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함부로 뛰어다니지 마...


???

계속 막 뛰어다니면 걱정되잖아.


여자아이들의 떠드는 소리가 숲속의 오솔길에 메아리쳤다. 존재하지 않는 햇살이 마른 가장자리를 지나 새어나와 벽돌길에 서 있는 자신의 뺨은 뜨거워지는 반면 하반신은 음산한 호수에 잠긴 듯 서늘하다.


???

이리 와...


두 개의 희미한 그림자가 앞뒤로 쫓고 쫓기더니 그 중 하나가 몸을 돌려 손짓을 했다.


???

내 손을 잡아.


21호가 쫓아가자 그 희미한 그림자는 다시 오솔길 끝으로 사라지고 여운만이 남았다.


21호는 빠른 발걸음으로 그림자가 간간히 출현할 때마다 스쳐 지나가는 그 존재를 정확히 포착하고 추적했다.


또 하나의 허황된 광경... 자신은 마치 꿈속에 빠진 듯 몸을 떨었다. 눈앞의 광경은 양지 바른 모습으로 되돌아갔고, 또 다시 한순간에 사라졌다.


어색한 감정이 심장을 쥐어짜내고, 링크 장치 아래서 땀이 볼을 타고 끊임없이 흘러내렸다. 공중정원에 있는 것인지, 쿠로노의 감금실에 있는 것인지, 아니면 썩은 냄새가 나는 이 땅에 자신이 확실히 발을 들인 것인지 분간할 수 없는 순간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이 반복되는 괴롭힘 속에서 하마터면 길을 잃을 뻔했지만, 하얀 구조체는 끊임없이 움직이며 이 모든 것이 진실임을 일깨워 주었다.


빛은 구름에 가려 더욱 어두워졌고, 공기와 먼지는 폭풍의 흐름에 섞여 회색의 파도가 우르릉거리는 것 같았다.



그 소녀가 마지막으로 사라진 뒤 주위를 둘러보았고, 21호는 녹슨 커다란 철문 앞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밤바람이 휘몰아치자 머리 위로 기괴한 빛이 투영되어 철제 난간 안의 거대한 집의 그림자가 21호의 몸을 감쌌다.


그 괴이한 빛의 원천을 바라보니 훤히 떠있는 보름달이 있었다. 달빛이 지붕에서 벽모퉁이의 틈으로 휘어져 집 밖의 잔해들을 가득 삼켜버렸다.



전투 개시



21호

들어갈까?



멀지 않은 곳에서 폭발음이 들려왔다



21호

터지는 소리...


21호

여기도 뭔가 익숙한 느낌이 들어...


21호

우선 근처를 조사하자.


21호

문, 열 수 없어.



21호

앞쪽 벽이 부서졌어. 방금 폭발음 때문일까?


21호

입구 발견.


21호

이게 뭐야...? 21호, 모르겠어.


21호

21호, 마당에서 특이한 색깔 발견.


기괴한 인형?

히히, 히히히ㅡㅡ


기괴한 인형?

늦게 돌아온 어린 아이 하나가 집-안에 못 돌아가고 있구나... 걱정 마, 안나가 답을 알알알알-려-줄-게.


21호

이 널빤지 앞에 네 개의 등불이 있어. 그 중에 하나는 특히 밝아.



기괴한 인형?

고대 신의 눈내리는 밤은 바다로 흐르듯 흘러들어가


기괴한 인형?

반역의 운명 앞에 붉은 달이 떠오른다


기괴한 인형?

외쳐라, 압제자는 지옥으로 떨어졌도다


기괴한 인형?

제사의 으로부터 새로운 장을 읊어내린다



착한-아이, 어떤-도움-이 필요하니?

(수수께끼의 정답은 옵션 순서와 관련이 없으며, 해당 대화를 절대 건너뛰지 마십시오)


(1-왼쪽) 고대 신의 눈내리는 밤은 바다로 물 흐르듯 흘러들어가 ← 선택



21호

이 기호는 무슨 뜻이야?


21호

마치 보는 각도에 따라 기호가 달라지는 것 같은데...


(2-오른쪽) 반역의 운명 앞에 붉은 달이 떠오른다 ← 선택


21호

나무 패에 이상한 그림이 그려져 있어.


21호

두 번째 등불만 빛나고 있을까?



(3-위쪽) 외쳐라, 압제자는 지옥으로 떨어졌도다 ← 선택



21호

분수 위에 빨간 그림이 있어...


21호

이 분수는 왜 몇 마디로 구분되어 있지?[3 분수] 이것도 답일까?



(4-아래쪽) 제사의 입으로부터 새로운 장을 읊어내린다 ← 선택



21호

F...4?


21호

네 번째는 F라는 거야?



21호

열렸다!



전투 종료




자물쇠가 맑은 스프링 튕기는 소리를 내며 서서히 문이 열렸다.



시선 속 광경이 일그러지면서 꿈결 같은 장면이 눈앞에 펼쳐졌다.


거실은 말끔했고 창문 밖으로 햇살이 쏟아져 들어왔으며, 빵 굽는 냄새가 공기 중에 은은히 퍼졌다. 미세한 먼지가 투명한 햇빛 속에서 빙빙 돌며 올라갔다.


여자아이들의 장난치는 소리가 방 깊숙한 곳에서 흘러나오는데, 모든 것이 상냥하고 아름다웠다.


눈앞의 너무나 기이한 광경에 잠시 정신을 차릴 수 없었지만, 자신에게 일어난 사실적인 기억의 감촉은 아무래도 틀리지 않았다.



이 같은 공감은 자신과 완전히 동기화된 21호에게 전달됐다. 그녀의 호흡은 거의 정체되어 있었고, 자신의 뜨거운 의식의 바다에서 타는 듯한 작열과 막막함을 느꼈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저절로 거실에 들어섰다.



ㅡㅡ


그녀의 발걸음이 막 문턱을 넘은 바로 그 순간, 모든 것이 사라졌다.


햇빛도 없고, 정갈한 거실도 없고, 여자아이들이 장난치는 소리도 없다. 이 눈앞에 있는 것은 단지....허물어진 벽이었다.


21호는 망연자실하며 현관으로 들어섰다.



21호

아까 그건 뭐야?


21호

향기롭고 냄새가 풍부하고 엄청 따스했어.


21호가 거실을 둘러보니 가장 가까운 테이블에 놓인 액자가 눈에 들어왔다.



시간은 목조 액자에 깊은 흔적을 남겼고 깨진 유리 균열이 사진의 얼굴을 종횡무진했다. 시선은 허공에 떠도는 먼지를 넘고 험상궂은 유리 틈새를 넘어 오래전의 세월로 향했고, 자신은 누런 사진의 내용이 무엇인지 알아차렸다.


또 다른 의식의 바다에서 그들을 본 적이 있다.


뒤죽박죽인 추측을 머릿속에서 헤집고 다니며 답을 잡아내려고 애썼지만 헛수고였다.


기억... 이것은 루나의 기억이다.


모든 해답이 머릿속에서 뛰쳐나올 것만 같았다.


루나의 기억은 자신의 머리 속에 있었다ㅡㅡ



화서?

파오스의 창 시스템을 통해 지휘관의 마인드 링크에 침입하고 있습니다. 역방향 제어가 시작되었습니다.



루나?

여기는 승격 네트워크에 가장 가까운 곳이야. 이곳에 인간의 의식따위가 존재할 자격은 없어.



아시모프?

기억 재연이 이루어지는 동안 넌 기억의 나선 속으로 완전히 끌려 들어가 과다한 정보에 매몰되어 자신의 몸조차 가눌 수 없어 주위에 일어나는 모든 것을 온전히 감지할 수 없게 될 거야.


아시모프?

한 마디로 넌 아무런 예고 없이 너저분한 추억에 빠지게 될 거야.


아시모프?

너가 잊고 있던... 혹은 평소에 소홀이 했던... 그리고 네가 생각하기에... 중요하지 않았던 과거들...


아시모프?

너에게 잊혀진... 중요하지 않았던 과거가ㅡㅡ



광기, 증오, 파괴욕구...중합포식체(취서체)의 사고 오염ㅡㅡ그리고 동시에 뇌리에 스며드는ㅡㅡ루나의 그리움에서 비롯된 것들.



아시모프?

대량의 기억 파편들이 너의 의식에서 재연될 거야.


'재연될 거야.'


'재연될 거야. 재연될 거야. 재연될 거야. 재연될 거야. 재연될 거야. 재연될 거야.'


'재연될거야재연될거야재연될거야재연될거야재재재재재재재재재연연연연연연될될될될될될거거거거거거야야야야야야야'



루나?

이것은 승격 네트워크의 의지...


루나?

그리고 나의 운명이야.


여러 개의 얼굴이 머릿속에서 빠르고 광적으로 뒤엉키고, 전환되고, 다가온다. 벌려진 입술은 자신도 거의 이해할 수 없는 말을 연신 내뱉는다.


대량의 소리와 장면은 홍수처럼 머리 속으로 밀려들고 자신은 기억의 홍수 속에 떠내려갔다. 검은 사해에 떠내려가 물결치는 듯 헛된 손짓을 하며 허공을 힘없이 잡는다.



루시아?

루나...


어둠의 침식은 점점 빨라졌고, 허공에 남아있는 유일한 광점은 끊임없이 수축된다ㅡㅡ


???

언....언니...


의식이 극심한 통증에 이끌려 현실로 돌아오는 순간 눈앞에 보이는 것은 중합포식체, 빈사 상태의 루나, 루시아, 아시모프도 아니었다.


잿빛 눈동자를 한 형상만 지척에 있을 뿐이다.



21호

...너 미쳐가고 있어, 정신사나워, 불쾌해.


21호는 손에 들고 있던 유리조각을 치우고 바닥에 흘러내린 순환액을 대충 닦아내자 그녀의 그림자도 그녀의 움직임에 따라 일그러지고 사라졌다.


그제서야 사태의 전모를 똑똑히 알아차린 21호는 날카로운 기구로 자기 자신을 찔렀고 그녀의 소매 끝에서 순환액이 뚝뚝 떨어졌다.


21호

아프면, 깨어나게 할 수 있어.


지휘관

...미안.


21호?

미안?


그녀는 이 단어가 지금 이 순간에 입 밖으로 나온 의미를 모르겠다는 듯 이 단어를 한 번 더 반복했다.


지휘관

(너로 하여금 어쩔 수 없이 자신에게 상처를 주는 방식을 택하게 해서 미안해.)

(작전 중에 추태를 부려서 미안해.)


21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녀의 상처는 보이지 않지만 순환액이 빠져나가는 속도로 보아 결코 가벼운 상처는 아니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런 고통이 그녀에게 말할 가치가 없다는 듯이 여전히 차분한 태도를 유지했다.


21호

21호 전투 지장 없음.


21호

사진, 아는 사람이야?


21호

그녀들이 여기로 오라고 한 거야?


21호

나 이제 뭐 해야 돼?



레베카

보아하니 특수한 단서를 찾아낸 모양이군요? 당신이 임무 좌표와 무관하게 한동안 머무르는 모습을 지켜봤습니다.


레베카

문제를 해결한 후 단서가 발견된 지점으로 돌아가 단서 탐색을 계속하세요.


쿠로노의 애매모호하고 기괴한 태도의 진실은 지금 이 순간에도 확연히 드러난다. 그때부터 '단서'가 가리킨 것은 더 이상 어떤 의식의 바다의 이상 파동이나 제3자가 남긴 표시가 아니었다.


눈 앞의 모든 것이 빛바랜 암흑과 선명한 빛이 교차하고 있었다.


지휘관

(...이게 너희들이 보고 싶었던 건가?)

(이렇게 된 이상... 그럼 너희들이 무엇을 준비했는지 보여줘.)


이곳은 루나가 인간이던 시절, 퍼니싱이 이 별에 오기 전까지 살았던 곳이다.



지휘관

조사를 진행해.



21호

그게 임무야?


지휘관

맞아.


21호

21호, 알았어. 【지휘관 이름】의 임무.


지휘관

준비됐어?


21호

...응.


가슴 속의 인공 심장이 박동하는 빈도는 수천 킬로미터를 넘는 거리에 있는 공중 정원에서의 자신의 심장 박동이 신기하게 겹쳐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