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내리는 어느 날. 

이상할 정도로 사람이 없는 한 카페에서.


설을 맞아 모인 소녀들. 그녀들 전원이 숨죽인 채 중앙에 놓인 통에 시선을 집중했다.


"......"

"......"

"......"

"......"


서로가 서로의 눈치를 재고 있는 상황.

힐끔거리는 눈은 서슴없이 사냥감을 물색하는 범의 그것이었다.


그렇게 한치의 양보도 없는 공방이 이어지던 그 순간.

한 소녀가 시작을 선언했다.


"왕은 누구냐!!"

"""!!!"""


휘익.


매가 사냥감을 낚아채듯 날렵한 소리.

그 소리에 덩달아 날카로운 소리가 날려들었다. 소녀들 사이에서 생겨난 소리라고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하아앗!"""


우렁찬 기합 소리와 함께, 그렇게 전쟁이 시작됐다.


이 일의 발단은 2시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


약 2시간 전. 


밴드 연습이 다른 날로 옮겨져 일정이 비어버린 이치카는 도로길을 따라 걷고 있었다.


"갑자기 일정이 비어버렸는데... 어떻게 할까."

"글쎄. 자주연습이라도 하는 건 어때?"

"그것도 괜찮을 것 같아."


휴대전화에서 들려온 미쿠의 목소리에 이치카가 대답했다.

그리고는 그 자리에 멈춰선 채로 누군가를 응시했다.


"이치카?"

"아, 미안해 미쿠. 조금 아는 얼굴을 본 거 같아서."

"아는 얼굴?"


미쿠가 고개를 갸웃했다. 이치카의 시선을 따라가 보니 몇 명의 소녀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핑크색 머리의 소녀 한 명, 아니 두 명.

그리고 다른 한 명은...


"아."


마침 그 한 명이 이치카를 눈치챘는지 소리를 냈다.

그 소리에 다른 두 명도 이치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 이치카짱!"

"에무? 다들 모여서 뭐 해?"


모여 있던 소녀는 오오토리 에무, 아키야마 미즈키, 그리고 요이사키 카나데였다.

익숙하면서도 낯선 조합에 눈을 크게 뜨며 이치카가 그들에게 다가갔다.


"얏호~! 분명 호시노 이치카짱...이었지?"

"아, 네!"

"우리는 카페에 가던 길이었는데 같이 갈래? 아, 물론 일정이 없다면의 이야기지만."

"! 네 괜찮아요."


이치카가 곧바로 수긍했다.

그러자 나머지 둘도 고개를 끄덕이며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렇게 잠시 뒤 도착한 곳은 한 카페였다.

한적한 곳에 있어서 그런 건지 다른 이유가 있는 건지는 알 수 없지만 그들 외의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사람이 전혀 없네..."

"그러게.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 걸까?"


미쿠가 조용히 물어오자 이치카가 자신도 의문이라는 듯이 답했다.

그리고 그 이유는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아, 미즈키씨가 가능한 한 사람이 없는 곳이 좋을 것 같다고 하셔서요! 여기는 아는 분이 운영하시는 곳이라 한 시간 정도만 빌렸어요!"


터무니없는 소리를 하는 아가씨 한 명이 그 이유였다.

미즈키마저 어벙벙하게 에무를 쳐다봤다.


"아... 내가 말한 건 그런 뜻이 아니었는데..."

"미즈키?"

"으음... 정확한 예시를 들어 줄 걸 그랬나."


미즈키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쓰게 웃었다. 그리곤 별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이렇게 된 이상 뭐 어쩔 수 없지. 근데 이러면 좀 더 사람을 모으고 싶어지는데..."

"아, 그러면 제 친구도 부를게요. 호나미랑 시호라면 올 수 있을 거에요."

"OK."


뒤이어 호나미와 시호가 도착했다.

그리고 그 뒤로 에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얏호~! 에나난이 이 시간까지 깨어 있다니 별일이네~?"

"시끄러워. 누가 보면 내가 이 시간까지 잠만 자는 잠탱이인줄 알 거 아니야!"

"어라라 아니었나?"

"미~즈~키!"


둘의 모습을 본 다른 이들의 분위기가 조금씩 풀어졌다. 그럴 때쯤 미즈키가 통 하나를 꺼내들었다.

원형 통에 들어 있는 여러 개의 막대기들. 그걸 본 소녀들이 전부 고개를 갸웃했다.


단, 어째선지 시호만 표정이 새파랬다.


"자, 그럼 왕게임을 시작해 보자!"

 

미즈키가 장난스런 미소를 품은 채 선언했다.


"왕게임...이요?"


들은 적은 있다. 분명 왕을 정하고서 그 왕이 다른 이에게 뭐든지 하나 명령을 내릴 수 있는 권한을 얻는... 그런 게임이었지.

그 지시를 무조건 이행해야 한다는 점에서 상당히 짓궂은 명령도 가능하단 점이 조금 신경 쓰이긴 했지만.


"응. 어때? 혹시 좀 하기 그렇다 싶으면 먼저 말해줘도 돼. 에나낭은 빼고~!"

"잠깐. 왜 나만 그런 건데!?"

"그야 에나낭은 이런 거 못하잖아~? 당연히 도망치려고 할 테니까~!"

"미즈키...! 넌 죽었어!!"


에나가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미즈키를 잡아먹을 듯 쳐다봤다.

그 모습을 본 일동이 쓴웃음을 지으면서도 잠시 고민하다가 결론을 내렸다.


"괜찮을 것 같아요. 뭔가 재미있어 보이는걸요."

"응, 저도요. 시호는 어떻게 할래?"

"그... 나는... 하아, 알겠어."


한숨을 내쉬던 시호가 어쩔 수 없단 듯 수긍했다.

뒤이어 에무도 승낙하자 전원의 참여가 결정됐다.


"좋았어! 그럼 섞는다!"


탈탈탈탈탈탈.


통에 든 막대기가 요란하게 섞였다. 그렇게 10초 정도를 섞은 후 미즈키가 통을 중앙에 내려놨다.


"자, 그럼 뽑아 볼까! 왕은 누구냐!"

"왕은 누굴까!"


꿀꺽.


각자가 긴장을 삼키며 하나씩 막대기를 집었다.


"난 아니야."

"나도."

"으음... 나도 아닌가."


이치카, 호나미, 미즈키는 아니었다.

남은 건 에무, 시호, 에나, 카나데 뿐.


"아, 나도 아닌 것 같아."

 카나데도 아니었다.


"....."


에나와 에무가 긴장한 표정으로 남은 막대기를 집었다.

동시에 막대기를 꺼낸 둘의 표정이 교차했다.


"아, 나구나!"

"에엣~! 에나난 쪽이야?"


미즈키가 질색하는 표정을 지었다.

반대로 에나 쪽은 우쭐거리는 표정으로 미즈키를 응시했다.


"미즈키? 각오 단단히 해 두라고!"

"에엑~. 뭐 그래도 문제 없지만?"

"응?"

"자, 그럼 에나난이 명령할 차례야. 숫자를 불러서 명령하면 돼. '몇 번은 몇 번에게 뭐를 해라' 같은 식으로."

"에? 잠깐 그런 거였어?"

"당연하지~! 안 그러면 너무 직설적인 명령이 되잖아~? 게다가 이 편이 훨씬 재미있는걸~!"


에나가 분한 표정을 짓다가 조금 망설이는 표정으로 바뀌었다.

원래 미즈키를 골려줄 생각이었는데 그게 다른 이에게 불똥으로 튈지도 모른다 생각하니 움츠려들게 된 탓이다.


"으음..."


그렇다고 이 상황에서 너무 단순한 걸 명령하면 이대로 분위기가 작살날 것 같았다.

고민 끝에 에나가 명령을 입에 담았다.


"그러면... 에잇, 2번이 3번을 껴안으면서 '영원히 우린 친구야'라고 말하기!"

"오, 에나난답지 않지만 꽤 괜찮은 센스인데? 자 2번이랑 3번은 누구?"


참고로 미즈키는 5번이었다. 에나난에게는 유감이겠지만.


"....2번은 저에요."

"3번은... 저요."


모두의 시선이 2번과 3번에게 돌아갔다. 2번은 호나미, 3번은 시호였다.

이치카가 아차 싶은 표정을 지었다. 반면에 미쿠는 재미있는 일이 일어났다는 듯 작게 미소지었다.


"헤에... 이건 진귀한 광경이네. 다른 얘들도 불러 와야겠는걸?"


미쿠의 미소는 어느새 미즈키와 닮아 있었다. 그 말을 남기고 미쿠가 다른 버싱들을 불렀다.


"얘들아 이리 와 봐!"

"뭐야? 무슨 일?"

"와~! 재밌어 보여!"


다 모인 버싱 멤버 전원이 조용히 둘을 응시했다. 이치카를 포함한 다른 인원도 조용히 두 사람을 응시했다.


"으...으으."

"저기 호나미... 너무 무리하지는 않아도..."


시호가 올 게 왔다는 것 마냥 식은땀을 흘렸다.

그런 시호에게 호나미가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리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ㅇ....여...."


꿀꺽.


모두가 긴장한 채, 아니 소수의 몇 명은 기대하는 미소를 지은 채 둘에게 시선을 못박았다.

호나미의 눈동자가 빙글빙글 돌아갔다. 마치 과부하 되기 직전의 컴퓨터처럼.


"여...여....!"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