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부분 언제나 봐도 개쩔잖아...



아이돌 신예대 뮤비에서도 계속 돌려보는 부분인 시즈쿠의 솔로 파트.

특히 이 손을 흔드는 장면은 청순함을 함뿍 담은 듯 하여 내 취향을 직격하였다.


"부끄럽게 자꾸 왜 거기만 돌려보고 그래?"


내 방 모니터에서 뮤비를 감상하는 내 옆에 앉아서 이런 말을 하는 한 여자 아이의 목소리의 주인공.


이 노래를 부른 뮤비의 주인공이자 내 소꿉친구 MORE MORE JUMP의 히노모리 시즈쿠 양 되시겠다.


"어딘가의 누군가와 다르게 화면 속의 시즈쿠는 이렇게 밝게 웃어 주잖아"

"뭐야 그게 지금 나는 너한테 웃지 않는다는거야?"


시즈쿠는 천연이다.

매우 둔감하다. 그것이 어떤 상대 어떤 환경이든지 그녀가 빠르게 알아차리는 상황은 쉽게 오지 않는다.

내가 이런 소리를 하는 건 소꿉친구인 시즈쿠의 모습도 좋지만 아이돌인 시즈쿠의 모습이 나에게 더 이상형으로 와 닿았기 때문이다.


"지금의 네가 화면에 나오는 여자 아이처럼 저렇게 예쁘게 웃어 주면 모를까..."


"흥"


내 이런 말을 들은 시즈쿠는 가볍게 삐진 듯이 내 방에서 나가버렸다.


뭐 난 틀린 말을 한 적이 없다.

근데 소꿉친구인 시즈쿠가 당장 내 앞에서 저렇게 웃어준다고 해도 왠지 오글거릴 거 같아서 상상하기가 좀 어렵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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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보컬 트레이닝 열심히 하나 보네?"



몇 달 뒤에 나온 천사의 클로버 뮤비를 감상하면서 든 생각은

시즈쿠가 노래를 참 잘 부르게 됐구나를 통감한 것이다.


"이번에야말로 네가 나를 다르게 봐 줄 거라고 생각하도록 열심히 연습했지"

"역시 아이돌 모드 시즈쿠는 완전무결한 아이돌이네~"

"그게 무슨 소리야?"


"내 앞에서의 시즈쿠는 정말 맹해서 뭘 말하기가 어려운데 ㅋㅋ"


"자꾸 화면의 나랑 비교하니까 좋아?"


"그래도 신기하잖아 이렇게 맹한 시즈쿠가 아이돌 전선으로 가면 저렇게 멋지게 변하는게"


"지금의 나는 멋지지 않아?"


"지금의 너는 그냥 맹한데?"


나의 말에 정말 불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내 방문을 꽝 하면서 닫고 내 방을 나간 시즈쿠에게

나는 이 말을 뱉으면서 살짝 아차 하는 마음으로 미안함이라는 감정이 생겼다.


나중에 사과하자...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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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지나도 지나도 시즈쿠는 내 집에 오는 일이 없어져 버렸다.


내가 만나러 찾아갔을 때도 동생인 시호가 자기 언니는 요즘 바쁘다면서 집에 없다는 식으로 돌려보내기 일쑤.


그렇다.

나는 시즈쿠에게 뭔지 모를 열등감과 동경심 그리고 조금의 애틋한 연심을 가지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는 것을

이 때 알아차린 것이다.


자존감이 바닥이었던 나는 저렇게 열심히 하는 시즈쿠에게 칭찬 한 마디는 못할 망정 화면의 그녀와 내 옆의 그녀를 비교질만 해댔으니


나에게 있던 정 없던 정이 다 떨어졌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내 조그마한 사랑이 실연이라는 경험으로 변하고

오래도록 소꿉친구였던 그녀와의 관계가 절교라는 이름으로 단절됐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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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나는 시즈쿠의 첫 번째 팬을 그만두고 싶지 않았다.


MORE MORE JUMP는 시즈쿠의 맹연습 기간이 지날 수록 인기가 더해지고

이제 무도관 데뷔를 이룰 수 있는 정도로 성장해 버린 그녀를 보고

나 자신에 대한 혐오감과 함께 그녀를 향한 마음은 지워지지 않고 오히려 더욱 더 커진 것이었다.


'나는 어리석은 결정을 했지만 그녀는 행복했으면 좋겠다'


어쨌든 난 그녀의 첫 번째 팬을 자처하고 있는 사람이니까.


적어도 무도관 데뷔는 직접 보고 나서 시즈쿠를 향한 내 마음을 깔끔하게 정리하도록 노력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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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RE MORE JUMP의 무도관 공연 날.


나는 그녀를 멀리서 응원하기 위해 시즈쿠 굿즈를 들고 공연을 감상하고 있다.


'정말 대단하구나 시즈쿠는'


'내 앞에서는 맹해 보여도 힘든 척은 한 번도 한 적 없었는데'


'저렇게 성공하는 걸 보니까 시즈쿠는 정말 강한 사람이었구나'


그래.


애초에 시즈쿠랑 나는 이런 거리감이 맞았던 거야.


무도관 공연이 막바지에 다다랐을 때 즈음 시즈쿠의 MC가 귓가에 들려온다.


"마지막 곡은 신곡이에요."


"이 곡이 여러분에게 닿을 수 있을 지는 모르겠지만"


"제 예전 소중한 사람들이었던 분들에게 이 노래를 듣게 해 주고 싶어서 MORE MORE JUMP 멤버들과 함께 노력했어요."


"그럼 들어주세요."




"나는, 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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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곡의 가사는 내 마음에 저릿하게 남았다.


"당신의 말에 상처받아도 나는 나니까 헤매지 않아."


"보호받을 일은 이제 영영 없겠지만 지키고 싶을 뿐이야 걱정따위 없어."


"무서운 것은 없어."


"두려워하지 않아."


그건 누구에게 하는 말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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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도관 공연이 지나고 두 달 즈음.


MORE MORE JUMP의 다른 곡들보다 요즘 제일 많이 듣고 보는 '나는, 우리는'.


저 곡의 가사를 들으면서 곰씹으며 하루 하루를 씹어 삼키듯이 살아가는


뭔가 텅 빈듯한 나의 모습.


항상 온기가 가득했던 지금은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은 나의 방.


그렇게 폐인같이 하루를 지내고 있을 때 갑자기 초인종 소리가 들린다.



'어?'


시즈쿠가 갑자기 왜 우리 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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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도관 공연 왔었지?"


"네 모습이 조그마하지만 제일 먼저 찾아낼 수 있었어"


둔감한 시즈쿠는 대체 어디로 간걸까.


"내가 너의 곁을 떠나고 잠시 생각을 해 봤어"


"너는 나를 아직 인정해 주지 않을 지도 모르겠지만"


"이제 내가 너에게 뭘 하고 싶은지 겨우 결심이 선 거 같아"


"마지막 곡의 가사처럼 난 이제 무서운 건 없어"





"네가 계속 화면의 나를 지금의 나랑 비교한다면 계속 비교해"


"하지만 과거와 현재는 바뀌지 않아"


"남는 건 너와 나는 아직 소꿉친구라는 사실이지"


"그런데 그 소꿉친구라는 관계는 이제 내 입장에서는 별로 좋은 관계는 아니더라고"


"그래서 소꿉친구는 이제 필요 없어"



그렇구나.


그녀는 진짜 나와의 관계를 청산하기 위해 나를 보자고 했던 거구나.




"난 질투심이 강한 여자야"




어?


"각오해"



"이제 무서운 건 없어"


"두려워하지도 않을거야"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너랑 평생 함께 할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