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미아는 모든 것을 떠올렸다.


그녀의 탄생, 그녀의 성장, 그녀는 이 바다 도시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모두가 원숭이를 보는 듯한 눈초리로 그녀를 훑어보며 비웃었다.


그녀는 항상 자신이 바보같다고 생각했고, 아틀란티스는 바보같은 사람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자, 라미아는 자신의 언행으로 주위로부터 미움을 살까봐 항상 두려워하고 조심스러운 성격을 갖게 되었다.


특히 라스트리스라는 여자에겐 더더욱.


그녀는 지금까지 자신에게 좋은 안색을 보인 적이 없다.


라미야는 강력하고 불가항력적인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 그녀와의 냉전이 오래 지속되었던 것을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었다.


라미아는 그날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경보음이 아틀란티스의 그날을 울렸다.


'퍼니싱'이라는 바이러스가 아틀란티스의 잠항 중에 폭발해 세계를 휩쓸었다.




전투 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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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 종료




식당 앞 복도에는 연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연구원들이 모여 길게 줄지어 섰다.


멀지 않은 곳에서 한 연구원은 뭔가 다른 생각이 난 듯 동료와 몇 마디 주고받다가 자리를 떴다.


긴 행렬이 천천히 앞으로 꿈틀거렸고, 그가 남긴 빈틈은 곧 사라질 것 같았다.



좌우로 바라보니 아무도 자그마한 자신을 눈치채지 못하는 것 같았다.


라미아는 망설임 없이 미꾸라지처럼 대열의 틈이 사라지기 전에 끼어들었다.


뒤에 키 큰 연구원이 마침내 여기에 아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그는 고개를 숙였고, 일 때문인지 라미아를 보았기 때문인지 몹시 피곤한 표정을 지었다.


연구원

너는… 의료부에서 키우고 있다던 그 소녀니? 그 사람들이 너에게 규칙을 가르쳐 주지 않았어?


라미아가 움츠러들었다.


바닷물보다 차갑고 얼음보다 단단한 규칙들을 그녀는 당연히 알고 있다.


라미아는 어깨를 움츠리고 자신을 더 약하게 보이기 위해 눈을 크게 뜨고 천진난만한 표정을 지었다.


이 수법은 전혀 쓸모가 없다ㅡㅡ아무래도 소용없다고 봐야 옳다. 도서관에서 본 책들에 따르면 인간에게는 '연민'이라는 감정이 있는데 여기서는 그런 감정이 거의 없는 것 같았다.


라미아는 안절부절못하며 연구원의 안경 뒤쪽 눈을 쳐다보았고 안경에 반사된 흰 빛은 무기질에 가까운 차가운 빛을 띠었다.


그는 마침내 다시 고개를 들고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그것은 동정적인 행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단순히 더 이상의 의사소통의 흥미를 잃었기 때문이었다.


라미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ㅡㅡ이렇게 하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행렬은 계속 앞으로 꿈틀거렸고, 다시 한참이 지나 마침내 새하얀 긴 테이블 앞에 이르렀다.


예전에는 이곳의 음식이 늘 넉넉해서 모두가 가져갈 수 있었고, 식당은 항상 잡담으로 가득 찼었다.


그러나 지금은 얼어붙은 듯 분위기가 무거웠고 긴 테이블 뒤에 보급부서원들이 줄지어 앉아 저마다 기록판을 들고 있었다 


이들의 뒤에는 총을 메고 질서 유지를 담당하는 행정부서 보안요원들이 있었다.


테이블 뒤의 보급부서원들은 자신은 신경도 쓰지 않고 손에 든 명부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보급부서원

이름?


라미아

라미아.


하지만 여전히 고개를 들지 않고 있다.


라미아

ㄹ...라...라미아.


보급부서원의 손가락이 명부를 따라 한참을 미끄러지다가 멈췄다.


보급부서원

일일 칼로리 할당량은 1164kcal, 이건 금일 배급 식량이야.


두 개의 막대 모양의 과자가 탁자 위에 놓여 있다.


보급부서원

다음 분.


라미아는 침을 꿀꺽 삼키며 용기를 냈다.


시도는 죄가 아니다. 실패는 용인될 수 있다.


라미아

부...부탁이...


보급부서원

뭔데?


라미아

그...과자 하나 더 주실 수 있나요? 저... 너무 배고파서...


보급부서원

안 돼. 배급량은 나이, 키, 체중, 일 평균 활동량에 따라 엄밀하게 계산한거고, 너에게 줄 수 있는 건 이게 전부야.


행정부서의 보안요원이 한 발짝 앞으로 다가섰다.


그들의 눈에 어린아이와 어른의 대우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보급부서원

보급 부서는 유통 기한 및 영양 성분 이외의 질문은 받지 않는다. 문제가 있으면 해당 관리 부서에 불만을 제기하고 즉시 자리를 떠나. 뒤에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잖아.


라미아는 손수건으로 과자 두 조각을 싸들고 식당을 나섰다.



퍼니싱 재난이 터지자마자 기지는 곧바로 배급 통제에 들어갔다.


처음엔, 배급 식량을 담은 바구니가 구내식당의 긴 탁자 위에 놓여 있었고, 그 안에는 통조림과 과자가 언덕처럼 쌓여 있었다.


이후, 바구니는 보급부서원들의 발치로 옮겨져 보급받을 때 목을 길게 빼야 겨우 볼 수 있었다.


지금, 바구니는 보이지 않는다. 식량은 아마 테이블 밑에 숨겨 두었을 것이다.


미래는?


책에서 말하길, 사람이 먹을 것이 없으면 굶어 죽는다고 했다.


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굶어 죽는 것을 기근이라고 한다.


기지에 기근이 발생하려는 것일까?


난 굶어 죽게 되는 걸까? ㅡㅡ 라미아는 생각했다.


그녀는 아직 바깥 세상을 본 적이 없다.


책에서 말하길, 바깥 세상은 아틀란티스보다 훨씬 크다고 한다.


책에서 말하길, 바다에는 끝이 있으며 바다의 끝을 육지라고 한다.


육지에 비하면 아틀란티스는 한 줌의 먼지에 불과하다고 한다.


육지에는 수많은 아틀란티스가 있는데, 안에는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고 한다.


육지의 지평선은 구불구불한데, 그곳에는 산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육지에는 온실 속 식물들이 덩어리를 모여 자라고 있는데, 그것들을 '숲'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육지에는 아틀란티스만큼 '규칙'이 많지 않다고 한다.


그곳에서는 아이가 울면 따뜻한 포옹과 부드러운 위로가 뒤따른다고 한다.



라미아는 침대에 웅크리고 잠자리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