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편: Winter Romance(겨울연가) - 루시아: 심홍지연 (https://arca.live/b/punigray/40203541)



(BGM)





항구의 하역 시설도 움직임을 멈추고, 도시가 잠에 빠져들기 시작하는 시간.

으스름한 박명이 내려앉은 신 무르만스크 항의 최외곽 구역 작은 한 구석에서,


끼익-. 

 
삐걱거리는 듣기 거북한 소리와 함께 문이 닫히는 소리가 일었다.



"후우-."


예정된 접선지에 도착한 인영의 입가에서 차고 긴 바람이 새어나왔다.

한숨을 쉬는 고갯짓을 따라 군번줄의 인식표가 짤랑인다. 

순간 창백한 달빛을 맞아 반사되는 빛에 음각된 문자가 반짝였다.


『그레이 레이븐 소대 지휘관: ㅡ 』


'결국 이렇게 되어버렸나.'


운반을 위해 제복에 체결시켰던 결합부를 풀어 소냐를 벽에 기대 앉히고는, 의식을 잃은 친구의 모습을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어쩌다가... 에휴."


한숨을 쉬며 습관처럼 앞섶을 뒤적여 담배를 꺼내 물고 불을 붙이다 아. 하고 연초의 끝을 꺾었다.

에휴우우. 담뱃재가 날리는 꽁초를 앞섶에 다시 쑤셔 넣고는 암호화 통신 링크를 연결했다.


"들립니까? 수석 기술관."

"그래."

"소냐 수석 연구원의 신병을 확보했습니다. 지시는 변경 사항 없습니까?"

"그래. 케르베로스 소대의 수송선이 그 쪽으로 갈테니, 최대한 신속히 합류해. 필요한 장비는 전부 그 안에 있으니. 쿠로노를 상대로 정보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시간은 30분 남짓이 최대다. 이 이상은 나도 어떻..."


"아시모프."



영양가 없이 길게 이어지는 말을 끊었다.

그 따위 것은 이미 알고 있어. 그런 것보다, 가장 중요하게 확인해야 하는 것이 있었다.


"이 녀석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다는 말, 믿어도 됩니까?"


날이 선 목소리.

내 목소리는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도 더 날카롭게 공기를 갈랐다.


통신 채널 너머 돌아오는 목소리에 짜증이 서렸다.



"하여간 군인들이란... 그녀는 대체할 수 없는 자원이야. 그녀를 걱정하기보다 앞으로의 네 처지에 대한 고민을 하는게 더 생산적인 행위일거다. 쓸데없는 말을 할 시간에 움직여. 이번 일의 핵심은 네 역량에 달렸으니."


암요, 알고 말굽쇼.

예, 예. 하고 주파수를 돌렸다. 레이븐 아웃.


"망할 새끼."


언젠가 면상을 한 대 후려 패주던가 해야지.

까드득, 한 차례 힘을 주어 주먹을 꽉 쥐었다 피었다. 손에 감기는 금속 보강재의 감촉이 기분이 좋다.

그러다 문득 허탈해져버려, 한 차례 다시 한숨을 흘리고는 고개를 들어 어두워진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서쪽 하늘 끄트머리, 잿빛 구름 사이로 희끄무레하게 모습을 내민 초승달.

그 창백한 낯빛이, 조금 전 마주했던 알파의 색 바랜 흰 머리를 떠올리게 했다.


「다음에 마주칠 때에는 적이 될거야.」


의식을 잃은 소냐를 조심스럽게 내려놓고는 발을 돌려 떠나간 녀석.

그 말을 할 때의 알파의 옆모습은 내려뜨린 앞머리로 가려져 있어, 심경을 정확히 파악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그저 떠나가는 뒷모습에 씁쓸한 미소만을 남길 수밖에 없었다. 

참나. 남의 몸에 멋대로 퍼니싱을 심을 때는 언제고... 갑자기 머릿속을 함부로 뒤적이질 않나, 돌변해선 겁박을 하지를 않나...



에휴.


"네가 여태껏 나한테까지 말을 아꼈던 게 이런 거였냐."

 
그래. 너 정도 되는 녀석이 느닷없이 지휘관 직을 내려놓고 다시 돌아간 데엔 그만한 이유가 있었겠지.

조금 전 꺾어 끊은 담배가 아쉬웠다. 그냥 한 대 쯤은 그냥 피울걸 그랬나. 약간의 니코틴이 절실했다.


'엄동 계획이라.'


지휘관의 데이터베이스 접근 권한으로도 조회가 불가능한 기밀 자료.

의장과 아시모프가 많은 것을 알려주지는 않았지만, 그 동안 모였던 정보의 파편들이 형태감을 잡기에는 충분했다.

돌연 지휘관 직을 사임하고 과학 이사회로 돌아간 소냐.

알파와 루시아, 알파와 소냐 사이의 모종의 연관성.

루시아에 대한 다년간의 기록들. 데이터 기록과 차이를 보였던 루시아의 모습들. 그 동안 쌓인 많은 의구점들.

모든 조각들이 맞물려 이제야 이해되기 시작했다.


"아~ 아."

 
나는 그저 모두와 함께하는 지구에서의 삶을 원할 뿐이었는데.


미약하던 달빛마저 다시금 구름 뒤로 숨어, 흐릿하게 어두침침하기만 한 하늘이 눈에 밟혔다.

이런 세계라도 언젠가 저 하늘에 다시 별이 걸릴 날이 돌아올까.


결국 참지 못하고 다시 담배를 꺼내 물어 불을 붙인 순간, 수송기가 바람을 찢으며 날아오는 소리가 저 너머로부터 들려오기 시작했다. 


"하여간 한 대를 못태우게 하네..."

 

쓴웃음을 지으며 검지로 담배 끝을 튕겨 불을 끄고는, 남은 연초를 앞섶에 다시 지져넣었다.



짝. 


양 볼을 짝, 때려 얼이 빠졌던 정신을 환기시켰다.

그래. 올까 가 아니라 오게 만들어야지.


누구의 손에 맡길 것이 아니라 내 손으로, 우리 손으로.

그러기 위해서, 우선 눈 앞의 임무를 완수하자.



소냐를 들쳐 메고는, 벗었던 후드를 다시 뒤집어 쓴 뒤 문을 나섰다.

발걸음이 떠난 곳에는, 언제 사람이 있었냐는 듯이 싸리한 냉기만이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Epilogue 1 암중모색(暗中摸索) [完]



본편: Winter Romance(겨울연가) - 루시아: 심홍지연 (https://arca.live/b/punigray/40203541)


#Epilogue 1 암중모색(暗中摸索) - 지휘관 Side
#Epilogue 2 경화수월(鏡花水月) - 심홍지연 Side : 집필중

#Epilogue 3 와신상담(臥薪嘗膽) - 아시모프 Side : "나중에" 




홍지랑 아시모프 사이드는 아직 집필중

본편 포함해서 쓰는데 보름 넘게 걸렸워 추천이랑 댓글좀 달아"줘"


퍼챈에 글쟁이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