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리아 산림공원 유적의 재난은 결코 되풀이되어서는 안 된다.



하산

손실 추산.


게슈탈트

계산 결과 사상자 비율 87.1%를 전제로 임무 성공률은 28.4%입니다.



하산

과연 웰스 참모총장님답게 지금껏 가장 높은 성공률을 보인 플랜을 제시하셨습니다.


의원A

지금 농담합니까!


주먹이 책상을 내리치자 난데없는 둔탁한 소리에 웅성거림이 멈췄고, 사방에서 쏟아진 시선은 일어선 의원을 향했다.


의원A

웰스 참모총장, 집행부대의 사상자 비율이 최저 87.1%라면 이 계획을 실행할 필요가 있는 겁니까?


웰스 참모총장

여러분이 모든 오메가 무기를 투입하기를 꺼린다는 전제하에 만들어진 방안이니 귀하에게 고견이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의원A

적어도 사상자 비율을 2%로 낮춰야 합니다. 공중정원은 그렇게 많은 전력을 쓸 수 없습니다.


웰스 참모총장

그렇다면 모든 오메가 무기를 투입한다면 사상자가 생각보다 적다는 것을 확실히 보증하지요.


의원C

크흠...


의원C

이 문제에 대하여 방금 전에 결의하지 않았습니까. 월면기지를 우선 보전하기 위해 월면기지의 침식 여부를 완전히 확인하기 전까지 절반 이상의 오메가 무기를 보유하고 있어야 합니다.


웰스 참모총장

그러나 각 정찰부대의 보고에 따르면 월면기지에 퍼니싱 바이러스의 존재 징후는 전혀 없고….



의원B

그것도 지금까지의 일입니다. 정찰부대에 따르면 현재 탐지 구역은 50% 미만에 불과합니다.


의원B

만일 나머지 지역에 상당한 농도의 퍼니싱 바이러스가 존재하고 우리가 충분한 양의 오메가 무기를 준비하지 못한다면 인류는 월면 기지와 영원히 작별해야 할 것입니다.


웰스 참모총장

그것은 추측에 불과합니다...


의원B

단 1%의 가능성조차 있으면 안 됩니다! 그곳은 월면기지로 오메가 무기를 생산하는 곳인데, 웰스 참모총장께서는 인류의 희망으로 도박을 하시겠다는 겁니까?!


말소리가 떨어지자 정적이 회의장을 뒤덮었다.


이것은 섣불리 대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에 중립을 지키는 입장에서도 신중히 말을 아낄 것이다.



하산

고생하셨습니다, 참모총장님.


웰스 참모총장

의장님도 마찬가지입니다. 뒷일은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웰스 참모총장은 하산에게 경례를 한 뒤 홀로 떠났다. 멀어져 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니콜라는 두 손을 가슴에 안은 채 허탈한 한숨을 내쉬었다.



니콜라

기대했던 효과를 내지 못했어…참모부의 합류도 중립을 지키는 놈들을 흔들지 못했다.


하산

하지만 최소한의 여유는 생겼네. 그들의 지지를 얻으면 쿠로노가 아무리 승부수를 띄워도 결의는 통과할 확률이 높아.


니콜라

그럼 이제 조력자들을 하나씩 등장시켜야겠군.


니콜라

최전방 부대는 필사적인 상황이라 우리 쪽도 더는 현 상황을 존치할 수 없다.



바다가 붉은 물보라를 일으키며 끊임없이 기슭의 암초를 씻어내고 있다. 분명 옛날에는 듣기 좋은 소리가 들려왔는데, 지금은 불길한 그림자로 축적된 불안감을 부추기고 있다.


불과 수십 분 전, 자신은 바다에 방류되는 적조에 대한 세부 사항과 아울러 대행자 측의 계획에 대한 추측으로서 이 모든 것이 그들의 첫걸음일 가능성이 크다고 의회에 보고했다.


그러나 난민들이 떠날 무렵, 적조를 막으라는 것이 아니라 철수하라는 회답을 받았다.


다른 채널을 통해서라도 하산 의장과 대화해 얻을 수 있는 것은 철수 대기를 하고 있으라는 것일 뿐이었다.



세리카

쿠로노 녀석들이 작전 세부 사항까지 직접 회의 의제로 옮겨 이제 군부 혼자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에요.


지휘관

회의 결과는 어떻습니까?


세리카

아직 논쟁중입니다. 현재 각축을 벌이고 있어서 총사령관께서 적절한 시기에 다시 결의를 할 거예요.


세리카

어...그분께서 직접 오시다니...죄송합니다만 지금 나가봐야겠어요. 소식이 있으면 바로 연락드리겠습니다.


세리카의 통신이 황급히 끊겼다. 저쪽도 벌써 바빠진 모양이다.


단말기를 내려놓고 다시 그 붉은 광경에 시선을 집중시켰다.


적조는 지금 바다를 갉아먹고, 요람을 갉아먹고, 인류가 먹고사는 집을 갉아먹고 있다.


그리고 전사들, 모든 것을 기꺼이 바치려는 전사들은 지금은 해안가에 머물러 있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지휘관

...


기다림은 계속될 것이다.



세리카

잠깐 지나가겠습니다.


세리카는 복도를 달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누군가가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



모리

세리카 씨, 회의장으로 가시는 건가요?


세리카

물론이죠, 지금 얘기를 나눌 기분은 아닌데...이것은?


상대방이 접힌 쪽지를 내민 것을 보고 질문을 던졌지만 그는 그저 검지손가락을 입술 앞에 갖다 댔다.


세리카는 재빨리 쪽지를 펼쳤고, 그 위에는 정보 저장용 칩이 있었다.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모리는 사라졌다.


무엇이든 쓸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세리카는 이를 개인 단말기에 탑재했다.


정보가 스크롤되는 동안 그녀의 동공은 확장되어갔다...


세리카

...하산 의장님! 하산 의장님!



의원B

이 정보는 어디에서 찾은 겁니까?


하산

기밀입니다.


의원C

적조 속에서 끊임없이 포식하는 전대미문의 생명체가 등장할 것이고, 종국에는 처리할 수 없고 심지어 모든 것을 파괴하는 골칫거리가 될 것이다…. 이 '모든 것을 파괴'라는 부분은 무슨 의미죠?


니콜라

지금 이런 것을 이야기할 때입니까? 적조가 바다에 방류되는 것만으로도 위험하니, 그 사실만 알고 있어도 충분하지 않습니까.


회의에서 가냘팠던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의원D

그렇다면 당장 모든 오메가 무기를 투입해 이 위협을 제거해야 합니다!


자신을 지지하는 의원들이 많아지자 하산과 니콜라는 눈맞춤을 하며 미소를 지었는데….


의원B

조급해하지 말고 침착하세요.


그 의원은 일어서서 두 팔을 벌리고 유세에 나섰다.


의원B

아무리 절박한 위협이라 해도 그것은 퍼니싱의 피조물일 뿐입니다.


의원B

월면기지의 안전만 확보된다면 오메가 무기는 끝없이 투입할 수 있을 것이고, 그때가 이르러서도 지구를 파괴할 정도는 아닐 것입니다...


의원A

당신 단말기에 무슨 문제라도 있어? 하산 의장의 정보에 따르면 절박한 상황인데….


의원B

우리는 이 위협을 요람 속에서 억제할 수 있습니다!


갑자기 커진 음량이 일으킨 진동은 그를 반박하려는 의원들을 압도했다.


의원B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기다리면 됩니다.


의원B

월면 기지에서 생산을 재개할 수 있습니다. 그때까지 인류의 미래를 걸고 모험을 하지 말아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그러자 그 의원이 자리에 앉자 장내가 원상태로 회복됐고 재잘거리는 소리가 회의장을 가득 메웠다.



해안가에서는 세리카와 짧은 교신이 이어졌지만 현장에 있던 사람들에게는 청천벽력이었다.



세리카

한마디로, 이런 의원들이 모든 오메가 무기를 투입하는 것에 대해 꺼리고 있어요.


지휘관

이대로 사태를 그대로 방치한다고요?


지휘관

그때가 되면 정말 바다에 방류된 적조를 수습할 수 있을 거라고 하는 겁니까?


세리카

...


세리카

사실, 오메가 무기가 제대로 양산된다면 이론적으로는 가능합니다. 그러나 그 전에 지상의 모든 것이 괴멸적인 타격을 입게 되겠죠.


세리카

우리는 과거의 모든 성과를 한꺼번에 잃고, 지상의 인류도 파멸의 재앙을 맞게 될 텐데….


세리카

저는 그것을 막기 위해 계속 싸워나갈 거예요. 적어도 개인적으로는 이런 결과를 결코 받아들이지 않을 겁니다.


통신은 다시 일단락됐고 인근 정화부대원들은 곤혹스러운 듯 자신에게 도움을 청하고 있었다.



정화부대원

그레이 레이븐 지휘관, 이 보급함은 지휘관의 권한이 있어야 열 수 있습니다.


지휘관

(권한 설정)


정화부대원

감사합니다, 이제 저에게 맡겨주시면 됩니다.


정화부대 소속 구조체는 상자 안의 부품을 메고 해안가로 뛰기 시작했다. 어렴풋이 그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정화부대원

동쪽에서 공격해 오면 곤란하니까 빨리 화력을 증강시켜야 해.


그러나 아직도 남아 있는 정화부대원은 뚜껑을 비틀어 열고 머리 위에 생수 한 병을 쏟아냈다.



정화부대원A

야야야, 너무 낭비하지 마, 이따가 방어선을 치고 또 써야지.


정화부대원B

무슨 상관인데…. 어차피 곧 철수할 거잖아.


정화부대원A

뭔 소리야?


정화부대원B

뭔 소리냐고? 공중정원에 있던 친구가 나에게 소식을 전했는데, 의회가 적조를 막아 바다로 들어갈 계획이 없다면 철수하는 것 말고는 뭐가 있겠어?


그러자 두 사람은 약속이나 한 듯 이쪽을 바라보며 자신들에게 증거를 구하는 듯했다.


지휘관

(끄덕)


정화부대원A

...그레이 레이븐의 지휘관...과연 이대로 철수하는 겁니까?


지휘관

아마도...


정화부대원A

동료가 희생되고 대행자의 계획이 실현될 것을 뻔히 알면서도 이대로 돌아간다는 겁니까?


정화부대원A

동료의 시신을 버리고 비앙카 대장을 포기한 채, 퍼니싱 바이러스를 바다에 빠뜨려 전 세계를 집어삼킨 뒤 공중정원에 숨어서 연명한다는 겁니까?


정화부대원B

진정 좀 해.


정화부대원A

뭘 진정하라는 거야!


지휘관

계속 싸우길 원해?


정화부대원A

당연하지 않습니까!


지휘관

다른 정화부대원은?


그 구조체는 빈 병을 던지며 한없이 굳은 눈으로 자신에게 화답했다.


정화부대원B

이 물병만 아니었어도 당장 단말기를 들어 쌍욕을 했을 겁니다.


먼 곳의 루시아는 이쪽의 실랑이를 눈치챈 듯 달려오고 있었다.



지휘관

나는 모든 사람의 생각을 알아야 해. 모든 사람은 각자 선택할 권리가 있어.


가능하다면...


너희들의 힘을 나에게 빌려줘.



회의는 계속됐고, 월면기지의 정찰부대에서 보고가 왔다.


게슈탈트

월면기지 점검 진척도는 51%로 아직 퍼니싱 바이러스 존재 징후는 없습니다.


의원B

자! 이대로 월면기지가 정리되면 오메가 무기 생산 재개 시도에 착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적지 않은 의원들은 승리가 예견된 것처럼 조용한 목소리로 환호했고, 그 다음 뒤따른 것은 기다림이었다.


그러나, 과연 이것뿐일까?


니콜라

지상 손실 시뮬레이션 계산 결과는 나왔나?


게슈탈트

상세 예측 데이터가 생성되었으며 예상 지상 인명피해율, 해안선 및 인근 지역, 99%, 근해 지역, 98%…


쥐죽은 듯이 고요했다. 이 수치들에 뒤따른 것은 죽음 같은 고요함, 침묵의 시산 같은 고요함이다.



니콜라

보시다시피 오메가 무기 생산에는 시간이 걸리고, 그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사망합니다. 다시 말해 땅 위의 인간은 전멸에 가까워질 것입니다.


니콜라

당장 오메가 무기를 모두 투입해도 늦지 않습니다. 수송, 착륙, 배치, 개방, 참모 이사회가 제시한 방안에는 그것에 소요되는 시간까지 계산되어 있습니다.


니콜라

그러나 더 이상 미룬다면 되살릴 기회조차 없습니다. 적조가 어느 정도 확산되면 기존의 오메가 무기는 무력해집니다.


이것이 마지막 시도다…. 그동안 데려온 도우미들로는 저울을 자기 편으로 기울일 수 없었으니, 사망 수치로도 안 된다면….


의원C

질문이 있습니다……하산 의장…이 계획의 성공률은…얼마나……



하산

90%에 육박하며, 집행부대의 인명피해율도 그리 높지 않습니다.


의원C

오...그럼...받아들일 수도 있을 것 같군요.



의원B

반대합니다!


귀청이 터질 듯한 함성은 죽음의 광경에 빠진 사람들을 떨게 했다.


의원B

이건 월면 기지를 가지고 도박하는 거야! 인류의 미래를 걸고 도박을 하는 거라고! 하산 의장!


그 의원은 들뜬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회의장 중앙에 있는 하산을 집게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의원B

오메가 무기는 인류의 미래 희망을 대표한다! 만약 월면기지에 문제가 생긴다면 우리는 어떻게 퍼니싱 바이러스에 대항할 거지? 두 시대의 대가를 또 한 번 치르고 새로운 해법을 찾으라는 소리냐?!



니콜라

땅 위의 인류는? 그들이 이합생명체에 잡아먹혀도 되는 건가?!


의원B

그런 건 아무도 원하지 않아!


그는 책상을 두드리며 니콜라의 질문을 끊었다.


의원B

여기 있는 모든 사람들은 인류의 미래에 대한 희망을 위해 그 계획을 거부합니다!


의원은 주위를 둘러보며 눈동자 하나하나를 스쳐 지나가다 하산에 머물렀다.


의원B

이것이 바로 여기, 모든 사람들의 의지입니다.


말이 끝나자 회의장에는 다른 소리가 존재하지 않았고, 모두 무의식적으로 숨을 죽였다.


분위기가 엄숙해지고 책임감, 미래, 이 모든 것이 의원들로 하여금 하나둘 고개를 숙이게 만들었다.


결국 그 의원은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이 순간부터 침묵은 묵인이 되었다.


치ㅡㅡ치ㅡㅡ치익ㅡㅡ


그러나 의회 중심부에서 투사된 내용물이 쉰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의원B

뭐야?



하산

아마 지상군에 대한 정보 같군요. 현재 지상작전 결정은 의회가 직접 맡고 있어서 군은 관련 사항을 회의에 넘겼습니다.


의원B

지상군? 니콜라 사령관, 전방부대 철수 명령을 아직 내리지 않았습니까?


니콜라

이전 결의안에 그런 항목이 있던 기억은 없습니다만.


의원B

쳇, 의미없는 지연에 불과해...


'여기는 그레이 레이븐 소대 지휘관, 공중정원에게 보내는 정기 통신입니다.'


투영된 화면이 점점 선명해지기 시작했다.



먼저 얼굴 하나가 떠올랐다. 그 뒤에 디지털 영상의 구조체가 서있었다.


'적조가 바다에 방류되기 시작하면서 오염된 해양생물이 이합생명체로 전환될 것으로 예상돼 이곳에 상륙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여기에 방어선을 치고 시간을 벌 것입니다. 본부에서 지원을 요청하는 바이며, 그 기간 안에 해결 방안을 찾길 희망합니다.'



의원B

무슨 해결책이 있다고! 모두 철수하고 오메가 무기 생산을 기다려!


세리카

아, 의원님, 이것은 비디오입니다. 그쪽에서는 아마 당신의 말을 들을 수 없을 겁니다.


의원B

그럼 이 말을 전해....


'저희는 지상의 무고한 생존자들을 포기할 수 없고,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대피해야 합니다.'


그러나 상대의 말을 미리 예견한 듯 녹화 내용은 계속 흘러나왔다.



'희생자가 개척한 길을 따라 우리는 희생으로 고향을 탈환할 수 있었기에, 저는 차마 쉽게 철수 명령을 내릴 수 없었습니다.'


'적조가 바다에 방류되는 것을 방치하면 오메가 무기를 사용해도 되돌릴 수 없습니다.'



의원B

과학의사회 보고서를 다시 설명해야 하나?


뜻밖에도 영상 속 인물은 오른손으로 주먹을 쥐고 자신의 가슴에 뛰는 심장을 향해 몇 차례의 망치질을 했다.


그렇다, 바다는 정화될 수 있고 오메가 무기가 양산되면 그 푸르고 맑은 바다는 언젠가 인류의 손으로 돌아올 것이다.


건물은 수리할 수 있어 재난이 지나가면 으레 건물이 다시 세워졌었고, 사람들은 과거의 폐허를 따라 새 집을 하나씩 지을 것이다.


그러나 한번 다치면 다시 원래대로 되돌릴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인류의 자존심, 한때 굳건했던 믿음.


만일 그들을 모두 버리고 허망한 새벽을 맞이한다면, 그렇다면 몇 년 후, 새로 지은 건물들의 그늘 아래, 연이은 불빛 아래서 인류는 무엇을 추억해야 할까?



집행부대원A

증원부대가 없어도 상관없으니 본부에서 탄약과 에너지를 지원해 주십시오.


집행부대원B

저희가 가지고 있는 장비와 인력으로 이곳을 지킨다면 5일 정도 버틸 수 있을 것입니다.



정화부대원B

저기 있는 놈, 작전 총지휘자에게 가서 좀 물어 봐. 우리가 다른 사람을 버리고 여기서 의기소침하게 도망가라는 거야?! [삐ㅡㅡ]


정화부대원A

아, 진정해! 욕하지 않기로 했잖아.


정화부대원B

일단 말은 끝마치게 해달라니까...


어렴풋이 한 구조체가 다른 구조체에 의해 끌려가는 듯했다. 그럼에도 카메라 앞에 선 많은 사람들은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고 난공불락의 성벽처럼 꼿꼿이 서 있었다.


'공중정원을 핍박해 결정을 유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희의 의지를 전하고자 하는 것이며, 어떤 선택을 하든지 간에 누군가는 중요한 것을 대가로 자신의 생존을 희생해야 합니다.'


'지구를 탈환하기 위한, 인류의 승리를 위한, 우리 자신의 선택입니다.'


'위의 교신 내용을 현장에 있는 집행부대와 정화부대의 모든 구성원들과 함께 서명하겠습니다.'


'그레이 레이븐 소대 지휘관, 【지휘관 이름】.'



여기까지 읽고 그 지휘관은 뒤로 물러섰고, 검붉은색 구조체가 카메라 앞으로 다가왔다.


루시아

그레이 레이븐 소대장, 루시아.


이어서 차가운 표정의 구조체가 서 있었다...



정화부대원A

정화부대 소속, 아서.



진흙투성이의 구조체...


집행부대원

집행부대원, 릭.



정화부대원B

정화부대 소속...



...투영된 영상에서 일선 부대원들은 카메라 앞에 자신의 영상과 이름을 하나씩 남겼다.



게슈탈트

합산 완료, 서명 인원은 이번 임무 파견 인력의 90%입니다.


게슈탈트

나머지 10%는 실종된 정화부대장 비앙카를 제외하고 모두 전사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침묵, 그리고 이전과는 다른 침묵이 의회를 뒤덮었다.


또 다른 영상이 나올 때가 되서야 이 죽은듯한 적막을 찢어버렸다.


치ㅡㅡ치ㅡㅡ직ㅡㅡ



정찰부대원

여기는 월면기지 정찰분대 긴급 통신, 현재 몇 퍼센트더라...


엔지니어 부대원

쳇, 통신기 가져와. 넌 계속 전진해…. 이곳은 월면기지 정찰분대 비상통신으로서, 월면기지 점검진도가 90.5%에 도달했으며, 나머지 부분은 앞으로 몇 시간 안에 점검이 완료될 예정입니다.


회의에서 관련 정보를 알고 있던 의원들이 깜짝 놀랐다.


이런 속도는 이전보다 훨씬 빨라 아무리 노력해도 없을 정도의 효율이었다.


그러자 한 의원이 이를 눈치채고 벌떡 일어섰다.


엔지니어 담당 의원

잠깐! 왜 건설 기계를 운전하지 않는 거지? 그리고 너, 넌 구조체도 아니니 어서 안전구역으로 돌아가.


스크린 속 엔지니어 부대원이 머리를 긁적거렸다...


엔지니어 부대원

그건 시간을 들여 길을 터야 되서 효율이 너무 낮습니다. 다른 대원들과 상의한 끝에 육안 정찰을 좀 더 빨리 수행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엔지니어 담당 의원

너희들 미쳤어! 지금 월면기지는 엉망이야. 퍼니싱 바이러스를 만나지 않았더라도 가스가 새거나 중력이 통제 불능이 되는 그런 것이 있다면, 공사 기계가 없으면 너는 언제든지 거기서 죽을 수 있다고.


엔지니어 부대원

글쎄요…. 최전선 부대는 필사적으로 싸우려고 하는데, 우리만 굼지럭거리면서 안위만 챙기기는 곤란합니다.


그러면서 그 의원에게 개입을 시도할 기회를 주지 않고 카메라를 향해 무중력 상태에서 미소 지으며 경례를 했다.


다만 그의 눈빛은 그 의원을 넘어 뒷줄의 웰스 참모총장에게로 향했다.


엔지니어 부대원

이것은 우리의 의지이자 우리 자신의 결정입니다.


엔지니어 담당 의원

누구야!? 누가 그 정보를 알려줬지?!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고, 정찰부대로부터의 통신도 끊겼다.


그 의원은 실의에 빠져 자리에 주저앉아 넋을 잃고 앞을 응시하며 생각에 잠겼다.


사라지는 영상을 바라보며 웰스 참모총장은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각이 진 배지를 꽉 쥐자 은백색의 매가 그의 손바닥을 찔렀다.



니콜라

무기가 없어진다면, 우리는 다시 재건할 수 있습니다. 기지가 없어진다면, 우리는 다시 수리할 수 있습니다.


니콜라

과거의 과학 기술이 단절되었지만, 우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여전히 나아가고 있습니다.


니콜라는 손을 들어 투영된 스크린을 가리켰다.


니콜라

그러나 끝까지 관철하려는 그들의 의지, 결코 물러서지 않을 신념, 인류에 속하는 자존심은 한번 무너지면 다시는 되찾을 수 없습니다!


니콜라

여기서 저는 총사령관의 자격으로 이전의 결의에 대해 재투표를 제안하겠습니다!