대로 프라이버시를 누려야 마땅하지.」

 포스터는 포털리가 가는 걸 지켜보았다. 그는 여전히 중성미자의 길을 따라 걸어가도록 혼자 남겨졌다. 묘하게도 그렇게 된 것을 기뻐하고 있었으며, 또 기뻐하는 자신을 미워하고 있었다. 

 포스터는 포털리의 지하실에 있는 간이침대로 가 눈을 붙인 다음 주말을 완전히 그곳에서 보냈다. 

 그 동안에 그의 지원금(랄프가 고쳐 준 신청서에 의해서)이 잠정적으로 승인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학과장이 그 말을 전해 주며 축하해 주었다. 

 포스터는 멍한 표정으로 학과장을 마주보며 중얼거렸다. 

 「잘됐군요. 기쁩니다.」

 그러나 그 말에는 거의 힘이 담겨 있지 않았기 때문에, 학과장은 얼굴을 찌푸리고 말없이 돌아서 버렸다. 

 포스터는 그 문제에 대해 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 사소한 일은 신경 쓸 가치도 없었다. 포스터는 정말 중요한 일을 계획하고 있었다. 그날 저녁에 가장 중요한 테스트를 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어느 날 저녁, 2차, 3차 테스트를 한 뒤, 수척한 모습에 반쯤 제정신이 나간 포스터가 포털리를 불러들였다. 

 포털리는 계단을 내려오다가 집에서 제작한 장치를 둘러보았다. 포털리는 예의 그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전기료가 무척 많이 나왔더군. 비용에 신경 쓴다는 게 아니라, 시에서 물어볼지도 몰라서 하는 말이오. 그런데 뭔가 되어 가는 게 있소?」

 따뜻한 저녁이었지만, 포털리는 목이 꼭 끼는 셔츠에 소매 없는 조끼를 입고 있었다. 속옷만 입고 있던 포스터는 흐릿한 눈을 들어 올리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머지않았습니다, 포털리 박사님. 말씀드릴 게 있어서 내려오시라고 했습니다. 시간 탐사기는 만들 수 있습니다. 물론 작은 것이긴 하지만, 만들 수 있습니다.」 

 포털리는 난간을 움켜쥐었다. 몸에서 힘이 쭉 빠져 나갔다. 포털리는 간신히 소리를 냈다. 

 「여기서 만들 수 있단 말이오?」

 「여기 지하실에서요.」

 포스터가 피곤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럴 수가. 전에 박사가 한 말은…….」

 「제가 전에 무슨 말을 했는지 저도 알고 있습니다.」

 포스터가 짜증스럽게 소리치고는 말을 이었다. 

 「전 만들 수 없다고 했었죠. 당시에는 아무것도 몰랐으니까요. 심지어는 스테르빈스키도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포털리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확실한 거요? 잘못 생각한 건 아니겠지, 포스터 박사? 난 견딜 수 없을 거요, 만일…….」

 「잘못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젠장, 박사님. 만일 이론만 충분했다면, 우린 중성미자의 존재를 처음으로 가정했던 백여 년 전에 이미 시간 탐사기를 만들 수 있었을 겁니다. 문제는, 첫 연구자들이 중성미자를 질량이나 부하가 없기 때문에 찾을 수도 없는 신비의 소립자라고 생각했던 데 있습니다. 그건 단지 경리 장부의 양쪽 계산을 맞추려는 것과 다를 바 없었습니다. 즉 질량과 에너지의 보전 법칙을 지키려 했기 때문에 나온 생각이라는 겁니다.」

 포털리가 그의 말을 알아듣는지 아닌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상관없었다. 그저 말을 한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응고된 생각들에서 이런저런 몇 가지를 좀 뽑아내 숨통을 터줄 필요가 있었으니까. 그렇지만 포털리한테 이야기해 주기 위해서는 배경 설명이 필요했다. 

 포스터는 말을 이어나갔다. 

 「중성미자가 공간·시간의 횡단벽 장벽을 통과한다는 것을 처음 발견한 것은 스테르빈스키였습니다. 중성미자가 공간만이 아니라 시간을 통해서도 여행한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죠. 또한 중성미자를 멈추는 방법을 처음으로 고안한 것도 스테르빈스키였습니다. 스테르빈스키는 중성미자 기록기를 발명하여, 중성미자의 흐름의 패턴을 해석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습니다. 당연히 중성미자의 흐름은 시간을 통과해 가는 동안에 그것이 지나치는 모든 물질에 의해 영향을 받고 방향도 빗나가게 되죠. 그러나 이 빗나간 방향을 분석하는 것이 가능하고, 또 중성미자의 방향에 영향을 준 물질의 상(像)으로 변환하는 것도 가능하죠. 시간 탐사가 가능하게 된 겁니다. 심지어 공기의 떨림도 이런 식으로 찾아내서 소리로 변환시킬 수 있습니다.」

 포털리는 분명히 그 이야기를 듣고 있지 않았다. 포털리가 말했다. 

 「그래, 그래. 그런데 언제 시간 탐사기를 만들 수 있소?」

 포스터가 다급하게 대답했다. 

 「일단 제 말을 다 들어주십시오. 모든 것은 중성미자의 흐름을 찾아내고 분석하는 데 사용하는 방법에 달려 있습니다. 스테르빈스키의 방법은 어렵고 우회적인 것이었습니다. 엄청난 양의 에너지를 필요로 했죠. 하지만 난 이제까지 가중력학, 즉 인공적인 중력장에 대한 학문을 해왔습니다. 인공 중력장에서의 빛의 움직임을 연구하는 것이 제 전공이죠. 그건 새로운 과학입니다. 스테르빈스키는 그것에 대해 전혀 몰랐습니다. 만일 알았더라면, 스테르빈스키는 가중력학을 이용하여 중성미자를 찾는 더 낫고 더 효과적인 방법을 알아낼 수 있었을 겁니다. 스테르빈스키가 아니라 누구라도 그랬을 겁니다. 만일 제가 애초에 중성미자학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있었다면, 저도 당장에 그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을 겁니다.」

 포털리의 얼굴이 약간 밝아졌다. 

 「알겠소. 설사 정부가 중성미자학에 대한 연구를 중단시킨다 할지라도, 다른 과학 분야에서의 발견들이 중성미자학에 반영되는 일을 중단 시킬 수는 없는 거지. 과학에 대한 중앙집권화 된 지도는 그 정도의 효과밖에 없는 거야. 난 오래 전에 그런 생각을 했소, 포스터 박사. 박사가 여기로 일하기 오기 훨씬 전에.」

 「그 점은 축하드립니다. 그러나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아, 내가 한 얘기는 신경 쓸 것 없소. 대답해 주시오, 제발. 언제 시간 탐사기를 만들 수 있소?」

 「전 지금 중요한 이야기를 해드리려고 하고 있습니다, 포털리 박사님. 시간 탐사기는 박사님한테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할 겁니다.」

 바로 이거야. 이렇게 한 방 먹이는 거야. 포스터는 생각했다. 

 포털리는 천천히 계단을 내려와 포스터를 마주보며 섰다. 

 「무슨 뜻이오? 왜 나한테 도움이 안 되오?」

 「박사님은 카르타고를 볼 수 없습니다. 이 말씀은 반드시 드려야겠습니다. 또 이것이 내가 지금까지 긴 얘기를 해온 이유입니다. 박사님은 카르타고를 볼 수 없습니다.」

 포털리는 약간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오, 아니야, 박사가 틀린 거요. 시간 탐사기가 있고, 초점을 제대로 맞추기만 한다면…….」

 「아닙니다, 포털리 박사님. 그건 초점의 문제가 아닙니다. 중성미자의 흐름에 영향을 미치는 무작위적 요인들이 있습니다. 그런 것은 모든 아원자 소립자에 영향을 미치지요. 우린 그것을 불확실성의 원리라고 부릅니다. 중성미자의 흐름이 기록되고 해석될 때, 이 무작위적 요인은 흐릿한 것으로 나타납니다. 통신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쓰는 말로 하자면 ‘잡음’이라고 할 수도 있죠. 시간을 더 멀리 거슬러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이 흐릿함은 더 뚜렷해집니다. 즉 잡음이 더 심해지는 거죠. 얼마 뒤에는 그 잡음이 그림을 아예 망쳐 버리게 됩니다. 이해하시겠습니까?」

 「더 강력한 힘을 쓰면.」

 포털리가 마치 죽은 사람의 목소리 같은 소리로 말했다. 

 「그것도 도움이 안 됩니다. 세부 사항을 확대할 경우 잡음도 따라서 확대됩니다. 태양에 노출된 필름을 확대한다고 해서 알아볼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이 점을 명심하십시오. 우주의 물리적 본성은 반드시 한계를 설정하게 마련입니다. 공기 분자의 무작위적인 운동은 어떤 도구에도 한계를 설정하여, 우리가 찾아낼 수 없는 약한 소리가 존재하게 만듭니다. 빛의 파장이나 전자의 파장의 길이는 어떤 도구에도 한계를 설정하여, 볼 수 없는 아주 작은 물체를 존재하게 만듭니다. 시간 탐사에도 그런 것이 적용됩니다. 시간 탐사로 볼 수 있는 시간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어디가 한계요? 어디가?」

 포스터는 깊은 숨을 쉬며 대답했다. 

 「125년. 그게 최대입니다.」

 「하지만 위원회의 월간 안내서에는 고대사 거의 전반을 다루고 있지 않소.」

 역사학자는 떨리는 목소리로 웃음을 터뜨리며 말을 이었다. 

 「박사가 틀린 거요. 정부는 B.C. 3000년 전의 자료까지 가지고 있소.」

 「언제부터 정부를 믿게 되신 겁니까?」

 포스터가 경멸하는 투로 내뱉고는 말을 이었다. 

 「박사님이 애초에 이런 일을 시작한 것은, 정부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 즉 어떤 역사학자도 시간 탐사기를 이용해 본 일이 없다는 걸 증명하면서부터입니다. 아직도 그 이유를 모르십니까? 현대 역사에 관심을 가진 사람을 제외하면, 어떤 역사학자도 시간 탐사기를 이용할 수 없었던 겁니다. 어떤 시간 탐사기도, 어떤 조건에서도 1920년 이전의 시간은 볼 수가 없습니다.」

 「틀렸어. 박사가 모든 것을 다 알 수는 없어.」

 「그렇다고 진리가 박사님 편의대로 움직여 주는 것은 아닙니다. 직시하십시오. 이 점에 있어서는 정부도 사기만 쳤습니다.」

 「왜?」

 「저도 이유는 모릅니다.」

 포털리의 들창코가 꿈틀거렸다. 눈이 점점 불거지고 있었다. 포털리가 애원했다. 

 「그건 이론일 뿐이오, 포스터 박사. 시간 탐사기를 만들어요. 그걸 만들어서 시험해 봅시다.」

 포스터는 갑자기 포털리의 어깨를 거세게 움켜쥐었다. 

 「내가 만들어 보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내가 모든 방식으로 이 문제를 검토해 보기도 전에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거라고 생각합니까? 난 이미 만들었습니다. 박사님 주위에 있는 이것들이 바로 그겁니다. 보세요!」

 포스터는 전력선에 있는 스위치로 달려갔다. 스위치를 하나씩하나씩 켜나갔다. 이어 저항 장치를 돌리고 손잡이를 조정한 다음, 지하실의 불을 껐다. 

 「기다리십시오. 열을 받아야 하니까.」

 한쪽 벽 중앙 근처에서 작은 불빛이 반짝거렸다. 포털리는 알아들을 수도 없는 말을 중얼댔으나, 포스터는 다시 소리칠 뿐이었다. 

 「보세요!」

 그 불빛이 선명해지면서 밝아지더니, 빛과 어둠의 무늬로 변해 갔다. 남자들과 여자들! 희미했다. 형체들이 번지기 시작했다. 팔과 다리는 그저 줄무늬에 지나지 않았다. 구식의 지상용 차, 뚜렷하진 않았지만, 가솔린에서 동력원을 얻는 내연기관을 사용하던 옛날 차 한 대가 빠르게 지나갔다. 

 포스터가 말했다. 

 「20세기 중반의 어느 곳입니다. 아직 오디오는 연결시킬 수 없기 때문에 소리는 나오지 않습니다. 결국에는 소리도 보탤 수가 있겠죠. 어쨌든, 20세기 중반이 우리가 가볼 수 있는 가장 먼 과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말입니다. 저게 최대로 초점을 잘 맞춘 겁니다.」

 포털리가 대꾸했다. 

 「더 큰 기계를 만들어요. 더 강한 것을. 회로를 개선해 보시오.」

 「이보세요, 그렇다고 해서 불확실성의 원리를 이겨낼 수는 없는 겁니다. 태양에서는 살 수 없듯이 말입니다. 할 수 있는 일에는 물리적인 한계가 있습니다.」

 「거짓말을 하고 있어. 당신 말을 믿지 않을 거야. 난…….」

 그때 새로운 목소리가 들렸다. 그 목소리는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를 이기기 위해 높고 날카롭게 울리고 있었다. 

 「아놀드 포털리! 포스터 박사!」

 젊은 물리학자는 곧 돌아보았다. 포털리 박사는 한동안 그 자리에 얼어붙은 듯 서 있더니, 돌아보지도 않고 말했다. 

 「무슨 일이야, 캐롤라인? 우리를 내버려둬.」

 「안 돼요!」

 캐롤라인은 계단을 내려오며 말을 이었다. 

 「나도 들었어요. 들을 수밖에 없었어요. 이곳에 시간 탐사기가 있는 거지요, 포스터 박사? 여기 이 지하실에?」

 「네, 그렇습니다, 부인. 일종의 시간 탐사기죠. 좋은 건 아닙니다만. 아직 소리도 나오지 못하고 그림도 심하게 번지지만, 작동은 합니다.」

 캐롤라인은 두 손을 꼭 쥐더니 가슴에 바싹 갖다 대고 말했다. 

 「정말 멋져요. 정말 멋져.」

 포털리가 쏘아붙였다. 

 「전혀 멋지지 않아. 이 젊은 바보의 시간 탐사기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시간은 겨우…….」

 「이것 보세요.」

 포스터가 격노하여 맞받아치려 했다. 

 「잠깐만요!」

 캐롤라인이 소리치고는 말을 이었다. 

 「내 말을 들어 봐요. 포털리, 그걸 20년 전까지만 사용할 수 있다면, 우리가 로렐을 다시 볼 수 있다는 걸 모르겠어요? 카르타고니 고대니 하는 게 뭐가 중요해요? 우린 로렐을 볼 수 있어요. 로렐은 우리 앞에서 다시 살아나는 거예요. 그 기계를 이곳에 놓아두세요, 포스터 박사. 그걸 어떻게 작동시키는지 가르쳐 주세요.」

 포스터는 캐롤라인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이어 포털리를 바라보았다. 포털리 박사의 얼굴은 창백해져 있었다. 포털리의 목소리는 작고 평탄했지만, 어쩐지 차분함은 사라진 것 같았다. 

 「당신은 바보야!」

 캐롤라인이 힘없이 말했다. 

 「포털리!」

 「당신은 바보란 말이야. 대체 뭘 보겠다는 거야? 과거. 죽은 과거. 로렐이 자기가 하지 않았던 일을 하기라도 할 것 같아서 그러는 거야? 당신이 보지 못했던 일을 한 가지라도 볼 것 같아서 그러는 거야? 당신이 아무리 보아도 결코 자라나지 않을 아기를 보면서, 그 삼년간을 계속 되풀이해 살 작정이야?」

 포털리의 목소리는 쉬어 버릴 것 같았으나, 아슬아슬하게 유지되고 있었다. 포털리는 캐롤라인에게 다가서더니, 어깨를 붙들고 거칠게 흔들며 말을 이었다. 

 「당신이 그러면 당신한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아? 당신은 미쳐버릴 거야. 그럼 그들이 당신을 데려가게 될 거야. 그래, 미쳐. 당신 정신치료 받고 싶어? 당신 혼자 갇혀서 심리 조사를 받고 싶은 거야?」

 캐롤라인은 포털리의 팔을 뿌리쳤다. 

 그녀에게는 이제 부드러움이나 모호함은 흔적도 찾아볼 수 없었고, 갑자기 표독스럽게 변해 버렸다. 

 「난 내 아이를 보고 싶어요, 포털리. 그 애는 저 기계 속에 있고, 난 그 애를 보고 싶어요.」

 「로렐은 기계 속에 있지 않아. 이미지일 뿐이야. 이해 못하겠어? 이미지라고! 현실이 아니라고!」

 「난 내 아이를 원해요. 내 말 들었어요?」

 캐롤라인은 포털리에게 달려가 소리를 지르며 주먹을 휘둘렀다. 

 「난 내 아이를 원한다고요.」

 역사학자는 그 분노에 찬 기습에 뒤로 물러서며 소리를 질렀다. 포스터가 그들 사이에 끼어들었다. 그러자 캐롤라인은 바닥에 주저앉으며 울부짖기 시작했다. 

 포털리는 고개를 돌리더니, 필사적으로 눈으로 뭔가를 찾았다. 포털리는 갑자기 몸을 움직여 레버를 하나 움켜쥐더니 그것을 지지대에서 떼어내 휘둘러 댔다. 정신이 멍해진 포스터가 뒤늦게 막으려 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포털리가 헐떡거리며 말했다. 

 「뒤로 물러나! 아니면 널 죽여 버릴 거야. 농담이 아냐.」

 포털리가 막대기를 힘껏 휘두르는 바람에 포스터는 펄쩍 뛰어 뒤로 물러섰다. 포털리는 격노한 눈빛으로 지하실에 있는 구조물을 빙 둘러보았다. 포스터는 첫 유리가 깨지는 소리를 들은 뒤,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 

 포털리는 분이 다 풀리자, 파편과 부서진 조각들 사이에 말없이 서 있었다. 손에는 여전히 막대기를 들고 있었다. 포털리가 작은 소리로 포스터에게 말했다. 

 「당장 여기서 나가! 절대 돌아오지 마! 이 작업을 하다가 든 돈이 있거든 나한테 계산서를 보내. 그럼 지불할 테니까. 두 배로 지불해 주겠어.」

 포스터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셔츠를 집어 들고 지하실 계단을 올라갔다. 캐롤라인의 울음소리가 크게 들렸다. 계단 위에서 포스터는 마지막으로 뒤돌아보았다. 포털리 박사가 부인 위로 허리를 숙이고 있었다. 박사의 얼굴에는 슬픔 때문에 경련이 일었다. 

 

 이틀 후, 학교 일이 끝날 때쯤, 포스터는 지친 표정으로 새롭게 승인 받은 그의 프로젝트 자료들 가운데 집으로 가져가야 할 것이 없나 주위를 훑어보고 있었다. 그때 포털리 박사가 나타났다. 포털리 박사는 포스터의 연구실 열린 문간에 서 있었다. 

 역사학자는 평소와 다름없이 말쑥하게 옷을 입고 있었다. 포털리는 손을 들어올렸다. 그것은 인사라고 하기에는 너무 희미했고, 애원이라고 하기에는 별 효과가 없었다. 포스터는 무표정한 얼굴로 포털리를 응시했다. 

 포털리가 말했다. 

 「난 다섯 시까지 기다렸소. 박사가 다 끝날 때까지……. 들어가도 괜찮겠소?」

 포스터는 고개를 끄덕였다. 

 포털리가 말했다. 

 「내 행동에 대해 사과를 해야 할 것 같소. 난 그때 엄청나게 실망했었소. 나 자신을 제대로 통제할 수가 없었소. 아직도 그건 변명의 여지가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오.」

 「사과를 받아들이겠습니다. 그뿐입니까?」

 「아마 내 아내가 전화를 했을 거요.」

 「네, 했습니다.」

 「아내는 아주 히스테리컬한 상태였소. 아내가 전화를 했다고 얘기했지만, 정말 그랬는지 알 수 없어서…….」

 「전화를 하셨습니다.」

 「아내가 뭘 원했는지 말해줄 수…… 꼭 좀 말해 주겠소?」

 「시간 탐사기를 원하셨습니다. 부인 개인 돈이 있다고 하시더군요. 돈을 내겠다고 하셨습니다.」

 「혹시, 어떤 약속을 했소?」

 「난 제조업계에서 일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잘했소.」

 포털리가 안도의 한숨을 쉬는 바람에 가슴이 넓게 늘어났다. 포털리가 말을 이었다. 

 「아내 전화는 받지 말아 주시오. 아내는…… 별로…….」

 「이것 보세요, 포털리 박사님. 난 집안싸움에는 끼어들 생각이 없습니다. 하지만 박사님은 뭔가 각오를 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시간탐사기는 누구라도 만들 수 있습니다. 에테르 판매센터를 통해 몇 가지 간단한 부품만 구입하면, 가내 작업장에서도 만들 수 있습니다. 적어도 비디오 부분은 말입니다.」

 「하지만 박사 외에는 어느 누구도 그런 생각을 못할 것 아니겠소? 또 이제까지 아무도 하지 않았고.」

 「난 그것을 비밀로 간직할 생각은 없습니다.」

 「하지만 출판할 수는 없을 것 아니오. 그건 불법적 연구니까.」

 「그건 더 이상 중요하지 않습니다, 포털리 박사님. 내 지원금을 잃게 된대 해도 신경 쓰지 않을 겁니다. 대학에서 불쾌하게 생각한다면, 사직하면 그만입니다. 그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러며 안 되오.」

 「이제까지 박사님은 내가 지원금과 자리를 잃을 위험을 무릅쓰는 데 대해 전혀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왜 이제 와서 그렇게 생각해 주게 된 겁니까? 한 가지 설명을 해드리죠. 처음 박사님이 날 찾아왔을 때 난 조직화되고 지도받는 연구에 대해 신뢰하고 있었습니다. 즉 현존하는 상황을 말입니다. 난 박사님을 지적 무정부주의자라고 생각했습니다, 포털리 박사님. 그리고 위험하다고 생각했지요. 하지만 한두 가지 이유 때문에, 이제 몇 달 동안에 나 자신이 무정부주의자가 되어 버렸고, 또 커다란 것을 이룩해 냈습니다. 

 그런 걸 이룩하게 된 것은 내가 뛰어난 과학자라서가 아닙니다. 절대 아닙니다. 그것은 과학 연구가 위에서부터 지도되어 왔기 때문이고, 남겨진 구멍들은 올바른 방향을 보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메꿀 수 있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만일 정부가 적극적으로 막으려고만 하지 않았더라면, 누구라도 올바른 방향을 볼 수 있었을 겁니다. 

 이제 날 이해하려고 해보십시오. 난 아직도 지도받는 연구가 유용하다고 믿고 있습니다. 난 완전한 무정부 상태는 찬성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중간 지대가 존재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지도되는 연구도 유연성을 가질 수 있습니다. 과학자가, 적어도 여가 시간에는, 자신의 호기심을 만족시키는 연구를 하는 게 허용되어야 합니다.」

 포털리는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붙임성 있게 말했다. 

 「이 문제를 의논해 봅시다, 포스터 박사. 난 박사의 이상주의를 높이 평가하오. 박사는 젊소. 박사는 달을 원하고 있소. 하지만 무엇무엇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공상 때문에 자신을 망칠 수는 없는 거요. 난 당신을 그런 곳으로 끌어들였소. 나는 이 일에 책임이 있고, 그 때문에 나 자신을 몹시 질책하오. 난 감정적으로 행동했소. 카르타고에 대한 관심 때문에 눈이 멀었던 거요. 난 완전한 바보였소.」

 포스터가 끼어들었다. 

 「이틀 만에 완전히 변했단 말입니까? 카르타고도 이젠 아무것도 아닙니까? 정부의 연구에 대한 탄압도 아무것도 아닙니까?」

 「나 같은 완전한 바보도 경험을 통해 배울 수는 있는 거요. 내 아내는 나에게 뭔가를 가르쳐 주었소. 이제 난 정부가 중성미자학 연구를 금지시키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소. 이틀 전까지만 해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이해할 뿐만 아니라, 인정하오. 박사도 내 아내가 지하실에서 시간 탐사기라는 말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보았잖소. 난 시간 탐사기가 연구 목적으로 이용될 것으로 생각했소. 그러나 아내가 생각한 것은 오로지 중성미자학을 통해, 개인적 과거, 죽은 과거로 돌아가 개인적 즐거움을 누리는 거였소. 순수한 연구자는 소수요. 내 아내 같은 사람들이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게 될 거요. 

 정부가 시간 탐사를 허용하게 되면 모든 사람들의 과거가 눈에 보이게 될 거요. 정부 관리들은 협박과 부당한 압력에 시달리게 되겠지. 도대체 완벽하게 깨끗한 과거를 가진 사람이 어디 있겠소? 그럼 조직화된 정부는 존재할 수 없게 될 거요.」

 포스터가 입술을 한번 핥고 나서 말했다. 

 「어쩌면 정부는 자신의 눈에만 그럴듯해 보이는 합리화를 하고 있는지도 모르지요. 그러나 이것은 중요한 원칙의 문제입니다. 과학자들은 꼭꼭 막힌 채 좁은 길만 걸어가고 있기 때문에, 다른 과학적 진전이 좌절당하고 있다는 것도 모르고 있습니다. 설사 시간 탐사기가 몇몇 정치가들에게는 공포를 가져다준다 해도, 그것은 치러야만 하는 대가입니다. 대중은 과학이 자유로워야 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하며,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내가 발견한 것을, 이런 식이든 저런 식이든, 합법적이든 불법적이든, 출판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습니다.」

 포털리의 이마는 땀으로 축축했지만, 목소리는 여전히 차분했다. 

 「아, 단지 몇몇 정치가들만이 아니오, 포스터 박사. 그렇게 생각하지 마시오. 그것은 나에게도 공포가 될 수 있소. 내 아내는 우리 죽은 딸과 함께 시간을 보낼 거요. 계속 현실로부터 멀어져 갈 것이오. 똑같은 장면을 되풀이해 사느라 미쳐 버릴 거요. 또 나만의 두려움은 아니오. 내 아내 같은 사람들이 또 있을 거요. 아이들은 자기들의 죽은 부모나 자기들의 어린 시절을 찾아다닐 것이오. 이 세상은 과거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로 가득할 것이오. 그건 한여름의 광이요.」

 「도덕적 판단이 방해가 될 수는 없습니다. 역사상 모든 과학의 진전은 늘 인류의 교묘한 재간에 의해 왜곡되고 말았습니다. 이제 인류는 그런 것을 막을 교묘한 재주도 가져야만 합니다. 시간 탐사기에 대해 말하자면, 박사님이 말씀하시는 과거를 찾는 사람들은 금방 지쳐버릴 겁니다. 아이들은 자기들이 사랑하는 부모가 했던 일들을 보게 될 것이지만, 곧 그런 데 식상할 겁니다. 어쨌든 그런 건 모두 사소한 것입니다. 나에게는, 이것이 중요한 원칙의 문제일 뿐입니다.」

 「박사의 원칙은 포기하시오. 그 원칙만 이해할 게 아니라 사람들을 좀 이해할 수는 없는 거요? 내 아내가 우리 아기를 죽인 불길 속에서 살아갈 거라는 걸 이해 못하시오? 아내는 어쩔 수가 없을 거요. 난 내 아내를 알아요. 아내는 한 걸음 한 걸음 그 안으로 따라 들어갈 것이오. 그 불길을 막으려고 하면서. 계속 되풀이해서 그 시간을 다시 살 거요. 매번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면서. 도대체 몇 번이나 로렐을 죽이고 싶은 거요?」

 포털리의 목소리는 약간 쉬어 있었다. 

 포스터의 마음속에 문득 한 가지 떠오르는 게 있었다. 

 「부인께서 찾아낼까 봐 두려워하고 있는 게 대체 뭐죠, 포털리 박사님? 불이 나던 날 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역사학자의 두 손이 재빨리 얼굴로 올라갔다. 메마른 울음소리가 터져 나오면서 두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포스터는 고개를 돌리고, 불편한 마음으로 창밖을 내다보았다. 

 포털리가 한참 후 말했다. 

 「그 생각을 안 한 지가 꽤 오래 되었소. 캐롤라인은 나가고 없었지. 난 아기를 보고 있었소. 저녁 때, 난 혹시 로렐이 이불을 걷어차지나 않았나 하고 아기방으로 갔소. 담배를 손에 들고……. 당시 난 담배를 피웠소. 난 틀림없이 옷장 위에 있는 재떨이에 담배를 비벼 껐소. 언제나 조심했으니까. 아기는 괜찮았소. 난 거실로 돌아와, 비디오 앞에서 잠이 들었소. 갑자기 숨이 막혀 내가 잠에서 깨었을 때는 사방이 불길이었지. 어떻게 불이 났는지 모르겠소.」

 「하지만 담배 때문에 불이 났다고 생각하는 것 아닙니까? 단 한 번, 깜빡 잊고 끄지 않은 담배 때문에?」

 「모르겠소. 난 로렐을 구하려고 했지만, 밖에 나왔을 때 로렐은 내 품안에서 죽어 있었소.」

 「담배에 대해서는 부인한테 한 번도 얘기하지 않았겠군요.」

 포털리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하지만 난 그것을 가슴에 안고 살아왔소.」

 「이제서야, 시간 탐사기의 도움으로 부인께서 그걸 알아내시겠군요. 어쩌면 그건 담배 때문이 아니었는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담뱃불을 완전히 껐는지도 모르지요. 그것도 가능하지 않습니까?」

 포털리의 눈에 약간 내비치던 눈물은 다 말라 있었다. 불그스름한 자국도 사라지고 없었다. 포털리가 말했다. 

 「모험을 할 수는 없소. 하지만 그것은 단지 나에게만 해당하는 문제는 아니오, 포스터. 과거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두려움의 요소를 가지고 있소. 인류 앞에 그 두려움을 풀어 놓지 마시오.」

 포스터는 방 안을 걷기 시작했다. 이것이 포털리가 그렇게 고집스럽고 비이성적으로 카르타고인들을 지지하고 싶어 하는 이유, 카르타고인들을 신성시하고, 무엇보다도 그들이 몰록에게 화제(火祭)를 드렸다는 이야기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이유를 설명해 주는 것 같았다. 불로 아기를 죽였다는 죄로부터 카로타고인들을 해방시켜 줌으로써, 상징적으로 포털리 역시 같은 죄로부터 자유롭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로 하여금 시간 탐사기를 만들도록 몰아붙였던 그 불이 이제는 또 그것을 파괴하도록 몰아붙이고 있다는 게 아이러니였다. 

 포스터는 슬픈 표정으로 나이든 역사학자를 바라보았다. 

 「박사님 입장은 알겠습니다. 하지만 이건 개인적인 감정을 넘어선 문제입니다. 우리는 과학의 목구멍을 틀어막고 있는 이 뚜껑을 부수어 버려야만 합니다.」

 포털리가 거칠게 내뱉었다. 

 「발견에 뒤따르는 명성과 부를 원한단 얘기로군.」

 「글쎄, 꼭 그 때문은 아니지만 아마 그것도 한 이유일 것 같습니다. 난 평범한 인간이니까요.」

 「박사의 지식을 억누를 수 없다는 거로군.」

 「절대로요.」

 「음, 그렇다면…….」

 역사학자는 일어서서 잠시 선 채로 포스터를 노려보았다. 

 포스터는 이상한 공포감을 느꼈다. 포털리는 포스터보다 나이도 많고 몸집도 작고 더 약했다. 무장을 한 것 같지도 않았다. 그러나…….

 포스터가 말했다. 

 「만일 박사님이 나를 죽인다든가 하는 미친 짓을 생각하고 있다면, 시간 탐사기에 관련된 정보들을 안전금고에 보관하고 있다는 것을 말씀드려야겠군요. 또 내가 만약 사라지거나 죽는 경우에 사람들이 그걸 볼 수 있도록 해놓았다는 것도 말씀드려야겠군요.」

 「어리석은 소리 마시오.」

 그 말과 함께 포털리는 방을 나갔다. 

 포스터는 문을 닫아걸고 앉아 생각에 잠겼다. 어리벙벙한 기분이었다. 물론 은행 안전금고에 갖다 놓은 문서 같은 것은 업었다. 평상시 같으면 그런 멜로드라마 같은 짓을 할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멍청해지는 기분을 느끼면서, 포스터는 한 시간 동안 가중력 광학을 중성미자 기록에 적용시키는 공식을 작성하고, 시간탐사기 제작에 필요한 세부 사항에 대한 그림들을 그렸다. 포스터는 그것을 봉투에 넣어 봉한 다음 겉면에 랄프 니모의 이름을 썼다. 

 포스터는 불안한 마음으로 밤을 보낸 다음, 다음날 아침 학교로 가는 길에 은행에 들러 봉투를 맡겼다. 직원한테 그 봉투를 처리할 방법을 설명하자, 직원은 죽은 뒤 금고 상자를 개봉하도록 허가하는 문서에 서명할 것을 요구했다. 

 포스터는 랄프한테 전화를 걸어 봉투 얘기를 했다. 무엇이 들었느냐는 질문에 성질을 부리며 대답하지 않았다. 

 포스터는 그때만큼 자의식을 강하게 느껴 본 적이 없었다. 

 

 그날 밤 그리고 그 다음날 밤, 포스터는 잠깐씩밖에 눈을 붙이지 못했다. 비윤리적으로 얻은 자료를 출판한다는 아주 실제적인 문제와 계속 맞서고 있었다. 

 포스터가 가장 잘 알고 있는 잡지인 《가중력학 회보》는 ‘이 논문에 서술된 작업은 국제연합 연구위원회의 지원 자료 몇 번에 의해 가능했습니다.’라는 주석이 붙지 않은 논문에는 손도 안 댈 것이 틀림없었다. 《물리학 저널》은 더군다나 말할 것도 없었다. 

 센세이션을 일으키기 위해서라면 글의 성격 같은 것은 문제 삼지 않는 작은 잡지들이 있긴 했으나, 그렇게 하려면 약간의 금전적 협상이 필요한데, 그것은 망설여졌다. 전반적으로 볼 때, 차라리 학자들 사이에 무작위적으로 배포될 수 있는 작은 소책자를 출판하는 것이 가장 나을 것 같았다. 그런 경우라면, 심지어 과학 작가의 도움도 필요 없을 것 같았다. 출판을 빨리하기 위해서라면 세련된 문장은 희생해도 괜찮았으니까. 믿을만한 인쇄업자를 찾기만 하면 되었다. 랄프 삼촌이 그런 사람을 알고 있을 것이다. 

 포스터는 그의 연구실로 향하는 복도를 걷고 있었다. 

 ‘시간을 더 낭비해 가면서 결정을 못 내리고 우왕좌왕하지 않으려면, 차라리 위험을 무릅쓰고 연구실 전화로 랄프 삼촌한테 전화를 거는 게 나을지도 몰라.’

 포스터는 자기 생각에 워낙 몰두해 있었기 때문에, 옷장에서 책상으로 걸어갈 때까지도 연구실에 사람이 있다는 것을 눈치 채지 못했다. 

 포털리 박사가 거기에 있었다. 포스터가 모르는 사람과 함께.

 포스터가 두 사람을 노려보며 물었다. 

 「무슨 일입니까?」

 포털리가 대답했다. 

 「미안하오. 하지만 박사를 저지시켜야만 했소.」

 포스터가 계속 노려보며 말했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이번에는 낯선 사람이 대답했다. 

 「내 소개를 좀 해겠소.」

 그는 고르지 못한 큰 이빨을 가지고 있었는데, 웃음을 짓자 그게 두드러져 보였다. 그가 말을 이었다. 

 「난 시간 탐사과 과장인 새디어스 아라만이오. 내가 여기 온 것은, 아놀드 포털리 교수가 나한테 말해 주고, 또 우리 자신의 정보원들에 의해 확인된 정보 때문…….」

 포털리가 숨 가쁘게 말했다. 

 「다 내가 책임지겠다고 했소, 포스터 박사. 내가 박사의 의지에 반해 박사를 비윤리적인 행위를 하도록 설득했다고 말했소. 난 모든 책임을 지고 처벌을 달게 받겠다고 했소. 난 박사한테 어떤 식으로든 해를 끼치고 싶지 않소. 단지 시간 탐사가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뿐이오!」

 아라만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분 말대로, 이분이 모든 책임을 졌소, 포스터 박사. 하지만 이 일은 이제 이분의 손을 벗어났소.」

 「그래서요? 이제 어쩌려는 겁니까? 내 연구 지원금이 끊기도록 압력을 넣겠다는 겁니까?」

 「그것은 내 권한이오.」

 아라만이 말했다. 

 「나를 해고시키라고 대학에 명령하겠다는 겁니까?」

 「그것도 내 권한이오.」

 「좋습니다, 그렇게 하십시오. 이미 그렇게 되었다고 생각하십시오. 난 지금 당신들과 함께 이 연구실을 떠날 테니까. 책들은 나중에 사람을 시켜 찾겠습니다. 아니, 굳이 원한다면 책들도 다 놓고 가겠습니다. 됐습니까?」

 「아직 안 됐소. 시간 탐사에 대한 더 이상의 연구를 하지 않고, 시간 탐사에 대해 발견한 것은 어떤 것도 출판하지 않으며, 물론 시간 탐사기를 만들지도 않겠다고 약속해야 하오. 그 약속을 지키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당신은 불특정 감시를 받게 될 것이오.」

 「내가 약속하지 않겠다면? 그럼 어쩌겠습니까? 내 분야에서 벗어난 연구를 하는 것이 비윤리적일지는 모르지만, 그렇다고 형사상의 범죄는 아닙니다.」

 아라만이 참을성 있게 말을 받았다. 

 「시간 탐사기의 경우에는, 젊은 친구, 그건 형사상의 범죄요. 필요하다면, 당신을 감옥에 가두어 둘 수도 있소.」

 「왜요? 시간 탐사가 무슨 대단한 마술이기래?」

 「그냥 그렇소. 우린 그 분야에서 더 이상의 발전을 허용할 수 없소. 내가 하는 일이 일차적으로 그것을 막는 일이고, 또 난 내일을 할 생각이오. 불행하게도, 나나 우리 부서의 누구도, 가중력 광학이 시간 탐사에 그렇게 직접적으로 응용될 수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소. 당신 외에 다른 사람들이 모른다는 건 확실하지만, 앞으로는 가중력학 분야에서의 연구도 적절한 방향을 잡도록 할 것이오.」

 「그래 봤자 소용없을 겁니다. 당신이나 나나 꿈꾸지도 못했던 어떤 다른 것이 또 시간 탐사에 응용될 겁니다. 모든 과학은 서로 연관되어 있습니다. 하나의 덩어리죠. 만일 그 가운데 한 부분의 발전을 막고 싶다면 그 모든 것을 다 막아야 할 겁니다.」

 「그건 이론적으로는 맞는 말이오. 하지만 실제적인 면에서 우리는 이제까지 시간 탐사를 50년 전 스테르빈스키의 수준으로 유지하는데 성공해 왔소. 이제 당신을 적절한 시기에 잡았기 때문에, 포스터 박사, 우린 앞으로도 계속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하오. 그리고 만일 내가 포털리 박사를 액면 가치 이상의 존재로 여겼더라면, 이렇게 재난에 근접하는 상황도 발생하지 않았을 거요.」

 아라만은 포털리를 바라보며 눈썹을 치켜 올리고 짐짓 겸손한 태도를 가장해 말했다. 

 「박사님,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박사님을 그저 일개 역사학 교수로만 보고 보내 버린 게 유감입니다. 내가 일을 제대로 해서 박사님에 대해 확인했더라면, 이런 일은 생기지 않았을 텐데.」 

 포스터가 갑자기 화제를 바꾸었다. 

 「정부의 시간 탐사기는 아무도 사용하지 못합니까?」

 「어떤 명분으로도, 우리 과 외부사람은 사용하지 못하오. 이미 당신이 그 정도는 추측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얘기해 주는 거요. 하지만 경고해 두는데, 내가 지금 한 얘기를 다른 데서 반복하면 그건 윤리적인 게 아니라 형사적인 범죄가 되오.」

 「그곳의 시간 탐사기는 125년 정도 이상은 거슬러 올라가지 못하지 않습니까?」

 「맞는 말이오.」

 「따라서 당신네 보고서에 나오는 고대의 시간 탐사 이야기는 날조된 거지요?」

 아라만이 차갑게 말했다. 

 「당신이 지금 가지고 있는 지식으로 볼 때, 당신도 그 사실을 안다는 건 분명하오. 그러나 내가 직접 당신 말을 확인해 드리지. 월간 보고서는 날조된 것이오.」

 「그렇다면, 난 시간 탐사에 대한 내 지식을 눌러 버리겠다는 약속을 안 하겠습니다. 날 체포하고 싶다면, 그렇게 하십시오. 재판을 받을 때 날 변호하는 것만으로도 지도되는 연구라는 사악한 종이집은 파괴되어 완전히 무너지고 말 테니까. 연구를 지도하는 것과 연구를 억압하여 인류에게서 그 이익을 박탈하는 것은 완전히 별개의 문제입니다.」

 「아, 한 가지 분명히 해둡시다, 포스터 박사. 당신이 협조하지 않으면, 당신은 곧장 감옥으로 가게 되오. 당신은 변호사를 보지 못할 것이고, 영장도 제시받지 않을 것이고, 재판도 받지 않을 것이오. 그냥 감옥에 있게 되는 것이오.」

 「아니, 그럴 수가. 허풍떠는 것 아닙니까? 지금은 20세기가 아니란 말입니다.」

 연구실 바깥에서 뭔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발자국소리, 높은 고함소리가 틀림없었다. 갑자기 문이 쾅 열리면서 자물쇠가 튕겨 나갔다. 세 사람이 몸을 겹친 채 쓰러질 듯 안으로 들어왔다. 

 이어 한 남자가 우주총을 들어 올리더니, 총부리로 다른 한 사람의 머리를 내리쳤다. 숨이 멎는 듯한 소리가 들리더니, 머리를 맞은 사람의 몸이 축 늘어졌다. 

 「랄프 삼촌!」

 포스터가 소리쳤다. 

 아라만이 얼굴을 찌푸리며 명령했다. 

 「의자에 앉히고 물을 좀 갖다 줘.」

 잠시 후 랄프 니모는 조심스럽게 혐오감을 표시하며 머리를 손으로 문질렀다. 랄프가 말했다. 

 「거칠게 굴 필요는 없잖소, 아라만.」

 「경비병이 좀 더 일찍 거칠게 굴어서 당신을 이런 데 못 끼게 했어야 하는 건데, 랄프. 그랬더라면 당신은 지금 잘살고 있을 텐데.」

 「둘이 아는 사입니까?」

 포스터가 물었다. 

 「아는 사이지.」

 랄프가 여전히 머리를 문지르며 말을 이었다. 

 「이 사람이 네 연구실에 있는 걸 보니, 넌 곤경에 처한 게 틀림없구나, 포스터.」

 「곤경에 처한 건 당신도 마찬가지야.」

 아라만이 화난 목소리로 말했다. 

 「난 포스터 박사가 중성미자학 문헌에 대해 당신한테 자문을 구했다는 것을 알고 있어.」

 랄프는 이마에 주름을 잡더니, 그렇게 하는 게 아프기나 한 것처럼 움찔하면서 주름을 폈다. 랄프가 대꾸했다. 

 「그래서? 당신이 나에 대해 또 아는 게 뭐요?」

 「곧 당신에 대한 모든 걸 알게 될 거요. 그때까지는, 지금 이 사건 하나만으로도 당신을 함께 엮을 수가 있소. 여기서 뭐하고 있는 거요?」

 랄프는 예의 그 명랑한 태도를 얼마간 회복하여 대답했다. 

 「친애하는 아라만 박사. 어제, 내 이 멍청이 같은 조카가 나한테 전화를 했소. 어떤 신비한 정보를…….」

 「말하지 마세요! 아무것도 말하지 말아요!」

아라만이 포스터를 차갑게 노려보며 말했다. 

 「우린 그것에 대해 다 알고 있소, 포스터 박사. 이미 안전금고 상자를 열어 내용물을 없앴소.」

 「하지만 어떻게 그걸…….」

 분노와 절망감이 뒤섞인 포스터의 목소리는 희미해졌다. 

 랄프가 끼어들었다. 

 「어쨌든, 난 이 애 주변에 그물이 좁혀지는 게 틀림없다고 판단했소. 그래서 몇 가지 일을 처리한 다음, 이 애한테 지금 하고 있는 일을 그만두라고 말해주러 왔소. 그건 이 애 경력과 바꿀 가치가 없는 일이라고.」

 「그러니까 포스터 박사가 뭘 하고 있는지 안다는 뜻이로군?」

 「이 애는 한 번도 나한테 얘기하지 않았소. 하지만 난 엄청난 경험을 가진 과학 작가요. 난 원자의 어느 쪽이 전자화 하는지 아는 사람이란 말이오. 내 조카 포스터는 가중력 광학을 전공했고, 나한테 그걸 가르쳐주기도 했소. 포스터는 나한테 중성미자학에 대한 교과서를 얻어달라고 했는데, 난 포스터한테 넘겨주기 전에 그걸 대충 훑어봤소. 나도 둘 더하기 둘 정도는 할 줄 아는 사람이오. 포스터는 나한테 어떤 물리학 장비를 갖다 달라고 했소. 그것도 증거가 되었소. 내 말이 틀렸다면 틀렸다고 말해 주시오. 내 조카는 운반도 가능한, 저전력 시간 탐사기를 만들고 있었던 거요. 맞소, 아니면…… 맞소?」

 「맞소.」

 아라만은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담배를 하나 뺐다. 포털리 박사가 옆에 있다는 것도 개의치 않았다. 마치 꿈속인 듯 말없이 지켜보고만 있던 포털리 박사는 숨을 헐떡이며 그 하얀 원통에서 고개를 돌려 버렸다. 아라만이 말했다. 

 「내가 또 하나 실수를 했군. 자리를 내놓아야겠는걸. 포털리와 포스터뿐만 아니라 랄프 당신도 감시를 했어야 하는 건데. 물론 나한테는 시간이 많지 않았고, 덕분에 당신이 여기까지 온 거지만, 그래도 나로서는 변명의 여지가 없지. 당신도 체포요, 랄프.」

 「무슨 이유로?」

 과학 작가가 따져 물었다. 

 「허가받지 않은 연구.」

 「난 아무것도 한 게 없소. 난 등록된 과학자가 아니기 때문에, 연구를 할 수도 없소. 그리고 설사 내가 그랬다 해도, 그게 형사상의 범죄는 아니오.」

 포스터가 거칠게 내뱉었다. 

 「소용없어요, 랄프 삼촌. 이 관료는 자기 마음대로 법을 만드니까.」

 「어떤 식으로?」

 랄프가 물었다. 

 「재판도 없이 무기징역에 처하는 식으로요.」

 「그럴 수가. 지금은 20세기가…….」

 「그 말도 했어요. 신경도 안 쓰던데요.」

 「그럴 수가.」

 랄프는 소리치고는 말을 이었다. 

 「이것 봐요, 아라만. 알다시피, 내 조카와 나에게는 계속 연락하고 지내는 친척들이 있소. 아마 여기 이 교수도 그럴 거요. 따라서 당신은 우리를 그냥 사라지게 할 수는 없소. 질문들이 쏟아지고 소문들이 떠돌거요. 지금은 20세기가 아니란 말이오. 따라서 당신이 우리를 겁주려 해도 아무 소용없소.」

 아라만은 담배를 거칠게 던져 버리고 말을 이었다. 

 「젠장.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군. 전에는 이런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이것 봐! 당신들 세 바보는 자신들이 무얼 하는지도 모르고 있소.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단 말이오. 내 말을 들어 보겠소?」

 「아, 듣고말고.」

 랄프가 거칠게 말했다. 

 포스터는 화난 눈으로 입을 꼭 다물고 말없이 앉아 있었다. 포털리의 손은 서로 꼬인 두 마리 뱀처럼 비비 꼬여 있었다. 

 아라만이 말했다. 

 「당신들한테 과거는 죽은 과거요. 만일 입장을 바꾸어 당신들 가운데 누가 이 문제를 거론했다면, 나머지 사람들도 틀림없이 그런 말을 사용했을 거요. 죽은 과거. 내가 그 두 마디 말을 얼마나 많이 들었는지 당신들이 안다면, 당신들은 숨이 막혀 버릴 거요.

 사람들이 과거에 대해 생각을 할 때, 그들은 과거를 죽은 것으로 생각하오. 멀리, 오래 전에 지나가 버린 것으로. 우린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도록 권장하오. 우린 시간 탐사에 대한 보고서를 낼 때, 늘 수백 년 전 과거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소. 당신들은 이제 125년 이상 된 과거를 보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말이오. 하지만 사람들은 우리가 말하는 것을 받아들이오. 과거란 그리스, 로마, 카르타고, 이집트, 석기시대를 의미하오. 오랫동안 죽어 있는 상태일수록, 더 나은 거요.

 이제 당신 셋은 백여 년 정도가 한계라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그럼 과거가 당신들한테 무슨 의미를 갖게 되는 거요? 당신의 젊음, 당신의 첫딸, 당신의 죽은 어머니, 20년 전, 30년 전, 50년 전, 오래 전에 사라진 것일수록 더 좋겠지. 하지만 과거란 것이 진짜 언제 시작되는 거요?」

 아라만은 분노에 차 말을 끊었다. 다른 사람들은 아라만을 바라보았다. 랄프는 불편한 듯 몸을 뒤척였다. 아라만이 말을 이었다. 

 「그래, 언제 시작하는 거요? 5분 전? 1초 전? 과거란 것이 한 순간 전에 시작된다는 건 분명한 것 아니오? 죽은 과거란 살아 있는 현재의 또 다른 이름에 불과할 뿐이지. 시간 탐사기로 1백분의 1초 전의 과거에 초점을 맞춘다면 어떻게 되겠소? 현재를 보게 되는 게 아닐까? 현재가 함몰하기 시작하는 게 아닐까?」

 랄프가 중얼거렸다. 

 「젠장.」

 「젠장.」

 아라만이 흉내를 내더니 말을 이었다. 

 「포털리가 어젯밤에 나를 찾아와 이야기를 한 뒤에, 내가 어떻게 당신 둘을 확인했다고 생각하오? 시간 탐사기로 그렇게 했소. 현재의 바로 그 순간에 이르는 중요한 순간들을 포착했지.」

 「그래서 안전금고에 대해 알게 된 거로군요?」

 포스터가 말했다. 

 「그리고 다른 모든 중요한 사실에 대해. 이제 우리가 가정용 시간 탐사기에 대한 것을 공개한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소? 사람들은 우선은 자기들의 젊음, 부모 등등을 보게 될 거요. 그러나 그들이 다른 가능성을 생각하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을 거요. 주부는 불쌍한 죽은 어머니는 곧 잊고, 이웃들, 그리고 회사에 있는 남편을 보게 될 거요. 사업가는 자기 경쟁자들을 보게 되겠지. 고용주는 피고용자들을 보고. 그렇게 되면 사생활이라는 건 존재할 수 없소. 장막 뒤에서 훔쳐보는 눈은 비교도 될 수 없소. 비디오 스타들은 모든 사람들에 의해 항상 면밀히 관찰될 것이오. 모두들 자기를 지켜보는 눈을 가지게 될 것이고, 아무도 감시에서 벗어날 수 없을 거요. 어둠조차도 도피처가 될 수 없소. 시간 탐사에 적외선이 활용될 수 있고, 인간의 형체는 체온에 의해 드러나게 되니까. 물론 형체를 흐릿하고, 배경은 컴컴하겠지만, 아마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더 감질나는 재미를 느끼게 될 것이오. 흠, 기계를 가진 사람들은 이제 때때로 규제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실험을 해보겠지.」

 랄프는 창백한 얼굴로 말했다. 

 「당신들이 개인적 제조를 금지할 수 있잖소.」

 아라만은 격한 표정으로 랄프를 보며 말했다. 

 「그럴 수 있지. 하지만 그게 소용 있을 것 같소? 음주, 흡연, 간통, 스캔들, 이런 것을 금하는 법이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소? 참견하기 좋아하는 습성과 음란성의 결합은 그 어느 것보다도 나쁜 습관이 되어 인류를 속박할 것이오. 맙소사, 천 년 동안 시도를 했는데도 헤로인 밀매를 소탕할 수 없었소. 그런데 당신은 자기가 원하는 때에 자기 마음대로 누구나 볼 수 있는 기계를 가내 작업장에서 만들지 못하도록 금지하는 법 얘기나 하고 있다니.」

 포스터가 갑자기 말했다. 

 「난 출판하지 않겠습니다.」

 포털리가 울음을 터뜨리며 울먹거리는 소리로 말했다. 

 「우리 누구도 말하지 않을 거요. 난 후회하고 있소.」

 랄프가 끼어들었다. 

 「당신은 시간 탐사기로 날 감시하지 않았다고 말했소, 아라만.」

 「시간이 없었소.」

 아라만이 지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시간 탐사기에서는 현실에서만큼 동작이 빠르지 않소. 책을 찾아보는 필름에서처럼 속도를 낼 수가 없소. 우리는 24시간 내내 지난 6개월간 포털리와 포스터의 중요한 순간들을 포착하느라 정신이 없었소. 다른 것을 볼 시간은 없었고, 또 우리가 본 것으로 충분하오.」

 「충분하지 않소.」

 랄프가 말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요?」

 아라만의 얼굴에 갑자기 엄청난 경계의 표시가 나타났다. 

 「내 조카가 안전금고에 중요한 정보를 갖다 놓았다고 알려주기 위해 나한테 전화를 했다고 아까 말했잖소? 포스터는 마치 곤경에 빠진 사람처럼 행동했소. 어쨌거나 그는 내 조카요. 난 포스터를 곤경에서 구해 내야 했소. 그러느라 시간이 좀 걸렸소. 그런 후에, 내가 무슨 일을 했는지 말해 주러 여기 온 거요. 아까 내가 여기 왔을 때, 당신 부하가 내 머리를 때린 직후에, 내가 몇 가지 일을 처리해 놓았다고 말했잖소.」

 「뭐라고? 도대체…….」

 「난 휴대용 시간 탐사기의 세부 사항을 내 정기적인 광고 방송을 담당하는 친구들에게 보냈을 뿐이오.」

 아무 말도 없었다. 아무 소리도 없었다. 숨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들은 모두 어떤 표현도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노려보지 마시오.」

 랄프가 소리치고는 말을 이었다. 

 「내 말뜻을 모르겠소? 난 대중용 출판권을 갖고 있단 말이오. 포스터도 그걸 인정할 거요. 난 포스터가 합법적인 방법으로는 그 내용을 출판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소. 난 포스터가 불법적으로 출판할 계획을 세우고 있는 게 틀림없다고 판단했고, 또 그것 때문에 안전금고 상자를 준비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소. 난 내가 그 세부 사항을 미리 발표해 버리면, 모든 책임이 나한테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했소. 그러면 포스터는 학교에 남을 수 있을 거라고. 그리고 설사 내가 내 행동의 결과로 과학 저술 면허를 박탈당한다 해도, 시간 탐사기 자료에 대한 독점적 소유권으로 먹고 살 수는 있을 거라고. 포스터가 화를 낼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난 그 동기를 설명할 수 있고, 그럼 우린 이익을 반반씩 나누어 가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소. 날 그렇게 노려보지 마시오. 내가 어떻게 알았겠소.」

 「아무도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지.」

 아라만이 씁쓸하게 말을 이었다. 

 「당신들 모두 정부가 멍청하고, 관료적이고, 사악하고, 압제적이라고 생각했소. 그렇기 때문에 연구를 억압한다고. 당신들 중 누구도 우리가 최선을 다해 인류를 보호하려 한다는 생각은 해보지도 않은 거요.」

 「이렇게 이야기나 하며 앉아 있을 수는 없소.」

 포털리가 훌쩍거리며 말을 이었다. 

 「당신이 이야기를 한 사람들이 누구누군지 말해 주시오.」

 「너무 늦었소.」

 랄프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을 이었다. 

 「그들한테는 하루의 시간이 있었을 거요. 말이 충분히 퍼질 만한 시간이지. 내 광고 담당자들은 아무 물리학자의 전화번호를 돌려, 내 자료의 신빙성 여부를 확인해 보았을 거요. 그리고 과학자들은 서로 전화를 해 소식을 교환했을 거요. 과학자들이 일단 중성미자학과 가중력학의 결합 가능성을 알게 되면, 가정용 시간 탐사기의 출현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오. 이번 주가 다 가기 전에, 5백 명의 사람들이 작은 시간 탐사기를 만드는 방법을 알게 될 텐데, 그들을 다 어떻게 잡아들이겠소?」

 랄프의 통통한 볼이 축 늘어졌다. 

 랄프가 말을 이었다. 

 「이 일을 다시 되돌릴 수 있는 방법은 없을 것 같소.」

 아라만이 일어서며 말했다. 

 「시도는 해보겠소. 하지만 나도 랄프의 말에 동의하오. 너무 늦었소. 이제 우리가 사는 세상은 어떻게 될지 모르겠소.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는 완전히 무너졌소. 지금까지의 모든 관습, 모든 습관, 모든 사소한 생활방식이 그래도 어느 정도의 사생활은 당연한 것으로 인정해 주었는데, 이제 모든 게 사라져 버렸소.」

 아라만은 세 사람한테 일부러 공식적으로 경례를 붙이고 나서 말을 이었다. 

 「당신들 셋이서 새로운 세계를 창조했소. 축하하오. 당신들에게, 나에게, 그리고 모두에게 사생활 없는 행복한 어항 속 같은 인생이 되기를. 그리고 당신들 모두 지옥에서 영원한 불에 튀겨지기를 빌겠소. 체포는 취소하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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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는 중성미자가 빛보다 빠르다고 알려졌던 것 같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