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성치의 [미래전쟁] 18-10 : 수롱



하카마

나나미님, 당신의 요구에 따라 인근에 고도의 연산 저장 능력을 갖춘 시설의 위치를 찾았습니다.


다시 나나미와 합류한 하카마와 스푸너는 잔존 인류를 향한 소탕 공격이 가해졌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하카마는 불안해하며 나나미의 상태를 확인했다.



나나미

응, 모두 수고했어!


나나미

제로의 최후의 전쟁을 저지하는 것은 이미 실패했으니까 앞으로 나나미는 반드시 최선을 다해야 해.


나나미

지금 가능한 한 많은 정보를 얻고, 포트를 찾아야 돼.


하카마는 소녀가 기운을 가다듬은 듯하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스푸너

기계교회의 핵심 구성원 자료, 그리고 그동안 전쟁에서 중요한 사건들을 정리했습니다. 근데 선현님은 이걸로 뭘 하실 겁니까?


스푸너

이 자료들을 정리할 때 깨달은 사실인데, 알고 보니 우리와 인류의 첫 갈등의 폭발이 생각보다 일찍부터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스푸너는 말없이 하카마를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을 받은 여성 기계체도 말없이 시선을 돌렸다.


나나미

하카마랑 관련이 있어?


하카마

…네. 죄송합니다. 선현님.



하카마

저는 오래 전 기계교회의 방주 계획에 핵심 구성원으로 참여했었고, 광휘의 행진자(샤이닝워커, 光辉行进者)와 함께 인류의 '에덴'을 향해, 인류 측을 향한 첫 공격을 시작했었습니다.


하카마

분명 당신은 알고 싶어하시겠죠, 그 이유는...


스푸너

그렇게 오랜 세월이 지나고도 인간과 계속 싸운 것은 당신 때문이 아니에요.


스푸너

선현님께서 그때 이미 기계교회에 가입해 있었더라면 모든 것을 되돌릴 수 있었을지도 몰랐겠죠.


나나미

나 그때 없었어?


하카마

...네, 그때는 아직 선현님을 찾지 못했었습니다.


하카마의 시선이 다른 쪽으로 쏠렸고 자책하는 눈치였다.



나나미

괜찮아, 이번의 나나미는 하카마의 위엄을 지켜볼 시간을 놓치지 않을 거야!


소녀는 눈을 깜박이며 능글맞은 웃음을 지었다.


나나미

하카마 언니가 먼저 안내해줘!


기갑에 올라탄 소녀의 늠름한 모습은 출정을 앞둔 장군 같았다.


하카마

...네.


눈 앞에 보이는 소녀가 구체적으로 무슨 뜻으로 말하는 지 알 수 없었지만 웃음에 함께 물든 하카마도 옅은 미소를 지었다.


하카마

저를 따라오세요. 선현님.



하카마

다행히 요구 사항을 충족하는 가장 가까운 장치는 직선거리로 1.284km 떨어져 있습니다.


나나미

그럼… 기계교회 본부에 있잖아!


일행은 광장 바닥 구석에 있는 거대한 갑문 앞에 섰다.


하카마

그렇습니다. 불행히도 '그것'이 '회색탑'의 코어입니다.


나나미

원래 이 탑의 코어는 땅 밑에 있었어?


하카마

본부의 막대한 연산력 수요를 지원하고, '회색탑' 건설을 주창했던 주도 세력이 '톱니바퀴'였기 때문에 그곳에 많은 수의 톱니바퀴가 주둔하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스푸너

그들은 속여도 소용없습니다. 기계교회에 비밀은 존재할 수 없어요.


스푸너는 자신의 머리를 가리켰다.


스푸너

'성지'에 있는 모든 신도들 사이의 의사 소통은 투명하게 이루어집니다.


나나미

이것이 거대한 기계조직의 특징일까…그건 그렇고, 역시….


나나미

어쩐지 전에 모리가...


하카마

그게 뭐죠?


나나미

아무것도 아니야. 출발하자!



전투 개시




하카마

'성지'의 배후지는 질서 정연하게 배열된 회로와 배관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하카마

그 케이블들은 우주선 전체에 필요한 에너지를 끊임없이 전달합니다.


하카마

아래 지형은 더 복잡하므로 모두 주의를 기울이세요.




[2-2]



나나미

바람 엄청 쎄!


하카마

선현님 조심하세요. 이것은 인류의 침입을 막기 위한 함정일 것입니다.



하카마

2-2구역에는 강한 기류가 흐르지만 바람이 약해지면 1구역 너머로 들어가서 가까스로 움직일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3-1]



나나미

봐봐, 앞에 꼬마 하나가 있어!


나나미

뭘 알고 있는지 물어봐야겠어.



파손된 의료 기계

...2-2구역... 풍력... 감소...



[다시 말을 건다]

*이동속도 증가


파손된 의료 기계

...경고…4-1구역…고위험…


[다시 말을 건다]


파손된 의료 기계

…출구 …5구역에... 위치....



[4-1]



하카마

전방의 바닥에 유동 전력망이 설치된 것이 감지되었습니다. 강력 조치를 취할까요?


스푸너

무리하게 서두르면 '톱니바퀴'를 놀라게 할 수 있습니다. 다른 방법을 찾을 수 있는지 봅시다.


나나미

음...나나미가 생각해 볼게...


[5]



파손된 의료 기계

...통행 신호구... 적색... 적색... 황색...


하카마

선현님, 이 메시지를 이해할 수 있습니까?


나나미

어... 신호구? 게임할 때 나오는 그 신호구 말하는 거야?! 나나미 이거 제일 잘하는 거야!


나나미

흥흥, 반드시 수와 순서를 맞춰 신호구를 잘 정렬해야 돼!



파손된 의료 기계

...통행 신호구...정확함...통과하십시오...



전투 종료




서성치의 [미래전쟁] 18-11 : 해방



의료 기계의 안내를 받은 나나미 일행은 복잡하게 얽힌 파이프라인을 뚫고 비교적 넓은 지하공간으로 내려갔다.


한쪽에는 유리벽으로 가로막힌 방이 있었는데, 나나미는 한번에 그 안에 있는 인간을 보았다.



나나미

잠깐만…하카마, 여기 인간이 있어!


하카마

인간의 생체반응을 확실히 감지했습니다. 나나미, 그들은 살아 있습니다.


스푸너

하지만 여기서 멈추면..


나나미는 천천히 걸어가 유리로 된 벽면으로 다가갔다.



7~8명 정도의 인간이 있었는데 모두 병이 난 듯 병상에 누워 있었고, 방 안에는 여러 개의 의료기계가 침대 옆을 지키고 있었다.


하카마

이것은...


스푸너

구속복입니다.


눈앞의 인류는 모두 병상에 묶여 있었고, 어떤 것은 이미 의식을 잃고 병상 옆의 생명유지기에서 심장 박동의 선이 느리게 뛰고 있었다.


의료기계

선현, 괴로워 하지마, 인간, 살아남아.


나나미의 옆에 있는 의료기계는 마치 나나미의 칭찬을 구걸하듯 팔을 휘둘렀다.


나나미와 가장 가까운 인간은 무언가를 감지한 듯 필사적으로 고개를 돌려 나나미에게 절망적인 눈길을 보냈다.


나나미

그들은 이곳에 갇혀 있어…하카마! 유리를 깨!


하카마

비키세요.


하카마의 공격 의도를 눈치채자 방과 통로에서는 붉은 빛이 번쩍였고 비상벨이 요란하게 울렸다.


의료기계

인간을 구하라, 죽음을 막아라...


의료기계

불법 침입, 인간 보호...


나나미

그만해, 나나미는 울화가 치밀어...! 이건 전혀 보호가 아니야!


스푸너

설득은 무의미합니다. 이 의료 기계의 프로세스는 '인간을 구하고 돌봐라'고 설정되어 있으며, 이 인간의 존재는 프로그램의 올바른 논리에 대한 마지막 보증입니다.


소녀는 거대한 기갑에 올라탔다. 소녀의 분노는 그녀가 우리에서 탈출한 눈표범처럼 빠르게 움직이며 기갑을 조종하도록 만들었다.


나나미

이 모든 것이 나나미가 빚어낸 미래인 이상...


순식간에 수많은 의료기계가 몰려와 나나미의 앞을 가로막았고 그녀의 기갑이 감금문을 부수는 것을 제지했다.


나나미

그렇다면 나나미가... 부숴버릴거야!




전투 개시




나나미

이 모든 것이 나나미가 빚어낸 미래인 이상...



나나미

그렇다면 나나미가... 부숴버리겠어!



나나미

나나미 화났어!





전투 종료




나나미

이제 괜찮아요. 제가 여러분을 내보낼게요!


나나미는 인간의 침대 앞에 달려들어 그의 몸에 붙은 구속 끈을 풀었다. 인간에게 연결된 거미줄 같은 도관을 뽑고 싶었지만 손을 쓸 도리가 없었다.


인간

안돼...


얼마간 말을 하지 않았던 인간은 어렵게 입을 벌려 음절 하나를 토해내고, 마른 손가락은 나나미의 팔뚝에 올라탔다.


나나미는 그의 얼굴에 귀를 가까이 대고 그의 말을 똑똑히 들으려고 했다.


인간

날... 가게 해줘...


나나미

...


하카마

나나미, 보세요...


하카마는 시트를 들추고 그 사람의 다리를 드러냈다.


그것은 죽은 나무 기둥을 덮는 칙칙한 회색 종이에 가까웠고, 도저히 '다리'라고 할 수 없었다.


이곳의 다리가 모두 이런 모양이라면, 구속을 벗어난다 한들 탈출하고 살아갈 힘을 잃게 된다.


인간

제발…당신, 날 죽게 해줘.


인간의 시선은 그녀는 마치 화상을 입는 듯한 느낌을 받았고, 나나미는 그런 시선에 반걸음 뒤로 물러서며 머뭇머뭇 고개를 저었다.



나나미

아니... 나나미는 당신을 구하려는 거예요... 구하고 싶었는데...


인간

제발...제발...


인간의 움푹 패인 눈에는 절망이 가득 담겨 있었고, 마비와 고통의 왕복에서 깨어나 해탈에 대한 갈망이 모든 것을 차지했고, 그는 부목에 간신히 의지하며 부서진 바람소리가 울음과 함께 그의 가슴에서 새어나왔다.


뒤에 서서 침묵하던 수인 기계가 한숨을 내쉬었다.


스푸너

선현님, 이것은 그의 부탁입니다.


나나미는 고개를 떨구고 팔을 꽉 잡으며 차가운 손을 구부렸다.


스푸너

제가 하겠습니다.


수인은 앞으로 나섰고, 고대 신화에 나오는 죽음과 매장을 관장하는 짐승처럼, 병상 앞에 높고 깊은 그림자를 드리웠다.


나나미

잠깐!


나나미는 스푸너의 손을 잡고 마지막으로 인간에게 물었다.



나나미

...이름이...뭐예요?


맥스

...맥...맥스...


나나미

네...맥스, 나나미는 절대 잊지 않을 거예요.


나나미는 팔을 들어 얼굴을 힘껏 닦고 새 친구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칠흑같은 기계수인이 손을 들었고, 검게 탄 날카로운 발톱이 차가운 등잔불 아래 서늘한 빛을 발했다.


그러자 그의 손끝에서 딩동거리는 경쾌한 음악이 흘러나왔고, 오랫동안 연주되지 않았던 오디오는 순간적인 잡음이 있었지만 점차 선명하고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스푸너의 가슴에 있는 작은 투사체에 흐릿한 빛과 그림자가 나타났고, 머나먼 행복한 꿈을 꾸는 듯 불꽃놀이 소리와 함께 군중의 웃음소리가 함께 울려 퍼졌다.


그는 천천히 팔을 들어 생명유지기의 반짝이는 스위치를 눌렀다.


스푸너

...그는 여행을 떠났습니다.


이어 나나미는 스푸너를 따라 놀이동산 퍼레이드의 피리소리와 함께 다음 병상으로 향했다.


나나미

이름이 뭐예요?


나나미

...응, 나나미 기억할게요...


그녀는 한 걸음씩 걸어가며 스푸너가 자신의 이름을 새기고 친구로 여기는 인간들을 직접 배웅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어떤 인간은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자 스푸너는 상대의 가슴에 손을 얹고 이별의 축복을 속삭이며 잠든 사이 평화롭게 세상을 떠나게 해주었다.


'항행'의 대열은 빠른 속도로 막바지에 이르었다.


나나미는 마지막으로 방 구석에 서서 최후의 심장 박동이 사라지는 것을 경청하였고, 모든 것이 고요로 돌아갔다.


나나미

그리고 너희들...


나나미는 바닥에 주저앉아 쓰러진 의료기계를 하나하나 쓰다듬으며 눈을 감고 이 기계체들의 '감정'을 느꼈다.


다시 눈을 떴을 때 나나미의 눈에는 슬픔만이 아니라 활활 타오르는 분노가 있었다.



나나미

하카마, 스푸너.


나나미

'포트'를 찾으러 가자.





서성치의 [미래전쟁] 18-12 : 엇갈림




그들은 마침내 넓은 홀에 도착했다. '코어' 말단의 포트가 파랗게 빛나고, 코어의 작동을 의미하는 형광빛이 케이블에서 반짝이며 돔 위까지 뻗어 있는 모습은 나나미가 보던 풍경과 비슷하면서도 사뭇 달랐다.


포트 앞에서 세 명은 수백 개의 '톱니바퀴' 대군과 대치했다.


새빨간 기계소녀는 '톱니바퀴'의 맨 앞에 서서 한 걸음씩 걸어오는 나나미를 눈을 크게 뜨고 응시했다.


소녀의 눈빛에는 여전히 열광적인 사랑과 불안이 피어 있었고, 길 한가운데 버려진 채 풍선을 끌고 있는 아이 같은 모습을 한 그녀의 손에는 나나미가 받지 못한 보석이 들려 있었다.


나나미의 눈길은 더 이상 그 보석에 이끌리지 않았고, 그래서 선현에게 더 이상 이 공물이 필요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계단에 보석을 내던지고 굴러내려 먼지투성이의 기계 잔해에 빠졌다.


낭랑한 뎅그렁 소리는 넓은 홀에서 울려 퍼지는 유일한 소리였고, 이것은 나나미의 가슴에 내리쳤다.


나나미

...


제로

선현님... 선현님...


소녀는 모든 것을 내던진 듯한 자세로 나나미에게 달려가 나나미의 손을 잡았다.



제로

왜 그런 표정을 짓고 있는 거예요? 우리의 어디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건가요? '사랑'을 상징하는 선물은 선현님의 계시에 걸맞는 귀중한 물건이 아니었나요?


제로

그래서...그래서 저희를 떠나시는 거예요? 그런거죠? 그런거죠?


제로

만약…만약 우리가 잘못한 것이 있다면, 당신은 우리에게 우리가 고칠 수 있고, 우리가 다시 준비할 수 있다고 말씀해 주세요. 당신이 보시다시피 우리의 효율은 매우 높으며, 어떤 일도 할 수 있답니다! 지구 전체가, 이미 우리의 것이에요!


제로

당신의 길에는 더 이상 아무런 장애가 없습니다. 우리를 인도해 주세요…. 우리에게 계시를 줄 수 있는 것은… 당신뿐입니다…… 당신뿐이라구요….


새빨간 소녀가 그녀의 애원을 되풀이하자 나나미는 소녀에게 붙잡힌 손을 빼지 않고 담담하고 애처로운 목소리로 조용히 입을 열었다.



나나미

나나미의 친구들은...이미 원래의 모습이 아니야.


제로의 동작이 뚝 그치자 그녀는 뻣뻣하게 고개를 들어 사방을 바라보다가 그녀의 뒤에서 묵묵히 무릎을 꿇고 절하는 '톱니바퀴'들을 바라보았다.


제로

하지만...전 어떤 모습이어아 했나요?


제로

말씀하셨잖아요, 저는 당신의 '친구'라구요!


제로

저는 당신이 없는 세상을 상연할 수 없어요. 만약 당신이 없었다면, 저는... 느꼈을 거예요... 느꼈을...


입술이 갈라지고 눈동자가 떨렸지만, 그 순간 가슴이 끓고 타는 듯한 느낌을 표현할 단어를 찾지 못했다. 프로그래밍 오류일까? 아니면 그것이 진정한 사랑일까?


그녀가 나나미를 잡은 손이 점차 조여졌고, 그녀의 손바닥에서 강철이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나나미

제로, 날 보내줘.


나나미의 표정은 변함이 없었지만 나나미의 뒤에 대각선으로 서 있던 하카마가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 거의 미쳐버린 기계소녀에게 낫을 겨누었다.



하카마

놓으세요.


제로는 기괴한 각도로 천천히 고개를 돌리고 잠시 시선을 흔들다가 하카마에서 떨어지더니 낄낄거렸다.



제로

드디어 알았어…. 명령을 따르지 않는 놈들, 선현의 마음을 눈멀게 한 것은 바로 너희들이었어.


제로

너희들은 선현님의 영광을 독차지할 생각이었지? 아니면 선현님을 잘못된 길로 유인하고 싶었던 거야?


제로

오직 나만 알 수 있어...


제로

마지막 두 개의 가시를 잘라야 해... 진정한 선현의 귀환을 알리기 위해.


'톱니바퀴'는 제로의 명령과 함께 전투 준비 태세에 들어갔고 운명의 수레바퀴는 기계의 그림자 속에서 튀어나왔다.


운명의 수레바퀴

삑, 삐빅삐빅ㅡㅡ 배신자, 처단ㅡ!


나나미

파워!


소녀의 분노는 공기를 떨게 했고, 거대한 기갑은 하늘에서 떨어져 '톱니바퀴' 앞에 착지했다. 전기톱이 윙윙대며 빠르게 회전하는 날에서 밝은 불똥이 튀었다.


나나미의 눈도 눈부신 분노로 빛났고, 몸을 돌려 거대한 기갑을 타고 운명의 수레바퀴를 향해 질주했다.



나나미

바꿀 수 없는 미래라도, 난 결코...


나나미

그 누구라도 내 친구에게 상처를 주지 못하게 할거야!!




전투 개시




나나미

연결만 성공하면 나나미는 이 정보를 가지고 돌아가서 이곳을 구할 수 있어.



하카마

선현님, 여기는 저에게 맡기세요.


나나미

아니야, 친구들이 상처받는 것을 보고만 있지 않을 거야.


나나미

이 일만큼은, 나나미의 꺾을 수 없는 고집이야!







하카마

나나미님, 바닥에 흐르는 전류를 조심하세요!



스푸너

선현님...


나나미

알아! 이 정도밖에 안 돼? 나나미는 혼신의 힘을 다할 거야!



제로

아아… 선현님…. 우리의 '친구'를 왜 이렇게 대하시는 건가요...


제로

제가 당신의 '친구'가 되기엔 역부족이기 때문이었을까요...?


나나미

그만해, 모든 것을 여기서 멈춰.



전투 종료





제로

선현님, 선현님…. 제가 도대체 어떻게 해야 당신과 함께 계시의 길에 오르게 될 영광을 얻을 수 있는지 말씀해 주세요.


눈앞의 기계소녀는 잠꼬대처럼 나나미의 호칭을 외우고, 계단에 올라 마치 신의 뜻을 쫓는 길 잃은 신도처럼 광기어린 눈으로 바라보았다.


제로

선현님, 당신은 저를 치유하고 저의 '마음'을 비워냈습니다…저는 당신을 위해 장애물을 제거했습니다. 당신이 좋아하는 인간을 데려왔습니다. 당신은 부를 원해요? 지혜를 원해요? 저는 당신을 위해 저의 장검을, 천만번, 문제 없이, 휘두를 수 있어요. 선현님, 당신을 잃으면, 저는 녹슨 톱니바퀴처럼 되어버려요...


제로

운명의 수레바퀴를 바라보는 당신의 눈빛은 이토록 자비롭고 측은하네요, 선현님, 그런 눈길로 저를 봐주세요, 저를 좀 더 봐주세요!


제로

아…알겠습니다. 선현님, 이것이 바로 당신의 계시죠?


'제로'는 고개를 떨구고 깔깔대며 웃었다.


제로

설령 이 길이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길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선현님께서 선택하신 길이 맞겠죠?


제로

그럼 제로가 운명의 수레바퀴처럼 된다면...



제로

선현님께서 계시던 길의 디딤돌이 될 수 있어...!



하카마

나나미님 제로가 당신을 공격하려고 합니다!


난데없이 일어난 제로가 나나미를 향해 달려들었고, 하카마가 낫을 휘두르기 전에 나나미의 몸 밑에 있던 파워가 조건반사적으로 전기톱을 들어올렸다.


제로

어...


소녀의 가슴에서 부서진 붉은 하트가 반짝였고, 그 속에서 짙은 검은 액체가 계속 흘러나왔다.


제로

아아... 선현님...


그녀는 돌진하여 거대한 기갑의 손에 들린 무기에 자멸하듯이 부딪혔고, 순식간에 부서진 기계소녀는 꿈결 같은 행복한 표정으로 땅에 무릎을 꿇고 꿈처럼 중얼거렸다.


제로

제로는 무엇이 옳고 그른지 모르지만 오직 선현님의 계시만이 제로의 방향을 밝혀줄 수 있어요...


제로

선현님이 선택한 길 아래에 제로가 묻힌다는 것은, 곧 선현님의 손에 묻힌다는 뜻...



선-현..님....


반쯤 드러난 가슴뼈의 껍데기 아래 에너지 전달선이 몇 번 깜박이고, 계속해서 쏟아지는 티타늄 액체가 바닥의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으로 뚝뚝 떨어졌고, 기계소녀의 항상 깨끗하고 단정한 얼굴과 코팅은 검은 얼룩으로 덮혔다.


그녀는 12분의 경건함과 20분의 광기로 신선한 심장을 공주에게 바쳤다.



제로

사...랑...해...요...


소리가 일그러지기 시작하자 기계체의 오른손이 잠시 허공에 멈추었고, 마침내 미동도 하지 않았다.


'톱니바퀴'

...


어디서부터 시작되었을까ㅡ


'톱니바퀴'

....선현님을...위하여...


전자음이 섞인 주문 같은 속삭임이 고요했던 기계군단에 서서히 울려 퍼졌다.


'톱니바퀴'

....선현님을...위하여...계시의 길...헌신...


수면 위에 내려앉은 자갈로 인해 출렁이던 잔물결이 둥글게 흩어져 거친 파도가 되었다.


'톱니바퀴'

선현님의 계시의 길을 위하여 헌신하라ㅡㅡ 선현님의 계시의 길을 위하여 헌신하라ㅡ


경건한 구절을 외우며 기계들이 나나미를 향해 모여들었다.


스푸너

선현님, 그들은 통제력을 상실했습니다... 여기를 떠납시다!


하카마

아니...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 공격해야 합니다.


하카마는 낫을 휘둘며 나나미를 마주보았다.


하카마

포트를 탈환하세요.



전투는 혼란 속에서 시작되었고, 기계들은 나방이 불에 뛰어드는 것처럼 나나미를 쫓아갔다.


스푸너

제가 남아서 문을 막을 테니 당신들 먼저 가세요! 거기만 가면… 이긴 셈이죠?



나나미

그런데 여긴 문이 없는데...


스푸너

그럼 한 짝 만들죠.


스푸너

아우으으ㅡㅡ


스푸너는 짐승의 하울링을 내뱉었고, 그의 몸은 몇 번이나 부풀어올라 표면의 코팅이 부서질 때까지 모든 기계 부품들이 팽창헀다. 몸체 내부에서 용광로처럼 붉은 빛이 번쩍이며 작열하는 증기를 내뿜었다.


수인은 이미 자신을 완전히 불태워 광란의 '톱니바퀴'의 기계 눈 속에서 가장 밝은 존재가 되었다.


포트가 무엇인지 잘 알지 못하고, 나나미의 '구원'이 어떻게 도달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는 여전히 나나미의 추종자였다.


나나미

스푸너...


나나미는 파워를 조종해 수인 기계의 위치로 다가갔지만 수많은 소형 기계에 발목이 잡혔다.


온 힘을 다해 스푸너로부터 불과 몇 센티미터 떨어진 곳에 손을 뻗었지만 도저히 닿지 않았다.


스푸너는 마치 산처럼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다.


스푸너

하카마님!


딩ㅡ!


수인은 망치와 정을 꽉 잡고 힘껏 두드려 댔고, 그 소리는 종소리 같았다. 기계들이 이 힘에 이끌려 조수처럼 그의 몸뚱이로 밀려들어와 마치 철옹성을 물어뜯고 있는 것 같았다.



하카마

나나미님, 저를 따라오세요. 스푸너가 만든 기회를 낭비해선 안 됩니다.


하카마가 낫을 휘두를때마다 부서진 커다란 기계 조각이 날아갔다. 이런 돌격은 그녀의 몸에 계속 상처를 쌓아갔다.


딩ㅡㅡ!


또 한 번 망치를 치며 기계 선현의 충복을 다그쳤다.


하카마

스푸너가 쓰러지기 전에...해야 할 일을 하세요.


딩ㅡㅡ!


낫은 마치 초승달처럼 사방으로 차가운 빛을 뿜어내며 '성지'의 코어인 거대한 기계로 통하는 길을 훑어냈다.


딩ㅡㅡ!


하카마의 왼팔이 날아올라 순식간에 기계군에 압도되었다.


하카마

나나미님...


나나미

하카마!


친구의 이름을 부르짖으며 나나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오직 손을 앞으로 뻗어 포트와 연결된 케이블을 필사적으로 자신의 뒷목에 연결시키는 것뿐이다.

    

손상을 입은 기계체가 남은 팔로 무기를 받쳐 가슴에 가로놓았고, 하카마는 고개를 돌려 평생을 바쳐 따라다녔던 소녀에게 미소를 선물했다.



공간의 모든 소란과 혼란도 마지막 울음소리와 함께 사라지며 고요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