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 많음



퍼니싱의 각 캐릭터들이 메인에서 신기체를 받을 때마다 

<굵직한 시련을 마주한다→문제가 해결되는 과정을 겪음→각성하여 성장한다>라는 서사가 보이는데, 그 중 정말 인상깊게 보았던 20챕터 신해이도의 심흔 기체에 대해 몇가지 짧게 적어봄.


보다시피 심흔 기체는 비앙카가 기존에 사용하던 영도, 진리 기체는 물론이고 인간 시절일 때의 단정한 이미지와는 전혀 딴판인 외형임.

안그래도 '마녀'라는 억울한 별명까지 붙어있는 비앙카인데 심흔 기체는 어둡고 음산한 비주얼이 그저 마녀 그자체임...

그래서 비앙카는 의식의 바다 안정성을 위해 평소에 고수하던 정갈하고 단정한 이미지의 코팅을 심흔 기체에 씌우게 되는데 그게 청심흔.



청심흔을 보면 특히 눈에 띄는 게 머리 위에 떠있는 고리인데, 언뜻 보면 천사의 머리 위에 있는 고리를 연상하게 함.


ㅇㅇ 이런거.

천사를 표현한 이미지에 꼭 보이는 금반지 같은 그 고리 마따. 



난 어릴때 이걸 뭐라고 부르는지 몰라서 엔젤링, 천사고리 이렇게 불렀음

이건 광륜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광배=헤일로다.

신과 성자의 신성을 표현하는 건데 원반 모양이기도 하고 간략하게 고리 형태로 표현하기도 한다.

천주교와 기독교만의 전유물이 아니고 불교같은 다른 여러 종교에서도 광배를 표현하지만 지금 그 얘기는 일단 넣어두자




왜냐면 지금 비앙카 얘기를 하고 있기 때문 ㅇㅇ

모두 알다시피 비앙카는 구조체가 되기 전, 신앙생활을 하는 수녀 신분이었다.



그리고 얘네는 이번 스토리의 중심이 된 사건에 한몫 거하게 한 개쌉사이비트롤링집단인데 신앙으로 상황 말아먹었다가 막판에 다시 신앙으로 인간찬가를 보여준 신앙인들이다.

아무튼 신앙탈트가 오기 전에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이런 배경을 생각하며 다시 청심흔의 머리 위 고리를 보면 뭔가 기분이 묘해질 것임




다시 보면 광륜이라기보단 예수님이 머리에 쓴 가시관을 닮았다.

이 가시관은 예수가 십자가형에 처해질 때 로마 군인들이 그를 조롱하고 모욕하기 위해 머리에 씌운 것이다.



원래 면류관은 올리브 혹은 월계수의 가지로 만든 관으로, 대회의 승자들이나 전쟁의 영웅들이 쓰는 아주 명예로운 아이템이었다.

로마 황제도 이 모양을 본따 금속으로 만든 왕관을 썼다.

그래서 로마 군인들이 '캬 아주 왕 납셨네ㅋㅋㅋㅋㅋ'하고 예수를 모욕하기 위해 가시나무로 왕관을 만들어 씌운 것

독실한 신앙을 가진 수녀였던 비앙카가 가시면류관을 쓴 모습이 왠지 복잡미묘한 감정을 불러 일으킨다.

전혀 악인이 아님에도 마녀라고 조롱당하며 외로이 버텨온 비앙카의 모습이 떠오르는듯 함



이쯤에서 '오명'에 대해 얘기하기 위해 잠시 심흔의 전용무기를 보고 넘어가자.

심흔 전용 6성 무기인 헤카테 Hecate

그리스 신화 속 여신과 이름이 같다.




마술과 마법과 주술과 달과 밤, 그림자, 그리고 이 세상과 명계, 삶과 죽음, 선과 악, 과거-현재-미래 이 모든 경계를 다루는 짱쎈 여신이다.

올림푸스 일진짱인 제우스도 감히 함부로 못했다.

그럼에도 인간들에게 관대하여 많은 이익을 베풀어주고 납치된 페르세포네를 찾아 떠난 데메테르의 앞에 횃불을 들고 나타나 그녀와 동행하며 길을 밝혀주기도 했다.


그러나 이 여신은 훗날 그리스도교가 강세가 되며 '악마'라는 오명을 갖게 되었는데...



유일신 사상인 그리스도교 입장에서 그리스 신화 속 여신인 헤카테 신앙은 그저 이단이자 박해 대상일 뿐이었음.

게다가 헤카테가 상징하는 것들이 마법과 달과 밤과 그림자... 마녀?!

이건 버튼이 안 눌릴수가 없다 


다른 이들에게 유익한 주술을 가르쳐주고 낚싯배를 가득 채워주고 밭을 기름지게 해주고 순산의 축복을 내려주던 여신은 어느새 악마라는 오명을 쓰게 됨.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왔으나 결국 마녀라는 오명밖에 갖지 못한 비앙카와 많이 닮았다.





다시 스토리로 돌아가서...

혹사와 사이비집단이 빚어낸 앙증맞은 찐빠로 인해 죽을 위기에 처한 비앙카.

그런 그녀를 구해준건 괴물이 되어버린 비앙카의 동료, 치코


 

비앙카와 같은 정화부대의 동료인 치코는 이미 '괴물'이라는 별명이 붙어있었음.

무르다는 이유로 반푼이 소리나 듣는 비앙카와 달리, 냉혈한 같은 일처리를 하던 친구라 정화부대 내에서도 치코가 대장감이라고 생각했었음.

어제의 동료가 오늘 침식되어도 가차없이 처분할 수 있어야 하기에 부대 내에서 가장 중요시 하는 덕목이 냉철함이라 해도 이상할 게 없으니...

그러나 결국 비앙카가 대장이 되었고 이 때문에 비앙카는 정화부대 내의 욕받이무녀... 아니 욕받이마녀가 됨.


그리고 괴물이 된 치코의 진담인지 적조의 속삭임인지 모를 혼란스러운 의식 속 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반푼이 마녀 비앙카와 냉철한 괴물인 치코의 상반된 과거가 밝혀짐.

치코는 과거 침식된 자신의 여동생을 끝내 자신의 손으로 죽이지 못해, 이로 인해 많은 피해자가 생겨나버림.

그리고 비앙카는 외전 스토리에 나왔듯이 자신을 길러준 신부님이 침식되자 자기 손으로 죽이게 된 과거사가 있음.





스노우 신부님은 비앙카를 입양해 정성껏 보살폈으나 사실 인간이 아니라 완전한 기계인 성직자 로봇이었음.

신부님은 결국 침식체가 되어버렸고 비앙카는 부모와 다름없는 그를 자기 손으로 보내주어야 했음.

비앙카에겐 아주 괴로운 일이지만 그건 결국 다른 살아있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한 결단이었고...



적조 속에 가라앉아 있던 비앙카는 이번에도 또 다른 결단을 챕터 말미에 내리게 됨.

살아있는 사람들과 치코를 위해 ㅇㅇ



청심흔 코팅은 적조에 부식되어 씻겨나가고 흑심흔 모습으로 돌아온 비앙카.

수녀가 될 수 있으면서도 마녀가 될 수 있고, 물러 터진 반푼이면서도 큰 결단력을 가진 강인한 비앙카 자신의 모습과 모순을 그대로 받아들인 그녀는 끔찍한 괴물이 된 치코와 수면 위에서 다시 대면하게 됨.

 



괴물이 된 치코의 머리 위에는 광륜과 닮은 핏빛의 고리가 떠있고, 그녀와 융합된 인간형 이합 생물이 치코를 뒤에서 꼼짝 못하게 제압하고 있는 듯한 모습을 하고 있음.

나나미가 요성 스토리에서 세계선 무한리트를 돌릴때 봤던대로 라면 실은 치코 대신 비앙카가 흑화될 운명이었음.

결국 비앙카 대신 임무에 먼저 출동해 실험체가 되어버린 치코의 모습이 마치 사람들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형에 처해진 예수의 모습 같아 보이기도 함.


치코에게 안식을 준 비앙카의 정실미소를 끝으로 챕터는 그렇게 막을 내리게 된다.



모순된 감정과 온전하지 못한 모습 모두가 나의 것이고 나는 그 자체로 나 자신임을 받아들이는 비앙카의 내면 묘사가 상당히 와닿는 챕터였음.

내가 추구하고 바라던 것과 다른 모습의 나도 결국 나 자신이다..

마치 세개의 얼굴을 가진 여신 헤카테가 변함없이 헤카테인 것처럼.


그런 헤카테는 현재인 지금도 마술과 주술에 심취한 현대 마녀들의 우상이자 스승으로 여겨지고 있다.

wicca, witchcraft같은 몇가지 오컬트 키워드만 검색해봐도 헤카테를 상징하는 심볼이나 장식물, 일러스트를 심심찮게 볼수 있을 것임





그리고 현대 마녀들의 주술에서 당연히 타로카드를 빼놓을 수 없겠지?



작중에서 비앙카는 손에 든 추적장치를 이용해 많은 단서를 찾는데, 이게 생긴게 등불하고 쏙 빼닮았고 실제로 후레시 기능까지 탑재되어 있다.

아쉽게도 비앙카는 후레시 기능을 안쓴다고 한다 (*심흔의 비밀 항목 참조)

아무튼 지팡이검과 등불을 든 비앙카의 모습이 뭔가를 연상시키는데....




타로카드 메이저 아르카나의 9번째 카드인 은자(은둔자)다.

물론 나같은 방구석 히키코모리를 뜻하는 그런 은둔자가 아니라 홀로 진리를 탐구하며 번뇌하는 지혜롭고 외로운 이를 뜻한다. 

그래서 종교적 깨달음이나 학문의 정점을 얻기 위해 수행하는 성직자나 학자에 비유되기도 한다.

때문에 필연적으로 아주아주 고독하고 외로운 카드다.

그러나 숫자 9번은 수비학에서 완전함을 상징한다.

그 고독함마저 받아들이고 완성된 자아와 영적 성숙을 얻게 된 수행자인 거임 ㅇㅇ


은자는 작은 등불을 들고 나타나 다른 길잃은 이에게 길을 밝혀주는 카드인 동시에

내가 길을 잃고 헤멜 때 그러한 은자를 만날 수도 있는 카드다.





비앙카는 평생 마녀라 조롱당하며 살았지만 

기계로부터 보살핌을 받았고(스노우 신부님)→인간으로부터 지지를 얻었고(지휘관)→괴물로부터 죽음에서 구해졌음(치코)

결국 여러 은자들이 밝혀준 길을 걸어온 비앙카의 영혼은 결코 외롭고 고독하지 않았음.


앞으로는 완전한 영적 성숙함을 이룬 은자가 된 비앙카가 다른 이들의 앞길을 인도하지 않을까 싶음.




아무튼 쓰다보니 횡설수설 했는데 종교적 포인트나 오컬트적 요소랑 연관지어 생각하니 참 재밌는 시간이었다.

나만 재밌었으면 미안하다.....



+자잘한 포인트 하나

5성 무기인 극야를 보면 글씨는 뭐라고 써있는지 잘 안보이지만 눈에 띄는 마크가 있는데...


연금술 기호로 추정된다.

줄 쳐진 삼각형이 위로 향하면 공기(하늘), 아래로 향하면 흙(땅)이다.



+포인트 하나 더

심흔 전용무기인 지팡이검은 지팡이와 검을 합친 독특한 무기임.



78장의 타로카드에서 우리가 흔히 아는 거꾸로 매달린 남자, 교황, 운명의 수레바퀴 등등의 메이저 아르카나 24장을 뺀 나머지 카드는

완드(지팡이), 검, 컵, 펜타클(코인)의 네가지 마이너 아르카나로 구분됨.


그 중 지팡이는 불의 원소이자 모험, 직관, 감정 등 뜨거운 에너지를

검은 공기의 원소이자 분쟁, 지성, 이성과 논리적 사고 등 차가운 에너지를 가지는데

더 파고들면 정신 나갈것 같으니까 그만 알아보자...


아무튼 두 가지 상반된 성질을 가진 지팡이와 검이 합쳐진 이 모순된 무기를 심흔이 다룬다는 게 의미가 있는거 같기도 하고?



+포인트 사리추가

이 장면은 유명한 그림을 패러디한 것인데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이라는 그림의 패러디

프랑스혁명이 아니라 그보다 한참 뒤인 1830년 7월혁명을 다룬 그림이다.

워낙 유명하다보니 온갖 패러디가 아주 많다.



모 밴드의 앨범 커버에도 쓰였다.

와! 콜드플레이 아시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