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칼을 칼집에 도로 꽂아라. 칼을 쓰는 사람은 모두 칼로 망한다”

-마태복음 26:52


 17세기 유럽,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간의 싸움이 지속되던 30년 종교전쟁 당시, 가톨릭과 주류 프로테스탄트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배척받는 자들이 있었다. 신앙적 고백이 없는 가톨릭의 유아세례는 무효라 주장하며 다시 세례를 받아야한다고 주장했기에 그들은 재세례파(anabaptist)라고 불리었다. 그들은 엄격한 정교분리 원칙에 따라 국가 권력을 부정하고, 집총거부를 주장하며, 예수의 가르침을 철저히 따라 어떠한 폭력도 거부하는 평화주의적 입장을 따른 자들이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가톨릭도, 주류 프로테스탄트에도 속하지 못하고 배척받으며 그들에게 공격당하는 상황이었다.

 어느 겨울날, 군대에 쫓기던 한 재세례파 교인이 있었다. 그는 살기 위해서 얼어붙은 강 위를 건너 도망쳤다. 군인들도 그를 잡기 위해 언 강을 달리며 추격하였지만 갑자기 강물 위를 덮었던 얼음이 깨지며 그를 추격하던 군인들은 차디찬 겨울 강물에 빠져버렸다. 재세례파 교인은 이를 하나님께서 살려주시기 위해 주신 기회라고 생각하고 도망칠 수도 있었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는 도망치던 길에서 돌아와 물에 빠진 군인들을 전부 건져내었으며, 이후에 도착한 후방 추격대에 의해 체포되어 교수형을 당하고 말았다.

 대학 시절 교회사 강의 도중 교수님께 들었던 이 일화를 나는 아직도 좋아한다. 왜냐면 우리들 중에 어느 누구도 감히 그리스도의 사랑의 명령을 이렇게까지 지킬 수 있는 자는 극히 소수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철저하게 성경을 지켰고, 모든 폭력과 세속 권력을 거부하였고, 그렇기에 30년 종교전쟁 시기에 양측 세력에 의해 오로지 핍박받고 공격당하는 입장이 되어 지금까지도 아주 소수의 후손들만 그 신앙을 이어가고 있다. 유럽 농촌에 존재하는 여러 메노나이트 계열의 공동체, 그리고 현대 문명을 거부하기로 유명한 미국의 아미쉬 공동체,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국가 권력과 징병을 거부하며 독립된 공동체로 현대에도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개념은 한국 개신교 내에서는 너무나도 생소한 이야기이다. 교회 가운데서는 오히려 군대에 가는 것을 애국적 행위로 여기며 청년부 내에서 국방의 의무를 지키기 위해 군대에 가는 청년이 생길 시에 그를 축복한다. 군대 안에 들어가보면 이제 그곳에 교회가 있으며 군종장교가 존재한다. 기독교는 군대와 밀접한 관계에 있으며, 교회 내에서는 군대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면 언제든지 애국주의에 대한 내용이 흘러나온다. 교회는 장병들을 애국자이자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국가와 교회를 지키는 신성한 임무를 이행중인 자들로 축복하며, 동시에 선교의 대상으로 본다. 우리는 이제 기독교가 국방의 의무를 거부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게 되었다. 한국전쟁때부터 지금까지 교회는 국군을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지켜주는 고마운 존재로 생각해왔고, 언제든지 국군과 협동해왔기 때문이다. "위에 권세에 복종하라"라는 사도 바울의 로마서 5장 말씀에 근거하여 교회는 국가 위정자들에 대해 합당한 복종이라고 생각해왔으며 그렇기에 절대 폭력적인 집단인 군대에 대해서 감히 반대할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역사적으로는 과연 어떠했을까? 한국 교회는 앞에서 말했다시피 국군에 의해 보호받은 역사가 있음을 이야기했다. 북괴 김일성의 군대로부터 교회는 단지 '인민의 아편'으로 취급되어 무자비하게 학살되어 왔던 것이 사실이다. 영광교회와 야월교회 학살은 인민군이 기독교인들을 집단학살한 유명한 일화이며, 이외에도 충남 논산의 병촌교회 학살, 전남 신안에서의 기독교인 생매장 학살 등등 기독교인들을 무참하게 인민군들이 학살해왔기에 이들을 보호했던 유일한 공권력은 남한 정권의 국군뿐이었던 것이다. 이는 아직도 보수 기독교인들이 공산주의라는 말에 분노하는 이유가 되기도 하며, 교회 내의 우경화와 국가주의의 시발점이 된 아주 극단적인 사례가 되었다. 한국 교회는 국군과 남한 정권에 의해 보호받았기에 생존을 위하여 거기에 부역할 수 밖에 없었고, 이는 이후에 교회 내에 극렬한 반공주의 사상을 심는 계기가 되었으며, 교회가 자진해서 국군을 지원하며 공산주의 세력에 대해 복수를 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렇기에 한국 교회 내에서 군역을 지는 일은 명예로운 일이 되었으며, 강단 위에서 북녘 땅에 세워진 괴뢰정권이 무너지게 해달라는 기도가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국교회는 국군과 정권과는 떼어낼 수 없는 사이가 되어버렸다.


 이제 좀 더 옛날로 돌아가서, 과거 사도들이 세웠던 초대교회들은 어떠하였는지 살펴보자. 교회사학자 후스토 L. 곤잘레스에 따르면 초대교회는 두가지 이유에서 박해를 받았는데, 하나는 황제숭배 거부이며 또 하나는 징병거부였다. 십계명 제 1계명에 따라 황제숭배를 거부한 것은 너무나도 당연해 보인다. 하지만 현대 기독교인의 눈으로는 절대 이 징병거부라는 주장은 받아들이기가 힘들다. 혹시 기독교인들이 로마 제국을 악의 세력으로 보았기에, 마치 한국인이 일제강점기 시절에 올바르지 못한 일을 하는 황국군 강제징병을 거부하듯이 그리스도인들도 로마 제국의 징병을 거부하였던 것이 아닐까? 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성경에서 나타나는 초대교회는 그러한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당장 사도 바울은 로마서 5장에서 정당한 위의 권세에 대해서 복종하라고 하였다. 그리스도 또한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돌리라는 말씀으로 국가 권세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으셨다. 그러니 초대교회는 국가 권세에 대해 복종하는 것과 무기를 들고 적과 싸우고 상대를 죽이는 것을 동일시 하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초기 기독교인들의 관념은 개인은 일차적으로 세상에 속한 시민이었지만, 동시에 세상에 속하지 않은 초월적인 신앙인이었다. 신앙의 증언을 할 수 있는 곳으로서 세상을 긍정하였지만 세상의 악에 동참할 수는 없다는 것이 당시 기독교인들의 사상이었다. 그것들을 잘 보여주는 것이 초기 교회 교부들의 평화주의적인 여러 기록들이었다. 

 터툴리아누스는 단도직입적으로 "하나님께 드렸던 맹세와 사람에게의 맹세는 서로 공존 불가능하며, 예수의 깃발과 사탄의 깃발, 빛의 진영과 어두움의 진영은 공생할 수 없다."며 그의 저서 우상숭배론에서 저술하였고, "법원에조차 가지 않으려는 평화의 아들이 어찌 전투에 참여하겠는가. 자기 자신에게 가해진 불공평한 가해조차 보복하려 하지 않는 이가 어찌 족쇄, 감옥, 고문, 처벌과 관계를 맺겠는가."라며 그의 저서 왕관론에서 '누군가 너의 오른뺨을 때리면 너는 왼뺨조차 돌려대라' 라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따라 평화주의적인 주장을 내세웠다. 

 터툴리아누스보다 조금 더 온건한 주장을 내세운 교부 오리게네스는 "황제가 의로운 전쟁을 할 경우, 우리 기독교인들은 기도를 통해 황제를 보필할 일이요, 군에 입대할 필요는 없다." 라고 그의 저서 켈수스 반박론에서 이야기하였다. 의로운 전쟁을 가정하였긴 했지만 오리게네스는 그렇다 하더라도 기독교인들이 군에 입대할 필요성은 주장하지 않았다. 전쟁을 하고, 사람을 죽이는 일은 기독교인이 할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에게 있어서 기도를 통해 황제를 보필할 일은 세속 권세를 인정함과 동시에, 기도를 통하여 궁극적인 평화를 달성함에 더욱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두 교부의 주장을 보면 기독교와 세속은 구분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기독교인은 땅에 서 있지만 하늘에 속한 자들이라는 개념이 너무 분명하게 나타난다. 기독교는 그저 로마 제국 속에 있는 하나의 집단이지만, 이들은 오로지 하나님 나라만 소망하는 존재로서의 모습이 분명하게 나타났다. 하지만 이러한 개념은 313년에 밀라노 칙령과 함께 끝나게 된다.


 밀라노 칙령은 이제 박해받는 소수자로 존재하였던 로마 제국의 교회들을 제국의 한 가운데로 불러들인 큰 사건이다.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를 더 이상 사교도가 아닌 로마의 하나의 종교로서 인정하겠다는 칙령은 기독교를 크게 변화시켰다. 세속에 의해 탄압받던 기독교가 세속의 중심이 된 것이다. 이후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381년에 기독교를 로마의 국교로 제정한 이후, 이제 기독교와 국가 권력은 뗄 수가 없었다. 로마 제국은 곧 하나님의 나라가 되어버렸고, 세상 속에 이방인으로 살던 기독교인들은 이제 세상의 중심이 되어버렸다. 그렇기에 이제 과거 교부의 가르침은 옛것이 되어버렸다. 기독교는 이제 기독교를 공인하고, 국교화하여 모든 핍박과 순교에서 벗어나게 해준 로마 제국의 은혜에 보답해야 할 입장이 되어버렸다. 

 그렇기에 기독교 공인기에 활동하였던 유명한 교부 아우구스티누스의 입장은 기존 교부들과는 사뭇 다른 양상을 따르게 되었다. "군인이라고 해서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릴 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라고 그는 보나파스 총독에게 보낸 편지에서 말하였다. 이후 기독교 내에는 새로운 개념이 등장한다. '성전'이라는 이 개념은 거룩한 영적 전쟁을 세상의 분쟁과 학살에 끌고 온 개념이다. 기독교인은 이제 국가 위정자의 세속적 전쟁에 하나님의 뜻을 투영하기 시작했다. 자기를 핍박하는 자들을 위해 기도하며 양과 같이 순교하였던 기독교인들은 이제 세속을 정화시킨다는 명분으로 이단과 이교도와 이방인들을 죽이기 시작했다. 김두식 교수의 표현을 빌리자면, 자신의 피로 십자가를 물들이던 기독교인들은 이제 타인의 피로 십자가 군기를 물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기독교와 평화주의의 문제는 단순하지 않다. 이는 우리가 신앙인을 우선할것인가? 혹은 국민을 우선할것인가에 따라 달려있는 문제이다. 그렇기에 현대의 많은 기독교 평화주의자들은 아나키즘의 영향을 직간접적으로 받아왔다. 러시아의 대문호인 레오 톨스토이도 그러하였으며, 국내의 민중신학자 함석헌 선생님도 그러하였다. 하지만 이렇게 극단적인 아나키즘을 기독교에 접목시키는 것은 분명 현대 기독교 내에선 반발이 클 수밖에 없다. 하지만 기억해둬야 할 것은 폭력이란 결단코 하나님께서 원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며, 우리는 국가의 이름에 의해 자행되는 폭력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볼 때가 되었다는 것이다. 어떤 것이던지간에 하나님보다 그 위에 두는 것은 심각한 우상숭배이다. 신사참배에 굴복하였던 역사는 다시금 머리를 바꾸어 반복되고 있고, 한국교회는 지금까지 국가에 너무나도 큰 의미를 부여하였고, 국가와 반공사상을 하나님의 자리에 올려놓았음은 부정할 수 없다. 이제는 교회 내에서 국가주의에 대한 비판, 징병제 옹호에 대한 비판을 단순히 용공사상이라는 이름으로 억누를 수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금기가 많이 옅어진 지금 시대에 위에 대한 많은 교계 내의 신학자들의 토론이 더욱 활발해지기를 바란다.


참고자료 :

후스토 L. 곤잘레스, 『초대교회사』, 2012년 개정판, 은성
임경근, 『한국교회사 걷기』,2021년, 두란노

김두식, 『칼을 쳐서 보습을』,2002년, 뉴스앤조이
김대식, 「함석헌의 평화사상 」, 2016, 통일과 평화 8집 2호

박노자, 「기독교는 어떻게 전쟁과 친해졌나」, 2010, 한국기독교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