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미아는 자신이 그들 가운데서 다른 부류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죽음, 고통, 굶주림, 그리고 모든 것을 두려워했다. 그녀는 시시각각 다양한 감정으로 가득 차 있었고 그들 속에서 그녀의 존재는 마치 다른 세계에서 온 외계인과 같았다.

모든 사람들이 그들처럼 냉혹하고 무자비했던 것일까, 아니면 단지 그녀가 너무 약했던 것일까?

이 생각은 자주 그녀의 마음에 얽혀 자신의 존재의 의미를 되묻게 만들었다.

의료부서장은 요즘 무언가를 쓰느라 정신이 없는 듯 책상 위에 참고 자료와 메모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라미아는 오랫동안 그가 자신을 돌봐 주었기 때문에 그에게 매우 깊은 인상을 받았었다.

'사육'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 수도 있다.

그의 눈에는 라미아가 하나의 파라미터의 집합체로 보일 수도 있다.

키, 체중, 혈압, 심박수, 폐활량, 기초대사. 이런 문제만 없다면 라미아에게 더 많은 정력을 쏟지 않았을 것이다.

라미아는 그의 앞에서 울고불고 했었다.

그의 반응은 오직 하나: 라미아의 심리 질환의 유무 판단이었다. 라미아가 짜증만 내는 것을 확인한 그는 망설임 없이 업무에 복귀했다.

지금 그는 책상에서 라미아가 이해할 수 없는 단어를 열심히 적어가고 있었다.

라미아

아저씨, 뭐 하세요?

의료부서장

일.

라미아

하지만…아저씨의 일은 환자를 치료하는 거 아니에요?

의료부서장

예전엔 그랬지, 지금은 일이 바꼈어.

라미아

일이 바뀌었다는게 뭐예요?

의료부서장

의료부서장은 이제 더 이상 없을 거야. 의약품 사용 지침을 적어서 동료들에게 남겨야 해.

라미아

무...무슨 뜻인지 모르겠어요.

의외로 상대방은 그녀의 무지함에 결코 짜증을 느끼지 않았다.

의료부서장

기지 배급제 하는 거 알지?

라미아

네.

의료부서장

식량이 곧 떨어질 거야.

라미아

그럼 어떡해요?

의료부서장

간단해, 소모를 줄이는 거야.

라미아

어, 어떻게 줄여요?

의료부서장

굶어 죽으면 돼.

라미아는 눈을 크게 떴다.

라미아

하, 하지만! 누구를 굶겨 죽인다는 거예요?

의료부서장

당장의 연구 진행의 중요성에 대해 직렬마다 우선 순위를 매긴단다.

의료부서장

행정부서가 가장 최우선이고, 보급부서, 의료부서 순으로 이어져.

라미아

아...아저씨도 굶어 죽는 거예요?

상대방의 말투에는 전혀 놀라움이 없었다.

의료부서장

당연하잖아. 나도 의료부서의 일원이니까 예외가 아니지.

라미아

...

의료부서장은 시종일관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라미아의 눈에는 딱딱하고 비인간적인 뒷모습만 보일 뿐 상대방이 이 대화를 위해 손을 멈추는 일은 없었다.

그러나 라미아는 이 모든 것이 더할 나위 없이 두렵게 느껴졌다.

그녀는 참지 못하고 목소리를 조금 높였다.

라미아

그럼 저는요?

의료부서장

뭐?

라미아

저...저도 굶어 죽는 건가요?

의료부서장

음, 넌 특수한 경우라서, 넌 편제상 어느 부서에도 속하지 않거든... 주무관님이 너를 따로 배치해줘야 하지만 넌 아무 쓸모도 없으니까 너무 늦게까지 남겨두진 않을 거야.

의료부서장

기왕 말을 꺼낸 김에 그 사람들이 널 어느 부서에 배치할 건지 물어보는 걸 도와줄 수는 있어.

라미아

저, 저...

눈물이 울컥 쏟아졌다.

흐느끼는 소리에 의료부서장이 고개를 돌렸다.

의료부서장

울고 있어?

언어와 성대는 더 이상 통제되지 않고, 목이 메는 것만이 유일한 반응이었다.

라미아

싫어...

라미아

싫어요....

라미아

라미아는 죽기 싫어요.

의료부서장

지금 이 꼴로는 제대로 된 의사소통을 할 수 없어.

의료부서장

가능한 한 빨리 감정을 수습해. 그 다음에 우리 다시 이야기하자.

그는 다시 자신의 일에 집중했다.

얼마가 지났는지 걷잡을 수 없는 감정의 고삐를 다시 붙잡고 간신히 이성이 돌아왔다.

라미아의 목은 잠겼고 눈도 약간 부었다.

소매는 이미 눈물과 콧물로 얼룩져 있었다.

울음소리가 멎자 의료부서장은 다시 돌아섰다.

의료부서장

이제 정상적으로 말할 수 있니? 예, 아니오로 대답해.

라미아

...네.

의료부서장

너는 왜 살고 싶어 하니?

라미아

살기 싫은게 비정상이잖아요!

라미아

당신들 모두 미쳤어요?!

의료부서장

감정을 표출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아. 내 질문을 이해하지 못했나보네. 다른 방법으로 질문할게.

의료부서장

너는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 있니?

라미아

...아뇨.

의료부서장

네가 없으면 해낼 수 없는 일이 있니?

라미아

아뇨...

의료부서장

그렇다면 너의 생존은 아무런 주체적, 수동적 필요성도 없어.

라미아

필요성이라는게 뭔데요? 그냥 라미아는 죽고 싶지 않다구요!

의료부서장

감정을 다스려.

라미아

제가 해야 할 일은 아무것도 없어요! 하지만 아직 하지 못한 일이 더 많아요!

라미아

전 육지에 가고 싶어요.

의료부서장

그 다음은? 그 다음은 무엇을 할 건데?

라미아

몰라요.

의료부서장

너는 심지어 가서 무엇을 할지도 모르는데 육지로 가고 싶은 거야?

라미아

하지만 저는 육지가 책에서 말한 것과 정말 같은지 궁금했어요.

라미아

산과 숲을 직접 보고 싶고, 모래와 흙을 밟아보고 싶고, 비 온 뒤 풀냄새를 맡아보고 싶고, 육지의 바람소리와 바닷바람이 어떻게 다른지 들어보고 싶어요.

의료부서장

견본실에는 모래자갈 견본도 있고 흙도 있어. 육지와 똑같은 모양으로 말이야.

라미아

아, 아니, 달라요.

의료부서장

이유는?

라미아

...이유는 말할 수 없지만, 다르게 생긴 것을 알고 있어요.

의료부서장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안경이 무기질의 하얀 차가운 빛을 반사하고 있다.

오랜 시간이 지나자 렌즈의 흰 빛이 마침내 몇 분간 누그러지는 것 같았다.

의료부서장

알았다. 이건 '호기심'이라는 거야.

의료부서장

아틀란티스에 합류하기 위해, 여기서 일하기 위해 난 많은 것을 포기했었어.

의료부서장

넌...묘하게도, 나에게 그런 것들을 생각나게 만들었구나.

라미아

...네?

의료부서장

살고 싶지?

라미아는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

의료부서장

그러면 너는 '쓸모'가 있어야 해. 이것은 아틀란티스의 규칙으로 여기서는 한가한 사람 따위 기르지 않거든.

라미아

라미아는 어떻게 하면 '쓸모'가 될 수 있어요?

의료부서장

서두르지 마. 네가 어떤 용도로 활용될 수 있는지 생각해 볼게.

의료부서장

...참, 하나 방법이 있긴 하지만 큰 모험이 될 수 있어.

라미아

저는 원해요.

의료부서장

먼저 내 말을 끝까지 들어.

의료부서장

바이러스가 폭발하기 전 과학이사회는 인간을 기계적으로 개조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었어.

의료부서장

비록 기술은 미숙하지만, 우리는 그 기술을 바탕으로 널 개조할 수 있어…. 생각해보렴, 너도 원래 하체가 없었잖아. 바다에서 장거리 이동을 하려면 해양에 적응할 수 있는 생체공학기술을 추가해 주는 게 좋겠어. 그러면 나가서 외부 정보를 수집해 줄 수 있을 테니까.

의료부서장

정보의 원천으로서 넌 살아갈 가치를 갖게 될 거야.

의료부서장

하지만 경고하지. 이론상 탄탈륨-193 코폴리머와 상성이 좋은 인간만이 오로지 개조를 받을 자격이 있어. 우리도 프로토타입 기술만 가지고 있고 그 이후에도 이런 기술이 반복적으로 활용되었는지 알 수 없어. 인간을 연구하고 변화시키는 것은 결국 우리의 일이 아니었으니까.

의료부서장

바깥 문명이 어떻게 됐는지 모르고, 인간을 개조한들 퍼니싱 바이러스의 감염에도 견딜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그래도 나갈 생각이니?

라미아

저는 원해요.

라미아는 상대방의 설명이 끝나기도 전에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