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파오스의 도안이 새겨진 작은 배지로, 그다지 비싼 사치품도 아니고, 그다지 희귀한 재료로 만들어진 것도 아니다.


다른 이들에겐 싸구려 물건이겠지만 자신에게는 적지 않은 의미가 있는 이 물건은 그 시절의 기념품일 뿐만 아니라 항상 자신이 세운 맹세를 일깨워 주는 경종이다.


흔한 스토리처럼 그것이 결정적인 순간에 심장을 향해 날아오는 총알을 막아줄 일은 없다.


하지만 어려운 결정이 내려질 때는 스스로 그것을 보고 본래의 마음을 채찍질하기도 한다.


스트레스로 인해 도피하고픈 마음이 들 때, 자신의 신분을 기억하고 책임을 기억하며 지금까지 자신을 지지해 온 모든 사람을 기억하라고 항상 일깨워준다.


마치 여러 차례 힘겨운 싸움을 함께 짊어진 옛 친구처럼, 자신은 그것이 시간에 닳아 유리상자 속에 얌전히 누워 있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을지언정, 도리 없이 작별인사를 고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



포뢰

그거 아주 중요한 거잖아요. 그런데 지휘관은 왜 이토록 평온한 거에요!


설명을 들은 포뢰는 오히려 자신보다 더 초조한 표정을 지었다. 고개를 숙이고 땅바닥에서 찾기 시작헀다.


포뢰

우리가 자세히 찾아보면, 혹시 또 단서가 제자리에 남아 있을지도 몰라요. 지휘관 안심하세요, 포뢰는 반드시 지휘관을 도와 찾아올 거예요.


포뢰

제 탓이에요. 포뢰가 자만하는 바람에 그것들이 손을 써버렸어요. 제가 주위를 잘 챙겼더라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자책, 죄책, 후회가 소녀의 눈앞을 조금씩 갉아먹었다. 비록 이 일에 있어서는 아무런 잘못이 없지만 책임감이 그녀 스스로 조금도 방심할 수 없게 만들었다.


지휘관

괜찮아. 차라리 잘 됐어.


포뢰

지휘관이 위로해줄 필요 없어요. 포뢰는 정신을 차릴거고, 도둑들도 가만두지 않을거에요.


포뢰

중요한 것을 잃어버렸다는 느낌도 포뢰는 잘 알고 있어요, 마치... 자신의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모두 무언가 빠진 것처럼 말이에요.


포뢰

포뢰는 그런 느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정말 힘들고 괴로울 거에요.


보통 아이들은 위로를 받으면 오히려 울음을 터뜨리며 더 많은 포옹을 구하지만, 포뢰는 자신의 뺨을 툭툭 치며 억지웃음을 짓는다.


비록 잠깐 동안 함께 지낸 것이지만, 자신도 이를 잘 알고 있기에 이것은 포뢰를 위한 위로가 아닌 사실만을 말한 것이었다.


지휘관

나는 진지해.


지휘관

뱃지에는 위치추적기가 달려있어.


파오스의 교관은 자신에게 가능한 모든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라고 일러준 바 있다.


뱃지의 분실 여부는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결과가 아니지만 분실 후 어떻게 빨리 되찾을 수 있을지는 미리 정해둔 보험이 있었다.


전부를 생각하고 최선을 다하는 사고방식도 여태 자신을 여러 번 위험에서 구해 주었...


포뢰

지휘관… 물건을 자주 잃어버리니요?


지휘관

하하하...


포뢰

보통 졸업뱃지에 위치추적기를 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잖아요. 어쨌든 그게 눈에 들어올만한 물건은 아닐테니까요. 마치 길거리를 걸어다니는데 굳이 내비게이션을 킨 느낌이랄까요.


지휘관

난 정말 최악의 상황만을 고려했을 뿐이야.


포뢰

음... 지휘관이니까 포뢰가 생각하지 못하는 세부 사항도 알고 있겠지요. 그럼 빨리 위치추적기가 신호를 보내는 위치를 추적해봐요. 이번에는 반드시 그들을 일망타진 할 거에요!



추적작전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위치추적기가 지속적으로 단말기에 신호를 주고 있지만 공중정원으로부터의 단말기에 구룡야항선 상세지도가 실려 있을 리 만무했다.


자신이나 포뢰를 막론하고 야항선의 지도를 단말에 탑재하는 해결책은 서로 암묵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그래서 위치추적기가 제공할 수 있는 것은 대략적인 방위와 직선거리뿐이었고, 심지어 이 지역은 상대적으로 혼란스럽게 계획되어서 사방으로 뚫린 골목길이 많이 존재했다. 이곳에 익숙한 포뢰의 길잡이가 아니었다면 자신은 벌써 그 속에서 길을 잃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곳에 익숙한 포뢰 역시 오랜 시간동안 달리느라 길을 찾는 데 차질이 있기도 했다. 구조체의 도약 능력으로도 넘기 힘든 높이로 가로막힌 막다른 골목에 들어섰다.



포뢰

지휘관, 표적은 아직도 움직이고 있나요?


단말의 표시를 살펴본 후 긍정의 답변을 했다.


포뢰

그럴 리가 없어요. 포뢰의 계획대로라면 그 도둑이 여기 갇혀 있을 텐데, 더구나 이 벽 뒤에는 분명 길이 없었어요.


지휘관

지붕을 타고 움직이기 때문이 아닐까?


포뢰

포뢰는 항상 그런 곳을 주의하고 있었어요. 만약에 도둑이 지붕을 따라 움직인다면 포뢰의 눈을 피할 수 없었을 거에요.


포뢰

우으... 잘 모르겠어, 돌아가야 될 것 같네요.


포뢰

지휘관 이리 와요! 포뢰를 꼭 따라오세요.


잠시 후...


포뢰

지휘관, 표적이 바로 근처에 있나요?


포뢰가 괜히 그런 의혹을 제기한 것이 아니다. 단말기에 따르면 뱃지는 우리 앞 10m 정도에 있어야 한다.


그러나 시선이 미치는 곳에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자세히 들여다보면서 신호원으로 다가갔지만 익숙한 금속제품은 보이지 않았다.


포뢰

여기도 없는데 지휘관의 위치추적기가 고장나지 않았다면 단 하나의 가능성 밖에 없어요.


포뢰는 마치 눈길로 뚫어버리려는 듯 발 밑의 길을 빤히 쳐다보았다.



포뢰

범인은 배관을 통해 이동한 거에요!


지휘관

배관?


포뢰

선상 주민들의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야항선은 노면 아래에 수많은 배관을 깔아놨거든요.


포뢰

배관을 통해 이동해야 지상의 지형을 무시할 수 있어요.


포뢰

딱 지금과 같은 상황이 온 거에요. 그 녀석은 바로 우리 발 밑에 있기 때문에!


포뢰

그러나 배관은 사람들이 다니기엔 너무 좁아서 소형 정비로봇만 통과할 수 있어요.


포뢰

보나마나 진짜 범인은 그 귀신 그림자고, 도둑질을 한 것은 그가 조종한 기계였을 거에요.

 

포뢰

그렇다면 포뢰는 배관의 방향을 주의하면서 추적할 필요가 있겠죠. 바닥을 뚫었으면 좋았을텐데...안돼! 주민과 횡포에 폐를 끼쳐서는 안 돼!


지휘관

다시 움직이고 있어.


포뢰

포뢰는 이미 배관의 방향을 노선 검토에 포함시켰으니까 이번에는 반드시 도망치지 못하게 만들거에요, 출동!


소녀의 눈에 활활 타오르는 투지가 거리 끝을 향해 달려갔다.



포뢰

음, 이곳은 확실히 보금자리로 쓰기 좋은 곳이네요. 그리고 지도에 따르면 그 안에 파이프의 출구로 사용할 수 있는 곳이 한 군데 있어요.


황금시대의 공포영화에 나올 법한 낡은 저택이 눈앞에 펼쳐져 있고, 저택은 오랫동안 버려진 것처럼 보였고 과거의 기풍은 그저 쓸쓸할 뿐이었다.


포뢰

자, 그럼 지금부터 돌파를 시작하겠습니다, 하이…야야야야! 지휘관 왜 그래요! 빨리 포뢰 내려놔요!


자신이 주변을 살피고 있을 때 포뢰는 이미 문을 부수고 들어올 결단을 내린 듯했다.


제때 막지 않았다면 그 두꺼운 나무문이 구조체의 발에 의해 산산조각 날 뻔했다.


그래서 한 발짝 먼저 포뢰를 땅에서 멀리 들어올리는 수밖에 없었다. 힘을 빌릴 길이 없는 포뢰는 허공에 다리를 부비고, 고전역학에 패배한 그녀는 분별없이 몸을 뒤틀며 항의했다.


지휘관

그 귀신 그림자도 안에 있을 거야.


목소리를 낮추어 포뢰에게 말했다. 포뢰도 순간 자신의 뜻을 알아차리고 두 손을 입에 대고 꽉 막았다. 더 이상 발버둥을 치지 않자 자신도 그녀를 내려놓았다.


포뢰

그럼 어떡하죠?


단말기 표시점이 제자리에 그대로 있는 것을 재확인한 뒤 가장자리 담장을 가리켰다. 담장은 약간 높지만 구조체의 도약 능력이라면 충분하다.


포뢰가 담장을 넘어간 뒤 포뢰의 손을 잡아 자신도 넘어갈 수 있었다. 자신의 계획을 분명히 알아차린 포뢰도 고개를 끄덕이고는 담장 쪽으로 걸어갔다.


조금씩 몸을 웅크리다가 일어나 담장 위로 올라갔다. 고양이 담장 넘듯이 모든 과정이 가벼웠고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포뢰는 먼저 집 안을 들여다보다가 자신을 향해 손짓을 했다.


자신도 상황을 살피면서 걸어가 높은 곳에 있는 포뢰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포뢰는 손을 잡지 않고 토끼를 들듯이 뒤의 옷깃을 잡았다...


세상이 눈앞에서 거꾸로, 다시 거꾸로 돌면서 두 발은 실내의 청벽돌 위에 차분히 내려앉았다. 포뢰는 담장에서 뛰어내리며 복수에 성공했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포뢰

지휘관~ 포뢰는 이미 숙녀라서 더 이상 어린아이처럼 대하면 안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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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관

(그래, 꼬마 포뢰. 물론이지, 꼬마 포뢰.)

(잠시 주의를 기울이지 못해 죄송합니다.)



포뢰

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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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뢰는 분명 대답에 못마땅했지만 크게 매달리진 않았고 무너진 정방(正房)을 향해 눈길을 돌렸다. 그곳은 바로 신호가 머물러있는 장소다.


포뢰는 발끝으로 조심스럽게 정방으로 이동했고 자신도 살금살금 그녀의 뒤를 따랐다.


정방의 문은 행방을 알 수 없었고, 계단 쪽에서 안이 희미하게 보였지만, 바깥쪽의 빛이 안을 다 비추진 못했고, 여전히 일부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바로 그때, 눈에 붉은 실루엣이 나타났다...


펑!


포뢰는 자신보다 더 빠른 속도로 푸른 벽돌을 밟아 나아갔다. 그녀는 손을 뻗어 상대방의 어깨를 묶고, 그 제복을 한방에 제압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상대방이 포뢰의 포획을 가볍게 피하면서 어딘가 낯익은 목소리가 상대방이 있는 그림자에서 흘러나왔다.


????

포...뢰?


상대방의 목소리에는 불확실함과 약간의 놀라움이 담겨 있었다.



포뢰

카이사이? 왜 여기있어요?


상대방은 그림자에서 벗어났다. 변함 없이 붉은 우산을 가지고 있었다.


카이사이

마침 여기까지 순찰을 돌았었고, 또 이걸 잡기 위해서였어.


카이사이는 이미 작동을 멈춘 생쥐 한 마리를 꺼냈다.


카이사이

과거 감시용 첩보기계였는데 뭔가 논리 프로세스가 잘못됐는지 진짜 쥐처럼 변해버렸어.


포뢰

어, 우리 배에 이런 물건이 또 있었어요?


카이사이

이미 깨끗이 정리했어. 이건 아마 프로그램이 잘못돼서 탈선한 것 같아. 참, 이건 저쪽 지휘관 것이겠지.


카이사이는 동그란 금속 조물을 가져왔다. 바로 자신이 찾던 뱃지였다.


카이사이

생쥐가 저것에 꼬리를 웅크리고 있어서 오염수가 많이 묻어 있었기 때문에 제가 임의로 세척과 소독을 한 것이니 너무 나무라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지휘관

오히려 고맙습니다.


포뢰

카이사이는 요즘 이 쥐를 계속 잡으러 다녔나요?


카이사이

그래. 하지만 교활했고, 도둑질 하는 것만 여러 번 목격했어.


포뢰

맷돌만한 머리... 빨간색... 귀신의 그림자의 정체는 카이사이였네요...


카이사이

귀신의 그림자라니?


포뢰는 식객에게 들은 조언, 방문조사 견문, 그리고 왜 자신과 이곳을 찾게 됐는지 그 이유를 카이사이에게 이야기했다.


카이사이

보아하니 내 부주의로 약간의 번거로움을 초래한 것 같은데, 차후 주의하도록 할 게.


카이사이

그런데 궁금한 게 하나 더 있어.


카이사이는 위아래로 포뢰를 훑어보았다.


카이사이

너의 오늘 일은 공중정원 일행을 보호하는 것인데, 지금은 왜 지휘관만 있는거니? 그리고 그 옷하고 땡땡이는?


포뢰

아!


포뢰는 짧은 비명을 지르며 자신의 뒤로 숨었다. 그녀는 감히 작은 머리를 내밀고 카이사이의 눈빛을 똑바로 쳐다볼 수 없었다.



포뢰

그... 그건 말하기엔 너무 길지만, 정당한 이유가 있었어요. 그리고 아 참, 지휘관이 이렇게 입으라고 했어요. 아무튼 저 게으름 안피웠어요!


지휘관

(카이사이에게 일의 전말을 설명하다.)


카이사이

...과연 그레이 레이븐의 지휘관은 소문대로...


카이사이는 잠시 멈추고 할 말을 헤아렸다.


카이사이

주변에 휘둘리지 않고 신념대로 행동하는 사람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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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관

과찬이십니다. ← 선택

....


포뢰

네, 포뢰도 지휘관이 대단하다고 생각했어요.



지휘관

과찬이십니다. 

.... ← 선택


포뢰

하지만 지휘관의 방법은 참으로 유용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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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뢰

그분 덕분에 몰랐던 것들을 많이 알게 되었는데…참!


포뢰는 갑자기 무슨 생각이 났는지 앞으로 나가서 카이사이의 손을 잡아당겼다.


포뢰

카이사이는 놀란 주민들에게 사과하셔야 돼요. 분명 카이사이도 자신의 부주의로 인한 번거로움이라고 말했으니까 당연히 고쳐야 해요.


카이사이

하지만... 그 사람들은 날 보고 싶지 않은 것 같은데.


포뢰

괜찮아요. 사람들은 용의 아이를 그렇게 배척하지 않아요. 그리고 포뢰도 함께 할 거에요!


포뢰

어쩌면 귀신 그림자의 정체가 밝혀진 계기로 카이사이랑 화기애애하게 지내게 될지도 몰라요.


카이사이

그래...


포뢰

지휘관도 함께 갈 수 없을까요? 사실 포뢰는 좀 무섭긴 한데...


포뢰

포뢰와 카이사이가 알아서 할 수 있지만 지휘관이 옆에 있으면 안심이 되거든요.


그렇게 말한 포뢰는 선물을 기대하는 아이처럼 자신을 빤히 쳐다보았다.


포뢰가 약간의 두려움이라고 말했지만, 카이사이를 잡은 손이 가늘게 떨리며 불안함을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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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관

그래 꼬마 포뢰, 문제없어 꼬마포뢰. ← 선택

문제없어.


포뢰

포뢰를 어린애 취급하지 말라구요!!!


카이사이

아파...



지휘관

그래 꼬마 포뢰, 문제없어 꼬마포뢰. 

문제없어. ← 선택


포뢰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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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엔 루나 호감도 핫산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