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적조 속의 환영이 절망 속의 희망이 된다면, 그것 또한 신앙이 될 것이다.

침식체

치이익!!

마지막 침식체가 쓰러지면서 그윽한 푸른 환경이 고요함을 되찾자 열대어 몇 마리가 유리 덮개를 뚫고 '불청객'을 훑어보았다.

구조체A

정화 완료. 레이더 범위 내에 아군 이외의 활동 신호가 잡히지 않습니다.

치코

생명탐지기의 가동 상황은 어떠한가?

구조체B

스캔한 데이터가 정기적으로 업로드되도록 설정되었습니다. 여기 있습니다.

치코가 고개를 숙이고 단말기를 들여다보니 역시나 새로운 이미지 표시 파일이 하나 도착했다.

그러나 생명탐지기의 탐지 범위 내에는 여러 장소가 장애물에 의해 차단돼 있고 중복신호의 교란으로 특정 표적을 정확히 파악할 수 없었다.

치코는 고개를 끄덕이며 계속 물었다.

치코

CCTV 권한 해킹 건은 어떻게 되었지?

...정화부대원들의 움직이는 소리만 들릴 뿐,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치코

CCTV 상태는 어떻지?

치코는 어쩔 수 없이 언성을 높였다.

???

노리스, 왜 나한테 발길질을 하는 거야?

행렬 끝에서 중얼거리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다.

엉망진창인 협력 상황에 치코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정화부대는 구성원 개개인이 거의 단독으로 싸우는 데 익숙하고, 창설 이래 5명 이상의 팀 단위 작전을 한 바가 없었다.

더구나 인력 확충을 위해 나머지 부대원, 심지어 훈련을 마친 신병까지 상당수 정화부대에 투입되면서 이런 양상이 빚어지고 있었다.

???

뭐, 부대장이 날 불렀다고?

치코는 한숨을 들이마시고 마음을 가라앉히며 세 번째 같은 질문을 던졌다.

치코

CCTV 권한을 해킹하는데 성공했나?

???

부...부대장님에게 보고합니다. CCTV 통제권한에 대한 해킹은 아직 마무리되지 않았습니다...

행렬 뒤편에서 당황하는 소리가 들렸고, 젊어 보이는 구조체가 단말기를 응시하며 손가락을 쉴 새 없이 조작하고 있었다.

특수 제작된 단말기에는 그의 이름인 델라포어가 새겨져 있다.

델라포어

이곳의 보안 시스템은 황금시대의 전통적인 암호화 방식을 사용하지 않아 외부에서 직접 크랙을 찾기 다소 어렵습니다...

델라포어

하지만 15분만 더 주신다면...아니 10분만 더 주십시오...

바닥에 깔린 잔해와 경상을 입은 부대원들을 보며 치코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치코

안 돼, 너무 오래 걸려. 지금까지 우리는 다섯 차례나 침식체의 습격을 받았고 그 다음 습격이 언제 찾아올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치코

관리실 내부 회선에서 해킹을 시도하면 소요시간은 얼마나 되지?

델라포어

부대장님에게 보고드립니다...내부 회선이라면 바이러스 프로그램에 직접 접속해 시스템 권한을 재설정할 수 있습니다.

치코

임무목표를 변경한다. 우선 관리실로 가서 CCTV 권한을 넘겨받는다.

치코

그리고 말 한마디 할 때마다 '부대장에게 보고드립니다'같은 말을 붙이는 버릇은 임무 수행에 필요 없다.

델라포어

부...알겠습니다, 부대장님.

구조체A

우리의 임무는 승격자가 꾀어낸 적조 숭배 단체 '붉은 목소리의 신의 계시'를 찾는 거다. 시간을 지체하다가 그들이 승격자에게 살해당한다면 상부에게 할 말이 없을 거야.

치코

정보대로라면 승격자에게 유인당해 이곳에 왔으니 우리의 일거수일투족도 상대방의 감시 아래 있을 것이다.

치코

이 '코퍼필드 해양박물관'이 아직 정상 운영되고 있는 것은 애당초 매우 비정상적인 일이며, 적어도 '눈'은 우리 쪽이 쟁취해야 한다.

치코

전원, 장비를 정리하고 남은 탄약을 점검하여 출발 준비를 하라.

정화부대원

네!

델라포어

...

???

여어, 멍청하게 있지 말고 빨리 정리하고 가.

델라포어

으아?! 노리스, 놀래키지 좀 마...

노리스

그런 배짱으로 왜 정화부대에 지원한 건지 원...

노리스

이봐, 오늘 무슨 날이야? 평소에 이런 작은 CCTV따위 발가락만 까딱여도 해결하지 않았었나? 처음으로 대규모 임무에 따라가서 컨디션이 별로인 건가?

노리스

아니면 내가 너에게 준 이 커스텀 단말기가 원래의 것보다 좋지 않아서 그런가? 너 예전에 자다가도 베개를 찾던 기억이 나는데, 이제는 3번 휴면실에서 잘만 휴면을 취하잖아. 단말기도 마찬가지 아닌가?

델라포어

발가락이라니...과장이 너무 심하잖아...

델라포어는 지금까지 쉴 새 없이 재잘거리는 이 나쁜 친구에게 고개를 갸우뚱했다.

델라포어

단말기는 문제 없어. 내가 말했듯이 이곳의 암호화 방식이 특수해서 그래.

그러다가 델라포어도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델라포어

하지만 '코퍼필드'가 지구에 남겨둔 자산의 대부분 동일한 암호화 방식을 취하고 있어서 이번과 같은 상황은 처음이야.

노리스

어쩌면 그 높은 어르신께서 갑자기 변덕이 생겼다거나 아예 승격자가 암호화 방식을 조작했을지도 모르지, 하하하...

델라포어는 몸을 떨며 서둘러 노리스의 입을 막았다.

델라포어

여기서 함부로 주둥이를 놀리지 마! 난 승격자와 마주치고 싶지 않다고!

노리스

정화부대에 합류한 이상, 그건 시간문제야.

쉽게 상대의 팔을 풀어낸 노리스는 역으로 델라포어의 어깨를 누르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노리스

또한 성장 과정의 일부이기도 하지.

델라포어

마치 승격자를 만났던 것처럼 말하네...

델라포어는 눈 앞에 있는 자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다. 만약 상대방이 정말로 승격자를 만났었고, 발성 장치가 전투 중에 불행하게도 손상되지 않았었다면, 그는 상대방의 끊임없는 허풍에 음파 감각 장치를 포기해야만 했을 것이다.

노리스

하하하, 승격자 얘기가 벌써부터 들끓고 있고, 당초 참전한 순환도시 전투에서도 복수의 승격자가 등장했다지만, 나는 만나지 못했어. 어떤 의미에서 운이 좋다고나 할까?

노리스

그러니까 이번에도 운이 좋겠지?

구조체A

노리스, 아직도 잡담을 나누는 거냐?

노리스

먼저 가볼게.

델라포어를 지나치며 노리스는 친구의 어깨를 두드렸다.

노리스

하지만 막상 승격자를 만나도 걱정하지 마. 너 같은 기술자가 정화부대에 있는 것은 귀한 일이거든.

노리스

우리 같은 전위가 있는 이상, 너는 안전할 거야.

노리스

게다가 이번엔 부대장도 있어. 겉으로는 안 좋은 별명을 가지고 있지만, 실력은 그에 어울린다고 할 수 있지.

노리스

그러니 쥐가 치즈를 잃어버린 듯한 표정 짓지 마.

델라포어

...

델라포어

안면 보호대를 쓰고 있는데도 보여?

노리스

하하하, 네가 어떤 추상파 예술 작품이 되어도 난 다 알 수 있...

'탕'

노리스의 발밑 공터에 총알 한 발이 날아왔다. 빨리 복귀하라고 재촉하던 소대 인솔자는 손에 총을 들고 있었고, 총구에는 아직 흩어지지 않은 총성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구조체A

노리스!

노리스

***

노리스

갑니다 가요!

노리스

참, 이미 상부에 전근 신청서를 제출해놨어. 이번 임무가 끝나면 네가 속한 소대에 가서 그 후에도 서로 도울 수 있을 거야.

이 말을 마친 노리스는 급히 행렬 앞으로 달려갔고 델라포어는 멀어져 가는 상대방의 모습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델라포어

그런 플래그는 세우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그는 재빨리 단말기를 치운 뒤 무심코 고개를 들었다. 생태어항 속 열대어가 정화부대 일행을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다.

오늘날에 이르러서도 황금시대의 이 골동품은 여전히 양호하게 운영되고 있었다.

문득 델라포어의 마음 속에 한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이 열대어의 눈에서, 그들은 유리항아리에 갇힌 또 다른 이종족의 무리로 보일까?

'붉은 목소리의 신의 계시'의 구성원들은 적조가 삼킨 기억과 데이터, 의식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기 때문에 죽은 자는 적조에서 다시 태어난다고 굳게 믿고 있으며, 적조의 환영도 생명의 메아리로 여기고 있다.

생명형태와 서식환경의 차이는 교류의 장벽을 가져오고, 물속에 사는 물고기가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듯이, 육지에 사는 사람도 적조 속에서 변화하는 생명을 이해하지 못한다….

'델라포어'

(잠깐...)

'델라포어'

(왜 물고기가 있지?)

시설은 가동이 가능하지만 아무도 관리하지 않는 물고기 떼는 어떻게 살아남은 것인가?

이곳은 밝고 아름다운 무덤으로서, 무덤에는 오랫동안 부패한 뼈만 있어야 했다.

'델라포어'는 대열에서 벗어나 자신을 응시하던 물고기 떼를 향해 천천히 걸었고, 거리가 가까워지면서 물고기 떼가 모여들었다.

수천 마리의 물고기 떼의 한 쪽이 유리덮개에 달라붙어 거대한 곤충의 겹눈과도 같은 모습을 취했고, 그 틈 사이로 익살스러운 광대 분장마냥 알록달록한 색깔로 채워져 있었다.

수백 개의 눈이 '델라포어'의 발걸음을 따라 천천히 움직였고, 수백 개의 물고기 눈 속에서의 '델라포어'가 서서히 팽창하고 뒤틀리고 변형되었다.

물결이 요동치면서 물고기의 눈 속의 '자신'은 크림처럼 무너져 내리고, '뼈', '피', '살'이 없어지고, 얇은 '가죽 몸뚱이'만이 바닷물에 표류했다.

'...'

발밑에는 감각이 없어졌고, 간신히 사람 형체를 유지하던 물체가 물과 공기를 가르는 유리덮개에 가까이 다가왔다.

'...카'

가까이 다가올수록 오히려 기분이 좋아지고 모든 감각은 환희의 비명을 지른다!

'...앙카'

의식은 우리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하늘을 날아다니는 것만 같았고, 몸도 쇠사슬에서 벗어나 비상하는 날개를 달고 솟아오를 것이다.

조금만 더 가까이...

지휘관

비앙카!

비앙카

크윽...

수렁 속으로 가라앉고 있던 의식이 깨어나면서 인상이 굳어졌다.

발 밑에는 먼지가 쌓인 잔해가 놓여 있었고, 손에 든 램프의 불빛이 서서히 꺼지고 있었고, 시각 모듈의 환영도 서서히 공기 중에 녹아내렸다.

???

비앙카, 지금 기분은 어떤가요?

환영과 형체가 겹쳐 한동안 눈앞의 사람을 알아보지 못했다.

시각 모듈을 살짝 보정해 보니 루시아가 비앙카 앞에 서 있었고, 그 옆에는 인간 한 명, 더 멀리서는 이번에 함께 작전을 수행하는 다른 멤버들이 주변을 경계하고 있었다.

비앙카

괜찮습니다. 마침 지휘관님이 '추적장치'의 작동을 중단시킨 것입니까?

지휘관

맞아.

상대방은 이미 완전히 꺼진 등불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지휘관

의식의 바다 신호가 방금 전에 심하게 요동쳤었어.

지휘관

딥 마인드 링크를 쓸 겨를이 없었지.

지휘관

그래서 내가 먼저 권한으로 장치의 작동을 중단시켰어.

비앙카는 그때서야 두 사람의 의식이 특별한 루트를 통해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동안 이 사실을 간과할 정도로 의식이 크게 이탈했던 것일까?

비앙카

시의적절한 결단이었습니다, 지휘관님.

비앙카

'추적장치'를 통해 이곳에서 일어난 사건의 일부를 보고 거짓 환각이 발생하였습니다.

생체공학 물고기 몇 마리만이 떠다니는 거대한 수조를 바라보던 비앙카는 마지막에 본 수백 마리의 열대어가 그저 허상일 뿐이라고 확신했다.

비앙카

이제 의식의 바다가 진정되었으니 지휘관께서 더 이상 딥 링크를 부담할 필요 없습니다.

지휘관

응.

링크가 끊기면서 비앙카도 랜턴 형태의 '추적장치'를 허리춤으로 걷어냈다.

루시아

'파오스의 창'과 달리 이 장치는 의식의 바다가 이탈할 위험이 너무 큽니다.

루시아

비앙카, 그것의 사용을 최소화 하세요.

지휘관

나도 루시아의 말에 동의해.

비앙카

...

비앙카

적어도 이번에 우리는 약간의 사용 기한을 얻었습니다.

비앙카

아시모프 씨와 베살리 씨 또한 딥 링크가 적시에 이루어져 의식의 바다가 안정되면 의식의 바다가 이탈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언급했습니다.

지휘관

불필요한 위험을 무릅쓰지 않아도 돼.

비앙카

안심하세요, 제가 사용하기에 좋은 시기를 판단하겠습니다.

지휘관

...

지휘관

이 기체든 이번 임무든 사전 준비가 너무 촉박했어.

9:00 A. M. 공중정원

하산

이전 임무는 수고했다.

하산

자네는 임무 브리핑에서 혹사가 적조에 대해 몇 가지 자신만의 견해를 가지고 있다고 언급했었지?

지휘관

그는 적조에 삼켜진 생명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습니다.

지휘관

또 다른 불완전한 형태로 존재한다고 말입니다.

하산

음, 그 점은 노안이 말한 것과 같군….

하산

나는 '코퍼필드 해양박물관' 사건이 승격자의 걸작이라고 의심하고 있네.

지휘관

'코퍼필드 해양박물관'?

하산

그래, 이것 역시 자네가 다음에 가야 할 임무 장소지.

하산

실제로 승격자가 루머를 퍼뜨리는 대상은 구조체뿐 아니라 일부…. 유사한 잘못된 생각을 가진 부랑자 집단을 노리고 있다.

함교의 프로젝터에 갑자기 수많은 글과 사진 정보가 쏟아졌다.

지휘관

'붉은 목소리의 신의 계시'?

하산

적조가 죽은 사람에게 새로운 생명을 가져다 줄 수 있다고 믿는 단체지.

하산

우리가 입수한 증언에 따르면, 그들은 처음에는 13명으로 이루어진 작은 단체였으나, 점차적으로 성장하여 지금은 거의 천 명에 가까운 규모를 형성했네.

하산

처음 단체를 만든 13명도 스스로를 '신의 계시를 받은 13인'이라고 부르지.

지휘관

...

하산

그들은 사람을 적조에 빠뜨리거나 적조에 뛰어들도록 유도하는 것과 같은 과격한 행동은 하지 않았네.

하산

하지만 최근에 선두주자인 13명 모두 정체불명의 승격자로부터 러브콜을 받았었지.

하산

상대방이 원하는 장소에만 가면 시험과 선별을 통과하여 적조에서 새로 태어날 수 있다는 약속을 했었다네.

하산

예전에는 '적조로부터 새 생명을 얻다'를 일종의 위안으로만 여겼지만, 현 상황에서 이러한 위안은 생명을 구할 지푸라기처럼 여겨지고 있다.

하산

그들 대부분은 도중에 죽었고, 정화부대가 도착했을 당시 시체와 극소수의 생존자만 발견되었지.

하산

13명의 리더는 이제 한 명만이 남았다.

짙은 아이섀도를 바른 여성의 실루엣이 나타났다.

하산

그레이스, 그녀가 마지막으로 나타난 곳은 '코퍼필드 해양박물관'이었다.

지휘관

승격자는 이들을 개조해 한패로 만들려는 속셈인 것입니까?

노안의 이야기에 따르면 그의 개조는 인류의 조예라고 할 수 없는 혹사의 '걸작'이라고 하였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이 승격자도 인류를 구조체로 개조하는 기술을 갖고 있는 것 같다.

하산

아니, 그들은 노안과 상황이 좀 다르네.

하산

이들은 보육구역에서 공중합체 적성검사를 받은 결과 적응성이 없어 구조체가 될 가능성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었지.

하산

노안의 기체를 검사해 본 결과, 의식의 바다의 특수성을 제외하면 그의 기체에 사용된 재료와 기술은 매우 평범했다.

하산

이론상 승격자가 그들을 구조체로 만들 방법은 없지.

하산

그러나 어쨌든 우리의 동포가 승격자의 음모의 희생양이 되는 것을 지켜볼 수는 없네.

하산

우리는 박물관을 조사하도록 정화부대를 파견했지만 그들 역시 실종되었다.

지휘관

치코도 실종되었습니까?

하산

그렇네.

치코

여기는 치코, 박물관 입구 및 주변 1km 반경에 침식체 행동 신호가 잡히지 않아 '붉은 목소리의 신의 계시'단체에 대한 본격적인 조사 작전을 시작하겠습니다.

하산

이것이 우리가 마지막으로 받은 영상일세.

하산

이번에 자네는 치코가 이전에 수행한 임무를 맡아서 '코퍼필드 해양박물관'으로 가 '붉은 목소리의 신의 계시'라는 단체를 조사해서 승격자의 목적을 알아내야 한다.

하산

그 밖에도 가능한 한 생존자의 수색 구조도 병행하도록.

지휘관

알겠습니다.

하산

다른 질문은 없나?

지휘관

임무 외 질문이 있습니다.

하산

말해보게.

지휘관

리에 대한 것입니다만...

답을 얻고자 하는 것이 너무 많아 오히려 어디서부터 물어볼지 갈피를 잡을 수 없어 소대원의 이름만을 말했지만, 하산도 자신이 하고픈 이야기를 알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하산

자네의 걱정에 대해 잘 알고 있네. 하지만 이 일에 관해서 아직 너무 많은 것을 알려 줄 수 없네.

하산

그러나 우리가 기울인 모든 노력은 제2의 백야가 다시 나오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임을 알아줬으면 좋겠네.

하산

'진정한 희망은 이 모든 것을 창조한 사람들이다'라는 자네의 의회 연설에 영향을 받은 것은 달의 영점 에너지 엔진의 처리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네.

하산

그러니 그들에게 준비할 시간을 더 주었으면 하네.

지휘관

...

지휘관

먼저 준비하러 가보겠습니다.

수송기 내부의 분위기는 무거워 부대원 대부분이 한마디도 하지 않았고, 소수의 사람들 역시 몇 마디 속삭이며 침묵을 지켰다.

이전 임무에서 만난 적이 있는 낯익은 얼굴도 있고, 처음 보는 얼굴도 있었다. 아마 정화부대에 갓 합류한 신참인 듯했다.

그러나 가장 뜻밖인 것은 이 부대의 대장일 것이다.

루시아

비앙카, 이 기체는...

대행자와의 전투에서 중상을 입은 비앙카는 새로운 모습으로 자신의 앞에 나타났다.

영도 기체를 수리하는 동안 진리 기체로 참전할 줄 알았는데, 하지만 상대는 본 적이 없는 기체로 바꾸었고, 심지어 평소에 쓰던 활도 검장(지팡이 검)으로 교체했다.

비앙카

이번 임무가 실내에서 이뤄져 활의 성능이 제대로 발휘되기 어려우므로 다른 장비를 준비하였습니다.

비앙카는 시선의 의혹을 의식한 듯 장비 교체 이유를 스스로 해명했다.

비앙카

참, 베살리 씨가 이것을 당신에게 맡기라고 했습니다.

비앙카에게서 건네받은 것은 다소 낯익은 링크 발신 장치였다.

지휘관

얼마 전에 개선한 딥링크 장치인가?

지휘관

왜 이것을 사용하는 거지?

비앙카

좀 더 자세한 건 나중에 설명하겠지만, 일단 안전벨트를 매세요, 지휘관님.

지휘관

'추적장치'?

비앙카

네, 이것이 바로 '심흔'기체에 사용되는 가장 핵심적인 신기술입니다.

비앙카에 따르면 이 랜턴 모양의 '추적장치'는 그녀가 과거에 일어났던 일을 되살리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한다.

그 말대로라면 현장에 전자장비가 온전하게 남아 있는 한 그레이 레이븐이 썼던 '파오스의 창'과 같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비앙카

'파오스의 창'과 달리 '추적 장치'는 퍼니싱에 저장된 정보의 일부를 해독하고, 이를 더욱 강화된 '파오스의 창'을 다시 로딩해 해독을 진행할 수 있습니다.

비앙카

구조체의 하드웨어 성능에 한계가 있어 기계와 같은 강력한 해독력과 시뮬레이션 성능을 갖춘 아날로그 회로를 탑재할 수 없을 뿐더러, 기계는 퍼니싱에 의해 쉽게 침식될 수 있어 휴대가 불편하지요.

비앙카

아시모프 씨가 발명한 '파오스의 창'은 구조체에게 사용할 수 있지만 완전한 전자기기에 남아 있는 정보만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비앙카

'추적장치'는 바로 이 사이의 공백을 메울 수 있습니다. 지구에 퍼니싱이 널리 퍼져 있는 지금, 이를 통해 우리는 그 지역 이전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있습니다.

루시아

퍼니싱이 정보를 저장하는 기능까지 있었다니…. 아니, 적조의 환영은 이미 비슷한 능력을 보여주었었지.

비앙카

연구원들에 따르면, 그들은 실제로 적조가 처음 목격되기 훨씬 전부터 관련 연구를 일찌감치 수행하였다고 합니다.

비앙카

하지만 최근에 노안이 나타나면서 마지막 퍼즐 조각이 완성되었습니다.

지휘관

'추적 장치'를 사용하면 의식의 바다가 이탈할 수도 있는 건가?

'추적장치'의 작동원리를 잘 모르더라도 퍼니싱의 정보를 해독하는 것은 단말기에서 문서를 여는 것마냥 쉬운 일이 아니다.

비앙카

네, 일정 시간 이상 가동한 후 깊이 적시에 의식 연결을 하지 않으면 의식의 바다상에서 영구적인 이탈과 손상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비앙카

또한 퍼니싱의 해석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장치가 가동되는 도중에 딥링크를 시행하는 것은 평소보다 지휘관님에게 더욱 큰 부담이 될 것입니다.

지휘관

시간 제한은 얼마나 되지?

비앙카

잠깐이지만...정확히는 모르겠습니다.

지휘관

모른다고? 잠깐만...

지휘관

비앙카, '심흔'기체로 테스트나 시뮬레이션 해 본 적 있어?

노안이 공중정원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노안이 나타난 뒤에야 '추적장치'의 마지막 퍼즐 조각이 완성됐다면 심흔 기체는 최근에야 완성됐을 것이다.

비앙카

...

비앙카

사태가 급박해 최소한의 테스트와 시험 가동을 거쳤지만, 추적장치를 사용하지 않는다면 의식의 바다에 손상을 입히지 않는 점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비앙카

'추적 장치'에 관해서는 공중정원에 마땅한 시험 장소가 없었고, 지상으로 와서 시험을 하기에는 이미 너무 늦었습니다.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었고, 장갑 사이로 손톱이 손바닥을 찌르는 듯했다.

하산

'진정한 희망은 이 모든 것을 창조한 사람들이다'라는 자네의 의회 연설에 영향을 받은 것은 달의 영점 에너지 엔진에 대한 처리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네.

하산

그러니 그들에게 준비할 시간을 더 주었으면 하네.

이빨 사이로 쥐어 짜내듯이 나머지 말들들 겨우 이어갔다.

지휘관

의장과 아시모프 둘 다 다시는 이런 계획에 동의하지 않았을 텐데.

지휘관

심흔 기체의 제작자는 누구지?

비앙카는 눈을 감았다가 한참이 지나 주먹을 쥔 자신의 손이 서서히 풀리자 입을 열었다.

비앙카

쿠로노입니다. 지휘관님.

비앙카

퍼니싱이 출현한 초기부터 그들은 이 연구를 전개해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