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밤 중에 집 앞에 있는 편의점에 들렀는데,


오빠랑 싸운 뒤 홧김에 가출하고

딱히 갈곳은 없어서 한밤 중 편의점 앞에 쭈그려 앉아있던

카야랑 눈이 마주쳐 버리는거임



딱 봐도 불량한 학생인 것 같은 카야의 시선을 피해서

물건을 사고 얼른 나가려고 했지만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카야가

슬쩍 일어나더니 편의점에서 뭔가를 사고

슬그머니 뒤를 졸졸 따라오기 시작하는거임



마치 일행이라도 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붙어서

엘리베이터까지 같이 타버린 카야는

당연하다는 듯 집 앞까지 따라와서는

오히려 왜 얼른 안 들어가냐는 듯한 눈빛으로 옆에서 기다리는거임


무슨 일이냐고 뒤늦은 용건을 묻자,

카야는 무서운 눈매로 힐끗 올려다 보면서

오늘 좀 재워달라고 그제서야 부탁을 했고


딱 봐도 불량학생이라 말썽에 휘말릴게 뻔했지만

이미 집 앞까지 따라와서 기다리고 있는 카야를

어떻게 쫒아낼 수도 없었기에 현관 문을 열어주면

멋대로 집 안으로 먼저 들어가버린 카야는


슬쩍 집 안을 한 번 둘러보고는

멋대로 침대에 털썩 앉아서 주섬주섬 외투를 벗어던지고

나 좀 씻을게, 라고 말하며 마치 자기 집인 양 욕실로 들어가면서

수건이랑 갈아입을 옷은 문 앞에 놔둬, 라고


도저히 하루 재워달라고 부탁하러 온 입장이라고는 생각 안 되는

안하무인인 태도로 마음대로 욕실을 쓰기 시작하는거임





쏴아아, 하고 욕실 안에서 들려오는

뜨거운 물이 카야의 몸을 타고 흘러내리는 물소리가

조용한 방에 울려퍼지고


잠시 후 문 앞에 놓인 수건으로 물기를 닦고

사이즈가 맞지 않아 살짝 헐렁한 티셔츠를 걸친 카야는


아까 편의점에서 사 온 봉투를 멋대로 뒤적이면서

먹으려고 사 왔던 컵라면을 역시 허락도 없이 집어들고

이거 내가 먹을게, 라는 한 마디만 슬쩍 던지고는

멋대로 물을 끓여서 컵라면까지 자기가 먹어버리는거임




그제서야 뭔가 만족한 듯한 얼굴로 슬쩍 미소를 지으며

당연히 침대는 자기 자리라는 듯

침대에 털썩 걸터앉은 카야는,


자기 핸드폰에 찍혀 있는 오빠의 부재중 전화를 보고는

여전히 기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인상을 찌푸리고

핸드폰을 꺼버린 다음 구석에 툭 던져버리는거임



그리고 한참 동안, 아무 말 없이 침대에 앉아

이불자락을 만지작거리던 카야는

슬쩍 손을 뻗어서 씻기 전에 벗어뒀던 자신의 옷을 끌어당기고

그 안주머니에 들어 있던 뭔가를 주섬주섬 꺼내는거임


안주머니에서 아까 쫒아오기 전 편의점에서 샀던

콘돔 한 상자를 꺼내 툭 던져준 카야는


어쩐지 살짝 부끄러워 하는 듯한 분위기로

시선을 괜히 아무것도 없는 방 구석으로 돌린 채

깔고 앉은 이불을 만지작거리면서

오늘치 숙박비야, 라고 작게 중얼 거리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