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ㅡ보육 구역에서 0.4km 떨어진 거리.


안전구역의 대략적인 범위를 파악한 후, 2시간 동안 혼자 나무 사이를 거닐었다.


보육구역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밤이 지나고 해가 떠도 살아남은 사람들은 움츠러들어 가능한 한 구석진 곳으로 몸을 숨긴다.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르는 의미를 구하기 위해 이 땅 위에 남은 사람들은 고독한 무덤을 얼마나 더 파야 할까?'


마치 이 말을 뒷받침하기 위한 듯, 눈 앞에는 작은 말뚝들로 끝없이 가득 찼다.


언덕을 올라간 뒤에야 낯익은 그 모습을 다시 볼 수 있었다.



구름으로 가려지지 않은 밤하늘이 유난히 화려하다.


사람들은 공중정원에서 여태 바라봤던 모습보다 더 많은 그리움을 여기에 담아두었다.


설령 이미 우주로 날아갈 수 있다고 하더라도 버릴 수 없는 것들이 있다.



별빛에 잠긴 그녀도 마찬가지일까?


하카마의 곁에 가만히 서서 그녀와 함께 고개를 들고 이 세상 한구석에서 바라볼 수 있는 별들의 모습을 조망했다.


시간의 감각이 흐려지면서 하카마는 바람에 흐트러진 머리 끝을 정리했다.


하카마

지상에서 먼 별을 바라보는 일은 거의 없습니까?


지휘관

좀처럼 기회가 없었는데… 하카마는?


하카마

야간 행동을 선호하기 때문에 그때는 먼 하늘의 별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하카마

하늘은 고요해 저장된 정보와 사고 기록을 정리하기에 안성맞춤입니다.


지휘관

그리고 걱정을 잠시나마 날려버릴 수 있지.


하카마

걱정...


하카마

당신도 베란다에 나가 바람을 쐬야 합니까?


지휘관

언덕이 좀 더 어울릴 것 같다는 말을 했던 기억이 나.


작은 언덕은 이 발 아래에 있다. 추위와 저녁 바람이 집중되는 곳이다.


하카마

저의 실험 결과 분석에 의하면 당신이 제공한 장소는 전제조건이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지휘관

어떤 조건?



하카마

지역 조건, 공기 상태, 그리고...당신.


지휘관

나? 나는 왜?


하카마

...


하카마

데이터로 미루어 당신의 체온은 미세하게 지속적으로 저하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지휘관

밤이니까 그렇지. 그런데 이 둘 사이에 무슨 연관이 있다는 거야?


하카마

저는 체온을 어떤 구간에서도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습니다.


하카마

난로의 효과와 유사한 도움을 줄 수 있죠.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하카마는 가까이 다가가서 자신의 팔을 잡았다.


난류가 계속 번져 그녀의 말대로 온기가 두 사람 사이를 가득 채웠다.


하카마

인간의 손은 역시 부드럽군요.


군인으로서 이 말의 화자가 다른 이였다면 상대방이 도발할 의도가 있는지 고민했을 것이다.


하카마

격세유전의 영향은 예상보다 미미하고 털은 보송보송한 느낌이 부족합니다.


지휘관

참 미안하게 됐네.


하카마

사과할 필요 없습니다. 이것 또한 어쩔 수 없는 부분입니다.


하카마

물론 인류의 다양성을 확보하는 관점에서 보면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그리고 다음 순간, 하카마는 자신도 모르게 소매 한 귀퉁이를 걷어붙이고 안쪽의 붕대를 드러냈다.


하카마

정확한 추측, 새로운 상처.


지휘관

괜찮아. 작은 상처일 뿐이고 내가 처리했어.


하카마

다시 한 번 전신을 검사합니다.


지휘관

잠깐잠깐, 그렇게 번거롭게 굴지 마.


하카마

인간의 몸은 매우 약해서 저는 100%의 확신이 필요합니다.


지휘관

상처는 이것뿐이야, 내가 너에게 약속할게.


지휘관

그나저나 어떻게 발견했어?


하카마

과거 기록에 비해 당신의 손목 회전 속도가 약간 이상했습니다.


하카마

당신에 대한 모든 것을 별도로 파티션을 만들어 저장했습니다. 숨기려 하지 마세요.


지휘관

...


지휘관

보육구역 사람들의 감정이 좀 격해져서 작은 충돌이 불가피했어.


하카마

상황이 그렇게까지 악화되었습니까?


지휘관

전혀 낙관적이지 않아...


복잡하게 뒤엉킨 불행은 이 보육시설에 수없이 많다.


그러나 기적이 일어나든 안 일어나든 누군가 나서야 한다. 사방에서 밀려오는 날카로운 가시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무언가를 잡기를 시도한다.


지휘관

...


너무 오래 걸어온 탓인지, 자신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손끝을 토양에 박고 그 일부를 손에 꼭 쥐었다.


자신 앞에 다른 것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지휘관

도화지?


고개를 들자 하카마는 기대에 찬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지휘관

내 걱정은 안해도 돼, 하카마.


지휘관

그냥 푸념에 불과하니까.


하카마는 고개만 끄덕이고는 곧이어 화필을 내밀었다.


그리고 자기 옆에 앉아 그림책을 펼쳐보았다.


힐끗 쳐다보니 그녀는 밤하늘의 색깔을 메우고 있는 것 같았다.


자신도 붓을 놀려 보았지만 이내 그 조급한 손짓을 돌이킬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붓으로 그린 선이 서로 한데 뒤엉키면서 그만 엉망이 되어버렸다.


'왜 이곳을 떠나지 않는 거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르는 의미를 구하기 위해 이 땅 위에 남은 사람들은 고독한 무덤을 얼마나 더 파야 할까?'


...



지휘관

하카마.


하카마

네.


지휘관

우리가 지구를 떠난다고 가정한다면...


지휘관

어떻게 될까?


하카마

처음에는 힘들 것입니다.


하카마

불확실한 운항일을 전제로 한다면 우선 해야 할 일은 남은 인류를 대량으로 개조하는 것입니다.


하카마

인류 내부의 통합은 공중 정원이 직면해야 할 첫 번째 난관이 될 것입니다.


추론의 결과는 냉정했지만, 사실에 가까웠다.


하지만 자신이 듣고 싶은 내용은 아니었다.


하카마

다음은 정착할 별을 찾는 것입니다.


하카마

다른 지성체의 문명과 접촉할 확률도 고려해야 합니다.


하카마

낯선 별의 환경은 인류 문명을 전혀 다른 미래로 이끌지도 모릅니다.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은 적어도 공상 이야기와 비교했을 때 지루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미지에 대한 하카마의 향수는 어쩌면 그녀 자신도 모르게 별하늘을 좋아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지구상의 신비는 이미 황금시대에 의해 허무하게 사라졌다. 그것은 지표면에서 가장 부유한 시대이자 가장 척박한 시대였다.


모든 것을 망라한 데이터베이스로 하카마는 마치 신화 속의 신이 자신의 작품을 서성거리듯 비밀이 없는 대지를 거닐었다.


변수를 상실하고 무료해지자 하품을 하고 싶어졌다.


그들이 걸음을 멈추고 지켜볼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은 어쩌면 인간뿐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무수한 미지의 세계를 품고 있는, 신의 손길조차 닿지 않는 먼 하늘의 별까지.



지휘관

지구는?


하카마

네?


지휘관

우리가 정말 이대로 떠나도 되는 걸까…… 지구는 또 어떻게 될까?


하카마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담담하게 대답했다.


하카마

제 생각엔 아마 웃으며 우리를 배웅해 줄 것 같습니다.


하카마

어머니가 성장한 아이를 대하듯이.


슬픔이 아닌, 평온함, 소망, 별빛에 부드럽게 녹아 있는 얼굴만이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희미한 아치가 하카마의 얼굴에 살며시 올라왔다.


지휘관

아쉬워하지 않을까? 인류는 모든 것을 버리게 될 거야.



하카마

하지만 기억, 희망, 그리고...


하카마

기적을 데리고 갈 수 있습니다.


하카마

저는 그것이면 충분하다고 간주합니다. 네,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하카마

지나간 길을 잃어버렸다고 해서 망연자실하지 마세요.


하카마

그것이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일지라도, 같은 별하늘에 있는 한 언젠가는 다시 만나게 될 것입니다.


저녁 바람이 모래언덕을 스치며 소녀의 웃음을 가슴 깊이 기억 속에 박아 놓았다.


기적. 허무맹랑해 보이지만 인류가 평생 추구해 온 미망이었다.


가장 어두운 밤에도 사람들은 별이 있는 곳을 찾을 것이다.


지휘관

응?


지휘관

하카마는 별하늘 다 그렸어?


곁눈질로 바탕색의 변화를 눈치챈 후, 참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 보았다.


그러나 하카마는 종이책을 바로 덮었다.


하카마

일기, 프라이버시입니다. 알아보는 것을 권하지 않습니다.


지휘관

미안...


하카마

...


잠시 생각에 잠겼을 때 심란하게 그린 낙서가 하카마의 관심을 끌었는 듯 하다. 다음 페이지로 넘겨버리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


하카마

실례지만


지휘관

응?


하카마

당신도 일기를 기록하고 있습니까?


지휘관

아니.


기다렸다는 듯 하카마는 그 틈을 타 기습 공격을 감행하고 몸을 기울여 자신의 앞을 빼앗은 다음, 하얀 모자가 시선을 반쯤 덮은 자신의 '그림'이 그녀의 눈에 고스란히 들어왔다.


하카마

당신...의외군요, 후반격시대의 초현실주의적 추상파였습니까?


지휘관

아무 생각 없이 써갈긴 결과물을 작품으로 생각하지 말아줘...


얼른 다음 페이지로 넘겼다. 그 도화지가 자신의 것이었다면 들고 있던 알루미늄 수류탄을 곧바로 사용했을 것이다.


지휘관

그럼 공평하게 나도 네 작품을 한 번 볼게.


하카마는 잠시 말이 없다가 종이책을 천천히 펴서 반쪽을 강제로 이쪽으로 밀어넣은 뒤, 아래쪽은 숨기고 맨 위쪽 페이지만 보이게 했다.


예술협회가 한 번쯤은 달려들 만한 훌륭한 그림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더 나아가서, 어찌 보면 공중정원에 소장돼 있는 그림들과는 다른 독특한 성향을 지녔다.


지휘관

이거 엄청 잘 그린 거 같은데?


지휘관

왜 숨기는 거야?


됐다, 그래도 성과가 있는 작품이란 것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한다. 적어도 그럴듯한 작품이니까.


그래서 자신은 도화지에 무언가를 남기고 싶어 머리를 쥐어 짜내기 시작했다.


하카마

...


종이책 다음 페이지에 숨겨져 있던 스케치 작품은 사실 아주 평범했다.


그것은 단지 한 명의 인간이었고, 영원히 마르지 않을 것 같은 부드러운 웃음과 함께 거울 속의 형상처럼 또렷했다.



시간은 이렇게 조용히 흘러가고...


첫 햇살이 하늘에 닿아 밤의 끝을 알렸다.



하카마와의 작별인사를 마친 후 자신은 공중정원까지 돌아와 장기간 대기에 들어갔다.


기나긴 구호 임무의 종료는 참여자들이 곧 엄청난 양의 업무 보고를 받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발단 … 견해 … 총결산. 좋다, 다 작성하고 나면 결국 장부에 기재된 보고서를 깨끗이 치울 수 있을 것이다.


뻐근한 어깨를 움직여 개인 단말기를 끄고 의자를 밀치고 일어섰다.


한가한 시간, 눈앞의 우주는 언제나 그날 밤을 떠올리게 한다.


하카마는 이때 뭐하고 있었지? 아직도 위험한 곳을 어슬렁거리고 있을까? 아니면 훌륭한 관람 지점을 찾아 공중정원이 있는 곳을 바라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폭풍우가 다가오고 있다. 지금은 가장 고요한, 폭풍전야다.



루시아

지휘관님 수송부대는 이미 출발 준비를 마쳤습니다.


얼마 전 정비한 권총을 꺼내 총 커버에 꽂고 개인 단말기를 품에 안았다.


옷자락을 흔들어 군복을 가다듬은 뒤 자신을 향해 손짓하고 있는 그레이 레이븐 소대를 향해 걸어갔다.


지휘관

(다시 만날 수 있다면...)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할 때의 약속이 머리에 떠올랐다.


지휘관

하카마...


지휘관

절대로 이 폭풍에 휘말리면 안 돼.



지상에서 소녀는 별을 바라보는 시선을 거두어 그만큼 중요한 것을 향해 옮겼다.



그녀는 마음속으로 모습을 다시 그려내는 것보다 초상화를 펼쳐 윤곽선을 부드럽게 터치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


하지만 종이 문제는 해결이 어려웠다. 자주 접고 피다보니 아래쪽이 꼬깃꼬깃해졌다.


호수 같은 눈동자는 가끔 주위를 훑어본다.


비록 찾지 못하더라도 좌절하지 않는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서서히 기대가 쌓이기 때문이다.


별빛을 거닐며 하카마는 만화 속 마법사처럼 그녀만의 주문을 외우고 있다:


같은 별하늘 아래서 우리는 서로 만나 알아가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