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음

삐빅, 삐삐삐ㅡㅡ


구조요청이 이렇게 빨리 나올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채 서둘러 통신시설 옆으로 돌아갔다.


녹색 표시등이 어둠 속에서 깜박이고, 장비에서 규칙적인 전자음이 길게 들려왔다. 순간적인 변화는 누군가 자신의 구조요청에 응답한 것이다.


상대방이 왜 직접 통화하지 않는지 알 수 없지만 전자음 주파수에 먼저 주의를 집중해 메시지 해독에 나섰다.


이 감옥 어딘가에 자신과 같은 처지의 사람이 있다는 것이고, 상대가 누군지도 모르고, 어떤 신분인지도 모르지만, 그때 자신은 마치 안개가 자욱한 바다에서 항해할 배를 찾듯이 그 방향으로 외롭게 항해하였다.


그러나 전자음의 순서와 내용이 일관성이 없었고, 머릿속에서 몇 가지 암호화 방식을 배제한 뒤 잠시 혼란에 빠졌다.


모스 암호나 폴리비우스 암호인 줄 알았지만 어떤 방법을 사용해도 풀린 정보의 의미를 알 수 없었고, 설명할 수 없는 친숙함이 연기에 얽힌 납처럼 머릿속에 맴돌아 좀처럼 명확하게 분간할 수 없었다.


전자음은 여전히 끈질기게 흘러나오고 있었고, 고요한 실내에서 또렷하게 생각하며 손끝으로 의식적으로 탁자 위를 가볍게 두드렸다.


두드리는 소리와 전자음의 삐삐 소리는 서로 뒤엉키고 손끝의 두드리는 소리는 절로 전자음의 리듬을 따라가는 앙상블의 북장단과 같았다.


잠깐...장단?


지휘관

설마...


만약 자신의 두드림이 드럼의 리듬이라면 전자음은 마치...


지휘관

선율인가.


가슴속에 맴돌던 단서에 불을 붙이듯 기억 속 어딘가가 쾅 하고 밝아졌다.


이것은 '포르트-다(Fort/da)'라는 황금시대 영화의 멜로디 테마다.


이 영화는 주인공이 누명을 쓰고 옥고를 치른 뒤 어느 날 작업 중 실타래의 배치 순서가 수상하다는 것을 깨닫고, 얼굴도 모르는 또 다른 수감자가 남긴 메시지를 읽고 정보를 주고받으며 호흡을 맞춰 탈옥에 성공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두 사람이 서로 노역 시간이 다른 별도의 감방에서 여러 가지 간접적인 방법으로 연락을 주고받는다는 이야기다.


이 멜로디는 영화 속 두 주인공의 첫 공식적인 '만남'에 처음으로 등장했다. 한 달 만에 합류의 최적 시간과 장소를 정하고 교도소 모처에서 5분간의 아무도 모르게 교류할 수 있는 시간을 얻는 데 성공하면서 본격적인 탈옥을 계획하게 된다.


그렇다면 상대방이 이 음악을 통해 자신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일까.


잠시 생각하다가 단서를 '장소'에 집중했는데, 이 멜로디가 나오는 장면 역시 영화를 관통하는 중요한 지점이다.


지휘관

...빨래방.


상대방이 자기에게 알리려 했던 내용이 이것일까?


이런 의문을 품고 다시 단말기에 손을 얹고 뇌 속 깊은 기억을 따라가며 또 다른 메시지를 보냈다.


내용은 아까의 도움말에 대한 요구가 아닌, 그 선율에 이은 또 다른 소절이다.


세 번 반복해서 보내자 장비에서 들려오는 전자음이 뚝 그쳤다.


침묵이 채 10초도 지나지 않아 전자음이 다시 울렸다.


세 번 짧게, 세 번 길게, 세 번 짧게.


이번에는 상대방이 표현하려는 뜻을 분명히 깨달았다.


지휘관

구조 요청이다.


이 교도소에는 자신과 같이 갇혀 있는 사람이 있고, 어떤 이유로 음성 메시지를 내지 못하거나, 심지어 움직일 수 없는 상태가 될 수도 있어 통신으로 자신의 위치를 알린다.


이것은 자신의 추측일 뿐, 또 다른 함정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지만, 현재 얻은 메시지는 충분히 유효하다.


상대방이 왜 이렇게 은밀한 방식으로 자신의 위치를 암시하는가 하는 의문은 풀리지 않았다.


하지만 여기에 머물면 아무런 답도 얻을 수 없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할 수 있는 기회를 잡는 것뿐이다.


지휘관

우선 동선을 짜야 해.


지도를 통해 빨래방의 위치를 확인했더니 오래된 교도소에는 빨래방이 하나뿐이었으며, 두 건물이 연결돼 있었다.


임무 시작 전 반복적으로 확인했던 감염체 신호 분포도와 앞의 평면도를 머릿속에 겹쳐 가장 안전한 진로를 설계했다.


자신은 감염도가 낮은 A구역에 있었는데 감염도가 높은 B구역이 빨래방으로 연결돼 있었고, 지도를 보면 A구역 교도관 사무실이 빨래방에 붙어 있었다.


보아하니 구조 요청은 여기서 나온 것 같다.



롤랑의 예상과는 다른 전개라고밖에 할 수 없었다.


자신의 진의를 읽은 메시지라니, 상대방이 똑같은 형태로 응수한다는 예상 밖의 우연의 일치에 롤랑은 잠시 어리둥절했다.


적어도 즐기는 마음으로 그 선율을 두드릴 때는 그런 상황을 전혀 생각하지 못했고, 누군가의 응답도 전혀 기대하지 않았다.


다만 그 냉철하기 짝이 없는 구조 요청자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자신의 혼잡 코드를 듣고 어떤 혼란을 겪고 어떤 행동을 하게 될지 궁금했을 뿐이었다.


지금 혼란에 빠진 것은 마치 자신인 것 같았다.


'목표지점으로 가고 있다.'


상대방은 이 메시지를 남긴 뒤 아무런 통신도 하지 않아 발신지를 떠난 것처럼 보였다.


...이쪽으로 올까? 아니면 무시한 채 그냥 떠나갈 것인가?


정말 그 누군가는 위기가 도사리고 있는 폐교도소를 지나 정체불명의 한 사람의 구조신호에 응할 것인가?


롤랑

...


아닐 것이다.


의문이 생긴 순간 롤랑은 이 답을 내놓았다.


그런 사람은 있을 수 없다.


하지만……방금 통신에서 흘러나온 전자음은 롤랑에게 한순간 '경탄'에 가까운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그가 이런 느낌을 얼마나 오랫동안 느끼지 못했는지 하늘이 알 것이다.


롤랑

...기대하는 건가?


자신이 지금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지, 무엇이 다른 결과가 나올지 그 자신도 알 수 없다.


그도 수없이 기대했지만 그때마다 결과는 절망으로 끝났었다.


그에게 '기대'는 그 자체로 가혹한 징벌이며 머리 위에 매달린 다모클레스의 검이었다.


ㅡㅡ비겁한 기원으로는 자신을 구할 수 없었고, 겪은 시련도 자신을 구할 수 없었다.


이것이야말로 그가 처한 현실이었다.


롤랑

하, 기대라.


롤랑

...


롤랑

...만약, 기다려 본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