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페셔널한 배우들은 일어날 수 있는 모든 돌발 상황에 대비하며 카메라가 멈추지 않는 한 영원히 자신의 역할을 잊지 못한다.



???

나의 위대한 공적에 대한 기록을 남긴 학자가 이른 아침 나의 첫 여행에 대해 썼을 때, 그가 이렇게 설명을 했을지 궁금하구나ㅡㅡ


???

'황금빛 붉은 태양신이 그의 아름다운 금발을 광활한 땅바닥에 뿌리고, 오색의 깃털을 가진 새들이 우짖으며 장밋빛 여명의 여신을 맞이하고, 이 여신은 온화한 침대를 떠나 지평선의 문간과 발코니의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구나...'


???

'아아, 바로 이때, 유명한 기사가...'


페이지를 넘기자 노트 뒤쪽은 여백만 남아있었고, 거친 연필로 기록된 글도 끝이 났고, 그 위에 발췌된 사연은 이 노트 주인과 마찬가지로 결말이 나지 않았다.


롤랑은 고개를 돌려 붉은 초토를 바라보았다. 이합생명체들이 그 위를 짓밟았는지, 혹은 강력한 감염체에 휩쓸려 거의 전부를 휩쓸어 갔는지, 이 작은 공책만이 오롯이 남아 있었다.


롤랑은 우연히 불에 타 검게 그을린 그루터기를 발견하고 자리에 앉아 공책에서 흰 종이 한 장을 찢고, 곰곰이 생각하다가 그 위에 조용히 작은 물건을 올려놓고 반으로 접었다...


그늘에서 나온 한 소녀는 롤랑이 손에 종이를 들고 반으로 접기를 반복하는 것을 보며 궁금해했다.



회언

뭐해요?


롤랑은 웃으며 손에 들고 있던 필기 원고지를 마지막으로 손에 쥐고 일어서서 그 앞에 탄 나뭇가지 위에 올려놓았다ㅡㅡ그것은 종이로 접은 토끼였다.


롤랑

뭔지 알아...? 이거 토끼야. 토끼가 뭔지 알아?


회언은 이 흰 종이로 만든 토끼를 노려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회언

알아요, 근데 이게 토끼라고요...?


롤랑

내가 꽤 잘 접었다고 생각했는데...작고 하얗고, 커다란 눈과 긴 귀를 가지고...뭣보다 귀엽잖아.


회언

귀엽다니…이렇게 약한 생물이 귀여운가요? 왜 이걸 만드려고 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롤랑은 그루터기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켰다.


롤랑

아마도...그냥 심심해서.


회언은 눈앞의 남자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몰랐지만, 그를 수용하는 것이 그의 결정이라면 옳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회언

선생님께서 당신을 찾을 일이 있어요. 수고스럽지만 한번 와 주세요...그 분이 말하시길 당신에게 주는 인센티브라고 말씀하셨어요.


롤랑의 눈빛은 조금 바뀌었지만 표정은 흔들리지 않은 채 자신의 생각을 간파할 수 없는 캐릭터를 거의 무난하게 연기하고 있다.


롤랑

응, 그래? 그럼 빨리 가서 받아야겠네.


롤랑은 회언의 뒤를 따라 황무지를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나뭇가지에 놓인 종이접기 토끼를 보고 장난스런 미소를 지었다.


롤랑

부탁해...'하얀 토끼 아가씨'



회언

선생님...그를 데려왔습니다.


회언을 등지고 있던 남자는 밤하늘을 보며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하다가 회언이 왔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돌아섰다.



롤랑

여어, 본 네거트 씨. 나와의 약속을 잊지 않으셨군.


본 네거트

물론이다. 공정한 거래는 협력의 열쇠이며, 너의 일은 보수를 받을 가치가 있다.


롤랑은 웃으면서 인사를 하고 신사의 예의를 표했다.


롤랑

내가 제일 잘하는 걸 했을 뿐, 굳이 언급할 필요는 없어...하지만 나도 꽤 궁금해. 꽃의 힘을 들여 이중합모체에서 만들어 낸...두 괴물은 공중정원의 새로운 무기에 짓눌린 것 같은데.


본 네거트

인간이 궁지에서 내놓을 수 있는 최선의 답인 셈이지…. 결국 그들은 최고의 카드를 손에 넣어버렸다.


본 네거트는 반응을 살피는 듯 롤랑을 바라보았다.


롤랑

허...그러니까 역시 루나 양은 인간의 손에 떨어졌다는 거군. 왜 그들이 죽이지 않았는지 설명해 줄 수 있지. 대행자에게서 얻을 수 있는 비밀은 너무나 소중하니까.


본 네거트

그러나 확실히 전부는 아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들이 중간단계의 구조체만 만들었을 리 만무하지ㅡㅡ그러나 그들이 더욱 많은 것을 알수록 멸망에 가까워질 수 있다.


롤랑은 가타부타 어깨를 으쓱해 보이고, 튼튼해 보이는 줄기를 아무렇게나 찾아 기대더니 무심한 척 입을 열었다.


롤랑

그렇다면ㅡㅡ가장 중요한 루나 양은ㅡㅡ지금 어디에 있을까?


롤랑이 물을 것으로 예상했다는 듯이 본 네거트도 일찌감치 답을 준비했다.


본 네거트

루나는 우리가 항상 볼 수 있지만 닿을 수 없는 곳에 방치되어 있다.


롤랑

그게 뭔데? 수수께끼야?...참나, 이 가여운 인간이 끝까지 날 괴롭히려 할 줄은 몰랐는데...잠깐...


그러나 곧 롤랑은 본 네거트가 의도적으로 수수께끼를 말한 것이 아니라 그것이 사실이고, 그가 날마다 보고 있지만 간과하고 있던 사실이었음을 깨달았다.


하늘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롤랑의 얼굴이 환히 비치고 있었다.


롤랑

달...루나는 달나라에 있어?


본 네거트는 상당히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고 시선도 함께 달이 있는 쪽으로 향했다.


본 네거트

그녀는 현재 공중정원에 탑재될 예정인 메인엔진을 개발하는 연구소였던 공중정원 월면기지에 수감돼 있다.


본 네거트

그리고 이제 그곳에서 봉인된 영점 에너지 엔진이 다시 켜져 퍼니싱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오메가 무기'를 생산하기 위한 것이다.


롤랑은 턱을 만지작거리며 생각에 잠겼고, 동시에 그의 눈가에서 다른 한편에 회언이 있는 것을 보고는 흥얼거리며 아이디어를 냈다.


롤랑

어떻게 알고있는지 모르겠지만, 도대체 나도 당신이 한 말이 진짜인지 거짓인지 증명할 방법이 없잖아? 심지어 마리아나 해구에 있다고 날 속여도 거기에 갈 방법이 없는데?


회언

선생님은 결코 당신을 속이지 않아요. 달에 있다고 하신다면 루나는 분명히 달에 있을 거예요. 그리고 달에 어떻게 가야 할지...


회언은 본 네거트의 증언을 바라보았고, 그도 고개를 끄덕이며 화답했다.


본 네거트

부두...네가 설명해라.


본 네거트의 말이 끝나자마자 거대한 검은 그림자가 세 사람의 머리 위를 뒤덮었다가 천천히 내려앉았다. 그것은 '부두'라 불리는 수격자였다.



부두

'로키'는 사냥을 하다가 동쪽 20km 떨어진 폐도시 인근에 공중정원 병사들이 집결해 있는 것을 발견하고 한 병사를 붙잡아 조사했다….



부두?

장난이었어! 정보를 말할 때까지 장난치고 죽여버리는 거지!!


부두의 목소리가 갑자기 금속성을 띠고 귀에 거슬리게 들려왔다. 마치 이인형 구조체의 의식의 바다 결함에 따른 인격해리 현상인 것 같았다.


부두

결국 그곳의 폐허 아래에 아직 온전한 우주선이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 사람들이 단지 이 우주선을 타고 공중정원을 오가는 지상 인력을 원했을 뿐이라는 평가로 보아, 이 유형의 우주선이면 달로 향하기 충분해...


롤랑

그렇구나, 그럼 이 비행선을 한 발 먼저 잡으면 달나라로 가볍게 놀러갈 수 있을 거야.


다시 몸을 돌려 롤랑을 마주한 본 네거트의 가면 아래 표정에서 그의 희노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본 네거트

현재 루나는 승격 네트워크에 의해 봉쇄된 상태로 대행자의 힘을 잃었지만 대행자 자격을 잃지 않은 미묘한 상태다.


본 네거트

그녀의 존재가 인간에게 부정행위와 같은 기회를 준 것은 승격 네트워크를 방해하는 행위이므로 나는 네가 루나를 인간의 손아귀에서 구해 주기를 바라지만, 그녀를 구할 방법이 없다면...


본 네거트는 회언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미리 준비해둔 밀폐함을 꺼내라고 했다.



본 네거트

루나의 몸뚱이와 의식, 심지어 존재까지도 완전히 말살해야 한다.


롤랑이 봉인된 상자를 받아 열어보니, 그 안에는 진홍색 액체로 채워진 저장 탱크가 있었고, 그 액체의 중앙에는 끊임없이 부풀어 오르고 변형되는 창백한 살덩어리가 있었다.


회언

이것은 두 인간형 생명체를 잉태한 중합모체 안에 남아있던 줄기세포로 각종 물질과 에너지를 무궁무진하게 집어삼키며 성장하는 특성이 있습니다.


본 네거트

의외의 부산물인 셈이지, 지능은 별로 없지만 최소한 적과 아군을 구분할 수 있는 통제만으로도 충분하다.


롤랑

내가 이걸로 루나를 전부 집어 삼키길 바라는 거야?

 

본 네거트

그래, 루나를 구할 수 없다고 판단했을 때, 혹은....


본 네거트의 금빛 눈동자가 롤랑을 바라보며 후반의 말투를 조금 더 키웠다.


본 네거트

루나가 더 이상 대행자로서 구원받을 가치가 없다고 판단했을 때다.


롤랑은 함박웃음을 지으며 저장탱크에 다시 밀봉함을 넣은 뒤 팔짱을 끼웠다.


롤랑

그럼 난 언제 출발할까?


롤랑은 일부러 가볍게 본 네거트에게 물어보았지만, 뜻밖에도 대답은 곁에 있는 부두에게서 나왔다.


부두

'나'가 아니다. '우리'다.



까맣게 그을린 가운데 우뚝 서 있는 하얀 종이접기 토끼를 갑자기 한 손으로 살짝 들었다가 다시 세심하게 뜯으니 안쪽의 아주 얇은 암호화된 통신원본이 드러났다.



???

...


간단한 낭독 끝에 통신원본은 가볍게 뭉겨져 땅 위의 먼지로 변했다.


그녀는 바닥의 싱싱한 발자국이 사라진 곳을 한 번 쳐다보고는 동쪽을 향해 빠른 걸음으로 걸어갔다.


방금 뜯겼던 토끼는 다시 원래대로 나뭇가지에 놓였다ㅡㅡ


다만, 그 접힌 자국은 결코 처음처럼 회복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