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안

시몬 지휘관에게 들었어. 곧 대규모 작전에 참가한다고 했지. 언제 출발해?


지휘관

내일 아침.


노안이 바의 시계를 곁눈질하자 빈티지한 시계바늘이 오후 17시 45분에 멈춰 섰다.


노안

그럼...따로 쉬거나 준비하는 거 없이 그냥 여기에 머물러도 괜찮아?


지휘관

조금 있다가 모임에 나가야 해.


노안

모임? 이런 시기에?


지휘관

접대라고 하는 게...더 어울리겠지.


지휘관

최근의 전황은 그리 낙관적이지도 않고, 탈주자도 많아.


지휘관

그래서...


노안

알았어. 즉, 관리측에서도 불안해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얘기지. 자주 회의를 열어 서로 얼굴을 맞대고 말다툼을 벌이는 일이 많으니까 그 후에 식사자리를 빌려 관계를 회복시킬 필요가 있겠지.


지휘관

대부분 그런 식이야.


노안

그 모임에서 지휘관은 아주 중요한 사람인 거야?


지휘관

아니, 아까 네 말대로...


지휘관

오전에서야 제대로 된 작전 회의가 열렸기 때문이었어.


지휘관

만찬 때는 작전 수행에 필요한 지휘관들도 함께 할 거야.


노안

그 지도자들은 오늘 밤 준비할 필요도 없고 내일 일찍 일어날 필요도 없는데 당신더러 그들이 부리는 허튼 소동에 함께 해달라고 시킨 거였어?


지휘관

(1)허, 허튼 소동...?

(2)이건 허튼 짓이 아니야.


노안

아무리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워도 자신의 유희를 위해 남이 감당하는 일을 외면하는 건 허튼 소동에 불과해.




[1]

지휘관

(1)하지만 사양하기 곤란해. ← 선택

(2)사실 나도 가고 싶지 않아.


노안

이미 이렇게 많은 날들을 바쁘게 보내고 있는데도 위험한 임무를 앞에 두고 쉴 수 없도록 만드는 게 맞는 거야?



[2]

지휘관

(1)하지만 사양하기 곤란해. 

(2)사실 나도 가고 싶지 않아. ← 선택


노안

그럼 가지 마.



노안

당신이 거절할 법을 모른다면 차라리 이렇게 하는 게 어떨까...


노안

주목을 받던 나쁜 악당이 당신에게 위해를 가하도록 내버려 두는 거야. 그런 다음 몸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돌아가 휴식을 취할 수 있겠지.


노안

어차피 이런 일은 처음도 아니야.


노안은 막 조리한 음료를 지휘관 앞으로 내밀었다.


노안

어떻게 생각해?


지휘관

...


앞에 선 지휘관은 바 앞에 서서 고민과 생각을 거듭한 뒤 그 잔을 들고 음료수를 두 모금 마셨다.


그렇게 컵을 들고 책상에 앉아 단말기에 대고 계속 메시지를 보내기 시작했다.


노안은 상대방에게 어떤 메시지를 받았는지 묻지 않았다. 살짝 찡그린 눈초리만으로도 결코 가벼운 내용이라고 할 수 없었다.


10분이 지나서야 상대방은 단말기를 접고 음료수를 한 모금 더 마시고 천천히 걸어왔다.


지휘관

(1)노안

(2)슈렉


노안

응?


노안

왜?



지휘관

우리 도망치자.


그 말에 그는 두 눈을 감고 웃었다.


노안

고맙지만, 내가 만약 떠난다면 이따가 누가 지휘관의 병가를 책임지겠어?


노안

이곳에는 cctv가 있고, 내 몸에는 위치추적 장치가 있어 어디를 가도 찾아낼 수 있어.


노안

혼자 돌아가서 쉬어. 만약 필요하다면 휴게실 입구까지 데려다 줄게.


지휘관

병가를 내고 휴게실로 돌아가면 모두가 걱정할 거야.


노안

그럼 당신이 좋아하는 곳으로 가서 기분 전환을 해.


지휘관

여기에 있으면 안 될까?


노안

조금만 있으면 그들이 나쁜 악당을 붙잡으러 사람을 데리고 올 텐데, 그때가 되면 지휘관은 강제로 쉬러 가게 될 거야.


노안

자칫하면 생명의 별까지 가버릴 수도 있다고.


지휘관

하지만 너를 여기에 남겨둘 수 없어...


지휘관

너 혼자 그 일을 상대해야 하잖아.


노안

지휘관과 같이 도망가면 상대할 필요 없어?


지휘관

그럼 우리는 공범자가 되겠지.


지휘관

너의 부담의 절반을 내가 가져갈게.


지휘관

이것도 너의 철칙이잖아, 안 그래?


노안

...


노안

...당신...


지휘관

다만...


지휘관

미안해, 너만의 입장이 있다는 걸 미처 생각하지 못했어.


지휘관

그렇다면...


노안

그렇다면ㅡㅡ


그는 바를 사이에 두고 웃으며 두 손을 펴고 인간 앞에 내밀었다.



노안

위치추적기가 내 손목에 달려있는데 해제해 줄래?


노안의 어조는 진지한 일이 아닌 것마냥 농담조로 가득차 있었고 언제든지 거절당할 준비가 되어있었다.


지휘관

...


지휘관

권한이 없어.


노안

누구에게 있는지 알고 있잖아.


지휘관

(1)시몬?

(2)아시모프?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휘관

...


노안

이럴 땐 주저하지 말고 바로 거절해야 하는 거 아니야?


노안

설마 나를 정말로 믿을 수 있는지 고민하는 건 아니겠지?


지휘관

(1)난...

(2)진짜로 고민하고 있어.


노안

나를 믿고 위치추적을 해제시킨 순간 쏜살같이 공중 수송기에 올라 타고, 착륙하자마자 승격자에게 연락해 선별을 거쳐 흑화의 절정으로 나아간다면?


지휘관

...


지휘관

진짜로 그런 계획이 있었다면 그때 나와 함께 돌아오지도 않았겠지.


노안

애초에 나는 큰 부상을 입어서 선택권이 없었어. 당신과 함께 가거나, 아니면 죽임을 당할 수밖에 없었지...적어도 나를 의심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늘 그렇게 생각해왔어.


지휘관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노안

그럼...


그는 손을 펼쳐 흔들었지만 그의 표정은 여전히 자조로 가득 차 있었다.


노안

마침 CCTV를 피할 수 있는 길을 알고 있어 같이 도망갈 수 있을 거야.


지휘관

어느 길로 CCTV를 피할 수 있는지 관찰했었구나.


노안

그렇지, 의도치 않게 발견했지만.


노안

탈주에 소질이 넘쳐보이지 않아? 이래도 나에게 믿음이 가?


지휘관

...


인간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다시 단말기를 집어들었다.


긴 교신과 절차 끝에 그레이 레이븐 소대 지휘관의 신원식별카드는 별도의 권한을 얻고 노안의 손목 위에서 흔들었다.


ㅡㅡ삑.


맑은 알림음이 울리자 피부표면에 달라붙어 있던 팔찌가 떨어져 나가 아래쪽에 있는 바에 떨어졌다.


지휘관

딱 6시간만 신청했어.


지휘관

6시간 후에 너는 다시...이것을 착용해야 해.


노안

충분해, 나는 곧 돌아올 거야.


노안

...믿어줘서 고마워.


그는 손목을 움직이고 바 뒤에서 걸어 나와 구속이 풀린 손을 인간에게 내밀었다.


노안

어서 가자.



두 사람은 광장을 달려 좁고 긴 안전통로로 들어갔다.


노안

벽에 딱 붙고 내 위치대로 따라가.


노안

사실 이곳에는 CCTV가 없는 게 아니라 CCTV 사각지대가 있는 거였어.


지휘관

도대체 어떻게 그런 걸 발견한 거야?


노안

이건 비밀인데, 말하지 않을 수 없겠지?


지휘관

(1)하지 마.

(2)하지만 이미 널 믿기로 했어.


노안

사실 나는 CCTV 사각지대를 잘 관찰하거든.


노안

어릴 때 내 비밀기지는 CCTV를 피해 창고에 들어가야 나왔었어.


지휘관

비밀기지?


노안

응, 책을 보관하는 창고였어. 비록 그 안에 있는 책들은 모두 팔아야 할 상품이지만, 그것들을 파손시키만 않는다면 내가 그곳에 남아서 책을 읽고 있는 것을 발견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 두 사람은 이미 통로를 넘어 Z구역의 버려진 함교에 발을 디뎠다.


노안

여기까지 걸어왔으면 아무도 발견하지 못 할 거야.


노안

계단에 앉아서 좀 쉬어.


지휘관

응.


인간은 고개를 끄덕이며 노안의 곁에 앉았다.


노안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도서관에서 가지고 나온 책 한 권을 꺼내어 뒤적였다.


이곳은 아무도 방문하지 않았고 조명과 온도조절 시스템도 멈춰 차가운 공기 속에 비상지시등만 흐릿하게 빛나고 있었다.


지휘관

이런 곳에서 책을 읽는 거야?


노안

지휘관과 이야기하고 싶지만, 애초에 당신을 데리고 나온 목적은 쉬게 하는 거였잖아.


노안

내가 계속 말을 건다면 그거야말로 본말전도 아니겠어?


지휘관

...


노안

잠이 안 온다면 여기서 잠깐 짬을 내도 괜찮아.


노안

안심해, 나는 여기에 머무를 거야.


노안

지휘관의 피로가 좀 풀리면 다시 데려다 줄게.



지휘관

(1)그런데 여기 좀 춥네. ← 선택

(2)그래.


노안

미안, 나도 외투나 담요를 안 가지고 왔는데, 좀 앉아있을래?


지휘관

(끄덕)


노안

자...


그는 한 손에는 책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뒤에 있는 망토를 당겨 인간 위에 걸치고 편안하게 지휘관을 끌어안았지만 시선은 여전히 책 사이에 머물렀다.


그에게 있어 이 행동은 가장 친한 친구나 어린 아이를 위로하는 것처럼 더없이 자연스러워 보였다.


노안

좀 쉬어.


머나먼 별하늘을 보면서 인간은 점점 긴장을 풀었다.


노안도 이 광활한 함교와 함께 평온해졌다.


시간은 조금씩 흘러...


책을 반쯤 읽던 그가 고개를 들었을 때 곁에 있던 사람은 어느새 잠들어 있었다.


노안

...


노안

진짜 잠들었구나...


노안

...그런 무모한 결정을 내리다니.


노안

당신이 원래 그런 사람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내가 정말로 당신에게 믿음을 얻었기 때문일까...?


그의 목소리는 내리는 눈처럼 가벼웠고, 귓가에 들려오는 평온한 숨소리에 녹아들었다.







내가 게이는 아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