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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화 : https://arca.live/b/punigray/47193433


지난날, 카레니나는 지칠 대로 지쳐 도망치는 것조차 할 수 없었던 몸으로 승격자에게 싸움을 건다는 어리석은 선택을 했다. 

그 덕에 공중정원에 큰 타격을 줄 수 있었던 승격자의 계획을 방해했으며 지휘관도 지켜낼 수 있었지만 그 대가로 그녀의 신체는 산산이 조각나 버렸다.


그렇게 이제는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그녀의 신체는 시각, 청각, 촉각은 물론이고 통각까지도 느낄 수 없어야 했지만 어째서인지 그녀는 또렷하게 모든 감각을 느끼고 있었다. 

'으윽… 젠장… 통각 센서는 진작에 망가졌는데, 왜 이렇게 아픈 거야!'


그것은 고문이었다. 그녀의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언제나 조각나 자기 신체의  파편이 굴러다니는 절망적인 광경이었고, 파쇄기에 갈려 나가는 듯한 고통을 계속해서 느끼고 있었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지옥, 그 안에서 그녀는 이 지옥 속에서 꺼내주겠다며 속삭이는 악마의 유혹을 받고 있었다.

 

"아직도 나의 힘을 받아드리지 않을 셈이야? 우리가 약속한 대가만 넘겨준다면 지금 당장 널 수리해줄게. 이 고통에서 해방되고 싶지 않아?"


그러나 카레니나는 고통 속에 신음하면서도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그 제안을 거절했다.


'네 힘 따위를 내가 필요로 할 것 같아? 난 절대 그 무엇도 너에게 주지 않을 거야! 그게 할아버지와 그리고 지휘관과 한 약속이니까.'

"그래? 그렇다면 한번 잘 버텨봐."

 

하루 또 하루 그렇게 얼마나 긴 시간, 고통을 참아야 했을까? 그녀는 차라리 이대로 정신을 잃고 싶은 심정이었다. 


"슬슬 한계일 텐데? 날 받아들이고 편해지는 게 어때?"

'닥… 쳐…!'


그런 와중에도 그녀의 의지는 꺾이지 않았는데, 그것은 언제 가져갔는지 모르지만 그녀의 집음 장치를 통해 들리는 지휘관의 목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일 것이다. 그녀는 이따금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를 정신적 버팀목 삼아 버틸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자신의 죽음을 슬퍼하는 지휘관의 울음소리만이 들려오던 그녀의 왼쪽 귀에서 갑자기 리브의 목소리가 들려오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 하웁… 후우, 너무 좋아요! 츕! 사랑해요. 지휘관님!"


달뜬 목소리로 울부짖는 리브의 목소리만으로도 지금 지휘관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명확하게 알 수 있었다.


이 순간 카레니나는 자기 신체가 갈기갈기 찢긴 탓에 느껴지는 통증 따위는 느껴지지도 않았다. 

'으아아악!!! 당장 지휘관에게서 떨어지지 못해? 내가 없는 틈에 무슨 짓이야!'


신체의 통증 따위는 느껴지지도 않을 정도로 마음이 천 갈래, 만 갈래로 찢기는 강렬한 고통 속에서 그녀는 한없이 소리 없는 외침을 질렀다. 


지금 이 순간, 리브가 지휘관을 도둑질하는 그 소리를 실시간으로 전달해주던 그녀의 집음 장치는 아이러니하게도 그동안 지휘관의 목소리를 전해주며 정신적 버팀목의 역할을 해주던 것이었다. 

그것이 지금 그 어떤 유혹에도 넘어가지 않던 그녀의 굳건한 의지를 부러뜨리고 있던 것이다. 


"미안해요. 카레니나, 그래도 이해해 줄 거죠? 당신도 지휘관님이 영원히 당신만을 기억하며 힘들어하시는 걸 보고 싶진 않을 거잖아요? 대신 지휘관님의 목소리는 쭉 들을 수 있도록 나도 당신을 어디에 버리진 않을 테니까. 우리 서로 조금씩 양보하도록 해요."


지휘관과의 정사를 끝마치고 리브의 마지막 한마디 말이 들려오자 카레니나는 더 이상 참지 못했다. 그녀는 리브의 말이 끝나자마자 흑염에게 말했다. 

'당장 힘을 넘겨… 지휘관을 제외한 모든 것을 넘겨줄게. 그러니까. 당장 내가 지휘관의 곁으로 갈 수 있도록 해줘!'


그동안 그녀의 그 말만을 기다려 왔던 '흑염'은 기뻐하며 말했다. 


"좋은 선택이야. 우선 쓸데없는 것들부터 지워나가자. 오로지 지휘관을 손에 넣는 것 그것 하나만을 생각하도록 해!"


카레니나의 허락이 떨어지자 그녀가 쌓아 온 인연들 중에서 떠올리려고 애를 써야 간신이 떠오르거나 이름만 어렴풋이 기억나던 사람들과의 인연부터 하나씩 사라져갔다. 

'내가 이런 사람도 만났었나? 어디서 봤었지? 원래부터 기억도 안 나는 녀석들, 이제 와서 사라진다고 해서 아쉬울 것도 없지.'


그러다가 점점 잊을 수 없는 얼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 상냥했던 할아버지를 죽게 만든 한 명의 소녀 '케이티', 지휘관의 처음을 빼앗아 간 것으로도 모자라 자신이 없는 틈을 타 지휘관을 유혹해 손에 넣은 '리브'와 같이 그녀의 기억에서 지우고 싶은 나쁜 년들의 얼굴이 흐려졌다. 

'그래 차라리 기억 속에서 지워버리는 게 나아. 괜히 떠올리면 기분만 잡치니까 말이야.'


그렇게 그녀의 마음속에 깊은 상처를 냈던 이들의 기억이 사라졌다. 그녀가 바램처럼 그들이 그녀의 기억 속에서, 추억 속에서 사라지는 것으로 그녀의 가슴속에 남아있는 상처는 과연 사라졌을까? 


그런 의문이 해소되기도 전에 그녀와 사이가 나쁘지 않았던, 아니 그녀에게 소중한 사람이라고 불릴 법한 그런 이들의 면면이 점차 흐려져 갔다. 

피닉스 소대에서 종종 투닥이며 좋은 관계를 쌓았던 '나나미',  피닉스 소대에 오기 전에 종종 함께 임무를 하며 언니처럼 자신의 투정을 받아주었던 '비앙카', 그리고 와 마지막으로 상냥했던 '할아버지'까지… 

'잠깐! 할아버지는…'



소중한 사람들의 기억마저 사라져 가자 불안해진 카레니나가 망설임을 보이자 흑염은 그녀에게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에게 가장 소중한 건 지휘관 아니야? 그를 손에 넣기 위해서 이미 많은 것을 포기했는데 여기까지 와서 그만둘 생각은 아니겠지?"


'맞아… 이미 난 너무 많은 것을 포기했어… 이제 와서 멈추기엔 너무 늦었어… 미안해 할아버지… 이만 사라져줘.'


그녀가 나지막한 중얼거림을 마지막으로 그녀의 머릿속에서는 더 이상 그녀의 어린 시절을 보듬어줬던 할아버지의 모습은 남아있지 않았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오로지 지휘관만이 남아 버렸다. 


지금의 그녀를 카레니나라고 불러도 되는 걸까? 

지금 이 순간 '카레니나'는 지휘관에 대한 집착만을 가진 괴물이 되어버렸다. 


카레니나는 자신의 그토록 바라왔던 절대적인 힘과 함께 새로운 신체를 손에 넣었다.


"이게 내 힘인가? 내가 이걸 포기하려고 했다는 거지? 하… 내가 이걸 포기하려고 했다니, 정말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다 나오네."


그녀는 스스로의 힘에 취해 한참을 미친 듯이 웃었다. 

그러고 문득 자신에게 힘을 전해준 흑염의 존재가 떠올랐다. 그녀는 그것에게 고마움을 전하려고 했다. 


"어이! 아직 내 머릿속에 있어?"


하지만 그녀가 아무리 불러도 더 이상 '흑염'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야! 계속 귀찮게 떠들었으면서 이젠 아무 말도 없는 거냐? 뭐 상관없지. 고마워 이 '힘'를 내게 줘서!"


'……'


항상 머릿속에서 잔소리하던 존재에게서 아무런 대답도 들려오지 않자 그녀는 더 이상 흑염에 대해 잊어버리기로 했다. 이제 그녀의 의식 안에 남아 있는 것은 정말 지휘관 단 한 명뿐이었다. 


"기다려 지휘관. 이제 내가 데리러 갈 테니까."


그렇게 카레니나… 아니 '카레니나'를 바탕으로 새롭게 태어난 그녀는 자신의 기억 속의 유일한 존재인 지휘관을 손에 넣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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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닉스 소대는 오늘도 손쉽게 임무를 완수했다. 나나미의 신 기체 덕에 카레니나의 전력의 공백은 느껴지지도 않았고 리브의 부담도 전보다 줄어들었다. 


하지만 지휘관은 전투가 있을 때마다 전보다 더 심각하게 리브의 안위를 살폈다. 그의 걱정어린 관심을 받는 것이 썩 나쁘지는 않은 듯 리브는 기운차게 웃으며 자신은 괜찮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말에도 지휘관은 쉽사리 염려를 거둬들이지 않았다. 

'내가 잘 살펴야 해, 그녀가 퍼니싱을 정화할 수 있는 건 맞지만 그 능력은 만능이 아니라는 것을 이제는 알고 있으니까 말이야.'  


최대한 그녀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하는 그의 행동은 반대로 다른 한명의 부담으로 작용하였는데, 그 대상은 바로 나나미였다. 

그녀는 일전에 지휘관과 리브의 애정행각을 눈앞에서 봐버린 데다가 리브에게 '넌 나에겐 상대도 안 돼!' 라는 말과 다름없는 소리까지 듣고 나서 말수가 눈에 띄게 줄어버린 그녀였다. 


조금만 힘이 들어도 재깍재깍 이야기했던 것과는 다르게 이제는 지휘관에게 말을 섞는 것이 싫어 아무리 힘든 일정이라도 불평 하나 없이 묵묵히 일했다. 


그러면서도 지휘관이 별로 힘든 것도 아닌 임무를 수행한 리브만 걱정하는 것을 보면서 내심 짜증을 냈다. 

'칫, 내가 더 힘들었는데… 요즘 리브보다 내가 더 위험한 곳에 투입되고 있는데…'


하지만 그런 그녀의 수고는 지휘관의 관심에서 조금 벗어나 있었고 의도하지 않았지만 나나미의 불만은 순소롭게 쌓여만 갔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이렇게 서로 간에 마음이 맞지 않았는데도 임무를 진행하는 과정에서는 조금의 삐걱거림도 없이 순탄하게 완료되었다. 


임무를 마치고 돌아가려는 피닉스 소대에게 사령부에서 한가지 임무를 맡겼다. 

'태양풍이 심해져 이번에 발생한 피난민을 보호할 부대를 추가 파병이 불가능해졌으니, 태양풍이 잠잠해진 후 파병될 새로운 전투 부대가 도착할 때까지만 그들을 보호해라!'


애초에 공중정원에서 지상으로 강하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자신들도 돌아가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 지휘관은 별다른 불만 없이 사령부의 명령을 받아들였다. 


"태양풍의 영향으로 후속부대가 올 수 없다고 하니 우리가 피난민분들이 정착할 수 있을 때까지 보호하라는 사령부의 명령이에요. 다들 힘들겠지만 조금만 더 힘을 내죠!"


갑작스러운 임무 연장 소식에 리브는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네!? 지휘관님 가지고 계신 혈청은 충분하신가요?"


"적어도 3달은 더 지상에 머무를 수 있을 만큼 충분해요. 오히려 리브야 말로 점검받지 않아도 괜찮아요?"


"네 저도 문제없답니다."


그렇게 두 사람이 서로를 걱정해주는 모습이 눈꼴 시었는지 나나미는 슬그머니 그 장소에서 나왔다. 


리브와 지휘관에게서 도망치듯이 나나미는 달렸다. 그렇게 주변에 아무것도 없고 피난민들도 찾아오지 않을 법한 곳에 도착하고 나서야 그녀는 달리는 것을 멈추었다. 


그녀는 가쁜 숨을 내쉬고 나서는 목청이 터져라 외쳤다. 

 

"두고봐! 내가 꼭 너희 둘을 갈라놓을 테니까. 리브랑 지휘관, 둘이서만 행복하게 노는 꼴을 두고만 보지는 않을 테니까!" 


한에 사무쳐 크게 고함을 치고 나자. 왠지 모를 허무함이 밀려 들어왔다.

아직도 지휘관에 대한 애정이 남아있어 그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사실이 슬픈 것은 아니었다. 이제는 그녀의 마음에는 지휘관이나 리브나 둘 다 불행하게 만들어주고 싶은 사람에 불과했고 자신들의 관계가 이렇게 되어버린 것에 회의감이 든 것이었다.


"차라리 카레니나가 있을 때는 이러진 않았는데…"


그녀가 한숨을 쉬며 한탄하고 있자 그녀를 향해 익숙한 인물이 다가왔다. 나나미는 그녀를 보고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


"카레니나?! 살아있었어? 왜 이제서야 온 거야. 어서…"


나나미가 반가운 마음에 그녀를 향해 포옹하려고 달려들었지만 카레니나는 이미 그녀가 알던 카레니나가 아니었다. 그녀는 달려오는 나나미의 목을 붙잡고 말했다. 


"지휘관은 어디야? 여기 어딘가에 있다는 건 알고 있으니까. 당장 말해!"


목을 붙잡힌 나나미는 '켁켁' 거리면서 카레니나의 질문에 답했다. 


"저쪽… 내가 왔던 길을 따라서 가면 지휘관이 있을 거야…"


그 말을 듣자마자 카레니나는 나나미를 집어 던지더니 지휘관을 향해 달려갔다. 


카레니나의 손에서 풀려난 나나미는 땅바닥에 대자로 누워 하늘을 보며 생각했다. 

'카레니나가 살아있었어… 지휘관은 분명히 카레니나와 연인 관계였었지?'  


나나미는 카레니나에게 당해 부상을 입었는데도 아랑곳 하지 않고 이제 곧 지휘관을 빼앗겨 울먹일 리브를 상상하며 키득거리기 시작했다. 

'리브는 결국 닭 쫓던 개가 된 거네? 꼴좋다. 이걸로 지휘관은 리브와 맺어질 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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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나미가 가리킨 방향으로 쭉 달려간 카레니나든 얼마 지나지 않아서 피난민 캠프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곳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다. 소중한 사람을 잃어 삶의 의지를 잃은 눈빛을 하고 있는 사람, 살아남은 것만으로도 감사하는 사람, 부서진 마을을 재건하겠다는 희망으로 가득한 사람도 있었고 이대로는 어차피 죽게 될 것이라며 비관적인 사람도 있었다. 


이렇게 다양한 사람이 있었지만 카레니나의 눈에는 다 거기서 거기였다. 오직 지휘관만을 원하는 그녀에겐 다른 인간들 따위는 그림자와 다름없었다. 

수많은 인간과 천막으로 가려져 어딘가에 있을 지휘관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카레니나는 짜증이 올라왔다.


"분명히 지휘관은 여기쯤 있는데… 이 거추장스러운 것들에 가려서 안 보여… 대체 어디야? 지휘관! 어디 있는 거야!"


그녀는 다짜고짜 눈에 비치는 그림자를 하나를 베어 버렸다. 그러자 그녀를 가로막는 장애물 하나가 사라진 기분이 들었다. 

그녀는 지휘관을 손쉽게 찾을 방법을 발견한 기분이 들었다. 


"히히… 이대로 전부 죽이고 부쉬버리면 지휘관이 보일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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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피난민 캠프의 한가운데에서 피난민들이 살아갈 거주용 가건물을 세우고 있던 지휘관은 외곽에서부터 들려오는 시끄러운 비명을 들었다. 

그는 당장 소란의 중심을 향해 달려갔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요?"


카레니나가 저지른 학살의 현장으로부터 살아 남기기 위해 도망치던 피난민들은 자신들을 구해줬던 공중정원의 지휘관을 마주하고는 '살았다!'라는 얼굴을 하고 그에게 말했다. 


"저쪽에 침식체가 나타났어. 그녀가 살아남은 인간들을 학살하고 있어 제발 우릴 살려줘…"


"제가 가볼게요. 여러분들은 리브와 소피아에게 가서 치료받으세요."


지휘관은 도망치는 이들을 리브와 소피아에게 가도록 한 뒤 나나미에게 연락했다. 


"나나미! 지금 어디예요? 캠프에 침식체가 나타났어요. 지금 당장 준비해서...


나나미와" >..."


나나미와 통신이 연결되자마자 그녀에게 급히 상황을 설명하던 지휘관은 화면 속에 나나미가 상처를 입은 것을 보고 말을 멈췄다. 


"이게 무슨… 대체 누구에게 당한 거에요? 설마 침식체에게? 거기 어디예요? 당장 데리러 갈게요. 나나미! 대답 좀 해봐요."


어디 하나 성한 곳이 없어 보이는 나나미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자 지휘관은 다급하게 외쳤다. 


나나미는 그의 외침을 듣고나서 피식하고 웃었다.

'여전히 착해 빠져가지고.'


"나나미는 카레니나에게 당했어… 지금 카레니나가 캠프를 향해 가고 있을 거야. 아니 이미 도착했으려나? 아마 지휘관이 침식체라고 하는 게 카레니나일껄? 나나미는 이대로 조금 쉬다 돌아갈게 지휘관은 카레니나를 잘 설득해서 막아줘."


자신의 상황과 침식체의 정체에 대해 말하는 나나미의 목소리는 어딘지 모르게 기뻐보였다.

지휘관은 그녀의 웃음기를 보고 지금 그녀가 장난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 죽어가고 있는 심각한 순간에 이런 말도 안 되는 장난을 치는 나나미에게 한 마디 따끔하게 혼을 내주려고 한 지휘관은 등 뒤에서 들려오는 그리운 목소리를 듣고 입을 열지 못했다.


"지휘관! 지휘관이구나? 나야 카레니나! 널 만나러 이렇게 돌아왔어!"


그 목소리를 듣고 돌아보자 그녀는 수많은 피난민의 피를 뒤집어쓴 채 환하게 웃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지휘관은 그런 그녀의 모습은 보고 싶지 않았다. 

카레니나가 인간을 죽이는 그런 모습… 마치 침식체가 되어 이성을 잃은 채 인간을 학살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자 지휘관은 되살아난 그녀를 만났다는 기쁨보단, 일반인을 학살하고 있는 그녀에 대한 원망이 더 컸다.

그리고 그 감정은 뒤이어 외친 그의 말속에 듬뿍 묻어 나왔다. 


"카레니나… 이게 대체 무슨 짓이에요! 왜 이런 짓을 하는 거예요? 왜… 퍼니싱에 감염되어 버린 거에요!"


그 말을 듣고 지휘관은 만남 기쁨에 더 없을 정도로 환하게 웃고 있었던 카레니나는 표정을 구겼다. 그러고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나는 지휘관을 만나기 위해 모든 걸 포기하고 왔는데, 지휘관은 고작 이런 구더기를 몇 마리 죽인 걸 가지고 나를 거부하는구나." 


안타깝게도 그녀의 중얼거림은 지휘관에게 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그녀의 움직임이 멈춘 사이에 피난을 유도하여 다른 이들이 그녀로부터 멀어지도록 했다.


"다들 당장 저 침식체에게서 떨어지세요!"


그리고 그는 무기를 손에 들고 천천히 그녀를 경계하며 다가왔다. 


자신을 적대하는 그의 모습을 보고 카레니나는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그녀는 괜찮았다. 그동안은 그를 보는 것조차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지금 눈앞에 지휘관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괜찮아…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지만 나는 분명 더욱 아팠던 순간도 참아냈는걸… 지휘관의 오해는 천천히 풀어나가면 돼.'


그녀는 자신의 무기를 땅바닥에 내려놓았다. 


"지휘관, 나는 퍼니싱에 감염되지 않았어. 그냥 지휘관을 만나는데 거슬려서 죽인 것뿐이야. 약속할게. 지휘관이 나에게 와준다면 이 장소에 있는 그 누구에게도 손대지 않을 거야."


지휘관은 의심스러우면서도 지금 당장 그녀를 따르는 것 이외엔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믿는 수밖에 없어… 카레니나가 침식체가 되었다면 어차피 나 혼자로는 막을 수 없으니까… 내가 잡히는 것만으로 모두를 지킬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해.'


"정말로 침식체가 된 것이 아니에요? 내가 카레니나와 함께 가면 누구도 손대지 않을 거죠?"


"응! 그리니까 빨리 나에게 와. 내 인내심을 여기에 널린 구더기들로 시험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면, 빨리 달려와!"


머뭇거리던 지휘관은 카레니나의 말을 듣고 그녀에게 다가가려고 마음을 굳혔는데, 그 사이 리브는 카레니나의 공격으로부터 가까스로 도망친 피난민들에게 지휘관이 홀로 침식체를 막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리브는 그 말을 듣자마자 지휘관을 향해 날아올랐다. 다행스럽게도 아직 지휘관과 카레니나는 아직 그 자리에 있었다.


"어딜 가시려는 거에요? 지휘관님 가시면 안 돼요!"


조금만 있으면 지휘관이 스스로 자신의 품으로 들어오려는 순간, 방해가 들어오자 카레니나는 짜증이 났다.

'저년은 누구지? 저년의 얼굴을 보니까 짜증이 치밀어… 그리고 지휘관은 왜 저년이 오니까 미적거리는 거야! 혹시라도 지휘관이 이대로 저년에게 돌아가는 건 아니겠지? 아냐… 아닐 거야… 지휘관 어서 나에게로 와. 안 그러면…'


카레니나는 아직 이 자리를 피하지 못한 피난민을 가리키며 말했다.


"지휘관! 당장 오지 않으면 그 뒤에 있는 녀석들을 전부 죽여버리겠어! 지휘관이 나만을 바라보겠다고 울며 매달릴 때까지 저 녀석들을 전부 죽이고 또 태워 줄 테니까!" 


지휘관은 리브의 등장에 혹시나 하고 잠시 걸음을 멈추었지만 카레니나가 피난민들의 목숨을 걸고넘어지자 저항을 포기했다. 

'카레니나가 정말로 민간인을 죽이는 데 전념한다면 리브 혼자서는 그녀를 막을 수 없어…'


지휘관은 계속해서 나아가 카레니나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잠시 뒤돌아 리브에게 외쳤다. 


"리브, 후속부대가 도착할 때까지 이곳을 잘 부탁해요. 그리고 나나미가 다쳤으니까. 수색해서 치료해 주세요."


지휘관은 피난민들을 부탁하고 카레니나에게 걸어갔다. 하지만 그 행동을 보고만 있을 리브가 아니었다. 

'카레니나, 곱게 죽어 버릴 것이지… 지휘관님의 앞이라고 해서 침식체가 된 널 내가 그걸 가만히 놔둘 것 같아!'


지금 이 순간, 리브의 역원 장치에는 퍼니싱 반응이 감지 되고 있지 않았지만 그녀는 눈앞에 카레니나가 퍼니싱에 감염된 침식체라고 단정 지었다. 

그것 말고는 카레니나의 부활을 설명할 방법이 없었던 것도 있지만, 눈앞에 카레니나에 대한 적개심으로 인해 사고가 좁아진 탓에 리브는 자신에게 편한 방향으로 생각하고 말았다. 


리브는 또다시 눈앞에서 카레니나에게 지휘관을 빼앗길 수 있다는 공포에 리브는 지금껏 내본 적도 없는 출력을 냈다. 

그동안은 '백야'의 폭주로 인해 자신이 사라지게 될까 두려워 넘지 못했던 선, 그녀는 그 선을 가뿐하게 넘어버리고 말았다.


그 결과는 굉장했다. 해당 구역 안에 퍼져있던 퍼니싱이 모조리 끌려 들어와 정화되는 이 구역은 이후 퍼니싱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될지 모른다. 하지만 그 대가로 리브의 정신을 서서히 갉아 먹히고 있었다. 

그리고 그 정신을 갉아 먹히는 고통에 리브는 그대로 머리를 부여잡고 쓰러지며 비명을 질렀다. 


"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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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관은 공기 중의 퍼니싱의 농도가 옅어지는 것을 넘어 사라져 가는 것을 느끼는 동시에 리브가 고통스러워하며 쓰러지는 것을 보았다. 

그의 뇌리에는 지난날 사령관의 방에서 얻은 '백야'에 대한 설명의 내용이 스쳐 지나갔다.


"리브 당장 멈춰요. 이대로라면 폭주하고 말아!"


지휘관은 지금 누구의 손을 잡고 있었는지도 잊은 채, 그 손을 뿌리치고 고통스러워하는 리브의 곁으로 다가가려 했다. 


"어딜 가려고! 네가 날 떠나도록 허락해 줄 것 같아? 넌 아무 데도 못 가!"


그러자 카레니나는 그의 손을 더욱 단단히 부여잡고 그를 잡아당겼다. 지휘관은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하고 힘없이 카레니나의 품에 안겼고 카레니나는 발버둥 치는 지휘관의 허리를 감싸 안아 그 자리를 이탈했다.

그 사이에도 리브에 대한 걱정으로 헛된 발버둥을 치는 지휘관에게 카레니나가 말했다. 


"지휘관, 포기해 저건 이미 늦었어, 체내에 저렇게 고농도의 퍼니싱을 받아드렸는데 멀쩡할 리가 없어."


그 말을 듣고 지휘관은 울컥하는 마음에 따지듯이 외쳤다.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어요? 리브는 카레니나의 동료잖아요. 둘이 사이가 좋은 건 아니었지만 서로를 위해주는 사이였잖아요. 그런데 갑자기 왜!"


지휘관의 말에 카레니나는 진심으로 모르겠다는 듯 고갤 갸웃거리며 말했다.


"리브? 그게 누군데? 난 몰라, 지휘관을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한 나에겐 정말로 지휘관밖에 남지 않았거든 그러니까 제발 나에게서 떨어질 생각 하지 말아줘."


지휘관은 그 말을 듣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는 그녀의 말에서 짐작이 가는 곳이 있었다.


"그게... 그게 무슨 소리예요? 모든 것을 포기했던 게 설마!" 


이전에 유적지에서 발견했던 '흑염', 카레니나의 기억을 탐내던 그것이 아직 그녀의 안에 남아있었단 말인가? 

지휘관은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카레니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아니죠? 다 기억하고 있는데 장난치는 거죠? 비앙카씨는요? 나나미랑도 곧잘 투닥이면서도 둘이 잘 지냈었잖아요." 


하지만 지휘관의 기대와는 달리 카레니나는 전혀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는 듯이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그러자 지휘관은 다급하게 외쳤다.


"할아버지! 어릴 때부터, 카레니나를 아껴주셨던 할아버지는요? 설마 그분도 기억 못하는 거예요?"


"몰라! 모른다고! 나한테는 너만 있으면 돼! 그 밖에는 아무것도 필요 없단 말이야! 필요한 것을 위해서 필요 없는 건 버리는 게 당연한 거잖아!" 

 

지휘관은 그 말을 듣고 모든 저항을 그만뒀다. 더 이상의 저항은 소용없는 짓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 아니라 자신의 절조없는 행동으로 인해 주변 사람들을 이렇게나 망가트려 버렸다는 사실이 그를 아프게 했기 때문이다.

'리브도 카레니나도 전부 나 때문에… 전부 내가 똑바로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렇게 되어버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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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제법 긴 시간 카레니나에게 들려서 이동한 그곳에는 지휘관과 카레니나, 그 두사람이 앞으로 살아가기에 적당한 규모의 거주지가 있었다. 


카레니나는 앞으로 지휘관과 살아갈 둘만의 아지트에 도착하자마자 그를 데리고 욕실로 달렸다. 

고된 임무를 수행 중이었기에 제법 오랜 시간 쉬지도 못하고 씻지도 못해, 흙먼지가 붙어있고 피곤함에 절어 있는 그의 모습을 보고 우선 그가 편안하게 쉴 수 있도록 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 지휘관이랑 사랑을 나누는 것은 그가 체력을 조금 회복한 뒤에 해도 늦지 않아.'


사실 그의 상태가 어떻든지 그를 사랑할 자신이 있는 카레니나는 당장이라도 지휘관을 덮치고 싶었지만 그러다 '그의 건강이 상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함에 욕망을 꾹 눌러 참았다.


카레니나는 지휘관의 의복을 벗기고 욕실에 들어가 그의 몸에 물을 끼얹으면서 말했다.


"지휘관, 많이 피곤하지? 우선 씻자, 그리고 식사를 준비해줄게, 오늘은 푹 쉬어."


카레니나를 방해하려던 구조체는 스스로 자멸해 버렸고 이 아지트까지의 길에 추격은 없었다. 그러고 나니 카레니나는 이제, 그가 절대로 자신에게서 벗어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그녀의 마음속에 여유가 생겼고, 그녀는 지휘관을 납치할 때와는 달리 부드러운 어조로 그를 대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지휘관이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그는 카레니나에게 자기 육체를 맡기기는 했지만 그녀의 말에는 무엇하나 대답하지 않았다. 


"물 온도는 좀 어때?"


"…..."


"시원하지? 임무 중이라 좀처럼 씻을 수 없었잖아."


"…..."


그렇게 일방적으로 카레니나가 지휘관에게 질문을 하고 지휘관이 침묵으로 답하는 사이에 지휘관의 몸을 다 씻겼다.

 

카레니나는 자기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해주지 않는 지휘관의 행동이 조금 서운했지만 조금만 기다리면 달라질 것이라고 믿었다. 그녀의 기억 속에 상냥했던 지휘관으로 돌아와 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제 식사하러 가자, 지상에 내려온 이후로는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못했지? 이제부터는 내가 매일매일 지휘관이 좋아하는 요리를 해줄게. 조금만 기다려."

 

카레니나는 그 말을 하고 지휘관을 식탁에 앉혀두고 요리하러 가겠다고 했다. 그런데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았고 힘없이 축 늘어져 있어 지휘관은 도망치지 않을 것처럼 보였지만 그녀는 조금의 방심도 하지 않았다. 

혹시나 자기 눈이 닿지 않으면 지휘관이 도망갈까, 카레니나는 지휘관의 양 다리를 의자에 묶어두고 주방으로 들어갔다. 


그런 그녀의 그 생각은 결과적으로 틀리지 않았다. 모든 것을 포기한 듯 보였던 지휘관은 카레니나가 자기 다리를 의자에 구속하는 것을 보고 내심 새우고 있던 계획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젠장… 이렇게까지 하는거야? 이러면 도저히 도망치는 건 무리야…'


지휘관이 어떻게든 이 구속을 풀기 위한 사투를 벌이는 동안 구속이 조금도 헐거워지지 않았는데 벌써 카레니나가 음식을 들고 나타났다. 


"오래 기다렸지? 자, 지휘관이 좋아하는 닭 날개 만두!"


지휘관은 평소 자신이 좋아하는 요리가 나왔음에도 손이 가질 않았다. 

납치당해 묶여 있는데 자신이 좋아하는 요리가 나왔다고 해서 그걸 넙죽 받아먹는 쪽이 이상한 것이리라, 하지만 그런 지휘관의 모습을 보고 카레니나는 서서히 인내심이 바닥이 나고 있었다. 


카레니나는 마지막으로 참는다는 마음으로 요리에 손도 대지 않는 지휘관에게 손수 먹여주려고 했다. 


"왜 그래? 입맛이 없어? 그래도 먹어야 기운이 나지 자 아~ 해봐."


"…..."


하지만 자신이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지휘관에게 돌아오는 것은 침묵뿐이었다. 

그러자 드디어 카레니나의 인내심이 바닥이 났다. 자신이 이렇게 까지 했는데, 지휘관은 자신에게 마음을 열 생각을 하지 않자 꼭지가 돌아버린 것이다. 

'나에게는 지휘관밖에 없는데 왜! 지휘관은 나를 봐주지 않는 거야!'


카레니나는 식사를 시키려는 것을 포기하고 일어서서 지휘관을 침실로 거칠게 끌고 갔다. 


지휘관과 함께 생활하기 위해 꾸며둔 침실은 그가 생활하기에 불편하지 않도록 공중정원에서의 그의 방과 크게 다르지 않게 꾸며두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이 더욱 카레니나를 화나게 했다. 

'나는 널 위해 이렇게까지 했는데… 왜 날 이렇게나 거부하는 거야!'


화가 머리끝까지 난 카레니나는 지휘관의 옷을 '후두둑'하고 거칠게 벗겨내고는 그를 침대 위에 던져 버렸다.

그리고는 그의 위에 올라타서 그의 고간을 부드럽게 자극했다. 


"이래도 계속 날 무시할 수 있을까?"


자신있게 지휘관을 발기시키려던 카레니나는 지휘관의 음경이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자 오히려 당황했다. 

'분명히 지휘관은 이런 유혹에 약했었는데… 왜 아무런 반응도 없지?'


리브가 미리 지휘관의 혈관에 약물을 주사해 놓은 탓에 중화제를 경구 섭취 하지 않으면 자지가 서지 않는다는 사실을 카레니나가 알 수 있을 턱이 없었고 그녀의 분노 수치는 낮아질 줄 모르고 올라가기만 했다.  


"하… 이렇게까지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겠다 이거야? 뭐 좋아 그렇다면 나도 다 생각이 있어."


잠시 지휘관에게서 등 돌린 카레니나가 불길하게 웃으며 지휘관을 향해 몸을 돌리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까 나는 너의 동정을 받을 수 없었지? 그래도 이렇게까진 안 하려고 했었는데, 네가 이렇게 나온다면 너의 처음을 지금 받아야겠어, 너의 처녀를 받을 거야!"


잠시 등을 돌린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다시 마주한 카레니나의 고간에는 검은 불길이 용솓움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 불길을 지휘관의 엉덩이를 밀착시키는데 그러자 지휘관은 목욕탕의 열탕에 닿았을 때 같은 화끈함을 느꼈다. 그리고는 이제서야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그게 무슨! 잠깐만요 제발 멈…춰어!!!"


지휘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화끈화끈한 느낌이 직장을 타고 들어오는 것을 느끼면서 지휘관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카레니나가 흑염의 열기를 조절하여 화상을 입지는 않았지만 화끈한 무언가에 의해 청년막이 뚫리는 그 당혹스러운 고통은 지휘관으로 하여금 울부짖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멈춰어! 당장 뽑아줘요. 제발 그만!!"


드디어 침묵을 지키던 지휘관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자 카레니나는 성취감과 닮은 희열을 느끼고 있었다. 

그녀는 그동안 자신과의 대화를 무시했던 것처럼 제발 멈춰 달라는 지휘관의 애원도 무시해 주기로 했다.

카레니나는 서서히 허리를 당겼다고 지휘관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순간 흑염을 다시 그의 직장 깊숙한 곳까지 밀어 넣었다.

 

"하아… 힉! 다시 집어넣지마아!!"

 

아쉽게도 흑염은 카레니나의 신체의 일부가 아닌지라 흑염으로부터 지휘관의 직장이 고통에 꿈틀대는 감각은 느낄 수 없었지만, 지휘관의 처음을 자신의 손으로 빼앗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흥분하고 있었고 그런 그녀에게 고통스러워하는 지휘관의 목소리 그녀를 더욱 흥분시키는 양념에 지나지 않았다.


"지휘관! 지휘관! 괴로워? 그만둘까?"


"제발, 이제 그만… 제발 멈춰!" 


"바보~ 그만둘 리가 없잖아!"


카레니나가 지휘관의 엉덩이를 탐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고 있는 흑염은 그녀가 원하는 모양으로 자유자재로 바꿀 수는 있지만 그것이 하나의 생물채는 아니었다. 

그렇기에 남자의 그것과는 다르게 사정이라는 행위의 마지막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물론 카레니나가 원하지 않는다면 그것의 형태가 작아진다거나 단단함이 줄어든다거나 하지 않는다.

즉, 이 행위의 끝은 그녀가 그만두고 싶어질 때까지인 것이다. 그렇게 지휘관은  카레니나가 엉덩이를 탐해졌다.


몇 시간이나 시간이 지났을까? 흑염의 열기가 더 이상 뜨겁게 느껴지지 않게 될 정도로 그것이 직장에 박혀있는 것에 익숙해졌을 무렵 날이 어둑해졌던 밖이 밝아오기 시작했다. 


창문 사이로 햇빛이 비치자, 정신없이 지휘관의 엉덩이를 탐하던 카레니나는 번뜩 정신이 들었다.


"벌써 해가! 설마 나 밤새도록 이러고 있었던 거야?!"


그녀는 그재서야 흑염의 형태를 풀고 지휘관을 해방해주었다. 밤새 시달린 지휘관은 그 해방감을 느낄 새도 없이 기절해 버렸다. 카레니나는 기절한 지휘관을 침대에 눕혔다. 

그리고 그의 곁에 누워서 그를 마주 보며 말했다. 


"지휘관, 미안해 그래도 다음에는 이렇게까지 힘들게 하진 않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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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완결 목표치가 점점 늦어져서 먄...

마침 카루니나 투표가 남캐 부문에 들어갔다길래 내용을 조금 바꿔보았음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