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별에는, 포켓몬이라 불리는 작은 괴수들이 인간, 동물, 식물과 어우러져 살아가고 있다.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으로 여겨지던 그 괴수들을 200년 전에 처음 길들인 것은 바로 홋카이도의 원주민인 아이누였다. 그들은 포켓몬을 다루는 사람들을 포켓몬술사라고 부르며, 그들을 자연과 인간을 잇는 힘을 지닌 사람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아이누가 일제에 의해 박해를 받기 시작하며 포켓몬술사들도 덩달아 탄압을 당했고, 이후 세월이 흐르며 포켓몬술사의 맥은 끊어지고 마는 듯했다.


그렇게 끊어질 줄 알았던 포켓몬술사의 역사는 1983년의 일본 간토에 있는 실프주식회사에서 아이누의 전통 몬스터볼을 대체하는 현대식 몬스터볼의 양산에 성공하면서 '포켓몬 트레이너'라는 이름으로 부활했다.


그리고 또 다시 3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포켓몬과 인간은 서로 함께하는 존재가 되었다.

일의 파트너로도 삼고, 그저 같이 지내기도 하고, 또 그 기원에 대해 연구하기도 하고...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인기 있는 것은 포켓몬들을 서로 싸우게 하여 트레이너와 포켓몬의 유대감을 돈독히 다지는 것이다. 포켓몬 트레이너란 바로 그런 포켓몬 배틀을 전문으로 하먀 포켓몬과 유대를 쌓는 존재다.

그리고 지금, 한 포켓몬 트레이너의 이야기가 홋카이도의 어느 작은 산, 카미야마에서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좋은 날씨네~. 하지만 여긴 대체 어디야. 본 적도 없는 양옥집이 있네. 잠깐, 저기가 혹시 TV 속에서 유령이 나온다는 그 집인가?"

한 풀색 재킷을 입은 열일곱 살 소년이 카미야마의 숲을 정처 없이 돌아다니다 한 양옥집 앞에 도착했다. 이 소년의 이름은 후타바 세토. 온천으로 유명한 노보리베츠시 출신의 새내기 포켓몬 트레이너였다.


저택은 밖의 모습만 봐도 외벽의 일부가 식물로 덮여 있고 지붕의 기와가 엉망으로 흩어진 모습이라, 누가 봐도 여기 유령 있어요 하고 광고하는 듯 했다.

"흐~음, 어떡한다. 진짜로 TV 유령과 만나기라도 하면... 아니지, 어쩌면 그 유령이 소문대로 여태까지 아무도 본 적 없는 희귀한 고스트 타입 포켓몬이라면? ...좋아, 일단 들어가 보자!"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을씨년스러운 외관과 달리 어째서인지 집 안은 생각보다 정돈이 잘 되어 있다 못해, 마치 누군가가 아직 살고 있는 거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이에 2층으로 올라선 세토가 뭔가 잘못됐음을 감지한 순간, 어디선가 자기 또래 정도 소녀가 부르는 듯한 아름다운 노랫소리가 들렸다.


"여름 바람이 노크하는 창문을 열어봤더니, 어디서부턴가 들려오는 새 소리..."

"아 깜짝이야..."


세토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포켓치를 확인해 보니 현재 시간은 오후 9시 58분. 괴담에 위하면 아직 유령이 나올 시간은 아니라고 들었지만, 이제 2분만 있으면 유령이 나올 시간이었다. 하지만 저택 입구가 현재 위치와 거리가 너무 멀어 2분 안에 양옥집을 나가는 것도 불가능했다. 게다가 여기까지 온 이상, TV 유령을 찾기 전까진 돌아갈 생각도 없었다.


그렇게 세토가 어느 방 문을 여는 순간—


"으아아악!! 유령이다!!!"

"히이이익!!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세토의 눈에 들어온 것은 고장난 TV를 이리저리 살펴보며 리모콘 버튼을 연타하던 소녀였다. 그녀가 자길 보고 기겁하는 걸 보니 적어도 유령은 아닌 듯 했지만...


그녀는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연상시키는 아주 연한 백금발.

장미석을 연상시키는 옅은 분홍빛의 눈동자.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여주인공이 입고 잇는 옷과 똑 닮은 파스텔 톤의 원피스.


세토는 소녀의 아름다움에 이끌려 자신도 모르게 그녀에게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갔다.

그녀를 가까이서 보니, 정말 인형 같았다.

자신의 눈 앞에 서 있는 소녀는—

정말로 동화에서 빠져나온 듯한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