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웅성 웅성...
그 날은.
맑고 깨끗한 날이였다.
" 페이지 "
" ...! "
눈 앞에 나타난 여성.
바닷물 보다 더 아름다운, 사파이어보다 더욱 깨끗한.
마치 세상의 모든 청조함이 자신에게 있다는 듯, 당당한 그 모습을 보이는 파란 하이포니테일의 여성.
파란색 루즈핏 니트옷에 아름다운 파란색 하트 이어링.
보일 듯, 안보일 듯 애매한 니트옷 때문에 가려져서 보이지 않는 하의와
그녀의 허벅지를 강조하는 듯, 살을 조금 파먹은 사이 하이 삭스.
아름다운 그 모습에 한 순간에 시선을 빼앗기고, 멍하니 그녀를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 ... 미안...
조금 늦었지? "
쑥스러운 듯, 얼굴을 살짝 돌리며 부끄러워하는 그녀가 너무나도 귀여워 지금 당장이라도 껴안고 싶었지만.
나는 온 힘을 다해 참았다.
이성을 잃고 껴안는 순간, 당황한 그녀는 나에게 전기충격을 날릴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 아... 아뇨!
저도 이제 막... 도착했습니다. "
" ... ... "
살짝 부끄러운 듯, 수줍은 표정을 짓던 그녀는 나를 잠깐 노려보았다.
" 밖에서는... 존댓말 안쓰리고 했잖아... "
" ...아 !
... 미안.. 해. 프리아... "
그녀가 불만이였던 이유는...
평소 직장 상사였던, 상하 관계였던 딱딱한 말투가 싫었기 때문.
나는 그것도 모르고 자연스럽게 존댓말을 하고 있었으니 그녀가 불만을 가지는 것도 당연하다.
" 그래서... ...
오늘... "
부끄럽다는 듯, 쉽게 입을 열지 못하는 그녀는.
자신의 손에 들린 핸드백 가죽 끈을 만지작 만지작 거리기 시작했다.
" ... 아름다워.
말하지 않아도 꼭 말할 생각이였어... "
나는 그 뜻을 이해하고 그녀에게 말을 했다.
아마 그녀는 이 말을 원했던 것이겠지.
그리고 이 대답은 정답이였다는 듯, 행복하게 활짝 웃었다.
" ... ... ~ "
그녀가 웃자 나 또한 웃기 시작했다.
이로 말할 수 없는 행복감이 내 몸을 덮치고, 점점 부끄러운 분위기가 풀려가자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천천히 걸으면서 부대에서 있었던 여러 이야기.
오늘 아침에 일어난 이야기.
그리고 앞으로 우리가 무엇을 할 것인지... 그런 이야기 말이다.
그러다가...
" 전...? "
음식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대화를 이끌어 나가다보니 어쩌다가 나온 이야기였다.
... 다시 생각하면 내가 왜 이런 말을 했는지, 기억나지도 않았다.
" 나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
특히 파전이 맛있는 집이면 대부분 맛있다고 생각하거든 ! "
" 파전... "
그녀는 가만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나를 바라보다가...
" ... 좋아.
나. 가보고 싶어졌어. "
" 어... 응? "
" 음식 이야기가 나오니까 바로 어린 아이마냘 해맑게 웃는 너를 보니까...
나도 흥미가 생겼어.
너라면 좋은 장소를 알고 있을 것 같아. "
" 어... 으.. 응... "
라고 하며, 내 등 뒤에 섰다.
그렇게...
예정에도 없었던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 // // // // //
오후 2시ㅡ
프리아와 나는 골목길 한 가운대를 걷고 있었다.
이런 시간에, 이런 길에.
청조하고 아름다운 여자와, 약간 수수하게 생긴 안경 쓴 남자가 단 둘이 걷고 있다고 한다면.
분명 이상하게 볼 것이 분명하겠지.
하지만 그런 것 따위는 개의치 않는 듯, 그녀는 웃음을 지으며 내 뒤를 바짝 따라오고 있었다.
나는 약간 식은 땀을 흘리며 계속해서 걷고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조금 부끄러웠다.
그녀를 정말 여기에 대려와도 되는 것일까?
명목 상 데이트라고 봐도 되는 이 시간에...
- 저벅 저벅...
- 또각 또각ㅡ
" ... 저기.
아직 멀었어? "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서 계속 걷기만 하니 재미가 없었는지 그녀는 뒷짐을 지고 허리를 살짝 숙여 내 얼굴을 아래에서 위로 바라보았다.
그녀의 모습은 확실히 귀여웠지만...
골목길 안쪽으로 가면 갈 수록 내 마음에는 약간의 응어리가 생기기 시작했다.
정말 이렇게 가는 것이 맞는걸까? 싶을 정도로 계획에서 틀어졌기 때문이다.
사실은 아름다운 그녀에 걸맞게 카페에서 가벼운 간식과 커피를 마시며 대화하다가, 재미있는 영화를 본 이후.
저녁먹기 전까지 그녀가 원하는 물건을 알기 위해, 취향을 알기 위해 백화점에 들러보고, 마지막으로 우아한 레스토랑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싶었는데...
지금 내가 가는 장소는...
축축하고 어두운 골목길 그 안 쪽이니.
오늘 그녀를 만나자고 한 나로써는 조금씩 불안감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 페이지? "
" 으...응.
프리아...
이제 곧- ... "
분명 내가 가는 길은 옳은 길이다.
파전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안 먹어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 먹고 마음에 들지 않아 다음부터 오지 않는 사람은 없을 정도로 유명한 가게이다.
하지만 정말로 이게 옳은 것인가?
그녀가 과연 좋아할까?
이런 불안감이 내 판단을 계속해서 흐리게 했다.
그렇게 계속 걷자...
결국 도착하고 말았다.
" ... ... 포차? "
" 그.. 그래도 여기 ...
엄ㅡ청 맛있다고 소문난 집이야.
많이 허름해보여도 실력 하나는 끝내주는 집이니까. "
최대한.
그녀가 실망하지 않게 포장을 해보았다.
내 얼굴을 계속해서 바라보는 프리아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내 옆에 달라붙었다.
" 좋아. 들어가자 "
.. .. ..
- 드르륵...
" 이모, 안녕하세요~ "
" 아구! 총각~
이 시간에 무슨 일이야?
옆에는 처음보는 여자가 있네? "
" 안녕하세요ㅡ "
" 아하하... "
" 언제나 시키던 거면 되지? "
" 네. 잘 부탁드릴게요. 이모 "
" 그려~ 거기 편한 자리에 앉아있어~ "
- 드르륵...
- 드르르륵...
" ... ... "
프리아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가게는 조금 허름했다.
약간 반 지하의 느낌이 이 집은 천장 쪽에 창문이 하나 있었고.
거기에서 나오는 미약한 빛은 매우 밝았다.
그 빛의 줄기가 다 보일 정도로...
그 창가에 앉은 우리는 회색 건물 안에서.
바람이 조금 불어오는 허름한 포차 집에서.
술을 마시기 위해 존재하는 것 같은 이 집에.
오후 2시 쯤에... 단 둘이 앉아있었다.
" ... 정말... 술 집이네... "
프리아는 피식 웃으면서 나를 바라봤다.
나는 순간적으로 움찔거렸고, 불안감은 더욱 증폭되었다.
" 푸흣...
오후 2시에 건장한 두 남여가 이런 허름한 술집에 들어왔다고 생각하니까, 좀 이상하긴 하네...
하지만... "
- 달그락...
" 나는 이렇게 서로를 더 알아가는 시간이 좋은걸. "
그녀와 나 사이에는 주문했던 음식이 나오기 시작했다.
모둠전 하나, 파전 하나, 포차집 특제 계란찜과 막걸리.
모두 술에 딱 어울리는 음식들이였다.
내가 사랑하는 그녀랑, 단 둘이서...
따분한 시간 따위는 아무래도 좋다며 마시고 이야기하며 즐길 수 있는 음식이였다.
그녀는 먼저 파전을 한 입 먹어보았다.
한 입 먹어본 그녀는 두 눈을 크게 뜨며 맛이 있다는 듯 높은 비음 내기 시작했다.
나는 그 모습에 안도했고 마음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 음~! 이 집, 되게 맛있네 !
특히 이 파전이 엄청 별미인걸? "
" 하하하ㅡ... 그치?
이 집 파전이 정말 명물이라니까? "
우리 둘은 웃으면서 파전을 먹기 시작했고, 그녀는 선 뜻, 내 술 잔에 술을 따라주었다.
나 역시, 그녀에게 술을 따라주었다.
생각해보면, 그녀가 왜 이런 행동을 했는지...
그 때의 나로써 몰랐다.
" 술을 좋아하지도 않고, 낮술을 하는 취미도 없지만...
당신과 함께라면... 후후ㅡ "
그런 말을 하며 우리는 술을 마셨고.
서로를 좀 더 알아가는 좋은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그렇게 몇 잔을 오고갔을까.
" ... 저기 페이지... ... 후우... "
살짝 취한 것 같은 그녀는 몽롱한 눈으로 날 보았다.
그 모습은 영락없이 살짝 취한 것 같은 눈이였다.
" 응...? "
난 평소에 술을 마셨던 사람인지라 췻기는 없었지만...
분위기에 심취해 살짝 몽롱했던 것 같다.
" 있지... 평소에... 이런 곳, 자주 와...? "
그녀는 약간 호기심에 가득 찬 눈으로 날 바라보았고, 나는 딱히 말을 할 수 없었다.
부대에서 가끔 나올 때, 또는 후배들과 이야기나누고 싶을 때 오는 집이라고 말하면...
그 중에서 여자 문제가 바로 나올 것이기 때문에.
그리고 그걸 지금 취한 상태에서 말한다면 아마 믿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했기 떄문이다.
" ... 응... "
그럼에도 난 솔직하게 말할 수 밖에 없었다.
" 그렇다면... ... "
- 삐리리리리릭...
프리아가 중요한 것을 말하려는 그 순간 전화가 오기 시작했다.
좋은 타이밍이라고 해야할까.
나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핸드폰에 전화가 왔다며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 텁...
자리에서 일어나 핸드폰을 한 손에 쥐고 밖으로 나가려는 찰나.
프리아가 내 손 목을 잡았다.
순간적으로 바라본 그녀의 두 눈은
너무나도 아름답고 매혹적이며...
빠져들 것 같은 느낌이였다.
" 가지마... "
" ... ... "
핸드폰의 벨소리가 점점 작아지고.
그녀는 날 잡은 손에 힘을 꾸욱 쥐기 시작했다.
그 순간 느꼈다.
무언가 중요한 말이 있음을.
난...
그 손의 떨림을 가만히 느끼며 서있었다.
천천히 입을 열기 시작한 프리아.
그 순간...
모든 것이 느리게 보이기 시작했다.
" ... ...
페이지.
너는...
날...
어떻게...
생각해...? "
" ... ... "
가슴이 쿵쿵거리기 시작했다.
감정이 벅차오르기 시작했다.
' 난... 조금 더 멋진 장소에서... '
" 난...
... 너만 보면 가슴이 답답한데...
너는? "
' 그녀에게 내 마음을 전하고 싶었는데... '
지금 당장이라도 그녀에게 내 마음을 털어넣고 싶다.
지금의 절호의 타이밍이라고 말하는 내 본능...
하지만 이성은 좀 더 기다려야한다고 소리친다.
그녀의 눈에는 내가 계속 망설이는 걸로 보이겠지.
하고 싶은 말이 있지만 할 수 없는 날 계속 보고 있겠지.
점점 떨리던 그녀의 손은 무언가를 다짐했다는 듯, 사르르 놓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나를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나는 그 촉감을 느끼고, 똑같이 그녀를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 ... 좋아해. "
" ... ... "
프리아가 먼저 사랑을 속삭였다.
계속해서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면서 썸만 타다가...
그녀가 먼저 말을 한 것이다.
" 나도... 좋아해. "
부끄러움을 무릎쓰고 그녀에게 말했다.
그 순간...
프리아가 나에게 안겨왔다.
분위기에 심취했던 난...
그녀에게 키스를 했다.
.. .. ..
그 때, 바람이 살짝 불었다.
바람에 의해 그녀의 자리에 있던 계산서 종이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계산서 안에는...
[무알코올 막걸리] 라고 적혀있는 칸에 짝대기 하나가 그어져있었고.
나는 그것도 모른 채, 그녀와 가게 안에서 키스를 계속했다.
// // // // // //
- 덜컹... 덜컹...
- 드르륵. 쾅 !!
" 소위님 !!!
페이지 소위님 !!! "
" ... 아...
여기 있다. "
" 12시 방향 적 발견 입니다 !
목표는 이 열차인 것 같습니다 ! "
" 호들갑 떨지말고 모두 전투 준비를 명령해라.
곧 있으면 아군의 지원이 닿는다.
그 때 까지 우리는 이 열차를 사수해야한다. "
" 네 !! "
나는 내 목에 묶여있는 얇은 초커를 만지작 거렸다.
그의 손에 들려있던 검은색 비닐봉지에는 무언가가 포장되어있는지 매우 따뜻했고.
그 물건을 소중하게 보관한 뒤, 자리에서 일어나 혼자 말을 중얼거렸다.
" 이제 거의 다왔어.
곧 만나러 갈게. "
『 프리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