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인류의 모든 꿈이 담긴 기계, 그것을 다시 시작하려면 카레니나, 너가 최선이야.




약 3개월 전, 혹은 미지의 인간형 생명체가 풀리아 숲 공원 유적지에 나타난 지 일주일 후였다.


공중정원에서 내려다보이는 이합생명체의 위협적인 비행은 여전히 도처에 존재하고 있었다.


공중정원은 수많은 대가를 치르고 지상과의 이 지옥같은 항로를 다시 뚫으려 했지만…. 그러나 그 어떤 에이스 조종사도 하늘을 찌를 듯 말 듯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 적들을 뚫고 지나갈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나사 하나, 통조림 하나라도 지상에 배달될 수 있다면 그것은 지면이 이 절망에 가까운 지옥에서 수많은 구조 수송기 조종사들이 맞서 싸우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는 이미 비행기술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난제로, 공중정원 기술자들은 가능한 한 빨리 새로운 답을 제시해야 했다.



카레니나

【삐...】 분명히 설계대로라면 이 엔진의 출력은 적어도 현재의 150% 이상이어야 하는데, 왜 지금 가속효율이 이 정도밖에 안되는 거야!


과학이사회는 오메가 무기 연구실험을 진행 중이어서 비행이합생명체의 습격에 대응할 수 있는 비행체 엔진을 개발하는 임무는 엔지니어링 부대의 손에 넘어갔다.


우주 기사 노동조합 출신인 카레니나는 에너지 파워트레인 분야에 대한 깊은 연구와 풍부한 개발 경험이 있는 최고의 인물임에 틀림없다.


카레니나

이봐, 너 새로 들어온 놈 맞지? 이전의 조립 기록을 보여줘...


기계공학자

사실...엔지니어 부대에 들어온 지 2년째인데....


카레니나

아 그래…어째 난 너를 못 본 것 같은데…됐어, 상관없어, 빨리 조립기록 좀 갖다 줘!


기계공학자

사실 이건 부대장이...


???

볼 것도 없어, 내가 네 설계도에 있는 '엉터리' 부품 몇 개를 정식 부품으로 교체하라고 했으니까 출력이 떨어질 수밖에.


엔지니어 부대 개발공장 구석에 쌓여 있는 컴퓨터 더미에서 옅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카레니나

테!디!베!어! 무슨 꿍꿍이야!


카레니나는 목소리가 들려오는 구석을 향해 열분을 토하며 개발공장 사람들을 모두 놀라게 했지만 이내 서로 어깨를 으쓱하고 '또 왔네 또 왔어...'라는 표정을 지으며 다시 업무에 복귀했다.


카레니나

우리가 여기서 1분씩 지체할 때마다 지상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는지 너는 도대체 이해하지 못하는 거야!


카레니나는 빼곡히 들어찬 모니터를 밀어내고 뒤에 숨어있던 테디베어라고 불리던 소녀의 이어폰을 떼어냈다.



테디베어

'생명의 소중함을 잊지 말자'는 말인가….


테디베어

너처럼 이 말을 자주 입에 담지는 않았지만, 우리가 여기서 밤낮으로 연구개발을 하는 것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는 우리도 잘 알고 있어.


카레니나

그건 그렇고 왜 그 부품들을 교체해야 하는지 말이나 해보라고...


테디베어

이유는 너무 간단해, 난 아직 죽고 싶지 않아.


테디베어는 무표정한 얼굴로 코드를 입력한 뒤 카레니나 앞에 있는 스크린을 가리켰다.


테디베어

너가 설계한 대로 엔진이 계속 극한의 출력으로 작동했다면 조금이라도 잘못 조립됐다간 니 머리 크기만한 공중정원 구멍이 되었을 거라고 짐작했어.


카레니나는 테디베어의 앞에서 스크린을 돌려 위의 수치를 콕콕 찔렀다.


카레니나

무슨 문제인지는 알겠는데, 그럼 실수 안 하면 상관없잖아!


테디베어

어쩌면 너가 가공하고 조립하는 부품이 그 정도 수준까지 도달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여기에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두 번째 카레니나 리더가 없고, 지금도 자동화 공작기계를 설계해 양산할 여유가 없다는게 참 유감이야.


테디베어

사령부가 우리에게 준 목표는 수송기였어…. 고속비행하고 불꽃 효과가 달린 고가의 관짝이 아니라고.


카레니나

으...


카레니나는 테디베어의 말에 잠시 반박할 점을 찾지 못했다.


테디베어

그리고...


카레니나

그리고..!?


테디베어

이 엔진의 원가는 너무 비싸...


카레니나

뭐?! 원가? 지금 상황에서 누가 그런 걸 따질 때야!


테디베어

제작비는 고사하고...더 무서운 건 이 엔진이 우리가 쓰고 있는 컨베이어 엔진의 3배에 달하는 에너지를 소모한다는 점이야.


테디베어

수송기가 지상으로 비행한 후 다시 돌아올 필요가 없다는 뜻인가? 게다가 공중정원은 일상적인 운항을 위한 에너지 외에 수송기를 대량으로 왕복시킬 수 있는 에너지가 많지 않아.


카레니나

쳇...시간만 많았어도 에너지 소모를 최적화할 수 있었을텐데.


테디베어

하지만 나도 다른 좋은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 또한 우리가 거의 무궁무진에 가까운 에너지를 찾을 수 없다면......


카레니나

영점 에너지...인류가 그걸 손에 넣었으면 좋았을텐데.


이 무한에 가까운 에너지를 얻을 수 있었다면 전황을 크게 바꾸었겠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전쟁의 원흉은 다름아닌 영점 에너지 원자로 가동으로 인한 퍼니싱 바이러스의 폭발이었다.


카레니나는 고개를 돌려 지구 상황이 투영된 전술 패널을 바라보았다.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고민할 시간조차 없었다.


카레니나

아아아, 짜증나 죽겠네, 이런 비현실적인 것들을 생각하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에너지 소모를 줄일 수 있을까 생각해보자고.



???

그렇게 빨리 결론 내리지 마, 어쩌면 원하는 건 멀리 있는게 아니라 바로 우리 눈앞에 있을지도 모른다구.


카레니나는 자신을 돌아보며 말을 거는 품위 없는 남자가 까르르 웃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카레니나

이봐, 아저씨 누구야! 여긴 엔지니어 부대의 개발 공장으로 일반인은 참관할 수 없어. 그렇지 않으면 부상을 입어도 책임을 못져.


???

허, 거 참 예민하구만...아무것도 개발 못 했잖아?


카레니나

너, 너 뭐라고 했어!


테디베어

카레니나, 뒤에...


테디베어가 가리키자 카레니나는 비로소 그 남자의 뒤를 따라 들어온 사람이 하산과 니콜라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카레니나

하산 의장과 니콜라 총사령관… 신형 엔진 개발 진척도를 물어보러 왔다면 당분간 별다른 진전이 없다고밖에 할 수 없어.


???

땡땡땡, 지금 필요한 건 수송기 엔진이라는 촌스러운 장난감이 아니라 더욱 파괴적이고 결정적인 '무기'란다.


카레니나는 화를 참으며 그가 횡설수설 늘어놓는 말을 무시하고 하산과 니콜라에게 눈빛으로 물었다.



하산

소개하마, 이건 그린스...씨, 현재 마지못해 군부 쪽에서...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해야 한다는 것을 느낀 하산과 니콜라는 서로에게 눈짓을 보내고 목청을 가다듬으며 말을 이어갔다.


하산

그나마… 컨설턴트로서 우리가 지금 너와 상의해야 할 아주 중요한 프로젝트가 하나 있다.


니콜라

너희들은 잠시 떠나있어라.


테디베어는 카레니나를 곁눈질로 바라보았고, 그녀가 또 무슨 말썽이라도 일으킨 줄 알고 다른 팀원을 데리고 공장 밖으로 나오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린스

자, 내가 직접 요구할게ㅡㅡ꼬마 아가씨.


카레니나

카!레!니!나! 라고 불러!


그린스

아, 실례...그럼 카렌 양, 그전에 그레이 레이븐 지휘관이 지상에 있던 아틀란티스라는 연구소에서 가지고 온 오메가 문서에 대해 들어봤곘지.


이 말을 들은 카레니나의 눈빛은 매섭게 변했다. 그 이유는 눈앞의 평범해 보이는 이 남자가 소수의 사람들만이 알고 있는 이 기밀을 어떻게 알고 있는지 알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앞서 이 문서의 존재가 알려졌을 당시만 해도 하산과 니콜라는 과학이사회에서 이론적으로 검증할 수 있도록 협조해주던 자신에게 최고 수준의 기밀 정보라고 엄정하게 당부한 바 있다.


그린스

알고 있었나 보구나, 하하하하하, 너 진짜 거짓말 같은 거 못하나 봐.


카레니나

【삐ㅡㅡ!】


니콜라는 어쨌든 날뛰는 듯한 카레니나를 가로막았다ㅡㅡ그 역시 그린스가 카레니나에게 한 대 얻어맞는 모습을 좀 보고 싶긴 했지만.


하산

그래도 내가 설명하지, 과학이사회의 노력으로 오메가 프로토타입 무기개발은 끝났지만 이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한계야. 오메가 무기의 제조는 영점 에너지 원자로를 사용해야 한다.


하산

지금 우리가 쓸 수 있는 유일한 영점 원자로는 하나밖에 없어...


지금은 지상과의 수송을 전혀 재개할 수 없으며, 지상에서 사용할 수 있는 영점 원자로를 찾아서 오메가 무기를 만드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ㅡㅡ하지만, 영점 원자로는 지구상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카레니나

월면기지의 원자로...그렇게 된다면 확실히 가능해.


그린스

그런데 그곳은 이미 과거의 재난 때문에 봉쇄된 지 얼마나 됐는지, 그곳이 어떻게 됐는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영점 원자로에 대한 전문적인 연구가 있는 기술자들에 의한 재가동이 시급하다구.


카레니나

그래서 우리 엔지니어 부대를 찾은 거야? 꽤 괜찮은 계산을 하고 왔네.


그린스는 웃으며 위에 쌓인 기름때나 먼지는 아랑곳하지 않고 아무 공작기계 위에 앉았다.


그린스

이것은 에너지 연구 분야의 모든 학자의 꿈의 기회야. 넌 인류 역사에 자신의 이름을 남길 수도 있어...


역사에 이름을 남기는 것이 마냥 그리 자랑스러운 일이 아니며, 심지어는 평생을 동반한 악몽일 수도 있다는 것을 카레니나는 알고 있다… 마치 할아버지처럼.


카레니나

흥, 난 이런 일에 관심 없어...너한테 홀랑 넘어갈만한 바보들이나 찾으러 가봐.


그린스

그럼 내가 홀랑 바꿔서… 아니, 말을 바꿔서 설득해보지. 네가 동의하지 않으면 우리가 다른 팀을 찾아서 영점 원자로 재가동 작업을 맡겠다, 와우, 이래도 정말 괜찮니?


카레니나는 공중정원 전체에… 자신만한 적임자가 없고, 과학이사회라고 해도 자신만큼 현장 경험이 많지 않다는 것이 곧 자신감의 원천이자 자랑거리라고 확신한다.


카레니나

아저씨, 이건 권유가 아니라 협박이잖아...


그녀는 모처럼 침묵하다가 하산을 바라보았다.


카레니나

하산 의장...오메가 무기가 그 개같은 퍼니싱을 물리칠 수 있는 거야?


하산

적어도 그것이 지금 우리가 기댈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야.


지면은 퍼니싱 바이러스가 사방으로 기승을 부리는 지옥이 되었고, 공중정원은 인류를 숨 돌리게 하는 희망이 되었다. 감염체가 지상의 방어선을 갈기갈기 찢고 있을 때 구조체 기술은 다시 인류에게 반격의 희망이 되고 있다.


그리고 이제 오메가 무기의 개발은 이 지옥과 싸울 수 있는 인류의 생존의 희망이 됐는데 과연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그것을 맡길 수 있을까.


카레니나

알았어, 엔지니어 부대는 이번 의뢰를 수락할게...하지만 두 가지 조건이 있어.


카레니나

첫째, 나머지 팀원들은 새로운 수송기 엔진을 계속 개발할 것...놈들이 하는 일은 분명히 도움이 될 거야.


카레니나

둘째ㅡㅡ


카레니나는 잠시 멈췄다가 자신의 요구를 했다.



테디베어는 공장을 나섰다ㅡㅡ며칠째 그곳을 떠나지 않고 있는지도 몰랐던 그녀는 긴장을 풀고 싶었지만 엉뚱한 사람을 발견하게 되었다.



노르만

요, 오랜만이야~


열정적인 노르만과 마주한 테디베어는 애써 못 본 척하며 바닥에 주저앉아 손에 들고 있던 휴대용 단말기를 열고 미완성 코드를 계속 입력했다.


그리고 노르만은 그저 미소를 지으며 자연스럽게 그녀의 곁으로 걸어가서 그녀의 작업을 큰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았다.


노르만

여기가 바로 너가 지금 일하는 곳이야? 어때, 크리스티나, 일은 즐거운지.


이 이름을 들은 테디베어는 눈살을 찌푸리고 손놀림을 멈췄다.


테디베어

여기에 크리스티나라는 사람은 없습니다. 기억하고 계시다면 제 이름은 테디베어라고 노르만 씨는 들어보셨을 겁니다.


노르만

그래도 오랫동안 불러온 이름이라는게 있는데, 아무리 우리 형님이라도 그렇게 쉽게 이름을 바꿀 수 없을 걸.


테디베어는 눈을 내리깔면서도 마음은 단말기 화면에 전혀 두지 않았다.


테디베어

...왜 노르만 본가로 돌아가기로 결정한 거야...


노르만

하하하, 어쩌면 깜짝 놀랄 만큼 많은 재산을 상속받기 위해서였겠지.


테디베어

허…그래? 그래도 정말 축하해. 오늘 이 구질구질한 곳에 오게 된 것도 가업을 위해서였겠지...


노르만

Bingo~ 이야, 이러니까 난 어디가서도 항상 여기 이 여동생이 나보다 훨씬 똑똑하다고 말하고 다닌다고.


테디베어는 냉소를 지었다가 이내 무표정한 모습으로 돌아섰고, 손가락은 자신도 모르게 휴대용 단말기의 울퉁불퉁한 버튼을 쓰다듬었다.


테디베어

빅토리아...그녀는 잘 지내고 있어?


노르만

물론이지...최소한 더러운 일을 해야하는 너나 나보다는 나아.



테디베어는 옷소매에 묻은 기름때, 그리고 옷차림이 더할 나위 없이 번들거리는 노르만을 보며 담담하게 웃었다.


노르만

다만 걔가 날 볼 때마다 난리를 치며 언니를 찾아 놀자고 계속 떠들어댔고, 나 역시 언니 지금 일하고 있으니까 시간이 날 때 돌아올 거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어.


테디베어

와...진짜 쓰레기같아....이젠 어린애까지 속이는 거야?


노르만은 전혀 신경쓰지 않는 듯, 과장되게 하하하하 웃었다.


노르만

곰돌이 아가씨, 아직 내 질문에 대답을 안했었지...일은 재밌어?


테디베어는 다소 의외라는 반응이었지만, 잠시 망설이다 곧 입을 열었다.


테디베어

뭐 그런대로 할만해...아무튼 오빠처럼 그렇게 즐겁진 않아.


노르만

그럼 됐어...


노르만의 얼굴에는 이전과는 다른 담담한 웃음이 번졌고, 웃음이 걷히자 다시 속삭였다.



노르만

응, 그럼 된 거야...









핑챙이 재벌가 딸내미였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