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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로운 자, 이스마엘이라 불리는 기체는 중요 분기점마다 등장하여 주인공 일행에게 도움을 주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 같은 존재인데, 얘 역시 의문스러운 점이 한두가지가 아님. 대행자의 신분이니까 당연히 승격자 거점에서 출몰하는 건 당연하지만 공중정원에서도 감사원 소속으로 머무르는가 하면 과학이사회의 연구소에서도 모습을 비추기까지 하니까



4. 오버테크놀로지?


표면상으로는 승격 네트워크의 대행자로 잘 알려져 있지만 작중 행보를 보면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세레나한테 그 자리에서 기체를 뚝딱 만들어 낸다든지, 두부외상 당하고 공중정원의 생명의 별도 어떻게 치료할 방법을 찾지 못해 3달 동안 의식없이 지냈던 지휘관의 의식에 침입해 단번에 아무 후유증없이 깨운다든지, 이런 것은 단순 대행자 능력 이상의 행위라고 밖에 볼 수 없음. 대행자가 아무리 승격 네트워크빨로 강해지더라도 결국 근본은 구조체고, 승격자 중에서 승격 네트워크의 권한을 부여할 수 있는 개체에 불과하기 때문임.


그리고



본·네거트

하지만 선배 중 하나로서, 승격 네트워크 진화 보조 외에도, 그녀는 우릴 대신하여 인류의 화력을 유인해, 이후의 대행자가 그들의 시선 밖에 숨게 해주었습니다.


*시선수롱 14-8 中



만약 대행자가 우리가 알고 있는 세 명 이외에 더 있는게 아니라면 자비로운 자는 이 둘보다 나중에 등장한 대행자임. 그리고 14장 히든에서 자비로운 자가 처음으로 전면에 등장하는 걸 고려해볼 때 여기서 말하는 '이후의 대행자'는 자비로운 자일 확률이 매우 높다고 본다


즉, 대행자의 권한을 가진 건 맞지만 어쩌면 그 이상의 존재이며, 어떤 필요에 의해 승격자 무리 사이에서 나중에 공식적으로 대행자를 자처하고 나섰을 가능성이 높음


쉽게말해 대행자 신분조차 자신의 본래 정체를 숨기는 허울일 것이다






5. 미래를 알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미래'란 단순히 승격 네트워크가 승격자들에게 전수한 지식 그 이상의 디테일함임




이스마엘

뭐 도와줄까?


이렇게 질문을 했지만, 상대방은 나나미의 방문을 예견한 듯 그녀의 어조에는 놀라움이 없었다.


나나미

네. 누군가 당신이 절 도와줄 수 있다고 말해 줬어요.


이스마엘

그게 누군지 궁금한데…. 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아. 소원을 가지고 왔으니까 기꺼이 소원을 들어주겠어.


여성은 나나미를 향해 앉으라는 손짓을 하며 빙긋 웃었다.


이스마엘

소원을 말해 보렴.


나나미

아니요, 앉지 않을 거예요ㅡㅡ 나나미는 약속이 있어서 빨리 해결해야 돼요.


(...)


이스마엘

그것이 너의 소원이니...


의문문으로 끝났지만 이스마엘은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을 칭송하듯 전혀 묻는 의향이 없었다.


나나미

맞아요, 이것도 나나미가 정한 약속이에요!


이스마엘

약속이라...


이스마엘

응... 그녀[미래의 나나미]와의 약속은 꼭 지켜줄게.


나나미

그럼 지휘관님을 부탁드릴게요...


나나미는 웃음을 거두며 모든 결심을 다한 듯 가슴에 손을 얹었다.


나나미

나나미에겐...아주 중요한 일이 있어요.


*서성치의 18-21, 요안방주 ER01-13 中



???

후회하지 않는 결정이었으면 좋겠어.


그날, 그레이 레이븐 소대는 구룡야항선의 한 행사에 초청되었다.


승선 전 부두에서 '한가하게 잡담을 나누고 싶다'는 여성을 만나 '어떤 가능성'을 이야기하며 어떻게 선택할지 물었다.


*인멸잔주 17-23 中



여지껏 등장했던 대행자, 승격자들 중에서 근미래에 일어날 사건을 알고 행동했던 인물은 아무도 없었음. 루나는 말할 것도 없고 본 네거트도 17장에서 이합생명체 진화의 통제불가능성에 대해 우려를 나타낸 바 있었음. 그런데 미래를 좌우하는 중요 분기점마다 등장해서 선택의 기회를 준다? 미래를 알지 못하면 결코 할 수 없는 행동임


이를 바탕으로 두 가지를 추론해보자면

1) 자비로운 자는 게슈탈트가 추론한 미래를 보았다

2) 자비로운 자는 미래에서 온 자다


개인적으로 후자가 가능성이 더 높다고 보는데 그 이유는 아래에 후술하자면



???

'적절한 비유는 아니지만, 지 범위를 벗어난 사물이 앞에 나타나면 사람들은 마치 3차원 공간에서 살아남은 인간이 4차원, 더 높은 차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과 같은 형태를 띠게 돼.'


???

'이제부터 넌 이해하기 어려운 존재들 속에서만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포착할 수 있어.'


누구의 목소리지? 아니면 누군가 여기에 남았던 기억인가?


리브

이 목소리는... 마치...



???

안개 속에 있는 자에게 길을 인도해 줄 수 있기를, 그리고 당신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리브.


*인멸잔주 17-24 中






'우주'

사고는 진화의 상징이야.


나나미

그 말은 나나미가 진화했단 뜻이야?


'우주'

네가 생각하는 것은 어디에나 있고 여기 있는 모든 것은 네가 생각하는 것의 구체적인 표현이야. 우리는 네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것과 찾고 싶지만 볼 수 없는 모든 것을 보여줄 수 있어.


나나미는 어리둥절하게 듣다가도 상대방의 말 속에 담긴 핵심 정보를 절로 포착했다.


나나미

그렇다면 인간과 기계들이 즐겁게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미래는 어디인지 말해 줄래?


'우주'

너나 지구상의 인간이나 그들의 감각 속에서 모든 것은 3차원적으로 존재하고 있어.

그러나 고차원적 존재에게 시간은 다른 형태로 현현된 실체야.

'너희들의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모두 페이지 번호가 분명하게 적혀있는 한 권의 책이야.'


*서성치의 18-19 中



난생 처음 본 공간에 같혀 어리둥절해하는 두 주인공에게 해설하는 방법이 어째선지 꽤나 유사하다


물론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고 본인이 예전에 올렸던 추측글에서 아르카나는 따로 별개의 로봇이라는 게 이번 스토리에서 밝혀졌기 때문에 확신은 못하겠지만, 만약 '우주'=자비로운 자라고 가정한다면 작중 자비로운 자의 행보를 이해할 수 있는 요소가 많으니까 여기서부턴 어느정도 재미로 읽었으면 좋겠음


다만 가능성은 농후하다고 보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음




나나미

자, 잠깐...


'나나미'

작별할 시간이야.


소녀는 열 손가락을 펴고 이마를 만지며 오래전의 어린 자신을 껴안았다. 이 순간 모든 생각, 슬픔, 외로움이 나나미에게 전달되었다.


'나나미'

이것들을 가지고 가줘... 최종 선택을 했다면 '이스마엘'을 찾아. 원하는 답이 있을 거야.


*서성치의 18-21 中



18장에서 나나미는 '우주'의 도움으로 시공을 초월해 미래의 '나나미'와 조우하게 되고, 미래의 '나나미'는 나나미에게 최종 선택을 하면 이스마엘[자비로운 자]를 찾으라고 전해준 것으로 보아 미래의 '나나미'는 이스마엘과 서로 아는 사이임을 알 수 있음


이게 단순히 데이터상으로 미래의 '나나미'가 분기를 바꿀 변수 요소로서 이스마엘을 파악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되는 게, 상술했듯이 이스마엘은 나나미가 자신에게 '그녀'[미래의 나나미]의 소원을 자신에게 부탁할 미래를 이미 알고 있었고, 미래의 '나나미'와 나나미의 만남은 무려 슈탈트조차 관측할 수 없는 범위 밖에서 이루어진 것임


그리고




아르카나

'선현은 결국 교회로 돌아와 이 허물어진 대지를 떠나 별의 끝에 이르도록 인도할 것이다.'


아르카나

'선현은 퍼니싱을 해결할 열쇠를 획득해 문을 열어 통과할 것이다.'


*요안방주 ER01-8 中



이 시점에서 미래의 '나나미'는 퍼니싱 문제를 해결할 열쇠를 찾은 것으로 파악된다. 즉, 자비로운 자가 그 열쇠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


한편 요안방주 스토리를 통해 기계교회 멤버의 코드네임은 타로카드, 21 메이저 아르카나의 카드명에 따라 지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연인', '전차', '은둔자' 등등...), 마지막 21번 카드의 이름은 '세계'(the world)로 잘 알려져 있지만,




세계 (世界, 프랑스어: Le Monde)는 타로의 메이저 아르카나에 속하는 카드의 1매다. 우주 (宇宙)라는 의미도 포함한다. 카드 번호는 21. (위키피디아 참조)


동시에 '우주'를 표상하기도 한다.


비약을 섞어서 여기까지 뇌피셜을 전개해보면 미래의 '나나미'가 퍼니싱으로 빚어진 재앙을 해결할 열쇠로 자비로운 자, 이스마엘을 선택해 과거로 보낸 '기계체'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비로운 자는 퍼니싱 사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기 보단 주인공 세력에게 '선택'의 기회를 주는 조력자의 역할만 수행한다. 왜냐하면 18장에서 아주 중요한 떡밥이 하나 나오는데





소녀

자유의지의 존재는 인간이 미래를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인간이 자유의지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인간이 직접 경험했기 때문이래. 의지는 개인 의식의 본질적인 부분이야.

이와 반대로,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자유의지와도 모순이 돼.

자유로이 선택할 수 있기 때문에 인간은 미래를 예측할 수 없어.

거꾸로 말해서, 미래를 알았다면, 넌 정해진 운명에 저항할 수도, 아는 미래를 다른 사람에게 알릴 수도 없어.

설령 모든 가능성을 알게 되더라도 최선의 선택을 해도 최후의 종말, 혹은 그 어떤 비극도 피할 수 없어.


(중략...)


남아 있는 인간에게는 한 가닥 회생의 기회가 있을지도 모른다. 인류의 미래에 대한 정답은 인간 자신만이 제시할 수 있다.


지구에서 추방된 소녀는 창가에 가만히 앉아 이 모든 것을 이야기하고, 가끔씩 빛 너머로 수억 광년 떨어진 저 푸른 별을 바라본다.


시간과 우주, 만물의 끝에서야 그녀는 마침내 재앙의 근원을 만나 인간이 통과할 수 있는 문과 열쇠를 찾았다.


...그리고 그녀는 과거에 건드리지 말았어야 할 비밀을, 비밀 그 자체로 전달했다.


*서성치의 18-21 中





나나미

나나미의 대답을 들었어?

나나미는 그 물음에 대한 답도 알고 싶어. 나나미가 원하는 그 미래도. 그치만 나나미한테 안 알려줘도 돼.

나나미는 스스로 찾아낼 거야.


*서성치의 18-19 中



미래를 알고있는 자는 다가오는 미래에 저항할 수 없다

즉, 미래를 알고 있는 자는 주체로서 어떠한 행동을 취하더라도 미래의 분기를 바꿀 수 없다


미래의 '나나미'도 그렇기에 현재의 나나미에게 자신이 밝혀낸 과거의 '비밀'을 있는 그대로 알려주지 않고 '비밀' 그 자체로 전해준 것임. 현재의 나나미에게 모든 것을 알려주면 그 자체로 미래에 저항할 수 없게 되니까


퍼니싱이 빚어낸 재앙을 이겨낼 방법은 인간과 각성 기계 스스로 극복해 내는 수 밖에 없다는 건 17장부터 지금까지 끊임없이 나타난 서술임

그렇기에 자비로운 자는 주인공 일행에게 도움을 주면서도 결정적인 순간, 선택은 그들의 몫에 맞겨 그들의 소원을 이루어주는 것일 뿐임

결국 미래를 바꾸고 이끌어나갈 수 있는 것은 최종적으로 자유의지를 품고 막연한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인간(+구조체)과 각성기계의 선택에 달려 있다



6. 게슈탈트와 자비로운 자


이전 글에서 게슈탈트로 추정되는 존재(볼드체)와 승격 네트워크 측으로 추정되는 존재 사이에서의 대화를 보여줬었다



노이즈

(이상(異常). 알려진 범주라고는 하나, 그녀의 탄생은 특수한 케이스.)

(그녀는 인류의 천적이면서, 인간보다도 인간답다.)

(예측불능인자다. 세계는 더욱 혼돈의 심연으로 빠져들어 간다.)

(그게 바라는 바가 아닌지?)

(아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제어가능한 변수와 반증. 무의미한 시행착오가 아니다.)

(그러나, 에러도 또한 요긴하지.)

(논리적이지 않은 연산결과는 이해의 범위를 벗어난다.)

(그럼, 어떻게 해야하나?)

(우리는 대국중인 기사도 아니고, 하물며 판 위의 말도 아니다.)

(그럼, 우리들은 뭐지?)

(우리는 관중… 개입할 자격이 없는, 그저 조용하게 승부의 행방을 지켜보는 자.)

(우리에게 자격이 없어도 ‘그 사람’에게는 있다. 언젠가 양측은 만날 것이다. 두 개의 운명이 교차하는 때, 어쩌면 쌍방이 함께 파멸을 맞이할 지도 모르지.)

(그 또한 운명.)

(…당신과의 대화는 유쾌하지 않군.)

(당신에게는 성장이 보이는 듯하군… 그럼 언젠가 다시 만나지.)



*루나 막간 히든 스토리



자신들을 방관자라고 칭하는 둘의 대화다

개인적으로는 승격 네트워크 측의 화자는 자비로운 자일 확률이 높다고 보는데, 일단 게슈탈트는 철저히 합리적인 계산에 복종할 수밖에 없는 '기계'고 자비로운 자 역시 미래를 알고 있는 존재로서 다가오는 미래에 적극적으로 저항할 수 없기 때문임


그리고 자비로운 자는 상술했듯 자신의 대행자 신분을 숨기고 공중정원에서 감사원이라는 요직에 임하고 있고 과학이사회 연구소에서도 제 집 드나들듯 다니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그런데




하카마는 고개를 끄덕이고 두 눈을 감은 채 시야 정보를 분석하는 연산력 모두 공중정원 네트워크 해킹에 동원했다.


>>>>>>미등록 외부 전송 요청, 경고>>>>>>

>>>>>>연결 거부, 잠시 후 신호 차단>>>>>>


하카마

방비가 너무 견고합니다. 단순한 논리 침입, 즉 기계교회 회원 전체의 연산력을 가용한다면 추산에 따라 153249시간 이상이 소요될 것입니다....


공중정원의 관리 시스템ㅡㅡ게슈탈트를 해킹하는 것은 동등한 수준의 슈퍼 AI의 연산력이 아니라면 기본적으로 불가능한 사안이다.


*요안방주 ER01-12 中



저 하카마도 나중에 공중정원의 프로그램 키로 잠입에 성공했지만, 실은 게슈탈트도 하카마의 침입을 기다렸다는 듯이 맞이해줌


게슈탈트가 1부터 10까지 관리하고 있는 공중정원에서 게슈탈트의 권한 없이 함부로 외부 인사가 드나드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고 볼 수 있음. 게슈탈트도 공중정원에 드나드는 이스마엘이 어떤 존재인지 모를 수가 없다는 것이고, 게슈탈트의 묵인 하에 이스마엘이 공중정원에 머무를 수 있었다는 것임


앞서 언급했듯 게슈탈트가 그 시점에서 '당신에게 성장이 보인다'고 할만한 주체는 승격 네트워크 외엔 없다는 사실로 미루어보아 공중정원의 게슈탈트와 1대1로 대면할 수 있는 승격 네트워크 측의 인사는 자비로운 자로 추정되며, 더 나아가 승격 네트워크를 창조한 장본인일 확률도 높다고 봄


왜냐하면 이전 글에서 언급한 승격 네트워크의 '선별' 조건에서 퍼니싱의 침식을 이겨내면서까지 이루어야 할 '소원'의 유무가 핵심 요소라고 설명했었는데,



이스마엘

그게 누군지 궁금한데…. 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아. 소원을 가지고 왔으니까 기꺼이 소원을 들어주겠어.


*서성치의 18-21中



단순히 승격 네트워크의 의지에 따른 것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자비로운 자의 신념이기도 함. 애초에 승격 네트워크의 의지의 실체가 무엇인지, 마치 성경을 두고 논쟁을 벌이는 신학자들처럼 승격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제각각이기도 하고


그리고 공중정원의 과학이사회, 그 의문스러운 쿠로노조차 선별 매커니즘을 이해하지 못해 루나 뒤꽁무니만 쫓고 지휘관을 닥달하는 걸 보면 당대의 기술력으로 과연 어떤 인간이 퍼니싱을 기반으로 한 승격 네트워크를 자체적으로 설계할 수 있을지 모르겠음 


다만 황금시대의 기술력으로 퍼니싱이 최초로 발발한지 3주만에 여과탑을 세운걸 보면 황금시대의 과학 수준이 도대체 어느정도였을지 의심스러운 부분이 많아 이 부분은 좀 더 스토리가 풀려야 정확하게 알 수 있을 것 같음




긴 헛소리 봐줘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