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요 언니 배고파요 배고프니까 뭐라도 먹고 갑시다

예?!"


장난과 진심이 섞인 칭얼거림에 문득 프리아는

잠에서 깨어난 듯 퍼뜩 주변을 돌아보며 발걸음을 멈춰선

자신을 보고 자신을 보며장난스럽게 웃는 소녀를 바라보며 약간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미안합니다... 달리 생각할 일이 있어 잠시 말씀하시는 게

귀에 안 들어왔었나봐요."


"일도 중요하지만... 제 때 식사나 휴식을 취하는 것도

최적의 임무실행과 건강한 삶을 위한 필수 조건 아닐까요?

이 솜바는.... 어려서 배를 곯던 것이 일상이었던 기억에

제때 제때 식사를 못 챙기면 기운이 안 난다구요."


물결치는 듯한 하늘빛 머리를 높게 올려묶고

제복을 단정하게 갖춰 입었으며 귀가 살짝 뾰족하게 나온

여인의 이름은 프리아


마치 자석을 연상하게 하는 듯한 붉은 색과 파란 색으로 반씩 나뉘어진 머리와 더불어

자유분방한 차림새를 하고 허물 없는 미소를 짓고 있는 소녀의 이름은 솜바


그들은 각양각색의 인간들, 그리고 능력자들이

히어로와 빌런으로 나뉘어 활동하는 세상에서 새로 히어로로서 임명된 소녀가

실전 활동으로 한 사람의 몫을 해낼 수 있는가에 대한 평가 목적으로 파견된 감찰관으로서

행동을 같이 한지도 한 주 남짓이 흘러갔다.


서로 다른 위치와 성향에도 불구하고 비슷한 능력을 지닌 것과 말수가 적지만 침착하고

배려할 줄 아는 프리아와 늘 먼저 말을 꺼내고 누구던 특유의 친화력을 보이며 살갑게 대하는

넉살 좋은 솜바는 서로가 서로의 장단점을 케어하며 의외로 궁합이 잘 맞는 파트너일지 모른다.


다만....


"그럼... 식사는 어떻게..."


"자 오늘은 이거 어때요?"


어느새 집어든 것일까.. 잠시 이런저런 일들을 떠올리며

골똘히 생각에 젖어든 프리아가 모르는 사이 어디서

언제 집어들었는지 솜바가 내민 것은 한 전단지였다.


전단지를 저도 모르게 능숙하고 절제된 손동작으로

문서를 펴들듯이 집어든 프리아는 그녀의 머리빛과

같은 물빛 눈동자로 전단지의 내용을 훑어 보았다.



☆☆파더스 터치 창립 30주년 행사☆☆


-두툼한 닭다리 살로 가득 채운

psy 버거 패티가 두장!


-럭셔리 psy 버거 하나를 구매시 무료 세트업!


-커플 세트를 구매시 피닉스 윙 4조각도 증정!



프리아는 말 없이 전단지를 접었고 솜바가 만연에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게 드시고 싶으신가요?"


"네 마침 저희가 있는 위치에서 머지 않은 곳에

지점이 있다구요? 오늘 점심은 간단하게 그거 어때요?"


"이건 그다지 균형 있어 보이는 식사가 아닌 거

같은데..... "


패스트푸드기 익숙하지 않은 프리아로서는

솜바의 식사 메뉴 선정이 당황스러울 때가 많았다.


조금 떨떠름한 얼굴을 하고 전단지를 살포시 반으로 접는

프리아를 보며 솜바가 그럴줄 알았다는 듯 말했다.


"괜찮아요 감사관님을 위한 튀기지 않은 닭가슴살

샐러드 같은 것도 기다리고 있을 거라구요."


그리하여 솜바의 손에 이끌리시다시피 프리아는

파더스 터치라는 이름의 프렌차이즈 체인점 중 한 곳에

들어서게 되었고 창가에 자리한 2인용 테이블에 앉아 메뉴판을 뒤적이고 있었다.


프리아로서는 거의 입에 대본 적이 없는 유형의 식사는

언제 봐도 생소했다 빵과 고기 채소를 한번에 우겨넣은 버거와 기름에 튀겨진 감자는 언제 봐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행사 때문에 주문하는 사람들과 전화 주문이 북새통을

이루는 가운데 패스트 푸드점에서 흔치 않게도

파더스 터치 프렌차이즈는 샐러드 요리 또한 메뉴에

올리고 있었고 그 덕에 프리아는 금방 주문한 샐러드

를 받고 양상추 한조각을 베어 물으며


나올 메뉴를 기다리며 무엇이 재미있는지

휴대용 통신 단말기기의 화면을 또르륵 또르룩

터치해 넘기며 큭큭 웃고 있는 솜바를 바라보았다.


이윽고 대기 진동벨이 울리고 잠시 자리를

뜬 솜바는 이윽고 쟁반에 오늘의 할인 추천 메뉴인

음식들을 담아들고 돌아와 다시 자리에 앉았다.


싱글벙글 만연에 신나는 얼굴로 첫 포장지를 열기 시작하는

솜바의 모습 그리고 포장지 속의 버거를 바라보는 프리아의 모습은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흠칫 놀랐을지도 모를 정도로 새삼 진지했다.


갓 튀긴 닭 다리살 패티에서 풍기는 매콤하면서 고소한 냄새와

황금빛으로 위용을 뽐내는 날개 조각들은 이게 정말 닭인가 싶을 정도로

컸고 주로 샐러드로 감자를 접한 프리아로서는 감자를 채로 썰어내어 막대

같이 튀겨내어 파슬리 가루를 얹은 튀김 또한 생소하게 느껴졌다.


"......................"


내심 진지하게 음식들을 바라보는 프리아를 보며 솜바가 물었다.


"하나 드실래요? 일부러 두 개 시켰는데..!"


"아니요 괜찮습니다.. 식사 맛있게 하시길."


"아쉽네요.... 그럼 잘 먹겠습니다."


한참 시간이 지나 거뜬히 두개의 버거와 사이드 메뉴들을 해치운 솜바와 함께 프리아는 이제 제법 싸늘해지기 시작하는 늦가을 바람읕 맞으며 근처 공원의 벤치에 앉아

기름 냄새가 쉽게 빠지지 않아 곤란하다는 생각을 하며 오전의 일들에 대해 휴대용 단말기에 간단한 일지를 작성하고 있었고


솜바는 다시 휴대용 단말기를 보며 시간을 보내다가 문득 가까운 음료수 자판기에서 동전 투입구에 동전을 넣으려다 실수로 떨어뜨려 쩔쩔매고 있는 꼬마를 보더니 짖궂은 미소를 지으며 동전이 들어간 자판기 바닥 밑을 살짝 검지 손가락 한개를 내밀어 보인 후 살살 까딱여 보였고 일순간 바닥 밑에 들어가 있던 동전이 쏙 바깥으로 빠져나오는 모양새를 보고 울상이었던 어이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동전을 집어들었다..


그 모습을 보며 솜바가 키득이는 것을 보며

프리아는 단말기에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능력을 안정적으로 자유로이 활용이 가능함

최대 출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현재까지는 확인 불가능


"흐음... 최대출력이라.... "


어느샌가 프리아가 기록하는 단말기를 들여다보는 솜바의 모습에 프리아는 적지않게 당황했다.


"의무적으로 기록해야 하는 부분입니다...."


"감사관님 그렇게 놀라시는 거 처음 봤네요 히히

저는 감사관님이 웃기도 하고 저랑 같은 음식을 드시기도

했음 좋겠어요 그럼 분명 즐거울 거에요."


"저흰 놀러온 게 아닙니다... 저는 그저 당신이 독자적으로

활동할 자격이 있는 히어로인지 확인하고 그것을

단체에 전달하기 위해서만 동행을 하는 거에요 앞으로는

함께 다니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공과 사를 명확히 구분짓는 의미에서 해야할 말을

했다고 생각한 것도 잠시... 눈에 띄게 침울해진 솜바를

보며 아차 싶은 마음이 들었다.


내가 너무 지나치게 말했나?


"........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죽어버렸어.."


game over 문구가 뜬 휴대용 단말기를 바라보며

아쉬워하는 솜바를 보고 프리아는 지끈거리기

시작하는 이마를 짚으며 가까스로 새어나올 뻔한 한숨을 참았다.


"아 죄송해요 저는 그저 감찰관님도 저와 비슷한 전격 계열의 능력자라고 하시길래 궁금했어요."


"솜바님은 왜 히어로를 지망하신 건가요."


"음.... 히어로가 되면.... 멋있기 때문에요! "


무슨 생각을 하는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싸늘하게 식어가는 프리아의 눈초리를 보며

솜바는 황급히 손을 내저었다.


"아니에요 농담이에요... 아무리 그래도 제가 그런 이유로 히어로가 된 것은 아니에요...

다만.. 예전부터 절 도와준 사람을 제가 도와주고 싶고.. 약속을 지키고 싶어서요.

프리아님은 왜 감찰관이 되신 건가요? 혹시 여쭤봐도 될까요? "


프리아는 생각도 못한 질문에 얼어붙은 듯 잠시 옛날 일들을 떠올렸다


'나는 그저... 수영 선수가 되고 싶었을 뿐인데..... ' 어째서...


'아버지....? 대체 왜.... '


지금과 달리 작고 미숙하고 누군가의 도움을 바라며 훌쩍였을 때의 모습들 그리고 여러 복잡하게 얽혀있는 일들이 어느정도 잊고 있었다고 생각한 지금

다시금 떠올랐다.


"그건.... 다음에 기회가 되면 알려드리도록 할게요..


"으응? 다음에 언제요...? 이번 수습 기간 끝나면 저흰 같이 못 다니지 않나요?"


어딘가 흔들리는 듯한 프리아의 눈빛.. 그리고 의아한 표정으로 프리아를 바라보던

솜바가 무어라 말문을 열기 전 갑작스럽게 공원으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오며 무언가로부터 달아나듯

아우성을 치며 내달리는 모습에 두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프리아는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난 것을 직감하고 등에 둘러맨 도검의 손잡이를 질끈 쥐었고 그와 동시에 프리아와 솜바의 단말기에 설치된 프로그램을 통해 수신된 메시지가 출력되었다.


*현재 c타운에 괴인으로 인한 사건 발생


빌런 랭크 미지수


c타운의 a 1121 블럭 부근에 있는 히어로 및 감찰관, 요원들은

즉각 현장으로 출동하거나 지원을 요청할 것



"드디어 실전이로군요... 너무 무리는 하지 마시길.. "


솜바는 전혀 기죽은 기색 없이 씨익 웃어보였다.


"물론이죠!"



시가지는 이미 혼돈의 도가니였다 가게와 여러 건물들엔 불이 붙어 있었고

도움을 청하는 사람들과 위험에서 멀어지기 위해 도망가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주인 잃은 차들이 나뒹굴고 더러는 건물에 박혀 있기까지 했다.


추가적으로 받은 정보에 따르면 교섭 이전에 대화가 전혀 성립되지 않으며 파견되었던 히어로들과의 통신도 끊겼다는 소식과 유사시 제거 명령이 떨어진 것을 보며 흔치 않은 사태에 프리아는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다.


이윽고 현장에 도착한 프리아와 솜바가 소동의 근원을 찾기 위해 고개를 돌리고 있을때 매캐한 연기로 자욱한 어느 건물에서 무언가의 그림자가 일렁였고

묵직한 진동음을 내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쿠웅... 쿵...


겉으로 보기엔 여느 사람과 다를 바 없는 체형을 하고 있지만 그것이 움직이며 느껴지는 진동과 더불어

그간 직 간접적으로 많은 괴인과 범죄자들을 겪어본

프리아는 그것이 심상치 않은 존재임을 감지했다.


'...이거 쉽지 않겠는데.... '


이제 갓 임명받은 신참내기 히어로로서는 버거운 상대일지도 모르는데

솜바는 전혀 겁먹은 기색이 없이 웃음기를 띄우고 있었다.


"너무 무리하진 마시고... 가급적 섣불리 행동하시지

않길 바랍니다 다른 히어로들의 증원이 있을 때까지.."


"그럼요! 드디어 제가 한 사람의 히어로로서 활동하는 것이 충분하다는 걸 증명할 수 있는 기회가 와서 기뻐요.



전격 계열 능력자 중에서도 자력을 다루고 응용하는 능력이 테스트에서도 빼어났던 솜바는

무리 없이 자신의 능력을 활용해 평소라면 큰 규모로 발휘하기 힘들었을 능력을 십분 활용해

선제 공격에 나섰다.


솜바가 가볍게 오른쪽 손의 검지를 까딱이자 손가락을 뻗은 근방에 널부러지고 굴러다니던

금속성 물체들이 부유하고 손바닥을 펴서 팔을 가볍게 휘두르는 것과 동시에

부유한 금속 물체들은 일제히 일렁이는 그림자에게 날아들었다.


카앙 캉 터터터터터텅


금속 물체 중 하나가 무언가에 튕겨져 나오듯이 솜바에게 날아들었으나

아슬하게 솜바에게 닿기 직전 눈으로 보이지 않은 어떠한 작용으로 그녀에게 채 닿지 못하고

그녀에게서도 튕겨져 나가듯이 날아가며 앞에 위치한 도로를 나뒹굴었다.


"와우..."


솜바가 날린 매서운 공격에도 괴인은 아무렇지도 않은 채 건재하고 있었고

이내 솜바와 프리아가 있는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쿵 쿵


"............."


알수 없는 시잇 시잇 하는 듯한 목소리와 함께 비척이며 걸음을 옮기던 괴인은 이내 근처의 표지판 중 하나에

손을 뻗었고 끼이익 금속성의 물질이 비틀리고 어마어마한 완력에 꺾여나가는 불쾌한 소음과 함께

'안전 구간' 이라고 적힌 표지판을 쥐고 그것은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안되지... 그런 위험한 거 갖고 노는 거 아냐."


솜바는 이번엔 표지판을 향해 손가락을 펴 자성을 띄게 하였고 이내 주변의 금속성 물질들이 달라 붙어

그 무게를 버티지 못하는 괴인이 비틀대는 것을 보며 희심의 미소를 띄었다.


예상과 달리 갑작스럽게 날아드는 철퇴와도 같은 공격에 당황한 솜바의 곁으로 푸른색 섬광과 같이

날아든 프리아가 검을 뽑아 들었다.


지직


일순간 익숙한 감각과 함께 머리칼이 살짝 위로 솟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싶었을 때

솜바에게 날아들던 철봉은 한순간의 예리한 참격으로 두동강이 나는 것과 동시에 앞 부분은

곧장 솜바의 뒷편에 있는 마트의 정문을 박살내고 말았다.


"와...... 정말 대단하세요.. 휘두르신 것도 못봤는데.."


희미하게 금속이 울리는 듯한 소리와 함께 프리아가 뽑아든 검 또한 프리아가 발현한 전격을 휘감고 있었고

그 덕분에 통상적인 참격으로 벨 수 없는 것에 대한 절삭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은 프리아가 자신의

능력을 활용하는 방식 중 하나였다.


"방심하지 마세요 아무래도 느낌이 좋지 않으니... 당신의 능력은 충분히 입증 되었으니

이제부터는 저도 가세하도록 하겠습니다."


"네? 저 혼자서도 무리 없어요."


지금까지 봐온 모습 중 프리아는 어딘가 눈에 띄게 초조한 모습이었다.


"만일 저 자를 저희 선에서 끝내야 한다면.. 서둘러야 해요 더 이상 피해가 확산되지 않도록.."


프리아의 진지한 눈빛에 솜바 또한 더 이상 고집을 피우지 않고 조용히 수긍했고

천천히 다가오는 괴인을 바라보며 둘은 다시 태세를 갖추었다.


먼저 행동에 나선 것은 프리아였다 자신의 전격 능력을 신체 에너지로 활성화 시켜 순간적으로 괴물과

간격을 좁힌 프리아는 검 왼손으로 검 손잡이를 받치며 괴물의 가슴에 검을 찔러넣었고

이내 번쩍하는 섬광과 함께 전격이 작열하였다.


자력에 특화된 솜바의 전격 능력과 보다 공격적인 형태의 전격 능력자인 프리아의 특화 기술 중 하나였다

전격을 두른 검을 다루어 베이거나 찌른 대상에게 높은 전압의 전류를 흘려 넣을 수 있는 것..

프리아는 빨리 끝을 내겠다는 마음가짐으로 평소보다 높은 전력... 일반적인 생명체였다면 순식간에

숯더미가 될 만한 , 거의 전력에 가까운 전격을 한순간에 방출하였다.


파츠츠츠츠ㅡ츠츠츠츠츠츠츠


그녀가 방출한 전격의 영향으로 지면을 타고 흘러든 전류는 아직 주변에 기능이 남아있던

전자기기 매장과 주변 상가로 흘러들어 자리한 전자기기들의 과부하를 불러올 정도였다



"허억 허억... "


한꺼번에 많은 전력을 방출한 프리아는 급격하게 줄어든 체력으로 인해 숨을 헐떡이다 직격으로 전력에 가까운 전격을 고스란히 받았음에도 멀쩡히 서 있는 괴인을 바라보고 일순간 숨이 멎을 것 같은 감각을 느꼈다.


그녀의 눈 앞에 검으로 꿰뚫린 채로도 멀쩡히 서 있는 그것은 평범한 생물이 아니었다.

언뜻 그것을 둘러 감싸고 있던 외피가 조금씩 벗겨지기 시작했고 껍질이 벗겨져 나가며 드러난 모습은..

분명히 은빛을 띄는 금속성의 피부였다.


"기ㅣㄱ기기기긱..."


그와 동시에 카앙 하는 소리와 함께 부러진 검을 손에 쥔 채로 프리아는 아찔한 감각과 함께

조금전까지 멀게만 느껴졌던 풍경이 한순간에 눈에 들어온다 싶었을 땐 그녀는 솜바의 외침 소리를 들으며

도로에 세워져 있는 가로수에 세게 들이받히고 말았다..


그나마 전격을 두른 검 덕분에 괴물의 공격이 온전하게 프리아에게 적중하지 않았지만

순간적으로 큰 충격을 받은 것엔 변함이 없었다.

여전히 부러진 검을 손에 쥔채로 프리아는 이내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떨구었다.


외피가 벗겨져 금속성의 내피가 드러난 것을 확인한 솜바는 즉각 그 괴물을 자신의 능력으로 높이 들어올리고 그대로 허공으로 솟구치게 했다가 바닥에 메다 꽂는 식으로 공격을 가하였다.


쾅 쾅 쾅


괴물은 솜바에게 접근을 하지 못했지만 솜바 또한 유효한 타격을 주지 못하는 형태로 소요전이 흘러가고 있었고

이대로는 별 수 없다고 느낀 솜바는 주변에서 최대한 끌어모은 금속성의 물체들을 한데 모아 괴물을 짓누르고

서둘러 프리아가 쓰러진 방향으로 향했다.


"감찰관님..! 감찰관님..! 괜찮으세요?! "


솜바가 조심스레 어깨를 흔들자 프리아는 가까스로 의식을 되찾고 희미한 목소리로 말했다.


"..... 솜바..?"


"네 관찰감님... 죄송해요 제가 처음부터 조심했더라면.."


"아니에요... 조금 더 신중하게 ... 처음에 제가 말한 것처럼 증원을 기다리며 괴물을 묶어두는

방식으로 신중하게 접근을 했어야 하는데.. 제가 경솔했던 탓입니다.."



우그러진 금속더미에서 괴물은 다시 몸을 일으키기 시작하고 이내 팔 하나가 솟아남과 동시에

괴물은 자신을 구속하던 철제 구조물들에서 빠져나와 다시 그녀들을 향해 묵직하고 위압적인 걸음을

천천히 옮기기 시작했다.


"이전에도 기록으로 남은 바가 있습니다.. 저들은 어디에서 온지 아직 판명되지 않은 미확인 금속 생명체들..대화도 통하지 않을 뿐더러 어지간한 무력으로는 저들을 쉽게 쓰러뜨릴 수 없죠..


그러나 저들 또한 약점이 있어요... 그것은 그들의 몸 어딘가에 있는 심장과 같은 핵..

그것을 부수면 저들도 죽습니다.. 저들을 상대해본 이력이 있는 히어로들은 은퇴한 상태..

지금 이 현장에 있는 히어로는 당신.. "


솜바의 파란 눈을 들여다보며 프리아는 한숨을 푹 내쉬며 이어 말했다.


"그리고 임시로 히어로로서 동행할 저.. 두사람 뿐이에요. 어떻게.. 만일에 실패하면

저희가 무사할지도 장담할 수 없는데.. 해보시겠어요?"


솜바는 이전까지의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우고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과 장난기 어린 성향에서 잘 드러나지 않던 부분이었지만 어딘가 핵이 있을 것이란 말을 전해 들은 후부터 솜바의 표정은 사뭇 달라졌다.


작전을 세울 틈도 없이 어느새 지척에까지 다가온 금속 괴인에게 프리아는 특수 제작된 권총을 꺼내들어 괴물에게 몇발을 날렸다.


자신의 전격을 충전해서 에너지 탄환의 형태로 날릴 수 있는 특수 제작된 권총이었고 위력의 조절에 따라 단순한 기절에서부터 어느정도 강한 전력을 쏘아낼 수 있는 물건이었지만 지금 눈 앞의 적에겐 어떠한 강도던 통하지 않는 상태였음에도 프리아는 더 이상 권총이 격발되지 않을 때까지 충전된 전력을 모두 쏟아부었다.


그리고 조금 전의 전격을 여러차례 받아낸 괴인은 자신의 몸에 어떠한 이변이 생겼는지 감지하지도 못한 채 여전히 우직하게 발을 내딛었다.


그 순간 괴물의 얼굴로 어딘가에서 날아든 파이프가 들러붙은 것을 시작으로 지속적으로 두 사람의 능력에 노출되어 자성을 띄게 된 금속성의 신체로 솜바가 날린 고철들이 달라붙기 시작했다


터터터터터텅 카앙!!


그녀는 전에 없이 온 힘을 다하여 허공으로 손을 뻗어 흡사 두 손으로 야구공을 눌러 터뜨릴 듯한 기세로 힘을 주었다 그녀의 움직임에 따라 괴인을 둘러싼 고철 더미는 점차

더욱 조여들고 있었고 이내 동그란 공과 같은 형태가 되어 기괴하게 뒤틀리고 불쾌한 소음을 내며 점차 더욱 우그러들어가고 있었다..


끼기긱기기기긱 끼익 끼이이이이이이


그 틈바구니에서 빠져나온 괴인의 팔은 맥없이 허공을 휘젓더니 이내 축 늘어지는 동시에

근처의 금속성 물체들에 단단히 들어붙어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하아... 하아..... 이 정도까지.... 능력을 써본 건 처음이에요.... "


주르륵


그녀의 코에서 흐르기 시작하는 핏방울이 후두둑 떨어져 점점이 땅을 적시기 시작했고 솜바는 이내 털썩 주저앉았다.


"잘하셨어요... 정말 능력을 활용하시는 응용력이 대단하신 걸요..... "


"히히... 칭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생각 이상으로 보통 일이 아닌데요.. 반성해야겠어요."


겨우 끝이 난 것 같다고 여긴 프리아와 솜바가 기진맥진한 기색으로 이야기를 주고 받을 때였다


카앙!


그것은 여전히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자신을 옥죈 금속 물질들에서 벗어나기 위해 하나 밖에 없는 팔을 휘저으며 서서히

흘러나오며 다시금 형태를 갖추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듯한 괴물을 바라보며

프리아는 부러진 검을 다시 쥐고 일어섰다.


"최대 출력 궁금하다 하셨죠..? "


"네..? "


솜바가 의아한 표정으로 프리아를 바라보았다.

일어나고 싶었지만 조금전의 공격으로 한계 이상까지 기력을 소진한 솜바는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 듯했다.


처절하게 꿈틀대는 괴물의 몸뚱이.. 은빛의 유동적인 금속성의 성질을 띈 육체와 달리 은은한 붉은 빛을 내뿜는 보석과 같은 것이 형태를 제대로 이루지 못하는 괴인의 몸에서 삐져나와 있는 것이 한 눈에 들어왔다.


프리아는 부러진 검날을 다시금 손에 쥐며 솜바에게 말했다.


"오늘 당신의 임무는 순전히 당신이 해낸 일입니다... 저는 임시로 보조했을 뿐이고요..!

그러니... 힘드시겠지만 당신의 힘을 조금 더 제게 증명해 주세요..!"


다소 아리송한 얼굴을 한 솜바는 이내 알겠다는 듯 빙그레 미소를 지어보였다.


프리아는 곧장 부러진 검을 괴인을 향해 집어 던졌고

검은 이내 괴인의 핵으로 여겨지는 붉은 빛 보석을 향해 날아들었고


카앙 하고 무엇인가 깨지는 소리와 동시에 솜바는 남은 힘을 괴인에게 집중하였다.

검날은 점점 더 깊숙히 박혀들어가고 이내 완전히 고정되어 떼어지지 않는 상태가 되고 말았다.


그리고 날린 검에 연결되어 있는 실날 같은 와이어들을 통해.. 프리아는 다시 한번 더 전력에 가까운 전격을 방출하였다


파츠츠츠츠츠츠ㅡ츠츠츠츠츠!!


강렬한 전격이 검날을 뜨겁게 달구었고 이내 붉은 빛 보석은 완전히 산산조각이 나는 것과 동시에

괴물은 순식간에 형태를 잃고 액체와 같은 형태로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와...... 정말 대단하세요..... 감찰관님...... 저랑 페어로 다니시면 안될까요...."


거의 한계에까지 다다른 상황에서도 농담을 잃지 않는 솜바의 모습.


"아닙니다... 사양하겠어요.."


프리아도 희미한 미소를 띄우며 말했고 그녀의 머리칼은 물결치는 듯한 하늘빛에서

서서히 솜바와 같은 짙은 파란색을 띄는 머리로 변해가고 있었다.


"헉 감찰관님.. 머리가..! "


"그래서 빨리 끝내고 싶었던 거에요... 능력을 너무 많이 사용하면 방전되기도 하니까요..

이제 아셨겠죠..? 히어로로서의 활동은 절대 가벼운 게 아니란 걸.."


솜바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확실히 알았어요..."


"첫 실전임에도 노련한 히어로들조차 장담할 수 없던 괴인을 쓰러뜨릴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솜바 당신의 힘도 컸어요.. 감찰관으로서 당당히 보고할 수 있겠군요.. 오늘부터 솜바 당신 또한 어엿한 히어로라고.."


희미한 미소를 띄우는 프리아를 보며 솜바도 프리아를 마주보며 미소지었다.


"감찰관님..!"


정말 옴싹달싹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상태

한계에 내몰려 서서히 졸움이 쏟아지는 것 같은 두 사람의 귓가엔 어느샌가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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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사흘 남짓이 지난 어느 평일의 오후 파괴된 거리와 도심은 순조롭게 재건되고 있었고

체력을 회복한 프리아와 솜바는 프리아의 본부 복귀 이전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여기저기 부서지고 무너진 도심을 바라보며 잠시 짧은 휴식을 보내고 있었다.


어느정도는 자신들의 영향도 있었겠지.. 하는 생각에 찔끔한 구석도 있었으나 어지간한 히어로들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던 악명 높은 괴인에게 승리를 거둔

신입 히어로와 그 감찰관에 대한 소식은 며칠 동안 대서특필 되었고 네트워크 상에서도 한동안 화제가 되었다.


"하하... 이렇게까지 입소문을 탈 줄 몰랐는데... 좀 부끄럽네요.."


솜바는 단말기의 화면을 검지 손가락으로 또르륵 또르륵 내리며 이런저런 자신들에 대해 쓰여진 기사와 사람들의 반응을 보며 멋쩍게 말했다.


"그러게 말입니다.. 상부에선 여차하면 제가 히어로로 활동해도 편의를 봐주겠다고 하는데.."

희색을 띄는 솜바의 얼굴을 보며 프리아가 이어 말했다.


"저는 달리 조사하고 알아내고 싶은 일이 있어서... 히어로로서는 접근하지 못하는

정보를 알고 싶기 때문에 아직은 감찰관으로서 남고 당신과 작별을 해야 하네요."


눈에 띄게 시무룩해진 솜바의 모습에 프리아는 저도 모르게 풋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언젠가 또 만날 일이 있을지도 모르고 당신이 계속 실적을 쌓아 높은 등급의 히어로가 되면

자주 볼 수 있을지 몰라요 너무 낙담해 하진 마세요 그리고 가끔씩 생각나면 연락주셔도 되고요."


다시 급 방긋 웃음을 띄우는 솜바.


"그럼요 그럼요..! 아 배고프다... 저희 헤어지기 전에 점심 어때요?"


"그러죠... "


솜바가 멋쩍은 얼굴로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 저... 그런 자리는 어렵긴 한데... 고급 레스토랑 같은 곳...으로 할까요? 이번엔 프리아님께서 원하시는

곳으로 가요"


"지난번에 들렀던 가게 어떤가요? 아직도 행사를 한다면.. 저도 먹어보고 싶은걸요."


뜻밖이라는 듯 솜바의 두 눈이 커졌다.


"좋아요...! "


신이 나서 무엇이 맛있다고 이야기를 늘어놓던 솜바는

문득 생각이 난 듯 프리아에게 물어보았다.


"그러고보니 언젠가 감찰관님도 언뜻 히어로를 꿈꾸셨다고 하신 적이 있었는데 그 이야기에 대해서

들어보고 싶어요."


프리아는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이야기해 드릴게요

아직... 아직은 조금 어렵네요."


"꼭 들어보고 싶어요 약속이에요!"


그렇게 그들의 짧은 동행은 끝이 났다.

서로 비슷하면서도 다른 행적과 능력을 통해 다른 길을 걷는 그녀들은 앞으로도

몇몇 사건과 임무를 통해 마주치게 되고 솜바가 프리아에게 과거 히어로를 목표로 했던 일과

현재 감찰관으로서 활동하게 된 계기를 듣게 되는 것은 조금 더 먼 훗날의 이야기이다.


그들은 이내 도심을 오가는 많은 인파에 섞여 모습을 감추었고 바람에 휘날리던 신문지 중

한 장이 폐차 중 하나에 철썩 들러붙으며 가려진 기사 제목이 드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