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취..."


"괜찮아?"


"미안... 이렇게 몸살 날 줄 알았으면 약속도 안 잡는 건데."


"괜찮아. 그래도 같이 있는 게 어디야."


원래대로라면 거리를 돌아다니며 데이트를 하고 있었을 것이다. 원래대로라면...


그런데 지금 있는 곳은 토우야의 집이었다.


당연히 아무도 없었다.


토우야에겐 익숙했지만, 코하네에게는 아니었다.


너무 당황스러웠다. 아프다고 한 순간 다짜고짜 이곳으로 와버렸으니...


전말은 이랬다.


코하네는 전날부터 몸에 이상을 느꼈지만, 토우야를 실망시키기 싫어서 약속한 장소까지 나왔다.


그러다 토우야의 집 가까이 와서 탈진해버린 것이었다.


사실 토우야도 어느 정도 눈치채고는 있었다. 유독 움직이기 편하게 후드티와 치마 정도만 입고 왔으니까.


더해서 걸음걸이가 엇박자라는 것도 캐치했으니까.


길거리에서 퍼진 코하네를 다시 집으로 돌려 보내긴 어려웠다. 그래서 토우야가 그나마 가까운 자기 집으로 끌고 온 것이었다.


물론 코하네의 의사는 묻지 않은 결정이었다.


코하네가 불편하지 않게 허리를 굽힌 채 부축하면서 올 정도로 토우야는 사려 깊었으니까.


"고마워... 고마운데... 아오야기 군 방에 눕힐 필요가 있었을까...?"


"소파보단 침대가 더 나을 거라 생각했어. 불편해? 거실로 갈까?"


"아, 아니야...! 그냥, 그냥... 좀 부담스럽달까."


"부담 갖지 마. 어차피 한 번쯤 데려오려 했으니까. 이런 타이밍일 줄은 몰랐지만."


"우으..."


지금 드러나는 홍조가 열로 인한 건지, 부끄러움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이런 상황에도 토우야의 무표정한 배려는 매력적이라는 것이었다.


아픈 만큼 콩깍지가 씌었던 건지, 원래도 잘생겼던 토우야가 지금만큼은 세상 그 누구보다도 아름다워 보였다.


가끔씩 시야가 흐려지기도 했지만.


그러다 보니 조금은 칭얼대고 싶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바로 옆에서, 그것도 본인의 방에서 그러는 걸 원하기나 할까... 계속 고민했다.


"아즈사와."


"응?"


"뭘 그렇게 생각해?"


"그냥... 여기서 더 아파질 지 궁금해서."


"무서워?"


"그건 아니야... 그냥, 그냥... 아니야."


기댈 곳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쉽사리 말할 수는 없었다.


자기 집으로 끌고 와 자기 방, 자기 침대에 눕혀준 사람에게 할 말이 아닌 것 같았으니까.


"..."


"아즈사와. 괜찮아?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 같은데."


"그냥... 미안해, 너무 민폐가 되는 것 같아서."


"아니야, 난 아즈사와가 편하면 충분해. 아픈 사람한테 할 말은 아니지만... 그렇게 누워 있어도 귀여운 건 별다를 것 없네."


"고맙다고 해야 하나... 미안하다고 해야 할까..."


"미안하단 말은 됐어, 조금 더 어리광 부려도 돼."


어리광을 허락하는 한마디에 코하네의 이성의 끈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토우야에게 어리광부리고 싶었던 때가 한두 번이 아니기도 했고.


"그래도 돼...?"


토우야는 눈썹을 조금 움직였다. 나름 당황했다는 표시였다.


이윽고 웃으며 손을 움직여 이불을 살짝 걷었다. 그리고 드러난 코하네의 손을 살포시 잡았다.


"응, 오늘의 데이트는 맘껏 애교 부려주면 좋겠어."


"나 그런 거 잘 못 해..."


"해주면 안 돼?"


"에?"


이게 무슨 상황일까. 농담 삼아 던진 한마디에 코하네의 눈동자가 마구 흔들렸다.


어쩌면 지금이 기회일지도? 그러다가 결정했다. 이성의 끈을 조금 풀어보기로.


"계속 있어줄 수 있어?"


"물론."


코하네는 토우야의 손을 잡고 천천히 끌어당겼다.


이성을 조금 포기한 만큼 솔직해질 수 있었다.


그리고 힘을 뺀 목소리로, 부드럽게, 조금은 애절하게 말했다.


"나... 조금만 기대도 될까?"


코하네는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그러면서 토우야의 손을 가슴에 가까이 끌어당겼다.


당연히 토우야는 기대에 부응했다. 무표정한 얼굴에서 옅은 미소를 띄우며.


"당연하지. 일단 손 좀 잠깐 놔줄 수 있어?"


"...싫어."


"옆에 앉으려 그래. 잠깐만."


"알았어."


토우야는 손을 스르르 떼며 침대에 걸터앉았다.


코하네는 이번엔 양손으로 그의 팔을 감싸며, 옆에 달라붙었다. 그러고선 볼을 팔에 부벼댔다.


이 정도를 바란 건 아니었는데...


토우야는 코하네가 정말로 힘들었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자신을 위해 억지로 몸을 가누고 찾아와준 그녀가 고맙게 느껴졌다.


"후후, 너무 붙으면 옮을 수도 있는데."


"몸살이잖아... 감기 아니야, 괜찮을 거야. 아마..."


"자리 좀 옮길까... 조금만 옆으로 가줄 수 있어?"


"아픈 사람한테 움직이게 하기야?"


"부탁할게."


"알았어."


코하네는 벽 쪽으로 몸을 당겼다.


그녀가 원래 있던 위치에 토우야가 양반다리로 앉았다.


침대 헤드에 등을 기대자마자 코하네는 다시 달라붙었다.


"후후, 이러다 나중에 부끄러워서 정신 못 차리는 거 아니야?"


"나도 한 번 쯤은 좋아하는 사람한테 달라붙고 싶었단 말이야..."


"그렇구나, 좋아?"


"응, 아오야기 군 엄청 좋아."


코하네는 똑같이 헤드에 등을 기댄 채, 다시 토우야의 어깨에 머리를 맡겼다.


그녀는 말했다.


지금은 계속 이러고 있고 싶다고.


보드라운 살결이 가끔씩 목에 닿일 때마다 전율이 느껴졌다.


세상에 아픈데 이렇게 귀여운 사람이 존재할 수 있을까 생각되기도 했다.


토우야에게 있어서도 기회이긴 했다.


평소에 남들 샛각하느라 늘 말을 가리고 조심히 하던 코하네.


그녀가 지금 이성을 놓은 채 완전히 몸을 자기에게 맡기고 있었으니까.


물론 토우야를 좋아한다고 먼저 코하네가 고백하긴 했다.


그렇게 자연스레 사귀게 되었고, 그때부터 종종 데이트를 하다가 지금의 상황까지 오게 된 거였고.


그래서 궁금해졌다.


그때의 심정을 지금 물어보면 본심대로 대답해줄까?


좋아하는 것은 확실하지만 그 이유가 얼마나 귀여울지 궁금해지는 순간이었다.


"아즈사와, 내가 좋아?"


"응, 엄청 좋아."


"왜 좋아?"


"으응. 아오야기 군은 안쨩이나 시노노메 군하고는 다른 따뜻함이 있었어. 이상하게 차가우면서 따뜻한 그런 거. 이끌려버린 거야."


"그렇구나. 난 늘 옆에서 성장하는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았어. 그것 외에도 너무 귀여워서 가까이하고 싶은 것도 있었고."


"헤헤, 다들 나 귀엽다고 해주네. 고맙게... 아오야기 군도 그만큼 잘생겼어."


지금의 코하네는 브레이크가 풀린 상태. 본능적인 어휘만을 내뱉을 수 있는 상태였다.


그럼에도 감사를 표하는 것. 그녀가 얼마나 착실한 사람인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나, 나... 갑자기 눈물 나오려 하네."


"...?!"


토우야는 급히 고개를 돌렸다. 코하네는 이미 양손으로 눈가를 살짝 비비고 있었다.


갑자기 왜 울어버리는 거지?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하지만 걱정은 잠시였다. 아프거나 힘들어서 그런 것은 절대 아니었다.


흐느끼는 소리는 하나도 없었고, 힘 빠졌지만 또렷한 목소리가 그 이유를 말해줬으니까.


"나... 이렇게 멋진 사람이 날 좋아해주는 거. 너무 행복해... 이래도 될까 생각될 정도로."


"휴."


"이런 사람이 어딨어. 갑자기 약속 깨버린 주제에 남의 방에 누웠는데도 좋아한다는 소리 계속 듣고 어리광 부리고 있는데..."


"난 그것까지도 좋아."


"왜 자꾸 그러는 거야, 나 부담스럽잖아... 아직도 아오야기 군을 좋아하는 데 부족하지 않을까... 계속 생각하고 있었는데."


코하네는 고개를 푹 떨구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얼굴에서 떨어진 양손은 다소곳이 모여 이불을 꽉 붙잡고 있었다.


착해서, 너무나 착해빠져서 사랑을 감당 못하는 사람.


너무나 부담스러운 호의에 눈물을 터뜨리는 사람.


성실함에 가려진 여린 모습이 코하네의 본심이었다.


"부족하다니. 차고 넘치는데."


"아오야기 군은 몰라도, 난 그렇게 생각이 안 된단 말이야... 자꾸 부족한 것 같아, 나 계속 따라가질 못하는 것 같단 말이야. 그래서... 그래서...!"


끝없이 이어지는 자기비하적 사고. 마치 처음 만났을 때와 비슷해 보였다.


토우야는 생각했다. 지금은 그때와 다르다고. 바로 옆에 도와줄 사람이 있다고.


토우야는 말없이 코하네를 와락 끌어안았다.


그리고 머리 뒷쪽을 천천히 쓰다듬었다.


본능적이었다.


스스로에게 상처를 주고 있는 그녀를 본능적으로 구해주고 싶었다.


"괜찮아, 괜찮아..."


"..."


괜찮다는 말이 조금 반복되고, 훌쩍이는 소리만이 방을 채울 뿐이었다.


그럴 때마다 토우야는 더욱 코하네를 껴안았다.


부담? 잔뜩 느끼라지. 나는 그렇게 차고 넘칠 정도로 너를 좋아하고 있으니까.


마음속으로 그런 말이 녹음되었다. 다만 지금은 꺼낼 수 없었다.


쿵쿵 뛰어대는 심장이 그녀의 눈물을 조금이라도 지워줄 수 있다면, 이대로 있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코하네를 껴안고 있을 뿐이었다.


"...아오야기 군."


"응."


"미안해, 어리광 정도가 아니라... 나 요즘 이유 없이 힘들어서... 힘들어서 그랬어."


울음을 그친 또렷한 목소리가 토우야의 귓바퀴를 타고 흘러 들어왔다.


눈물을 쏟아내고 나니 다시 돌아온 것이었을까? 토우야는 대답했다.


"힘들면 나한테 기대줘. 좋아하는 사람이란 건 그런 거잖아."


"그런데 자꾸 미안하단 생각이 드는걸... 나 혼자서 부담을 막 가지게 돼. 그럴 때마다 내가 싫게 느껴져."


"...그게 아즈사와의 본성이라면 어쩔 수 없지만, 적어도 나한테 안 그랬으면 좋겠어. 시라이시도, 아키토도 아닌 내 앞에서."


"아오야기 군 앞에서..."


토우야도 어느 정도 브레이크가 풀린 것 같았다.


그러한 상황을 독점욕으로서 가감 없이 드러내고 있었다. 이어서 그는 고백하듯 말했다.


"아즈사와. 네가 힘들어 하면 나도 힘들어. 네가 기뻐하면 나도 기뻐. 좋아한다는 건 그런 거야. 내가 너를 좋아하는 만큼, 네가 나를 좋아하는 만큼."


"물론 울어도 돼. 힘든 건 마음껏 털어내도 돼. 대신에 조금은 변했으면 좋겠어. 네가 무심하게 친절하다고 했던 것처럼, 나는 보이는 그대로니까."


"아, 아아... 나 또 울게 할 거야?"


"부담 안 가지겠다고 약속하면 울어도 돼."


"이러면, 이러면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겠잖아...!"


"괜찮아, 편하게 있으면 돼."


"...몰라!"


코하네는 고개를 휙 돌렸다.


이번엔 낯뜨거운 말들의 연속에 부끄러움을 표출하는 것 같았다.


토우야는 그런 그녀를 보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웃고, 울고, 부끄러워 하고, 진심을 말하고.


다양한 말과 행동이 코하네의 마음 속 짐을 덜어내는 행위라고 믿고 있었으니까.


"역시 뭘 하든 귀엽네."


"자꾸 그럴 거야?"


바로 지금. 조금 전 마음속에서 녹음해둔 말을 그대로 꺼냈다.


완벽한 타이밍에 전해진, 상당히 낯뜨거운 말은 코하네의 마음을 자극했다.


"...나 못 참겠어."


코하네는 갑자기 이불을 걷어내고선 몸을 돌렸다.


그리고 토우야에게 정면으로 안겼다.


그리고 느꼈다. 서로의 고동이 점점 빨라지고 있다는 것을.


"과격한데."


"가끔은 이런 것도 필요하다고 배웠으니까."


"오늘은 아즈사와가 아닌 것 같은데."


"맞아. 그러니까 이름으로 불러줘."


"그래도 돼?"


"응."


토우야가 알던 아즈사와는 적어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세상에 없었다.


지금 자신의 품속에서 커다란 사랑을 내뿜는 코하네가 있을 뿐.


"...코하네, 이렇게 있는 것도 힘들진 않아?"


"응, 힘들어. 그러니까 잘못하면 잠들지도 몰라, 토우야 군."


쿵.


그 어떤 누군가가 생각했을까.


코하네가 토우야를 이렇게까지 몰아세우며 자극할 거라고.


토우야는 느꼈다. 이게 설렘이구나. 너무 강하게 느꼈다.


조금씩 감기려 하는 눈을 억지로 뜨면서까지 코하네는 무언가 하고 싶어하는 것이 있어 보였다.


토우야는 품에 깊게 안긴 코하네에게 물었다.


"코하네. 지금 제일 하고 싶은 게 뭐야?"


"응, 눈 감아봐."


순순히 말을 들어줬다. 또 무슨 귀여운 행동을 할까 너무나 기대되었기에.


하지만 예상과는 꽤 많이 달랐다.


눈을 감은 사이에 일어난 일은 바로 키스였으니까.


쪽. 잠깐 입술이 부딪혔다.


토우야는 바로 눈을 떴다.


처음 느껴보는 보드라운 감촉에 온몸을 돌고 도는 짜릿함이 강력하게 느껴졌다.


"어..."


"...부담 나누기야."


결국 토우야도 이성의 끈을 놓쳐 버렸다.


겨우 정신을 차리려 하는 코하네. 토우야는 그녀의 허리를 양손으로 붙잡았다.


그리곤 고개를 살짝 숙이며 입을 맞췄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코하네는 눈을 크게 뜨며 손을 조금씩 움직였다.


"읍... 토우야 군..."


"네 잘못이야. 스위치가 눌려 버린 건."


"...난 몰라."


코하네는 토우야의 머리를 양손으로 부딪혔다.


그리고 잡아당겼다.


거의 박치기 수준으로 빠르게 부딪힌 머리, 그리고 입술은 또다시 애정을 나눴다.


아무도 없는 집. 둘만이 존재하는 방.


그곳에서 터질듯이 넘쳐 흐르는 것은, 분명한 사랑의 교집합.


좋아한다는 감정의 연속이었다.


내일이 되면 발을 동동 구르며 부끄러워할 지도 모를 일이었지만, 적어도 지금 그런 것을 신경쓰기는 싫었다.


그저 분위기에 녹아내릴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