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구

사장님 여기 동파육 갖다 주세요.


포뢰

아, 괜찮아요. 아직 나온 음식도 다 못먹었다구요!


전구

괜찮다. 많이 먹어서 쑥쑥 크거라. 사장님 여기 계화주도 갖다 주세요.


군중A

전씨, 아이 앞에서 술은 좀 그렇지않나.


전구

어, 그렇군, 아직 어린 아이니까 오늘은 안 마실거야.


전구

사장님, 계화주 말고 과일즙으로 바꿔 주세요.


가게 주인

네, 곧 갑니다.



가게 주인은 여러 접시를 동시에 들고 요리사 뒤에서 걸어나왔다. 악공들의 연주는 어느덧 시작됐고, 사람들은 비파 반주에 맞춰 잔을 밀며 즐기는 재미가 쏠쏠했다.



포뢰

우~와, 예쁘다.



밤하늘을 가로지르는 불꽃놀이가 무더운 인파를 몰고 와 축제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다.


불꽃놀이와 함께 북장단을 치며 무대에 오르는 기계 광대의 화려한 퍼포먼스는 갈채를 받았다.


포뢰는 눈앞의 공연을 보면서, 분명 처음으로-이 도시에 와서 처음-이 공연을 보고도 익숙함을 느꼈다.



전구

자, 저도 여러분께 한 수 보여주겠습니다.



전구가 칼을 꺼내들고 무대에 오르자 무기와 광대들이 쟁쟁하게 부딪쳤고, 금속을 맞부딛치는 춤사위는 음악에 맞춰 단상에서 오르락내리락하며 날아다녔다. 전구가 검무를 마치고 단상에 올라 포뢰에게 손짓을 했다.



전구

꼬맹이도 같이 올라오렴.


포뢰

하지만 저는...


군중들

어서 해! 어서 해!


요계

괜찮아, 부끄러워하지 마 아가씨. 네가 얼마나 대단한지 모두에게 보여주려던 참이야.


요계

이건 분명 모두에게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


포뢰

좋아요... 그럼,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ㅡㅡ전투 개시ㅡㅡ


군중들

세상 만사 고독하고 비통하네~


군중들

왕래하며 넘나드는 형세는 그 규모가 춤추며 달리는구나~



포뢰

뭘 해야 될까요?


전구

싸우는 느낌을 내주면 좋을 것 같군. 우리와 여기 있는 광대들은 모두 전문가들이다. 그들은 너에게 협조를 잘 해 줄 것이다


포뢰

좋아요, 제가 해 볼게요!



군중들

물고기가 용으로 변하니~


군중들

일어나라~




군중들

솜씨가 좋네!


전구

점점 더 마음먹은 대로 되는군, 이제 곧 공연의 클라이막스다!



군중들

만 개의 등불이 있고~


군중들

두 마리 용이 용맹하게 질주하네~


군중들

일어나라~






ㅡㅡ전투 종료ㅡㅡ



할아버지

정말 멋진 공연이구나.


포뢰

할아버지도 있었나요!



포뢰는 공연을 마치고 무대를 내려오자마자 낮에 산매탕을 파는 노인을 만났다. 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어둠에 싸인 도시 전체를 바라봤다.



할아버지

보거라, 여기 사람들은 바로 이렇단다. 이 도시는 이렇듯 꿈결처럼 화려하지만, 이 불같은 감정을 잡지 못하면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질지도 모른단다.


할아버지

너는 사람들의 환심을 잘 사는구나.


포뢰

아... 그런가요?


할아버지

응, 모든 게 끝나면 여기서 살 생각은 어떠냐?


할아버지

바쁘지 않고 여유롭지도 않고, 가끔 작은 고민도 있지만 금방 풀리고, 매일의 삶이 별로 변하지 않고, 그래서 서운하지도 않고, 어느 날 갑자기 깜짝 놀라는 일이 나타나면 또 한바탕 흥겨움을 가져다 줄 거란다.


포뢰

앞으로 어떻게 할지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할아버지

괜찮단다. 아직 갈 길이 멀었으니 천천히 생각해보렴.


할아버지

내일 아침 일찍 선착장에 가서 배를 탄다고 들었는데, 일찍 쉬려무나.



등 뒤에서 땡땡이를 꺼내 뭔가를 흥얼거리며 어둠에 발을 들여놓던 노인은 골목 어귀로 완전히 사라진 뒤에도 여전히 그의 목소리가 이 여름밤에 메아리치는 것을 들었다.



할아버지

우리 모두 좋은 꿈을 꾸게 해줘서 고맙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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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슴푸레한 아침, 포뢰는 푹신푹신한 공간에서 깨어났다.


주변에 익숙한 방 배치에 왠지 선명한 색상은 사라지고 단조로운 무채색 조각만 남아 있었다.


기이하게도 포뢰는 이를 이상하게 여기지 않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문 밖에서 전구와 그의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포뢰는 그들과 웃으며 인사를 나눈 뒤, 호송을 받으며 첫 배에 몸을 실었다.



전구가 말한 대로, 배에서 내리고 얼마 걷지 않아 포뢰는 길의 끝에 도착했다.


그녀의 앞에는 출렁거렸지만 소리가 나지 않는 짙푸른 바다가 나타났다.


배낭을 내려놓고 사방을 둘러본 그녀는 손으로 나팔 모양을 만들고 하늘을 향해 소리쳤다.




포뢰

대어 선생님~~ 어딨어요~~



어디선가ㅡㅡ


부름에 응하는 것은 차가운 메아리뿐이었다.


대어를 찾지 못한 포뢰는 초조하지만 뾰족한 수가 없어 길을 헤치고 읍내로 돌아와 다음 바다를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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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구와 사람들은 포뢰의 귀환을 열렬히 환영했고, 이를 위해 또 한바탕 흥청망청했다.


두 번째 출항에서도 얻은 것이 하나도 없었다.


포뢰는 노인의 도움으로 읍내에 장기 투숙할 작은 집을 구하고 장기전에 대비했다.


세 번째 출항에서도 얻은 것이 하나도 없었다.


네 번째, 다섯 번째... 이제는 몇 번째인지 모르겠다.


포뢰는 끊임없이 계속 찾아다녔지만 결국 돌아오는 것은 상실감이었다.


일어나 배를 타고 대어를 찾아 헤매는 일은 포뢰한테 일률적인 일상이 됐고, 삶에서 돌고 도는 일처럼 반복됐다.


그리고 이 바뀌지 않는 반복은 출발 전 품고 있었던 그녀의 포부를 갈기갈기 찢어 버리고 있었다.



그래서 포뢰는 강호를 돌아다니며 약방의 의원을 만나보기도 했고, 대어의 흔적을 찾기 위해 다른 곳으로 떠나봤지만 아무리 해봐도 제2의 선생 구하기는 불가능했다.


만약 내일도 대어의 눈물을 찾을 수 없다면, 선생님의 병세는 어떻게 해야 될까?


밤마다 포뢰는 이런 걱정과 불안을 안고 잠들 수밖에 없었다. 이를 악물고 선생을 구하겠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으려고 했다.


얼마나 지났는지도 모를 밤, 포뢰는 꿈을 꾸었다.



포뢰

우와 대어 선생이다! 드디어 찾았어.


포뢰

눈물 좀 주실 수 있을까요, 그걸로 사람을 구해야 해요.



대어

....



대어는 그녀에게 대답하지 않았다.



포뢰

대어 선생님, 어디로 가세요? 대어 선생님, 대어 선생님!



대어는 여전히 대답하지 않고 오히려 포뢰에게 멀어져 포뢰가 아무리 쫓아가도 대어가 떠나는 것을 막지 못했다.



포뢰

당신이 없으면 선생님은 어떡하라구요...



대어는 끝까지 대꾸하지 않았고, 포뢰는 쫓아가면서 몸이 점점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다.




대어, 선착장, 마을, 심지어 발아래 밟은 땅까지 끊임없이 멀어지고 있다.


이윽고 모든 것이 사라졌고, 그 대신 무수히 많은 고래들이 울음소리를 냈다.



포뢰

대... 대어...


포뢰

아니야 아니야. 이것들은 아니야.



고래 울음소리가 가까워질수록 포뢰의 세계는 고래를 제외한 모든 것들이 사라져갔다.


소녀의 이야기도 이렇게 막을 내리게 되는 것일까.


ㅡㅡ



포뢰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여관에서 깨어난 포뢰는 단말기의 시간을 보고, 광대와의 춤이 어젯밤인 것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포뢰

휴…꿈이라서 다행이야.


전구

꼬맹아 괜찮니? 소리지르던데.


포뢰

아, 네. 괜찮아요, 걱정 안해도 돼요.


요계

자, 그럼 우리도 출발해야 돼. 첫 배가 곧 출항할 거란다.


포뢰

좋아, 곧 갈게요!



포뢰는 문밖을 향해 소리를 지르며 손으로 가슴을 두드렸다.



포뢰

괜찮아. 걱정 마. 방금 전 건 꿈일 뿐이야.


포뢰

대어 선생은 내가 반드시 찾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