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피부를 가진 사람들 각자 종교와 가치관이 달라도 세계는 급격한 발전 하에

하나로 어우러져 살아가기 시작하면서 이전엔 눈에 띄지 않았던, 본래 내재하고 있던 힘을 각성하거나

대중에 알려지지 않은 비밀스러운 실험이나 각종 사고, 그리고 현재를 살아가는 인간의 관점에서

이해할 수 없는 어떠한 접촉 등으로 이능을 가진 능력자들의 등장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었다.


그들은 때때로 히어로라는 이름으로 그들을 위해 설립된 협회에 등록되면서 활동 자격을 얻어

정의 구현에 힘쓰거나 자신들과 비슷한 이들을 사사하면서 후진 양성에 들어가기도 하는 한편

공식적으로 자신들의 정보가 등록되는 것을 꺼리고 어둡고 후미진 뒷세계에서 조용히 세를 불리거나

오랜 핍박 끝에 일그러져 세상에 자신들의 울분을 풀어내고자 악당이 되는 이들도 존재하였다.


이는 앞으로도 무수히 나타날 히어로, 그리고 빌런들의 이야기 중 하나이다

그리고 오늘 또 한 사람의 여인이 히어로가 되기 위해 첫 발을 내딛었다.


어린 시절 능력자인 것을 알게된 이후 몇년 간의 세월을 통해 자신이 지닌 능력을

사회의 질서와 정의 구현에 힘쓰고자 착실히 히어로가 되는 과정을 밟아왔고

사관 학교를 우수 성적으로 졸업한 이후 정식 히어로가 되어

실전 배치가 되기 전 자신을 사사한 현역 히어로의 사이드킥으로서 견습 과정을 밟게 되는

것에 내심 기대감에 잔뜩 부풀었지만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듯 얼굴은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었으나

밝은 물빛 머리칼과 상반되게 두 뺨은 살짝 발그레하게 상기되어 있었다.



여인의 이름은 프리아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보다 더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을지도 모르는데..

갑작스레 자신이 능력자인 것을 알게된 그날의 일은

어렸던 소녀에게 너무 가혹한 것이었다.



-아니 이게 대체 무슨.... -


-선생님... 프리아가 .. 프리아가...!-


-프리아....!-


무언가 보지 말아야할 것을 마주한 듯한 눈빛들

경악과 공포가 서리기 시작한 시선들이 쏠리자

어린 소녀는 울먹이기 시작했다


-아니에요... 전... 전...-


소녀가 울먹일수록 점점 더 소녀의 주변 상황은 악화되어갔고 모두의 머리카락이

쭈뼛 서는 듯한 느낌과 함께 서서히 소녀의 뒷편으로 어느정도 크기가 되는 금속성을

띈 물체들이 모여들기 시작했고 사색이 된 아이들의 비명소리 다급한

선생님의 외침 소리 속에서 점차 의식이 아득히 멀어지는 것 같은 느낌 속에서

까무룩 눈을 감았던 소녀는 이윽고 흰 가운을 입은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퍼뜩 다시 눈을 떴다.

시간이 얼마나 흐른걸까 그리고 여긴 어디고.....이 사람들은?


"안녕 프리아.. 프리아 맞지? 예쁜 이름이구나."


가장 앞에 서 있던 나이 지긋한 중년의 남성이 사뭇

따듯한 목소리로 말을 걸어왔다.


"어떻게 된거죠...? 여기는 어디고... 다친 사람들은..?"


"이 곳은 특이체질 및 세상에서 흔히 말하는 능력자들을

위한 병원, 그리고 연구시설을 겸하고 있는 곳이란다

걱정 말거라 다행히도 다친 사람은 아무도 없단다

창문이 좀 깨지고 커튼봉들이 휘어지고 아이들이

가져온 식기들이 좀 날았을 뿐이란다."


"모리스!"


그의 주번에서 검은 테 안경을 쓴 다소 엄격해 보이는

인상의 여인이 남성을 살짝 다그치듯 소리쳤다

모리스라 불리운 남성은 겸연쩍은 표정으로

긴장을 좀 풀어주기 위해.. 별 거 아닌 일이었다고

알려주려던 것일 뿐이라며 쩔쩔맸고 이어 헛기침을

두어번 하고 다시 말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 너는 다른 아이들과 달리 조금 특별한 힘을 가졌을 뿐이란다 그런 만큼

그 힘을 제어하고 보다 바른 일에 쓸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싶지 않니?

그건 전적으로 네 의지와 선택에 달렸단다."


소녀는 낯선 시설의 풍경 그리고 낯선 사람들에게 둘러쌓인 상태에서 지난 기억들이 점차 창문을 열고 풍경들을 바라보는 것처럼 선명하게 떠올리기 시작했다.


오늘과 같은 일들이 또 일어나게 할수 없다는 생각에

잠시 손아귀로 바지 아랫단을 꾸욱 움켜쥐었던 소녀는

결심한 듯이 작지만 분명하게 대답했다.


"네 가르쳐 주세요."


"그것은 히어로가 되는거란다..!"


그 날 주고 받았던 대화는 소녀에게 새로운 의지를 심어주었고 그 날 이후 소녀의 삶은 큰 변화를 겪게 되었다.

히어로가 되겠다며 결심을 굳힌 후 그날 대화를 주고 받았던 고참 연구원 모리스의 주선으로

그녀와 비슷한 전격 계열의 능력자이자 이를 검술에 접목시킨 동양계 히어로 코드네임 '우뢰검'의

가르침 하에 그녀는 명상을 통해 자신의 심신을 가다듬는 방법을 익히게 되면서 능력이 통제를 벗어나

멋대로 방출되는 일을 차단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우뢰검이 가르쳐 준 것은 검에 전격을 휘감아 검기의 형태로 방출시키거나

검날이 부러져도 자신이 품고 있는 전력이 모두 소진되기 전까지 전격으로 이루어진 검날을

형성해낼 수 있는 기술이었다.


자신이 없어도 나날이 일취월장하며 자만에 빠져드는 것을 경계하며

스스로를 단련하는 것을 늦추지 않는 그녀의 모습을 우뢰검은 대견하게 바라보았다.

지금껏 자신이 사사한 인재들 중 가장 푸른 새싹과 같다고 생각하며 자신이 가르쳐준

기술들을 완벽히 구사하는 프리아를 독려하였고

그녀는 일반적인 학생들이라면 밟았을 고등교육 대신 사관 학교에 입소하면서

우수한 성적으로 약 2년만에 조기 졸업이라는 성과를 시작으로 곧장 초급 장교로서 활동하며

차근차근 히어로가 되기 위한 자격 과정을 밟아 나가게 되었고 드디어 자신을 사사해 주었던

존경하는 스승이자 세간에 널리 이름이 알려진 히어로 우뢰검의 사이드킥으로서 히어로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허허 예나 지금이나 매사에 최선을 다하는 것은 변하지 않았구나."


스승과 제자였지만 이제 동등한 눈높이로서 서게 된 제자가 대견하기도 하고

거의 십여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가장 그녀가 가진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라고 생각하며

머리카락 한올 나오지 않을 만큼 단정하게 머리를 넘겼지만 이제는 희끗희끗 흰머리가

보이기 시작하는 스승이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실로 오랜만에 마주하는 제자를 바라보며

손을 내밀었다.


"예 스승님 그 동안 건강하셨는지요..!"


힘 있게 손을 잡아 보이며 보기 드물게 진심에서 우러나온 미소를 짓는 프리아.

능력이 발현한 이유도 있고 복잡하게 얽힌 개인사로 인해 가족과 거의 의절하다시피한 그녀에게 있어

스승이자 아버지와 같은 사람이기도 했기에 언뜻 웃음을 잘 내비치지 않는 그녀로서는 보기 드물게

마음에서 우러나온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어려운 길이었을텐데 잘 이루어냈구나."


"힘든 순간이 많았지만 늘 스승님의 가르침을 생각하며 이겨내고 버틸 수 있었습니다."


"녀석 빈말도... 그럼 우선 식사부터 하고 순찰을 돌아보자꾸나 관할 구역에서 별다른 일이 없다면

실전은 딱히 겪을 일이 없을테니 보호해야 할 주요한 시설들이나 규모가 큰 상가들이 있어서

얼굴 도장을 찍는다면 이곳에서의 활동이 보다 원활할테니 한번 둘러보자."


"네...!"


그렇게 간단한 요깃거리를 마치고 두 사람은 도심의 곳곳을 살피며 잠시 들른

가게나 이따금씩 서로 협조 요청을 보내기도 하기 때문에 새로운 신입이라며

경찰 기관에 프리아를 소개해 주기도 하고 이따금씩 길을 걸으면서 우뢰검을 알아보며

손을 흔드는 사람들을 보며 프리아는 잘 모르고 있었던 스승의 다른 면들을 알게 되었다.


자신을 가르쳐 주었을때도 그랬지만 스승은 생각 이상으로 더 소탈한 사람이었으며

생각 이상으로 어린 아이들에게 인기가 좋기도 했다.

그를 알아보고 손을 흔드는 아이들에게 마주 손을 흔들어주는 스승의 모습은

자신이 어린 시절 기억하는 따듯한 모습 그대로이기도 했고..


스승이 늘 소지하고 다니는 붓펜의 용도를 알것만 같았던 날이기도 하다

달필로 유려하게 쓰인 히어로 네임을 사인으로 받은 아이들이

부모에게 자랑하는 모습을 프리아는 저도 모르게 그 자리에 멈춰서서 한참을 바라보았다.


그들의 등을 통해 투영되는 과거의 기억들을 떠올리는 그녀의 눈빛은 날이 저물어 가며

서녘 하늘로 저물어가는 햇살과 같은 그리움과 쓸쓸함이 깃들어 있었다.

그런 프리아의 모습을 바라보는 스승인 우뢰검 또한 이따금씩 함께 산보를 나섰을때

먼 하늘을 바라보던 어렸던 그녀의 모습을 떠올리며 쓸쓸한 표정을 띄웠고

이내 짐짓 미소를 지워보이며 잠시 드리웠던 한점의 그늘짐을 걷어내며 말했다.


"자 오늘은 이걸로 슬슬 마치고 모레의 일정을 야간 순찰로 잡아보자꾸나..

밤에는 더 한가하고 조용한 듯하면서도 신경 쓸 일이 많거든.. 수고했단다."


"네..! 스승님도 고생하셨습니다."


고개를 꾸벅 숙여보이며 허리춤에 매고 있던 검 두자루를 비스듬이 고쳐 매면서

아직 서늘함이 깃든 바람에 목도리와 높이 묶어올린 머리가 발걸음에 따라 흔들리는

뒷 모습을 잠시 바라보며 스승은 나지막이 제자에게 들려주고 싶지 않은

가슴 속의 응어리짐을 짧은 한숨으로 내뱉었다.


"녀석...."



++++


사이드킥으로서 활동하게 된지 사흘 남짓 되는 저녁 시간


본래 일찍 잠들었다 다음날 새벽이 밝아올 무렵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

오랜 습관으로 굳어졌던 터라 낮에 잠을 이루어야 하는 것이 썩 편하지 않았던 프리아는

잠든 듯 잠들지 않은 듯 어중간한 상태에서 눈을 감고 누워있다가 집합 시간이 되어

약속 장소에서 스승을 마주하였고 날이 완전히 저물어 어스름이 내려앉은

도심의 푸드코트에서 순찰 전 요기를 채우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언뜻 창가에 붙어있는 어린이 세트 구입시 증정된다는 귀여운 마스코트 인형의 모습이

프린팅 된 전단지를 바라보고 있던 프리아를 보며 스승이 넌지시 말했다.


"갖고 싶으면 하나 사지 그러니?"


"아.... 아 아닙니다... 그냥 음식이 나오기 전 어떤 말을 해야할지..

평소와 다른 시간에 잠을 청하는 게 흔한 일이 아니어서.. 약간 다소 멍한 상태인 거 같습니다."


"그러냐? 어린이 세트가 아니라도 잘 찾아보면 소위 말하는 어른이들을 위한 메뉴도 있으니까

나는 신경쓰지 말고 인형이 나오는 것으로 주문하렴."


예나 지금이나 속내를 꿰뚫어보는 것과 같은 예리함과 더불어 특유의 장난스러움은

그녀를 당황스럽게 하는 것이었다 쑥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다른 이들보다 약간

더 길게 솟아나온 두 귀는 발갛게 물들어 어떤 생각을 하는지 감추기 어려웠다.


"정말로... 괜찮습니다...!"


"나는 말이지 네가 좀 더 스스로에게 보다 유연하고 솔직했으면 하는 생각도 든단다.

자신에게 엄격한 것은 스스로를 다잡고 나아가는데 있어서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독이 될 수도 있어 갖고 싶으면 갖고 싶다고 확실하게 얘기할 때도 있어야지."


그렇게 말하는 스승의 앞으로 먼저 조리가 완료된 음식이 전달되었고 음식을 담은 쟁반

한 켠에는 전단지와 같은 마스코트가 그려진 작은 종이박스도 놓여 있었다.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분이란 말이지..


프리아는 젓가락으로 윤기가 자르르 도는 먹음직스러운 면 요리를 들어올려 작은 접시에 담기 시작하는

스승을 보며 희미하게 떠오를듯 말듯한 미소를 지었다.


"자 조금 들거라 네가 주문한 것은 언뜻 듣자하니 모자란 재료가 다시 입고되는데 5분 남짓 걸린다는 것 같더구나."


"감사합니다..!"


그리고 그 날도 한산해진 새벽에 이따금씩 히어로와 별개로 활동하는 경찰들이 조를 이루어

순찰이나 안전 점검을 하는 것 이외엔 적막함이 감도는 도시 외곽을 돌아보다가

항구에 서서 낮과는 달리 계속 바라보고 있노라면 저도 모르게 빠져들 것만 같은 검은 해수면에 드리워진

달빛 그리고 긴 항해를 마치고 돌아오는 선박의 선원들에게 집으로 향하는 이정표가 되어주는 등대가

멀리까지 빛을 흩뿌리는 것을 보며 점차 검은 물감을 뿌린 것 같았던 하늘이 서서히 하늘빛으로 밝아오는 것을

바라보는 그녀의 머리칼은 바람을 따라 흩날리고 있었다.


"오늘도 고생 많았구나 별반 재미도 없는 스승을 또 따라다니느라 힘들지? "


"아닙니다."


"녀석.. 빈말이라도 고맙구나."


요 얼마간과 비슷하게 해산 시간이 되어 허리를 꾸벅 숙여보이고 한번 즈음 돌아봄 직한데

자신이 바라보는 방향만을 향해 올곧게 나아가는 제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스승이

문득 소리내어 제자의 이름을 외쳤다.


"프리아..!"


스승의 목소리에 저도 모르게 뒤를 돌아본 프리아에게 작은 주머니 자루에 든 무언가가

날아왔고 프리아는 손을 뻗어 주머니를 잡아내며 의아한 표정으로 스승을 바라보았다.


"선물이란다. 얼른 들어가렴 오늘도 고생했다."


자신과 반대 방향으로 향하며 밝아오는 햇살을 받는 스승의 모습을 잠시 바라보던 프리아는

끈을 풀어 주머니를 열어보았고 주머니 안에는 전날 저녁에 스승이 주문했던 음식에 증정된

인형 상자가 들어있는 것을 보고 미소를 띄워보였다



++++


프리아가 견습 히어로로서 다시 재회한 스승의 사이드킥이 되어 업무를 수행하기 시작한지도

벌써 이주 남짓의 시간이 흘러갔다 그날도 별다른 일 없이 순찰을 하고 있을 때였다.

이따금씩 그런 때가 있었다 무언가 평소와 다름없는 날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잘못한 것도 없는데 뭔가 잘못한 것처럼 가슴을 옥죄는 듯한 느낌..

그런 알 수 없는 기분을 느낄 때면.. 무언가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난다는 지난 날의 기억들을

떠올리며 그저 기분 탓일 거라고 프리아가 고개를 흔들고 있을때



삐비빅 삐비빅


스승과 자신이 지닌 단말기에 동시에 알림음이 울리는 것을 시작으로 그 좋지 못한 예감은 맞아 떨어졌다.


"첫 실전이겠구나... 서두르자..!"


"네 스승님..!"


별다른 교통수단 없어도 금방 닿을 수 있는 지근거리의 시설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설비를 제어하는 컴퓨터에 이상이 생겨 폭주하고 있다는 협회의 안내 메시지를 확인한 프리아

는 스승과 함께 현장으로 향하며 저도 모르게 살짝 눈썹을 찡그렸다.


"도망쳐!!! 빨리!!! "


"얼른 방화 셔터 내려..!! 눌러! 그거!! 아니 올리지 말고!!"


혼란 속에서 도망쳐 나오는 사람들 그리고 현장을 어떻게던 수습해보기 위해 안감힘을 쓰다가

도리어 실수를 하는 사람들.. 상용화 시키기 전 이미 만들어진 로봇들을 출고 이전 테스트하고

AI 이식을 주 업무로 삼는 한 시설에서 협회의 메시지와 같이 컴퓨터에 이상이 생겨

내부의 시스템으로 제어되는 설비들과 일부 로봇들의 폭주가 일어나고 있는 급박한 상황이었다.


방화벽과 유사시 내부 봉쇄를 위한 셔터를 실수로 올렸다가 다시 내리고 있는 직원을

똑바로 보고 있는 무감정하고 생기가 깃들지 않은 붉은 빛 안광이 번뜩였고

직원이 미처 알아차리기도 전 그를 향해 강철의 육신을 가진 인형이 빠르게 날아들 때였다.


카앙!!!!


동체가 순식간에 두동강 나며 붉은 렌즈에서 빛을 잃는 것과 동시에

와장창창 바닥을 나뒹구는 로봇을 보며 순식간에 빛을 잃을 뻔했던 직원이

뒤로 나자빠져 덜덜 떨고 있을때 도포차림을 한 중년의 사내가 검을 뽑아들고

직원의 앞에 섰다.


"괜찮소? 서둘러 이곳을 피하시오 나는 히어로 협회의 인증을 받은 정식 히어로

우뢰검이라오.. 이곳은 우리가 맡아보겠으니 얼른 자리를 피하시오.


"우.. 우뢰검... "


조금전까지 죽을 뻔했다는 사실도 까맣게 잊은 듯 직원은 무언가 선망이 서린 듯한 눈빛으로

자리에서 일어나다가 재차 자리를 피해줄 것을 권고하는 스승의 말에 선뜻 따르며

직원은 짐짓 경례를 해보이고 이윽고 동료들의 뒤를 따라 빠르게 현장을 벗어났다.


"자 일단 증원 요청은 해두었으니 현재 이곳에서 가장 가까운 우리들이

증원이 오기 전까지 이 상황을 최대한 정리해보는 것이다 알겠지?"


"예..!"


허리춤에 매어든 검 한자루를 뽑아든 프리아는 이어 자신을 향해 쇄도하는 강철의 인형을 향해

빠르고 군더더기 없는 검격을 날렸고 이윽고 강철 인형은 베인 것과 더불어 검에 두른 전격에 의해

과부하가 일어나 1~2초 남짓한 시간 동안 부들부들 떠는 듯한 동작을 보이더니

비슴듬히 잘린 상체가 바닥에 떨어져 나뒹굴었다.


카가앙


동체가 요란한 소리와 함께 쓰러지는 것을 시작으로 몇대의 로봇들이 더 나타났고

스승과 프리아는 흡사 경쟁이라도 하듯 로봇들을 베어넘겼다.


카앙 캉 카가가각 카앙 깡


금속과 금속이 맞부딪히는 날카로운 쇳소리


파츠츠츠츠츠츠츠


이따금씩 두 사람이 검에 둘러내는 전격에 의해 오작동을 일으키는 로봇들이 이내

렌즈의 빛이 사그러들면서 작동을 멈추고 쓰러지며 새까맣게 타버린 회로에서

푸른 연기를 피워올렸다.


그리고 프리아와 스승이 바라보는 시설 내부의 깊숙한 어둠속에서

그들의 목덜미를 노리며 몸을 도사리는 맹수들과 같이 번뜩이는 붉은 눈동자 같은

불빛들이 이전에 상대한 숫자들을 아득히 뛰어넘는 무리를 이루며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스승의 검이 이렇게 매서운 것인지 처음 보았다.

불혹을 넘어 쉰의 반절을 넘겼음에도 스승의 검은 번개같이 자신에게 다가오는 로봇들의

동체를 베어내고 인공 AI가 자리한 칩이 들어있는 머리 부분을 찔러들어갔으며

흡사 검이 닿는 곳마다 매섭게 튀기는 푸른 불꽃들이 남기는 궤적은 흡사 너울대며

춤을 추는 것과 같은 유려한 칼부림이었다.


"하압!"


스승과는 반대로 적재적소에 절제된 동작으로 기계들을 베어넘기며

동작을 최소화 하면서도 프리아는 어딘가 지친 듯한 기색이었다.


'가능한한... 서둘러 상황을 정리해야 할 것 같아..'


쓰러진 로봇들이 산을 이룰 것처럼 쌓여감에도 대체 얼마나 많은 로봇을 적재했길래

그들을 향해 붉은 안광을 번뜩이며 다가오는 로봇들의 수는 끝이 없었고 이내

작은 비행기의 형태를 띈 것까지 그들의 머리 위를 날기 시작했다.


그것들을 검에 둘러낸 전격을 휘둘러 격추시킨 스승이 안색이 좋지 않은 프리아를 보며

호홉을 가다듬고 말했다.


"이래서야 끝이 없겠군.. 프리아..! 혹시 어딘가 안 좋은 것이냐 안색이 좋지 않다..!"


"괘... 괜찮습니다..!"


공중제비를 돌듯 공중에서 몇차례 곡선을 그리며 자신과 스승을 향해 날아든 공중형 로봇들을

베어낸 프리아가 이를 악물듯 대답했고 프리아의 공격에 날개나 동력원을 잃은 로봇들이

방화벽이나 벽에 부딪히며 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이 나는 것을 보며 스승이 혀를 찼다.


"안 괜찮아도 괜찮다고 할 게 아니냐.. "


문득 스승은 무언가 떠오른 듯 말했다.


"그래.. 그러고보니.. 요즘 저런 기계들은 어떤 연결망을 통해서 일시에 조종을 하고 움직일 수가 있다지?

그러면 이 곳에 자리한 그 중심이 되는 제어 컴퓨터를 부수거나 우리들의 능력으로 과부하를 일으킨다면

이 상황을 금방 정리할지도 모르겠다."


"아..! 그렇다면.. 그것의 위치는 어떻게...?"


"저것들이 나오고 있는 곳을 따라가거나 협회의 지원을 받아야겠지 프리아..! 단말기로

협회에 연락을 취해보거라!"


"네.'


서둘러 단말기를 꺼내들고 협회의 네트워크에 접속하길 기다렸다는 듯이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상황은 어떻게 돌아가는건지 왠만큼 알고 있었다네 마침 연락을 주려던 참이야."


"모리스..!"


스승과 마찬가지로 사관학교에 들어간 이래 몇년 만에 화상을 통해 비쳐지는 낯익은

사람의 얼굴을 보며 프리아는 저도 모르게 놀라움과 반가움이 배어든 얼굴을 띄웠다.


"잘 지냈니 프리아? 더 이야기하고 싶지만 그것은 나중으로 미루고 거두절미하고

우리 쪽에서도 이 시설 관리팀의 협조를 얻어 네트워크 간섭을 통해 가동 시설들과

로봇들을 정지하고 싶었지만 어떠한 연유에서인지 강한 방화벽 탓에 접속이 되지 않더구나..

남은 것은 자네들의 힘으로 메인 컴퓨터를 정지하는 수 밖에 없어.


지금 바로 위치를 띄워올릴테니 이제 곧 도달할 증원 부대의 엄호를 받으며 임무를 수행해주길 바란다..!

부탁한다."


이어 단말기에서 모리스의 얼굴이 사라지고 화면에는 시설의 약도와 지하 2층 남짓에 메인 컴퓨터가 표시된

방이 표시되는 것을 보고 즉각 스승과 프리아는 행동에 나섰다.


카각카각 카각 그들을 향해 한번에 쏟아져나오는 로봇들은 자기들끼리 엉키기도 하고 좁은 통로를

한번에 빠져나가려다 서로를 옭아매면서 바닥에 넘어지기도 하고 그 자리에 걸려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강제로 비틀어 움직이다가 다리나 팔을 잃는 둥 통제되지 않는 움직임으로 그들을 쫓기 시작했다.



탁탁탁탁 계단을 내려서 통제 구역이라 씌어있는 육중한 철문틈으로 검을 찔러넣고 전류를 흘려보내자

철컥 하는 소리와 함께 잠금장치가 허무하리만큼 손쉽게 해제되고 두 사람은 검을 통해 흘려보내는 전류로

밝혀지는 시야를 제외하고 칠흑같은 어둠 속으로 온갖 배관들이 얽혀있는 시설의 중심으로 향하였다.


"이런.. 뭐가 나올지 모르겠구나.. 긴장을 풀지 말거라."


"스승님도 조심하십시오."


그리고 얼마간 갖은 전선들이 즐비하게 늘어진 구역을 따라 걸었을까

점점 가까워지는 빛 무리가 눈에 띄었고 가까이 다가선 그들이 본 것은

오랜 옛날 쓰였다는 구형컴퓨터와 비슷한 설비들이 늘어서 있고 기계들에 연결된

여러 대의 모니터들에 출력된 화면에선 알 수 없는 기호들이 미친듯이 출력되고 있었다.


"이 곳이로군.."


스승과 프리아가 검날에 다시 전격을 두르고 있을때 문득 눈 앞의 목표에 온 감각을 집중하고 있던

그들이 간과하지 못한 것이 있었으니.. 스승의 뒷편에서 지금까지 쓰러뜨려온 로봇들의 키를 아득히

뛰어넘는, 갖은 기계 설비가 마구잡이로 섞인 것만 같은 다소 조악한 모습의 로봇이 몸을 일으켰고

스승이 미처 대응할 틈도 없이..


퍼억


"스승님...!"


맞은 편 벽에 날아가 부딪힌 스승은 털썩 고개를 모로 떨구며 쓰러졌고

그의 손에서 떨어진 검은 그 빛을 잃고 어둠 속에 잠겨들었다.


프리아의 외침에 반응하기라도 하는 듯 이 공간에 늘어진 모니터들에선 다소 신경질적인 느낌으로

문자 배열들이 출력되기 시작했고 붉은 색 글씨로 화면에 대문짝 만한 단어를 띄워올렸다.


-침입자... -


그리고 이어 출력되는 짧은 단어는 저도 모르게 모골이 송연해지는 것이었다.


-제거-


프리아는 자신에게 날아든 육중한 기계팔을 피하며 바닥에 내려꽂힌 주먹을 다시 뽑아내고자

둔한 움직임으로 몇번 몸체를 까딱이고 있는 로봇의 뻗어진 팔을 타고 오르며 이전까지의 로봇들과

비슷한 약점이라고 여겨지는 붉은 안광을 내뿜는 렌즈에 전격을 두른 검을 찔러넣었다.


까드듣드득 쨍..!


날가로운 소리와 함께 렌즈가 박살나며 일순간 로봇의 동작이 멎었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착각에 불과했다

검을 미처 회수하기도 전 자신에게 갑자기 날아드는 주먹을 가까스로 피해낸 프리아는

점차 호홉이 가빠지는 것을 느꼈다.


"허억.... 허억..."


증원군은 아직일까.. 스승님은 무사하실까.. 지체할 시간이 없는데..


등에찬 두개째의 검집에서 두번째 검을 뽑아든 프리아가 다시 검에 전격을 두르기 시작했지만

검에 둘러진 기운은 이전보다 희미하고 미약해져가는 것이었다.


"......!"


프리아는 거대한 로봇이 다시 자신에게 팔을 뻗어내기 전 검을 높이 쳐들았다가 이곳의 중앙

설비중 하나에 푹 꽂으며 자신이 가진 전력을 몽땅 방출할 기세로 흘려보냈다.


그러나..


일순간 그녀의 머리칼은 여름의 푸른 하늘 아래 펼쳐진 바다 같은 푸른 빛을 잃었고

어린 시절 세계의 미스터리 도감에서 언뜻 보았던 소유주를 죽음으로 몰아넣는다는 저주받은

보석과 같은 어두운 빛으로 변하고 말았다.


그녀가 걱정하던 일이 일어나고야 말았다.

달에 한번 그녀의 몸에 감도는 마나의 기운이 이지러지고 더 이상 전력을 방출할 수 없게 되는

순간이 찾아오고야 말았다.


'이런 젠장.........'


중요한 사안인데 별다른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요 며칠간 방심한 탓에 벌어진 사태에

자신을 뼈저리게 책망하면서 프리아는 이윽고 자신에게 날아드는 육중한 몸체에게 저항하기 위해

검을 들고 돌진하였고 그것의 언뜻 가벼운, 하지만 자신에겐 더없이 매섭고 무거운 충격이 가해지는 순간

스승과 같이 벽에 세차게 부딪힌 프리아는 목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오는 것 같다고 생각하며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울컥 솟아난 핏줄기를 내뱉으며 그 자리에 모로 쓰러졌고 점점 의식이 아득해지는 것을 느꼈다.


아주 어린 시절 가장 행복했던 생일 날 한 손은

자신의 손을 잡고 한 손은 풍선을 들고 같이 걸어주던 부모님의 마지막 기억..


학교에서 능력이 발현하기 전 친구들을 새로 사귀게 된 새학기의 기억들


그리고 스승을 처음으로 마주했을 때의 기억이 주마등처럼 프리아를 스치고 지나갔고

그녀는 점차 어둠 속으로 잠기는 것과 같은 의식 속에서 문득 무언가를 떠올렸다.


"네? 제가요? "


프리아가 땀에 젖어든 이마를 스승이 건내준 수건으로 닦아내며 반문했다.


"그래 너는 아무래도 보이는 것 이상으로 더 큰 힘이 있는 것 같구나."


프리아는 자기도 모르게 손을 멈추고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를 떨구었다.


"글쎄요... 저는 지금 이 능력만으로도.. 때론 너무 무서워서.."


스승은 그도 이해한다는 듯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그럴 법도 하지 능력자들 대부분이 준비되지 못한 상황에서 능력을 각성하면서

자신이 지닌 본연의 힘을 다 이끌어내지 못하고 무의식적으로 이를 평생 발현하지

못하고 사는 경우도 많다고 들었단다... 나의 경우에도.. 내가 처음 능력자란 걸 알게 되었을땐

많이 놀라고 두려웠지.."


늘 자신의 앞에서 밝은 모습만 보이고 어떤 일이 있어도 자신을 지켜줄 것만 같은 듬직한 어른인

스승님도 무서운 게 있어요? 하고 물어보고 싶은 표정으로 프리아가 고개를 들자 스승이 따듯한 웃음을 지어보이며 말했다.


"프리아는.. 정의를 위해 히어로가 되고 싶다고 했지?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자신과 같은 사람이 나오지 않게

도와주길 바란다고.. 이 사부도 그렇단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떤 일이 생겼을때 누군가의 도움 없이

홀로 해결해야 할 일이 생길때도 있지 않겠니? "


"저는 그런 대단한 걸 바라진 않아요.."


"비단 히어로서의 삶이 아니라도 네가 무엇을 바라는지.. 스스로의 본질에 대해 자각하고

받아들인다면 더 높은 경지를 이룰 수 있을지도 모르지.."


마음 한켠에 바라고 있지만 애써 바라지 않는 것처럼 외면해왔던 욕망, 그리움, 갈망들이

고개를 들고 일어서려 하지만 그녀는 도리질을 치며 안된다고 소리를 쳤다.


-왜 안되는데?-


스승은 온데간데 없이 푸르게 타오르는 불꽃.. 아니 저건 흡사


여우와 같은 형상을 띈 무언가가 타오르듯 밝은 빛을 발하며 프리아를 바라보고 있었다.


-왜 안되는건데?-


-그거야... 나는 위험해...나는 평범한 사람들과 같은 삶을 누릴 생각을 해서 안돼...-


-왜 안되는건데? -


-왜... 왜냐하면.... 왜냐하면..-


어린 프리아는 들고 있던 죽도를 저도 모르게 떨어뜨렸고

죽도는 바닥에 떨어져 달칵이는 소리대신 땡그랑 하는 소리를 내며

현재의 프리아가 들고 있던 마지막 검이 되어 떨어졌고


어린 프리아는 장성한 현재의 모습이 되어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는 작은 형상을 바라보았다.


-너는 네가 느끼고 바라는 것에 솔직하지 못해.. 그걸 오롯이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인간으로서도

더 강해질 수 있는거야.. 자신을 애써 묶어두려 하지마. 그리고 나 또한 자유롭게 만들어줘..

그러면 네가 고민하고 힘들어하는 것들은 생각 외로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해결될 수 있어.-


그리고 작은 형상은 이내 빛을 내며 자신과 거울을 마주한 것 같은 모습이 되어

그녀를 똑바로 응시하였고 프리아에게 손을 뻗어보였다.


-................... -


....고 싶다.. 갖고 싶은 것도 많다.. 여느 또래들과 같이 어린 시절 못 가본 곳들로 놀러가고 싶고..

이런 자신이라도 괜찮다면 자신을 이해해주는 사람과 사랑을 하고 함께 평범한 삶을

영위하고 싶기도 했다.. 그리고 귀여운 동물들도 길러보고..


자신이 애써 외면해 왔던 크고 작은 욕망들이 떠올랐고 그녀는 문득 스승이 지난 번에 넘겨준

인형을 받아들고 미소를 띄워올렸던 것을 기억해냈다.. 그래.. 스승님은 다 알고 게셨구나..


프리아는 자신에게 손을 내민채 우뚝 서있는 자신의 형상을 향해 천천히 손을 내밀었고

이내 그 형상은 녹아들듯 자신에게 들어오는 것을 보고 헉 하고 숨을 들이쉬는 것과 동시에

아득해져 가던 의식은 다시 또렷하게 회복 되었다.


프리아는 자신의 옆에 떨어져 있는 검의 손잡이를 발견하고 다시 주워올렸지만

자신의 두번째 검 또한 부러져 아주 짧은 날만을 남긴 상태였다.


불가능할 것이라고 평소 같으면 헛된 시도일거라고 시도하지 않았을테지만

프리아는 검의 손잡이를 쥐고 정신을 집중하였다.. 여전히 미동도 하지 않는

검날에 온 의식을 집중시키며 전격으로 이루어진 검날을 머릿 속으로 떠올리며


두 눈, 그리고 귀가 뜨겁게 달구어지는 것과 같은 느낀이 든다고 생각할때

그녀는 일순간 자신에게 일어난 변화를 자각할 수 있었다.

어째서인지 알 수 있었다.


이전보다 더 뚜렷하고 긴 형태를 이루는 검날.. 그리고 자신의 뒤에 달려있는 것은


".......꼬리?"


형태를 띈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모호한 형태로 흡사 몽실한 솜사탕을 떠올리게 하는

폭신한 꼬리같은 형상이 떠올라 있었고 검의 손잡이를 쥐지 않은 쪽으로 살짝 머리를 더듬어보자

머리 위엔 보드라운 감촉의 귀가 뾰족 솟아올라 있었다.


"...................?????????"


영문을 알 수 없었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다 프리아가 다시 일어난 것을 감지한

로봇이 다시 프리아에게 접근해 육중한 주먹을 날렸지만 이를 가볍게 피해낸 프리아가 아래에서 위로

올려베며 베어든 선을 따라 로봇은 일순간 일시정지 버튼을 눌리기라도 한듯 그 자리에 멈춰서 있다가

이내 비스듬히 잘린 검흔을 남기며 형체를 잃고 허물어졌다.


프리아는 메인 컴퓨터를 향해 한걸음 더 다가섰다.


화면에 출력되는 붉은 빛들이 얼굴에 비쳐졌고 그녀의 눈동자에도 붉은 기운을 감돌게 하는 것 같았다.

이윽고 검을 든 프리아는 이전과 비할 수 없는 전격을 담아 머리 높이 검을 들어올렸고

그에 따라 그녀의 뒤에 펼쳐진 꼬리와 같은 형상은 일순간 부풀었다가 그녀에게 다시 스며들면서

그녀가 높이 세운 검의 끝을 향해 모여들어 작지만 강력한 에너지 반응을 일으켰다


그리고 그녀는 높이 세워들었던 검을 곧장 이곳의 중심을 이루는 전선이 연결된 기계의 중심부에

검을 찔러넣었고 모니터 화면들엔 연신 ERROR 라는 글자가 떠오르는 것을 시작으로

이내 눈 앞의 모든 광경이 하얗게 물들어가는 것만 같다고 느끼며 다시 헤어나올 수 없는

늪 속으로 하염없이 빠져드는 것만 같은 기분을 느끼며 언뜻 자신들을 향해 소리치는

목소리들을 들은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눈을 감았다.



+++++


그리고 그 일로부터 다시 한달 남짓의 시간이 지나 다행히도 생명에 지장이 가는 부상을 입지 않았던

프리아와 스승은 협회에서 지원해주는 병원에서 퇴원을 하고 다시 업무로 복귀하며 평소와 같은

아니 보다 더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공원에 앉아 하얗고 예쁜 꽃봉오리가 얼마전에 내린

비로 바닥에 떨어져 우중충하게 물든 것이 아쉽지만 파릇파릇 여름을 알리는 푸른 잎이 돋아나기

시작하는 나무들이 줄지어 늘어선 공원 한켠에서


언제나 그렇듯 인자하면서도 가끔 장난기가 어린 미소를 짓는 스승과 정 반대로

프리아는 평상시와 달리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시선으로 스승을 마주보고 있었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은퇴..?"


"그래 때가 되었지 이젠 나도 슬슬 새로운 젊은이들에게 뒤를 맡기고 떠날 때가 되었다는 것을

알았으니 더는 걱정이 없어.. 그리고 마지막 활동을 자랑스러운 수제자와 할 수 있었다는 것에

더 바랄게 없단다."


어릴때 가끔 주눅이 들었을때 그 모습 그대로 몸만 컸지 여전히 어린아이 같은 면이 있다고 생각하며

주눅이 든 제자의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한편으론 정말 이런 아이를 혼자 두어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자신의 제자는 이미 자신이 없어도 오롯이 일어서고 걸어나갈 수 있는 어엿한 어른으로서

일어섰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스승은 이제 제자가 아닌 자신의 뒤를 이어갈 어엿한

한 사람으로서 인정하고자 자신이 가장 귀중하게 여겨온 검 두자루중 하나는 프리아에게 건내주었다.


"받거라 우리 가문에서 대대로 전해 내려오던 야금술을 통해 재련해낸 검이란다

우리의 능력을 머금는데 있어 보다 특화되고 휘어질지언정 꺾이지 않는 검이기도 하지

이제는 네가 나 대신 소중히 간직해주길 바란다. "


"..........스승님..!"


어딘가 울듯 말듯한 표정으로 애써 감정이 비어져 나오는 것을 참으려 애썼지만

이내 자신에게 달려들며 울음을 터뜨리는 제자의 등을 토닥여주며

스승은 껄껄 웃음을 터뜨렸지만 그의 눈에도 눈물 한방울이 어려있었다.


그렇게 스승이자 아버지와 같았던 히어로네임 우뢰검은

C시티의 어느 작은 공원에서 히어로로서 활동한 긴 시간을

마치고 자신의 제자이자 딸과 같은 아이에게 자신의 가장 소중한 물건을 내어주고

모든 것을 내려놓고 현역에서 물러가게 되었다.


이제 자신이 가르친 아이가 훌륭히 장성해

오롯이 자신의 길을 걷는 것을 먼발치에서 보고 듣는 것만으로도

더 이룰 것이 없다고 여기며..


"이제 가보도록 하마.. 간만에 정말 오래간만에 고향으로도 돌아가고 지금껏 하지 못했던 일들도

좀 해결하고.. 여행도 떠나보도록 할 것 같단다.. 그러다보면 어쩌다 또 마주칠 날이 있겠지..

부디 건강히 잘 지내렴."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저도 다시 뵙게 될때 보다 어엿한 사람으로서 스승님을 마주하고 싶습니다.

부디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그렇게 인사를 나누고 각자 반대의 방향으로 걸어가며 문득 서로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거의 동시에 등을 돌려 서로를 마주한 그들은 멀리서도 확연히 알아볼 수 있을 것 같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서로에게 손을 흔들었고 다시 각자의 길을 향해 걸어나갔다.


새로운 시작을 하기 더없이 좋은 이제는 확연히 따듯해지는 바람을 머금은

5월의 어느 평온하고 따듯한 날이었다.


푸드드득 프리아가 지나는 길을 따라 날아드는 비둘기들이 그녀에게 드리워지는 햇살을 날갯짓으로

가리며 날아올랐고 도시의 바쁘지만 평화로운 한 때가 자아내는 따듯함을 바라보는 그녀의 입가에도

조용하면서 따듯한 미소가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