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효계한 19-12 : 미래 이야기


이 메시지를 볼 수 있다면, 그때가 되면 나에게 이야기해 주기를, 당신에 대한 이야기, 미래에 대한 인류의 이야기를...



그린스

후후, 이번 신형 특화 기체의 성공으로 의회 쪽에서 '정당하게' 발언권을 얻을 이유가 하나 더 생겼군.


레베카

그 두 글자가 당신의 입에서 나오다니, 참 익숙하지 않네요.


그린스

조금 잘못 알고 있는데 말야, 난 규칙을 어기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야. 단지 때때로 규칙을 위반하는 비용이 너무 낮아서 그랬던 것뿐이라고.


레베카는 이 남자와 말다툼을 하는 것이 결코 득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회의실에 있는 다른 두 사람에게 주의를 기울였다.


그린스

리스트, 30분 뒤면 세계정부 상무회의인데 그때는 외교원 의원으로서 참석할 거야, 의제 준비는 어떻게 됐나?


리스트는 고개를 끄덕이며 미리 준비해둔 의제를 그린스에게 건넸다.


리스트

이미 준비는 되어있다. 이번에는 노르만 광업그룹의 책임자가 시민대표로 의회에 참석하게 될 거다.


레베카는 그 리스트가 데리고 온 남자를 보았다. 꽃무늬 같은 옷과 장식을 입은 주제에 부잣집 도련님 행세를 하고 있던 그는 그녀의 시선을 알아차린 후, 자신을 향해 윙크를 던져 어이를 상실하게 만들었다.


그린스

이번 회의에서 시간만 된다면 승격자 연구를 전면에 내세울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고, 그놈들이 인류의 새로운 진화 가능성을 보게 된다면 반드시 나를 이해하게 될 거야.


그린스는 손에 든 개요를 들추면서 레베카를 향해 손가락을 튕겼다.


레베카

저는 그린스와 함께 가서 승격자 연구에 대한 자료를 정리할 테니까 의회 쪽 일은 이번에 리스트 당신에게 맡기도록 하죠.



노르만

미스 레베카, 그리고 저도 열심히 힘을 보태드리죠.


레베카

그럼 당신들에게 맡기도록 하죠...



그린스

리스트…내가 참 늙어서 아무래도 노안이 온 모양인데, 너의 이 추상적인 의제 개요에서부터 뭐라고 썼는지 설명해 줄 수 있을까?


갑자기 레베카의 등뒤에서 그린스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이전과는 달리 위협과 분노로 가득 찼다.


리스트

회의에서 재가동이 완료된 영점 에너지 원자로와 엔진 프로그램을 공중정원 등에 탑재해 성간 이민함으로서의 기능을 재개하고 인류를 태우고 지구에서 멀리 떠날 것을 건의할 거야...


리스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린스는 들고 있던 개요 파일로 그의 머리를 내리쳤다. 리스트는 숨지도 않고, 종이가 억지로 그의 얼굴을 두드리는 것을 내버려 뒀다.


그린스

이 새끼가, 날 배신할 셈이냐!


이 안건의 가치에 대해 그린스는 잘 알고 있었다. 그가 의회에 제출하도록 하면 분명 설득력과 타당성을 견지할 수 있을 것이라 여겼었다.


리스트는 무표정한 얼굴로 땅바닥의 종이를 주워담으며 꼼꼼하게 정리했다.


리스트

당신은 비록 쿠로노에서는 나의 상급자이지만, 엄밀히 말하면 나는 결코 당신의 부하가 아니야. 나의 일은 기껏해야 당신에게 협조하는 것이지, 당신에게 맡기는 것은 아니니까 이것은 결코 배신이 아니야.


리스트

그리고 승격자에 대한 당신의 집착은 조직의 한 프로젝트에 대한 투입량을 넘어섰다. 승격자에 대한 연구는 리스크를 재평가할 때까지 무기한 연기될 거야.


그린스는 앞으로 달려들어 리스트의 멱살을 잡고 벽 쪽으로 그를 눌렀다.


그린스

도대체 언제부터 이 모든 걸 계획하고 있던 거냐...


리스트

'대어를 낚으려면 미끼를 아끼지 말라'…목적을 달성하려면 당연히 크면 클수록 좋아. 당신과 나를 함께 미끼로 삼아야 한다 해도 마다하지 않을 거야.


리스트

어쨌든…나는 공중 정원을 보호하여 인류를 위한 최선의 길을 선택해야 한다.


그린스는 리스트의 모습을 보면서, 비로소 침착하고 무자비해 보이는 이 남자가 사실은 마찬가지로 영락없는 미치광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깨닫게 되었다.



감염체의 수가 늘어나면서 퍼니싱의 농도도 점점 높아지고 있었다.


카레니나

【삐ㅡㅡ!】, 여기서 더 이상 매달리고 있을 시간 없어…밖으로 끌어내야 해!


감염체

치익! 치이익ㅡㅡ!!


카레니나

하지만 그 전에 우선 어떻게 하면 여기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를 생각해야 해...


가장 가까운 감염체가 두 손을 들어 카레니나를 덮쳤지만 막 뛰어오르는 순간 허공에 정지했다.


카레니나는 감염체의 괴상한 움직임에 경계하다 한발짝 뛰어 무기를 들고 시시각각 대응할 준비를 했다.


그러나 감염체는 공격하지 않았다…정확히는 공격할 수 없었다. 공중에서 수초간 굳어졌다가 갑자기 원자로 전열실 벽을 향해 빠르게 부딪쳐 균열을 일으켰다.


놀라서 발 밑을 바라본 카레니나는 발 밑의 땅이 마치 물결치듯 잔물결을 일으켰지만, 그것이 환각도 아니고 지면이 정말로 부드러워진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것은 지면 주변의 빛이 중력파에 일그러지면서 생긴 시각효과였다.


카레니나는 빠른 속도로 중력파가 미치는 범위를 벗어나지만 가슴에 꽂혀 있던 연필이 떨어져 중력파에 닿는 순간 나무 부스러기가 되었다.


카레니나

영점 에너지 엔진...!


카레니나가 떠올릴 수 있는 가능성은 오직 한 가지밖에 없었다. 원자로 어레이에 연결된 적어도 하나 이상의 제어 중추가 퍼니싱에 감염되어, 영점 에너지 엔진에 들어가는 에너지를 폭증시켜, 완전히 통제 불능의 중력 효과를 일으킨 것이다.


영점 에너지 엔진의 폭주가 계속 이어진다면...


카레니나

감염 여부를 떠나 월면 기지 전체가 박살날 거야...


그 자체로 특별히 보강된 지하 영점 원자로 본체는 둘째치고 다른 모든 것들이 파괴될 것이다ㅡㅡ이것은 공중정원 전체를 공중으로 날아오르게 하는 환상적인 엔진이었어야 했다.


카레니나

이 모든 것을 막아야 해!



이 모든 것을 막아야 한다….


우리는 최악의 상황을 대비했지만, 모든 사람들의 예상을 뛰어넘는 악화를 겪고 있다...


우리는 당연히 필사적으로 막았지만, 쿠로노의 연구원들은 아직 신뢰성이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역원 장치를 양산하려고 했다.


참으로 가소롭다, 우리를 가리키는 총은 아무 소용이 없다ㅡㅡ총알조차 퍼니싱만큼 무서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전까지 우리 실험실 사람들은 5명만 남았을 정도로 감원되었고, 기계의 협조 없이 퍼니싱 바이러스를 가까이 접촉해야 했었다.


혈청이 있어도 퍼니싱 바이러스에 오랜 시간 노출되어 완치되기 전에 반복적으로 감염되는 사람이 많았다. 캐논 박사도 뇌에 바이러스가 감염되었고… 몸에 심한 부패가 일어나 죽는 사람은 그보다 더 많았다.


우리의 계속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지탱하고 있는 것은 이미 이 허물어진 몸이 아니며, 우리에게 있어 총은 결코 퍼니싱보다 더 두렵지 않았다.



쿠로노 관리

미안하지만 빼앗아오더라도 전선 작전을 뒷받침할 만한 희망을 지구로 가져가야 하거든…. 더 이상 우리를 머뭇거리게 할 시간이 없다.


쿠로노 관리

구조체 개조 때문에 수백 명의 사람들이 죽는다고 해도 인류 전선의 전면 붕괴보다는 훨씬 나은 수치지, 이것은 우리 인류에게 있어 '필요한 희생'이야.


쿠로노에서 가장 얄미운 놈은 이렇게 말하면서, 우리를 협박하여 역원 장치의 양산을 돕도록 만들었다.


우리도, 쿠로노도 그 위험을 알고 있지만, 희망이라는 그 날카로운 발톱은 항상 모든 사람의 숨통을 움켜쥐고 있다.


1차 역원장치 양산이 끝나고 쿠로노에 수용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안정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역원장치를 시험 제작했는데….


다만, 너무 늦었다. 이미 개조 수술대에 죽은 사람들에게나, 우리들에게나… 이미 너무 늦었다.


우리가 두려워하던 모든 것이, 마침내 일어났다.


급하게 양산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일부 기계를 사용해 제작했는데, 이때 우리 최고의 장비에서도 검출되지 않은 미량의 바이러스가 누출돼 감염되고 유행하기 시작했다.


현장의 기계가 적어 확산속도가 매우 제한적이지만 우리가 알아차렸을 때 이미 일부 구조체의 소체가 감염체로 변해 있었다.


그것들은 무력한 인간들을 사냥하기 시작했는데, 우리는 연구자일 뿐 저항할 능력이 전혀 없었다...


다른 사람들은…모두 죽었고 마지막에는…나와 캐논 박사만 남았고 우리는 영점 원자로가 있는 곳으로 도망쳤고 캐논 박사는 뇌 감염으로 인한 후유증으로 계속 미쳐 날뛰고 있었다.


캐논

어서 봐! 지구, 지구야!


그래, 내가 여기까지 달려온 목적 중 하나는 여기 있는 바깥공간 덮개를 열고 남은 모든 퍼니싱 바이러스를 음압을 이용해 바깥으로 날려보내기 위해서였다. 확실히 이곳에서는 아름다운 지구를 볼 수 있다.


박사님…이 구조선에 얌전히 계세요…


나는 캐논 박사와 우리의 연구 자료를 유일하게 사용 가능한 구명실에 집어넣어 기류를 타고 우주로 보냈다. 운이 좋다면 정기적으로 물자를 운반하던 비행선이 구조선의 신호를 받아 그를 구조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갈 수 없다. 마지막으로 해야 할 일은 영점 에너지 원자로가 계속 작동 중인 상태에서 어레이를 종료하는 것이다.


프로그램으로 구동 가능한 제어 시스템을 쓰지 않았기 때문에 노심 자리에 가야만 문을 닫을 수 있었다…. 캐논 박사님 말씀처럼 나도 이 가장 둔한 방법밖에 생각나지 않는다.


기계가 우리를 위해 만들어주는 편리함에 너무 익숙해져서 그런지 노심까지 가는 길조차 내 생명을 다 소비해야 할 것 같았다ㅡㅡ 하지만 그 또한 과장은 아니었다. 그것은 체내의 산소가 거의 고갈되어가기 때문에 생기는 생리적 반응일 뿐이니까.


그러나 내 예상대로 격리된 바이러스는 전부 빠져 나갔지만 그렇다고 해서 감염체들이 동력을 잃지 않을 것은 자명했다.


모두 나를 따라 이 원자로 노심이 있는 곳으로 들어갔고, 시시각각 나를 찢어 버리려고 했다.


감염체

치익ㅡㅡ


그러나 내가 원자로의 마지막 에너지 출력을 끄면 이곳은 완전히 폐쇄되고 아마 영원히 다시 열리지 않을 것이며, 아름답고도 그윽한 푸른 빛은 더 이상 켜지지 않을 것이다.


이번 사고에 대한 보고는 이미 종이로 필기할 겨를이 없어서 이렇게 개인적으로 간직하고 있는 오래된 골동품으로 기록했는데… 물론 이 녹음도 영원히 알려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만일…만일 이 과거 이야기를 누가 알게 된다면, 그것은 인류가 재난으로 멸종되지 않았고, 우리가 여기서 피워올린 과학의 횃불이 아직도 어딘가에서 타오르고 있음을 의미할 것이다.


ㅡㅡ그때가 되면, 나에게 당신에 대한 이야기, 미래에 대한 인류의 이야기를 말해 주기를...




공효계한 19-13 : 파괴 결심


인간이 우주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상징했고, 황금시대 인류 최고 기술의 결정체가 맺힌 결실이다…. 과연 자신이 그것을 깨뜨릴 자격이 있을까?


.


카레니나

안 돼!!! 【삐ㅡㅡ】...도저히 다가갈 수 없어!


카레니나는 영점 원자로와 엔진 사이의 에너지 공급을 수동으로 끄려 했지만 이상 중력파의 커버리지가 생각보다 넓어 엔진 가까이 접근조차 할 수 없었다.


카레니나

동력실험실로 돌아가야 하는데… 원자로를 원격으로 폐쇄할 수 있는지 시도해 봐야 해.


그러나 돌아가는 길은 이미 무너져 다른 길을 찾아야 한다ㅡㅡ


한 줄기 빛이 위로 새어나오자 카레니나는 고개를 젖히고 나서야 방금 감염체가 중력파에 의해 공중으로 치솟아 올라 원자로 전열실 천장을 뚫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달 기지는 작은 운석과 우주 부스러기의 충돌에 맞서기 위해 건물 대외 강도를 매우 높게 설계했지만,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가해지는 충격에는 그다지 방어력이 없었다.


카레니나

아까 그 감염체가 부딪혀 금이 간 벽이야!


카레니나는 해머를 들고 갈라진 틈을 향해 돌진했다.



전투 개시




카레니나

여분의 핵분열 병원충? 창고에 꽤 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설마...



전투 종료




카레니나가 동력실험실로 돌아왔을 때, 급하게 달려온 엔지니어 부대원들과 다치지 않은 쿠로노 연구원이 모두 모였다.


한쪽에 서서 부상자를 돌보던 아합은 카레니나가 돌아온 것을 보고 상당히 기뻐했다.



아합

카레니나 양? 이 부상자들은 일단 응급처치를 했고, 감염체도...


아합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카레니나는 그의 소매를 억지로 잡아끌어 끌고 갔다.


카레니나

마침 잘 됐어, 이리 좀 와봐! 매우 긴급한 일이 발생했어.


아합을 끌어당긴 카레니나는 곧바로 콘솔로 향했지만, 콘솔 앞에서 이미 한 사람이 빠르게 모니터의 데이터를 확인하고 있었다.



테디베어

야, 카레니나,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야...


카레니나

영점 엔진이 통제를 벗어났고, 나도 알고 있어. 어떻게 해야 원격으로 정지할 수 있는 거지?


테디베어는 고개를 저으며 콘솔 안의 상황을 투영했다.


테디베어

엔진을 연결하는 중계 프로그램이 콘솔의 요청을 거부하면서 퍼니싱에 감염된 것으로 추정돼. 현재로선 원자로의 에너지 공급을 프로세스를 통해 차단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카레니나

너마저 안 된다고?


테디베어

그래, 나도 별 수 없어...불이 크게 일어났지만 내가 신선도 아니고, 할 수 없는 일은 할 수 없는 거야...


테디베어는 한숨을 내쉬며 다른 방법을 생각해봤다.


테디베어

오히려 수동으로 꺼보는 게 어떨까?


카레니나

이미 시도해봤다고...그 장난감 주변에 아주 강한 중력파가 있어. 끄기는 커녕 가까이 접근하기도 어려워.


테디베어

너마저 안 된다고?


카레니나

널 그쪽으로 끌어 내동댕이치면 손을 뻗어 끌 수는 있겠지ㅡㅡ네가 땅의 얼룩으로 변하기 전에 말이야.


아합

카레니나 양, 도대체 무슨 말이야...?


카레니나

아주 쉽게 설명할 게. 영점 에너지 원자로의 제어 센터가 퍼니싱에 감염되어 통제불능 상태야. 영점 에너지의 지속적인 주입으로 인해 엔진이 폭주해 중력파가 언제든 월면 기지를 뒤집어 놓을 수 있다는 얘기라고.


아합은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이대로 가면 이곳 모두의 최후가 어떻게 될지 그도 잘 알고 있었다.


카레니나

참, 아합, 중계센터를 우회해서 바로 그 영점 엔진을 정지시킬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알고 있어?


아합

불가능해...영점 원자로는 최고 등급의 안전방호가 설치돼 있어 다른 수단으로는 에너지 공급을 차단할 방법이 없어.


카레니나

테디베어, 중력파가 여기에 도달하기까지 얼마나 남았지?


테디베어

중력파는 확산되지 않고 오히려 계속 수축되고 있어ㅡㅡ


테디베어의 대답에 카레니나는 위기가 잠시나마 지나간 것 같아 기뻤지만, 테디베어의 표정에는 기쁨이 없었고 오히려 전보다 더 심각했다.


테디베어

너무 흥분하지 마. 중력파의 수축은 밀도 증가로 인한 거고, 영점 에너지 원자로의 에너지 공급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어.


테디베어

전력이 향상된 원자로는 더 많은 퍼니싱을 발생시키고….이것은 더 많은 제어 센터를 감염시키고 모든 원자로 배열이 과부하된 전력으로 작동할 때까지 더 많은 원자로 배열을 통제 불능 상태로 빠트릴 거야.


카레니나

그 말대로라면...엔진도 더욱 폭주할 텐데...


테디베어

이 엔진으로 인한 중력파 진동은 달의 일부분을 붕괴시킬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한 힘이야…. 거대한 질량의 이 붕괴물은 운동궤적으로 따지면 지구로 떨어질 것으로 추정돼.


카레니나는 몇 번이고 살아남은 지상의 절망에 빠진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하늘에서 내리는 파괴의 비에 직면하게 될 것인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아합

그..그럼 우리는?


테디베어

하하...그걸 물어볼 필요가 있을까요?


아합은 침을 꿀꺽 삼켰다. 상상만 해도 이곳의 모든 사람들이 일시에 우주의 폐기물이 되는 것은 불보듯 뻔했다.


테디베어

원자로를 멈출 방법은 없지만 마지막 기회가 하나 남아 있어…영점 에너지 엔진이 터지기 전 중력파를 계속 수축시키는 과정에서 아주 짧은 틈을 타 다가갈 수 있어….


카레니나

그럴때만이라도 그것을 파괴한다면…. 그러면 자연스럽게 중력파를 멈출수 있을 거야.


테디베어

축적된 중력파를 모두 상쇄할 수 있다는 보장도 없지만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이야.


아합

하, 하지만 그러면 영점 에너지 엔진을 파괴해야 하는데...!


카레니나는 침묵했다. 자신을 위해, 여기 있는 사람들을 위해, 지상의 무고한 인간들을 위해 파괴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한때는 인간이 우주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상징했고, 황금시대 인류 최고 기술의 결정체가 맺힌 결실이다…. 과연 자신이 그것을 깨뜨릴 자격이 있을까?



카레니나

아합 아저씨, 여기서 공중정원과 통신할 수 있어?


아합

물론 가능해. 내가 건네준 ID카드를 사용하면 공중정원까지 연결할 수 있긴 한데 아까 한 번 시도해봤는데 간섭이 엄청 심했어...


테디베어

퍼니싱 바이러스가 발신기까지 감염시킨 것 같아 신호 교란이 장난 아닐 거야.


카레니나

단방향 교신이라면 좀 사정이 나았을 텐데...테디베어도 지금 일어난 상황을 리포트로 정리해 줘.


테디베어

미리 정리해놨어...하지만 빨리 서두르는 게 좋을 것 같아. 교신이 거의 끊어지기 직전이야.


카레니나는 결심을 굳히고 아합과 테디베어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공중정원과의 통신을 연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