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대류권

고도 4000m

변속 순환 엔진은 연료와 연소촉진제의 영향으로 굉음을 내었다.

수송기는 이내 마하의 장벽을 뚫고  공기 중에 원뿔 모양의 음폭구름을 남기며 8km/s의 속도로 치솟았다.


와타나베

아버지...


강력한 추진력은 10G 이상의 중력을 야기했고, 구조체로 개조된 후에는 더 이상 호흡을 위해 흉강의 수축에 의존할 필요가 없었다.

갑자기 공중 레이더에 낯선 광점이 나타나더니 엄청난 열기와 함께 그를 향해 급습했다.


와타나베

비 아군 유닛인가?


와타나베가 레버를 살짝 옆으로 밀자 레이더에 여러 개의 스폿이 하나둘 나타났다.


와타나베

도대체 뭐야?


그는 속도를 늦추지 않고 계속 오르내리며 알 수 없는 목표를 피했다.

둘은 곧 만났고 그는 마침내 보았다...

그것은 불타는 잔해 조각이었다. 대기권을 통과하는 과정에서 온도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높아졌고, 떨어지는 동안에도 녹은 잔해들은 계속해서 벗겨졌다.


와타나베

앰비션...호?


잔해 표면에서 와타나베는 간신히 그 위에 새겨진 글씨를 알아볼 수 있었다.


와타나베

이것들은...성함의 잔해잖아?!


비행기 탑재 레이더

경고! 전방에서 고열이 발생하니 주의하여 피하십시오!


사이렌 소리와 함께 레이더에는 스팟들이 촘촘했고, 눈앞의 하늘은 눈으로도 확인 가능한 속도로 노을빛으로 변했다.

그러나 그것은 걸음을 멈추고 감상할 만한 풍경이 아니었고, 수많은 잔해들이 대기를 뚫고 지구로 밀려오는 연기와 구름이었다.

와타나베는 추락한 잔해를 피하기 위해 수송기 조종에 온 힘을 쏟아야 했다.


고도 7000m 속도 10km/s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가는 불타는 잔해를 바라보았고, 그것은 무기 거치대의 일부로 보이는 모양이었다.


고도 50km 속도 12km/s


마치 날렵한 물고기 한 마리가 구름을 가르며 불타는 암초 사이를 누비는 것 같았다.


고도 500km 속도 15km/s


초고속 비행으로 인해 경로 예측은 무의미해졌고, 와타나베는 현장 반응에만 의존하여 잔해를 하나씩 피해야 했다.


고도 5000km 속도 20km/s


수송기의 속도는 이론의 한계에 도달했고, 단열층은 여전히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지만 기내에서는 온도의 상승을 느낄 수 있었다.


고도 8000km 속도 20km/s



시스템이 대기권 돌파를 알리는 순간,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무수한 불빛이다.

부서진 잔해는 우주 깊은 곳을 향해 날아가거나 지구 중력에 붙잡혀 치명적인 불덩어리로 변했다.

우주공항은 이미 뿔뿔이 흩어져 있었고, 방공포는 적막한 공간에서 소리 없이 울부짖고 있었지만 잔해를 모두 막을 수는 없었다.



성함 한 척이 격렬한 폭발로 허리가 잘렸고, 폭발한 자리에서 거대한 불덩어리가 형태를 갖추었다.

그것의 중심 코어는 더욱 밝아보였고, 바깥쪽 구형 외피는 급속한 팽창으로 인해 약간 얇아 보였으며, 자기장의 당김에 의해 마치 껍질이 벗겨진 오리알처럼 타원형을 이루었다.

태양보다 몇 배 더 밝은 녹색 오리알이었다.

수송기는 광선이 항공기 자체와 내부 인원에게 심각한 피해를 입히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즉시 격리 보호 층을 활성화했다.



폭발 직후, 남아있는 펜릴 전투기는 최후의 성함, "미라클"호를 향해 돌진했다.



와타나베

여기는 지상 방위군 와타나베입니다, 우방 부대에 상황을 설명하십시오.


정신을 차린 와타나베는 곧바로 전 채널 통신을 열었지만, 핵폭발에 따른 강한 방사능의 교란으로 채널 전체가 무의미한 노이즈로 가득 찼다.


?

와타나베...지상은 이쪽 상황을 알고 있니?


한참 뒤에야 음성이 흘러나왔고 교란으로 인해 왜곡도 심했다.


와타나베

임무 작전 중 우주부대가 악의적인 지령으로 공격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관련 정보가 본부에 실시간으로 전달되고 있었습니다.


?

악의적인 공격…그렇군. 그것만이 할 수 있는 짓이야.


와타나베

우방부대에 상황을 설명해주세요.


?

...성함 전단이 통제 불능이 되자 결사대는 자폭으로써 공중정원으로 돌진하는 것을 막기로 결정했어.


와타나베

...전단 지휘관 신은 살아있습니까?


?

그 사람도 명단에 있었고, 나는 그분의 부관...


채널에는 한동안 전류 노이즈로 뒤덮였고, 와타나베는 이 노이즈마저도 자신에게서 멀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

우주...정...거장...구조...공격받고 있습니다!


통신 채널에서 무슨 소식이라도 들려오는 듯했지만 그는 더 이상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

우주...정...거장...구조...공격받고 있습니다!

제발...아무나...살려...


누가 도움을 요청하고 있는 건가?


?

어서 가. 지휘관은 더 많은 사람을 구하기 위해 그런 선택을 한 거야.

이제 네가 더 많은 일을 해낼 차례다.


와타나베

...

알겠습니다!


상대방의 말이 맞다. 비록 원래의 목적을 잃었다고 해도, 그는 여전히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그의 가장 친한 친구는 죽은 자를 슬픔과 침체로 애도하지 말고, 그들로 하여금 나아가기 위한 힘이 되게 하라고 말했다.

아버지는 자신의 신념을 관철하였고, 이제 그의 바통을 넘겨받을 차례다.


와타나베

저는 지상 방위군 와타나베입니다, 지금 우주 정거장으로 가고 있습니다, 상황을 다시 말해 주세요!


?

잘 다녀오렴.




우주정거장을 향해 날아가는 수송기를 지켜보던 신은 상대방과의 통신을 끊었다.


키릴

작별 인사 안 할 거야?


내내 참견하지 않은 키릴이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작별인사를 하라고 하면 나도 좀 꺼리거든...


조금씩 다가오는 기함을 보며 후미의 화염의 온도를 느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내가 살아있다는 걸 알면 진작 오지 않은 걸 후회할 텐데, 아버지로서 어떻게 아이를 후회 속에 살게 할 수 있겠어?

난 이미 그 아이와 동행하지 못했으니까, 더 이상의 후회는 남길 수 없어.


그는 탈출 포트를 운전하며 그에게 손짓하는 저승사자를 향해 돌진했다.


해야 할 말은 전부 남겨놨어.


화염에 휩싸이기 전, 반평생 우주를 떠돌던 영혼이 다시 중력에 의해 땅으로 포획되는 듯했다.



그곳에는 푸르른 풀이 초원처럼 생기발랄하였다.



아름다운 별...이대로 떠나 너무 슬프네.



와타나베의 가슴에서 갑자기 알 수 없는 격동이 찾아왔고, 그는 방금 나타난 녹색 불덩어리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이를 악물고 최대한 빨리 우주정거장 쪽으로 돌진했다.

아직도...그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의 곁으로!



Episode-12

에덴작전



와타나베

이게...우주정거장?


수많은 잔해를 뚫고 우주정거장 근처까지 온 와타나베는 한동안 눈앞의 광경을 믿기 어려웠다.

순백색이었던 선체는 이제 붉은색으로 부풀어 올랐고, 공 모양의 구조물운 기괴한 배열로 핵심 선체 전체를 뒤덮었다.

수송기가 다가오자 이 구조물들은 함께 회전하며 호기심 많은 눈처럼 유일한 하얀 부분을 그에게 향했다.

그런 것들이 어떻게 생겨났든 간에, 우주정거장 전체가 완전히 뒤틀려 더 이상 인류의 과학 연구의 장이 아니라는 것은 확실하다.

그의 시야의 변두리에 우주를 떠돌며 의지할 곳 없는 잔해들도 보였다.


와타나베

가능한 한 빨리 그 생존자들을 구해야 해.


그는 이전에 통신에서 받은 위치를 향해 다가갔다.



와타나베

도킹 완료했습니다, 해치를 열어주세요.


???

네, 곧 해치를 열겠습니다.


폐쇄문이 올라가고, 창백한 얼굴을 한 세 명이 와타나베 앞에 나타났다.


와타나베

또 다른 생존자가 있습니까?


선두에 선 그 사람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책임자

오는 도중에 다른 생존자는 만나지 못했고, 아마 당신 앞에 서 있는 사람들이 우주 정거장에 남은 유일한 생존자일 겁니다.


와타나베

어떻게 확신할 수 있죠?


책임자

저는 연구 부서의 책임자이고, 제 단말기에 모든 우주 정거장 직원의 생명 신호가 기록되어 있어요.


그가 들고 있던 단말기를 건네자 프로필 사진이 거의 회색으로 변했다.


책임자

회색으로 변한 것은 수신 범위를 벗어났거나 뇌 활동이 정지됐다는 두 가지 경우뿐이죠.


여기까지 듣자, 옆에 기댄 그 여성은 손에 든 드론을 꼭 껴안았다.


와타나베

...올라 타세요. 여기를 빨리 떠나야 합니다.

우주정거장은 이미 이상 변이가 일어났고,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릅니다.



수송기가 우주정거장을 떠난 와타나베는 미래의 어느 시점에 다시 이곳과 갈등을 겪을지 모른다.


책임자

저희는 이제 어디로 갑니까?


드론을 껴안고 조용히 흐느끼던 가이더와 그녀를 위로하던 필립 대신 연구책임자가 물었다.


와타나베

저도 임시로 배치받은지라, 혹시 계획이 있습니까?


책임자

우주공항의 상태는 어떻죠?


와타나베

성함 전단은 통제 불능 상태였고, 통제 불능의 성함을 파괴하기 위해 선실의 70% 이상을 상실했습니다.


조종간을 쥐고 있던 손을 꽉 쥐었다.


가이더

그럼...저희가 갈 수 있는 곳이 또 어디죠?

우주공항도 사라졌고, 성함도 없어졌고, 우주정거장도 없어졌고...

아직 살아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되는지도...


그는 상대방의 질문에 대답할 수 없었다.


책임자

...


네 사람 모두 침묵했다. 이 일격으로 대이동 계획은 완전히 파산했다. 혹독한 대가를 치른 뒤 인류는 무엇을 쟁취했는가?

이 한적한 우주에는 더 이상 웅장한 공항도, 출발 준비를 마친 우주선도 없을 것이다.

인류는 우주를 향해 첫발을 내디뎠고, 또 빠르게 요절했다.

그리고 그의 노력은 이번 재난에도 아무런 파장을 일으키지 못했다.


책임자

에덴Ⅱ로 갑시다. 비록 껍데기만 남았겠지만요.


와타나베

네.


와타나베는 방향을 돌려 지구를 등진 방향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유성'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필립

저건 탈출용 포트이자 공항의 이음새...


책임자

우주정거장에서 사용하는 모델도 있어, 생존자는 우리만이 아니었던 거야!


각각의 '유성'은 구조된 여러 생명을 대표한다.

그의 노력이 이번 재난에 파문을 일으키지는 않았을지 모르지만,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들은 결코 고독하지 않다.

혹독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이런 희생이 결코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별들은 인류의 다음 희망이 있는 에덴으로 날아간다.

——망자의 의지를 이어받은 유성은 인류의 마지막 요새를 수호한다.

——그들은 용기와 헌신을 소리 없이 기록하는 성벽이자 묘비다.

——그래서 에덴은 더 이상 허황된 빈 껍데기가 아닐 것이다...

——불꽃을 미래로 전달하는, 공중정원이 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