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에 들고 있던 책이 마지막 장으로 넘어가고 있을 때는 이미 한밤중이었다.


노안

...지휘관? 우리 이제 돌아가야 해.


그는 조용히 상기시켜 주었지만, 곁에 있는 인간은 여전히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노안

...지휘관?


노안

...지휘관...여기서 오래 쉴 수 없어. 당신만의 휴게실이나 그레이 레이븐 대기실로 가는 게 좋을 것 같아.


다시 한번 조용히 깨우려 했지만 아무런 소득이 없었다.


노안은 미소지으며 한숨을 내쉬고는 가뿐하게 인간을 업었다.


그렇게 그레이 레이븐의 대기실로 돌아가려는 순간, 다급한 교신 알림음이 울렸고 단말기도 진동에 의해 상대방의 손에서 떨어졌다.


받지 않아도 노안은 어느 쪽에서 보낸 통신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늦은 시간에 돌아오지 않은 데다 병가까지 냈으니 걱정되는 사람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노안

...


이 사실을 알면서도 그는 이 순간 아무도 모처럼의 깊은 잠을 방해하지 않기를 바랐다.


자신도 잠이 오지 않을 때가 있기 때문에 더더욱 그것의 소중함을 이해할 수 있다.


그는 등뒤를 감싸면서 몸을 숙여 단말기를 주운 뒤 알림음을 껐다.


노안

...휴게실 쪽이...


노안

으, 그레이 레이븐 지휘관의 휴게실이 어딘지 모르겠는데...됐어...


몸을 바로 잡은 노안은 느릿느릿 그레이 레이븐 소대의 대기실로 향했다.



다시 통로의 cctv를 돌아 광장으로 돌아왔다.


뒤쪽의 평온한 숨소리가 이 길의 평온함을 말해 주고 있었다.


인간의 몸은 부드럽고 따뜻하며 발걸음에 따라 가볍게 흔들렸고, 상대방의 흐트러진 머리카락이 귀를 간지럽혔다.


노안

...


다시 한 번 확인했지만 상대방은 여전히 깨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동안 너무 힘들어서 그런가?


너무 오랫동안 자신을 채찍질해서 이렇게 깊은 잠에 들게 된 것일까?


혹은...


노안

...정말로 내가 두렵지 않아?


'노안'이라는 이름을 다시 한번 인정한 후부터, 공중정원에서 그의 난처한 처지와 함께 많은 번거로움이 뒤따랐다.


그리고 그 역시 한 발짝 물러나 몇 년 전의 상태로 돌아왔다.


노안은 이것이 좋은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주변에서 의심하고 경계할 때는 무의식적으로 웃으며 말을 돌렸었다.


노안

수송부대를 떠난 지 몇 년이 지났었지...


과거 오셀람 호의 상황은 심각했지만 무방비 상태로 사람들과 부대끼며 서로 의지하고 쉴 수 있는 경계 없는 느낌은 그가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길이었다.


떠돌던 나그네가 긴 밤중에 낯익은 빛을 보게 된 것처럼 지금 분위기는 그에게 일종의 그리움과 안도감을 느끼게 만들었다.


이 느긋한 마음 속에 조금만 더 머물 수 있다면 좋을 것 같고, 이 낯설고 외로운 환경에서 이 순간을 간직하고 자신을 믿고 싶어하는 사람을 붙잡았으면 좋겠다.


진정한 동반자 곁에 머물며 본래의 솔직함과 진정성, 온화함을 되찾고 싶었다.


공중정원에 온 지 며칠 안 됐을 때 릴리안이 노안에게 물었었다...



릴리안

공중정원과 한양소대는 너에게 어떤 것일까?


릴리안

감옥? 어쩔 수 없이 머무르는 임시 거처?


노안

...전부 아니야.


노안

이곳은 나에게 있어 자기구원을 위한 훈련실이자 자기증명의 여정과 같아.



노안

승격자뿐 아니라 '노안'이라는 이름에 얽힌... 뒷얘기까지...


노안

이 기회를 빌려 더 이상 피하지 않고 숨기지도 않고 내 본래 이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싶어.


ㅡㅡ그것이 그가 바라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레이 레이븐 대기실 문을 두드리고 대답이 없자 노안은 조심스럽게 걸어 들어갔다.


노안

리 씨...다들 여기에 없나...


꾸지람을 들을 각오가 돼 있던 차에 마침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노안

...자, 그럼...


그는 벤치 옆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몸을 아주 가볍고 느린 동작으로 내려놓았다.


또 구석에서 지휘관의 외투를 찾아내 인간에 덮었다.


노안

...


단말기의 시간을 보니 이미 자정이 넘어 있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그는 반드시 도서관에 돌아와 자신의 '족쇄'를 주워야 한다.


노안

...


가능하다면 이런 편안한 환경에서 좀 더 머물고 싶었다.


노안은 인간의 몸에 걸친 코트를 정리한 다음, 속눈썹 옆에 흩어져 있는 상대방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귀까지 쓸어주었다.


그러고는 조용히 일어나서 이곳을 떠났다.



도서관의 거짓된 밤의 장막으로 돌아가니 모든 것은 그가 떠나기 전의 모습 그대로였다.


광장 깊숙한 곳에서 함성이 들려왔고 또 한 무리의 구조체가 초조하게 전쟁터로 달려가고 있는 것 같았다.


ㅡㅡ'몇 번 더 불러 봐, 상황이 급박해ㅡㅡ!'


ㅡㅡ'신경 쓰지 마, 사람을 살리는 게 중요하잖아!!'


노안

...


그들은 전투에서 자신의 생명을 불태우고 있다.


다만 이곳, 이곳만큼은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것처럼 고요했다.


구석진 곳에 놓인 위치추적 팔찌만이 방금의 갑작스러운 여행을 증명하고 있었다.


그렇게 멍에를 벗어던지고 전장으로 달려가는 사람들 틈에 끼어든다면 그토록 바라던 자유를 얻을 수 있을까?



노안

...그래.


노안

하지만 자유에는 원래 대가가 있지.


노안은 고개를 숙이고 위치추적 팔찌를 들어 손목에 다시 끼웠다.


그는 사람들이 달려가는 방향을 바라보았고, 그 깊은 곳에서는 그를 믿고 싶은 사람이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그러면 그도 그 믿음을 위해 자기증명이 완성되는 날까지 인내할 것이다.


노안

...잘자, 지휘관.


그는 흐트러진 등불처럼 미소를 지었다.





나는 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