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수롱 14-4H : 재회



알파는 연기 속으로 뛰어들어 멀리서 움직임을 감지하고 이들과 접촉하지 않기 위해 지하수 길로 재빨리 들어갔다.



알파

앞서 탐색한 바에 따르면 이 터널 한쪽에는 회언이 있는 배양실, 다른 한쪽에는 아래층으로 직통하는 함정이 있었어.


그녀는 태도를 들고 함정을 향해 돌진했지만, 그곳에는 커다란 자물쇠가 단단히 걸려 있었다.


알파

...거추장스럽네.


알파가 무기를 들어올리자 눈깜짝할 새에 칸막이가 참수되면서 한 명이 통과할 수 있는 균열이 열렸다.


알파

도와줘.


그녀는 공중에 떠 있는 물고기 모양의 이합생명체를 붙잡고 아래쪽 좁은 통로로 몸을 던졌다.


알파

꽤 편리한 물건이네.


그녀가 손을 떼자 두 마리 물고기 모양의 이합생명체가 천천히 통로로 헤엄쳐 들어갔으나, 급하게 나가는 바람에 칸막이 틈에 끼어 꼬리를 흔들며 허우적거렸다.


알파

그다음에… 아직 탐색하지 못한 부분이 두 군데 더 있어.


알파는 빠른 걸음으로 자신의 목표 지점을 향해 걸어갔다.



알파

....이건...


눈앞에는 중간 크기의 '수조'가 있었고, 적조는 아래쪽에 모여 대형 소용돌이를 만들고, 어떤 기계 중추는 마치 심장처럼 적조가 지하수길의 여러 관로에서 흐르도록 돕고 있었다.


알파

…여기가 적조를 실어 나르는 곳인가.


수송 목적지에 대해 알파는 대략적으로 추측을 했다.


알파

적조가 거기까지 흐를까?


그녀는 지하수 길을 탐색하던 중 녹색 식물이 심어진 기이한 방을 발견했다.


사방을 탐색할 때 알파는 그 붉은 나무 밑에 통로가 숨겨져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내려가 보려다가 갑자기 나타난 회언에게 가로막혔다.


정답은 확실치 않았지만, 그녀는 대부분의 지역을 돌아다녔으나 그 숨겨진 방만은 아직 가본 적이 없었다.


알파

그곳이야말로 가장 의심스러운 장소인가 보네.


알파

하지만 떠나기 전에 이곳을 한 번 더 철저히 수색해야 해.


알파는 얼굴을 찡그리고 적조가 흐르는 소용돌이 속에서 안전하게 잠수할 수 있는 곳을 찾았다.



??

...어이.


익숙한 목소리가 뒤쪽에서 들려오고 알파는 몸을 돌려 어둠과 하나가 된 그림자를 바라보았다.


알파

롤랑?


자신의 추측을 확인하기 위해 알파는 경계하며 어두운 곳으로 향했다.


롤랑

아니, 다가오지 않아도 돼.


목소리는 떨렸고 발성 모듈이 손상된 흔적도 있었다.


롤랑

지금 내 모습을 보면 관객들이 깜짝 놀랄거야.


알파

여기서 뭐 해?


롤랑

내가 여기서 뭘 더 할 수 있겠어. 단지 너와 목적이 같을 뿐이야.


알파

너도 루나를 찾고 있어?


롤랑

그래, 솔직히 말하면 방금 아래에서 올라오던 참이었어.


알파

...너도 얻은 건 없어?


롤랑

여기저기 찾아봤지만 그 밑에는 위험물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어.


롤랑

루나 아가씨는 여기 없나 봐. 이게 기쁜 소식일까, 나쁜 소식일까.


사방에서 흐르는 물소리 속에서 두 사람은 잠시 침묵했다.


알파

살아 있다면, 가브리엘의 준비물은 이미 제거되었단 뜻이겠지?


롤랑

확실해.


알파

루나를 봤어?


롤랑

유감스럽게도…그놈을 꺾는 게 나의 마지막 노력이었어.


알파

...


롤랑

그런 표정 짓지 마. 루나 아가씨도 감당하기 힘들어 했다니까?


롤랑은 손상된 그의 발성 모듈로 어색하게 웃었다.



알파

루나까지 힘들어 했는데 넌 어떻게 상대할 수 있던거지?


알파

롤랑, 나는 전부터 네가 자신의 실력을 숨기고 있다고 의심했어.


알파

내가 의식의 바다로 들어가는 동안에도 너는 어떻게 그레이 레이븐 소대를 막을 수 있었던 거지?


롤랑

그렇게 꼼꼼하게 캐물을 필요도 없잖아? 그냥 성장을 좀 한거야. 이미 이전의 나와는 다르거든.


롤랑

설령 실력을 감추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해도, 그것은 공중정원의 사람들이겠지.


롤랑

처음부터 최선을 다하면 상대방이 나를 상대하는 전술의 개선을 쉽게 하도록 도와주는 꼴이 되지 않겠어?


롤랑

루나 아가씨가 대처하기 힘든 놈을 상대한 이유는 간단해.


롤랑

나는 그녀가 자라는 것을 보면서 그녀의 전투 방식을 익혔기 때문이야.


롤랑

가브리엘이 배출한 '자매'가 그를 가장 우쭐하게 한 부분은 적의 공격을 흉내낼 수 있다는 사실이었거든.


롤랑

그러나 모방은 모방일 뿐, 어떤 공격술이 과연 전투에 유리한지는 분간할 수 없었어.


롤랑

황금시대에는 고양이가 문을 여는 것을 막는 법이라는 오래된 우스갯소리가 있었어.


롤랑

내가 그녀를 물리칠 수 있었던 답은 이 농담처럼 간단해.


알파

무의미한 전투 방식을 사용하여 오판을 유도한다?


롤랑

아니야. 사실 그것보다 좀 더 교활한 것 같았는데. 딱 그 정도로 날 여겨준 점에 대해서는 고맙게 생각하겠어.


알파

?


롤랑

내가 미리 위장을 해서 너한테 베인 상처들이 내가 전투에서 나 자신을 키우기 위해 한 것이라고 착각하게 만들었지.


롤랑

그녀는 처음에 반신반의했지만 내가 왼팔을 자른 후 마침내 그녀는 내 행동을 모방하기 시작했어.


알파

...


롤랑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처럼 나쁜 선생님이 없는 한, 전임자들을 빠르게 능가할 수 있는 학습 기계를 이기는 데 어려움을 겪기 마련이거든.


적조가 소용돌이치는 파도 소리에 거의 잠긴 롤랑의 목소리는 헛웃음을 지으며 잠시 쉬었다. 체력이 예전에 곧잘 나눴던 담소를 버티지 못하는 듯했다.


롤랑

너와 루시아의 의식의 바다 연결 후…. 나와 그레이 레이븐 소대의 전투….


롤랑

사실 그때는 실제로 접전이 아니었어.


롤랑

너와 대화를 마친 나는 잠시 물러난 뒤 시간을 끌 작은 '선물'을 준비해 놓고 기다리고 있었어.


롤랑

원래는 너를 붙잡는 데 쓰려고 한 것이지만, 쓸모가 있으면 그만이니까.


알파

...이제 어디로 갈 거야?


롤랑

이 점에 대해서는 잠시 비밀로 하도록 허락해 줄래?


알파

알았어, 그럼 그렇게 해.


그녀는 몸을 돌려 중추 뒤의 그림자를 등지고 출구로 걸어갔다.


롤랑

잠깐만.


알파는 걸음을 멈추었지만 돌아서지 않았다.



롤랑

만약 루나 아가씨가 실종되었다면 정말 그 '루시아'와 관련이 있을텐데...


롤랑

넌 계속 그녀를 찾아다닐거야?


롤랑

루나 아가씨는 늘 갈망하고 있었어...


알파

롤랑,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겠어.


알파

설령 루나가 승격 네트워크의 책임에서 막막함을 느끼고 무엇을 원하는지 잘 모른다 하더라도, 나는 그녀의 소망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어.


알파

내가 이것에 대해 한 번도 말하지 않는 것은, 이 소망은 허사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야.


알파

승격자의 처지로서 우리는 공중정원에 기댈수도 없고, 그렇다고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지휘관에게 모든 것을 맡길 수도 없는 노릇이야.


알파

물론, 그레이 레이븐 소대의 위치가 변하지 않는 한 그렇지.


알파

나는 극지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이 그녀의 마지막 심금을 무너뜨리는 칼날이 될 거라고 생각하지만…


알파

...하지만 그 목표에 도달하려면 아직 준비할 시간이 필요해.


롤랑

...


중추 뒤의 롤랑은 무언가 속삭이는 듯했지만 그의 목소리는 소용돌이를 타고 파도 소리 속으로 사라졌다.


알파

이 거점은 이미 파괴됐고, 그 위에 공중정원 소대가 있으니까 그들은 지금쯤 또 다른 대행자를 만났을 거야.


알파

그 다음 과거 인간과 쌓였던 갈등을 청산하는 것은 그의 몫이고, 나도 끊임없는 번거로움에서 벗어나 루나를 계속 찾을 수 있어.


알파

어쨌든 그동안 산적한 문제들은 이미 이 전투에서 많이 무너졌어.


알파

남은 사건들이 마무리되면, 루나를 데리고 가서 루나의 진짜 소원을 들어줄거야.


알파

비록 넌 이 일을 제멋대로 이해했지만, 아직 이 모두를 만회할 여지가 있는 것도 너 덕분이였어.


롤랑

억지로 나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있다고 이해해도 되겠니?


알파

그렇게 생각하든가.


롤랑

참 야박하네.


롤랑

지하수로는 이미 내가 전부 탐색했었는데, 여기서 루나 아가씨를 굳이 더 찾아야 할 필요가 있을까?


알파

난 할 일이 좀 남아있어서.


롤랑

그럼, 행운을 빌게.


롤랑

Hasta luego[나중에 봐].


알파

...






시선수롱 14-5H : 좁은 길에서의 만남




롤랑과 결별하고 알파는 그녀가 처음 와보는 장소로 돌아갔다.


예측한 방향으로 걸어가면서 그녀는 난잡하게 어지러진 온실로 들어갔다.


알파

회언만 마주친게 아니었나 보네?


그녀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흔적으로 보아 이곳은 파괴력이 큰 난투극이 일어났을 것이고, 어린 소녀는 이런 일을 해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 판단은 그녀가 회언의 전투 방식을 얼마나 잘 알고 있느냐는 데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그런 성격을 가지고 단 한 번의 전투로 이곳의 숨겨진 비밀을 무너뜨릴 리 없다는 판단에서 비롯된 것이다.


알파

보아하니 그들은 이미 여기에 없는 것 같군.


바닥에 널려 있는 잔해를 뛰어넘어 알파가 온실을 빠져나가려 하자 뒤쪽에서 위험한 기운이 들려왔다.


그녀는 걸음을 멈추고 칼자루를 움켜쥐며 상대방에게 어두운 곳에서 나타나라고 했다.


???

나쁘지 않은 통찰력이로다.



알파

본 네거트.



본 네거트

오랜만이다.


알파

얼마 되지도 않았어.


본 네거트

이 근처에 너무 오랫동안 배회하는 것 같은데, 무슨 미련이라도 있는건가?


본 네거트

루나 때문이라면 여기에 없다고 약속할 수 있지만, 가브리엘 때문이라면...


알파

난 승격 네트워크에 의존하는 그런 쓰레기따위에 관심 없어.


본 네거트

호?


그는 그 말에 오히려 흥미를 느끼며 앞의 알파를 되짚어봤다.


곧 그는 뭔가를 알아차리고 만족스러운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본 네거트

보아하니 승격 네트워크의 초청을 받은 것 같군.


알파

...


본 네거트

받아들일 생각은 없나? 일단 대행자가 되어 승격 네트워크의 혜택을 받게 되면 앞으로 너의 행동에 더욱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알파

승격 네트워크는 은혜일 뿐만 아니라 엄청난 골칫거리기도 하지.


본 네거트

성가신 일이 두렵다면 차라리 모든 것을 배제하고 승격 네트워크의 연결을 끊는 게 낫지 않을까?


알파

한 번 승격 네트워크에 연결하면 일방적으로 차단할 수 없다는 걸 잘 알면서...!


본 네거트

그런데 재미있는 자료를 얻었다는 얘기도 들었다.


알파

만약 쇼메가 남긴 것들을 말하는 거라면, 그건 아직 미완의 작품일 뿐이다.


본 네거트

그건 좀 아쉽게 됐군. 하지만 나는 네가 원하는 대로 번거로움에서 벗어나기를 바래서 그 제안을 한 것이다.


알파

…지금 이상의 번거로움만 피하면 그만이다.


알파

승격 네트워크와의 연결은 또한 루나와의 연결이기도 하고, 내가 승격자인 이상 그녀가 어딘가에서 무사히 살아있다는 것을 알 수 있어.


본 네거트

혈연이 이렇게나 진보를 가로막고 있다니, 참으로 단단한 족쇄나 다름없도다.


본 네거트

네가 루나를 찾으러 갈 거면 왜 여기 남아서 공중정원 쥐들을 들여보낸 것이냐?


알파

너는 진작부터 이유를 알고 있었지, 나한테 물어볼 필요가 있을까.


본 네거트

네가 나에게 색다른 대답을 제시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었다.


그는 약간 조롱하는 표정을 지으며 온실 끝으로 걸어갔다.



본 네거트

적조를 키우기 위해서는 자양분이 더 필요하니, 너의 호의를 받아들이마.


본 네거트

참, 네가 비록 가브리엘에 관심이 없다고 말하지만, 그는 그렇지 않은 모양이군.


본 네거트

나는 이미 그의 기체를 수리해 주었고, 그도 적조를 부화시키는 지식을 회언에게 전수했다.


본 네거트

그와 과거에 머물던 곳에서 결말을 짓고 싶지 않나?





알파

...


알파는 이별을 앞둔 '과거의 집'을 바라보며 다가올 가브리엘을 기다렸다.


주위에 남아 있는 친숙함 속에서 그녀의 상념은 다시 과거로 돌아갔다.




가브리엘

그 병영은 이미 파괴되었으나, 그들의 계획은 계속되었다.


가브리엘

이들의 진짜 거점이 어딘가에 숨어 있다는 얘기다.



롤랑

난 극지에서 지하 실험실을 발견했지만 그곳의 연구는 승격자와 관계없이 기껏해야 그들의 과거의 '축적'에 불과했어.



라미아

나는 그 암볼리아에 관심이 많은데, 나한테 맡겨주면 안돼?



루나

그래.


롤랑

또 어떤 누락된 단서가 있는지 살펴볼게.


루나

그럴 필요 없어. 그들이 안전한 낙원에 살고 있는 한 끊임없이 장기말을 보내 몇 번의 거점을 무너뜨려도 그 계획은 계속될 거야.


루나

조사를 계속하기보다는 근원을 해결하고 공중정원을 끌어내리는 것이 좋아보여.


소녀는 좌석의 아래쪽 사람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고요한 눈동자는 이제 분노로 불타고 있었고, 그것은 의식의 바다에서 뛰며 고통의 균열을 감추고 있었다.


루나

그동안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선별할 수 있는 사람도 더 많이 얻을 수 있었거든.


루나

결국, 대부분 '씨앗'은 공중정원 안에 있어.



이 결정 이후 피투성이가 되도록 싸웠었다.


구룡에서 화서를 빼앗던 날 밤, 알파는 폐허 속에서 홀로 있는 루나를 찾아냈다.



알파

그때 왜 나한테 '루시아'를 놔달라고 한 거야?


알파

힘을 잃은 그녀는 다시 이용만 당할 뿐이니까 차라리 내가 거기서 죽여버리는 게 더 나았어.


알파

그리고 그들이 내게서 빼낸 데이터를 루시아의 기체를 개량하는 데 사용한다면 우리에게 더 불리할 수밖에 없잖아.


루나

그 이유는 예전에 말해줬었어.


알파

하지만 아직 말하지 않은 것도 있어.


루나

언니도 마찬가지잖아? 나도 그녀를 승격자로 만들고 싶어했을 때 그런 표정을 지었잖아.


알파

...


루나

언니가 그녀를 죽이려는 것을 막은 이유는 딱 하나야.


루나

언니가 후회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야.


알파

...뭐라고?


루나

어쩌면 언니 자신도 눈치채지 못할 수도 있지만, 언니는 사실 조금은…. 조금씩 기대하고 있었잖아.


알파

기대?


루나

어쩌면 다른 길을 굳게 믿고 있는 자신이 얼마나 멀리 갈 수 있는지 보고 싶었을 거야.


루나

그 길을 밟지 못한 자신을 대신해서...


죽은 땅에 떠서 손이 닿지 않는 하늘을 올려다보는 소녀의 얼굴에는 씁쓸함이 배어 있었다.



루나

그래서 언니도 나에 의해 그녀가 승급자가 되는 걸 보고 싶지 않았잖아.


루나

하지만...


루나

언젠가는 진실을 알게 되면 그녀도 '선별'의 길을 걷게 될 거야.


루나

언니, 그날이 오면 어떻게 생각할 거야?




알파

...


루나가 남긴 문제를 고민하던 알파는 멀리서 가브리엘의 발자국 소리를 들었다.


가브리엘

...


두 사람은 서로 마주보며 말없이 칼을 빼들고 각기 무기를 움켜쥐었다.


알파

여기서 결착을 내자, 가브리엘.


가브리엘

알파, 나는 본 네거트 씨에게 새로운 힘을 부여받았고, 일찍이 과거를 뛰어넘었다.


가브리엘

만약 네가 지금이라도 다시 승격 네트워크를 위해 노력한다면, 나는 어쩌면 과거의 몫을 감안해 너를 여기서 무사히 보내줄지도 모른다.


그러나 가브리엘의 권유에 알파는 냉소로 화답했다.


알파

예전보다 혓바닥이 길어졌는데, 이게 힘의 부작용인가?


가브리엘

네가 이미 대꾸할 마음이 없는 이상, 어서 덤벼라.



전투 개시




가브리엘

그럼 그가 나에게 준 힘을 보여주마!



알파

마지막까지 발악해 봐.







전투 종료




시선수롱 14-6H : 순교자




알파

가브리엘...


알파

이번에는 널 놓치지 않을 것이다.



................



....



...



알파

여기에 있을 줄 알았다.


어두운 지하수길 깊숙한 곳에는 중상을 입은 가브리엘이 어둠 속을 걸어가고 있었다.


알파

너는 승격 네트워크에 지나치게 의존한 나머지 전투의 가장 중요한 점을 간과했다.


그녀는 축축한 터널을 밟으며 빠른 걸음으로 그를 향해 걸어갔다.


알파

아무리 강한 힘이라도 명중시키지 못하면 무의미해.


알파

이제 그 대행자의 도움을 받기 위해 그가 있는 장소로 돌아가려 했겠지.


알파가 태도를 뽑았고, 희미한 빛이 칼날을 따라 이동하며 서늘한 빛을 반사했다.


알파

이제 도망가게 두지 않을 것이다.


가브리엘

참으로... 어리석군...


가브리엘은 힘겹게 지팡이로 몸을 지탱하고 그림자 속에서 일어섰다.



가브리엘

인간의 비열한 행동은 시종일관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데, 승격 네트워크라는 강력한 힘에 도움을 주지 않으면, 세계는 어떻게 구할 셈이지?


알파

선별의 목적은 합격의 씨앗을 남기는 것이다. 넌 자신이 장악한 힘을 충만하게 하기 위해 다른 사람을 삼킬 뿐이다.


그녀는 더 이상 상대에게 시간을 주지 않았고, 순식간에 가브리엘 옆구리에 번쩍이더니 칼날과 지팡이가 교차하며 불꽃이 튀어 마치 분노처럼 알파의 눈동자에 반사되었다. 


가브리엘

알파, 나는 너라면 취서체의 가치를 이해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가브리엘은 발밑 적조 속의 퍼니싱을 손아귀에 모아 순식간에 힘을 보탰다.


그러나 지팡이가 알파의 태도를 부러뜨리기 전에 그녀는 뒤로 물러나 위험범위를 벗어났다.



가브리엘

오직 절대적인 힘만이 인류를 멸할 수 있고, 인류의 비열한 행위를 막아낼 수 있다!


알파는 양손에 칼자루를 쥐고 육안으로 관측하기 어려운 속도로 가브리엘을 찔렀다.


가브리엘이 공격으로 맞이할 준비를 끝냈을 때 그녀는 갑자기 위치를 바꿔 그의 어깨를 옆으로 찔렀다.


가브리엘

으윽ㅡㅡ!


그의 자랑스러운 몸뚱이는 칼날에 부서져도 그 차가운 금속에서 아무런 액체가 흘러나오지 않았고, 가브리엘은 비틀거리며 아직 작동하는 팔로 알파가 있는 곳을 향해 연달아 지팡이로 공격을 날렸다.


두 사람의 무기가 다시 부딪혀 첫 세 번의 재빠른 공격이 모두 태도에 막혔지만, 가브리엘이 최후의 일격을 날리기 전에 알파는 그의 공격 범위를 비켜갔다.



가브리엘

극지에서 발생한 일이 아직도 널 이해시키기 충분하지 않았던 것인가?


가브리엘

내일을 열 자격은 충분한 힘을 가져야만 얻을 수 있다.



알파

그러나 네가 도착한 내일에는 아무것도 없어.


이 말에 알파가 대답하는 순간, 그녀의 칼날이 가브리엘의 오른쪽 옆구리를 찔렀고, 그는 재빨리 하늘로 날아올랐다. 높이가 낮은 환경의 제약에도 아까의 한 방에서 벗어나기에 충분했다.


알파

루나가 선별을 추진하려는 근본적인 이유는 일부라도 살아 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알파

선별이 완료되는 순간 비열한 자는 퍼니싱에 의해 부패하고 승격된 자는 세계에 혁신을 가져올 것이다.


알파

난 선별과 승격 네트워크 자체에는 별 관심은 없지만 그녀가 선택한 미래는 나 또한 인정하는 길이다.


알파

하지만 넌... 승격 네트워크와 선별이라는 명분을 내세우며 사실상 모든 힘을 자기 손에 쥐려고만 하는 미치광이일 뿐이다.


알파

네가 지금 하고 있는 모든 것은 인간이 저지르는 짓거리와 어떤 차이가 있지?


그녀는 검집에 칼을 넣고 가브리엘이 있는 쪽으로 걸음을 옮기며 모든 에너지를 칼날 위에 모았다.


가브리엘

단지 승격 네트워크의 힘을 더 가질 수 있다면, 인류는 오직 이 하나의 선택에 승복하게 만들 수 있다! 이를 위해 필요한 희생은 불가피하다.


알파

통제받지 않는 힘의 팽창이 맞이할 말로는 단 하나, 그것은 너에게 강요받은 사람들로부터 해체되는 것이다.


알파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네가 선택한 그 길의 끝은 ㅡㅡ 공허뿐이다!


가브리엘

우리가 결국 뜻을 함께할 수 없다면, 망설이지 말고 어서 덤벼라!


가브리엘

내가 너희들의 지루하기 짝이 없는 감정을 무시하듯이, 너도 나의 이상과 숙원을 부정해보아라.


가브리엘의 몸에는 무수한 붉은 전류가 흘렀고, 날개는 피처럼 빛나고, 주위의 불안정한 벽은 날갯짓하는 것만으로도 떨렸다.



가브리엘

이 끓어오르는 의지에 모든 것을 걸겠다ㅡㅡ!


붉은 빛이 터져나오고, 주변의 벽이 연기와 눈부신 빛에 무너졌다. 피할 수 없는 좁은 통로에서 파멸적 타격을 가하면 끝은 하나밖에 없었다.


가브리엘은 아래쪽의 연기와 먼지를 내려다보며 누군가 그에게 했던 말을 떠올렸다.


가브리엘

...네가 틀렸다는 것을 계속 행동으로 보여 주겠다.


그가 돌아서려던 순간, 모든 공격이 집중된 곳에서 위쪽에서 내려오는 '천사'를 향해 무수한 검기가 날아들었다.


찢어지고 추락하는 것은 바로 이 순간이었다.




뿔뿔이 흩어진 연기와 먼지가 떨어진 뒤…. 알파는 부서진 벽 사이로 가브리엘의 잔해를 찾아냈다.


이 기계 부품은 죽어가는 백색광 아래에서 아직 에너지가 다 떨어지지 않은 채 잔해 사이에서 가늘게 떨고 있었다.


몸통에 새겨져 있던 불사(不死)라는 글자도 칼로 찢어진 채 아직 다하지 못한 주인의 의지를 속삭였다.


기억의 깊숙한 곳에 숨겨져 있어 미처 말하지 못한 과거들.


그 숙원, 집착, 말하지 않았던 모든 감정들.


아무도 기원을 알지 못하는 그의 이름과 함께 죽음으로 돌아갔다.


한때 천사였던 것의 잔해는 손상된 사운드 모듈에서 쉰 목소리와 부서진 단어를 짜내며 몸부림쳤다...


가브리엘

...선별의 시간은 곧 멀지 않았다... 곧 탄생할 것...


그러나 그는 마지막 단락을 마무리하기도 전, 마지막 에너지를 허비하며 만물과 함께 고요로 돌아갔다.


알파

...


알파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자신의 다음 목적지로 발길을 돌렸다.


은백색의 머리카락이 바람에 날리며 평소 긴 머리카락에 가려 좀처럼 눈에 띄지 않던 소대 마크가 드러났다.


승격 네트워크를 위한 선별에는 피와 싸움이 따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가브리엘이 이 길의 끝을 고집하는 것은 필경 '싸움' 끝에 자신을 죽이는 것이다.


과연 그는 자신이 믿었던 길 위에서 쓰러진 것일까.


알파

영원히 잠들기를, 광란의 순교자여.


미풍이 지하수 길을 지나 알파의 옷자락을 날렸고, 그녀의 모습은 어둠 속에 잠겨갔다.



바람의 근원과 끝은 아무도 모른다 해도 여기에 존재했던 흔적은 남아있을 것이다.


알파의 모습이 사라지자 금빛 눈동자를 가진 소녀가 가브리엘의 기억을 저장한 머리를 가만히 감싸안았다...





홍지 너무 조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