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잔에 비치는 가로로 띤 달빛은 또 다른 풍미와 같다

제멋대로 남겨진 꽃은 너저분하게 꽃가루를 흩날리네

슬프도다 두롱(杜陇)의 한창이여, 그리움의 강물은 먼 하늘에 있으니, 고인에게 부치기 어렵구나*


*깊은 밤(远朝归) - 조기손(赵耆孙, ?~?) 作



익숙한 불빛이 머리 위에서 리듬을 타듯 흔들리고, 유유라는 이름의 소녀는 눈을 뜨고는 심하게 기침을 했다.


공기가 목구멍을 스치는 느낌은 마치 오랜만인 듯 달콤해 유유는 숨쉬는 것을 잊은 것은 아닌지 스스로 의심했다.



???

응, 드디어 깨어났구나...



유유를 두 번 구한 적이 있는 여성은 처음으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미소를 지으며 유유를 일으켜 세워 차탕을 담은 작은 그릇을 입가에 대어 먹였다.


차탕의 온도는 유유에게 자신이 살아 있음을 떠올리게 했고 온몸의 떨림은 서서히 멈췄지만, 동시에 예기치 않게 그녀의 얼굴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유유

언니... 나 살아있는거... 맞지?



소녀가 점점 흐느끼자 그 여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찻잔을 내려놓고 잠시 머뭇거리다가 유유를 살포시 안아주어 말 없는 눈물이 귀한 옷을 적시도록 내버려 두었다.


시간이 흐르고 저 멀리 어둠도 서서히 바래지며 새로운 날이 밝았음을 알린다...눈물과 슬픔에 젖은 밤은 이미 지나갔다.


유유는 눈물 자국이 가득한 두 눈을 살짝 훔치며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유유

미안해....



그 여성은 자신의 더러워진 옷을 보고 고개를 저으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처럼 보였다.



???

아, 괜찮아, 이 옷은 무용단에서 준 거니까 세탁만 간단히 하고...


유유

그게 아니라....그것도 미안하지만!



유유가 얼굴을 붉히며 머리를 긁적거리면서 쑥스러워 한다.



유유

난 언니 말을 듣지 않고 안전한 곳에 남아 있지 않았어, 나 스스로... 혼자 이렇게 화가 나서 떠났었고, 언니는 나쁜 사람이라고 말하고...


???

어쩌면……네가 틀린 건 아닐 수도 있지만, 적어도 이 야항선에서 다른 사람을 믿는 것은 그리 현명한 건 아니야.



그녀는 뒤에서 늘 옆에 있던 판다 인형을 꺼내 유유의 품에 안겨줬다.



???

그리고 나도 사과해야 되는데....다시는 부모님을 못 볼 거라는 말을 너에게 하지 말았어야 했었어. 네가 희망을 버리지 않는 한 언젠가 구룡도시로 돌아갈지도 모르는데, 그분들은 여전히 그곳에서 네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을거야.


유유

응! 유유는 포기하지 않을 거야, 부모님은 분명히 아직도 나를 기다리고 있을 거야...


???

또 한 가지 너에게 사과할 게 있어. 나는 네가 산 그 태아기계체를 수리하려고 시도해 봤는데, 본체와 전자뇌가 심하게 망가져 원래대로 복구하는 것은 불가능해…



그녀가 손에 달린 방울을 흔들자 거대한 그림자가 안방에서 천천히 걸어 나왔다.



역사기계체

끼익ㅡㅡ


???

그래서 파괴된 역사기계체를 복구하고, 아마 이런 식으로라면 다시 살아날 수 있을 거라고…….



그녀는 자신이 얼마나 오만했는지 알고 있었다. 유유가 '친구'라고 불리던 태아기체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며, 그녀는 자신이 한 짓을 두려워하였으나, 다만 쓸데없는 위안에 지나지 않았다.



???

기계 몸에 있는 나사 하나하나, 부품 하나하나 모두 교체할 수 있었어. 이렇게 긁어 모아 만들어진 몸에 정말로 영혼이 깃들어 있을까? 무엇이 진짜 '그녀석'일까.



유유는 탐색하듯 손을 내밀어, 전전긍긍하며 이 역사 기계의 몸통을 만지고 있는데, 그의 손목에 묶여있는 분홍색 한가닥을 제외하곤 모든 기계와 마찬가지로 차갑고 단단했다.



???

이 리본은 원래 태아의 몸에 묶여 있었는데, 뭔가 특별한 의미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남겨 뒀어.



유유는 두 눈을 깜박이며 그 리본을 보다가, 그것은 원래 나만의 머리띠였다며 빙그레 웃기 시작했다.



유유

쟤는... 이름이 뭐야?


???

이름...? 나도 모르겠어...


유유

이름 없으면 안돼, 내가 이름 지어줄게~ 내가 제일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에 주인공도 로봇 친구가 있는데 그 이름 그대로... '아일'(阿一)이라고 불러줄까?



아일

끼릭끼릭ㅡㅡ!


유유

응, 내 이름은 유유, 이렇게 해서 우리 서로 이름을 소개했네...근데 네가 방금 태어난 동생이니까 유유 언니야, 기억했지?



알아차린 듯한 아일의 손짓에 유유는 옆에 서 있던 여성에게 발길을 돌렸다.



유유

이제 언니가 이름을 우리에게 알려줄 차례야!


유유의 묻는 말에 약간 놀란 듯 고개를 가로저으며 소매를 천천히 끌어올리자, 과거 역사 공격으로 부서졌던 팔뚝이 드러났다ㅡㅡ인조 피부 아래에 있는 복잡한 기계 구조가.



???

이미 눈치챘겠지만, 나는 인간이 아니니까...비밀리에 제작된 거라, 도구로 쓸 목적으로 나를 만든 사람이 나에게 이름을 붙일 필요가 없잖니.



인간과 다를 바 없는 두 손을 가진 더없이 정교한 얼굴, 상처에 의해 진실이 밝혀지지 않았다면 누구도 이 사실을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다.



???

전에 난 네가 무가치한 존재라고 말했었는데...하지만 무가치한건 나 자신이었어. 나는 제작자의 숙원을 이루기 위해 만들어진 도구였는데, 결국 나는...나의 사명은 기계로서는 영원히 완수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


유유

언니는 그렇게 강한데도 못하는게 있어?


???

응, 세상에는 영원히 바꿀 수 없는 것도 있고...네가 영원히 가질 수 없는 것도 있어.



창밖을 바라보는 시선은 막 동이 트는 노을빛을 뚫고 야항선에서 가장 높은 누각으로 떨어졌고, 그곳에 간혹 그 사람의 모습이 나타나는데, 비록 그의 눈에 자기 자신은 없지만…. 이 배에 타고 있는 모든 것들도 마찬가지다.



???

나는 이 몸으로 인간인 척 속여서 이 야항선에 탈 수 있었어...그때도 나는 왜 제작자의 명령을 어기고 구룡도시를 떠나 그의 모습을 따라 야항선에 올랐는지 이유를 모르겠어.


???

하지만 아무리 인간을 흉내낸다고 하더라도, 나도 영원히 인간을 이해할 수 없어, 영원히 유유 너 같은...소중한 인간이 될 수 없어.



유유는 알쏭달쏭했지만 웃으며 그녀의 손을 잡아당겼다.



유유

가치라든가 사명이라든가 그게 그렇게 중요한 거야? 나도 사실 잘 모르는데...하지만 언니도 굳이 인간이 될 필요는 없을 것 같아. '마음이라는 이름의 부품만 있다면 인간이나 기계나 다를게 없으니까!'


유유

멋지지? 《구룡마법소녀》의 대사지만...여기서도 잘 어울리겠다.



유유는 놓친 판다 인형을 가슴에 안고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유유

언니가 누군가에게 부여받은 가치를 잃었다면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찾아가는 게 더 소중한 것 같아.


???

내가 스스로 찾아가는 가치...? 그게 가능한지... 나는 잘 모르겠어.



유유가 하는 말을 듣고 상당히 놀라는 듯했던 그녀에게 이것은 기계적 논리를 넘어선 사고였다.



???

하지만 약속할게, 시도해볼게, 나만의 가치를 찾고, 그 마음이라는 부품을 찾을게……


유유

나도 구룡도시에 꼭 돌아갈거야. 아빠랑 엄마는 분명 언니처럼 날 기다리고 있을거야...


유유

이왕 이렇게 된거 우리 같이 힘을 모으자! 이 야항선에서 함께 살기로 약속해줘...우리의 목표를 달성할 때까지.



유유는 히죽히죽 웃으며 오른손의 작은 손가락을 뻗어…. 그 여성의 손가락을 잡아당겼다.



???

이것은 뭐니...?


유유

이건 말이지 약속하는 자세야... 근데 언니 이름이 없으면 안되잖아.


???

음... 내게 주어진 이름은 없지만 노래 가사에 빌려온 코드명이 있는데 배에서 생활하는데 쓰곤 해.


유유

그게 바로 언니 이름이야. 언니만의 이름.



그녀는 처음으로 자기만의 보물을 가졌다.


비록 그것이 하나의 이름일지라도, 그녀에게는 매우 큰 의미가 있다.



함영

함영.... 응, 내 이름은 함영이야.


유유

언니의 이름은 함영이야! 너무 이뻐!



유유는 다시 함영이의 손가락을 잡아당기며 리듬있게 고개를 흔들었다.



유유

손가락 걸고~ 손가락 걸고~ 함영 언니와 유유, 손가락 걸고 죽을 때까지 백년동안 어기기 없기!(拉钩上吊一百年不许变)



함영은 유유와 엮인 손가락을 보며 다정한 미소를 지었다.


그녀가 오늘 받은 두 번째 보물은 한 어린 인류와의 약속이었다.


두 사람의 흔들리는 운명이 이때부터 뒤엉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