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질문을 통해, 캬루는 패동황제의 진심을 확인할 수 있었다. 캬루는 자신이 단 한 번도 패동황제에게 진심으로 사랑받은 적이 없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페코린느와 유우키가 배신한 자신을 다시 받아 준 것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도.

 

캬루는 동료들의 마법으로 공중에 포박된 패동황제에게 쓸 마지막 공격 마법을 준비했다. 그림 – 버스트, 그녀가 가장 특기로 하는 마법이었다. 캬루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캬루는 패동황제에게 소리쳤다. “잘 가요, 폐하! 당신의 손아귀에서 놀아났지만, 그 동안 느꼈던 고마움만큼은 진짜였어요.”

 

지팡이 끝을 모아 쥔 손에 보랏빛 구체가 생겼고, 영창과 함께 범위 공격 마법인 그림 버스트는 패동 황제의 심장에 집중되어 쏘아올려졌다. 그러나 패동황제는 끝까지 캬루를 쳐다보지 않았다. 캬루의 마법으로 심장이 터져버릴 때 까지도.

 

한 순간, 보랏빛 폭발과 함께 패동황제는 먼지처럼 사라졌다. 그녀의 옷가지와 장신구만이 남아 하늘에서 나풀나풀 떨어져 내려왔다. 모두가 숨죽이고 그 모습을 바라보았고, 마침내 패동황제가 죽은 것을 확신한 사람들은 수인, 휴먼 할 것 없이 환호를 지르며 승리를 자축했다.

 

그러나 캬루만은 그럴 수 없었다.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패동황제의 옷가지가 떨어진 곳으로 걸어갔다. 옷가지를 집어 든 캬루는 바닥에 꿇어 앉아 소리죽여 울기 시작했다. “으흑, 으흑.. 어쩔 수 없었어.. 어쩔 수 없었어.. 한 번, 단 한번이라도 나를 돌아봐 줬다면, 진심으로 나를 바라봐 줬다면...” 사람들의 환성 속에서 숨죽여 울고 있는 캬루에게 페코린느가 다가갔지만, 항상 밝은 그녀조차도 쉽사리 말을 걸 수 없었다.

 

콧코로는 망설이다가 등 뒤에서 캬루를 껴안으며 말했다. “캬루님. 계속 그러고 계시면 무슨 소문이 돌지 몰라요. 일단 성으로 돌아가요.” “페코린느님. 캬루님은 제가 맡을께요. 뒤를 부탁할 수 있을까요?” 콧코로의 부탁에 페코린느는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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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도결전이 끝나고 한 달이 지났다. 패동황제가 사라진 랜드솔에서는 폐인이 되어버린 선황을 대신하여 페코린느의 즉위식이 한창 준비되고 있었다. 왕도결전에서 캬루의 활약은 모두에게 잘 알려져 있었지만, 동시에 그녀가 패동황제의 측근이었으며, 마지막 순간에 패동황제의 패배를 확신하고 페코린느에게 돌아선 것이라는 소문도 같이 돌고 있었다.

 

그러나 소문의 주인공 캬루의 모습은 랜드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캬루의 행방은 미식전 누구에게 물어보아도 대답을 얻을 수 없었다. 즉위식 날만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즉위식을 준비하는 페코린느의 손에는 보라색 마도서가 쥐어져 있을 뿐이었다. 그 마도서를 페코린느는 즉위식 내내 쥐고 있었다. 국민들에게 연설을 할 때도, 대관식에서도 그 마도서를 손에서 놓는 법이 없었다.

 

그녀가 어떻게 되었는지 아는 사람은, 이제 페코린느와 콧코로 밖에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