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로라가 반짝이는 하늘 아래, 그녀는 서리와 눈이 섞인 칼바람에 몸을 맡기며 멀리 앞을 바라보았다.

 

밤의 장막이 눈송이와 어우러져 먹물 같은 빛깔을 뿜어낸다.

 

극한의 추위 속에서 그녀는 장총을 움켜쥐고 설림 사이로 간간이 솟아오르는 검붉은 불빛을 지켜봤다.

 

총을 들고, 조준하고, 쏜다. 능숙하게. 오랜 전투는 지금의 간결하고 세련된 동작을 완성했다.

 

쏠 때마다 눈밭 사이의 어두운 붉은빛이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검붉은 빛의 본체, 얇은 먹빛을 두른 기계들이 눈밭을 뚫고 나와 눈밭 한가운데 서 있는 그 이방인 소녀를 향해 돌진한다.

 

그녀의 옆에는 찬바람을 제외하면, 장총이 서 있을 뿐이다.

 

눈밭에서 장총을 뽑아 앞발을 높이 치켜 올랐다가 내리꽂았고, 그녀가 일으킨 눈송이가 다시 땅으로 돌아오기 전에, 그녀가 돌진하는 자세에 휩쓸렸다.

 

눈이 바람 때문에 그녀의 몸 표면에 달라붙어 마치 은백색의 갑옷 같았다.

 

기계들은 충격으로 지표면에 흩어지고 하얀 설원 위에 먹빛 잔해를 남겼다.

 

그녀의 앞쪽에는 울부짖으며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광포한 기계가 있었다.

 

그녀의 등 뒤에는 인류의 드문드문한 불빛과 야영지에서 피어오르는 희미한 연기가 있었다.

 

마지막 기계의 비명과 함께 그녀는 들고 있던 장총을 지면에 꽂았다.

 

소녀와 장총은, 적이 넘을 수 없는 간극을 만들었다.

 

수많은 세월 중 평범한 하루였고, 숲을 지키는 자들의 나날의 일상이자, 로제타에게 설원은 전쟁터였다.

 

소녀는 하늘 아래서 다시 한 번 앞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본 것은 여명이거나 황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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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쟁이 가라앉자 무르만스크는 오랜만에 평화를 찾았다.

 

항만 복구가 각 세력의 지원으로 일사불란하게 진행되다 보니 자연스레 숲을 지키는 자들도 가세했다.

 

이들은 하나둘씩 동행해 보통 사람들이 짊어진 한계를 훨씬 뛰어넘는 건축자재를 서로의 등 뒤에 고정하고 씩씩하게 항구 곳곳을 누빈다.

 

그런 행렬 속에서 인간형 여성 구조체가 느릿느릿 숲을 지키는 자들 사이로 걸어가는 모습이 오히려 어색해 보였다.



 

숲을 지키는 자 A 

로제타, 네 어깨의 건축 자재를 우리 등 뒤에 고정시켜.

 

로제타

이런 하중은 아무것도 아니야. 더구나 인간 형태가 불편해서 내가 운반하는 수량이 원래 너희보다 훨씬 적어.

신경 쓰지 말고 먼저 목적지에 가. 나 때문에 속도를 지체해서는 안 돼.

 

숲을 지키는 자 A 

흠.... 알겠어, 그럼 우리 먼저 갈게.

 

이인형 동료는 로제타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하고는 네 발을 내딛어 떠나갔다.

 

동료의 모습은 이내 시야 끝자락으로 사라졌고, 로제타는 어깨를 조이고 있던 자재들을 등 뒤로한 채 목적지를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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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제타

........

 

오늘 복구 작업을 마친 로제타가 돌아와 보니 동료는 물론 야영지에 있던 무기들도 보이지 않았다.

 

공기 중에 감도는 이상한 냄새에 로제타는 무의식적으로 손에 들고 있던 장총을 움켜쥐었다.

 

침식체

---------------!

 

익숙한 기계 생물이 야영지 바깥쪽으로 휙 지나갔고, 로제타가 들고 있던 장총이 빠르게 변형되면서 출렁이는 전기가 총끝에 응집됐다.

 

???

멈춰!

 

동료의 외침이 로제타의 발목을 잡았다.

 

로제타

이 거리라면... 안돼.

 

총끝에 응집된 에너지가 흩어지자 로제타는 장총을 거두어들여 쫓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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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을 지키는 자 A

이런.... 또 놓쳤어.

 

로제타

무슨 일이 있었어?

 

숲을 지키는 자 A

우리가 야영지로 돌아왔을 때, 근처에서 침식체가 활동한 흔적을 발견해서 동료들이 흩어져 쫓고 있어.

하지만 과정이 좋지 않아.

 

로제타

그렇군.

 

로제타는 동료들을 제치고 한 걸음 더 나아가 고요한 환경을 살폈다.

 

이어서 그녀는 낮은 나뭇가지에 시선을 모았다.

 

로제타

너 방금 이쪽을 지나갔어?

 

숲을 지키는 자 A

어? 아니.

 

동료의 답변을 받고 주변을 확인한 로제타는 손을 뻗어 동료에게 뒤로 물러나라고 지시한 뒤 장총을 들고 응집된 전기를 바로 나뭇가지를 향해 쏘았다.

 

침식체

--------!

 

침식체의 몸집 절반이 부서졌지만, 뚫린 몸통을 끌고 포효하며 로제타를 덮쳤다.

 

로제타가 총을 들고 반격에 나서자 숲 사이로 날아온 또 다른 장총 한 자루가 침식체를 관통해 한 쪽 나무 그루터기에 단단히 박혔다.


 

다이애나

헤헤, 로제타, 너 반응이 느려졌네.

 

로제타

응, 지금 기체는 화력에 더 집중하다 보니까 기동성이 좀 떨어지는 것 같아.

너희들, 상처가....

 

다이애나

괜찮아, 이런 가벼운 상처쯤은.

좋은 소식은 주변의 침식체를 모두 제거했다는 거야.

 

로제타가 동료들을 둘러보니, 모두 기체에 조금씩 상처가 있었다.

 

로제타

... ....

 

다이애나

어? 왜 그래? 로제타, 얼굴이 무거운데?

 

로제타

아니, 괜찮아. 내가 먼저 모두를 데리고 야영지로 돌아가 좀 쉬게 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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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의 부상을 수습한 뒤 다이애나는 숲속 상황을 항구 주민들에게 알렸고, 일부는 다시 복구 행렬로 돌아갔다.

 

일사불란한 동료들을 바라보며 로제타는 서서히 퇴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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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본 것은 여명이거나 황혼이었다.

 

부상당한 몸을 이끌고 야영지로 돌아온 그녀는 쉬는 동료의 편안한 모습이 의식의 바다에 각인돼 있었다.

 

동료를 지키는 기사로서 그녀는 또 한 번 사심 없이 자신의 소명을 다하며 동료를 지켜냈다.따뜻한 온기가 기체에서 맴돌며 전투에서 겪은 혹한을 날려버린다.

 

혼자 야영지 한켠에 내려와 동료가 자신의 부상을 알아차릴 때까지 모든 것을 챙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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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제타

다이애나, 요즘 숲을 지키는 자들은 어때?

 

다이애나

모두 기뻐하고 있어.

모두들 로제타를 그리워하고 있어. 언제쯤 다시 돌아올 거야?

 

로제타

... ....

내가 공중정원 쪽의 임무에 다 협조하면 돌아갈 수 있을 거야.

 

다이애나

응, 기다리고 있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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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

너, 약해졌네.


 

로제타

분명 난 수호자인데, 동료들을 위험하게 했어.

옛날의 나였다면... ...

 

로제타는 두 손을 살짝 잡고 지금의 자신을 바라봤다.


 

로제타

난... ... 정말 약해졌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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