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살았어!!"


단 한명, 지휘관의 희생으로 너무나도 많은 사람이 살아남아 버렸다. 차라리 카레니나의 공격을 받았을 때, 이들 대다수가 죽어버렸다면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너무나 많은 생존자, 그리고 부족한 물자, 거기에 지휘관과 리브, 나나미의 부제로 피난민을 통제할 인력이 지원형 구조체인 소피아 하나라는 상황이 맞물리자 캠프의 피난민들은 더 이상 공중정원의 지시를 따르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 중 힘 좀 쓴다는 자들이 모여 캠프 안의 자원을 모조리 쓸어가서 새로운 지배자가 되기 시작한 것이다. 


"내놔!"


"이것마저 없으면 우린…"

'퍽'


"달라면 줄 것이지 말이 많아!"


"까악!"


말 그대로 아비규환, 결국 모든 것을 빼앗긴 한 인간이 들고 일어섰다. 


"어차피 죽을 거 너희도 같이 죽자!"


자기 몸에 불을 지르고 그들이 갈취해갈 물자에 몸을 던진 자에 의해 시작된 불길은 물자 속에 있었던 연료에 닿아 걷잡을 수 없이 퍼지고 말았다. 


"불이야!!"


"이거라도 들고 당장 튀자!"


"살려줘!"


그렇게 각자의 살길을 찾아 흩어지기 시작한 피난민들, 그들은 마지막까지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 이들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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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쓰러져 있던 리브는 타오르는 불꽃의 열기에 의해 눈을 떴다. 하지만 그녀가 눈을 떴을 때는 이미 눈앞에 피난민 캠프가 타오르고 있는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피난민 캠프는 이미 손안에 쥐고 있던 모든 것을 잃은 자들이 모여 하소연을 할 뿐인 절망이 가득한 공간이었지만, 그곳은 그들의 다시 한번 희망의 싹을 틔울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런 장소가 지금 잿더미가 되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분명 리브가 기억하는 마지막 순간까지만 해도 카레니나가 도망치는 피난민들을 몇 명 죽이기는 했어도, 캠프까지 다가오지는 않았다. 그리고 지휘관을 납치하자마자 뒤도 보지 않고 도망간 그녀가 다시 돌아와 캠프를 불태울 가능성은 매우 희박했다. 

'나라도 지휘관님과 단둘이 살아갈 수 있게 된다면 나머지 인간들 따윈 어떻게 되든 상관없었을 테니까…'


거기에 물자를 뺏고 뺏기는 바람에 들려오는 비명과 거친 외침을 통해 리브는 왜 이렇게 되었는지 쉽사리 추측할 수 있었다. 

'결국 자기들끼리 싸우다가 이 사달이 난 거야?'


지휘관이 이들을 지키기 위해 희생한 것 때문일까? 아니면 이들의 추악한 면모를 보아서일까? 리브의 머릿속에는 인류에 대한 적개심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고작 이런 인간들을 살리기 위해 지휘관님이 내 곁을 떠나신 거야? 지휘관님은 지금 무슨 고통을 받고 계실지도 모르는데, 이 녀석들은 대체 무슨 일을 벌이고 있는 걸까? 차라리 그냥 다 죽어버렸으면 지휘관님이 떠나실 일도 없었을 텐데…'

 

그리고 리브가 자신들에게 살의를 느끼고 있다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서로가 서로를 죽이기 바쁜 피난민들을 통제하여 이 상황을 정리할 수 있는 존재가 드디어 하늘 위에서 등장했다. 


"지상의 폭도들에게 고한다. 지금 당장 자리에 엎드려 우리의 지시를 따라라 그렇지 않다면 퍼니싱 바이러스에 감염된 자로 간주하고 처분하겠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안하무인으로 캠프에 불을 지르고 물자를 갈취하던 무리는 하늘에서 울려 퍼지는 경고를 듣고 두 부류로 갈라졌다. 

일부는 그 말을 듣자마자 물자를 들고 도망치기 바빴고 나머지는 그 자리에서 갈취했던 물자를 내려놓고 엎드렸다.


"도망쳐! 이 정도 모았으면 적어도 몇 년은 버틸 수 있어."


"우.. 우린 그냥 말려든 것뿐이야. 우린 아무 짓도 하지 않았어."


"맞아요. 우리도 스스로를 지키려면 어쩔 수 없었다고요." 


그간 자신들을 통제하던 부대의 통솔력에 구멍이 난 틈을 이용하여 조금이라도 이익을 챙겨보려던 것일 뿐, 뭔가 거창한 계획이 있거나 이 틈에 권력을 가져보려던 것은 아니었던 이들이기에 자신이 노획한 물자와 앞으로 받게 될 물자를 비교해 보고 빠르게 손익 판단을 하여 각자의 선택을 한 것이다. 


그렇게 후속부대는 빠르게 피난민 캠프의 혼란을 잠재웠다. 그리고 혼란이 잦아들자마자 그들이 한 행동은 바로 리브를 포위하는 것이었다. 


리브는 그런 그들의 모습이 조금 의아했지만 먼저 공격을 해오지는 않았기에 크게 고민하지 않고 그들에게 피난민 캠프에서 있었던 일을 전하기 위해 다가가려 했다. 그러자 부대장으로 생각되는 인물이 말했다.


"멈춰! 너에게서 느껴지는 고농도의 퍼니싱 반응을 보아 넌 이미 가망이 없어! 아직 퍼니싱에 완전히 감염된 것이 아니라면 스스로 목숨을 끊어라. 그렇지 않으면 사살하겠다."


리브는 난감해졌다. 자신은 체내의 퍼니싱을 스스로 제거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하면 금방 해결될 문제였지만 안타깝게도 그녀는 그 사실을 스스로는 말할 수 없었다. 


"그전에 현재 상황에 대한 설명부터 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제 처우는 사령관님께 연락하여 주세요. 사령관님께서 지시하는 바를 따르겠습니다."


후속부대의 부대장은 리브가 차분하기 이야기하자 전투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긴장하여 움츠러들었던 어깨를 늘어트리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그는 즉시 사령관에게 연락했다. 


당연하게도 사령관은 모든 이야기를 해주지는 않았지만 리브는 퍼니싱을 스스로 정화할 수 있다는 사실은 전달하였고 후속부대는 그 말을 듣고 포위를 풀었다. 


"미안합니다. 특화 기체라는 것이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해서… 당연히 당신이 침식체가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럼 이제 들려주시겠습니까? 어째서 피난민 캠프가 이렇게 통제되지 않는 상황인지, 그리고 이런 상황에도 피닉스 소대의 지휘관은 나와보지도 않는 것인지 말이에요."


그는 리브를 의심부터 한 것에 대해 사과하고 본론을 꺼냈다. 


리브는 그에게 전투가 끝나고 죽은 줄 알았던 카레니나가 침식체가 되어 살아 돌아온 일, 그리고 그녀에게 나나미와 자신이 당한 것과 지휘관이 납치당했다는 사실까지 카레니나가 침식체로서 되살아났다는 거짓말 이외에는 전부 사실대로 말했다. 

'그녀에게서 퍼니싱 반응은 느껴지지 않았지만, 이렇게 하지 않으면 지휘관님의 수색에 공중정원의 지원을 받기 어려워.'  


"그런일이 있었군요… 일단 귀환하여 재정비하시죠. 저희 부대가 납치당한 여러분의 지휘관을 찾아보겠습니다."


후속부대의 부대장은 자신을 믿으라는 듯이 가슴을 '탕탕'치고는 리브에게 자신들이 타고온 수송기에 탑승할 것을 종용했다. 


마땅히 거절할 핑계도 이유도 없었기에 리브는 일단 그 말을 따르기로 했다. 

'당장 지휘관님을 찾으러 가기엔 나도 나나미도 너무 큰 피해를 입었어… 일단 돌아가서 정비하고 돌아오자, 그렇지 않으면 카레니나를 찾았더라도 그녀에게서 지휘관님을 되찾을 수 없어. 어차피 이들의 힘으로 카레니나에게서 지휘관님을 구하는 건 무리겠지만 카레니나의 은신처의 위치정도는 특정할 수 있겠지?'


"예, 지휘관님을 납치한 침식체는 ENE방향으로 향했으니 그쪽으로 수색을 진행해 주세요. 저희도 정비를 마친 후 곧장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리브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던 부대장은 리브가 수송기에 들어가는 것을 보고서야 다른 대원들에게로 돌아갔다. 

그렇게 리브가 먼저 수송기에 들어가서 쉬고 있자 만신창이가 되어 돌아온 나나미와 그런 그녀를 부축하는 소피아가 왔다. 


"카레니나가 지휘관을 납치했다면서? 그거 정말 납치 맞아? 원래 지휘관의 연인은 카레니나였잖아. 설마 지휘관이 스스로 카레니나와 함께 떠난 건 아니야?"


"저도 직접 본 것이 아니라 알려드릴 수 있는 정보가 없어요. 저희 아딜레 상업연맹은 정확하지 않은 정보는 판매하고 있지 않습니다."


나나미는 소피아의 말에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애초에 그녀는 소피아보고 들으라고 한 말이 아니었기에 말을 하면서도 계속해서 리브를 흘끔흘끔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나나미의 모습을 보고 리브는 심사가 불편해졌다. 

아무리 나나미와 그녀가 아무리 사이가 틀어졌다고 해도 평소라면 다쳐서 돌아온 나나미에게 괜찮은지 안부 정도는 물어봤을 것이다. 하지만 오자마자 밉상인 소리를 내뱉어대는 나나미가 꼴도 보기 싫어진 탓에 리브는 말없이 그녀에게서 등 돌려 앉았다. 


"…..."


그렇게 리브는 우연히 수송기의 벽이 얇은 위치에 귀를 대고 앉게 되었고 그곳에서는 수송기 밖에서 다른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대장! 정말로 피닉스 소대 지휘관의 수색을 진행할 건가요?"


"미쳤냐? 피닉스 소대의 전투력은 일개 소대의 것이 아니야 우리 부대가 전부 달려들어도 못 이겨, 그런데 그 침식체는 그 녀석들 보다도 더 강하다면서? 당장 죽고 싶은 게 아니라면 캠프부터 이동하자. 그 침식체 녀석이 다시 온다면 우린 뼈도 못 추린다. 납치당한 녀석은 안됐지만 살 사람은 살아야지."


"그럼 수송기가 출발하면 바로 이동할 수 있도록 준비해둘게요."


"그래라, 그 특화 기체가 정화해 놓은 구역을 벗어나는 게 좀 아쉽긴 하지만 우리가 여기서 평생 살 것도 아니고 금방 다시 공중정원으로 올라갈 텐데, 나중에 남을 녀석들이 고통받든 말든 일단 우리에게 안전한 곳으로 가자."


리브의 앞에서는 맡겨만 달라며 지휘관님을 꼭 찾아보겠다고 했던 인간이 돌아서자 다른 사람이라도 된 듯, 말을 바꾸는 것을 들은 리브는 당장 수송기에서 내려 저 부대장이라는 인물을 죽여 버리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다. 

'안돼, 저놈들을 죽이면 지휘관님을 구할 기회는 영영 사라지게 될 거야. 지금은 참자, 어차피 저 녀석들이 카레니나에게서 지휘관님을 구해 낼 수 있을 거란 기대는 하지 않았잖아. 수색하는 시간이 조금 늘어날 뿐이야.'


리브의 체내에 남은 퍼니싱의 영향일까? 리브는 살인 충동을 억누르는 것에 애를 먹었다. 

'참자… 참는 거야… 참아야 다음 기회가 있어, 이대로 충동적으로 일을 저지를 바엔 차라리...'


리브는 아무리 참으려 해도 도저히 자신의 의지로는 살인 충동을 막지 못할 것 같은 기분이 들자 스스로 의식을 끊고 기절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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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납치당한 지휘관을 제외한 피닉스 소대의 모두가 공중정원으로 돌아오는 동안 공중정원의 사령부는 인류의 새로운 희망을 발견했다. 


"발견했다! 발견했어! 이제 우리 인류는 더 이상 지구의 탈환에 목매지 않아도 돼!"


가능성은 있었지만 너무나 희박한 탓에 그 누구도 선택하지 않았던 선택지, 하지만 한 미친 인간은 그 선택지를 골랐고 끝끝내 실낱같은 희망을 붙잡고야 말았다. 그리고 그 희망은 여러 인간들을 흥분시켰다. 


"역시 신천지는 있었어! 고작 태양계에서 XX 광년 떨어진 곳에 이미 원시의 인류가 살아가고 있었다고! 테라포밍 같은 일도 하지 않아도 돼! 우린 이제 여행을 떠날 일만 남은 거야!" 


"역시 신은 우리 인류를 버리신 것이 아니었어. 그분은 이렇게 우리가 살아갈 새로운 터전을 마련해 놓으셨다!! 신이시어 믿음을 놓았던 어리석은 저를 용서하소서..."


"이번에 발견한 행성은 지구의 3배는 크다면서? 그렇다면 매장된 자원도 어마어마하겠지? 우리 인류는 그것을 발판으로 더욱 큰 도약을 하자, 전 우주를 손에 넣는 거다!" 


지구의 궤도 위에서 지내는 우주의 유랑민과 같은 삶을 청산 할 수 있다는 것에 기뻐하는 인간도 있는가 하면, 한때 심취했던 종교에 다시 귀의하며 신에게 회개하는 인간, 그리고 우주의 가능성에 눈을 떠 전 우주를 지배하는 망상을 하는 인간까지... 

별의별 인간이 있었지만 그들에게서 느낄 수 있는 공통된 점은 바로 희망이었다. 공중정원은 정말 수십 년을 항해하여 새로운 낙원에 도착할 노아의 방주가 된 것이다.  


하지만 이 사실은 정비를 마치고 나와 정신을 차린 리브에게는 최악의 소식이었다.


"네? 다시 한번 말씀해 주세요. 더 이상 모든 부대의 지상으로의 강하를 금지하신다고요?"


"그래, 공중정원에 남은 자원으로는 새롭게 발견한 행성에 도착하는 것이  한다. 어차피 이젠 지상을 탈환할 이유도 없으니, 앞으로 지상에서 행해질 모든 작전을 사령부는 허가하지 않겠다."


"잠시만요. 그렇다고 지금 출격을 금지하신다니요! 저희 지휘관님께서 지상에서 납치당하셨는데, 지휘관님을 포기하라는 말인가요!"


리브의 악에 받친 외침에도 사령관은 전에 지휘관이 자신 몰래 한 짓을 떠올리고는 심드렁한 말투로 답했다. 

'어차피 몰래 들어와서 스파이 짓이나 하는 녀석을 구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쓸 필요도 없지, 애초에 이미 내 발언력은 거의 사라지기도 했고… 이제 퍼니싱을 정화한다는 유일한 특화 기체의 가치는 없어진 것이나 다름없으니 내가 위험을 무릅쓰고 이 녀석들의 편의를 봐줄 이유는 전혀 없지.'


"그렇게 되겠지, 어차피 침식체에게 납치당했다면서? 살아있을 확률이 얼마나 되겠나? 공중정원은 이미 진작에 죽었을 인간을 구출하는 작전을 하는데 낭비할 정도로 풍족하지 못하네." 


사령관은 그 말을 마지막으로 연락을 끊었다.


"지휘관님은 살아계셔! 분명히 살아계신다고!!"


리브는 분을 못 이겨서 사령관과 통신을 연결해 주던 통신장비를 내려쳐 박살내 버렸다. 그렇지만 그것만으로는 분이 풀리지 않았던 리브는 사령관에게 찾아가 직접 따지러 가려고 했다.

다행스럽게도 입술을 꽉 깨물고 비장한 표정으로 사령관을 찾아가려는 리브가 기지를 나서기 전에, 사령관실에서 사고를 치기 전에 소피아가 붙잡았다. 


"가봤자 소용없습니다. 이미 사령관의 힘으로는 이 상황을 바꿀 수 없을 것이에요. 원래는 지상에서 작전을 수행 중인 부대를 버리고 곧장 출발하려던 것을 사령관님이 자신의 권한을 포기해가며 그들이 복귀하기 위한 시간이라도 가까스로 벌어놓은 상태에요."


리브는 소피아가 그 짧은 시간에 그 사실을 알아 온 것도 놀라웠다. 하지만 그렇다고 지휘관님을 포기하라는 말을 들은 것에 대한 분노가 더 컸다. 리브는 소피아의 어깨를 붙잡아 벽에 밀치며 말했다.


"그렇다고 지휘관님을 포기하라고요? 그건 절대로 못 해요. 차라리 공중정원을 지상에 추락시켜서 다 함께 죽었으면 죽었지 절대 이대로 지휘관님을 지상에 놓고 떠날 순 없어요!"


리브의 과격한 행동에 제법 충격을 받았을 터인 소피아는 오히려 기쁜 듯 작게 웃었다.


"그럼 저와 거래하시겠습니까? 리브에게 지휘관님을 구할 기회를 드릴게요."


이전에 나나미에게 납치당한 지휘관의 정보를 구입해봤던 리브는 그녀가 절대 허투루 거래를 청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떠올리고 붙잡고 있었던 소피아의 어깨를 놓아주었다. 


"얼마를 원하나요? 달라는 대로 전부 다 줄 테니까. 빨리 원하는 금액을 말해봐요."


"저희가 지휘관님을 구할 테니, 리브는 아딜래 상업연맹을 구해주세요." 


소피아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리브는 순간 멍한 표정을 지었다. 


"네?"


"2시간 뒤에, 저희 소대의 뒤를 이어 피난민 캠프를 관리하던 부대를 귀환시키기 위한 수송기가 내려갈 거에요. 리브가 거기에 몰래 탑승해서 파일럿을 죽이고 xx:yy좌표로 가주세요. 그곳에서 저희 연맹의 분들이 지휘관님을 구출해 놓고 리브를 기다리고 있을거에요. 그곳에 도착해서 그들을 태우고 공중정원으로 귀환해주시면 됩니다. 어떠세요?"


'지휘관님을 찾아보겠다고 거짓말이나 하던 녀석들을 버리고 대신 소피아의 식구들을 구해주면 그 대가로 지휘관님을 구출하겠다? 그런 거 고민할 필요도 없지.'


"좋아요. 거래 할게요! 그런데 아딜래 상업연맹이 지휘관님을 구출할 수 있는 능력은 있는 건가요?"


소피아는 그런 리브의 말에 걱정하지 말라는 듯이 말했다. 


"자밀라가 할 수 있다고 했어요. 저에게 사기는 죄악이라고 가르쳐준 분이에요. 반드시 지휘관님을 구해놓고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저흴 믿어주세요."


그동안의 신뢰가 쌓인 덕분일까? 리브는 소피아를 믿기로 했다. 

'연맹의 전부가 달려들었다면 아무리 카레니나라도 상대할 수는 없겠지? 연맹 전부의 생사를 가르는 문제니까. 그 정도 투자는 했을 수 있어.'


"믿어요. 소피아, 그럼 제가 어떤 수송기로 가면 되죠?"


소피아는 리브에게 고개 숙여 감사를 전하고서 리브에게 작전의 자세한 내용을 설명했다. 


"…... 하면 돼요. 할 수 있으시죠? 그동안 리브의 전투 데이터를 바탕으로 설계한 계획이니 아마 하실 수 있으실 거예요. 그럼 저의 연맹을… 제 가족들을 잘 부탁드립니다."


"이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어요. 저야말로 지휘관님을 꼭 구출해주세요."


"네, 그것이 저희의 거래이니까요."


소피아는 공중정원에 올라온 이래로 지금껏 보여준 적 없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 아마도 그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연맹이겠지, 그렇기에 언제나 표정 관리를 하던 그녀가 무표정을 지어야 하는 것도 잊고 미소를 지은 것이리라. 리브는 내심 소피아에 대한 동질감을 느끼며 소피아가 알려준 수송기를 향해 달렸다. 

'그래, 소피아도 나처럼 소중한 것을 지상에 두고 왔어. 그러니까 그런 그녀라면 믿을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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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피아의 작전을 듣고 리브는 곧장 목표로하는 수송기를 향해 달렸다. 수송기 격납고는 지상에 나가있는 부대들을 모조리 귀환하기 위한 작업을 진행 중이어서 매우 번잡했다. 

'예상보다 더욱 쉽게 일이 풀렸는걸? 이대로 이 수송기가 출발할 때 까지 숨어있자.'


아무도 몰래 수송기에 탑승하여 숨어있었던 리브는 수송기가 공중정원을 나서 지구의 대기권에 진입을 시작하자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녀는 즉시 파일럿의 목에 창날을 겨누었다. 파일럿은 갑작스럽게 등장한 리브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는 듯 했지만 곧이서 자신의 목에서 느껴지는 창날의 차가운 감촉을 느끼고는 오히려 침착함을 되찾았다. 


"원하는게 뭐지?"


리브는 파일럿이 순순히 협조를 할 것같은 분위기를 풍기자, 곧바로 죽이려던 것을 멈추고 말했다. 


"xx:yy좌표로 가세요. 그럼 당신을 죽이지는 않을게요."


파일럿은 리브가 자신을 곧바로 죽이지 않을 듯이 말을 하자 바쁘게 손을 움직이며 말했다.


"날 죽인다고 해서 네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는 없어. 이 수송기에 준비된 물자라고는 지상을 왕복할 연료뿐, 누구를 데려오려는 건지는 몰라도 그들을 이 수송기에 태웠다간 공중정원으로 올라가는 동안 식량이 바닥나서 아비규환이 될 거다." 


"그건 당신이 신경 쓸 일은 아닌 것 같군요."


죽음을 각오했던 파일럿은 자신의 시야가 낮아지는 동시에 붉은 물방울이 튀는 것을 보고 위를 보았다 그곳에는 머리가 있었을 터인 위치에서 피 분수가 솓구치고 있는 자신의 목이 있었다. 그는 그대로 눈을 감았다.

'조금만 시간을 줬다면 기체와 함께 자폭이라도 시도해 봤을 텐데, 인류를 구하도록 만들어진 구조체가 어떻게 이렇게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살인을 할 줄이야…'


리브는 파일럿의 못을 가볍게 베어낸 후에 목 아래쪽만 남은 그의 시체를 발로 차서 바닥으로 떨어트리고 수송기의 조종간에 앉았다. 


"그럼 이제 자동 항법을 켜고… 좌표를 설정… 이걸로 끝인가?"


수송기가 서서히 본래의 목적지에서 멀어지는 것을 확인한 리브는 지휘관님을 구하겠다고 해놓고 등 돌리자 말을 바꾸는 그들이 겪을 미래를 상상하고는 기분이 좋아졌는지 미친 듯이 웃었다. 


"그러게 지휘관님을 수색하기만 했어도 이렇게 되진 않았을 텐데, 살아남기 위해 행한 모든 행동이 도리어 자신을 죽이게 된다니, 그 녀석들도 상황이 이렇게 될 거라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못했겠지? 그들은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면서 죽어가게 될 거야! 아하하하!"  


그렇게 제법 긴 시간 수송기의 안에는 리브의 웃음소리만이 울려 퍼졌는데, 죽은 파일럿의 피를 뒤집어쓴 리브가 광소하는 모습은 굉장히 섬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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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끝이 보인다! 2월안에 끝내려던거였는데... 5월안에는 끝날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