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앙카

치코가 이끄는 부대는 관리실 쪽으로 향했어...


비앙카가 동료들에게 '추적 장치'가 해독한 메시지를 들려주던 도중 통신 접속 메시지가 갑자기 울리며 거칠게 통신이 차단되었다.



???

심흔, '추적 장치'의 작동 상태는 어떻지?


다소 창백한 얼굴이 통신 인터페이스에 나타났다.


비앙카

'추적 장치'는 방금 전 첫 번째 가동을 마무리했습니다.


비앙카

관련 데이터는 임무 종료 후 업로드하여 제출할 예정이니 임무 중 무단으로 통신에 접속하는 것은 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비앙카

이 점은 당신에게 말씀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베살리 씨.


베살리

허.


비앙카의 말에 상대방은 그저 콧노래 한 마디와 여전히 끊기지 않는 통신으로 자신의 태도를 표현했다.


비앙카

알겠습니다. 지금 첫 번째 작동 데이터를 업로드 하겠습니다.


짧은 시간 동안만 작동했지만, 생성된 모니터링 데이터는 생각보다 훨씬 커 전송 진도를 나타내는 커서의 움직임이 더뎠다.


베살리

참, 당신이 그레이 레이븐의 지휘관인가?


창백한 여성은 데이터 전송을 기다리는 사이 꽤 흥미를 느끼며 시선을 돌렸다.


지휘관

그렇습니다.


베살리

지난 임무에서 당신의 M.I.N.D가 침식체와 직접 연결되었다고 들었다.


지휘관

맞습니다.


베살리

허, 어쩐지 그 녀석들이 이번에 자신만만 했더니만, 심지어 너를 '회수' 계획에 포함시키지 않은 것도 당연하겠군.


베살리

너는 확실히 지난번의 그레이 레이븐 지휘관보다 훨씬 더 유용하군.


베살리

심흔과 딥링크를 한 느낌은 어때...네가 백야...아, 지금은 식암이라고 해야겠군...그것의 의식의 바다를 고쳐줬을 때와 다른 점이 있나?


지휘관

비앙카와 리브라고 불러주시죠.


베살리

?


왠지 베살리는 구조체들을 이름이 아닌 기체 코드명으로 부르는 것에 익숙한 듯 했다.


상대방은 무언가를 생각한 듯, 경박한 미소를 지었다.



베살리

또 그런 식인가?


베살리

'익숙한 외형을 유지하는 것이 의식의 바다의 안정에 도움이 된다...'


베살리

'자신의 모습이 그대로라는 것을 깨닫고 있는 한, 의식의 바다는 이탈하지 않는다...'


베살리는 갈수록 비아냥하는 듯한 미소를 지었다.


베살리

구조체와 늘 함께해 온 너에게 이런 기만적인 발상따위 없을 줄 알았는데.


베살리

과연 의회에 의해 '잘 포장된 영웅'이라고 해야 할까? 그 정교한 '리본'들이 이미 너의 생각을 사로잡아버린 모양이네.


베살리

'구조체는 도구일 뿐'이라는 것이 머릿속에 가득 찬 곱창의 어리석은 생각이라면, '구조체는 인간과 다르지 않다'는 것 역시 자신을 기만하는 거짓말일 뿐이지.


베살리

완벽한 구조, 통제 가능한 진화 방향, 독립적인 의식 및 사고력.


베살리

이것은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생명이자, 진화의 방향이다.



루시아

그렇다고 우리가 과거를 완전히 포기하거나 부정할 필요는 없죠.


아무 말도 하지 않던 루시아가 갑자기 대화에 끼어들었다.


베살리

어쩌면 한때 인간이었던 너에게는 이름이 남다른 의미가 있을지 모르지만, 새로운 생명체가 된 이상 그 변화를 직시해야 하고, 기체 코드명이야말로 그 인식을 확고히 하는 닻이지.


베살리

시시각각 자신이 여전히 인류라고 말하면서도 인간보다 훨씬 뛰어난 힘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은, 마음속으로 몇 마디 예쁜 말을 묵상한다고 해서 없앨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베살리

자기 인식과 현실의 괴리야말로 의식의 이탈을 초래하는 주범이다. 자신의 변화조차 직시하려 하지 않는데 어떻게 자아를 유지할 수 있지?



정화부대원

그런 수녀의 분장을 해서 탈주자들을 데리고 천국으로 데려가길 바라는 거야? 너는 그들을 지옥으로 보내야 해!



비앙카

...


베살리

자신이 여전히 과거 인간일 때의 모습이라고 여기지 말고, 현재 자신의 모습을 자신이라고 여기도록.


베살리

그들은 애당초...


비앙카

베살리 씨.


비앙카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며 베살리의 말을 끊었다.


비앙카

데이터 전송이 이미 완료되었으니 가능한 한 빨리 평가를 진행하여 주십시오. 우리에겐 아직 해야 할 임무가 있습니다.


베살리

칫...알았어.


투영된 베살리의 이미지는 마치 무언가를 읽고 있는 것처럼 조용했고 잠시 후 그녀는 인상을 찌푸렸다.


베살리

가동시간이 예상치를 밑도는 것은 예상했던 바야. 결국 너는 1순위 적합자가 아니니까.


그녀는 또 잠시 아래를 훑어보자, 안색이 더욱 불쾌해졌다.


베살리

작동 기간을 거친 후 여분의 환각이 출현했다라...하지만 이 수치들이 무의미한 것은 아닌 것 같군.


베살리

예상치 못한 흥미로운 상황이지만 환각을 보기 전부터 이미 의식의 바다 이탈 증상이 있었다는 증거이기도 하지.


베살리

심흔, 내 충고에 따라주는게 좋겠어.


베살리

앞으로 나아갈 길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은 단지 퍼니싱을 쫓아내는 것만이 아니다. '추적장치'는 퍼니싱에 담긴 정보를 얻기 위한 거지.


베살리

반푼이 같은 모습과 반푼이 같은 마음가짐으로 퍼니싱 무기를 사용하는 것은 너의 인식에 더욱 큰 이탈을 일으킬 뿐이다.


비앙카

필요에 따라 당신의 의견을 고려하겠습니다.


베살리

쳇...


베살리

어차피 너도 나중에 비슷한 환각을 겪게 될 거야.


베살리

이런 예상치 못한 환경이 어떤 새로운 데이터를 가져올지 기대되는군.


베살리

적시에 딥링크를 실시해 의식의 바다를 안정시켰던 것을 기억해. 나의 심혈을 기울인 작품이 일회성 소모품이 되어버리는 걸 보고 싶지 않거든.


베살리

게다가 '추적장치'를 만들 수 있는 모체 조각도 더 이상 남아 있지 않단 말이지.


통신이 끊겼고 상대방의 모습은 공기 중으로 사라졌다.


지휘관

누구야?


비앙카

제가 앞서 말씀드린 쿠로노 측 연구주임입니다. 지휘관님.


비앙카

또한 심흔 기체 개발의 주도자 중 한 명이죠.


지휘관

그녀가 한 충고는?


비앙카

현재 이 모습은 심흔 기체 본래의 외형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원래의 모습은...보다 정화부대와 마녀의 고정관념에 부합하지요...


비앙카

이것은 원래 계획에 없던 것이었습니다...


여기까지 말할 때 비앙카는 무언가 생각한 듯 눈에 일말의 망설임이 스쳐갔지만 이내 그 망설임은 사라지고 대신 변함없는 굳건함을 되찾았다.


비앙카

데이터 전송에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했습니다, 지휘관님. 이제 최대한 빨리 임무를 시작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지휘관

...


부랴부랴 준비한 기체, 임시로 추가된 코팅, 대체된 제 1의 적합자... 대화에서 비친 파편들을 통해 머릿속에서 대략적인 구도를 연상했다.


하지만 비앙카 본인이 이 일에 대해 언급을 꺼리는 만큼, 여기서 마무리짓는 것이 좋아 보인다.


지휘관

응.


고요한 박물관에서 어수선한 발자국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볼 수 없는 땅속 깊은 곳에서 손님을 환영하는 '직원들'도 그들의 '환영식'을 준비했다.



전투 개시



시스템 안내: 직원 정보가 인식되지 않아 스마트 고객 서비스에 접속하고 있습니다.



존경하는 관광객 여러분, 코퍼필드 해양박물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전방 구역은 보수 작업이 진행 중이므로 아직 개방하지 않은 점 양해 바랍니다.



수리 완료 후, 작업자가 가장 먼저 비밀번호를 입력할 예정이오니, 기다려 주시기 바랍니다.



코퍼필드 해양박물관에서 즐거운 하루를 보내시길 바랍니다.



코퍼필드 해양박물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좋은 시간 보내시길 바랍니다.



비앙카

입구뿐만 아니라 박물관 내부 시설도 거의 모두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어.


비앙카

여기에 미량의 퍼니싱도 남아있으니 적절한 시기에 추적 장치를 이용해 탐사가 가능하겠지.




루시아

지휘관님, 저는 다른 대원들과 함께 서관으로 향하는 통로를 수색하겠습니다, 부디 조심하세요.


루시아

엘레베이터는 1층까지만 운행이 가능하지만 표시는 줄곧 -3층으로 고정되어 있어. 고장이 났거나, 아니면...



(안내판)


좌측 순으로

(1)1층에는 금속 기물로 새겨진 선이 멀리까지 이어져 있으며, 그 옆에는 작은 글씨 두 줄이 새겨져 있다.


(2)박물관의 구조가 그려진 금속 안내판이 있고, 지하 3층에는 해양 생물 공연 전용 대형 저수지가 있다.

나머지 두 층은 모두 평범한 생태 수조다.


(3)첫 번째 줄 : 나중에 도착하신 분들에게, 1층에서 가장 가까운 도시와 통하는 통로를 마련해 놓았습니다.

두 번째 줄 : 나중에 도착하신 분들에게, 지하통로로 가지 마십시오. 붕괴로 인해 차단되었습니다. 현재 바닷물에 잠긴 상태입니다.


비앙카

녹슨 흔적이 역력한 걸 보아 오래전에 버려진 모양이야.




구겨져 노란색으로 물든 포스터 한 장에는 해양박물관의 건립 시기 및 '세계 최대의 생태 해저 박물관을 만들다'라는 표어가 기록되어 있다.


뒤집어보면 위에 유성펜에 의해 난잡하게 쓰여진 글이 보인다: 퉤, 물고기 한 마리도 없어, 전부 가짜잖아!


비앙카

필적이 아직 바래지 않은 것을 보니 아마도 부랑자들이 남긴 것 같아.



길쭉하게 잘린 백지로, 다음과 같이 쓰여져 있다 : 물항아리에 구렁이가 있을 리 없어! 토끼를 조심해!


뒤집은 뒷면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있다 : 나는 토끼다. 토끼가 참 맛있다.


옛 광경이 눈앞에 떠오르기 시작했다.



비앙카

여기는...



적의 환영

치이익!!



비앙카

나에게 돌진하다니, 추적장치의 적합성 문제때문인가?



살려줘, 살려줘!


비앙카

나에게 도움을 청하는 게 아니야...



비앙카

이쪽에 서 있던 누군가를 보고 있던 게 아닐까?


부랑자의 환영

당...당신들은 공중정원의 구조체!


비앙카

설마 애초에 그가 만난 사람이 치코 무리였나?!


부랑자의 환영

그래...맞아 신의 계시를 받은 자들은 아직 밑에 있어. 너도 가입할 생각이야?


비앙카

신의 계시를 받은 자...'붉은 목소리의 신의 계시'에서 그레이스를 부르는 호칭으로 기억하고 있어.


부랑자의 환영

아니...구원이 필요한 건 너희들이야...


부랑자의 환영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부랑자의 환영

..지하 3층...전부 적조로 뒤덮였어! 이렇게만 하면...신이 다시 태어날 수 있을 거야. 고마워!



비앙카

해독할 수 있는 정보는 여기까지인가...




보존 상태가 양호한 녹음펜이 있는데, 그 안에는 공포에 질린 숨소리만이 녹음되어 있다.


비앙카

...



부대원B

이건 촛불인가? 그리고 바뀐 흔적도 남아있어.


좌측 순으로


(1)

비앙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딸에게 바친다', 이것은 이 박물관의 소유주가 남긴 것으로 보여.


(2)

비앙카

정상적인 촛불이라면 이렇게 오래 타오를 리 없어. 누군가 교체하고 있는 것이 분명해. 난민인가, 승격자인가?


(3)

비앙카

이것은 박물관의 물건이 아니야. 위에 전투 흔적이 남아있어.


부대원C

다른 곳과 달리 조각상은 꼼꼼히 닦여있어...누가 이렇게 한가하게 지내고 있는 거지?



부대원A

생체공학 물고기까지 있다니...



부대원A

도대체 누가 박물관을 다시 연 거지?



비앙카

물살이 너무 강해 섣불리 통과하기엔 위험해. 우선 다른 곳에 가서 조사를 해야겠어.




상심하지 마, 우린 이미 새 생명을 얻었어...


이건 내가 원하는 모습이 아니야!!!



좀 더 가까이 와줘...



빨리 뛰어! 멀리 달려갈수록 좋아...아니, 이리 와서 나를 죽여! 죽여줘!!



너도 언젠가 우리의 일원이 될 거야...



비앙카

윽...아까 그건...


비앙카

추적 장치가 또 다시 반응했어.


옛 광경이 눈앞에 떠오르기 시작했다.



적의 환영

치이익!!



비앙카

지난번과 같은 상황이다.



비앙카

적이 아니잖아. 너는...내가 너와 함께 가길 바라는 거니?



비앙카

여기는...


비앙카

네 자리의 비밀번호를 입력하라...


비앙카

이것이 수문의 제어 스위치군.


비앙카

단서가 될 만한 게 도대체...



비앙카

해독할 수 있는 정보는 여기까지인가...


부대원B

그쪽 상황은 어떻습니까? 서관은 아직 조사 중이지만 저희는 도중에 생존자의 흔적을 발견하였습니다.



비앙카

이 문은 안에서 닫혀있습니다.


비앙카

이곳의 퍼니싱 농도는 매우 낮고요.


???

밖에 누구 있나? 누구지?


비앙카

공중정원에서 왔습니다. 혹시 '붉은 목소리의 신의 계시'의 멤버입니까?


???

당신들이라고?! 신의 계시를 받은 자의 말이 과연 옳았어! 그녀는 다시 태어났겠지?


비앙카

...죄송합니다만, 저희는 그녀와 더불어 실종된 부대원들을 수색하기 위해 이곳에 왔습니다.


???

실종?


???

그 사람들은 아래층으로 내려가서 무너진 지하 통로를 뚫어 저수지의 적조를 향해 갔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어.


???

바로 그 수막 뒤에 말이야.


비앙카

하지만 이미 닫혔습니다.


???

...우리가 닫았어. 신의 계시를 받은 자께서 여기에 남아 기다리고 있으라 하셨지...


???

하지만 그 뒤로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았어...


비앙카

제가 그녀를 찾겠습니다. 다른 사람들 또한 당신들과 함께 이동할 것입니다.


???

정말이야? 그럼 비밀번호를 알려줄게.


비앙카

비밀번호는...9451




수막이 열렸다.


비앙카

이러면 무사히 아래층으로 갈 수 있겠지.



전투 종료





라디오 방송

존경하는 관광객 여러분, 지하 2층으로 통하는 해저터널은 이미 보수 공사가 끝났으니 차례차례 줄을 서서 차례대로 입장해 주시기 바랍니다.


라디오 방송

지하 2층에서는 음식, 레저, 그리고 중단 없는 돌고래쇼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라디오 방송

코퍼필드 해양박물관에서 즐거운 하루 되십시오.



수막이 열리면서 지하 2층으로 향하는 해저터널이 뭇사람의 눈앞에 나타났다.


루시아

공기 중의 퍼니싱 농도가 상승하고 있습니다!


방호복의 검출기 역시 루시아와 같은 경고를 보냈고, 다행히 상승한 수치는 비교적 안전한 범위 내에 머물렀다.


적조와는 다른 부패한 냄새가 터널을 타고 흘러 나왔고, 터널 끝 어린이 그림이 그려진 소방함에 모두의 시선이 쏠렸다.


이미 말라서 뭉게뭉게 뿌려진 적흑색 물질이 먹물을 끼얹은 듯 장식용 삽화를 가렸고, 밑부분의 틈으로 새어 나오는 것은 암홍색의 끈적끈적한 고름뿐만 아니라, 마치 실제로 썩은 냄새와 같았다…


'치직치직...으갹...찔꺽찔꺽...'


또한 혼란스럽고 무질서하며 온갖 불쾌한 미사여구의 느릿느릿한 속삭임이 들려왔다.


제식장검을 휘두르자 소방함 문이 통째로 갈라졌다...


'탁...탁탁'


그리고 내용물이 뭉게뭉게 바닥으로 '흘러내려' 두 팔 너비의 '고기 패티' 한 장이 펼쳐졌다.


이것은 이미 외형을 알아볼 수 없는 유동식 덩어리인데, 새로 돋아난 살점은 부서진 금속과 한데 엉켜 있고, 연한 유기질이 점액 속에 잠겨 있다.



그러나 추적장치의 작용으로 비앙카는 스쳐 지나가는 수많은 사람의 그림자도 보았는데, 그들의 얼굴이 희미하고 신분도 분간할 수 없어 체형으로나마 겨우 남녀를 구분할 수 밖에 없었다.


'왁...'


유기질의 표면은 호흡과 같이 경미한 기복에 따라 풍만한 거품이 일면서, 거품이 공기 중에 빠르게 터졌고, 그에 따라 안의 더러운 물질도 지면으로 날아갔다.



거품이 매번 터질 때마다, 이 '유동식' 덩어리는 한바탕 커다란 울음소리를 내는데, 이때야 비로소 새로 돋아난 살점으로 가득 찬 표면에서 몇 장의 일그러진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이들은 모두 눈을 가늘게 뜨고 눈꼬리를 구부려 기뻐하는 모습이지만, 입은 여러 가지 모양으로 왜곡되어 고통의 함축적인 속삭임을 토해냈다.


그것은 힘겹게 살점을 꿈틀거리며 튀어나간 오물들을 향해 기어갔다. 꿈틀꿈틀 움직이면서 날카로운 금속 조각들이 보드라운 외관을 뚫고, 상처에서 솟구쳐 나온 선혈로 지면에 끌린 흔적을 남겼다.


'깔깔깔...와아아악...소곤소곤...'


섬뜩한 것은 그 비뚤어진 입 몇 개가 오히려 출혈량이 커지면서 즐거운 수다를 떨었다는 점이다.



정화부대원

제가 배웅하겠습니다.


한 정화부대원이 경량형 생물 소각장치를 꺼내자 농축된 기름과 2800도의 고온은 순식간에 눈앞의 모독스런 물질을 지워버렸다.


유기질이 코크스로 바뀌면서 오히려 살점에 묻혀 있던 금속이 눈에 띄었다.



비앙카

이것은?


비앙카는 검장 끝으로 꺼지지 않은 코크스 속에서 금속 조각을 가볍게 들어올렸다.


어느 구조체의 인식표인 듯한데, 금속 조각에 붙은 부착물을 지우자 이름 하나가 떠올랐다.


비앙카

델라...포어?



델라포어

...누가 날 불렀어?


델라포어는 차가운 땅 위에서 고개를 들어 한순간에 사라진 부름의 소리를 찾고 있었다.


이것은 일반적인 휴게실로, 흔히 볼 수 있는 생활 가구 외에도 각종 단말기가 구석구석 가득 진열되어 있으며, 심지어는 황금시대 이전의 중소규모 집적회로로 구성된 개인용 컴퓨터 한 대도 있다.


델라포어는 몸이 뻣뻣해지는 것을 느끼며 잠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델라포어

너무 오래 쉬었나?


델라포어

뭐, 일단 밖에 나가볼까.


델라포어는 방문을 열자 넘어졌다.



노리스

젠장, 그 승격자가 어떻게 그렇게 먼 곳에서 여기까지 온 거야!


노리스는 터널 안을 빠르게 달리고 있었고, 침식 흔적과 여러 색깔의 순환액, 그리고 까맣게 탄 상처가 온몸에 퍼져있었다.


자폭에 가까운 공격 끝에 노리스가 속한 소대는 마침내 승격자의 추격에서 벗어났고, 그 대가로 그를 제외한 모두가 박물관의 폐허에 묻혔다.


그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도 상대의 로봇팔에 잡히지 않은 행운 덕분이었다.


노리스

통신기마저 고장났어, 도망가서 다른 사람들에게 이 일을 알려야 해.


지하 3층의 지옥 같은 광경을 떠올리면 노리스 같은 사람도 저절로 덜덜 떨게 된다.


노리스

제기랄! 내가 선봉에 서야 돼, 너 같은 기술자가 무슨 힘을 쓰겠다고!


노리스는 손에 부러진 인식표를 꽉 쥐고 가슴에 가득 찬 비분과 저주를 전진의 동력으로 만들어냈고, 텅 빈 박물관에는 그의 비루한 말이 쉴 새 없이 울려 퍼졌다.


오랫동안 갈고 닦은 감각으로부터 경미한 마찰음이 포착되었다.


'탕탕탕'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노리스는 얼마 남지 않은 총알을 구석의 그림자 속으로 쏟아부었고, 그 후 순식간에 몇 걸음 앞으로 나아가 허리춤의 제식칼을 빼내어 곧게 세로로 쪼개버렸다.


두부를 자른 듯한 촉감과 바닥의 단단함이 차례로 느껴졌다.


노리스

도대체 뭐냐고!



'펑펑펑'


스마트AI

영점, 어긋남.


AI의 기복 없는 안내음과 함께 델라포어는 무표정한 표정으로 앞에 놓인 사격표적을 바라봤다.


다만 성인의 상반신 모양을 한 과녁 중심부의 둥근 원 안에는 어떠한 탄흔도 보이지 않았고, 도리어 아무런 표식이 없는 팔 부분에 산발적으로 서너 개의 구멍이 분포되어 있다.


스마트AI

9.5점!


AI의 알림음이 다시 들려오고, 아쉬움에 찬 목소리가 귓가에서 들려왔다.


???

에휴, 오늘 컨디션이 안 좋네.


잠시 상대방의 이름이 기억나지 않았지만 델라포어는 조건반사처럼 말을 건넸다.


델라포어

뭐 됐어, 너는 과거 최고 성적이 겨우 8.7점이었잖아.


???

야야야, 과녁에 못 맞춰서 화가 난 걸 나한테 풀려고 하지 마.


델라포어

...


???

됐어, 또 그 똥씹은 듯한 얼굴을 하고 말이야. 생각해봐, 정말로 지면에 도착하게 되면 우리가 마주하는 것이 전부 인간형 적은 아닐 거 아냐.


???

그리고 좀 더 긍정적으로 생각해보면, 네가 팔을 명중시켜서 적어도 상대방이 무기를 잡을 수 없게 하는 것이 과녁을 맞추지 못한 것보다 낫지…진짜라니까. 근데 잘 보라고, 거기는 사실 다리 위치야.



노리스

아, 아아아아아악!    


눈앞에 있는 적의 전진 속도는 결코 빠른 편은 아니다. 단지 천천히 꿈틀거리며 기어갈 뿐이며 때때로 멈추기도 한다.


하지만 노리스는 더 이상 반격할 손도, 도망갈 다리도 없다...


이 괴물이 뿜어내는 점액은 한순간에 노리스의 탄탈륨 팔다리를 부식시켰고, 그 속에 든 고농도의 퍼니싱도 그의 침식도를 한껏 끌어올렸다.


지금 그는 땅바닥에 엎드려, 조용히 상대방이 천천히 자기 앞으로 움직이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다.



???

배고파...


델라포어

구조체는 배고픔을 느낄 수 없어...그리고 이 조형물 너무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

어쨌든 공짜로 얻었으니까 됐어.


???

예술협회 놈들은 이렇게 늘 뜬금없는 짓을 하고 다니잖아.


델라포어가 들고 있는 로봇 모양의 과자는 두 눈을 딸기 시럽으로 장식되어 기이한 붉은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여전히 옆에 있는 이 재잘거리는 구조체의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데, 상대방이 자신과 이렇게 친하게 지내는 걸 보니, 친한 친구이지 않을까?


델라포어는 자신의 마음에서 마치 큰 조각이 부족한 듯한 허전함을 느꼈다.


???

어서 먹어 봐.


이 호의를 받아들이면 마음의 빈자리가 채워질 수 있지 않을까?



델라포어

...



델라포어는 가볍게 깨물었다.



'콰직...'



재잘거리며 쉴 새 없이 떠드는 구조체...


조용해졌다.


'콰직...'


'콰직, 콰직, 콰직, 콰직...'


델라포어(?)

맛은 괜찮은 편인데, 너는 어때...노리스?



비앙카는 일찌감치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여전히 차분한 마음으로 눈앞의 일을 살피지 못했다.


바닥 위 유동식이 이리저리 꿈틀거리며 무언가를 찾아다녔지만 결국 아무것도 얻지 못한 그는 서서히 소방함 안으로 기어 들어왔고, 그 한 켠의 작은 어둠이야말로 그가 가장 신뢰하는 비호인 듯했다.


'우우우...철퍼덕...우갹...'


비앙카의 눈에 보이지 않는 내부에서 흐느끼는 듯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

이리와, 조금만 더 가까이, 내가 널 볼 수 있게.


자신도 모르게 비앙카는 소리가 들려오는 쪽으로 걸어갔다.


???

그래, 그렇게 됐어. 나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중첩된 목소리

조금만 더 가까이 다가오면 너는 그들을 볼 수 있을 거야...



치코

죽은 사람을 다시 볼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은 종종 가장 빨리 죽는 지름길이 되기도 하지.



살을 에는 듯한 한기가 혼돈스러운 비앙카의 의식을 소환했고, 주변의 광경은 어느새 눈이 펑펑 내리는 설원으로 변했다.


치코

왜 여기에 오려고 한 거야?



비앙카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비앙카는 절로 고개를 돌리려 했다.


비앙카

...이건...나의 기억...?


치코

눈 좋아하니?


비앙카

...



치코

산자에 대한 그리움은 잘못된 판단을 하게 만들고 돌이킬 수 없는 희생을 초래해.


치코

죽은자에 대한 감정은 나약하게 만들어. 두려움도 그렇고, 그리움도 마찬가지지.


치코

죽음 앞에서 추호의 동요도 없어야 우리는 똑같이 생사를 두려워하지 않는 괴물들을 상대할 수 있어.


비앙카

하지만 그런 식으로 우리도 똑같은 '괴물'이 되어버려.


치코

괴물만이 괴물을 다스릴 수 있어.


비앙카

분명 다른 방법이 있을 거야.


치코

...비앙카.


치코의 목소리는 보기 드문 부드러움을 띠었고, 비앙카는 그제서야 생각이 났다. 치코는 어떤 사건을 거치면서 다른 정화부대원과 마찬가지로 그녀를 반푼이라고 부르지 않았던 것 같다.


치코

우리는 이별에 익숙해져야 해.


치코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너는 여전히 누군가를 죽이게 될 거야.


비앙카

너마저도?


치코

맞아, 언젠가 내가 침식체가 된다면 마음껏 비웃어줘.



뒤에서 밀치는 추진력이 느껴지자 비앙카는 새하얀 눈보라에 밀려들었고 눈꽃이 그녀의 시야를 희미하게 만들었다.


치코

부탁할게...


치코의 마지막 말도 희미해졌다.



루시아

비앙카, 괜찮나요?


허황된 한기가 물러나면서 비앙카의 의식은 다시금 현실 세계로 내려왔다.



비앙카

괜찮습니다.


그녀는 시선을 옆 사람에게로 돌렸다.


비앙카

지휘관님, 사령부에 보고해야 할 긴급 사항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