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에서 363300㎞ 떨어진 달에서 인류의 미래를 가리키는 마지막 횃불이 켜지고 있습니다. "



노르만

아주 오래 전에...


노르만

매일 땅에서 자란 당근을 먹으며 걱정 없이 살아가던 행복한 토끼들이 있었습니다.


노르만

그러던 어느 날 밤 달빛에 물든 당근이 더없이 달콤해지는 것을 발견하고 그들은 별 생각없이 머리를 돌렸습니다...


노르만

'언제나 달콤한 당근을 먹을 수 있으면 좋겠어!' '그럼 달을 붙잡아두면 되잖아~'


노르만

'그런데 어떻게 할 거야?' '끌어당기자!, 끌어당기자!' '줄을 묶고 다 같이 달을 잡아당기자!'


노르만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당근을 먹고 싶어했던 토끼들은 힘을 합쳐 바싹 마른 당근의 잎사귀를 둘둘 꼬아.... 기다란 줄을 만들었죠.


노르만

드디어 달을 묶은 토끼들은 온 힘을 다해 하늘에 높이 떠 있는 명월을 힘껏 끌어당겼습니다.


노르만

'우린 이제 배부르게 먹을 수 있어!' '우린 이제 배부르게 먹을 수 있어!' 토끼들은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노르만

그렇다면 그들은…결국, 그들은 정말 달콤하기 짝이 없는 당근을 끊임없이 먹을 수 있었을까요?


노르만

흠흠....글쎄요....




그레이 레이븐 소대와 다른 생존자들과 공중정원까지 돌아간 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생명의별 주치의가 말한 바에 따르면 아마 리브가 식암기체로 교체한 뒤 지금까지 잠들어 있었기 때문에 시간감각이 다소 모호할 것이라고 했다.


리브의 의식조각을 되찾는 데 너무 많은 오염을 겪은 탓인지…. 리브를 불러들이는 데 성공했지만, 도리어 자신은 그녀가 기체를 교체하자 의식을 잃었다.



히포크라테스

네 머리에 그렇게 심한 충격상을 입었었는데, 그때는 기적적으로 깨어났다고 해도…. 솔직히 영원히 깨어나지 못해도 전혀 이상한 상황은 아니었어.


생명의 별 소속 의사는 한 치의 빈틈도 없이 모든 것을 병례에 기록했고, 다소 긴 기록들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히포크라테스

하지만 너의 마인드 비컨의 오염은 아직 남아 있고, 몸에 크고 작은 상처들이 있기 때문에, 내가 괜찮다고 말할 때까지 퇴원할 수 없어…. 필요없더라도 난 너가 회복실에 머무르면서 가까운 시일 내에 임무를 수행하지 말 것을 제안할게.


지휘관

(알겠습니다)

(되도록이면...)


히포크라테스

그리고…좀 나았다고 혼자 돌아다니지 마, 알겠어?


마지막에 의사가 남긴 불안한 눈빛에 당황했지만 옆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시몬

의사의 조언대로…수석님도 푹 쉬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저에게 부탁해도 좋습니다.


시몬은 보고 있던 책을 덮고 온화하게 들여다보았다. 상처투성이지만 안색은 괜찮아보였다.


지휘관

오늘도 아주 씩씩하네.


시몬

네, 오늘 검사가 끝나면 내일쯤 퇴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령부 쪽에서 제 한양소대를 위해 준비되는 대로 새로운 대원을 충원하겠다고 했어요.


지휘관

...군대에 남기로 택한 거야?


시몬은 다른 군인들처럼 강인한 성격도 아니었고, 굳이 군에 남아야 할 이유도 없는 것 같았고, 이런 참혹한 전투를 치른 뒤 사령부에 전역 신청을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시몬

하하...저처럼 뒤떨어진 사람이 지휘관 노릇을 한다면 확실히 믿음직스럽진 않겠죠...


지휘관

그런 뜻이 아니라...


시몬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손에 든 책을 만져보았지만 지금까지와는 다른 단호한 눈빛을 보였다.


시몬

이것은 파오스 학교에 다녔을 당시의 교재입니다. 솔직히 공부할 때 열심히 본 적이 없어서 성적은 책을 보나마나 거기서 거기였죠...


시몬

하지만 오늘부터 제가 전술 하나라도 더 알고 상황을 하나라도 더 생각한다면…. 어쩌면 미래에는 수석처럼 많은 생명을 더 구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지휘관

시몬 넌 할 수 있을 거야.


시몬

네...고맙습니다.


지휘관

참, 아까 전에 날 도와줄 수 있다고 했었지?


시몬

네, 물론 괜찮습니다! 그런데 뭐 도와드릴까요?




시몬

이거…정말 괜찮을까요? 방금 전에 의사 선생님께서 움직이지 말라고 하셨잖아요...


시몬의 어깨에 손을 얹은 채 온몸 구석구석의 통증을 참으며 생명의 별 구호센터 복도를 한 걸음씩 걸어갔다.


지휘관

'혼자' 다니지 말라는 말이잖아.


시몬

역, 역시 수석…. 억지 해석이지만 다소 설득력이 느껴지네요.


그 전투 후, 루시아와 리의 기체는 심하게 파손됐고, 의식의 바다가 퍼니싱에 감염된 경험까지 있었지만 복구와 테스트를 거쳐 현재는 회복돼 다른 소대와 함께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걱정되는 것은 리브는…. 지휘관이 제공하는 안정적인 의식의 바다 없이 신형 특화기체를 교체해 의식의 바다에 심각한 상해를 입혀 의식불명에 빠졌었고, 미지로 가득 찬 기체도 구제에 어려움을 가중시켰었다.



시몬

수석, 도착했습니다.


깊숙한 치료실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두꺼운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바라보자 수많은 의료기기에 둘러싸인 리브가 보였다.


시몬

리브 양은...모두를 구했으니 그녀는 틀림없이 괜찮을 거라고 믿어요.


죽음에 가까운 그녀의 각오가 없었다면 루시아와 리, 그리고 그 작전에 참여한 모든 자들은 물론 인류 전체가 재난을 면할 수 없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 모두를 구한 그 소녀는 지금 잠들어 있고, 기도 말고는 그녀에게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다.


리브

...


지휘관

리브...


시몬

수석님이 정신을 잃으셨을 때 우리 모두도 지금과 같은 심정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상처입은 리브의 곁에 있어준다고 해서 재난이 지나가지 않는다. 뭔가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움직여야만 한다.


지휘관

돌아가자.


시몬

네, 수석님 오후에 재활치료도 있다고 했죠. 또 놓치면 의사들이 돌풍을 몰고 올지도 몰라요...


시몬은 갑자기 무언가 생각난 듯 걸음을 멈췄다.


시몬

수석님 혹시 엔지니어 부대에서 복무 중인...'카레니나'라는 구조체를 알고 있나요?



힐다

...


하산

...


노르만

...?


니콜라

죄송하지만 노르만 광업그룹 대표님...



노르만

레오나르도 노르만, 그냥 성으로 불렀으면 좋겠네요. 어차피 다 알고 있잖아요.


노르만 광업그룹은 황금시대에 지표면 대부분의 광업 채굴 사업을 오랫동안 장악했었고, 공중정원에서 퇴각하는 인류를 데리고 우주로 진입한 뒤 지표면 사업을 모두 포기한 이들은 위성으로 달을 정조준했다.


달의 풍부한 헬륨-3의 매장량 덕분에 공중정원은 일일 에너지 소비량을 장기간 유지할 수 있었고, 심지어 아딜레 상업연합 등에게 공중정원의 필수품을 교역품으로 주고받을 수 있을 정도였다.


한편 지상에 대한 높은 친숙도는 노르만 광업그룹이 예술협회의 중요한 파트너로 자리매김하게 만들었다.


니콜라

노르만 위원님, 지금 아주 중요한 회의 중입니다…. 당신이 여기서 무슨 이야기를 할 필요는 없습니다.


노르만

이런, 다들 진지해 보여서 가벼운 이야기로 좀 풀어주려고 했던 겁니다.


노르만에게 말이 들릴까봐 두려운 듯, 다른 부서의 자리에서는 한숨과 조롱의 목소리가 들렸지만ㅡㅡ노르만은 별 반응이 없는 것 같았다. 이런 상황에 익숙해져 있었을 것이다.


과거에 정치에 관심이 없던 노르만 광업그룹이 왜 오늘 그 악명높은 장남을 의회에 보냈는지 알 길이 없었다.


니콜라는 한숨을 내쉬었고, 옆에 있던 하산은 고개를 끄덕이며 관심을 가지고 손을 가슴에 얹었다.


하산

음…그럼 이 이야기의 끝에서 토끼들은 달을 잡아당겼습니까?


노르만

오, 글쎄요, 토끼는 어디까지나 토끼일 뿐인데…. 어불성설인 일을 해낼 방법이 없었곘죠.


니콜라

흥, 토끼가 달을 묶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어불성설이라고 생각하는데 말입니다...


노르만은 니콜라의 말을 무시한 채 싱글벙글 웃으며 말을 계속했다.


노르만

그러나 당근만 생각하던 토끼들은 손을 놓으려 하지 않았고, 달빛에 밧줄이 끌리며 공중으로 날아오르다가 결국 월면 위에 떨어질 수밖에 없어 영영 돌아올 수 없게 되었답니다.


노르만

그런데 뭐 어떻습니까? 토끼들은 당연히 그런 걸 걱정하지 않았고, 실제로 달을 잡아당긴 줄 알고 환호성을 질렀습니다ㅡㅡ어차피 그들은…. 행복한 토끼무리였을 뿐이죠.


힐다

인간이란 미련한 토끼와 같다고 말하고 싶은 겁니까...


노르만

절대 아니에요, 이건 옛날 제 고향에서 전해 내려오는 동화일 따름입니다. 그리고 저도 그 토끼들이 미련하다고 여기지 않았고요.


노르만은 우아하고 자연스럽게 가볍게 인사를 건네며 이상한 차림새에 어울리지 않는 훌륭한 교양을 보였다.


하산

노르만 위원님, 이야기를 풀어내는 재능이 좋으시군요.


노르만

이야, 안그래도 동생들에게 저보고 이야기를 잘 한다는 칭찬을 자주 듣곤 했죠.


하산은 예의상 웃은 뒤 돌아서 텅 빈 로비에 고개를 끄덕였고, 다소 짜증스러운 모습을 보이던 의원들이 잠잠해졌다.


하산

경직된 생각을 조금 풀게 해준 노르만 의원님께 감사드리며, 다시 의제로 돌아갑시다…. 어쩌면 이번이 인류 역사상 가장 끔찍한 위기일지 모릅니다.


의회 로비의 프로젝션 화면에는 이합생명체의 세계화로 비롯된 재해에 관한 내용이 표시돼 있다.


니콜라

신형 특화기체를 투입해 인간형 생명체와 퍼니싱의 광범위한 감염에 대항할 수단이 생겼고...우리에게 모처럼의 승리를 안겨주었습니다.


니콜라

그러나 신형 특화기체 개발은 여전히 많은 문제를 안고 있고, 특히 이를 어떻게 안정화시키느냐가 앞으로 우리가 퍼니싱로부터의 탈환 여부에 관건이 될 것입니다.


니콜라가 하산과 눈을 마주치자 하산이 화제를 이어받았다.


하산

이번 재난으로 지상에 내려온 집행부대원들은 엄청난 피해를 입었고…. 공중정원에도 영영 돌아가지 못한 소대가 상당히 많았습니다.


하산

그들은 갑작스런 재난에 직시할 것을 선택했고, 인류의 최전선에 서서 싸웠습니다…. 비로소 그 속에서 고민하고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을 벌 수 있었습니다.


몇몇 의원들은 말없이 슬픈 표정을 지으며 생이별의 아픔을 느끼며 슬퍼하는가 하면, 몇몇은 숨길 수 없는 두려움을 드러내며 앞으로 전투가 그들의 모든 것을 재앙 속으로 몰아넣을 것을 두려워했다….


그러던 중 누군가 천천히 손을 들고 일어섰다.


니콜라

(이 사람은…외교원 소속으로 쿠로노의 그린스 측 사람이다.)


하산은 니콜라와 눈짓을 주고받으며 살짝 눈살을 찌푸리고 그 사람에게 손을 내밀었다.


하산

외교원 리스트 의원, 발언하세요.


리스트라는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고 손 옆 디스플레이에 데이터 일부를 입력해 누구나 볼 수 있는 프로젝션 화면에 동기화했다.



리스트

군사령부가 발표한 종전 작전손실 통계에 따르면 특히 이전 전투에서 집행부대의 손실은 수용 가능한 범위를 훨씬 넘어섰습니다.


리스트

사실상 지금의 전력으로는 지상의 이합생명체를 광범위하게 없애기는커녕 퍼니싱에 침식된 보육구역을 대부분 탈환하는 것은 물론 진화하는 퍼니싱의 손길에서 공중 정원을 지키기에도 역부족이라고 생각합니다.


리스트는 잠시 동안 의회 로비를 둘러보았다. 침묵의 힘이 한 사람 한 사람 물들이고 있었다.


리스트

사령부의 작전 지휘나 부대 작전 수행 성과를 비난할 의도는 전혀 아닙니다…. 그러나 그들의 힘겨운 분전 속에서도 퍼니싱에 맞선 전투는 여전히 크나큰 손실이었습니다.


리스트

네, 전투는 우리가 보는 단순 기록보다 훨씬 더 잔혹했고, 집행부대원 개개인과 지휘관은 지구 수복의 사명을 지키면서도 인간의 이해를 뛰어넘는 적과 맞서다 부당하게 목숨을 빼앗겼습니다.


리스트

그들은 영광스런 전사이자 우리와 같은 지구의 아들입니다. 그들은 인류의 미래를 품을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니콜라

그렇다면 우리는 지구 수복 작전을 포기해야 한다는 말입니까? 당신은 수많은 사람들이 그 대가를 치르는 것을 부정할 셈입니까.


상대방의 눈을 차분히 바라보던 니콜라는 이 남자가 괜히 의회 사람들을 선동하지 않을 것이며, 분명 비장의 카드가 있을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리스트

저는 버릴 수 없는 과거뿐 아니라 인류의 미래가 있는 지구를 수복하는 것을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미래를 향한 또 다른 새로운 길을 찾을 수 있을지 다시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힐다

만약 우리가 전투를 포기하고 퍼니싱이 지상의 확장을 계속한다면, 지상에 남아 있는 인류는 말할 것도 없고, 이 공중정원도 혼자서 유지될 수 없을 것이며, 완전히 진화한 퍼니싱 이합생명체와 감염체가 언젠가는 이 외로운 배를 삼키지 말라는 보장이 없습니다.


리스트

공중정원은 본래 인류가 성간 여행을 향한 여정의 시작을 알리는 초광량 우주 이민선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잊지 맙시다. 이것은 외로운 배가 아니라 멀리 항해했어야 하는 거대한 배였습니다.


니콜라는 이것이 그의 카드라면 너무 순진하다며 웃었다.


니콜라

그렇게 잘 알고 계시다면, 지금의 공중정원은 당초 계획했던 영점 에너지 엔진이 모든 재난의 근원이 되었기 때문에 재래식 에너지로만 일상적인 운영을 유지할 수 있다는 사실도 알고 계시겠죠.


리스트

만약...


니콜라의 말을 따라 리스트의 음울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마치 독사가 마침내 먹이의 꼬리를 잡은 것처럼.


리스트

영점 에너지의 실적용이 더 이상 백일몽이 아니라고 말하면 어떻게 될까요?


잠시 침묵이 흐른 뒤 현장에 있던 모든 의원들은 그의 말에 충격을 받아 발언 질서에 신경 쓸 겨를도 없이 리스트에게 그의 말에 담긴 명사인 영점 에너지에 대한 설명을 다급하게 요구했다.


리스트

모두 알고 계시겠지만, 더 이상 비밀이 아닐 수도 있는 군대의 비밀 작전에서 그레이 레이븐 소대의 지휘관은 아틀란티스라는 영점 에너지 연구 도시에서 파일을 검색했습니다.


리스트는 디스플레이의 내용을 아틀란티스의 인원이 생애 마지막과 함께 등가교환했던 Ω 파일로 전환했다.


리스트

영점 원자로가 주어진 조건에서 작동하면 퍼니싱 바이러스를 '흡수'할 수 있는 힘의 장이 마련된다는 점을 보여준 기록물로, 이것의 가치는 남다릅니다.


니콜라

그래서 우리는 인간형 생물체에 대항할 수 있는 오메가 무기를 탑재한 새로운 특화 기체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신형 특화기체 제작계획은 군과 쿠로노 측의 협력을 이끌어낸 대목이었다.


리스트

맞습니다. 하지만...어쩌면 그 위대한 연구자들의 연구 성과는 또 다른 더 큰 의미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내색하지 않고 디스플레이 내용을 새로운 페이지로 바꾸었다.


리스트

이들은 실험으로부터 영점 원자로에서 퍼니싱 바이러스가 발생하는 과정을 재현하고 귀중한 데이터를 기록해 후세의 연구에 맡기길 바랐습니다.


안타깝게도 이들은 마지막까지 바이러스 발생 과정을 관찰하지 못했지만, 연구자들은 영점 원자로를 돌릴 때의 파라미터들을 빈틈없이 오메가 파일과 함께 기록했다.


힐다도 그의 말에 담긴 큰 의미를 의식했다.


힐다

그 말은 즉, 퍼니싱 바이러스 폭발을 피하고 영점 에너지를 발생시킬 수 있는 어떤 방법을 편법으로 찾아냈다는 얘기인데….


리스트

아주 정확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영점 에너지 원자로 노심을 재가동할 수 있는 중요한 이론적 근거가 될 것입니다…. 지구에서 363300㎞ 떨어진 달에서 인류의 미래를 가리키는 마지막 횃불이 켜지고 있습니다.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의원들은 시끌벅적했고, 거의 동시에 저 멀고도 먼 달을 바라보았다.


저중력과 우주환경에서 영점 에너지 원자로의 작동을 시험하기 위해, 과거 공중정원 제작 시기에는 가장 중요한 영점 에너지 원자로와 엔진 제작 및 조립을 월면기지에 위치한 동력실험실에 배치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영점 에너지와 바이러스 폭발의 연관성을 알게 된 뒤, 월면 기지와 그 안에서 가장 중요한 영점 에너지 원자로는 반파기 상태로 남아 있다가 월면에서 채굴업을 하는 노르만 광업그룹에 사용권과 관리를 맡겼다.


니콜라

(흥…. 그것이 이번 회의에서 특별히 노르만그룹의 장남을 초청한 이유인가.)


니콜라의 매서운 눈빛을 느끼자, 눈앞에 있던 디스플레이 스위치를 가지고 놀던 노르만은 그를 향해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리스트

노르만 그룹의 사심 없는 도움 덕분에 위의 아이디어를 테스트할 수 있었고, 운 좋게도 성공적인 시범운행 중에 고무적인 데이터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디스플레이의 이미지가 다시 이동하여 일련의 데이터 시트와 영점 에너지 생성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광학 효과인 눈부신 푸른 빛을 발산하는 사진을 보여주었다.


리스트

시험 데이터에서 월면기지의 원자로가 아틀란티스 원자로의 데이터를 시뮬레이션할 때 실측으로 발생하는 영점 에너지 효율은 대략 정상 가동 시 이론치의 45.37%에 불과합니다.


리스트

하지만 기존 공중정원 운영과 항행을 유지하는 것으로 충분합니다ㅡㅡ요점은 현장에서 퍼니싱 바이러스의 발생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 즉...


리스트

우리는 영점 에너지 엔진을 다시 공중정원 위에 탑재하고, 거의 영구에 가까운 에너지로 공중정원 이민함의 기능을 회복시켜 지구를 떠나 별의 바다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퍼니싱에 물들어 위험천만한 모성 지구에 집착할 필요 없이 인류는 새로운 여정을 펼칠 수 있다는 절망에 가까운 현주소에 매력적인 선택지가 아닐 수 없었다.


니콜라

흥……전제적으로 믿을 수 있는 수치이나, 노르만 그룹의 연구원들조차 이민함 제작과 관련된 경험과 지식이 전혀 없기 때문에 이 보고서의 진위를 의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니콜라는 노르만 그룹의 연구원이라고 하지만 월면에 있는 놈들은 쿠로노 소속 과학자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비단 그들만이 아니라…. 공중정원이나 영점 원자로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전문가의 협조를 얻었기에 영점 에너지에 대한 연구를 이렇게 순조롭게 재개할 수 있었을 것이고, 이 사람은 니콜라 사령관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니콜라는 그제야 자신이 쿠로노를 이용하는 편인 줄 알았는데 사실 쿠로노에게 이용당하는 편이 됐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니콜라

카레니나...


리스트

네, 엔지니어 부대 소속의 카레니나는 공중정원 설계 구조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데, 영점 에너지 엔진에 관한 지식은 수년 전 후속 연구를 중단했지만 이 분야 최고 연구자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카레니나가 공중정원의 일원이고 그녀의 정체를 의심할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리스트

그렇다면 이제 성간항해를 재개하는 것을 하나의 안건으로 제시할 만큼 설득력이 충분하겠지요, 하산 의장님?


하산은 고개를 끄덕이며 회의장 전체를 둘러보았다.


하산

그러면 이제 투표를 시작해서 리스트 의원의 안건을 표결에 부치겠습니다.


서로 토론하는 시간은 거의 없었고, 현장에서는 곧 인류가 영점 원자로를 재가동해 갈수록 심각해지는 지상 전장을 떠나 미지의 우주로 향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는 압도적인 결론이 나왔다.


힐다

저도 찬성하겠습니다...하지만 감사원 최고책임자로서 이번 담합은 외교원 관리의 직권을 넘어선 것이니 모든 일이 순조롭게 풀리면 책임을 물을 준비를 하라는 점을 상기시켜야 하겠습니다.


리스트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힐다를 넘어 하산을 바라보았다.


리스트

물론입니다. 저는 모든 처분을 기꺼이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게슈탈트

리스트 의원의 제안 지지율은 98.5%, 반대율은 0%, 기권률은 1.5%로 가결 최저치보다 지지율이 높으므로 가결되었습니다.


하산

그럼 선언하겠습니다...


바로 그때, 의회 모니터에 긴급통신 요청이 떴다. 발기자는 세리카였고 하산은 수 초를 망설였지만 이내 통신을 연결했다.


세리카

하산 의장님! 방금 월면기지에서 긴급메세지를 받았습니다. 사전 판단을 거친 후…바로 처리해야 합니다!


하산

발신인은 누구입니까?


세리카

카레니나입니다!


하산은 눈살을 찌푸리며 리스트를 바라보았지만 그의 무표정한 얼굴에서 아무런 메시지도 읽히지 않았다.


하산

즉시 재생해.



세리카가 연결되면서 의회 디스플레이가 상당히 흐릿한 모습으로 바뀌었지만 목소리로는 카레니나였다.


카레니나

감염은...분명...지상을 위험에 빠뜨릴 거야...그러니까...


카레니나

당장...영점 원자로를...파괴해야 돼!







캬루년 존나 똑똑했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