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드 히어로는 평화를 바라는 평범한 소년이다.
그에 맞서는 뉴 오더는 새로운 통치의 도래를 추구하는 정의의 비밀결사이다.
마스크드 히어로는 인간과 포켓몬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뉴 오더와 싸워나가는 것이다.》


내가 7살 때 TV에서 방영하던 '마스크드 히어로'라는 프로그램을, 나는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다. 히어로가 악을 무찌르는 흔한 특촬물에 질려 있던 나는 그것도 비슷하겠지 하며, 별 관심을 가지지 않고 있다가 채널을 돌리던 중 우연히 마스크드 히어로 1기의 첫 화를 본방송으로 보게 되었다.

사실 마스크드 히어로 역시도 악을 무찌르는 히어로의 이야기이기는 했다. 거기에서 끝났다면 분명 그게 신오지방의 대표 인기 드라마가 되는 일도, 시리즈가 되어 지금 5기의 마지막 화가 방영하고 있는 일도 없었겠지.

그래서인지 내가 마스크드 히어로의 오프닝 내레이션을 봤을 때, 나는 어리둥절했다. 평화를 바라는 평범한 소년이 주인공인 것도 특이했거니와, 뉴 오더라는 이름을 지닌 적이 "정의"의 비밀결사라고 소개되었기 때문이다.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지금까지 아동용 특촬물의 주인공은 특별한 조직에 속한 어른들이 대부분이었을 뿐더러, 그들에 맞서는 비밀결사는 항상 악으로 묘사되었으니까.

그리고 1화가 끝났을 때, 나는 어느새 마스크드 히어로라는 작품에 빠져 있었다. 어리석은 민중에 의해 모든 것이 결정되는 세계. 그러한 세계에 불만을 품어 민중의 자유를 빼앗고 지혜로운 자신들의 총통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철인통치를 건설하려는 비밀결사 뉴 오더. 그리고 그러한 뉴 오더의 계획을 막기 위해, 사람들이 감사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을 비난하더라도 끝까지 싸워나가는 마스크드 히어로. 그리고 그런 마스크드 히어로에게 하나 둘 마음을 열기 시작하며 긍정적인 쪽으로 변해나가는 사람들.

나는 아직도 퍼스트 시즌의 마지막 화에서 뉴 오더 총통과 마스크드 히어로가 주고받은 말을 기억하고 있다. 뉴 오더 총통은 엘리트주의를 주장하며 말한다. 어리석은 민중이 모여봤자 그 가능성의 끝은 단 하나라고. 오로지 파멸뿐이라고. 그리고 마스크드 히어로는 그 말에 반박하며 이렇게 외친다. 

"가능성의 끝은 하나가 아니야!!"

그리고 그 말과 함께 전 세계의 사람들이 마스크드 히어로를 응원하는 모습이 방송으로 송출되기 시작하고, 뉴 오더 총통은 마침내 마스크드 히어로에게 쓰러진다. 끝까지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 채...

***

사실 당시 나는 마스크드 히어로에 열광하면서도 내가 왜 열광했는지를 알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생각해 보니, 그 이유를 조금은 알 거 같다.

나는 어느새 사람들의 자유를 위해 싸워나가는 마스크드 히어로의 활약을 보면서 그와 같이 자유를 지키는 히어로를 동경하고 있었던 것이다. 

용식이와 나는 한때 마스크드 히어로와 용식이가 좋아하는 타우리나 특전대 중에서 누가 더 멋진 히어로인지를 두고 논쟁을 벌이기도 했지만, 지금은 서로의 취향을 이해하고 또 존중하고 있다.

히어로가 무엇인가? 라고 묻는다면, 그 답은 분명 하나가 아닐 테니까.

***

《뉴 오더의 마지막 계승자, 파이널 오더는 세계에서 사라졌다.
이로써 세 번에 걸친 마스크드 히어로들과 뉴 오더 간의 싸움은 마침내 마스크드 히어로들의 완전한 승리로 끝났다.
하지만, 뉴 오더의 사상은 언젠가 다른 형태로 계승될 것이다.
그때가 되면, 마스크드 히어로는 돌아올 것이다.
인간과 포켓몬의 자유를 위하여...!》


'지금까지 마스크드 히어로 V를 사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새로운 세계를 무대로 하는 새로운 시즌에서 또 만납시다!'

나는 자막이 사라진 이후에도 TV에서 한참 동안 눈을 떼지 못했다.

오늘은 마스크드 히어로 시즌 5의 마지막 화 방영일이었다. 그랬기에 나는 마지막에 애매하게 결말을 내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오히려 파이널 오더가 새로운 세계를 창세하는 힘을 얻는 것을 막기 위해 마스크드 히어로 루비가 인간으로 남는 것을 포기하고 먼저 그 힘을 손에 넣어 "뉴 오더가 존재하지 않는 세계"를 만들어 세계를 리셋했고, 그 결과 희생자들이 모두 되살아났을 뿐 아니라 세계의 사람들이 마스크드 히어로들의 활약을 기억하고 있는 상태로 더 나은 세계를 만들어나가는 엔딩을 맞이하게 되었다.

내가 그 감동적인 엔딩의 여파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을 때, 갑자기 용식이가 우당탕탕 내 방으로 뛰어올라왔다.

"어이! 광휘! 너 여기서 뭐 하고 있어? 한참 찾았잖아!"

꽤나 성난 듯한 표정의 녀석. 나는 내가 뭐 잘못한 거라도 있나 생각했다가 시계를 보고 그제서야 소스라치게 놀랐다. 

"으악!! 대회까지 한 시간밖에 안 남았잖아! 미안, 마스크드 히어로 보느라 시간 가는 줄도 몰랐네..."

"에휴, 그래도 이제라도 눈치챘으니 됐어! 어차피 여기서 축복시티까진 걸어도 20분 정도밖에 안 걸리잖아. 그리고 들어오는 길에 너네 아빠 만났어. 차 태워 준다고 했으니까 슬슬 준비하고 나와! 이번에도 늦으면 진짜로 벌금 100만 원이야!!"

나는 그런 녀석을 보고 피식 웃었다. 하긴, 우리 둘의 관계는 늘 그런 식이었다. 마을에서 우리 둘은 히어로를 동경하는 콤비로 유명했다. 자유를 지키는 히어로를 추구하는 나와, 악을 무찌르는 히어로를 중시하는 용식. 서로 지향점은 달랐지만, 어찌되었건 히어로라는 취미와 목표를 공유하고 있었기에 함께 어울리는 시간은 언제나 즐거웠다. 그리고 어느 새, 12살이 된 우리들은 떡잎마을의 로컬 히어로 콤비로 유명해져 있었다.

"용식이랑 있으면 언제나 든든하다니까."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나는 짐을 싸기 시작했다. 나와 용식이 자전거 라이더 1호와 자전거 라이더 2호로 활동할 때 입는 히어로 코스튬. 먹구와 페달이 착용하는 히어로 액세서리인 머플러. 먹구에게 간식으로 줄 포핀이 한가득 담긴 포핀케이스. 그리고 모험노트와 이런저런 잡다한 것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는 볼에서 먹구를 꺼냈다. 녀석을 볼 때마다 우리 둘은 참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느긋하고 여유로운 성격도, 간식을 많이 먹는 것도, 그리고 온화한 것도. 어렸을 때부터 쭉 함께 자랐으니, 그야 어찌 보면 당연한 거겠지만.

"자, 먹구. 오늘도 멋지게 잘 해 보자!"

"먹고~!"

"자...그럼, 자유를 지키기 위하여, 파이팅!!"

***

"...참! 그나저나 풀숲에 들어가면 안 된단다! 아직 너희들은 포켓몬이 1마리씩밖에 없으니까...."

"에이, 걱정 마세요! 저도 페달도 그 정도로 약하진 않다고요!"

내가 짐을 챙겨서 거실로 내려왔을 때, 용식이는 우리 엄마랑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러다가 나를 발견한 용식이는 반색하며 말했다.

"오! 짐 다 챙겼구나! 자, 그럼 이제 출발해 보자고!"

"응, 히어로 코스튬이랑 이런저런 것들은 다 챙겼어! 자, 그럼 이제 축복시티로 가 보자!"

***

로컬 히어로 그랑프리.

신오의 각 마을과 도시에서 로컬 히어로로 활동하는 트레이너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신오의 특촬물 마니아들을 위한 대축제라고도 불리는 대회였다.

그 대회에 참가한 우리들은 공연을 마치고 시상식을 기다리던 중 잠시 축복시티를 둘러보고 있었다. 신오지방에서도 특히 근대적인 발전을 이루어 많은 사람들이 왕래하는 이 도시는, 다른 도시보다 몇 배는 컸다.

하지만 사실 우리들은 약간 풀이 죽어 있었다. 중요한 장면에서 연기 실수를 하는 바람에 점수가 좀 많이 깎였기 때문이었다. 원래대로라면 1등도 노려볼 만한 상황이었지만, 그 실수 때문에 점수가 엄청나게 깎여서 우리들은 결국 3위 안에 드는 데 실패하고 말았다.

"아~ 진짜 하필 왜 거기서 실수를 한 거냐고, 나는!"

그렇게 자책하는 용식이에게 나는 위로의 말을 건넸다.

"즉흥 연기는 어렵잖아. 심지어 대본도 없이 연기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긴 해. 오히려 그 정도면 실수를 훌륭하게 수습한 게 아닐까?"

하지만 용식이를 그 정도로 위로해 주긴 무리였던 걸까. 녀석은 못내 아쉬웠던 듯 자책을 반복했다.

"아니 그래도 아쉽잖아. 나만 아니었으면 1등을 할 수 있었는데, 4등이라니... 넌 안 아쉬워?"

바로 그때, 심사위원 중 한 사람이 우리를 부르는 게 들렸다. 그 사람은 아까 우리 둘의 연기를 호평했던 사람 종 하나였다.

"저기, 혹시 너희들이 광휘와 용식이니? 찾아다녔단다."

"네. 그런데요?"
"무슨 일이에요?"

"그게, 심서위원들이 합의를 거친 결과, 너희에게 특별상과 여행 상품권을 주기로 했단다. 일단 여기 여행권을 줄게. 하지만, 시상식에 도착하지 못하면 그 상품권은 무효가 되니 유의하렴!"

잠깐만, 뭐라고? 특별상? 여행 상품권?!

내가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을 때, 여행권 봉투를 받아든 용식이가 갑자기 내 손을 잡고 달려가기 시작했다.

"으와앗?!"

"서둘러야 해! 시상식까지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단 말야!!"

아, 맞다. 시상식은 1시였지. 하지만 여기서 대회장까지의 거리는 느긋하게 걸어도 딱 5분 거리. 이 속도로 뛰어간다면 제때 도착하는 걸 넘어 좀 더 일찍 갈 수도 있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우당탕탕!


"으아아악!!"

"크윽... 앞을 잘 보고 다니거라!"

그랬다. 앞을 제대로 보지 않고 달리던 우리 둘은 누군가와 부딪혀 넘어지고 말았다.

우리 둘과 부딪힌 사람은, 굉장히 엄하고 무서워 보이는 할아버지였다. 나도 그 할아버지가 무서운 건 마찬가지였지만, 크게 당황한데다 겁에 질리기까지 해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는 용식이를 대신해 사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용기를 내서 조심스럽게 말했다.

"정말 죄송합니다, 다음부터는 앞을 잘 보고 다니겠습니다!!"

하지만 할어버지는 한참 동안 말이 없다가 갑자기 내 머리를 향해 손을 뻗었다. 나는 순간 내 머리를 쥐어박으려는 줄 알고 당황해 눈을 질끈 감았지만 웬걸. 할아버지는 내 머리를 쥐어박기는 커녕 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괜찮다. 하지만 다음부턴 조심하거라!"

그렇게 말하고 제 갈길을 가는 할아버지를 본 용식이가 말했다.

"에이, 뭐냐. 마박사님 의외로 상냥하시네? TV에서 보면 엄청 엄하시고 무서운 모습이었는데."

"마박사님?"

"너 모르냐? 저 할아버지, 잔모래마을의 포켓몬 박사래. 진화에 대해서 연구하고 계신다던걸? ... 잠깐만, 이럴 때가 아니지! 시상식까지 몇 분 남았어?!"

나는 포켓치를 봤다. 다행히 아직 7분 정도가 남았다.

"일단 지금 뛰어가면 절대 늦지 않을 거야. 빨리 가자!"

"오케이!!"

***

다행히 우리 둘이 도착했을 때는 시상식이 막 시작되려 하고 있었고, 덕분에 우리 둘은 시상식에 무사히 참가할 수 있었다.

이제, 시상식이 끝나고 여행권 봉투를 열어 보아도 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여행권의 내용을 본 우리 둘은 크게 놀랐다. 여행권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혀 있었다.

목적지: 천관산 정상
출발 일자: 9월 27일 오후 5시
접선 장소: 축복맨션 앞
임무: 경호
보상: 1000만 원

"목적지가... 천관산 정상이라고?! 여기서 꽤 멀리 떨어진 곳이잖아?"

"게다가....보상이 1000만 원이야! 1등 상금보다 10배나 많은 돈이잖아!"

우리 둘은 서로를 얼싸안고 환호했다.

"우리의 노력이 마침내 결실을 맺었어!!"

----------

원래는 노벨피아에 쓰던 건데 여기에도 올려 본다

사실 포케스페 읽고 뽕차서 써 보는 거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