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멸잔주 17-19 : 고난의 천당




창위와 소피아 접근 중



리브가 떠난 지 28일 째, 이들이 교회에 체류한 지 열흘째 되는 날이기도 하다.


황혼은 교회 광장의 진홍색 얼룩을 비춰 그것을 덮으려 했지만, 오히려 광채를 더할 뿐이었다.


미지의 인간형 생명체가 떠난 후, 열차는 마침내 그 한계에 도달하여 인적인 드문 숲 옆에 무너져 내렸다.


정비를 할 겨를도 없이 그들은 다시 이합생명체에 둘러싸여 싸우면서 물러나 이 이름 없는 교회를 지킬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여러 차례 겹겹이 쌓인 포위를 뚫으려 했지만, 새로운 장소에서 가로막히기 일쑤였다.


뒤틀린 생명체들은 그들의 이름을 기억하고 그림자처럼 수행하며 그들의 걸음 하나하나에 살육을 심었다.


세 사람은 재난이 커지지 않도록 교회에 머물며 이를 거점으로 방어하기로 했다.


그러나 모든 항쟁에는 한계가 있었고, 오르세람호의 추격전 이후 열흘 동안 이곳에서 싸웠다.


보급을 잃어 모든 것이 소진될 때쯤 잠잠하던 단말기가 드디어 통지를 보냈다.



창위

여, 다들 괜찮아?


창위

이런, 꽤나 힘들어 보이는데.


창위

그런데 마침 우리도 지원을 좀 받았고 공중정원에서도 너희들을 도와줄 구조체 몇 기 더 보내줬어.


루시아

여기 오지 마, 너무 위험해. 지금 아딜레의 상태도 좋지 않으니까, 너희들은 우선 자기 자신부터 돌봐.


창위

안심안심~ 아딜레는 구룡야항선과 서로 협력 관계를 맺고 있으니까 우리 걱정은 안해도 돼.


창위

우리는 자리를 잡은 다음 와타나베 아저씨한테서 일부 사람들을 데리러 갔어.


창위

너희 쪽 상황이 매우 좋지 않다는 것은 잘 알고 있으니까 더 이상 사양하지 마. 어차피 물자도 야항선에서 전부 빌린 거라구.


창위

지금 곧 너희들 쪽에 도착할 거야, 감동적이지?


루시아

자밀라의 부상은 괜찮아?


창위

포뢰 덕분에 도움을 줄 사람을 찾았어~


루시아

그래.


창위

그럼 우리가 도착할 때까지 마음 편히 버티고 있어.



통신이 끊기고, 루시아는 다시 먼지투성이의 고요로 돌아갔다.



새로운 소식은 있어?


루시아

창위와 소피아였어. 약간의 보급을 보내서 기체를 복구해 주겠다고는 했는데...


루시아

난 만류했지만 이미 곧 도착할 것이라고 말했어.


리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상태는 한계에 다다랐고, 구조할 때 부러진 오른팔은 아직 제대로 복구되지 않아 감염에 취약했다.


황혼과 고요, 피로와 손상. 이들은 쇠사슬을 만들어 서로 엉켜 두 사람을 벤치에 가두었다.


설령 고통으로 가득 차 있다고 해도 살아 있는 사람에게 숨돌릴 틈은 별로 주어지지 않았다


교회 샹들리에의 먼지가 그녀의 어깨에 떨어지자 루시아는 비로소 부서진 기체를 끌고 태도(太刀)를 받쳐들고 다시 일어섰다.


루시아

그 녀석들이 왔어.


...


루시아

난 크롬을 부르러 갈게. 크롬의 빙결 능력으로 시간을 더 벌 수 있어.


...


공중정원은 별 얘기 없어?


루시아

없어, 하지만 작업보고서와 지원요청은 모두 제대로 송달된 것으로 표시되어있어.


버림받은거야?


루시아는 대답하지 않았고, 대답할 방법도 없었다.


그들은 이미 절박한 상황에 처해 있으며, 공중정원에서 수송기와 군대를 보내도 이 이합생명체는 쉴새 없이 몰려온다.


구조로써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다면, 그 누구의 목숨도 집단에게는 보잘것없는 것이다.


리브와 【지휘관 이름】이 무사히 공중정원에 살아 있는 한, 그레이 레이븐 소대의 신념은 루시아와 리에게서 사그라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루시아

우리 약속했잖아... 넷이서 영원히 함께하자고.


응.


루시아

아직 포기하긴 일러. 창위와 소피아가 오고 있어.


알고 있어.


루시아

네가 만든 설비 아직도 남아있어?


많진 않아.


아무도 이곳에서 쓰러지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생명의 불길은 이미 바람과 같은 등불인데도 마음의 결기는 여전히 타오르고 있었다.




전투 개시




소피아

그레이 레이븐 소대가 있는 좌표와 가까워지고 있어.


소피아

물자 보호에 주의해.


호송대 구조체

알았다.



창위

여어~ 지형 탐색을 하고 돌아왔는데 앞이 온통 감염체와 이합생물 천지야.


창위

루시아가 말한 것처럼 이 다음엔 꽤나 힘들 거야.


소피아

이미 왔어.



창위

쳇, 벌써 여기까지 쫓아왔네.


소피아

전투 준비.


창위

소피아, 우리가 전에 의논한 대로 너가 책임지고 우리를 서포트해.


소피아

알았어.





창위

그나저나 소피아 너 버틸 수 있어?


소피아

지원만 맡았으면 괜찮겠지만 너의 손상 수치가 매우 높아.


창위

난 괜찮아. 너가 있잖아?


창위

계획대로라면 방어전으로 전환하기 위해 다음 호위 부대도 도착해야 돼.


방어임무로 교대한 호송 대원

보고한다.



창위

정말 끝도 없잖아! 소피아, 지원은 계속 네게 맡길게.


소피아

망했다!




창위

야!! 소피아 괜찮아?


소피아

괜찮아, 고마워.


창위

쳇, 루시아는 도대체 어떤 놈들이랑 마주하고 있는 거야?


창위

반드시 그들에게 지원해야 해.





창위

저놈이 소위 "우두머리"(头儿)인가.


소피아

교회 안에 있던 놈 같아.





소피아

감염체 반응은 완전히 사라진 것으로 보여.


칭위

연락올 때가 됐는데...





소피아

창위!!



전투 종료



인멸잔주 17-20 : "종소리"를 울려라



승리할 때까지, 아니면 목숨이 다할 때까지 버텨라.




전투 개시




크롬

소피아? 창위! 드디어 통신이 연결되었군.


창위

이쪽에 큰놈이 있는데 와서 도와줄래?


크롬

곧 가겠다.



시스템

(통신 두절됨)


크롬

감염체에 둘러싸이면 그들은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을 정도로 위험해.


크롬

좋아, 통신의 마지막 좌표가 정해졌다…. 따라잡았으면 좋겠군!





크롬

이것은...!





소피아

창위!!



소피아

너희들이 내 동료를 해치게 두지 않을 거야.


소피아

너희들은 모두 내 적이야.


소피아

창위, 일단 쉬고 있어.



크롬

소피아!! 창위!!


크롬

적은 내가 해결할 테니 너는 먼저 창위를 데리고 안전한 곳으로 이동해.


소피아

알았어!





크롬

소피아, 창위의 상태는 어때?


소피아

감염이 심해서 지켜 주고 있었어.


크롬

적당한 장소를 찾아야 해.


크롬

상층부에서 이미 감염체가 이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어.


크롬

입구로 돌아가 호송대와 합류하는 방법을 강구해야 돼.


소피아

알았어, 가자.




소피아

호송대의 신호는 끊겼고, 그들도 대규모 공격을 받았어.


크롬

도와주러 가야 해?


소피아

마지막 보고에 의하면… 이미 늦었어.


창위

하…. 루시아가 분명히 경고했었는데….


창위

우리는...적을 너무 가볍게 여겼어...


크롬

여기서 창위를 도와 지키고 있어.


크롬

내가 너희들을 지킬게.


 




소피아

조건이 제한되어 있으니 우선 이렇게 처리해 볼 수밖에 없겠어, 창위.


크롬

그래, 우린 리, 루시아와 합류하러 가자.


크롬

그들은 아직도 반대편의 적을 방어하고 있어.


창위

그럼 가볼까… 응? 잠깐!


소피아

아아아아!


크롬

어? 무슨 일이야?



크롬

!



전투 종료




바로 그 순간, 창위와 소피아를 덮친 감염체는 무심하게 크롬의 발 아래로 쓰러졌다.


고개를 숙이고 살펴볼 틈도 없이 다음 적들이 몰려왔다.


모래사장을 때리는 물결처럼 무궁무진했고, 조수의 피해를 막기 위해 크롬은 이곳에서 댐으로 변해야 했다.


그러나 그가 구조체, 특화기체, 차징팔콘소대의 대장이라고 해도 목숨이 불타고 있는 한 거의 다 타버리는 순간이 올 것이다.



크롬

카무이...반즈...카무....



크롬

아버지...



크롬

그리고.... 【지휘관 이름】...


당신들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아직 무사합니까?


그는 그동안 동료에게 연락하고 싶은 마음을 한 번 더 눌렀다.


모든 사람이 어려운 처지에 처해 있는데, 그는 그들에게 자신이 직면해야 할 책임을 내려놓고 자신의 곤경을 봐달라고 요구할 수 없었다.


더군다나 이것은 사경이었다. 지금 공중정원의 수송기가 착륙해도 이 끊임없는 감염체와 이합생명체에 의해 추락할 수밖에 없다.


ㅡㅡ이 모든 것이 자신이 잘못 판단했기 때문인가?


【지휘관 이름】이 혼수상태에 빠졌다는 소식을 접한 그는 아시모프로부터 교신을 받았었다.



아시모프

호광 기체로 교체하길 원해?


아시모프

영광 기체는 조정 후 호광 기체와 비슷하게 안정화되었지만,


아시모프

만일 의식의 바다에서 이탈이 발생한다면 다른 지휘관들은 당신을 구할 수 없을 거야.



크롬은 잠재적 위험을 알면서도 거부했다.


이유는 매우 간단했다.


그리고 그것은 오판이 아니었다. 호광 기체로 바꾸었다면 지금 이 순간도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ㅡㅡ그럼 열차에 올라탔기 때문이었나?


만약 그때 자신의 소대를 이끌고 보육구역으로 돌아갔더라면 궁지에 몰리지 않았을까?


크롬

그래, 하지만 내가 그렇게 할 리 없어.


그 위험이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선다는 걸 알고도 보육구역으로 돌아가지 않고 다양한 대안을 마련할 뿐이었다.


기나긴 전투는 너무나 고됐고, 한 명이라도 모자라면 생존자의 숫자는 더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크롬에게 있어 생명을 무시하는 것을 우선으로 하는 짓은 결코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 뿐이다...



크롬

나의 판단과 선택은 전부 틀리지 않았다.


모든 것이 옳았음에도 그는 빨갛게 휘몰아치는 울부짖음 속에서 종점을 향해 달려갔다.


크롬

아직 쓰러질 수 없어. 뒤에 있는 동료를 지켜야 해….


기체가 주는 통증을 무시하고 크롬은 다시 무기를 움켜쥐었다.


그러나 이것이 벌써 몇 번째인가?


거대한 파도 속의 배와 같은 몸집, 뜨거운 동력로를 신념한 그의 몸은 끝없는 폭풍과 맞서기 위해 활활 타오르고 있다.


그러나 바닥을 모르는 깊은 바다, 그칠 줄 모르는 거센 비바람 속에서 자신은 어떤가?


이합생명체와 감염체가 섞여 곡창 속에 빽빽이 들어찬 '풍작물'처럼 보였다.


총검은 이미 '곡물'의 붉은 즙과 하나가 되었고, 이 즙은 기체를 침식해 감염을 키웠다.


적홍색 풍랑이 계속되고, 귓전의 바람소리는 처절한 울부짖음이 섞여 귀청을 울렸다.


한 번은 싸우고, 한 번은 승리하고, 또 한 번은 승리의 의미를 잃는다.


끝없는 폭풍 속에서 크롬의 시야는 점점 붉어지고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ㅡㅡ이 전투는, 결국 너무나 길었다.



얼마나 전투 했는지조차 잊어버린 사이, 그는 바람과 날카로운 울음소리가 멈추는 것을 들었다.


크롬의 눈앞에는 여백만 남았다.


.…드디어 끝난 건가?


아니, 아직은 아닐 것이다.



인멸잔주 17-21 : "빛"을 향해 분노하라



승리할 때까지, 아니면 목숨이 다할 때까지 버텨라.



크롬이 지원을 하러 간 사이...


크롬

확인, 창위와 소피아에게 가고 있습니다.


크롬

교회 뒤쪽의 구역은 여러분에게 맡기겠습니다.


크롬

네, 그들과 합류하고 올게요.


크롬

잠시후에 연락하죠.




루시아

크롬이 지나가고 있어.


응, 일단 여기에 보호 장치를 다시 설치할게.


안그러면 적들이 점점 더 많아질 거야.


조심해!


루시아! 저리 비켜!





이 괴물들, 끝도 없이 몰려오고 있어.


루시아

기회를 틈타 크롬과 합류하자.


아직도 많은 적들이 교회 꼭대기의 시계탑에서 쏟아져 내리고 있어.


만약 방호 장치를 제대로 설치하지 않으면, 그 다음은 더욱 악화될 뿐이야.



루시아

여기 전황은 해결했어.


크롬과 합류하자.


루시아

응, 도중에 적이 있으면 먼저 처리하자!



???

카무이...반즈...카무...아버지...그리고...


크롬?


루시아

무슨 일이라도 생긴건가?


???

....


쳇, 답이 없어.


루시아

빨리 합류해야 돼!


잠깐, 앞의 방어장치가 파괴됐어. 반드시 가서 교체해야 돼.



루시아

이번에는 내가 앞장설게. 리는 장치를 설치해 줘.




신호 강화 모드에 진입, 빙결 상태에 진입할 수 없음

주기적으로 스킬볼을 회복하고, 3체인 시 기술이 강화됩니다








루시아

방호벽 설치는 완료했어?


어, 그런데 적의 집결 속도가 너무 빨라.


누군가가 남아서 이 장치들을 유지해야 해.


너가 가서 크롬과 합류해. 나는 여기에 남을게.


루시아

너 혼자서 괜찮은거야?


이 구역마저 함락된다면...


우리는 무방비 상태로 적의 공격에 노출될 수밖에 없어.


뒤는 너에게 맡길게.


루시아

...


루시아

응, 우리 모두 살아남아야 해.




인멸잔주 17-22 : 아무도 듣지 않을 때까지


승리할 때까지, 아니면 목숨이 다할 때까지 버텨라.



이 구역마저 함락된다면 우리는 무방비 상태로 적의 공격에 노출될 수밖에 없어.



뒤는 너에게 맡길게.



루시아

응, 우리 모두 살아남아야 해.



루시아

...


그 약속을 하고 또 얼마나 지났을까?


그들은 신의 비호를 받아야 교회에 둘러싸였다. 사방은 이합생명체의 울음소리로 가득 찼다.


그녀는 동료가 근처에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감염체와 이합생명체에 둘러싸여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했다.


그녀는 동료를 부르려 했지만 통신에서 들려오는 것은 단어의 파편과 웅얼거림 뿐이었다.


그렇다, 이 세상에서는 언제나 기도를 올려도, 구원을 받을 수 없다.



어렴풋이 그녀는 자신을 구조체로 만들었던 그 장소를 떠올렸다.


추운 겨울과 굶주림 속에서 어린 아이들이 모여서 살기 위해 서로를 속이고 상처를 받았다.



루시아

...그 곳도 교회였어...


그런 곳에서 마지막 가족을 잃었던 그녀도 이제 비슷한 장소에서 쓰러질 것인가?


루시아

아니, 여기는 종착점이 아니야...


루시아는 태도로 몸을 지탱하고 몸부림치며 앞으로 걸어갔다.


루시아

우리는 아직...


그녀의 의지는 아직 사그라지지 않았지만 기체는 열흘째 계속되는 전투에 대처할 수 없었다.


어쩌면 정말로 막다른 골목에 몰린 것일지도 모를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루시아

...


뭔가 잘못을 해서 그런가?


그 때 어떻게든 리브를 따라가야 했을까?


루시아

..아니야...


이들이 남아 있지 않았다면 더 많은 사람이 구조될 기회만 잃게 되었을 것이다.


그것은 결코 그녀나 그레이 레이븐 소대의 어느 누구도 보고 싶어하는 것이 아니다.


크롬 대장은 열흘 동안 단 한 번도 힘든 싸움을 불평하지 않았고, 곤경에 처해 자신의 선택을 후회한 적이 없었다.


케르베로스 소대의 베라 대장이라면?


내키지 않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끝까지 싸웠을 것이라고, 루시아는 그렇게 생각했다.


루시아

...베라...



지휘관이 아틀란티스에서 돌아왔을 때, 베라는 수송기에서 무심코 과거에 있었던 수색 이야기를 꺼냈었다.


그 당시 그녀는 수색 장비를 사용할 수 없는 구역에 갇혀 있었지만 곁에 있던 셰퍼드가 표적을 찾아줬다고 말했었다.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을 들었기 때문에 그녀와 리브는 그 폐허 속에서 성냥에 의지해 팀을 떠난 임산부 팡틴을 찾을 수 있었다.


밀물처럼 밀려오는 이합생명체에 대응하는 소소한 추억이 주마등처럼 그녀의 의식의 바다를 스쳐 지나갔다.



루시아

우리 모두는, 사라져가는 생명을 보고 싶지 않아...


다른 소대들도 비록 이 자리엔 없지만 자신이 익히 알아왔던 사람이라면 같은 선택을 할 것이라고 그녀는 믿었다.


지금은 행방이 묘연한 바네사조차 얼마 전 이 길을 택했다.


누구나 보호하고 싶은 사람이나 신념을 갖고 최선을 다해 싸우다가 전장에 쓰러졌다.


루시아

우린 후회하지 않아...


그러나 이 세상은 누구에게도 인자함을 베풀지 못했다.


눈앞의 적을 잘라내고 그녀는 아직도 사방에서 용솟음치고 있는 이합생명체를 둘러보았다.


기체의 손실은 이미 한계에 다다랐고, 역원장치도 곧 부하를 초과할 것이며, 그녀의 예상에 따르면 행동 능력을 잃기 전까지 최대 10분동안 버틸 수 있다.


루시아

단 10분만이라도, 끝까지 버티겠어.


마음속의 신념이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할 것이다.


그 결심에 응답하듯 드디어 그레이 레이븐 소대의 전용 채널에 그리운 목소리가 나타났다.



리브

루시아!!


리브

어떻게 됐어요? 왜 통신에 당신 모습이 안보이나요? 리 씨는요? 왜 계속 통신이 안 되죠??


통신의 화면은 텅 비어 있었고, 그녀 역시 리브를 볼 수 없었다.


목소리가 울려 퍼지는 순간, 루시아는 리브가 지금 자신의 모습을 보지 못하도록 단말기를 덮었다.


리브 쪽은 전투 중 자신의 단말기가 손상된 탓인지 그녀 역시 리브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괜찮아. 그녀가 보이지 않더라도 친구의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들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해. 루시아가 자신에게 말했다.


루시아

아직 공중정원에 있니?


리브

지금 수송기에 있어요. 곧 당신에게 올 수 있을 거예요.


루시아

아니, 오지 마, 여긴 너무 위험해.


리브

루시아? 어떤 위험이 있는 건가요?


루시아

...


리브

괜찮아요. 저 때문에 걱정할 필요 없어요. 제가 떠날 때 하산 의장님이 말한 그 무기 기억나요? 지금 이미 연구개발에 성공했어요.


리브

아무리 위험한 상황이라도 전 여러분을 지킬 수 있게 됐어요.


리브

...전 이미 할 수 있어요, 루시아! 저를 믿어주세요.


루시아

...


루시아

...여기까지 얼마나 남았어?


리브

아마... 음... 1시간 정도 더 걸릴 것으로 예상됩니다.


루시아

1시간...


...너무 늦어.


리브

왜요? 왜 말이 없어요?


최후의 결말을 바꿀 수 없는 이상, 적어도 리브의 부드러운 목소리라도 들으면서 세상을 떠날까.


루시아

나쁘지 않겠지...


리브

네?



루시아

너의 노래 다시 들려줄래?


리브

어?... 루시아... 왜...


루시아

카운트다운이라고 생각해, 싸우면서 너의 목소리를 들으면 나도 안심이 돼.


루시아

노래 소리가 지척에 다가오면 나도 네가 내 곁에 있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을 거야.


리브

루시아.


루시아

응, 리브...언젠가 이 노래를 지휘관에게 꼭 들려줘야 돼.


리브

...


리브

...루시아...


이미 그녀가 자신의 처지를 눈치챈 것일까? 그녀의 부드러운 부르짖음에 루시아는 강압적으로 몸을 떨었다.


루시아

미안해… 비행중에 노래부르게 한건 너무 무리였나봐.


리브

아니에요...


리브

...당신에게 도착하기 전까지는 저도 이것밖에 할 수 없겠네요.


리브

이렇게라도 당신과 함께하도록 해주세요.


리브

하지만 저랑 약속해요, 절대 포기하지 말고 자신을 지켜주세요.


리브

제가 올 때까지 버텨주세요. 이번에는 제가 반드시 여러분을 도울 수 있을 거예요.


루시아

넌 항상 우리를 도와줬어, 리브.


루시아는 더 이상 불안을 가중시키지 않기 위해 거친 웃음을 애써 짜내려고 했다.


루시아

그럼.... 여기서 기다릴게.



전투 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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