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는 광야였고, 알파는 맹렬한 화염 속에서 천천히 눈을 떴다.


 

루시아 

내 감각이 그녀에게 침식당하고, 의식의 연결 다리가 이런 역할을 하다니...

 

둘 사이의 의식의 바다는 화서가 세운 연결다리로 연결돼 있지만, 알파의 극도의 분노에 의해 그녀의 의식의 바다는 점점 팽창하고 있었으며, 얼마 걸리지 않아 상대방을 집어 삼켜버릴 것이었다.

 

분기점이 생기기 전까지는 같은 인물이었다. 설령 이 분기점이 두 사람을 다른 미래로 향하게 했다고 해도, 의식의 바다가 같았다는 사실은 바꿀 수는 없었다.

 

알파

우리 의식의 바다의 같은 부분으로 서로를 연결하려고 하는 건, 자업자득일 뿐이야.

 

타오르는 불꽃이 의식의 바다를 휘젓고, 두 사람이 부딪친 곳은 끓는 용암으로 변했다.

 

루시아는 무기를 움켜쥐고, 그 길을 걷던 원동력을 떠올렸다. 두 사람이 맞부딪힌 불바다에 작은 눈송이가 나타나 알파의 새하얀 머리카락 사이로 흩날렸다.

 

알파 

너의 앞길을 지탱해 주는 감정은 고작 이 정도야?

아니면...아까의 기억으로 인해 흔들린 건가?

 

루시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가볍게 발끝을 두드리고 뛰어올라 칼끝이 알파의 미간을 향하게 했다. 찌르려는 순간 다시 의식의 바다가 일그러져 돌담이 나타나 그녀의 공세를 막았다.

 

루시아 

이런 수작을...!

 

돌담은 날카로운 칼날에 순식간에 파편으로 변했고, 루시아는 다시 검을 들어올렸지만,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불바다가 구룡의 익숙한 장면으로 변해 있음을 발견했다.


 

알파

루나를 어디서 다시 봤는지는 기억나?

 

루시아 

당연하지!

 

알파

그럼 다시 물을게 루시아. 네가 지키고자 하는 현재와 미래는 루나를 버려야 하는 세상이야?

 

알파는 루시아의 십자베기를 가볍게 피한 뒤, 상대방이 착지해 지면에서 일어서는 모습을 바라보고, 빠르게 검을 휘둘러 주위에 불꽃을 휘감으며 보름달을 만들어 공격했다.

 

알파

과거로부터 도피한 ‘나’는 절대 나를 이길 수 없어!

 

그녀는 루시아를 가볍게 지나쳤고, 칼날이 교차하는 날카로운 소리에 뒤이어, 탁자와 의자의 환영이 연기와 함께 무너져 내렸다.

 

알파는 이 연기 뒤에 조용히 서서 칼날에 에너지를 응축하고 안개를 넘어가는 도전자에게 일격을 가했다.

 

알파

이제 넌 후회와 혼란에 눌려 무너질 뿐이야.

 

그녀는 폐허에 쓰러진 사람들을 냉담하게 바라보며 그 말을 되풀이했다. 단지 이번엔...그녀는 스스로에게 말하고 있었다.

 

루시아

아니야! 나는 루나를 버리지 않을 거야!

 

알파

뭐라고?!

 

깨져있던 탁자와 의자의 환영이 다시 한 번 의식의 바다가 만들어 낸 구룡의 장면에 나타나 일제히 알파를 향해 날아갔다. 알파는 급히 무기를 뽑아 재빨리 앞의 공간을 잘랐고, 그 탁자와 책상들은 큰 소리를 내며 땅에 떨어졌다.

 

그러나 곧바로 다시 나타난 것은 루시아가 계속 준비해온 공격이었다.

 

알파

이 정도는 턱없이 부족해.

 

대들보에 매달린 등불은 촛불에 옮겨붙었고, 주변은 다시 한번 불길에 휩싸였다.

 

루시아

나는 반드시 루나를 구할 방법을 찾을 거야. 그러기 위해서---나는 결코! 여기서 너에게 패배하지 않을 거야!!!

 

매서운 한기가 루시아의 칼날에 몰려들고 그녀가 전방으로 가볍게 휘두르자 얼음과 서리가 모인 칼빛이 불바다 속에서 탄탄하게 길을 가르고 얼음 길이 한 걸음씩 알파를 향해갔다.

 

알파

그럼 한 번 해봐.

 

수호와 증오, 믿음과 배신, 얼음과 불꽃.

 

모든 감정을 응축시킨 참격이 허공에 부딪히고, 의식의 바다는 다시 한 번 격동한다――

 

알파

입으로는 호언장담하지만, 이렇게 못 견디는 것이 지금의 너야?

 

산산이 부서진 얼음은 시든 눈송이 조각으로 변했고, 루시아의 의식은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졌다.

 


루시아

...내 마음은... 아직도 혼란스러운가?

 

스스로에게 물어봐도 답은 나오지 않았다. 긴 추락 속에 알파와 함께했던 수많은 과거가 눈앞에 펼쳐졌다.

루나와 서로 힘이 되었던 기억, 그 '어른들'과 수도원을 떠나던 기억, 구조체가 됐을 때의 기억.

 

루시아

루나...난 절대...

 

떨리는 목소리와 함께 기억에서 응축된 형상이 조용히 심연의 바닥으로 내려왔다.


 

루나?

……언니.

 

순백의 소녀는 밤하늘의 밝은 달과 같이 캄캄한 심연에서 순수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루나?

...언니는 언니가 본 것이 모두 진실이라고 생각해?


 

서서히 소녀의 주위에서 붉은 빛이 솟아올랐고, 그녀의 몸은 공중으로 떠올랐다. 아래쪽에서 무수한 붉은 빛이 솟구쳤고, 이 고요한 심연도 붉은 빛에 흔들리며 격렬한 진동과 함께 포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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