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식체들은 밀물처럼 밀려왔고, 루시아는 다친 다리를 지탱하느라 애를 먹고 있었다.

 

이 불안정한 방어선을 무너뜨릴 준비를 하며 더 많은 침식체가 여전히 시야의 가장자리에 모여 있었다.



히로

루시아... 이제 됐어요...내 침식 수준은 절망적입니다.


 

루시아 

히로...

 

그는 자신의 군번줄을 벗어 루시아에게 건넸다.

 

히로 

미안해요, 루시아... 미안해요, 슌... 무롤...

이제 저를 죽여주세요. 저를 인류의 적으로 만들지 말아줘요.

 

히로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히로

하지만 어쩌면... 우리는 이미 인간의 적일지도...

 

루시아

…………

 

두 사람은 말문이 막혔고, 긴 침묵 끝에 루시아는 히로에게 칼을 겨눴다.

 

루시아

우리는 인류를 지키는 검이지만...

 

그녀는 점차 그녀를 둘러싸고 있는 침식체들의 군대를 슬프게 바라보았다.

 

루시아 

... 최소한 슌과 무롤을 구하기 위해 서둘러야 해!

 

루시아는 결심하고 자신을 둘러싼 침식체에게서 빠져나오려고 했지만, 적의 숫자는 상상 이상이었다.

 

루시아 

정말 다루기 쉽지 않네!

 

퍼니싱이 계속 자신을 괴롭혔지만, 그녀는 끝까지 사방의 적을 죽였다.... 그러던 중 침식체 군단에서 낯익은 두 모습을 보게 됐다.

 

그들은 마치 루시아의 모든 버릇과 허점을 다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마찬가지로 루시아도 그들의 공격을 잘 알고 있었다.

 

마주하고 싶지 않아도 가슴에 걸려 있는 군번줄이 그녀를 현실로 끌어당겼다.

 

루시아 

무롤...슌... 정말 당신들이군요...

 

루시아는 더 이상 검을 손에 들고 있을 수 없었고 진흙탕에 빠뜨렸다---- 수많은 침식체를 참살하고 명예로 가득했던 그 붉은 칼날이, 이제는 진흙으로 뒤덮이고 더러워졌다. 

 

루시아 

괜찮아... 적어도 의식은 남아있어.

이제 퍼니싱이 조종하는 이 빈 껍데기에서 당신들을 해방시키겠습니다!

 

동료의 군번줄을 집어 들고 루시아는 고개를 돌려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침식체를 바라보았다.

 

루시아

퍼니싱에 파묻힌 이 침식체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런 일을 겪으며 침식체로 변했을까...


 

——'그들'도 믿는 사람이 있었겠지.

 

레벤치

흠, 네가 루시아인가? 내 이름은 레벤치이고, 그레이 레이븐 소대의 지휘관이다. 나는 네가 침식체에게 맞서는 그레이 레이븐 소대 최고의 구조체가 되기를 원한다. 하나의 완벽한 무기가 되기를.

 

——'그들'도 동료들과 함께 했겠지.

 

레벤치 

루시아, 망연자실할 필요 없어. 그레이 레이븐은 너의 집이다. 우리는 너를 배신하지 않을 거고, 결코 너를 버리지 않을 것이다...

 

——'그들'도 약속을 했겠지...

 

루시아 

침식체가 되기 전까진... 우리 모두 비슷한 존재였는데...

 

루시아의 몸에 순환액이 차차 고갈되어 더 이상 몸을 지탱할 수 없게 되어, 루시아는 천천히 부서진 벽 옆에 쓰러졌다...

 

루시아

인간은...정말로 우리에게 보호받을 가치가 있는 존재인가...

 

루시아는 손에 있는 군번줄을 꽉 쥐고... 완전한 침묵에 빠졌다.



--------------------------------------------




루시아는 루나를 생각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의식의 심해가 깊은 소리를 내며 주변의 고리를 닫은 것도 이런 그리움 때문이었을 것이다.


? ? ? 

이게 바로 언니가 믿는 인간이야...



루시아

루나...?

 

눈앞에 나타난 루나의 모습, 루시아는 이것이 의식 속의 환영일 뿐임을 알면서도 그녀에게 가까이 가고 싶어졌다.



"루나“

언니... 여기 남으면 안될까... 루나랑 같이 있으면 안돼?

언니가 여기 있는 한, 언니는 다시는 아픈 일도, 슬픈 일도 없을 거야... 항상 나와 함께 있을 거야.

어서... 언니... 그냥 예전처럼 내 손을 잡아...

 

루시아

루나 혼자 구조체가 될 위험에 직면하게 한 것 때문에, 나는 엄청난 후회를 했어. 가능하다면 이번에는...

 

하지만 루시아는 이 손을 잡으면 자신이 두 번째 알파가 될 것임을 알고 있었다.

 

루시아

아니, 루나...

알파의 심정은 알겠어. 그들 이 기억을 숨기지 않았다면 나도 분명 그녀와 같은 길을 걷고 있었을 거야.

하지만... 역시 이 길은 바꿀 수 없어.

 

"루나" 

아무것도 바꿀 수 없는 건... 바로 언니야...

 

눈앞의 가냘픈 소녀가 한숨을 내쉬었고, 주변의 풍경이 일그러지고 흐릿해지면서 어느새 최초의 분기점으로 되돌아갔다. 고개를 들어 바라보니 알파가 그녀 쪽에 서서 루시아를 바라보고 있었다.


알파 

루나를 만났어?

 

루시아가 대답하지 않는 것을 보고 알파는 경멸적인 표정을 지으며 무기를 꽉 쥐고 루시아를 향해 달려갔다.

 

두 사람의 칼날이 빨갛고 파란 기류로 변해 서로 충돌했고, 의식의 바다가 거세게 흔들렸고, 이 충격에 두 사람의 생각과 기억이 심각하게 혼란스러워졌다.

 

루시아

의식의 바다가 흔들리고 있다! ?

 

알파

칫...

 

서로의 기억의 파편들이 격렬한 기억의 흐름 속 경계를 넘어 무너져 내렸다. 마치 유리 조각이 눈앞에 쏟아지는 것처럼.

 

그 순간, 루시아의 머릿속에는 낯설지만 낯익은 무수한 파편들이 흘러들어왔다...

 

루시아

……알파!

 

... 한때 그녀만의 것이었던 희망들이.


 

알파

나는 아직도 사건의 완전한 보고서를 공중정원에 다시 보내고 싶어. 상층부는 진실을 알아야 해. 그래야만... 그들은 써서는 안 될 누명을 쓰고 희생당한 것이 되지 않을 거니까.....

그리고... 이런 일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는 것이 좋아.



알파

 당신은 공중정원의 구조체입니까? 무롤과 슌의 메시지를 본 적이 있습니까? 그들이 의식 피드백을 사용했다고 들었습니다.


 

구조체 병사

그 두 사람은 본 적이 없어요. 잠깐, 당신 침식체야?!

 

구조체 병사가 조심스럽게 무기를 들어 올리자마자, 알파의 칼자루로 인해 몇 미터나 날아가 버렸다.



알파 

가세요. 내 마음이 바뀌기 전에.

 

... 아무런 보답도 없는 희망.


 

알파 

설마……!



롤랑

내가 어떻게 감히 루나 아가씨가 가장 사랑하는 언니를 속일 수 있겠어? 믿기지 않는다면 그 남자의 의식의 바다를 스스로 탐색해봐.

 

루나

이 문제는 이미 공중정원에서 완전히 묻어버린 것 같네.

 

롤랑

새로운 그레이 레이븐 소대에 너랑 쏙 빼닮은 루시아가 또 배치됐다고 들었어.

 

알파

내가 그들을 떠났어도, 나는 계속 이용당하는 건가. 인간이란 생물은....


 

알파

이 침식체는... 전에 그 구조체 병사인가?

왜 너마저...

정말... 너도 배신 당했구나.

 

이런 대동소이한 상실감이 알파가 나아갈 길에 자갈처럼 깔렸다.

희망은 끊임없이 피어올랐지만, 계속해서 허사로 돌아갔다.

그녀의 절망은 페트리 접시에 세균이 떨어진 것처럼 점차 모든 것을 갉아 먹었다.


 

알파 

이것이 '퍼니싱'의 의미... 이 비열한 감정이 마음에 남아 있는 한 인간은 미래로 나아갈 수 없다.

적어도... ‘나’는 더 이상 이용당할 수 없다.

또 다른 나라도 같은 실수를 되풀이해서는 안 돼!

 

알파 

하지만...또 하나의 '나'는 악의로 가득한 인간에게 충성을 다한다.

...모든 잘못은 내 손으로 고치겠어.


 

알파

...

봤어?

 

루시아

……응.

 

의식의 바다의 충돌과 충격으로 인한 기억의 소용돌이는 루시아에게 분기점 이후의 알파의 기억을 보게 했고, 알파에게 그레이 레이븐 소대에서 루시아가 지내온 시간을 보게 했다.

 

알파 

나도 루나도, 승격 네트워크에 선택되었을 때 일어났던 일들은 모두 시작 점에 불과해.

 

알파는 자신의 기억 때문인지, 루시아 너머로 자신의 현재와 정반대의 미래를 보았기 때문인지, 알 수 없는 고통에 눈을 감았다.

 

알파

우리도 너처럼 연약한 거짓말을 믿었어. 하지만 거짓말은 거짓말일 뿐이야. 결국 들통나게 되어있어.

인간에게 배신당한 후에도 ‘내’가 이런 나쁜 생물의 무기가 되게 하느니, 차라리 내 손으로 ‘나’의 잘못을 끝내버리겠어....

 

알파가 한 발짝 다가가자 그녀의 발자국 사이로 불길이 번지면서, 주변 풍경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그리고 교체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