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를 롤모라고 불러주세요...롤모 선장, 듣기에도 참 좋은 것 같지 않나요?





세계 정부의 긴급 회의에서 인류 대표 전원은 결정을 내렸다. 카레니나의 현장 판단에 동의하여 영점 에너지 엔진을 파괴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 것이다.


그러나 물론 일련의 후속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불가피하다...월면기지의 문제든, 원자로의 문제든, 지상전선의 문제든, 쿠로노에 대한 문제든...


그리고 가장 큰 문제는 지금도 월면기지의 통신이 완전히 복구되지 않아 과연 카레니나가 영점 에너지 엔진을 파괴하고 무사히 돌아올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다는 점이다.


만약 카레니나가 다쳤거나… 아니면 도저히 임무를 완수할 수 없기라도 한다면….



비앙카

니콜라 사령관님! 제가 월면 기지...카레니나를 지원할 수 있도록 출격시켜 주십시오.


니콜라가 이 문제에 대해 고려하지 않은 것은 결코 아니다. 낯선 환경에서 실종된 대상을 찾는 데 있어 정화 부대만한 적임자가 없는 것이 사실이다ㅡㅡ비록 이들은 통상적으로 그 대상을 쫓아가 죽이기 위해서였지만.



니콜라

안 돼...이건 벌써 두 번이나 얘기했던 결론이다.


그러나 니콜라는 고개를 저으며 비앙카의 신청서를 반려했다.


니콜라

자네는 정화 부대의 대장이고 군인이니 명령에 복종하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소양이라는 것을 숙지하고 있어야 해.


그때, 방에 있던 또 다른 여성 구조체가 다가와 니콜라에게 경례를 했다.



치코

니콜라 사령관님…도주한 배신자들을 조사하는 임무는 저 혼자만의 구조체 전력으로도 충분하며, 비앙카 대장의 참여는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예의를 갖추어 니콜라를 마주했지만 전혀 굴복할 뜻을 보이지 않는 여성 구조체, 치코(千子)는 정화 부대 소속이다.


비앙카

치코...


비앙카는 치코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이미 이 임무를 위해 여러 차례 목숨을 걸고 지구로 떠났지만 여전히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비록 현재의 수송기는 엔지니어 부대가 개발한 신형 비행체 엔진이 달려있어 공중정원에서 지상으로 향하는 임무를 수행할 때의 안전성은 전보다 높아졌지만, 이는 여전히 위험한 여정이었다.


니콜라

조사에서 승격자의 행적이 발견돼 임무 위험도가 높아진 데다 조사 대상 장소가 두 곳으로 늘어나 추가 인력을 투입해야 한다는 게 사령부의 판단이다.


니콜라

그리고, 임무지점에 대해서는 위험등급에 따라 재배치하고, 치코가 조사할 예정이었던 006번 도시는 비앙카가 대신 맡게 되며, 추가 조사장소인 015번 도시는 치코가 담당하게 될 것이다.


임무 프로파일에 따르면 006번 도시는 잠재적 위험성이 더욱 크다… 리더인 비앙카에게 맡기는 것 또한 합리적이기에 치코도 이렇다 할 반박 이유를 생각하지 못하고 다시 입을 다물었다.


니콜라는 아직 할 말이 더 있는 것 같은 비앙카를 잠시 바라보았다.


니콜라

우리도 자네와 마찬가지로 카레니나와 월면기지의 안전을 우려하고 있어. 그래서 이미 우주전투기를 조종하는 마운틴 이글 소대를 편성해 지원을 보냈다.


니콜라의 말이 이렇게 되자, 비앙카와 치코는 반박할 여지도 없이 묵묵히 경례를 했다.


비앙카

한 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만약 카레니나의 소식이 온다면...가장 먼저 알려주실 수 있습니까?


니콜라

흥...그런 건 걱정할 필요도 없네. 정말 그녀에 대한 소식이 있다면 그것은 빅뉴스가 될 테니까 말이야.


정화 부대 구조체 2명이 니콜라의 방에서 물러난 뒤, 그는 다시 그 탈주자들을 조사하는 임무에 관한 요청을 정리했다. 이것에 대한 발의는 여러 부서에서 이루어졌지만, 임무지 변경에 대한 정보는 감사원이 사령부에게 제시한 것이다.


니콜라

감사원이 다양한 권한을 가지고 있다만, 왜 유독 그 임무에 주목했을까...


니콜라

그동안 큰 상처를 입은 그레이 레이븐 소대가 수차례 작전 재투입을 신청했지만 우리와 생명의 별 측에서 제지했었지. 하지만 이것이라면 단지 조사 임무에 불과하고 상대적으로 위험도가 낮은 015번 도시 쪽이니 지원이 될 수도 있겠군….


바로 이때, 한 통신 접속 요청음이 그의 생각을 중단시켰다.


니콜라

무슨 일인가, 말해보게...


세리카

니콜라 사령관님, 마운틴 이글 소대의 대장이 보낸 통신입니다.


니콜라

엔지니어 부대 인원은 찾았나? 좌표가...


세리카는 뭔가 멋쩍은듯 말을 머뭇거렸다.


세리카

어음...그게 아니라...적과 조우한 것 같습니다!



달에 가까운 공간에서 우주 비행선이 꼬리 불꽃을 분출하고 있다. 배경이 된 달은 매우 작아졌다.


테디베어

그래서 결국 영점 에너지 엔진과 융합된 그 괴물은 어디에서 달로 왔을까?


카레니나

몰라...그런데 원래부터 있던 놈은 아니었을 거야.


카레니나는 영점 에너지 원자로 노심에서 발견한 카세트 녹음기를 꺼냈다ㅡㅡ그 안에서 일어난 일을 이미 대충 알고 있었다.


테디베어

음...? 이건 아주 오래된 소리 재생 기계잖아. 가끔씩 좀 품위있는 음악을 많이 들어도 야만인 같은 사고방식을 바꿀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데 말야.


카레니나는 그녀가 놀리는 소리를 한 마디도 듣지 못한 듯, 창밖의 별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번 월면기지에서 일어난 뜻밖의 사고는 과거에서 비롯된 것이며, 그 '필요한 희생'이 남긴 결과는 오늘날까지도 모든 인류가 감당해야 할 것이며, 미래에도 이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행히도 오늘의 인류는 그런 미래를 변화시킬 수 있는 충분한 힘을 가졌는지도 모른다...


카레니나

그래서 너네들은 도대체 어떻게 이 비행선을 찾았는지나 말해…. 그때 어떤 비행체도 월면기지에 머물렀다는 기록이 없었잖아.


테디베어

몰라, 이 비행선의 기종은 이미 상당히 낡아서 아마 면역시대부터 사용했던 걸 거야…쿠로노 쪽 기기였지만 공중정원으로 소속이 재편되었지.


카레니나

아마 우리를 태울 예정이던 비행선이 앞당겨 출발했던 게 아닐까? 그럼 우리가 꽤 운이 좋았나보네.



아합

그, 대화를 끊어서 미안한데, 카레니나 양...손으로 내 머리를 치고 있어.


카레니나

아...미안...


테디베어

흥...정말 운이 좋았더라면 철수 몇시간 전에 이런 일을 당하지는 않았을텐데...


아합

어...다시 미안하지만, 테디베어 양, 발로 내 배를 밟았어...


테디베어

어쩐지 말랑말랑했더니… 아합 아저씨, 운동 좀 해야 되지 않을까요?


아합

아하하....하하하...그, 그만 밟아...


카레니나

아아아아아아아!!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이 작은 구명캡슐에 끼워 넣어야 하는 거야!


엔지니어 부대와 쿠로노의 과학자, 그리고 쓰러진 병사들, 수십 명의 사람들이 무중력한 환경에서 모두 구명캡슐에 몰려들어 그야말로 사람들로 붐볐다.


테디베어

됐어, 목숨 하나 건질 수 있어서 다행이야. 그런 생각보다는 돌아가서 어떻게 그 영점 에너지 엔진을 복원할 수 있을까 생각 좀 해봐.


카레니나

너희들이 가져온 자료들이 있으니까 그건 식은 죽 먹기 아니겠어?


테디베어

그랬으면 참 좋겠네...그건 우리가 목숨바쳐서 겨우 구한 거니까 네가 잘못하면 엔지니어 부대 모든 사람들이 널 가만두지 않을 거야.


카레니나

두고봐…너희들은 이제부터 새 엔진 이름을 뭐라고 할지 생각해 볼 날이 곧 찾아올 거라고.



???

하하하, 그냥 '드로리안'(Delorean)이라고 부르는 게 어떨까요? 아주 오래된 고전 영화의 한 줄기에서 따온 이름이랍니다.*

*영화 『백투더퓨처』


우주선 구명캡슐의 내부 안내방송에서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가 당돌하게 말을 거는 것은 다소 실례된 일이지만, 그래도 모두를 구해준 사람이라 카레니나도 발작을 좀처럼 일으키지 않았다ㅡㅡ그리고 카레니나는 방금 전에 좁은 기내실을 불평했던 것을 기억해 냈는데, 아마 그에게 들렸을 것이다.


카레니나

어...그 이름도 괜찮은 것 같은데...


테디베어

참, 저기요, 그...


???

저를 롤모라고 불러주세요...롤모 선장, 듣기에도 참 좋은 것 같지 않나요?


테디베어

롤모 선장님…저희가 이 비행선을 타고 공중 정원으로 돌아가기까지 얼마나 남았죠?


'롤모'

글쎄요...확실한 건 아니지만 꼬박 하루 24시간 걸릴 수도 있고, 8시간 일 수도 있고, 아니면 10분 일 수도 있고.


롤모의 알 수 없는 항해 거리는 두 사람을 어리둥절하게 했다.


카레니나

야 테디베어, 나 말이야, 어째 이 선장 목소리가 귀에 좀 익은 거 같아....


갑자기 심한 진동이 일어나 카레니나의 말이 도중에 끊겼다. 운석이나 우주 쓰레기에 부딪힌 것 같지는 않은데...


테디베어

무슨 일 일어났어!?


'롤모'

하하하, 별거 아니에요. 공중정원의 우주 전투기에 공격당한 것뿐이랍니다.


카레니나

뭐???! 공중정원이 왜 우릴 공격하는 거야?


'롤모'

이 비행선을 빼앗은게 벌써 발각 되었나 보네요...


카레니나

뭐!? 빼앗아...? 【삐ㅡㅡ!】, 너 대체 누구야?!


카레니나는 기억 속에서 끊임없이 찾아 헤매다가, 마침내 과거에 이 얄미운 목소리를 들었던 사실을 기억해냈다.


'롤모'

후우, 너희들이 제멋대로 남의 비행선에 뛰어오른 주제에, 또 여기서 이래라저래라 불평만 늘어놓고, 이래서 인간은 정말 한심하다니까.


자칭 롤모 운전사는 한숨을 내쉬더니, 곧 상당히 유쾌한 말투로 바꾸어 방송을 이어갔다.


'롤모'

그럼 승객 여러분, 이번 비행은 여기까지입니다. 앞으로 남은 여행이 안전하고 즐거우시길 바랍니다. 그럼 안녕히 계세요, Ciao~


캡슐 안전핀이 해제되면서 울린 가벼운 진동과 카레니나의 고막을 찢는 욕설에 '롤모 선장'은 크게 웃으며 우주 공간에서 구명캡슐을 강제 투하한 후, 지구를 향해 급회전하고 비행을 가속화했다.






치코?리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