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안의 예상대로 도서관에서 벌어진 일은 신속하게 인근 순찰 구조체를 불러들였다.


오전 내내 이어진 심문과 수사 끝에 그레이 레이븐 소대 지휘관이 휴식에서 깨어나 음료수 문제가 아니라고 직접 증언한 뒤에야 청년은 풀려나 준비실로 돌아가는 길을 걸을 수 있었다.



팔루마

너 같이 한가한 놈도 늦을 때가 있나?


노안

미안, 나는...


ㅡㅡ아까의 예기치 못한 사건 이야기를 꺼내면 시몬 지휘관은 그의 곤경 때문에 또 그런 고뇌의 표정을 짓게 되겠지.


노안

나는 밖에서 그레이 레이븐 소대의 지휘관을 만나 잠깐 늦어졌어.


팔루마

너희들 최근에 지각한 이유가 너무 똑같다는 생각 안들어?


노안

그게 시몬 지휘관에게 L구역 쿠키를 갖다주라고 부탁했어.


그는 과자를 꺼내 두 조각을 시몬에게 건넸다.



시몬

노안, 아침에 있었던 일은... 사실 이미 들었어.


시몬

네가 끌려갔을 때, 그 사람들이 나에게 통보했었어. 결국...


노안

일이 생기면 지휘관도 책임을 져야 되는 거야?


시몬은 침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시몬

그래서 너가 돌아오기 전에 수석에게 물어봤어.


노안

...


시몬

널 탓하지 않을 거야. 네 잘못이 아니니까. 거짓말을 한 것도...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아서 그랬겠지.


시몬

그래도 가능하다면 나에게 사실대로 말해 줬으면 좋겠어. 나를 믿어줘. 결국 우리는 같은 소대 동료니까 말이야.


팔루마

하, 동료? 아직도 그런 어정쩡한 태도야? 어떤 면에서는 노안과 넌 정말 똑같은 사람인게 맞나 보네. 언뜻보면 참 사람좋게 보이지만, 실제로는 응어리를 품고 있고 할 말이 있어도 제대로 못하는 게 딱이야.


노안

어?


팔루마

스스로 눈치채지 못했어? 가끔 넌 다른 사람에게 너무 가까이 다가가면 자신의 문제를 다른 사람들에게 퍼뜨리는 그런 아우라가 있다고.


노안

이 점에서는 너도 피차일반이라고 생각해.


팔루마

쳇.


노안

하지만 시몬 지휘관은 너가 말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야.


팔루마

그래 그래, 임무지, 이게 다 임무 때문이야.


팔루마

바로 우리 같은 문제아들 때문에 얼마 전에 전공을 세운 저 지휘관 같은 사람이 전장에 복귀할 방법이 없다는 거잖아.


시몬

틀려, 그 사람들은 내 몸 상태를 고려해서 나에게 아직 편성 중인 소대를 맡긴 거야.


노안

적응기간이 끝나면 이런 문제들은 해결되겠지.


팔루마

흥, 순진한 바보같으니.


노안

내 순수한 마음을 칭찬한 거라고 여길게.


팔루마는 콧방귀를 뀌고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시몬

노안, 고마워. 하지만...이것은 수석이 너에게 준 선물이잖아. 이건 나에게 주면 안 돼.


시몬은 과자 중 하나를 노안에게 돌려주었다.


노안

선물?


그가 보기에 앞에 놓인 쿠키들은 지휘관이 건네주는 음식일 뿐, 특별한 의미는 없어 보여 더 좋아하는 사람에게 맡겨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노안

구조체로서 더 이상 음식을 먹을 필요가 없으니까 지휘관이 가져. 당신이 맛있다고 말했던 게 기억나.



시몬

...이게 너의 버릇이니?


노안

어?


시몬

다른 사람에게 온화함을 베풀어 주는 버릇말이야. 그것이 본래 너의 것이었더라도.


노안

하지만...


단지 과자 한 조각일 뿐이다.


시몬

이 과자 때문만이 아니라 요즘 있던 모든 일들을 얘기하는 거야.


그는 노안의 표정을 읽은 듯 한숨을 쉬었다.


시몬

너는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사람이고, 다른 사람을 온화하게 대해서 주변의 악의든 선의든 태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겠지.


시몬

처음 한양소대에 왔을 때, 나는 네가 마치 호수처럼 보였어.


시몬

감시도 실험도 호수에 던져진 돌멩이처럼 약간의 물보라와 잔물결 외에는 어떤 파도도 보이지 않았었지.


시몬

그게 아마 너의 장점이 아닐까...이런 점이 있으니까 지금까지 평온을 유지할 수 있었을 거야.


시몬

팔...어... 아무튼 저 친구와 다르게 나도 너처럼 대화하기 쉬운 편이지.


팔루마

하...


시몬

하지만 너도 그 점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 멀어지고 있어.


노안

...내가?


시몬

너에게 책임을 묻고 싶은 뜻은 전혀 없어. 이것이 네가 보고 싶었던 결과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시몬

승격자들과의 관련성, 기체의 이상, 심지어 아딜레 상업 연맹에서 '노안'이라는 이름에 대한 소문까지...


시몬

그동안 너와 접촉한 내 자신의 판단을 믿고 싶어.


시몬의 어조는 이 시기에 묘한 괴로움을 불러 일으켰다. 그는 결코 노안을 멀리하려는 의도는 없으며, 단지 자신의 임무와 사명에 이끌려 경계를 늦출 수 없었던 것이다.


시몬

계속 이렇게 감시하거나 의심하는 걸 막으려고 했는데 미안해. 결국 아무것도 바꾸지 못했어...


시몬

이렇게 말하는 것은 다소 무리일 수도 있지만, 나는 네가 이런 억압적인 환경에서 자신을 잃어가는 것을 결코 보고 싶지 않아.


시몬

그들을 구해준 영웅으로서 너도 그런 취급을 받아서는 안 되는데….


노안

괜찮아, 내 기체에는 아직도 많은 이상함과 미지의 존재가 있어서 경계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이해해.


시몬

...


시몬

내가 바꿀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지만...


시몬

...하지만 누군가 진정한 너를 보게 된다면, 입장과 임무에 구애받지 않고 손을 내밀 수 있을 거야.


그는 그 과자를 집어 들고는 정중하게 노안의 손에 쥐어줬다.


시몬

아주 작은 선의라도 구조체에게 식사는 필요없지...


시몬

그렇다고 호수에 던지는 돌처럼 함부로 남에게 넘기지 마, 알았지?


노안

...


시몬

그건 너를 믿고 싶은 사람을 멀리하는 짓이야.


노안

알겠어.


노안

고마워, 시몬 지휘관.



정례회의가 끝난 뒤 노안은 한양소대 준비실에 홀로 남아 손에 든 쿠키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


공중정원에 사는 인류에게 이것은 그리 신기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곰돌이 모양으로 빚어졌고, 여러 색의 사탕으로 장식되어 반짝반짝 투명한 상자 속에서 웃고 있다.


옛날 그 시절…. 하층칸에서나 방랑에서나 얻을 수 있는 음식은 제한적이었다.


음식을 이렇게 섬세하고 아름답게 만드는 방법은 고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배불리 먹    는 것조차 힘들었다.


노안은 이곳에 오기 전까지 이런 음식을 본 적이 없었다.


이 시대에 생산된 인스턴트 수프, 통조림, 건빵이나 채집된 풀잎과 나무껍질은 음미를 위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 생존을 담보하기 위한 살림살이일 뿐이었다.


그가 구조체가 되어 더 이상 먹을 필요도, 배고픔에 시달리지도 않게 되었을 때, 노안은 마침내 더 필요한 사람에게 음식을 양보할 수 있게 되어 내심 기뻐했다.


불필요한 물자를 더 필요한 사람에게 맡기는 것은 노안이 사람들 속에서 배운 생존의 법칙이다. 서로 도와야 무사히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과자를 시몬에게 맡겼을 때, 그는 조금도 주저함이 없었다.


노안

...이건...선물...


선의를 받아들이기 위해서라면, 이 억눌린 깊은 못에서 숨을 돌릴 기회를 얻기 위한 것이라면...


노안

...


그가 정교한 작은 상자를 열어 안에 있는 쿠키를 꺼내려 하자 상자 안쪽에서 종이 쪽지가 떨어져 나왔다.


노안

...?


시몬은 이것을 발견했기 때문에 과자를 돌려주겠다고 고집한 것이었을까?


약간의 의구심을 품으며 접힌 쪽지를 집어들더니 거기에 작은 글자로 적힌 글귀를 보았다.


여기서 펜을 잡는 걸 금지하는 사람은 없어. 너의 그림은 매우 아름다웠어. 그냥 버리지 말아줘.


노안

...


노안은 그 쪽지를 보고 오랫동안 침묵했다.


군중의 복잡한 악의와 소문을 처리하는 데 있어 과연 남에게 음식을 주는 것이 좋은지, 그림을 숨기는 것이 좋은지, 온유함으로 처리하는 것이 좋은지 이해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다. 왜냐하면...



노안

...나는 아직도 과거의 버릇에 빠져나오지 못했어.


그는 이 기회를 빌려 새로운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겠다고 분명히 일찌감치 결심했다.


하지만 다시 경계당하는 환경에 놓이자 내려놓으려고 했던 방어 본능이 다시 되살아났다.



팔루마

스스로 눈치채지 못했어? 가끔 넌 다른 사람에게 너무 가까이 다가가면 자신의 문제를 다른 사람들에게 퍼뜨리는 그런 아우라가 있다고.



노안

이러면 안되는 데...



레이첼

버릇이 어디 그렇게 쉽게 고쳐질 수가 있나, 하물며 너는 어려서부터 고집쟁이였잖아.


레이첼

가끔은 말이야, 사람은 곁에 친구가 알려줘야 자신이 막다른 골목에 들어섰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어.



노안

...


노안은 고개를 숙인 채 쪽지를 손에 꼭 쥐더니 입에 담을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한 곰돌이 쿠키를 집어 입에 넣었다.


노안

...


노안

...너무 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