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는 더 이상 평범한 정치가가 필요 없지만, 난 아직 당신들을 위해 무언가를 더 할 수 있어.



세계정부

퍼니싱 작전 지휘 센터


한스

피해 상황 보고하도록...


우주군과의 교신이 끊기자 지휘센터는 즉각 공중 편대를 우주로 보내 상황을 점검하려 했다.

하지만 이내 여기저기서 추락하는 잔해들이 쏟아져 나와 당초 계획을 바꿔야 했다.

지상·공중 간 통로를 뚫기 위해 침식된 방공전열을 대부분 파괴해야 했다.

곳곳에서 공습경보가 발령된 상황에서, 가뜩이나 제한된 공중력을 규합해 잔해를 차단하고 지상시설과 주민에게 더 큰 피해를 주지 않도록 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이러한 손실은 분명하지만 어쩔 수 없는 것이다.

하늘은 연기로 뒤덮였고, 더 이상 불타는 잔해가 떨어지지 않자, 비로소 지휘센터는 발라드 소대로부터 경고를 받고 우주공항에서 파견된 연락원을 만날 수 있었다.



부관

네...지금까지 접수된 우주부대 측의 피해는 다음과 같습니다.

우주정거장 측은 1927명이 사망하고 25명이 생존하였습니다. 우주정거장은 전면 침탈돼 참모부는 탈환 가능성을 0.12%로 보고 있습니다.

우주공항 주둔군은 1792명이 사망하고 298명이 실종되었으며, 23597명이 생존하였습니다. 이번에 피해를 가장 적게 받은 곳으로, 현재 우주공항의 나머지 구획은 지시에 따라 모두 위험 구역을 벗어나 에덴Ⅱ 식민함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공중편대는 사망 9300명, 실종 125명으로 편성 인명피해율이 80%를 넘고 전투기 피해율은 97%를 넘습니다.

그 밖에 우주에서의 핵폭발에 의한 방사능과 추락 잔해로 인한 피해를 지속적으로 집계 중입니다……


한스

...

또 다른 소식은 없나?


부관

게슈탈트의 중심코어를 해체하였고, 현재 운송 중에 있습니다.


한스

기술부에 즉시 격리 방안을 마련해 이번 사태가 재발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부관

그리고...1호 원자로 측의 보고입니다.

30분 전에 저희가 설치한 45개의 관측소에서 지역 내 퍼니싱 농도의 급삽승을 동시에 감지했습니다.

300밀리초 만에 2만 배로 뛰었고, 같은 시간 도미니크 일행과 연락이 두절되었습니다.


한스

그들도 실패한 건가...


부관

아니요...참모부는 성공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후 30분 동안 지역 내 퍼니싱 농도가 더 이상 상승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현재 주변으로 확산되고 있으며, 확산되는 양상도 기존에 구축된 확산모델에 부합하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모든 관측소는 그 폭발 이후 내부의 에너지 반응을 포착하지 못했습니다.

참모부는 다른 모든 가능성을 배제했기 때문에 1호기는 정지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총사령관님.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혼란은 일단락됐지만 이것은 끝도, 끝의 시작도 아닌, 시작의 끝을 의미할 뿐이다.

우주공항, 우주함선과 국제우주정거장을 잃었고, 아카디아 대이동은 완전히 파산했다.

군인과 국민이 아직도 전우와 가족을 잃은 슬픔에 잠겨 있을 때, 정책 입안자들은 한발 먼저 나서서 새로운 미래를 찾아야 한다.


한스

우선 확산 상황에 따라 격리구역을 만들어 사람들을 대피시킨다.

구조대를 파견하여 방사능 피해를 입은 지역의 가이거 지수를 확인하고, 안전 구역을 계획하고, 정비를 한 다음, 전력 장비를 재가동한다.

구체적인 사상자 수를 집계하고 잔여 편제를 통합한다.

우선 이것부터 착수한다.


부관

알겠습니다!


지령을 내린 후 한스는 일어나서 지휘부 밖으로 걸어갔다.

옆에 있던 경호원이 곧바로 따라왔지만 손을 흔들며 제지했다.


한스

여기엔 아무런 위협도 없으니까 나 혼자 있게 해주겠나.


그는 문 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이 흔들리지 않는 소나무의 등은 굽혀있었다.



혼자 방에 앉아 있던 한스는 이 작전을 지휘하느라 며칠 동안 이 방에 돌아오지 않았고, 눈을 붙이지도 못했다.

그가 최악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들은 퍼니싱에 대해 너무 잘 알지 못했다.

전대미문의 상황은 감당할 수 없는 패배를 가져왔다.

그는 생각을 계속하려고 하지만 피로와 자책은 그의 머리를 혼돈의 가장자리로 끌어당긴다.

어떻게 해야하지?

그는 군인이고 총지휘자이다. 그는 자신의 임무와 신념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그는 또한 피와 살이 있는 사람이기에, 보고서의 숫자 뒤에 가려진 유혈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잘못했는가, 지휘실을 떠난 후 끊임없이 자신에게 물었다.

다른 계획을 세웠다면, 심지어 임무의 순서만 조정했어도 더 나은 결과를 얻을 수 있지 않았을까?

피와 살의 몸으로 인류 승리의 희망의 길을 다지는 것은 그들 각자가 다짐한 서약이다.

그렇다고 희생을 전제로 승리를 쟁취하는 게 옳은 일이라는 뜻은 결코 아니다.

그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살아남은 자들을 어떻게 대면할 것인가?

무거운 짐이 그의 어깨를 짓눌러 이 소나무의 가지를 부러뜨리려 한다.


벗어나고 싶은가?


그가 책상 옆의 찬장을 열었는데, 그 안에는 총알이 가득 박힌 권총이 놓여 있었다.

그는 권총을 자신의 턱에 들이댔다.



그러던 중 '오랜 친구'가 트릴드의 저택을 방문했다.


트릴드

이런 때에 나를 찾는 것은 그냥 옛날 이야기하기 위해서가 아니겠지?


그는 아직도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차를 반대편으로 밀어내고 소파에 다시 앉았다.


트릴드

널 어떻게 불러야 하나, 쿠로노 씨?


쿠로노 씨

이 호칭 꽤나 적절하군.


상대방이 찻잔을 받아 들고 흔들자 호박색 찻물이 도자기 잔에 가볍게 넘쳤다.


쿠로노 씨

우리도 30년 넘게 알고 지낸 사이인데, 더 좋은 차를 대접해 줄 수 없나?


서먹서먹한 기색도 없이 자주 마실나간 듯한 말투였다.

트릴드 역시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다소 불평을 토로했다.


트릴드

나는 세계정부에서 일하는 월급쟁이라 너 같은 대기업 사장님처럼 그렇게 많은 여윳돈을 쥐고 있지 않거든.

너무 오랫동안 안 만났으니까 우리 집 사정을 잘 모르겠지.


늙은 여우 두 마리가 서로 마주보며 웃고 있는데, 마음이 서로 비치지 않는 모습이다.


트릴드

오래간만에 만났는데, 옛날이야기를 할 작정으로 온 거야?

내가 맞춰볼까, "크틸라 프로젝트"일까, "겨울 계획"일까?


상대는 손가락으로 찻잔의 손잡이를 가볍게 두드렸다.


쿠로노 씨

다 지나간 사업인데 그 얘길 꺼내서 뭐하겠나?


트릴드

오, 그러고 보니 전혀 모르나 보네?

그럼 내가 내부 정보를 알려줄까?


상대는 컵받침 위에 찻잔을 올려놓고 침묵에 잠겼다.


쿠로노 씨

이러면 절차에 문제가 있을 것 같은데, 나는 화를 자초하고 싶지 않거든.


트릴드

아직도 절차와 규칙을 신경 쓰나?


쿠로노 씨

나는 법을 준수하는 성실한 납세자니까.


트릴드

그랬으면 좋으련만.


트릴드는 찻잔을 입가에 대고 한 모금 홀짝인 후 살며시 내려놓았다.


트릴드

혹시 다른 옛 추억거리가 없다면 이만 실례 좀 할게. 솔직히 나 아직 바빠.


쿠로노 씨

정말로? 퍼니싱이 터지면서 세계정부의 실질적인 지휘권은 군부로 넘어갔다지?

세계정부의 의장인 넌 오랫동안 공개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무심코 하는 말 같지만 독사가 내뱉은 심지처럼 트릴드의 마음을 간질였다.


트릴드

어쨌든 이런 특별한 시기에는 문서에 서명하는 것으로 충분해. 정말로 날 전쟁터로 내보내게? 이 늙다리보고 어떻게 버티라고 그래.


그의 맞은편에 앉은 사람이 가볍게 웃었다.


쿠로노 씨

물론 서류 서명도 중요한 일이지.

결국 퍼니싱에 대한 작전 외에도 정부기관의 정상적인 운영은 물론 일반인의 생활 보장도 쉬운 일이 아니거든.

하지만 너와 나 모두 알다시피, 흔한 일일수록 간과하기 쉽지. 사람들은 네가 무엇을 변화시켰는지는 기억하지만, 네가 무엇을 지켰는지는 기억하기 어려워.

장병들의 희생을 애도하면서, 생업에 열렬히 종사한 이들을 떠올릴 사람이 얼마나 될까?

비록 후자는 그들의 삶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에도 말이야.


평범한 말 속에 담긴 가장 악랄하고 경멸을 담은 도발이었다.


트릴드

각자 맡은 일을 하는 거지, 우리한테는 관심 없는 게 가장 좋은 결과야.

더군다나 한스는 내 친구이고, 나는 그를 전적으로 신뢰해.


쿠로노 씨

오, 나의 친구. 이런 진부한 농담은 이제 그만하세.


상대방이 거드름 피우는 어조로 말했다.


쿠로노 씨

우리 같은 사람이 믿을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우리 자신과 정해진 사실이라네.


트릴드

만약 내가 너와 같은 부류가 아니라면?


쿠로노 씨

이게 너만의 유머 같은 건가?


트릴드는 대답하지 않았다.


쿠로노 씨

우리에게 있어서 말은 진실한 목적을 감추는 장막에 불과하지.

우리가 무슨 말을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아. 우리의 진심을 알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우리가 하는 일뿐.

정말 매사에 아랑곳하지 않았다면, '에덴 프로젝트'를 서두르지 않았을 것이고, '고용 법안'을 밀어붙여 재선을 노리지도 않았을 테지.

이 점에 있어, 우리는 정말 감사함을 느끼고 있어.


트릴드

이 "우리"가 쿠로노 씨네 그룹을 말하는 건지, 아니면...


그가 계속 묻기를 기다리지 않고, 상대방이 이미 그의 말을 끊었다.


쿠로노 씨

물론 그룹과 친구들 말이지.


트릴드의 침묵에 쿠로노 씨는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쿠로노 씨

너는 모든 카드를 '에덴 프로젝트'에 걸었고, 매우 유감스러운 점은 네가 잘못 걸었다는 것이지.

내가 전에 말했듯이, 사람들은 네가 무엇을 변화시켰는지 기억하지만, 네가 무엇을 지켰는지는 기억하지 못해.

의료 개혁? 게슈탈트의 민영화? 교육 보급?

아니, 그들은 이를 기억하지 못할 거야.

초대 세계정부 의장이 과학이사회와 손잡고 지옥의 문을 열어젖혀 퍼니싱이라는 재앙을 풀어줬다는 것만 기억할 거야.

아직 청산할 겨를이 없어 보이긴 하지만, 과학이사회를 탄핵하라고 성토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지?

인류의 등대도 이런 우둔함에 매장당할 수 있는데, 하물며 당신이야?


트릴드는 침묵을 지키며 상대에게 직접 반박하지 않았다.


트릴드

재난 앞에서 이성적으로 행동하길 바라는 건 욕심이야. 시간은 우리가 올바른 선택을 했다는 것을 증명할 테고.


쿠로노 씨

하지만 그때가 오면 너도 역사가 되어있을 테고, 평가와 위상은 그전까지의 너에게 있어 요원한 일이겠지.

지금 바로, 너에게 기회가 있어...


상대방은 품속에서 갈색 서류 봉투 두 통을 꺼냈다.


트릴드

이것은?


쿠로노 씨

세계정부가 수송기 문제로 고민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어. 어쨌든 대이동의 실패로 군의 공중력이 거의 다 파괴되었으니 말이야.

이 행성이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고, 하늘만이 유일한 퇴로이지.


트릴드

너도 아는 게 많구나.


쿠로노 씨

쿠로노의 친구는 아주 많거든.

그래서 내가 작은 선물 하나를 주었는데...


그는 손가락으로 종이봉투 중 하나를 찍었다.


쿠로노 씨

그리고 약간의 건의사항도...…


그는 다른 종이봉투를 가리켰다.


트릴드는 양도계약서가 들어있는 첫 번째 종이봉투를 열었고, 그 내용은 바로 세계정부가 시급히 필요로 했던 항공운송력이었다.


트릴드

어디서 이렇게 많은 수송기를 찾은 거야?


쿠로노 씨

우리야 전선에 나갈 일이 없었으니까. 국민의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한 세계정부에 감사해야겠지.


트릴드

나도 세계정부의 이름으로 얼마든지 징발할 수 있어.


쿠로노 씨

지금 이럴 때 말인가? 아니, 완전히 무너져버린 때에 넌 불난 집에 기름을 들이붓지 않을 거야.

전선도 급하고 후방도 급한데, 사람들에게 그런 잘못된 인상을 주고 싶지 않을 거야, 그렇지?

세계정부가 폭동에 대비할 수 있는 병력은 얼마나 되나?


트릴드

...


그는 침묵하면서 다른 종이봉투를 열었는데,안에는 명단이 있었다.

첫 페이지만 보고 그는 명단을 내려놓았다.


트릴드

너는 자리를 너무 많이 원해.


쿠로노 씨

나의 친구. 나는 사업가고, 거래의 마지노선을 잡는 것은 나에게 기본기니까. 협상 기술을 쓰려고 애쓰지 마.

게다가 이건 제안일 뿐만 아니라 초대이기도 하지.


트릴드

초대?


쿠로노 씨

옛말에 "현명한 새는 깃들일 나무를 가리고, 현명한 신하는 헌신할 주군을 택한다"고 하지.

과학이사회의 시대는 이미 지났어...


트릴드

하지만 다음 시대는 너희들의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데.


쿠로노 씨

계약서에 서명하면 우리의 것이지. 내가 아닌, 바로 우리.

너는 여전히 정계를 주름잡는 의장이 될 것이지, 사람들의 미움을 받는 패배자가 될 수 없어.


트릴드의 얼굴 변화는 쿠로노 씨의 눈을 피해가지 못했다.


트릴드

내가 약속한다고 해서 그 자리가 단숨에 바뀌는 것도 아니고, 의장의 권한도 무한하지 않아.


쿠로노 씨

우리가 이전에 협력했던 것처럼 모든 것이 절차에 부합할 거야.


이 말에 트릴드는 눈을 가늘게 떴다.


트릴드

너희들은 이미 손을 충분히 멀리 뻗었구만.


쿠로노 씨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멀리. 모든 사람이 재난에 직면했을 때 한스처럼 고집을 부리지는 않거든.


여기까지 말하고 그는 가볍게 웃기 시작했다.


쿠로노 씨

그는 꺾일지언정 굽히지 않는 소나무야. 푸른 잎이 떨어지고 생기가 없어지더라도, 그의 등을 굽힐 수는 없어.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바람이 불면 구부러지는 풀이기 때문에 우리의 잠재적인 동맹이 될 사람은 꽤 많지.

그렇다면 너는 어떻지?


트릴드

...

명단에 협조해야겠네.


쿠로노 씨

그야 물론이지. 그런데...

그동안 불미스러운 계약 파기를 경험한 만큼, 의장 명의의 글로벌 TV 연설을 먼저 했으면 하는군.


트릴드

나더러 기정 사실을 만들길 바라나?


쿠로노 씨

중요한 것은 무엇을 약속했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했느냐지, 안 그런가?


침묵이 두 사람 사이에서 맴돌았다.


쿠로노 씨

명단 하나랑 지원서 하나.


상대는 두 개의 봉투를 트릴드 앞으로 밀어붙이며 손에 든 칩을 보여 주었다.


쿠로노 씨

그리고 당신의 연임.


트릴드는 잠시 생각한 후, 명단에서 두 이름을 지워버렸다.


트릴드

군부의 일이라면 난 관여 못 해. 한스의 신망이 너무 높거든.


쿠로노 씨는 눈살을 찌푸리며 다음 말을 기다렸다.


트릴드

다음 달에 기자 회견이 있는데, 그때 임면 수칙을 선포할 거야.


쿠로노 씨

음… 그래, 어쨌든 이 두 사람은 중요하지 않으니까.


쿠로노 씨는 그 양도 계약서에 자신의 이름을 서명했다.


쿠로노 씨

이 운송 기회는 네가 발표한 후에 너의 명의로 양도될 거야.

또한, 합류를 축하하네, 트릴드.


상대는 일어나 모자를 쓰고 방을 나갔다.



한 달 뒤

주먹이 트릴드의 얼굴을 세게 내리치는 바람에 몇 바퀴를 돌다가 넘어졌다.



한스

트릴드!


한 달 동안 한스는 몇십 살이나 먹은 것 같았다.

다음날 지휘실 사람들이 하룻밤 사이에 백발이 된 한스를 만났을 때 눈빛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그러나 그는 조용히 손을 흔들며 일을 계속하라고 했다.

그 군인들이 미래를 위해 싸우기 위한 카드가 되어버렸다면, 자신의 몸도 걸어야 한다.

그는 자책과 도피로 죽은 생명을 모독할 수 없다.

그는 자신의 패를 활용해 그것의 가치를 발휘하게 만들어, 의미있는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

자살은 분명 활용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러나 그는 한 사람이 먼저 탈영병이 될 줄은 몰랐다.


한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그 의원들이 존재하지 않는 혐의로 투옥되었을 때, 트릴드가 기자회견에서 새로운 지명자 명단을 낭독했을 때였다.

한스는 전에 없이 격분했다. 트릴드가 먼저 배신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트릴드

한스, 우리에겐 그 수송기가 필요해.


한스

하지만 그 대가는 의회의 미래야!

넌 세계정부가 그런 사람들에게 장악되면 어떤 결과를 맞이하게 될지 알고 있을 텐데.


상대는 한참 동안 침묵을 지키다가 입을 열었다.


트릴드

한스, 우리의 꿈은 깨졌어. 현실을 직시해.


한스

개**야!


트릴드는 다시 얻어맞고 날아가 버렸고, 옆에 있던 경호원들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한스를 막았다.


경호원

한스 씨. 계속 이러시면 의장님을 습격한 것으로 간주합니다.


한스

나한테 또 할 말 있어?


트릴드는 침묵을 지켰다.


한스

놔, 나 혼자 갈 수 있어!



깊은 밤.

마지막 일을 분부한 뒤 트릴드는 앞에 있던 젊은이들을 물리쳤다.

그는 공구를 꺼내 자신이 이미 20년 가까이 일해온 방을 자세히 청소하고 있다.

그는 매우 진지해서 어떤 구석도, 어떤 그늘도 놓치지 않는다.

바닥의 먼지를 쓸고 나면 책장의 먼지가 떨어진다……

이어 뒤 창문까지 깨끗이 닦은 뒤에야 시린 허리를 주무르며 다시 의자에 앉았다.


트릴드

휴… 이렇게 청소하고 나면 한동안은 안 더러워지겠지.


그는 창밖의 달빛을 보며 한스와 축배를 들었던 장면을 떠올렸다.



트릴드

내일을 위하여.


한스

내일을 위하여.


그는 별하늘을 바라볼 때의 설렘을 잊지 않았고, 그때부터 평생을 바칠 자신의 일을 확신했다.

그는 인류를 태양계 밖으로 이끌어 우주에서 전설을 계속 써내려 했다.

그는 역사에 한 획을 긋고 싶었고, 역사의 티끌에 묻히고 싶지 않았다.

...

그는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에게 해명하며 명예로운 작별 인사를 남기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

겉으로는 무심해 보이는 그 약속이 실제로는 그가 내내 지켜온 신조였기 때문이다.



트릴드

내가 보장하지. 이것이 단순한 이기심의 발로가 아니라 항상 세계정부를 나 자신보다 더 높은 위치에 두고 있었다고 말이야.


거짓말이 무기인 남자는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진심을 숨긴다.



트릴드

이 시대는 더 이상 평범한 정치가가 필요 없지만, 난 아직 당신들을 위해 무언가를 더 할 수 있어.


그는 미리 준비한 와인을 꺼내 달을 향해 잔을 들었다.


트릴드

내일을 위하여.


컵 속의 붉은 액체를 단숨에 들이켰다.



다음 날, 감사원은 세계정부 의장의 부패 범죄, 뇌물 수수, 공직 매각 행위 및 그에 상응하는 증거를 자세히 나열한 투서를 받았다.

감사원 직원들이 트릴드의 집무실에 침입했을 때, 그는 이미 숨을 거둔 뒤였다.

옆에 놓인 와인잔에서는 시안화물이 검출되었고, 이는 사인과 일치했다.

한편 투서 내 증거의 진실성도 입증됐다.

트릴드는 곧 세계정부에서 제명되었고, 그에게 누명을 쓴 사람들도 곧 석방되어 복직되었다.

그의 명의로 된 출처가 불분명한 자산은 대량 수송기까지 포함해 모두 압류되었다.

트릴드가 살아있었다면, 배후에 있는 사람들은 그가 말을 바꾸도록 하고 익명의 투서를 보낸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내도록 강요할 수 있는 방법을 무수히 찾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죽었고, 그들이 멸시받는 망자에게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날 한스는 방에 틀어박힌 채 오랫동안 나오지 않았다.

그날 정화부대는 총출동하였고, 발라드는 그 이름들이 빼곡히 적힌 단말기를 거의 부숴버릴 뻔했다.


발라드

저 암덩어리들을 뿌리 뽑으러 간다!


트릴드의 스캔들은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

그러나 불과 3일 만에, 사망한 전직 의장에게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게 되었다.

아카디아 대퇴각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