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수롱 14-7H : 참전



최종 계획이 실행되기 전날 밤 알파는 그림자 속의 인어를 향해 칼을 들이대고 정보를 물어봤다.


동시에 루나는 실험형 초고에너지 송신 안테나의 위치를 알게 되었다.


극지에서 돌아온 라미아는 그녀에게 화서가 말한 것과 동일한 사실을 이야기했다.



루나

엄동계획…. 또 그 이름이네.


라미아

네, 네네, 이제 계획에 대한 모든 것이 그 실험실 깊숙한 곳으로 옮겨졌습니다.


루나

...화서, 네가 말한 대로야.


루나

이런 안테나 세트가 그 실험실에 있는 것도 엄동계획을 위해서였어.


그녀는 방금 받은 명단을 화서에게 전송했다.


루나

그럼 여기 라미아가 가져온 새로운 단서가 있는데, 너도 정보를 더 제공해 줄 수 있을까?


화서

연관기록 검색중 >>>>>> 완료.


화서

이에 대응하는 인적 자료를 찾아 대상의 활동기록을 표적 수사하였습니다.


루나

결과를 말해줘.


화서

라미아라는 개체가 가져온 정보와 동일하게 카플란은 여전히 활동을 계속하고 있으며, 후속 실험을 위한 도구들을 지하 실험실로 옮기는 작업을 벌이고 있습니다.


화서

탈취한 목표의 메시지 전송 내용을 통해 추정해본 결과, 이들은 공중정원의 한 암호화된 주소에서 다른 사망자들의 자료를 요청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화서

그 중에는 당신이 수색했던 랜드와 안, 그리고 레벤치와 헤로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루나

...


루나

라미아, 다른 사람에게 이 사실을 말하지 마.


라미아

혼자 가려고요?


루나

응, 그냥 내가 뭔가 가지러 갔다고 생각하게 내버려 둬.


라미아

…솔직하게 말해 주세요. 그들은 얼마든지 의심을 품게 될겁니다.


루나

그럼 그 사람들이 의문을 품은 채 거기에 남도록 내버려 둬.


라미아

왜 꼭 혼자 가야 되나요?


루나

의외의 돌발상황을 맞이하고 싶지 않아. 너희들은 아직도 그 땅을 어떻게 처리할지 서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잖아?


루나

그리고 이 계획의 후속을 언니에게 알릴 필요도 없어.


그녀는 고개를 떨구고 알파에게 숨길 수 있는 결과를 고민했다.


루나

언니의 행동 방식을 생각하면 아마 나 혼자 극지로 돌아가게 두지 않겠지...?


루나

그럼 숲을 지키는 자로 하여금 막게 해야겠어.


루나

구룡에서의 싸움 이후에도 언니는 로제타에게 묻고 싶은 말이 더 있을 테니까.



알파

너 초조해 보여.


루나

...


알파

'예전과 같은 미련한 일'이 너에게 이런 표정을 짓게 하지는 않았을 거야. 화서가 너에게 보여준 기록과 관련이 있는 거야?


루나

언니.


알파

응.


루나

……그 연구소는 나에게 약간의 추억을 상기시켜줬어.


알파는 한순간 침묵을 지켰고, 분명 루나가 말한 과거사가 무엇인지를 알고 있었다.


그 지하실험실은 암볼리아를 가두기 위한 족쇄였고, 그와 비슷한 목적을 가진 병영과 마찬가지로 그들의 욕망과 오만의 산물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병영과는 달리 북극항로연합 자체의 빚이었고, 암볼리아가 깊은 잠에 빠진 뒤에는 숲을 지키는 자들에게 맡겨야 할 일이지 더 이상 승격자들이 끼어들 일은 아니었다.


그리고 알파가 풀려났을 때 기존의 병영은 모두와 더불어 파괴되었다...


라미아의 후속 개입으로 승격자에 대한 계획은 더 이상 수행할 수 없었고, 양측도 협력을 중단했다.


…적어도 그때는 그랬다.



알파

그것은 지금 이미 폐허가 되었어.


알파

너의 심정은 이해하지만, 이것은 현명한 방법이 아니야.


루나

나 때문에 걱정할 필요 없어, 언니.


루나

승격 네트워크의 힘은 그 누구도, 그 어떤 집단도 뒤흔들 수 없어.


알파

그런 당연한 말은 나도 얘기하지 않을 거야.


알파

그 연구소를 파괴해도 과거는 뒤바뀌지 않아. 그냥 너의 기분에만 영향을 줄 뿐이야.


알파

설마 너는 그들을 위해 무언가를 하고 싶은거니?


루나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했을 뿐이야.


루나는 언니 곁에 멈춰 서서 먼 폐허를 바라보았다.



루나

나는 그런 '죄인'들을 위해 정의를 실현하는 것에 관심이 없어.


루나

다만, 내가 혐오하는 것을 지상에서 제거했을 뿐.


루나

나의 행동이 어떤 사람들에게 유익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그들은 나에게 감사하지 않을 거고, 나에게도 인간의 감사는 결코 필요하지 않아.


루나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내가 하고 싶은 일만 할 줄 알뿐이야.


그녀는 순간 미소를 보였다.



알파

…혐오스러운 것…….


라미아에게서 구체적인 정보를 듣고서야 알파는 이것이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알 수 있었다.


알파

항상 네가 어렸을때의 사고방식으로 현재를 추정하는것 또한 나의 오만이겠지...


알파는 눈을 뜨고 온실 아래쪽을 한 번 더 확인하고 이곳을 떠날 생각이었다.


잡음이 난 후부터 그녀는 늘 쉽게 추억에 잠겼다.


그 소리들은 마치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키려는 듯 그녀의 의식 속을 내달렸다.


그녀가 온실을 향해 이동하려 할 때, 먼 곳에서 회언이 눈에 익은 잔해 하나를 안고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알파

...이건 가브리엘의...


하나의 의문이 알파의 마음속에 불쑥 나타났다.


그 소녀가 이합생명체를 만드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면 같은 방식으로 가브리엘을 부활시킬 수 있지 않을까?


알파

아니, 불가능해.


설령 그의 몸을 다시 주조한다고 해도 가브리엘이 온전하게 다시 나타날 리 만무하다.


그렇다면 회언은 왜 그의 머리를 회수했는가?


알파의 눈앞에 수 개의 가능성이 나타나지만, 어느 하나 진정한 답이 될 수 있다고 확신하기에는 부족했다.


알파는 내심 의혹을 명확히 하기 위해 회언이 사라지는 방향으로 걸어갔다.



【지휘관 이름】

그녀를 멈춰!


회언의 노래가 막 울려 퍼졌을 때 알파는 문 밖에서 귀에 익은 소리를 들었다.



알파

그 지휘관? 그레이 레이븐 소대도 여기에 왔다고?


지금은 그레이 레이븐이 주요 목표가 아니므로 이들과 충돌할 필요도 없이 알파는 조금 먼 그림자 속으로 몸을 숨겼다.


???

이제 그 지휘관에게 루나의 행방을 알고 있는지 직접 물어봐.


잡음을 생각하다 사방에서 강한 진동이 일어났고 천장마저 흔들리면서 잔해를 떨어뜨렸다.


알파

지진인가?


알파

아니, 진원이 온실에 있는 것 같은데, 설마 회언이 있는 그곳?


그녀는 온실의 방향을 보면서 위쪽에서 '숙면'을 취하던 거대한 물건을 떠올렸다.


그 존재를 알아차렸을 때 알파의 의식의 바다에서 승격 네트워크로부터의 암호화된 정보가 유입되었다.


그것은 자신만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처럼 귓가에 속삭이며 그것이 가져올 미래를 보여주었다.


알파

만약 그레이 레이븐 소대들이 지금 당장 죽어버린다면 일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겠지.


막으려고 나섰지만 그들의 실력으로는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방관하던 중 어두운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알파

...본 네거트.


상대는 뭔가를 눈치챈 듯 온실에 들어서기 전 알파의 그늘을 돌아보았다.


알파

...


잠시 침묵이 흐른 뒤 알파는 그늘에서 나와 온실로 향했다.



???

넌 그들을 도와줄 생각이야?


알파

난 진실을 아는 사람을 필요로 해.


???

어떤 진실?


알파

본 네거트에 관한 것이든 그녀의 기체에 관한 것이든 내게 이익이 될 만한 것들이야.


알파

전자라면 인류의 예봉을 꺾을 수 있고, 후자라면 그레이 레이븐 소대가 흔들리겠지.


???

넌 그들이 무엇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하는 거야?


알파

다만 현 상황을 타개할 씨앗이 필요할 뿐이야.



알파

세상은 흥미로운 미지의 것을 바라고 있잖아. 안그래?



알파는 뭇사람들의 발걸음을 따라 넓은 영역 밖으로 나왔다. 본 네거트의 목소리는 특유의 압박감을 담으면서 내부에서 들려왔다.


본 네거트

환영합니다. 제가 다음에 무엇을 할지 여러분은 꼭 걱정하고 있겠지요?


본 네거트

사실 저의 목적은 항상 명확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대선별'의 추진이었습니다.


본 네거트

그래서 저는 언제나 신선한 피를 환영합니다.


본 네거트

하지만 지금 당신들에게 요청해도 얻을 수 있는 답은 하나밖에 없겠지요.



알파

...


본 네거트

여러분에게 우리의 숙원과 이상을 전하고, 승격 네트워크, 그리고 선별의 위대함을 알려드리고 싶습니다만.


본 네거트

그러나 사람들은 일단 무리 속에 있으면 이겨낼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죠.


본 네거트

지금 무슨 말을 해도 여러분의 귀에 들어오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본 네거트는 검지와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총기를 겨누는 자세로 여러 사람을 겨냥했다.


본 네거트

Bang!


그가 성의없이 날린 의성어로부터 육안으로 분간하기 어려운 광선이 여러 사람의 뒤에서 날아왔다.


알파

승격 네트워크가 주는 힘은 오히려 그에 의해 정교하게 통제되고 있어.


이런 뜻밖의 공격을 지켜본 알파는 본 네거트의 전투 방식을 잠시 밖에서 지켜보기로 했다.


루시아

지휘관!


뒤에서 빛을 감지한 루시아는 피하지 않고 자신을 향해 달려가 칼로 다른 이들에게 향하는 공격을 막았다.


알파

…아직도 순진하지만 좀 더 날카로워졌어.


루시아의 보호 아래 한 발도 흔들리지 않았지만 마지막 한 방은 막지 못했다.


【지휘관 이름】

루시아!


그녀는 상처를 움켜쥐고 뒤로 한 걸음 물러섰는데 붉은 순환액이 오른쪽 어깨에서 새어나왔고, 뼈대는 다치지 않았지만 깊이는 있었다.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니 루시아 외에 다른 사람들도 다소 가벼운 부상을 입었다.


【지휘관 이름】

반즈! 부탁해!


루시아

괜찮아요, 전 아직 싸울 수 있습니다.


반즈가 빠른 걸음으로 와서 루시아의 상처를 고쳐주었다.


반즈

...통각 모듈을 꺼야 하나?


루시아

이 정도의 고통만으로 의식의 바다의 이탈을 야기할 필요는 없습니다.


본 네거트

얼마든지 시도해도 좋습니다. 전 아직도 당신들을 놀라게 할 많은 장난거리들을 가지고 있거든요. 순순히 복종할 때까지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카무이

너는 크롬 대장과 한 약속을 어길 셈이냐!


본 네거트

아닙니다. 죽이지 않겠다고만 했을 뿐, 다른 약속은 한 적 없습니다.


본 네거트

저쪽 지휘관도 파리 두 마리를 내보내지 않았습니까?


【지휘관 이름】

레이너와 퍼시?


본 네거트

괜찮습니다. 저는 그런 무능한 놈들은 신경 쓰지 않습니다. 그래서 구태어 그들에게 무슨 짓을 하진 않을 것입니다.


본 네거트

하지만 당신들에게...


알파

...


계속 방관할 수도 있었지만, '나'의 행동과 태도에 비추어 볼 때, 다음의 전술 배치는 그 지휘관에게 넘기길 바랄 것이다.



알파

아무것도 모르는 인간...


알파는 군중 속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시선수롱 14-8H : 긴 밤이 다가온다



루시아

왜 도와주러 온거지?


루시아는 전방의 대행자를 경계하면서 나직하게 알파에게 물었다.


알파

난 너에게 설명할 필요가 없다.


루시아

...


알파

【지휘관 이름】.


알파는 이쪽을 보며 할 말이 있는 듯했다.


지휘관

...


알파

지하도시에서 취서체를 없앤 후, 루나가 어디 갔는지 알아?



(1)

지휘관

(몰라.) ← 선택

(또 그 질문이야...)


알파

그래?


알파는 거짓말을 꿰뚫어보려는 듯 매서운 눈초리로 자신의 눈을 바라보았다.


(2)

지휘관

(몰라.) 

(또 그 질문이야...) ← 선택


알파

또?


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겠다는 듯이 얼굴을 찡그렸다.



마지막 기억에서 취서체의 코어가 눈부시게 흰 빛을 발했을 뿐이었고, 주위의 퍼니싱 농도는 부쩍 높아졌었다.


루시아와 함께 철수하려는 순간 위쪽에서 붕괴가 일어났었다.


다시 깨어났을 때 감염도가 약해졌고, 자신을 짓눌렀던 물건도 누구에 의해 옮겨졌는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화서도 보이지 않았다.


지휘관

(그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본다)

(이 사실을 말해준다)


알파

........


잠시 침묵이 흐른 뒤 그녀는 눈앞에 있는 본 네거트에게로 다시 눈을 돌렸다.


본 네거트

어? 더 할 얘기 없나?


본 네거트

어쩌면 인간의 입에서 더 많은 정보를 추출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도 여기에 관심이 있으니 대화를 방해하지 않을 것이다.


이 말을 들은 알파는 시큰둥하게 냉소를 지었다.


알파

아직 집행부대에 몸담고 있는 한 그들은 진상을 알 수 없다.


루시아

하지만 난 기억을 되찾았어.


알파

그리고?


루시아

뭐?


알파

옛날 그 기억 말고 다른 것들 말이야.


루시아는 잠자코 있었고, 알파의 말은 호기심을 불러일으켰지만, 대행자 앞에서 계속 물어볼까 말까 망설였다.


그러나 미지의 적을 상대로 직접 전쟁을 벌이는 것은 무모한 행위일 뿐이다.


온실 위쪽에 있는 크롬에게 시간을 벌려면 시간을 최대한 끄는 게 좋다.


지휘관

과거의 그 기억을 제외하고.


지휘관

또 무슨 일이 있었지?


알파

루시아가 너에게 말하지 않았어?


루시아

도대체 무엇을 가리키는 거야?


알파

너는 추억만 되찾았을 뿐 그 해 그 일의 전모를 모르는구나.


루시아

그 일의 전모가...


알파

궁금한적 없어? 지휘관이 승격자와 연결할 수 있다는 정보를 누가 레벤치에게 알려줬을까.


알파

그는 또 어떤 승격자를 연결시켰을까.


알파는 애써 '승격자' 세 글자를 악센트로 읽었지만 눈길은 앞의 대행자에게 머물렀다.


루시아

그의 부하였어?


알파

이해가 빠르네.


루시아

...


그녀는 잠시 망설이다가 마음속의 의혹을 묻기로 했다.


루시아

'엄동계획'에 대해 알고 있어?


알파

그 이름, 어떻게 생각해?


루시아

조사중.


루시아는 세 글자를 짧게 내뱉으며 더 이상 말하려 하지 않았다.


알파

나도 이 계획에 대해 잘 아는 편은 아니야.


알파

승격자에 대한 연구인 줄만 알고 있었거든.


알파

내가 알아낸 정보로 볼 때 그것은 레벤치와 관련된 사건에서 비롯됐을 가능성이 높아.


알파

【지휘관 이름】의 처지가 더 악화되었다면 아마 이 계획과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커. 그 후에도 그들은 계획의 추진을 도울 지휘관을 찾고 있었기 때문이거든.


루시아

알파, 왜 여기에 와서 도와주면서 이런 걸 알려준거지?


알파

난 반복되는 과오를 싫어하고, '내'가 그 전철을 밟는 것도 보고 싶지 않으니까.


루시아

이런 태도는 네가 전에 말한 것과는 아주 다른데.


알파

하...


알파

내 태도는 언제나 똑같아. 지금 달라진 건 너다.


알파

혹시 눈치채지 못했어? 루시아.


알파

아무것도 모르고 낙원에 안주하던 넌…. 이미 '기점'에 서 있다고.


이 말을 들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점'이 무엇을 가리키는 말인지 알 수 없었지만 루시아는 이 단어에 눈살을 찌푸렸다.


알파

'내'가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걸 보고 싶지 않아. 언젠가 심연에 발을 들여놓더라도 그런 식으로 배신당하지 마.


루시아

지휘관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을 말한다면, 나는 그것을 저지하는 데 전력을 다할 거야.


알파

그것은 단지 첫 걸음일 뿐, 그 어떤 증오도 하루아침에 쌓이지 않아.


알파는 잠시 침묵을 지키며 루나가 자신에게 했던 말을 떠올렸다.


알파

루시아, 나는 원래 너를 그 음모 후의 산물로만 여기고, 존재할 필요가 없는 기만스러운 데이터 조각으로 여겼었어.


알파

그래서 나는 널 만난 그날부터 널 지워버리고 싶었어.


알파

하지만 그러면서도, 넌 내게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줬어.


알파

지금의 넌 더 이상 막막하고 연약하지 않아.


알파

네가 나와 아주 비슷하다고 해도 독립적인 존재로서, 난 너를 더 이상 쓸데없는 데이터로 여기지 않을 거야.


알파

그러니까 언제까지 몸부림칠 수 있는지 보여줘.


루시아

난 결코 너와 같은 길을 밟지 않을 거야.


알파

그래?


알파

그럼 그날이 오기 전에 힘껏 심연을 빠져나가자.


알파

그리고 지금ㅡㅡ


알파는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루시아와 동시에 태도를 움켜쥐고 칼날을 본 네거트를 향해 겨누었다.



본 네거트

극지에서 일어난 '그 사건'에 대해 그녀에게 말할 생각이 없나?


알파

어떤 말은 다른 사람이 하는 것이 더 믿음직스럽거든.


본 네거트

좋다, 그럼 어서 덤벼라.



전투는 3분 동안 계속되었고, 상대방의 공격 수단은 다양하고 끝이 없었다.


본 네거트에 익숙한 알파를 제외하고는 거의 전원이 상처를 입었다.


그런데 그 대행자는 왜인지 모르겠으나 애써 치명상을 피하면서 공격하는 듯 했다. 마치 사냥감을 희롱하는 고양이처럼 즐거워하며 사람들을 공격했다.


하지만 알파라 해도 본 네거트에게 유효타를 날릴 수 없었고, 중첩된 방어역장 근처에서 모든 공격이 튕겨졌다.


카무이

이 방어역장 너무 짜증나잖아! 이 거북이 등껍질같은 것 좀 벗어봐!


본 네거트

방어 또한 전술의 일부일진대, 저한테 접근하지 못한다면 무슨 자격으로 도발을 할 수 있겠습니까?


본 네거트

그리고 당신들은 왜 항상 중앙의 지휘관을 보호하고 있습니까?


그는 느긋한 걸음걸이로 이쪽을 주시하고 있었다.


본 네거트

그런가, 당신은 마치 수정뿔 같은 존재였군요.


본 네거트

그들의 힘을 북돋아 주고, 결국 빠르게 시들도록 만들겠죠.


루시아

지휘관은 그런 존재가 아니야!


본 네거트

당신이 뭐라 하든 저도 곧 질릴 것 같습니다만.


그는 두 손을 뒤로 하고 입가에 희롱하는 웃음을 띄웠다.


본 네거트

이제 겨우 기체를 바꾼 그 대장이 아직도 돌아오지 않고 있으니, 설마 모체의 자양분이 되신 건 아니겠죠?


지휘관

(난 크롬을 믿어.)

(그럴 리 없어.)


본 네거트

그런가요?


본 네거트가 손을 들어 사방의 퍼니싱을 한 움큼의 작은 광사로 뭉친 다음 그것을 잡으려 할 때 멀리서 지진 같은 굉음이 들려왔다.


???

아ㅡㅡㅡㅡㅡㅡㅡ


거친 흐느낌이 벽을 뚫고 군중들을 향해 들려왔다.


본 네거트

축하합니다. 사람을 옳게 믿었군요.


그는 사람들을 향해 천천히 박수를 쳤다.


본 네거트

제가 한 약속을 지키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이제 이곳을 떠나실 수 있습니다.


본 네거트

하지만 필요한 정보를 지우기 위해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의 손에 든 빛이 모래가 되어 땅에 떨어지는 순간 공간 전체의 퍼니싱 농도가 지진과 함께 치솟았다.


반즈

여긴 곧 무너질거야. 빨리 철수해!


사람들은 서로 엄호하면서 출구로 철수했다.


루시아

이탈한 지휘관을 엄호할게요! 


본 네거트

얽매임이라는 것도 때로는 꽤 성가신 물건이지 않습니까?


그가 웃음기를 띠며 손을 들은 순간 펄펄 끓는 퍼니싱 전류가 자신을 보호하려는 사람을 감쌌다.


눈앞의 습격에 대응하자마자 위에서 무너진 거대한 석판이 무너져내렸다. 약간의 틈도 있지만 인간의 연약한 몸을 움직일 수 없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루시아

지휘관!!



알파

...


반즈

그의 공격이 우리 주위에 모여들었어! 그레이 레이븐의 지휘관이 죽기 전에 먼저 인도하자!


본 네거트

관찰력은 훌륭하나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우레와 같은 폭발음이 허공에 터지며 벽이 다시 무너졌다.


루시아

지휘관!!!!!


루시아는 공중으로 치솟아 공중에서 떨어지는 석판을 연거푸 부수고 잔해를 타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전류 공격을 막았다.


루시아

이쪽이다!


알파의 연이은 검기에 본 네거트의 방어역장에도 금이 갔지만 이내 원상복귀했다.


루시아가 급강하하자 두 사람의 칼날이 앞뒤로 난공불락의 광벽을 찔러 그것이 복구되기도 전에 다시 깨졌다.


본 네거트

재미있다, 너희들이 몸부림치는 모습이 참으로 재미있도다.


본 네거트

그렇게 저 지휘관을 구하고 싶다면 모두 함께 보내주마.


루시아

넌 단지 우리를 여기서 계속 싸우게 하고 싶을 뿐이잖아!


본 네거트

만약 당신이 붕괴를 걱정하고 있다면, 당신이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범위 내로 가는 것을 개의치 않겠습니다.


카무이

그럼 빨리 꺼져!


카무이의 분노에 찬 말 속에서 뭇사람들은 이 구역에서 멀어져갔다.


하지만 루시아가 다시 칼을 빼들고 나서려 할 때, 본 네거트는 알파를 향해 손가락을 날렸다.



본 네거트

시작하기 전에, 규격 외의 존재는 배제할 필요가 있습니다.


삽시간에 대량의 어지러운 잡음이 알파의 의식의 바다로 밀려들었다.


본 네거트

당신의 입장을 잘 살펴보아라, 알파.




전투 개시




알파

여긴...강제잠입인가?


본 네거트

당신의 입장을 잘 살펴보아라, 알파.


채널 잡음

그들은 다시 죽임을 당했다.


채널 잡음

적은 무궁무진하다.


채널 잡음

넌 대행자의 힘을 얻어야 한다.


알파

내가 말했지, 관심 없다고.




의식의 잡음이 밀려온다






본 네거트

어쩌면 루시아에게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야 할지도 모른다.


알파

그녀는 아직 심연 속으로 들어갈 때가 아니야.




모든 환영을 제거하라






본 네거트

승격 네트워크의 은혜에 저항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알파

그 은혜란 것은, 결코 은혜만 있는 게 아니었지.




모든 환영을 제거하라




본 네거트

간섭 실험을 해 보지.






의식의 바다에 균열이 생겼다




본 네거트

여기에 남아있어라.



알파

나에게 명령할 권리따위 없어.



본 네거트

그래? 하지만 네가 올바른 선택을 하기 전까지.



본 네거트

이런 잡음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알파

벗어날 수 없다라...


알파

그냥 베어버리면 돼.



의식의 잡음이 밀려온다, 의식의 바다를 방어하면서 모든 적을 소멸시켜라






본 네거트

모든 의식의 잡음을 파괴하다니.


본 네거트

그대를 기다리는 것은 끝없는 허무와 방황뿐이다.


알파

...




본 네거트

허? 의식의 바다를 손상시키더라도 떠날 생각인가?



본 네거트

그렇다면 나도 너의 이 확고함을 인정하겠다.



전투 종료




귓전에 울리는 어지러운 소리는 사라지고, 알파는 사방이 심하게 흔들리는 가운데 두 눈을 떴고, 그 시커먼 모습은 예상대로 여유만만한 모습으로 멀지 않은 곳에 서서 여러 사람과 싸우고 있었다.


알파

본 네거트!


본 네거트

좋아, 나는 네가 더욱 마음에 들게 되었다.


본 네거트

아직 걸러지지 않은 이런 '씨앗'들보다 대행자 자격을 건드릴 수 있는 사람이 더 흥미롭다.



루시아

대행자? 알파, 설마...


알파

나는 거기에 관심이 없다.


본 네거트

아쉽군.


그가 사람들이 있는 쪽으로 가볍게 왼손을 흔들자 보이지 않는 위압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알파는 태도를 뽑아내 힘을 모아 베어버리고, 그 앞에 들이닥친 비가시적 위협을 둘로 갈라놓고, 칼날은 갈라진 틈에서 본 네거트를 향해 날아갔지만, 그 앞에 있는 방어역장에 그대로 부딪혔다.


본 네거트

넌 그것을 볼 수 있는가? 아니면 이것은 단지 전사의 위험에 대한 직감일 뿐이었나?


그 '충격'은 그녀에 의해 갈라져 뒤로 부딪혀 지면에 검게 그을린 흔적을 남겼다.


본 네거트가 알파를 향해 걸어오자 그의 발걸음을 따라 수많은 붉은 퍼니싱 전류가 그에게로 모여들었다.


ㅡㅡ알파는 자신의 몸에서 힘이 급속히 쇠퇴하는 것을 느꼈다.


알파

너도 이렇게 비열한 수단을 쓸 줄이야.


알파는 얼굴을 찌푸리고 태도를 연거푸 휘둘러 사방에서 투사되는 상대의 공격을 막아내고, 칼을 검집에 집어넣어 검집의 힘을 빌려 무기에 에너지를 축적했다.


그녀가 칼을 빼내어 본 네거트를 엄청난 속도로 찔렀을 때, 그녀의 칼날은 상대방의 손에 단단히 고정되었다.


알파

…맨손으로 칼날을 잡았다고?


그러나 자세히 보니 손과 칼날 사이에 미세한 간격이 있었다.


알파

아니, 이것도 그 힘의 다른 쓰임새겠지.


본 네거트

분석력이 좋군.


그는 이번에 사람들과 아주 가까운 상황에서 다시 그 전류를 흘렸다.



카무이

조심해, 방어에 만전을 기해!


본 네거트

과연 쓸모가 있을까요?


붉은 빛이 순식간에 터져 많은 사람들이 임시로 늘어선 방어진은 그의 공격을 잠시 막아냈지만 발 밑바닥은 무너져 내렸다.


카무이

!!


네 명이 함께 하층부로 추락하자 옆에서 한 여성의 부드러운 한숨소리가 들려왔다.



???

정말 예상치 못한 재회네, 알파 양.



알파

당신은...


발걸음을 가다듬은 알파는 목소리가 들려오는 쪽을 바라보았고, 자비로운 자라고 했던 그 여성이 모두가 추락하는 바로 앞에 서 있었다.


본 네거트도 그녀의 존재를 눈치채고 공격을 멈췄다.



루시아

지금이야!


반즈

어서 가자.


세 사람은 사방의 어수선한 연기 속에서 재빨리 철수해 【지휘관 이름】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알파

자비로운 자, 왜 아직도 여기에 있는거지.


자비로운 자

미안해, 온실 아래에 있던 '어머니'에게 관심이 좀 끌렸었어.


자비로운 자

그래서 여기 남아서 그녀의 성장 방식을 보고 싶었어.



본 네거트

...


본 네거트는 자비로운 자를 보며 보기 드물게 침묵했다.


알파

(여기에 계속 있을 필요는 없겠지.)


본 네거트가 아직 다음 움직임을 보이지 않자 알파는 출구로 돌아섰다.


본 네거트

...


알파의 멀어지는 뒷모습에도 본 네거트는 더 이상 막지 않았다.


앞에 있는 이 진정한 손님이야말로 그의 접대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었다.




무너져 내리는 지하수 길을 벗어나 알파는 다시 이 폐허로 돌아왔다.


그녀는 철수하는 길에 주운 명판을 수송기 근처에 놓고는 몸을 돌려 초토를 빠져나갔다.


폭파의 굉음이 사라진 후, 모든 것이 다시 차가운 고요로 돌아왔다.


부스러기가 된 만물을 싸안고 만신창이가 된 초토 속에서 광풍이 춤을 춘다.


이 모래먼지는 언젠가는 대지의 상처를 보듬어 다시금 새로운 생명을 낳게 될 것이다.


수많은 사람을 태운 수송기가 하늘로 완전히 사라졌을 때.


오토바이 한 대가 낙조의 잔광을 받으며 피난민 주둔지를 지나 지평선을 향해 질주했다.


ㅡㅡ밤이 찾아와도 그녀는 하늘을 올려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